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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오늘 공지영 작가님의 강연회를 다녀올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나... 아니 얼마나 큰 행운이었나 싶습니다. 

평일 오후 2시도 좀 난감했지만, 늘 시간에 쫓기며 하루하루 견뎌내야 하는 수험생활에서 고스란히 하루를 반납해야 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도 저에게는 쉽지 않았습니다. (물론, 리플을 달고 당첨이 되고 하는 과정은 무척 기쁜일이었지만^^) 

참고로 저는 중등임용을 준비하는 수험생이고, 강연회 장소인 고려대와는 좀 거리가 있는 곳에 살고 있지요;;;; 

이런강연회는 처음인지라, 낯설고 기대도 많이 하고, 무엇인가 엄청난 말들을 기대했습니다. 

정말 내 인생을 바꿔줄 그런 말들을. 혼란스럽고 외롭기만 한 내 생활에 힘이 되어줄 그런말들을... 

그런데 역시나, 작가님은 정말 너무나 편안하게 그냥 우리가 사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최근 읽은 몇몇 책들에서 약간은 엉뚱하고.. 진솔한 모습들을 발견한 터라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지만 

강연회라는 이름으로 만나는 자리라서 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나 봅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참 좋았습니다. 

나보다 더 오래 넓게 ... 틈틈히 세상을 바라본 사람에게 듣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내가 걸어가고 있는 길에 확신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작가님께서 해주신 어느 살인범의 이야기. 그가 살인을 할 수밖에? 아니 살인을 하기 전까지 그의 인생 이야기. 

그냥 불쌍하다,, 아프다... 정도가 아니라 가슴이 꽉 막힌듯이 답답했습니다. 

참.. 아직도 그 감정을 표현하기가 어렵네요. 

여튼 선생님이 되려고 준비하는 저로서는 그 이야기 속에서 좀 더 나은 내가 되야겠구나 생각했습니다. 

너무 이상적일지는 모르겠지만 ... '그래, 나는 정말 사랑을 주는 교사가 되자, 내가 만나는 아이들이 그 살인범처럼 극단의 선택을 하지 않도록,  관심을 표현하는 그런 교사가 되자.' '아이들의 여린 그 부분이 상처받지 않게 소중히 아껴주는 그런 교사가 되자' 

재수에 삼수를 거듭하고 있는 수험생활 속에서 꿈 마저 희박해져가고... 

난 정말 너무나 자격이 없는 사람은 아닐까 하는 자괴감에 괴로운 나날이었는데  

아..맞어. 난 교사가 되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지...  아차 싶었습니다. 

 

너무나 뻔한 각오와 다짐이 나를 이렇게 힘이 나게 하는 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작가님이 책에 써주신대로 지금 당장 행복해져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난 정말 사랑을 주는 교사가 되어야 하고, 그럴려면 지금 내가 행복해지고 내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고. 

그래서 몇년째 꼭꼭 숨기고 닫아왔던 내 마음도 열고 정말 사랑을 해보야 겠다고도 생각합니다. 

지금의 내 아픔이.. 상처가.. 나중에 만나게 될 아이들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큰 재산이 될까 생각하면 두려울 것이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오늘도 힘내고, 내일도 힘내고 끊임없이 내 자신에게 행복할 것을 명령하면서 살아가면 어느덧 내가 바라는 꿈이 이루어져 있지 않을까요?^^ 

 

아... 이것저것 느낀것도 쓸말도 많았지만  

글쓰는 것은 여간 쉬운일이 아니란 것을 다시 한번 느끼면서 

글을 쓰는 작가님께 다시 한번 존경과 감사를^^ 

 

이런 기회를 만들어 주신, 그리고 참여하게 해주신 알라딘~! 감사하구요~ 

 

그리고... 사족을 달자면, 

이벤트에 당첨되고, 참 기쁜 일이었으나, 오늘 강연회는 그에 상응하지 않게 준비가 미흡한 점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10분 전까지 현수막을 다느라 낑낑대는 모습들도 그렇고, 마이크 상태도 그렇고, 

추첨으로 갔는데 제대로 명단 확인도 안하시고, 머,, 그냥 와도 되는거 아니었나? 싶기도 했구요. 

여튼 잘은 모르겠지만 이것저것 실망스러운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조금만 더 신경써주시면, 강연을 하시는 분도 듣는 사람들도 더 행복할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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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my 2009-03-26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좋으셨겠어요...수험생이시라니..화이팅하세요~잠시 도약하는 시기이니...
 

작가, 감독과 함께 한 다큐 데이트


▲ 할머니에게 보여드리려고 만들었다는 문정현 감독의 <할매꽃>은 개봉되지 못할 뻔했다. 문 감독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영화가 주인을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에 문 감독은 영화를 접을까도 깊이 고민했다고 한다. <할매꽃>은 (당시) 임종을 앞둔 할머니의 말못할 사연을 알아보기 위해서 손자인 감독이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 속에서 현대사와 가족, 이웃, 인간의 비극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다큐멘터리이다.


소설가 김연수는 다큐멘터리를 즐겨 본다. 소설가로서 감정 이입이 잘 되며 스크린 바깥, 그리니까 찍지 않은 부분과 다큐가 말하지 않는 부분이 상상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극 영화는 스크린 바깥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우리나라는 할 이야기가 많이 있다. 그 중에서는 지금 하지 않으면 영영 하지 못할 이야기가 많다. 3월 18일 저녁 알라딘과 인문사회과학출판협의회가 공동으로 주최하는<할매꽃>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러 갔다 왔다.(홍대 KT&G 상상마당) 이미 DVD로 다큐멘터리를 시청한 소설가 김연수 작가가 힘을 보태기 위해 흔쾌히 자리에 동석했다. 그의 최근 작품인 <밤은 노래한다>의 상황을 한 마을의 한 가족에게 대입한다면 <할매꽃>과 비슷하게 그려졌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 팜플렛을 통해서 현대사와 가족의 문제를 다룬 다큐라는 설명을 보고 나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현대사를 다룬 작품들은 대개 극적인 부분을 과장하거나 너무 진지해서 지루한 일색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다큐멘터리는 다른 종류의 난제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가족'이다. 김연수에 의하면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객관적인 위치가 확보되지 않기 때문에 한쪽으로 치우칠 수도 있고 작업을 하는 내내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문정현 감독 본인도 "앞으로 다시는 가족에 관해 찍지 않겠다"고 했을 정도다.
이 난제들을 어떻게 녹여낼 수 있었을까? 영화는 문 감독의 감미로운 나래이션으로 시작되었다. 문 밖에만 나가도 쉽게 볼 수 있는 사람 좋은 할머니의 인생이 그 비밀을 드러냈다. 임종을 앞둔 할머니에게 바치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던 감독은 결국 영화를 할머니의 영정 앞에 바칠 수밖에 없었다.

문 감독은 우선 작품의 범위를 자신의 가족과 마을 사람들로 철저히 한정했다. 전쟁 상황에서 학살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정치적 갈등과 국내의 상황은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사실 당대의 상황은 마을 안에서도 압축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오히려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그 동안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치 상황이 구성원들 간의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얼키고 설킨 인간적 감정들이 정치적으로 반영돼 비극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이다. 현대사를 둘러 보면 개인의 사적 감정이 국가 대사에 공공연하게 개입되는 경우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예컨대 제주 4.3 당시 제주민들을 가장 가혹하게 괴롭혔던 사람들은 북한에서 쫓겨난 부잣집 자식들로 이루어진 서북청년단원이었다. 이들은 반동분자 색출이라는 명분을 개인적 감정과 구분하지 않았다.


새벽 3시에 미친 사람 같이 몸부림쳤던 그의 외할머니와 나의 외할머니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폐부 깊숙이 찌르는 듯한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나의 개인사 속으로 다큐멘터리가 깊숙이 들어왔기 때문인데, 나아가 나의 비밀까지도 들춰내고 있기 때문이다. 사이가 좋던 동네 친구에 의해서 동생이 즉결처형되고 또 다른 동생은 고문으로 잃고, 면회간 다른 동생은 경찰이 쏜 공포탄에 의해 정신이상자가 되었다. 가세가 완전히 기울고 남은 전답을 마저 팔아야 하는 날 새벽 3시 외할머니는 산발차림에 신발도 신지 않고 자신의 소유였던 밭을 헤매며 죽을 결심을 했다고 한다. 우물에 몸을 던지려고 우물 안으로 고개를 쳐드는 순간 달빛에 비친 우물물 속에 자식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떠올라 끝내 죽지는 못했다고 한다. 새벽 3시에는 돌아가신 우리 외할머니와 추억이 겹친다. 제주도민이라면 누구나 4.3 당시 희생된 친척이 있는데, 지식인이었던 외할아버지가 영문도 모르게 잡혀간 이후에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의 책 때문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당시 제주도에 살던 지식인들은 제거대상 1호였기 때문에 모든 것들을 감춰야 했다. 외할아버지의 책이 문제였다. 할머니는 새벽 3시마다 남몰래 책을 태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책이 끝도 없어서 무척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려주신 어머니는 만약 그 때 책을 태우지 않고 남겨 두었더라면 골동품 가치가 결코 작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대마을과 중대마을은 예로부터 양반들이 살던 마을이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대마을'이라고 불리던 '풍동마을'은 하인이나 천민들이 거주하던 마을이었는데, 이 마을 사람들의 감정의 골은 깊을 대로 깊었다. 전쟁이 벌어졌을 때 그 감정의 골은 여지없이 비극을 낳았다. 비극으로 인해 선량한 한 가족의 운명이 완전히 바뀌게 되는데, 아버지를 죽인 사람들의 가족을 만나야 할 것인지 말아야 할 것인지 다큐멘터리는 영화 내내 고민한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 <할매꽃>은 '현대사'를 다루고 있지만, 작품의 주제는 철저히 '인간'이다. 해소되지 않은 감정이 작용한 결과가 현대사의 비극이며 <할매꽃>의 주변을 이루는 이야기일 뿐이다.

워낭소리가 인생의 큰 의미를 알게 해주는 훈훈한 다큐멘터리라면 <할매꽃>은 이제 당신의 고민은 무엇인가라는 구체적인 물음을 던진다. 문정현 감독은 시사회가 끝난 후 나눈 인터뷰에서 "고민하지 않고 완결되는 다큐멘터리는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는 사실성을 기반으로 한다는 선입견 때문에 그 안에 담긴 깊은 질문과 서사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 영화와 인터뷰가 끝나고 밖에서 서성대다가 문정현 감독을 만나 사진을 찍었다. 나에게도 아직 시작하지 못한 4.3 이야기가 가슴 한켠에 남아 있는데, 문정현 감독은 소설이 되었건 영화가 되었건 지금부터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작품으로서뿐만 아니라 인생으로서도 '해원'할 것은 반드시 해원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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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3-25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참 좋았던 작품입니다.

승주나무 2009-03-25 15:30   좋아요 0 | URL
네.. 워낭소리가 열어준 길에서 좋은 다큐들이 하나씩 걸어나오는 모습이 기분 좋네요..
<똥파리>도 보고 싶어요~~
다큐 전성시대!!!

무해한모리군 2009-03-26 08:47   좋아요 0 | URL
아 똥파리라.. 제목 기가 막히는 군요.. 메모메모
 

 

처음 가본 시사회였다.평일 9시 바쁜 신랑졸라  일찍 퇴근시켜서 종로로 갔다. 

알라딘 덕분에 평일날 신랑과 데이트라 웬떡인가 싶었는데..날씨까지 따뜻해서 기분이 너무나 좋았다. 

원작만한 영화는 없다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어느정도의 실망은 할것이다 ..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보았다. 

책을 안보고 영화만 본 신랑은 상영시간이 너무나 빠르게 느껴질정도로 재미있게 보았다고 한다. 

책을 본 나는 누구나 그렇듯이.책의 흐름을 따라 영화를  보게되고 원작과 다른점,잘 표현한점, 불필요한부분, 아쉽게 빼먹은 

부분을 체크하고 감독하듯이 보게 됐다. 

일단 책은 외설적이란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었고..영화 역시 벗는장면이 흥미를 위해 어거지로 불필요하게 벗었단 느낌은  

받지 못했다..영화 마케팅을위해 자극적으로 광고를 하는것이 못내 아쉬었다. 

남자의 첫사랑이 그사람 인생에 얼마나 강한 영향을 주는가..평생 사랑을 부정하고  자신앞에 당당 하지 못한 남자의 회환.. 

진정한 사랑을 아는 여자 ..언제나 타협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는 문맹의 여자. 

영화는 전쟁의 부조리,남녀의 사랑과 헌신 그리고 믿음..성장기의 갈등과 자아의 고뇌를 지루하지 안게 잘 표현했다.. 

그러나 등장해야할 아버지의 존재,등장하지 않아도 좋을 딸은 내게는 영화의 아쉬움이었다.. 

케이트 윈슬렛은 상을 받을만 하였고..영화는 그여자의 일생이 내머리에 오버랩 될때..눈물을 주었다.. 

따듯한 봄날 뜻밖에 남편과 멋진 데이트를 선물해주신 알라딘에게 감사의 마음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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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 사람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란 생각에서 흔쾌히 승낙했다.

진행자 - 어떻게 봤나.

김연수 - 영화를 많이 본 사람이 아니라 어떻게 봤다란 얘기를 하는게 걱정됨. 내가 계속 얘기를 하다가 딴소리를 하고 있지 않을까란 우려도 있음.(웃음) 다큐를 좋아한다. 감정이입이 잘 되고, 실존해 있는 사람들의 말이기 때문에 작가들의 상상의 여지가 넓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스크린 밖의 일까지, 말하지 않는 것까지 상상하게 된다. 이야기와 개인사, 극히 일부분만 다뤄졌는데 영상으로만은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는다. 화면 밖의 이야기들이 나를 끌어당긴다. 작은 할아버지의 경우, 단편적인 기억이 아닌, 일상, 하루가 백년 같다란 느낌을 상상한다면 영상으로는 온갖 일을 다 담을 수 없다. 말하지 못한 부분들을 생각하게 한다. 개인적으로 감독님이 힘들었을 것이다. 글로 쓰기도 어려운게 가족사는 객관적 위치가 확보되지 않아 자꾸 반신반의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려되는건 한쪽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하진 않을까란 점이었는데 균형에 대해선 말할 수가 없다. 다만 열린 결말이었고, 지금 세대(자신과 감독을 쳐다보며, 우리 같은 세대죠란 눈빛을 보내는)가 접근하는 방식이란 점이 인상적이었다.

진행자 - 가족의 이야기라 고민을 계속했을 것이다. 객관화하거나 갈등을 도출시키는 부분, 연출 기준은 어떤거였는가.

문정현 - 만들고나서 든 생각은 만들기 쉬웠단, 다큐멘터리가 사람과의 관계를 다루기 때문에 전혀 낯선 사람이 아닌, 친하니까 말해달라고 부탁드리면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시작은 쉬웠지만 끝나고나서 생각해보니 좋은걸 만들긴 힘들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마 다신 안 만들 것 같다. 객관화하는 문제, 시선을 어디다 둬야할지, 내가 한쪽만 다루고 있고 한풀이지 않을까란 고민을 줄곧 해왔다. 결국은 솔직해지자란 결론을 내렸고, 내 감정에 충실하자란 기준을 정했다. 내 감정에 충실하되 지긋하게 눌러 객관적이고 솔직하게 바라보자란 생각을 했다.

진행자 - 김연수의 작품, 밤은 노래한다 중 작가의 말에 보면 극중 인물에 대해 고민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김연수 - 소설 마지막에 친구들이 이념 때문에 죽이는걸 다뤘다. 해결 안 되는 문제들인데 나같은 경우는 상식주의 안면주의(웃음)인지라 친분을 중시한다. 내 세계관(웃음) 아니, 가까운 사람에게 잘하는게 내 처세관인데 그 입장을 송두리째 박살내는 일이 현대사에서 많이 일어났다. 상상 안 된다고, 윤리적으로 사람 사이에서 일어난 일들을 다룰 수 없다고, 분노나 배신감 등을 모른척할 수 없고, 그것을 어떻게 다뤄야할지 모르겠다. 삶에 대한 교훈이기도한데 모든게 적과 우리편으로 명쾌해지지 않는다. 찝찝한 상태를 견디는 것, 화해는 아니고, 어정쩡한 상태로 있는 것, 소설이고 나와 관계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해하려고한 것이지, 직접적인 사람에게 화해를 종용하는것 자체가 폭력적일 수 있다. 소설에선 죽여야할 사람을 안 죽인건 바라본다는 의미가 컸기 때문이다.

진행자 - VIP 시사 때 어머니 반응은 어땠는가.

문정현 - 그 전에 미리 보셨고, 박수 한번 받아보시라고 올라오라고 말씀을 드렸다. 처음에 어머니는 내가 다큐를 찍는걸 반대했다. 돈이 안 된다거나 불안정해서가 아니라 끼가 없어서 안 된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이번 영화를 준비한다고 하니까 '여봐라, 이 정도 가지고 얘기를 한다.'며 그럴줄 알았단 반응을 보이셨다.(웃음) 그래도 고생했다고 말씀해주셨고, 열광적이진 않았어도 은근히 좋아하셨다.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진행자 - 어머니가 끼가 굉장히 많으신 분이라고 알고 있는데.

문정현 - 어머니는 한국무용, 가야금도 배우시고, 득음을 한다고 돌아다니시기도 했다. 어렸을때는 날 끌고 탈춤을 배우기도 했다. 어머니가 당신께서 이 다큐를 연출했다면 워낭소리처럼 대박낼 수 있었겠구나라고 말씀을 하셨다.(웃음)


관객질문


승주나무 - 영화를 보면서 참 부럽다란 생각을 많이 했다. 고향이 제주도인데 제주도 역시 인구의 1/3이 죽임을 당했다. 외가쪽에도 사연이 있는데, 피해를 승화시키고 작품으로 만드는 과정이 어땠을지 궁금하다. 현기영씨도 제주도에서 도망나와야 쓸 수 있다고 할 정도였는데. 현대사의 다큐가 심부까지 깊게 들어와 놀랐고, 준비하는데 어떤 과정이었는지 궁금했다. 불만이나 해소되지 않은 부분 중에 가족사로 녹여도 승화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어떤건지 궁금하다.

문정현 - 영화는 2003년에 시작했고, 영화에서처럼 일기장을 보면서 가족사를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기획이 됐다. 이 작품만 매진할 수 없어서 2003년에서 2007년까지 준비를 했지만 할매꽃이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영화가 근현대사 이야기냐는 지점보다는 대화하고 알아가는 시간이라 좋았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나의 정체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고, 할머니에게 보여주려고 만들려는 영화였기에 방향을 잃기도 했다. 하지만 만들어가면서 치유된게 많았다. 해소되지 않은 나만의 문제라면 다큐멘터리의 의미, 존재, 현장감을 드러내는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나의 경우는 일하고 싶은 사람에게 고민을 던지는 것이 다큐멘터리의 철학이라고 봐왔다. 내가 생각했던게 변해가며 영화, 가족의 아픔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불만스럽지 않았다. 사실성을 기반으로 했다는, 객관적일거란 선입견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드라마타이징이란 방식으로 집착하며 과도한 열등감으로 만들어낸게 아닐까란, 이야기를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곡선들 만들어내려고 한건 아닌까란 고민은 했다.

관객 - 다큐를 많이 보는 사람이 아니다. 정확한 내용을 모르고 보기 시작했는데 주제가 영화가 진행되면서 절충되는 느낌이었다. 이념- 인간성- 경험, 그리고 겸허함에 이르는 것 같았는데 김연수 작가가 책으로 쓴다면, 처단은 어떻게 다뤘을지가 궁금하다.

진행자 - 교묘하게 틀어서 작가에게 질문을 한다.(웃음)

김연수 - 아마 좀 더 기승전결이 뚜렷해지겠으나 정말 다를 것이다. 작은 할아버지의 일기장을 미스테리적으로 도입부에서 가져가 이야기 끝에 해소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을 갖고 스토리를 만든 경우라면 소설의 허구에서 시작해 스토리를 갖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다큐멘터리 작업하는 분들은 사실 그대로 보여줘야된다는 강박들이 드라마타이징 형식을 도입하는 것에 부담을 갖게 하기 마련인데 어쨌든 다큐에는 흐름이 중요하다. 내 작업은 이념적이며 다른 것을 재배치하는 과정이다. 잘 모르겠으나 처단이나 단죄에는 관심이 없다. 큰 얘기를 하더라도 난 개인적인 문제로 돌아간다. 국가와 개인의 대립이란 것 안에서 처단, 단죄는 국가적인 관점일 따름이란 생각이다. 개인적인 관점으로 돌아가면, 영화에서 자살한 사람도 나오듯이 우리가 할 수 없는 영역이 분명히 존재할 수 밖에 없다. 개인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어머니, 가지 말라고, 만나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란 생각을 했는데 그냥 끝나서 안심했다. 내 결말도 다르지 않을 듯하다. 결말 자체가 오묘했고, 내 성향이랑 비슷하나, 다큐멘터리의 경우 그 후를 쫓아간다는 것에 비춰볼 때, 보는 입장에선 그런 결말의 의도가 무엇인지, 어떻게 됐는지가 궁금해진다.

문정현 - 어떻게 됐는지를 많이 궁금해한다. 커다란 의도는 없고, 솔직한 맘이었다.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배경에는 국가란 제도, 국가폭력에 희생당한 사람들은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란 얘기를 하고 싶었다. 비정규직, MB악법으로 또 다른 곳에 희생자가 있다란. 반성이나 성찰이 없다면 할머니가 겪은 일들은 똑같이 반복되고 있고, 반복될 것이다,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관객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왜 우리 역사는 이랬을까, 우린 이런 시대가 있었고, 희생자였구나, 이런 질문 안에서 현재를 바라보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며 끝난 것은 과거를 바라볼 수 있는 바탕과 현재를 돌아볼 수 있는 질문을 던지려는 의도였고, 한풀이나 값싼 구도가 될까 우려했던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관객 - 반성하지 않은 과거는 되풀이 될 것이란건 낙관적인 얘기라고 생각된다. (...)역사청산이 가능하냐란 질문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회색인간들이 흔들거리며 그들 각자의 모순에 부딪히며 흘러온게 역사인데 어떻게 청산이 될지도 의문이 든다. 그런 면에서 엄마에게 왜 그렇게 강요를 했는지 궁금했다.

문정현 - 다큐는 재현을 토대로 하지만 어디까지 가능한가에 대해선 많은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철거촌에서 울고있는 아이를 찍을 수 있을까, 죽어가는 사람을 찍을 수 있을까. 윤리적으로 올바른가란 고민이 있을 수 있고, 단순히 적과 아를 구분하는 선에서 끝날 우려가 있기도 하다. 가해자를 징벌하잔 의도로 보였다면 내 실수이다. 그건 내 한계만은 아닌 솔직한 마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어머니한테 그 당시의 가해자의 자식들을 만나길 강요하면서 -물론 아주 잔인했지만- 내 안의 실마리를 찾았다. 또 다른 폭력일 수 있다란 생각을 안 한건 아니다. 어머니가 가서 만나보시겠다고 했다가 점점 변모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라면 할 수 있을 것 같다란 생각도 들었고, 당사자들은 어렵겠지만 어머니 세대에서는 가능하지 않을까란 바람도 있었다. 그래서 잘못된 모습으로 강요한 부분이 있었다. 역사란건, 회색의 사람이 그려온 선이 아닌 민초, 작은 그룹인 역사가 합쳐진 거대한 집합체란 생각을 한다. 역사인식의 차이일 수 있다.

관객 - 바라보는 입장이 아닌, 어떻게보면 조금 잔인한 질문일 수 있겠지만, 너라면, 네가 경찰이라면 어떻게 하겠냐란 질문이 나온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문정현 - 그런 질문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당신 같으면 이렇게 찍을 수 있었겠느냐, 되돌아보는 역사적 사건이 성찰의 바탕이 될 수 있겠는가란게 더 유의미하다고 본다.(...)

Arch - 영화, 정말 잘 봤다. 예고편을 보면서 역사 속에서 상처받은 인물들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는지, 그런 위로나 치유의 방식이 유효할까란 의문을 갖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는데 내 맘조차 위안을 받을 정도로 괜찮았단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너무 숱한 어려움에도 남에게 베풀기 좋아한 할머니와 항상 긍정적인데다 에너지 넘치는 어머니란 캐릭터- 캐릭터라 말하기는 어폐가 있으나-에 대해 정말이지 빠져들고 말았다. 내가 나중에 나이가 든다면 꼭 본받고 싶은 인물상일 정도로 인상 깊었다. 혹시라도 옆에서 지켜봤을 때 그들이 당신들의 고통스러운 삶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긍정적이고 배려할 수 있는 지점들을 마련한 계기나 에너지가 있다면 뭘지 정말 궁금하다.

문정현 - 앞서도 말했지만,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가족들이 일부러 숨겼다거나, 혹은 특별히 내게 말할 이유가 없었다. 체화된 삶의 이유가 있었고, 발화된 경우 아프긴 하지만 이 정도 역사 없는 집이 없을 것이란, 각자의 집마다 많은 사연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적용된 측면이 크다. 그렇다면 그런 아픔을 왜 끄집어냈냐란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시사회 후에 그런 질문을 준 사람이 있었는데 인상 깊었다. 재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에 대해선 아직 똑같은 폭력이 난무하며 이것에 대해 말해야할 책임감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가 현실을 바라보는 거울, 틀이 되길 바란 마음이었고, 가족들이 바라는 것도 그것이었을 것이다. 영화에서 보면 한나라당이 되면 다들 숨도 못쉬고 살아간다라고한-다큐가 만들어진 당시는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기 전이었음.- 할머니 말씀이 그냥 허투로 뱉어낸 말이 아니란 것도 지금 상황을 보면 짐작가기 마련이니까. 그분들은 그렇게 체화되었단 생각이다.

진행자 -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김연수 - 연재소설을 쓰고 있는 중이다. 창비에서 대단위 프로젝트, 올로케 3권짜리 소설인데 중간에 잘라라, 이래서 중단되는 연재를 하는 중이고(웃음), 연재가 끝나가고 있는 것도 하나 있다. 올해 하반기에 단편소설집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문정현 - 편집중인 영화가 있다. YMCA남성의 기만적인 이야기, 2편을 편집중이다. 남한 사회의 시민운동이 유효한지, 친자본, 기층 운동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고민 중이다. 또 다른건 개인사적인 다큐멘터리를 기획중이다. 91년도 분신 사건이 다큐를 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내가 광주 출신이라 광주 5.18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개인사와 시대의 모습, 이제는 더 이상 운동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제목은 '내가 문근영을 만나야 하는 이유'이다.

진행자 - 아주 선정적인 대한민국 좌익 감독의 얘기였다. (웃음)



 한글 문서로 10포인트인데도 4페이지가 넘어서는 분량을 적어나가면서 애초에 성실한 기록자이며 객관적인 내용을 전해주고자했던 의도와는 다르게 이건 단순한 사실 전달만이 아닌, 말이 발화되고 내가 적어가는 순간들의 감정과 중요도의 차이에 따라 조사 하나, 단어 하나에도 많은 고려가 있어야할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꼭 해야할 일도 아니기에 내가 하던식대로 감상을 남기는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란 생각을 안 한건 아니다.

 이 영화를 재미있게 봤고, 처음으로 '무려 김연수' - 웬디양님과 대화하다 내가 인용을 하자 그녀가 동의해준 무려 김연수란, 단순히 소설가나 김연수가 아닌 황송하지만 아주 많이 황송할 정도는 아닌 약간 놀랍고, 만나면 반가운 의미의 '무려'란 말이 나온 것이다. -를 본 소감에 대해서 할 말이 없었던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를 만든 감독님과 감독님의 어머니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자신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만드는 것의 시선에 대해서도 물론, 할 말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도 난 왜 이 긴 후기의 대부분을 작가, 감독, 관객과의 대화로 채웠을까. 내가 주효하게 바라보는 시선틀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었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은 욕구와 '좋았어요'로 끝내기엔 해주고 싶은 말이 참 많다란 욕심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욕심은 욕심대로 유효할지 모르겠으나, 메모한 내용을 보면서 그들과 관객들이 나눈 대화의 공백을 메꾸는게 얼마나 힘든건지 절감했다. 다큐멘터리나 뉴스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고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란게 어떤건지, 내가 녹음기가 있었다면 있는 그대로가 될런지, 의사사건처럼 내가 좀 더 강조하고 싶은 부분에 방점이 찍히진 않았을런지, 게다가 아, 난 너무나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있는건 아닌지 등등, 오만가지 생각이 수면 위에서 투닥거리고 있었다. 새삼 '객관화된 사실'에 대해 쓴다는 것의 위력과 조심스러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부정확한 내용과 언어를 글로 기록하는 것에서 삐져나오는 적절치 못한 뉘앙스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기록했던 내용을 후기에 올린건 객관화되지 않은 얘기를 쏟아낸데에 대한 비난을 달게 받겠단 각오가 있어서라기보다는 Arch의 생각은 이렇지만 난 이렇게 읽었다란 코멘트나 다른 시각의 이야기들을 듣고 싶은, 역시 욕심 때문이다. 좀 더 여지를 두려는 의미에서 적어도 적절한 거리를 두고 전달할려고 노력했단, 나름의 변명을 다시 스크롤 압박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끼적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앞으로는 이런 글을 쓸 때 어느 정도의 준비와 각성이 필요할지 절실하게 느끼기도 했고.


 영화를 보고나서 잔상처럼 남은 장면은 할머니가 맨발로 자신의 옛 땅들을 돌아다녔던 모습이었다. 애니메이션으로 잠깐 소개되기도 했지만, 난 좀 더 생생하게 그 장면이 떠올랐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누구에게 말하지도 못하고 끙끙, 자기 안으로 삭이는 고통이 자꾸 발로, 죽음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할머니도 알았을텐데, 얼마나 암담했을까. 모두의 죽음 앞에서 그저 묵묵히 견디는 것만을 택했어야하는, 그게 자신만이 아닌 시대의 모든 사람이 겪는 일일거란 단순한 희망에 온 몸이 바스러지는 것도 모르며 베풀고, 인자하게 웃어주셨던 분. 늙고 노쇠한 몸으로 다가올 죽음에 몸을 맡기며 고생하셨다란 말에 나뭇잎처럼 몸을 바르르 떨던 분.

'나의 외할머니는 당신 장례식에 오시는 분들, 음식 많이 드려 따뜻하고 배부르게 대접하라고 유언처럼 말씀하셨다.'

 질문했던 것처럼 에너지나 긍정적인 것만으로는 부족한, 그 힘. 그렇게 견딜 수 있고 살아가게하는 힘 앞에서 맘이 먹먹해지고 말았다. 그들, 견디는 민초나 민중이 아니라 내가 다다를 수 없는 경지를 지닌 누군가, 닮아가고 싶고, 조금 덜 아프셨더라면 좋았을 할머니의 힘이었고, 할머니의 나지막한 목소리였다.

 공포탄으로 정신이 이상해진 남편을 바라보며 백가지 맘을 먹었다가도 내 인생 하나만 희생하면 된다란 생각에 백년같은 하루를 지키고 견디어내었던 작은 외할머니. 할머니는 그런 남편이 죽기 전에 '자넨 어쩔랑가 소리 한마디 안 하니 서운했다'고 하셨다. 난 그 분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정말 모르겠다. 바보 같고, 순하신 이분들이 어떻게 그 삶을 견디고 어떻게 지내왔는지 정말 모르겠다. 체화된 삶이라고, 모두가 다 그러니까 자기가 겪는건 별거 아니란게 어떻게 가능한지, 무지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그 지점을 정말 잘 모르겠다.

 쉽게 복기 이모의 아버지를 총살한 사람의 자식을 만나겠다라고 허락했던 어머니가 한 발자국 물러서게 되면서 한 말, '옳고 그름을 어떻게 알겠니, 인간 자체가 모순이지'란 말에서 어쩌면 나 역시 실마리를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역사적인 고통의 반복을 알아야하고,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하기 위해, 사람들이 좀 더 성찰할 수 있기를 바란 의미에서 감독은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난 비록 외할머니는 이 영화를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지만, 남은 사람들에게 난 이 영화가 작은 목소리로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다란 것을 느꼈다.

 모두가 겪는 일일지라도, 당신들, 그리고 앞으로의 우리들은 녹록치만은 않을거란걸. 감독은 직설적인 화법으로 할머니 얘기를 들려줬고,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진정성의 힘이란 구태의연한 감상으로서가 아니라 맘으로 영화를 받아들일 것 자체일거란 것을 느꼈으리라.

외할머니를 위해 만든 영화였지만, 우리 모두가 배우고 위로를 받게 되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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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1 2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21 2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승주나무 2009-05-04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와의 만남 후기 당선 축하해요. 적립금으로 좋은 책 사서 재밌게 읽으세요^^(마치 내가 주기라도 한 것처럼 ㅋㅋ)

Arch 2009-05-04 23:34   좋아요 0 | URL
감사해요. 승주나무님... 승주나무님이 준거 아니었어요? ^^ 누구누구 축하하러 가야겠다.

승주나무 2009-05-05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탔으니 와서 축하해달라는 말이었는데...ㅋㅋㅋ
 


더 리더
 

영화 시사회 당첨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앗 책을 아직 못 읽었는데 하는 생각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책이 밋밋할 것 같다는 생각에 말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원작이 좋았던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얼마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는 책을 읽을 수가 없어서 아쉬웠다.
시사회 전날 나는 새벽 3시까지 책을 읽었다.
출근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끝까지 읽지 못하고, 30쪽 정도 남겨뒀던 것 같다.
드디어 영화 앞에 앉았다.
영화는 원작의 구성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영화를 보면서, 책의 내용을 떠올리고, 책과는 다르네 생각했다.
책 속에서 강렬했던 부분이 영화에서는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이를 테면 나는 마이클이 아버지와 상담을 할 때 들려준 아버지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타인이 스스로 좋다고 생각하는 것 위에 두려하지 말라는 것.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왔을 때는 영화의 장점도 알게 되었다.
아무래도 책을 미리 읽은 건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책에서 느끼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책에서는 그랬구나 싶었던 장면이 영상으로 보니 눈물겨웠다.
나도 모르게 눈물을 떨궜는데 갑자기 서러워져 감정이 북받쳤다.
그건 아마도 화자의 시점, 영화에서는 카메라의 앵글,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책을 읽을 때는 화자 '나'에게 집중하여 읽고 '나'의 감정에 치우치게 되는데
영화를 볼 때는 주인공 마이클이 바라보는 한나의 모습이라도 해도
한나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나의 마음을 알 것만 같았다. 한나의 서러움도......

영화를 다 보고 나오니, 영화 포스터가 크게 프린트되어 있다.
그 앞에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케이트 윈슬렛의 고운 얼굴이다.
농후하다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그녀의 연기는 농후했다. 좋았다.

사랑과 정의 두 갈림길에서 선택해야 하는 건 무엇일까?
마이클은 어느 앞에서도 진실하지 않았다.
사랑 앞에서도 사랑을 표현하지 않았고,
역사의 정의 앞에서도 혼란스러워하지 않았던가?
자신을 속이며 살아왔던 것이다.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 당신은
자신을 속이며 살지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책과 영화 모두 좋았다.
읽고,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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