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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30일 오마이뉴스 스튜디오에서 유시민과 독자의 만남이 있었다. 이날 진행자로 나선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가 욕을 많이 봤다.

유시민은 정치인이다

유시민은 정치인이다. 제도정치 경력 6년차의 휴업상태라는 상황 때문이 아니라 작가로서도 '정치인'이다. 3월 30일 오마이뉴스와 알라딘이 공동으로 주최한 작가와의 대화에 나온 유시민을 어떻게, 어떤 존재로 보아야 하는가는 나에게 무척 중요한 문제였다. 왜냐하면 여의도 정치에 대한 그의 반감이 어떤 모양으로 빚어지는지 궁금했고, '관조자'로서 이번 국면에서 그의 '역할'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새 술을 담기 위해 유시민이 새 부대를 장만했는지 보고싶었다.

"대한민국, 이 정도면 괜찮지 않습니까?" (유시민, 오마이뉴스 작가와의 만남에서)

이 말 어디서 많이 들어본 기억이 있다. 작가나 지식인의 말은 아니다.

이승만 정권 때의 일이다. 펜 클럽대회에 참석하고 돌아온 분들을 모시고 조그마한 환영회를 갖게 된 장소에서 각국의 언론자유의 실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끝에 모 여류시인한테 나는 『한국에 언론자유가 있다고 봅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 여자 허, 웃으면서 『이만하면 있다고 볼 수 있지요』 하는 태연스러운 대답에 나는 내심 어찌 분개를 하였던지 다른 말을 다 잊어버려도 그 말만은 3,4년이 지난 오늘까지 잊어버리지 않고 있다. 시를 쓰는 사람, 문학을 하는 사람의 처지로서는 <이만하면>이란 말은 있을 수 없다. 적어도 언론자유에 있어서는 <이만하면>이란 중간사(中間辭)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 그들에게는 언론자유가 있느냐 없느냐의 둘 중의 하나가 있을 뿐 <이만하면 언론자유가 있다고> 본다는 것은, 쉽게 말하면 그 자신이 시인도 문학자도 아니라는 말밖에는 아니된다. 그런데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소설가, 평론가, 시인이 내가 접한 한도 내에서만도 우리나라에 적지 않이 있다. - <창작자유의 조건>《김수영 산문전집》

말 한마디를 듣고 나서 나는 유시민이 너덜너덜한 정치인의 옷을 아직도 입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것은 그가 사용하는 용어의 모호함에서도 발견된다. '지식소매상'이라는 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좌파 신자유주의'만큼이나 그 정체를 알기 어렵다. '지식인'과 '장사치'의 중간사쯤 될 것이다. 유시민의 위상은 지식인과 장사치, 정치인 중 어디에 놓여 있는가? 이런 용어의 모호함 때문에 얼마 전 된통 야단을 맞았다. 르네21에서 <지식의 대융합>의 저자 이인식 선생을 초청해 강연회를 할 때 나는 <과학윤리>의 문제를 물었다. 선생은 대뜸 "과학의 윤리 이전에 과학자의 윤리가 없기 때문에 그 질문은 사치스럽다"고 답변했다. 과학계 내부의 통제가 안 되고, 과학 언론이 살아서 과학의 모순을 밝혀내지 못하는 현재 상황에서 황우석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선생의 말을 들으며 나는 과학계에 '과학자'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어서 무척 반가웠다. 유시민은 '조어'가 아니라 '표제어'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유시민과 종이컵

홍대의 '홍콩반점'이라는 음식점에 자주 가는 편인데, 그 집은 서빙교육을 엄격히 시키는지 손님을 접대하는 요령과 폼이 완벽하고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언젠가 헛점을 발견했다. 볶음짬뽕은 현금으로 시키고 탕수육은 카드로 주문했는데, 볶음짬뽕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짬뽕'이 나온 것이다. 예측된 시나리오에서는 완벽하지만 예측을 벗어난 상황에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나 보다. 유시민과의 간담회에서 공교롭게 비슷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달변의 유시민과 본의 아니게 난상토론을 벌이게 되었다. 내가 물었던 질문에 대해서 양비론으로 답변해서, 나는 처음으로 '재질문'을 했다.
질문의 요지는 특이하지는 않았다. 사상 최초의 역정권교체를 당했는데, 사상 최초의 정권재탈환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특히 2~30대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20대가 50대와 정치성향이 비슷하다는 답변을 하며 은근히 20대를 깔보는 '꼰대근성'을 발휘했다. 그리고 30대에 대한 불만도 토로했다. 30대 후반이나 40대들은 싸워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헌법조항'의 소중함을 알지만 '어린 사람들'은 그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식으로 답변했다. 사실 그는 2~30대에게 해줄 답변이 없었다.

나는 그에게 '종이컵'의 비유로 답변하고자 한다.
일회용 종이컵은 한번 쓰고 나면 다시 쓰기 무척 어렵다. 하지만 다시 쓸 수 없는 것은 아니다. 20대는 박스 안에 담긴 종이컵처럼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다행히 30대 초중반은 일종의 '완충지대'라고 할 수 있다. 과외나 사교육 열풍이 그다지 심각했던 것도 아니고 싸워야 할 독재정권이 엄존했던 것도 아니다. 그들은 어느 정도의 '자유'를 누릴 기회가 있었다. 이들이 새로운 종이컵이다. 자유를 누린 만큼 현재 상황에 대한 빚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유시민을 포함해서 386들은 한번 쓰고 난 종이컵이다. 종이컵에 커피를 부었든 떡볶이를 담아 먹었든 쓰고 난 종이컵을 잘 닦아야 또 쓸 수 있다. 겉으로 보면 잘 닦은 것처럼 보이지만 홈에는 아직도 떡볶이 자국이 남아 있다. 물을 넣어 마시면 떡볶이 냄새가 난다. 홈까지 아주 정성스럽게 잘 닦아서 '새 종이컵'으로 승화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쓰레기통으로 가야 한다.

유시민은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참여정부 시절과 지난 10년의 민주적 성과를 낙관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그래서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는 386의 상황을 최첨단으로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새로운 시대에 대한 힌트가 들어 있지는 않다. 유시민의 책이 의미를 얻는 지점은 바로 거기다. 지난 시대에 대한 총정리이자 반면교사다.

감수성이 있는 사람들은 <후불제 민주주의>가 새로운 어떤 것을 말해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축 늘어진 남성이 되어버린 형님들의 '자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또 하나의 상징자본이다. 우리 시대의 지식인들이 대부분 빠져 있는 딜레마다. 그들은 시대를 바꿀 힘도 의지도 없고 다만 '지식'을 소비할 뿐이다. 그들의 지식을 사는 사람들도 새 시대에 대한 희망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나는 그의 책을 읽고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스스로 맨땅에 헤딩하며 만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차가운 진리와 새삼 조우했다.


<페이퍼에 소용된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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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범 2009-04-07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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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ngmina 2009-04-07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하구나 승주 ㅋㅋ
 

만으로 6년가량의 정치 생활에 대한 마침표가 필요했던 유시민 선생님의 필요에 의해 세상에 나온 '후불제 민주주의'의 출판기념 대담(?)에 참여했던 기록을 남겨본다.

나 개인적으로는, 지난 1년간의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다시 프리랜서로 돌아온 상태에서, 자신의 직업을 간단하게 프리랜서라고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조금은 건조한듯한 표현에 야릇한 동질감을 느끼는 가운데 대담은 시작되었다.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한 마음(진행자는 끝까지 '애정'이라 표현함)에 대해 집요함을 보이던 진행자의 질문이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사실 이후로도 진행자의 질문은 충분한 준비를 거치지 않은 질문이라는 것을 누가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가볍게 마련한 자리인데, 혹여라도 자리가 무거워짐을 염려하는 듯한 진행자의 마음 씀씀이가 너무 과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여간, 유시민 선생님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애정을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선배 동료에게 힘을 실어 우리가 원하는 세상으로 한걸음 가까이 다가갈수 있도록 돕는 것'으로 표현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야속했던 적은 없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본인의 행동이 댓가를 바란 것이 아니었으니 서운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이어지는 수많은 얘기가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말해 현집권당도 그들이 말하는 과거 '잃어버린 10년'도 견디었는데, 그들은 천막 생활도 해가면서 절치부심(切齒腐心)하고, 와신상담(臥薪嘗膽)하였는데 우리(현집권당에 반대되는 모든 세력. 국민포함)가 견디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냐는 이야기로 정리해 볼 수 있다.

헌법을 읽고 설레인다는 사람이 정상이냐는 질문에 유시민 선생님께서는 '그렇다'고 답하셨지만, 나라면 좀 다른 답을 했을 것이다. "어떤 이는 멍멍이를 사랑하고, 어떤이는 보신탕을 좋아한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다형성의 문제이며, 나와 다르다는 것을 '당신은 틀렸다'라고 말함에 주저함이 없는 사람은 독재자의 성향을 갖춘 사람이며, 그런 사람에게 칼(권위)을 쥐어준다면, 그는 머지않아 칼을 휘두르게 될 것이다."

나 개인적으로 전북대의 강준만 교수를 좋아하지 않는다. 엄청난 량의 집필을 하는 분이다보니 때로는 충분한 숙고 없이 쓰여진 그 분의 글을 읽는 것이 곤욕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분이 제안한 고교 정치교육에는 대찬성이다. 정치에 대한 아무런 관심과 어느정도의 지식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얻어진 투표권이 민주주의 국가가 필요로 하는 권리로 행사될 수 없다는 생각에 나 역시도 완전한 합일을 이루게 되었다.

'정치를 왜 하게 되었나? 다시 정치를 한다면 언제 하겠는가?'
화가나서 정치를 시작했다는 유시민 선생님은 어쩌면 '나 혼자 화가나는 상황에서는 힘을 얻을 수 없다'는 결론을 얻으신 것 같다. 선생님이 느끼고 있을 지금의 아픔에 대한 온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되어야만, 대한민국을 위한 무언가를 이룰수 있을 것이다. 유시민 선생님은 어떤 생각이신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나는 생각한다. 현정부가 남은 임기동안 충분히 국민들을 괴롭혀 준다면, 그러한 공감대는 반드시 만들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나는 대선 직전에 노무현 대통령이 한나라당에게 했던말을 기억하고 있다.
"더이상 대권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권 노리지 마라. 내가 대통령이란 자리의 모든 권력 다 버리고 떠나겠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이것에 대해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두둥...!)
유시민 선생님의 생각은 달랐다. 검찰에 끌려다니고, 언론에 끌려다니고, 일부 국민들에게 아무리 욕을 먹어도, 권력으로 그런것을 제제했던 과거의 정부와 같은 탄압이나, 수단을 가리지 않는 억압적 행위를 일체 행하지 않음으로 해서 국민들도 이제는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는 것을 깨닳게 되었고, 당연하지 않은 행동을 하는 현정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설명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들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 대선에서의 국민들에게 잘못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잘못이 없다'라고 말씀하시며, 자신의 투표권을 행사함에 있어 다른 사람이 지지하지 않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 역시 각자의 권한이며, 그것을 잘못이라고 말할수도 없고, 말해서도 안된다는 답변을 하며 진정한 민주적 국민이 갖추어야 할 바람직한 사고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나는 어려서부터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내가 찍은 사람들이 모두 당선됐다'는 식의 자부심(?)을 들어내는 표현을 종종 들어왔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것인가? 우리나라가 그렇게 모든 것이 선명하고, 당연한 생각을 가지고, 당연한 것을 행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 나라인지 의심해 본다. '내가 찍은 사람들이 모두 당선됐다'고 말하는 것은 '나는 나의 생각을 가지지 않고, 여론의 눈치에 매우 민감하여 그들의 생각을 받아들여 나의 생각을 바꾸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라는 말로 이를 재해석 해 본다면, 이런 국민에 의한 투표의 권리는 차라리 포기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내가 유시민 선생님만큼의 경험과 지혜(또는 사회적 지위와 책임)를 갖추지 못한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새삼 깨닿게 된다.
그리고, 지난 대선에서 국민에게 잘못이 있었다면, 그것은 뻔한 거짓말에 사기를 당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진행자의 표현을 인용 하자면, '사기는 지불하는 비용 이상의 가치를 얻기 바라는 마음을 가진자가 당해주어야만 성립할 수 있다'. 지난 대선에서 보여준 국민들의 잘못된(나의 지나치게 주관적인 생각) 선택은 뻔한 거짓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많은 이들의 무지(無知)에도 이유를 찾을 수 있겠지만, 충분한 비용을 부담하지 않고 자신들의 희망이 결실을 맺어주길 바란 결과라고 생각한다. '비용을 지불하려 하지 않으며, 행복을 얻으려는 사람들'을 보면 감옥에 갇혀있는 도동놈들과 무엇이 다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다시말해... 정권 탓할 것 없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국민들의 잘못이 현 정부의 잘못에 몇갑절은 잘못이 크다고 할 것이다.

나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대한민국의 국민성을 놓고 가설을 세워본다.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원하는 부(富)는 절대적 부가 아닌 상대적인 부이다. 내가 남들보다 더 많이 벌고, 내 재산이 남들보다 더 많고, 내가 남들보다 세금을 더 적게 내기를 바란다. 상대적 부라는 것은 다 함께 조금 덜 벌고, 재산을 조금 줄이고, 세금을 더 많이 내게 된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남들도 수입이 줄었는데, 남들도 세금을 더 많이 내게 되었는데...'라는 생각을 하게 될 만큼 직접세의 비율이 높아지기만 한다면, 대한민국은 몇십배는 살기좋은 나라가 될 것이다. 물론 유시민 선생님의 말씀처럼 이미 우리나라는 살기 좋은 나라임에 나 역시도 일부 동의하는 바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것은 '민주주의' 보다는 '자본주의'의 범주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대담을 통해 정리된 몇몇 교훈적인 내용을 적어는 것으로 글을 마치려 한다. 
짧지 않은 글이지만, 읽어주신 것에 감사드리며, 참석하지 못하신분이나, 훗날에 이 글을 읽게 될 분들에게 이 글이 선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유시민 선생님의 앞날에 '건투를 빕니다' .


"자신을 사랑하라"
"나중에라도 충분한 비용을 지불하라"
"지름길을 찾지마라"
"바람이 불면 모든 사물은 각자의 소리를 낸다(다형성:남이 나와 다름을 인정하라)"
"아픈 경험(노력)없이 얻어진 민주주의, 지금와서 비용을 부담하는 것을 아까워 말라"
"찬머리 뜨거운 가슴"
"세상에 공짜는 없다. 충분한 비용을 부담하라."
 

이상은, 대담후기 등록하여 상품권을 받아 아내에게 사랑받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인서아빠의 글이었습니다. ^^;
 

등대지기 황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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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가 바뀌고 일년 남짓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민주공화국이라는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시기를 겪고 있다. 안으로는 민주주의 개념 자체가 흔들리고 있고 밖으로는 미국발 세계공황의 여파로 더 이상 물러설 곳 마저 없는듯한 막막함 속에서 산다기 보단 견디어 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는 화를 내고 누군가는 체념하고 또 누군가는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가 보아도 명백한 보복성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때는 냉철한 지식인이었고 또 한때는 국가를 이끄는 장관 혹은 의원이기도 했던 유시민, 그의 현실인식이 그래서 더욱 궁금했다. 그는 지금 화내고 있을까 체념하고 있을까 아니면 원망하고 있을까..

[후불제 민주주의]를 읽으면서 적어도 나는 그의 원망이 읽힌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주인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주권자가 아닌 백성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쥐어 주기만을 기다리는 국민, 건전한 비판보다는 비난 일색이였던 여론과 지식인, 하물러 함께 한 동료에게까지 이르는 그의 비판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선택 받지 못한 정치인으로서 그를 인식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현실은 충분한 값을 치르지 않고 주어진 민주주의라는 선물 앞에 그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어제 내린 눈 정도로 생각한 국민이 그 값을 치르는 과정이라는 그의 말은 분명 옳은 말임에도 불구하고 전정부의 가치를 인식하지도 인정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원망이 아닐까 했던 것이다.

하지만 [후불제 민주주의]의 시작이 그의 몇 년간의 정치생활에 대한 정리이고, 지금의 현실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라는 그의 이야기로 시작된 그와의 오늘 두시간 남짓한 시간은 선택 받지 못한 정치인 혹은 실패한 정치인 유시민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섣부른 것이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의 현실인식은 퇴보하는 민주주의의 현실 앞에서 지금의 상황을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었고, 값을 치르지 않았으니 당연히 올 일이 온 것이라는 체념이 아니라 그 값을 어떻게 치르고 어떻게 발전해 나갈 것인가를 찾는 답의 과정이었다.
현실 정치에 대한 실망과 체념 어린 여러 질문에 대해 그는 몇 번이고 지금의 상황이 그리 나쁘지 않다 거나 견딜만 하다라고 이야기했다. 그가 지금의 현실을 그리 나쁘지 않다라고 인식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오랜 고민에 대한 그의 답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지금의 현실을 제도적 진화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환경에의 부적응의 한 형태로 인식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이러한 부적응의 시기를 견디고 나면 결국은 한 단계 진화된 사회로 발전할 것이라는 사회진화론적 믿음을 이야기했다. 때론 진화의 과정에서 역행하는 듯 보이는 역사도 결국은 진보할 것이라는 그의 믿음은 어쩌면 민주화가 꿈에서나 존재할 것 같았던 80년대를 온 몸으로 겪어내고, 결국의 어두운 터널 끝 빛을 마주할 수 있었던 그의 삶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그런 성공의 경험은 지금 사회가 결코 옳다고 믿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옳은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자신감을 그에게 주었을지도 모른다.
삶이 흔들릴 때 어떤 책을 주로 읽느냐는 질문에 어떤 책도 흔들리는 자신을 잡아줄 수는 없다고, 결국 흔들리는 자신을 다잡아 주는 것은 책이 아니라 스스로의 자존감 혹은 자긍심이라는 그의 말은 이 시기를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가에 대한 그의 답변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자신의 이익과 사회적 정의가 충돌하는 경험 속에서 우리의 선택은 결국 우리에게 맡겨진 숙제이다. 민주주의는 행복의 추구를 권리로 보장할 뿐이지 행복자체를 담보하지 않는다. 자신의 추구할 행복이 무엇인지 찾는 것도, 또 그 행복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도 결국은 본인이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결국은 자신이 질 일이다. 다만 자신이 옳다고 믿어온 가치를 위해 싸우고 때론 승리하기도 하고 때론 실패하기도 하며 여전히 투쟁중인 유시민, 그 자신을 보는 것이 행복추구를 향한 우리의 질문에 조금쯤 답이 되어줄지도 모른다.

언제가 읽은 책에서 헌법의 기본정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정신이라고 했다. 나와 같은 생각이어서 인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르지만 그래서 이해하기도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바로 헌법이 가지는 핵심가치라는 말은 유시민이 꿈꾸는 대한민국의 모습과도 일치한다. 모나고 엉뚱하게 생긴 사람들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긴데로 살아도 되는 나라 대한민국을 꿈꾸는 유시민. 그를 보면서 자신을 세상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자신에게 맞추려고 노력하는 우직한 자의 어리석음에 대한 글을 떠올린다. 우직한 어리석음이라는 제목의 그 글은 이렇게 끝은 맺는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인하여 조금씩 나은 것으로 변화해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직한 어리석음, 그것이 곧 지혜와 현명함의 바탕이고 내용입니다.] 아마도 세상에 대한 그의 우직함은 언제가 그가 꿈꾸는 대한민국을 현실로 만들어 보여줄 힘이 아닐까? 그의 우직함이 세상을 바꿀 그날을 기다려본다. 그리고 우직한 모습으로 내가 고민하고 찾아낸 행복을 추구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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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암동이 그렇게 웅장하고 위풍당당함을 유시민 선생님 덕분에 처음 알았다.
더구나 오세훈 서울시장이 삼암동에 133층 빌딩을 세우겠다고 공포한 날이기도 했다.
버스에서 내려 오마이뉴스 본사가 있는  웅장하고 위풍당당한 거대한 건물에 들어설때까지만 해도 기분은 좋았다.
존경하는 유시민 의원을 만난다는 것과 놀랍도록 멋스러운 변화된 상암동에 첫발을 디뎠다는 그런 기분 말이다.
18층에 오마이뉴스 회의실로 들어설 때 좀 당황스러웠다.
저녁7시 시작하여 9시가 넘어 끝날 행사라면... 특히, 보통의 직장인을 대상으로 초대했었다면 적어도 빵 한 조가리 물 한 컵이라도 준비해 뒀어야 했다고 본다. 수 백명이 모인 것도 아니고, 불과 몇 명 되지 않는 사람을 모아 굶겨 놓고 시작하다니... 돈이 필요하다면 참가비 10,000원이라도 더 냈을 것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2009년3월30일의 놓쳐버린 저녁식사 시간이 유쾌하지 않았다. 다들 굶는 게 정상인데, 혹시, 나만 유별나단 말인가? 



▲ '후불제 민주주의(돌베게 펴냄)' 저자인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30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알라딘 독자 초대 토론회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 유성호
 

크지 않은 체구지만 그 거대한 건물에 비겨 전혀 위축되지 않는 기품... 
명료한 어투, 날카로운 눈빛으로 다리를 꼬고 앉은 유시민과의 대화는 알찼다.
김어준의 짓궂은 연발성 질문에 말려 들지 않으면서 자신의 할말을 다 하는 모습이 좋았고, 역시나 무거운 자리를 즐거운 엔터테이먼트 공간으로 포장해 주는 김어준도 빛났다. 가끔 유시민의 지지자인 듯한 사람들이 '그만하라'고 말리는 촌스러운 시위성 멘트를 날리기도 했지만  김어준은 굴하지 않고 멋지게 분위기를 이끌어 갔다.

자연인 유시민의 호칭은 본인의 희망에 따라 가장 만만한 유시민 선생님으로 결정되었다.
취향에 관한 집요한 질만에 배종옥을 좋아하고, 가지런한 생머리에서 여성미를 느낀다는 유시민 선생님...
야동도 안보지 않는다는 답변에 이어지는 집요함은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요인이었을 뿐...

후불제 민주주의를 읽어 본 사람들은 다들 느끼겠지만... 토론회 내용도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진화심리학 관점에서 지금은 그래도 견딜만 하다는 위로...
후불제 민주주의 국가에서 현 정부는 고지서 정부라고 비꼬는 김어준에게 비약하지 말자는 위로...
지난 정권때 좋은 것은 당연시 하며 +알파만을 쫓아 경제성장을 부르짖는 사기에 농락당한 국민들에 대한 아쉬움...
지난 수십년간의 노력으로 일궈놓은 민주주의를 어제 내린 눈 취급하는 국민들에 대한 아쉬움...
눈 내릴 때는 좋았지만 눈 내린 다음날 질퍽질퍽 해진 집앞 도로를 보면 짜증나는 심리 같은 아쉬움...
국민의 정치적인 사행심이 뽑은 2MB 정부에 대한 아쉬움을 경험하면서 스스로 국민의 마음을 사로 잡을 수는 없을지라도 국민들의 열망은 파악할 수 있다는 자부심 같은 책임감...


내 앞에 앉은 어떤 이가 물었다.
지난 정권은 무책임 했다고, 그많던 사정기관이 BBK 하나만 해결했어도 이 정부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유시민은 대답했다. 모든 것을 다 놓아버렸기 때문에 2MB도 그나마 그 반밖에 쥐고 있지 않은 것이라고... 현정부는 지난 정부가 국민들 버릇을 잘못 들여 놨다고 하는 것이 바로 그 결과다라고... 박 미네르바의 구속에 대한 국민적 반대여론도 그런 성과물의 하나라고...
너무도 독선적이기에 '진정'이란 표현을 싫어하는 유시민 앞에 스스로 자신이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다는 정치이라며 나설 수 있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
젊은 친구 하나가 이명박 정부의 행태에 분노하며 자신의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를 어찌하냐고 했을 때 김어준이 거들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이 정부는 투명정부랍니다. 뭐하려는지 속셈을 알 수 없는 행동이 하나도 없어요. 그냥 9시 뉴스 앞부분은 보지 마세요." 라고...

힘이 되는 책이나 용기를 주는 그 무엇을 물었을 때,
자긍심을 갖되 남도 존중하면 그 어떤 책이나 위로 보다 힘이되고 용기를 강하다는 마무리...

저녁에 빈속으로 토론회에 참석했다가 귀가하니 11시10분...
주최측도 고생은 했겠지만... 입장 바꿔 생각해 보자.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저녁 식사를 할 수 없는 어정쩡한 시간은 어제가 마지막이 되기를...
난 8시가 좋더라~ 초코파이라도 주던가...

(점심 먹고 후다닥 쓰느라고 부족한 글... 용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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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시민, 어제 내린 눈 취급 받았던 민주주의...
    from 사실無근 2009-03-31 13:08 
    상암동이 그렇게 웅장하고 위풍당당함을 유시민 선생님 덕분에 처음 알았다. 더구나 오세훈 서울시장이 삼암동에 133층 빌딩을 세우겠다고 공포한 날이기도 했다. 버스에서 내려 오마이뉴스 본사가 있는  웅장하고 위풍당당한 거대한 건물에 들어설때까지만 해도 기분은 좋았다. 존경하는 유시민 의원을 만난다는 것과 놀랍도록 멋스러운 변화된 상암동에 첫발을 디뎠다는 그런 기분 말이다. 18층에 오마이뉴스 회의실로 들어설 때 좀 당황스
 
 
 

당첨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유난히 이런 '뽑기 운'에는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걸릴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안고 신청한 강연회였습니다. 그리고는 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23일 오후에 도착한 문자 한 통. 당첨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이었습니다. 

고려대학교를 가는 것은 두 번째였습니다. 처음 갔을 때, 옆으로 넓은 학교 부지가 어찌나 부럽던지. 찾아가는 길이 멀긴 했지만, 그런 멋진 학교를 한 번 더 본다는 설렘과 작가 공지영씨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두근거림이 상승작용을 일으켜서인지 꽤나 일찍 도착했습니다. 

 

(블로그에 올릴 사이즈로 편집한 덕에 사진이 좀 큽니다. 죄송합니다. ;ㅁ;) 

제일 먼저 나를 맞아 준 것은 강연회 알림 포스터였습니다. 학교 전체가 너무 조용한 탓에 '과연 강연회를 하긴 하는 걸까?'라고 순간 불안감을 가지게 만들었던 상황이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사진을 꽤나 많이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나마 덜 흔들린 건 이것 밖에 없었습니다. ;ㅁ;) 

   
  20대에 꼭 해야할 것. 코피 터지게 연애를 하세요. 코피 왜 터지냐면 걔 기다리느라고 그 집 앞에서 가서 밤 늦게까지 있다가 새벽에 와서 조금 자고 또 갔기 때문에 코피가 나는 거에요. 너무 보고 싶어서. 이런 연애를 꼭 하세요. (중략) 도서관에 있는 책을 다 읽으세요, 진짜. 읽을 수 있어요. 그리고 다시는 이제 그런 세월이 오지 않아요. 그렇게 한가하게 책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없는데. (중략) 꼭 혼자서 먼 여행을 한 번 다녀오세요. 배낭을 메도 좋고, 무전여행을 해도 좋고. 혼자서 그 쓸쓸함과 낯섬과 고독과. 이런 것들을 안고 가면 정말 사람을 만나고 인생을 배울 수 있어요.  
   

나는 분명 20대에 있는데, 말씀하신 것 중에 하나도 제대로 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20대의 시간 동안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해 보고자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이 생겼습니다. 저것만 제대로 실천해도 내가 투자한 책 한 권, 그리고 2시간 이상의 가치를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강연회만 있는 줄 알았는데, 작가님의 책을 가지고 온 사람들에게는 사인도 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제 앞의 두 분은 작가님의 강연회에 참석하시기 위해 지방에서 올라오셨다며 사인을 받으셨습니다. 나는 "앞에 앉아서 자꾸 사진을 찍어대서 죄송합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괜찮다며 웃으셨습니다. 그리고는 '행복하세요. 바로 지금!'이라고 써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누구에게, 언제 '행복하세요'라는 말을 들었는지 잠시 고민했습니다. 그랬더니 퍼뜩 답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럼 내가 마지막으로 누구에게, 언제 '행복하세요'라는 말을 전했는지 다시 고민했습니다. 역시나 답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행복하세요. 바로 지금!'이라는 문장을 한 번 더 읽으면서 강연회 내내 꺼놓았던 휴대전화를 켰습니다. 그리고는 몇 사람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행복하세요. 바로 지금!'이라고 말이지요. 

이 강연회에 많은 분들이 참가신청을 하셨을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분들께 제가 전할 수 있는 것은 작가님께 얻었던 '행복하세요. 바로 지금!'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덧. 깃털은 다른 수식어를 붙일 필요가 없이 가볍습니다. 거기다가 '아주 가벼운'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고 해서 그 깃털이 더 가벼워지는 것은 아닐 겁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마음가짐의 문제라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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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행복하세요. 바로 지금! (공지영 강연회 후기)
    from it BE. 2009-03-30 22:48 
    당첨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유난히 이런 '뽑기 운'에는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걸릴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안고 신청한 강연회였습니다. 그리고는 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23일 오후에 도착한 문자 한 통. 당첨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이었습니다. 고려대학교를 가는 것은 두 번째였습니다. 처음 갔을 때, 옆으로 넓은 학교 부지가 어찌나 부럽던지. 찾아가는 길이 멀긴 했지만, 그런 멋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