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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에 이런 이벤트에는 운이 없었는데, 제 댓글의 진정성이 통하였는지 25명의 초대자 중 한명에 선정되었습니다!^^ 

 두근두근..떨리는 마음으로 이 날을 기다렸지요. 

 

그날은 추적추적..비가 내렸어요 

이리카페를 찾아가는 길에서부터 마치 오늘밤을 위한 분위기 조성처럼..느껴졌어요 

카페는 지하에 있었고, 생각했던 것처럼 정말 운치있는 곳이었습니다.  

카페 안은 자그마한 무대와 관객을 위한 의자로 꽉 들어차서 어수선한 느낌이었지만 

포근하고 아늑했고.. 나무로 된 마룻바닥을 밟는 느낌이 따스한 곳이었어요 

바에 가서.. 일행은 러시안블랙, 저는 골드메달리스트를 주문해서 의자에 앉아 홀짝홀짝 마시면서 

행사가 시작하기를 기다렸는데, 음료도 정말 맛있더라구요^^  

무대는 빔 프로젝터 한 대와 아담한 스크린, 그리고 양초가 빛을 내고 있었고, 

프로젝터에서 내는 푸르스름한 빛에 모습을 드러낸 수많은 먼지들이 별처럼 아름다웠어요

 

드디어 사회자 성기완 씨의 인사로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어색한 듯, 서투른 듯, 쑥쓰러워 하는 모습이 오히려 기형도 시인을 위한 이 밤에 진솔한 분위기를 더했습니다. 

 

첫번째 낭독자는 한강 씨와 김중혁 씨였는데 각각 <기억할 만한 지나침>과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를 낭독해주셨어요 

제가 이 행사에 꼭! 참여하고 싶었던 이유 중의 하나인 한강 씨...^^   

소설 <몽고반점>을 읽고 정말 팬이 되었었거든요.

소설 속에서 만났을 때와 다르게 실제로 뵈니 정말 미인이셨고..목소리도 예쁘셨어요 >_< 

 

낭독자의 코멘트! 

김중혁 : 대학교 때 시를 쓰고자 했는데 기형도 시인의 작품을 읽고 열패감을 느껴 소설에 전념하고자 했다. 

           최근 내 작품을 쓰고 나서 오랜만에 기형도 시집을 펼쳐 들었는데, <먼지 투성이의 푸른 종이>는  

           내 작품세계와 정말 맞닿아있었다. 아마 젊은 시절에 읽었던 시에 내 작품세계가 영향을 받은 것 같아서 

           더 의미가 있다. 

 한 강 : <기억할 만한 지나침>은 굉장히 담담하고 앙상한 시이다. 그러나 담겨 있는 것은 담담하지 않고 

           격렬한 그 무언가가 있다. 

           대학교 1학년 때는 시를 읽을 때 밑줄을 쳐가며 읽었는데 유일하게 밑줄을 치지 않은 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가 바로 이것이다. 

 

다음 순서는 함성호 씨, 진은영 씨, 최하연 씨가 각각 헌정 시 <검은 잎의 입>,<갇힌 사람>,<포도밭>을 낭독! 

기억에 남았던 것은 최하연 씨 헌정시의 발칙함과.. 진은영 씨의 "기형도 시집을 읽는 것은 윤리적인 절박함에  

압사당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라는 코멘트였습니다. 

 

그리고 이어졌던 음악 감상 순서... 

비오는 날 지하 카페에서 심수봉 씨와 조한우 씨의 노래를 감상하는 그 운치란..! 정말 좋았어요. 

특히 조하문 씨는 <열무 삼십단>을 정말 가슴 먹먹하게 불러주셔서..눈물이 날 뻔했답니다. 

 

다음으로.. 성석제 씨, 이문재 씨, 황인숙 씨가 각각 <어느 푸른 저녁>과 <입속의 검은 잎>, <그 집 앞>을  

낭독해 주셨는데, 낭독자와의 대화 시간에 세 분이 정말 너무 재치있는 말씀을 나누셔서..  

객석이 따뜻한 웃음으로 가득 찼었죠. 

역시 성섹제 씨의 코멘트를..기억나는 대로 한번 남겨보겠습니다. 

 

성석제 : 유인물의 글자가 작아 시가 안보여..노인을 배려하지 않는다. 아마 기형도도 이 자리에 있었다면 

            나와 같은 말을 했을 것. 

            기형도의 1주기, 2주기.. 5주기 까지는 비통함과 슬픔이 가득했고 마치 내 청년을 장사지낸 듯 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조금씩 흐려지는 것이, 그 친구가 나의 불성실했던 것과 짗궃게 놀렸던 것을 

            마침내 용서해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카페 주인이 기형도 '제사'를 지내는 느낌으로 이 낭독회를 준비하였다고 했는데, 

            제사란 것은 죽은 사람을 위해 산 사람이 기리되, 지나치게 슬픔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기형도와의 즐거웠던 것을 기억하는 자리가 되어도 아마 그는 용서할 것이다. 

 

그 외에도.. 이문재 씨가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로 노안에 대해 이야기 하자.. 황인숙 씨가 마이크를 이어 받아 

아주 짤막하게... 자신의 나잇살에 대해 이야기 하셨고, 이문재 씨가 자기도 보이지 않는 곳에 나잇살이 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성석제 씨가 "나는 보이는 곳에 나잇살이 있고..보이지 않는 곳엔 노안이 있다" 라고 말해..다들 웃었어요. 

세 분이서 나누셨던 저 대화가.. 저는 정말 따스하고 여유롭게 느껴졌어요. 늙어간다는 것..저렇게 포근하고, 

여유가 생기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죠. (기형도 씨의 <늙은 사람>을 읽을 땐 노추에 대한 

내 무의식 중의 혐오와 불안.. 같은 것을 들켜 버린 듯한 느낌인데..마치 그런 제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듯했어요) 

 

그리고 백현진 씨의 무반주 퍼포먼스(조금..난해했지만 음습하고 황량한 느낌을 잘 표현하셨다고 생각합니다)와 

사회자 성기완(feat.한유주,김남윤)씨의 라이브 공연 <가수는 입을 다무네>로 그 밤은..아쉽게도 마무리가 되었어요. 

마지막 라이브에선..저도 모르게 흥겹게 몸을 앞뒤로 흔들며..^^ 리듬을 탔습니다 

 

정말 고즈넉했고, 따스했고, 아름다웠던 밤이었어요. 

순수했던 한명의 청년, 한명의 시인이 '기억됨'을 통해 아직도 삶을 누리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정말 뿌듯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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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주나무 2009-03-07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기 잘 읽었습니다. 같은 장소에서의 느낌을 다채롭게 읽을 수 있으니 정말 좋군요. ^^

2009-03-11 1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05 1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 기형도 시인이 아끼던 수동 타자기로 집자한 <기형도 전집>이라는 글씨체는 이제 기형도의 상징이 되었다. 친필로 똑바로 쓰다가 타자로 된 시를 읽고 시인이 몹시 흐뭇해 했다는 일화를 생각하게 만드는 현수막이다.



20년 만의 제사를 찾은 문상객들

좀 특별한 문상을 다녀왔다. 벌써 20년이나 지난 기형도 시인을 추억하는 <기형도 시를 읽는 밤>에 초대됐다.
이 날은 기형도 시인이 좋아하는 진눈깨비는 아니지만 하루 종일 굵은 비가 내려 자연스럽게 음습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그런지 사회를 맡은 '대중음악가' 성기완 씨는 "기형도 시인이 홍대 주변에서 서성거리다가 이곳(이리카페)로 들어왔을 것 같은 밤이다."라고 말했다. 3월5일 저녁 인터넷 서점 알라딘(www.aladin.co.kr/)과 기형도 시인의 주요 작품들을 출간한 문학과지성사(www.moonji.com/)가 공동으로 주최한 <기형도 시를 읽는 밤>에는 시인과 동시대, 같은 공간에서 부대꼈던 소설가 성석제, 시인 이문재, 황인숙 씨와 시인의 후배군인 김중혁, 한강(소설가), 함성호, 진은영, 최하연(시인) 등이 애써 준비한 시들을 낭독하며 독자들과 함께 했다. 이 시인, 소설가들은 다른 문인들과 마찬가지로 기형도에게 크고 작은 빚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
- 기형도의 시 <안개> 일부


이 날 인상적이었던 것은 두 가지였다.
먼저 발디딜 틈이 없이 들어차 기형도를 추억하는 독자들이다. 알라딘에서 이날 밤을 위한 티켓 25장(1장당 2명)명을 내놓았을 때 티켓을 얻기 위해 정원의 10배인 250명이 신청을 했다. 저마다 구구절절한 사연을 들려주며 기형도 시 읽는 밤에 참여하기를 희망했다. 인터넷에서의 열기를 말해주듯 그날은 자리가 없어서 맨바닥에 앉아서 행사를 즐길 정도로 빽빽했다. 기형도 20주기에 관심을 갖는 취재진은 뒤로 하더라도 시인이 생전에 갖고 싶었던 '독자'들이 20년이 지나도 잊지 않고 찾아와주었기 때문에 사회자도 "기형도 시인이 행복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형도는 생전에 끝내 시집을 독자에게 보여주지 못하고 사후에야 동료들에 의해서 작품집이 출간되었다) 주인공인 시인은 없고 나머지 사람들이 다 주인공이 되는 특이한 제삿날이라는 인상이었다.
행사에 참여한 문인들은 오늘의 행사를 위해 창작시도 쓰고 작품집도 읽고 했지만 저마다 기형도의 흔적들을 마음 깊이 새기고 있었다. 기형도로부터 일부러 도망친 문인도 있었다. 그 사연이 참 다채로웠지만 그들에게 기형도의 '시 내음'을 맡을 수 있었다.

어느 영혼이기에 아직도 가지 않고 문밖에서 서성이고 있느냐.
- 기형도의 시 <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 일부



▲ 소설을 쓰는 한강은 기형도 시집을 대학 1학년 때 보았을 때 겉이 앙상해 보였는데 내용은 전혀 앙상하지 않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의 시집에는 밑줄이 마구 그어져 있었다. 유일하게 밑줄이 하나도 그어지지 않았지만 기형도 시집 하면 생각난다는 <기억할 만한 지나침>을 낭독했다.


성석제 "'노인의 노안을 배려하지 않는 무례한 나라'라고 했을 것이다"

문인들은 기형도 작품 중에서 유난히 흔적을 깊이 남겼던 작품을 낭독했고 이 날을 위해 특히 시를 써오기도 했다. 이 시들은 '샘플링'이라고 하는데, 기형도의 시어를 서캐훑이해서 20주기에 어울리는 새 시를 하나 만든 것이다. 시인, 소설가들이 좋아했던 작품의 목록을 올려 본다.

기억할 만한 지나침(한강),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김중혁), 어느 푸른 저녁(성석제), 입 속의 검은 잎(이문재), 그 집 앞(황인숙), 빈집(백현진, 퍼포먼스)

낭독도 낭독이지만 이 날 문상 온 문인들의 재기발랄하고 날카로운 멘트들이 유난히 인상적이었다.

소설가 김중혁은 습작기에 시인에 대한 열망이 강했지만 시를 쓰지 못해 소설을 쓰게 됐으며 소설 속에 그 열패감이 남아 있다고 회고했다. 소설가로서 이 자리에 초대된 것은 자신이 유일하며(성석제는 시도 쓰고, 한강은 문체가 유려한 시 같으니까) 소설을 열심히 써서 기형도 낭독회에 초대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성석제는 기형도 20주년 소회를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갑자기 '유인물' 이야기를 꺼냈다.
"낭독을 하려고 유인물을 보니 글자가 안 보여 혼났다. 이렇게 노인을 배려하지 않는 나라가 있을까? 아마 기형도가 살아 있었으면 이렇게 불평했을 것이다"
청중들은 이 소설가들의 재담에 그 날이 제삿날인줄도 모르고 킬킬거렸다. 황인숙 시인은 더 이상 보탤 것 없는 말로 기형도에 대한 감상을 정리했다.
"나잇살에 대해서 생각했다. 나도 참 살이 많이 쪘구나. 기형도도 살이 많이 쪘으련만."
이 말에 옆에 있던 이문재와 성석제가 몹시 흥분했다. 성석제가 한마디 거들었다.
"저는 보이는 곳에 나잇살이 있고, 안 보이는 곳에 노안이 있습니다."

기형도 시에 대한 시인들의 고뇌도 엿들을 수 있었다. 함성호 시인은 십 년만에 읽은 느낌이 '유치하다'고 말했다. 기형도는 죽었지만 자신은 살아서 시를 계속 써야 했기 때문에 시가 늙고 노련해지는 게 마음에 걸린다는 것이다. 어떤 때는 유치함으로 돌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나는 박제된 시와 나잇살 먹은 시를 동시에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문재가 이런 느낌에 대해서 좀 더 정확하게 지적해 주었다. 그는 "도대체 무엇이 젊은이(기형도)로 하여금 이토록 단정적이고 단호한 언사를 사용하게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이것은 기형도 시를 오랫동안 마주한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공통적인 특징이다. 이 경우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나는데, 기형도를 넘어서거나 기형도를 회피하게 된다.

나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
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 기형도의 시 <오래된 書籍(서적)> 일부


▲ 기형도에 관해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은 단짝친구 성석제다. 시인이 생을 마감한 3월 7일로부터 두 날 남짓한 때에 첫시집을(입 속의 검은 잎) 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노력 때문이다. 원재길, 조병준, 이영준, 후배 기자 박해연 등은 누구의 위임도 받지 않은 편집위원으로 자처하고 첫 시집과 전집, 최근 출간된 20주기 기념 문집 작업을 함께 했다. 기형도의 첫 시집을 황망히 엮고 지금은 작고한 김현 선생을 찾아갔을 때 김현 선생이 직접 원고를 받으며(선생은 당시 몸이 불편했다) 손을 꼭 잡아주셨던 그 손의 힘이 기억에 남아 있다고 회고했다.



대학 3학년 때 손에 쥔 유고시집 뒷장에 쓴 말 "1989년 7월 15일 나에게"

나 그 술집에서 흐느꼈네
그날 마구 취한 겨울이었네
그때 우리는 섞여 있었네
- 기형도의 시 <그 집 앞> 일부

2시간이라는 짧은 '의식'을 위해서 문인들과 음악인들이 오랫동안 준비했을 법한 재주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독자들이 말할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다. 하지만 알라딘에 남긴 250개의 댓글을 보면서 독자들의 생생한 반응을 엿볼 수 있었다. 진행자 성기완 씨는 그 중에 몇 개를 소개하는 것으로서 위안을 삼아 달라고 요청했다.

제가 갖고 있는 기형도 시인의 유고시집 맨 뒷장에는 제가 대학교 3학년 때 이 시집을 샀던 날짜가 적혀 있습니다. '1989년 7월 15일 나에게'. 시집을 구입한 이후 정말 책이 낡을 정도로 읽고 또 읽었더랬지요. (jure)

기형도가 죽은 날 대학 3학년이었던 몹시 오래된 독자가 들려주는 회고와 시집에 기록된 말이 청중들의 가슴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독자들은 자신의 경험 속에 자리잡은 기형도라는 숨겨진 공간을 슬쩍 끄집어내 보여주었다. 그들에게 기형도는 사라지지 않는 추억이다.

내가 그 시를 처음 알게 된 건 열일곱살 때 였는데 저는 지금 서른네 살의 아이 아빠가 되었어요. 그렇지만 기형도 시인은 언제나 그대로 이네요.. 15년이란 세월이 흘러 아이 아빠가 된 지금 기형도 시인이 쓴 <엄마생각>이란 시를 나의 아이도 함께 느꼈으면 좋겠어요 (비쿨)

네티즌 윤화는 수험생이었는지 현대시 문제집에서 <입 속의 검은 잎>을 발견해 문제를 풀다 말고 시에 빠져들었다고 말했다. 기형도가 교과서에 실린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문청'이라는 이름을 들었던 사람들은 문인이나 독자를 막론하고 기형도를 모방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나 보다. 네티즌 'mamasday'은 스무 살 때 기형도 시집을 산 이후로 시풍이 기형도의 그것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기형도가 시집에 잃은 사랑 이야기를 쓴 부분이 있어서 그런지 기형도 하면 '실연'이나 '슬픈 연애'라는 이미지가 덧붙었다. 특히 <빈집>이라는 시가 그러한데, 네티즌 'dudn'은 <빈집>을 처음 읽었을 때 잃었던 사랑을 기억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형도 시가 '그로테스크'라는 이름을 얻었던 것처럼(김현에 의해) 2~30대 독자들을 매료시킨 것은 그로테스크한 감수성이었다.

20살이 되어서 그의 시집을 읽고 저는 많은 위안을 얻었습니다.
그 후부터 매년 칼바람이 불거나 눈이 오는 밤이면 자연스레 그의 시들이 생각나네요.
아마도, 그로테스크한 그의 시들이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닮아 있어서일까요. (아난)

네티즌 '타인의삶'은 "20대를 통과하면서 겪었던 현실에 대한 억한 심경과 분노"를 위로받았다고 썼다. 네티즌 'renee'는 '"이십 대의 밤, 외로이 앉은 새벽, 기형도의 시를 읽으며 내 삶과 영혼과 자유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고 말했다.

네티즌 로맨티스트는 "대체 기형도 시인은 왜 차별화가 되는건지" 궁금하다고 썼는데 수많은 댓글들을 보면서 그 이유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시를 읽는 독자도 시를 쓰는 시인도 몹시 희귀해졌다는 게 요즘 드는 생각인데, 기형도가 대중의 사랑을 잔뜩 받은 거의 마지막 시인이 아닌가 싶다. 정확히 말하면 대중들은 그의 '유령'을 사랑한 것이겠지만, 20살이나 먹은 나이 든 유령이 지금도 사랑을 잔뜩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재미있었다.


▲ 좌석이 없어서 맨바닥에 자리를 깔고 앉았어도 나쁘지 않은 기색들이었다.

◆ 기형도 시인의 주요 작품과 최근 출간된 20주기 기념 문집 ◆ 
 

 
▲ 2008년 여름 동요를 부르는 잡곡가(잡다한 노래를 짓는다고 해서) 백창우가 기형도 <빈집>이라는 시에 노래를 붙인 <빈집>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그날 백재현 씨의 퍼포먼스 '빈집'과 비교하면 재밌을 것 같아서 첨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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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유 있는 항의
    from 글을 아는 고양이 2009-03-09 17:25 
    "정확히 말하면 대중들은 그의 '유령'을 사랑한 것이겠지만, 20살이나 먹은 나이 든 유령이 지금도 사랑을 잔뜩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재미있었다."    --> 아무리 유령이라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갓 스무살 된 유령에게 나이들었다고 할 수 있는가. 스무살이면 한참 날아다닐(!) 때다. 승주나무님은 유령차별주의자인가? 이 글은 승주나무님의 마지막 문장에 불만을 품고 쓰기
 
 
 

할머니의 배짱이 좋았다 

이름 석자 한글로 빼뚤하게 쓰고 이내 발괴고 눕는 할머니 모습이

지원모임사람들앞에서 노래한자락 뽑아내는 능청도  

한참 나이어린 여고생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울었던것도 

다시 보고 싶다 

그때의 창문조차 없었던 그 장소를 생각하면 같이 숨이 막히는 것 같다  

동생이랑 조카랑 같이 갔는데 같이 영화를 못보고 또 감독 작가 얘기를 못들어서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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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회 신청한 후 덜컥 당첨된 뒤로,

살짝 부담스러운 마음이 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사는 일이나 세상 돌아가는 형편이 영 쭈글쭈글하다 보니,

꿀꿀한 영화까지 봐야 하나, 이런 기분이었죠.

그래서 함께 영화 보러 갈 사람을 구하기도 힘들었고요.

하지만 정말 안 보러 갔으면 후회할 뻔했습니다.

피해자 특유의 비굴함 없이

당당하고 유쾌하게 호통을 날리던 송할머니, 

그리고 솔직하고 따뜻했던 지원모임 사람들.

이들에게서 마음 깊이 위로를 받고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좋은 영화를 공짜로 보게 되어, 감사함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영화도 좋았고, 감독님과 윤정모 선생님과의 대화도 즐거웠습니다.

대화에 참여한 분들이 많지 않았지만, 대안학교를 이제 갓 졸업했다는 청소년과

반일이 아닌 반전 교육을 고민하시는 열성적인 역사 선생님도 기억에 남아,

함께 이 영화를 완성해 주신 듯한 기분입니다.

지인들에게 입소문 내고, 포털 사이트에 별 다섯 개씩 꽝꽝 찍는 소위 '알바'를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열심히 했답니다. ^^ 

영화 성공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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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어제 고대했던 '기형도 시를 읽는 밤'에 갔다왔습니다. 

비가 와서 차도 많이 밀리고 신발도 축축히 젖었지만 그를 그리는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막을 수는 없었죠. 

맨 먼저 프로젝터에서 나오는 빛이 하얀 스크린에 그의 얼굴을 비추었습니다. 

변함없는 스물아홉의 그. 

젊은 그가 미소 짓고 있었습니다. 

스물두 살에 그의 시를 처음 읽었던 저는 이제 마흔두 살이 됐는데 

그는 아직도 저리 젊기만 합니다.   

성석제 작가가 말했던 노안도, 황인숙 시인이 말했던 나잇살도 없는 영원한 청춘의 그. 

(성석제 작가 왈, "나는 보이는 곳에는 나잇살이 있고, 보이지 않는 곳에는 노안이 있고..." ㅎㅎㅎ)

   

사회는 시인이자 가수인 성기완씨였습니다. 

아주 담백하고 솔직하고 입담좋은 그와 함께 많은 문인과 문우들이 참여해 

기형도의 시와 그에게 바치는 헌정시를 낭독하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 중에 나이를 먹으며 시가 발전되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인가, 기형도의 첫시집(이자 마지막인)에서처럼 

그 청춘의 처음의 유치함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라고 말한 함성호 시인의 말이 가장 인상적이었고, 

시인의 황망한 죽음 후 아무에게도 말 못하는 부채감에 시달렸다며 담담히 이야기하던 이문재 시인의 말씀들이 좋았습니다.

  

저는 시간에 딱 맞게 도착해 무대 앞 맨 앞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행사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사진으로 담지 못했지만. 

시들이 낭독되는동안 제 건너편에서 그의 시집을 열심히 읽고 있는 알라디너들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20년 전에 산 저의 낡디낡은 그의 시집과 함께 나란히 사진을 올려봅니다. 

(이름모를 알라디너님의 초상권을 침해한 건 아닌지 걱정되네요. 부디 불쾌하지 않으시길 바라며...) 

참, 사회자가 이번 행사에 참석한 많은 알라디너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갖지 못하는 대신 

이벤트 게시판에 달린 250여개의 많은 리플들 중에 몇 개만 뽑아서 읽었는데 

제일 처음으로 저의 리플을 읽어주셨어요. 순간 가슴이 얼마나 세게 쿵쾅대던지...^^;

  

모든 낭독이 끝난 후 공연이 이어졌어요. 

기형도 시인의 시로 만든 심수봉, 조하문의 노래도 듣고 

백현진씨의 기형도 시인의 '빈집'을 직접 부르는 노래가 곁들여진 퍼포먼스도 보고 

성기완, 한유주, 김남윤으로 급조된 3인조 밴드의 '가수는 입을 다무네'도 아주 좋았습니다. 

그의 시 '종이달'의 구절들에서 영감을 얻은 노래래요. 

앵콜을 기대했는데 호응이 너무 적었는지 그대로 모든 행사가 끝나서 많이 아쉬웠답니다.

  

행사 후 이리카페를 나오면서 입구에서 팔고 있는 기형도 20주기 기념문집 

<정거장에서의 충고>를 샀습니다. 

책의 제목은 1989년 7월 15일 새벽 3시에 제가 라디오에서 처음 들은 그의 시의 제목이었습니다.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라고 시작하는. 

이름모를 DJ의 그 낭독을 듣고 순간 머릿속이 멍~해지던 그 순간을 저는 아직도 또렷이 느끼고 있는데 

어느덧 20년이 흘렀고, 파릇한 청춘이던 저는 중년이 되었네요...  



영원히 젊은 시인 기형도여...그곳은 평안한가요... 

당신의 시를 함께 읽는 밤에 많은 이들이 모였지만, 

정작 주인공이 없었던 그 자리, 그 카페가 

제게는 빈집만 같았습니다...

 

2009. 3. 5 .

j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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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9-03-06 1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가고싶었는데... 현장의 분위기가 살갑게 다가오네용...

jure 2009-03-06 15: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구...저는 1인 2매임에도 쓸쓸히 혼자 갔었는데 안타깝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