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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인공은 콩,양파, 브로콜리 등이 들어간 음식은 손도 안대고 밥먹기 전에 과자먹기를 좋아하는 신이..
왠지 우리 아이들을 닮아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꿈속에서 자연의 나라로 가게 된 신이..
그곳에서 우리가 남긴 음식물 쓰레기 덕분에 막강한 힘을 가진 음식물 쓰레기 마왕을 만나게 됩니다.

음식물 쓰레기 마왕덕에 자연의 나라는 이미 오염이 되었고
자연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 꽃의 요정이 된 신이와 마지막 남은 새대장이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해
음식물 쓰레기 마왕을 없애려고 합니다.
새대왕이 음식물 쓰레기 마왕을 없애기 위해 음식물쓰레기를 땅속에 묻습니다.
그러자 땅속에 묻힌 음식물 쓰레기들이 썩어서 우리가 마시는 물을 오염시켜버립니다.
이번엔 음식물 쓰레기를 불에 태웁니다.
음식물은 젖어서 잘 태워지지 않기때문에 비싼 석유까지 동원해서 불을 붙였지만
오히려 검은 연기속에 다이옥신이라는 너무나 해로운 물질까지 나오게 하고 말았네요.

이때 등장한  왕지렁이...
지렁이는 음식물 쓰레기를 좋은 흙으로 바꾸어주는 일을 하는 환경지킴이라네요.
음식물을 남기지 않겠다는 아이들과의 약속의 힘으로 음식물 쓰레기 마왕은 사라져버리게 되고
꿈에서 깨어난 신이는 언제 편식을 하고 음식을 남겼냐는 듯
음식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먹으면서 공연은 끝이 납니다.

지렁이의 등장으로
2007년 11월 코엑스에서 열렸던 친환경 상품전시회에서 환경지킴이라며 받아온 지렁이들이 생각났어요. 

투명컵 안 흙속에서 꼼지락대던 여러 마리의 지렁이들이 너무 징그럽기도 하고
정말 음식물 쓰레기를 먹을까 궁금하고 신기해서
열심히 음식물 쓰레기를 넣어주고 관찰했었는데....
(근데 우리가 관찰할 땐 지렁이들이 음식물 쓰레기를 흙으로 바꾸는 걸 보지 못했어요.
오늘 공연 내용을 들어보니 아마도 제가 양파껍질 위주로 줘서 지렁이들이 죽은 듯...
지렁이들에게 매운거나 짠 거를 그대로 주면 죽는다네요 ㅠㅠ
오늘 공연을 지렁이 키우기전에 미리 봤더라면 열씸히 키울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울 아들도 생각났는지
"우리도 지렁이 키웠는데..그치?"
하네요..

공연 중간에 과자가 왜 나쁜지에 대해서 알려주실 때
아이들이 알기 쉽게 그림과 노래로 설명해주시는 부분이 참 좋았네요.
공연 중간 중간 배우들이 불렀던 노래 가사가 참 좋은 내용이 많았던 것 같은데
아이들에게 전달되기에 약간 노래가 빠르고 어려운 것 같아요.
리플렛에 노래 가사들을 적어서 아이들에게 나눠주시면
공연이 끝난 후에도 노래 가사의 의미도  다시 한 번 새겨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늘 공연은 음식물을 절대 남기지 말라는 좋은 교훈을 주는 공연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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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2009-05-09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시 공연시간 맞추느라 유치원 수업도 다 못하고 조금 일찍 데리러 가서 볼 수 있었어요.

6살인 저희 아이에게 딱 맞는 이야기였어요.

아주 재미나게 보는 모습을 보니 부듯했어요. 밥만빼고 무엇이든 열심히 먹는 저희 자녀가 이번 뮤지컬을 보고 느끼는게 있엇답니다.

자주 저녁 먹기전에 간식을 먹어 저녁시간을 길게 만드는데 음식물 쓰레기 마왕 덕분에 교훈이 되었어요.

편식이 줄고 밥잘먹는 ,남기면 안된다는 것을 다시한번 다짐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답니다.

지금도 쓰레기를 남기면 대마왕이 나타나냐고 묻는 답니다..

대마왕도 있고 우리 환경도 오염되니 음식찌거기를 만들지 말자고 이야기 하지요..

딸과함께한 첫 문화 나들이 였어요.

감사합니다.
 

 책 소개하는 강연회에는 난생 처음이었다. 당첨이 되었을때 작가에 대한 예의를 차려 서점에서 구입을 했을때 막상 알라딘에서 본 것과 다른 손안에 들어오는 작은 분량의 책인 것이 의외였다. 제목은 거창했으니까. 그러나 일본에서 나온 책을 번역한 것이라 그런지 지하철이나 가방속에 넣고 다니면서 읽기에 딱 좋은 크기와 분량인 것을 생각하고 강연을 들으러 갈때 들고 가기 좋겠다는 안도가 있었다. 지금 나오고 있는 책들은 재질이 너무 좋아 무겁고 크기가 만만찮기 때문이다. 

저자의 강연은 현재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사회가 거의 다를바 없었다. 옛날에는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환경이었지만 지금은 개천에서 미꾸라지도 나올 수 없는(나의 생각!) 거의 동일수준, 동일계층의 사람들이 대학에 다닌다는 것이다. 부모에 의해 세습되는 아이들의 계층은 옛 봉건사회의 형태와 비슷하다는 것이고 혜택을 받은 아이와 못 받은 아이가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정부는 저출산,저고령화는 걱정하면서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지 않다.  

이러한 시대에 고민은 가치관과 사고 방식의 전환을 가져오며 슘페터의 상상적 파괴와 같은 새로운 패턴의 변화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따라서 엘리트들이나 지배자 층은 고민을 해야 하며 현 사회의 위기를 극복할 모델이 없으므로 모델을 위한 고민을 해야 한다. 

저자는 책에서도 썼듯이 현재 60세의 나이에 무색하게 늙음이 두려움을 없애줘서 하고 싶은 것을 시작하고 싶다고 했다. 실제로 본 저자는 나이를 밝힐때 많은 사람들이 탄성을 지를 만큼 젊어보였다. 그것은 고민을 많이 해서라고 한다.  그는 자신과 관계되는 가까운 이들이 뭔가를 이루려고 할때에 돌아가시는 것을 보고 미루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듯 했다. 뮤지컬 만들기와 오토바이타고 일본 열도를 다니는 것이라고 한다. 뮤지컬의 주인공은 본인이라고 하자 통역자는 웃으면 머뭇거리다가 통역을 해주었다.

현재 일본대학에 희망학 이라는 강좌가 개설되어 일본 젊은이들의 희망을 찾아주려 애쓴다고 한다. 저자는 희망과 행복은 다르다고 했다. 행복하려는 것은 결코 목표가 될 수 없다.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희망은 개인적 소원이 아니며 사회 구성원이 함께 나눠 갖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의 인문학자들이 개설한 인문학 강좌에서 느낀 것을 쓴 행복한 인문학의 내용과 비슷했다.  희망은 절대 버릴 수 없는 것이고 찾아내는 것이라고 한다.   

한 학생이 질문한 살아가면서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 두는 가치에 대해 본인의 경우 친구가 결단을 내릴때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했다. 인간관계에서 친구는 매우 중요하며 친구를 알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사람은 자기 수준의 사람을 만나게 되고 본인은 자신을 가장 잘 알고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친구가 죽음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친구가 사라졌다고 했다. 내게도 책을 만나게 해주고 지금은 간혹 전화통화와 일년에 몇번 못만나지만 초등학교때 부터 만나는 친구가 있어서 그 말에 공감할 수 있었다. 

저자는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고 했다. 난 그 의미를 그 때는 자신이 뭔가 하고 싶을때 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하고 싶다.  

항공시간에 맞추어 급하게 가시느라 사인을 받으려 했던 것이 무산되어 아쉽지만 성심성의껏 질문자들에게 답변을 해주시고  더 길게 이야기 하고 싶어하는 모습이 역력하여 매우 가깝고 편안하게 느꼈졌다. 권위적이 아니라 정말 뭔가 말해주고 싶고  한국에서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고 싶다는 분위기가 느껴지고 간혹 유머를 섞어 강연을 하여 편안하게 들을 수 있었다.  

다음 번에 혹시 다시 강연을 하시게 되면 시간 여유를 갖고 길게 그리고 깊게 토론 형식의 만남으로 이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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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고등학생때 체육시간에 운동을 하다 잘못넘어져서 허리를 다쳤는데 (크게 다친건 아니지만..) 그 이후로 항상 조심하고 다닙니다. 주변에 허리디스크로 고생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전에 한번 다친적도 있고,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중이라 사무일을 보면서 아무래도 앉아있는 시간도 많다보니 허리에 무리가 자주가는것 같아 왠지 허리가 무겁다는 느낌이 많이 들더군요  운동이나 혹은 물리치료쪽을 생각해봐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알라딘에서 이런 좋은 강연회를 연다기에 책도사서 오마이뉴스 누리꿈 스퀘어로 갔습니다. 

 사실 책은 샀지만 -_-; 몇번 따라해보고 조금 읽어보다 말아서 약간 죄책감(?) 같은 느낌도 있고해서 잘 경청해서 들었습니다. 강연회에는 가족끼리 오신분들이 많더라구요 아무래도 서로서로 건강을 챙기자는 생각으로 오신것 같습니다 ^^;  운동치료는 사실 이 책을 읽어보기전에는 거의 들어보지도 못하고 생소한거였는데 참 매력적인 치료 방법 같습니다. 아무래도 허리같이 신경도 많고 예민한 부분은 예방이 중요하겠죠? 이런 생소한 학문과 치료방법의 전문가를 만났다는게 참 기쁘더군요 다른 나라 같은 경우는 많은 연구와 시설이 있다 하던데, 우리나라에는 불모지라는게 아쉽더군요  

 책을 보며 따라해보긴 했지만 아무래도 그림으로 보는거라 요건 어떻게 하는거지? 하는 아리송한 자세도 있었는데 책을쓰신 저자분이 직접 시범을 보여주시고 올바른 자세의 요령도 알려주시니 책에 나와있지 않은 주의점 같은것도 책에 메모 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해보는데 전에 했던것과 확실히 꼼꼼한 느낌이 들고 조금 다르더군요 ^^; 

 한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4주만에 치료를 하고 완쾌를 하는건 무리겠지요, 하지만 그 동안 꾸준하게 한다면 더 이상의 악화도 막고 몸관리를 무지런하게 만드는 좋은습관을 얻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건 운동을 통한 예방이겠지요 ^^; 걸리고서 힘들게 치료하는것 보다야 미리미리 좋은 허리습관과 규칙적인 운동으로 예방하는것이 제일 중요한것 같습니다. 

사실 건강을 위해서 가는 세미나는 처음인데;; 선생님도 친절히 잘 알려주시고 제 몸을 위해서 좋은 시간을 투자했다는게 많이 유익했던 시간 같습니다. 혹시 다음 운동치료 시리즈가 나오면 또 구매하고 세미나도 참여하고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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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에서 강상중 교수님과의 대담기사를 보고 눈이 번쩍 뜨여서, 그분의 최근 저서 [고민하는 힘]을 사서 읽게 되었다. 

읽고난 나의 느낌은? 글쎄...좀더 시의적절한 내용과 날카로운 상황분석을 기대했던데 비해 살짝 밋밋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아쉽다..라는게 첫 느낌이었다.

예를 들자면, 나는 호우 경보가 난 거센 한강물을 잘 헤엄쳐 갈 수있는 자유형 영법을 책에서 찾고 있었는데, 교수님은 수영을 위해서는 우선 기초체력이 중요하다...라는 요지의 말씀을 해주신 것 같아서, 일면 수긍이 가면서도 뭔가 아쉬운 마음이 없지 않았었다.  

그래서 그분이 직접 한국의 독자들과 만나서 여러가지 말씀을 들려주실 기회가 생긴다기에, 알라딘 마술램프의 힘으로 약간의 그 아쉬움을 직접 덜어보고자 참가 신청을 했고, 감사하게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 

시간에 맞춰가고자 아침부터 단단히 준비를 했건만, 이런날은 꼭 뭔 일이 생긴다. 1시 넘어서까지 회사에서 처리해야할 일에 시달리다가 30분은 다돼서야 길을 나섰다. 

다행히 내가 내린 버스 정류장에서 4.18기념관은 그리 멀지않은 곳에 있었다. 그런데! 입구에만 강연회 안내가 붙어있고 당췌 소극장이 어딘지 중간 표시가 없는 것이다. 

경비아저씨가 2층으로 올라가래서 2층갔다가. 사무실밖에 없는 공간에 황당해하다 지하에 있다고 누가 알려주는 바람에 다시 지하로 낑낑...(앞으로 행사진행하실때는 장소 위치좀 제발..잘 붙여주시길 ㅠㅠ) 

뭐 늦었으니 살짝 조용히 들어가야지 맘은 먹고 있던 차인데, 웬일! 자리가 없어서 서서 들어야 한다지 뭔가!!  

분명히 1인 동반해서 모두 참석이 가능하다고 공지에서 확인했던것 같은데...동반도 없는데 앉을 자리가 없다니! 

암턴 고대까지 힘든 걸음을 했는데 그냥 갈수는 없고 해서 실례를 무릅쓰고 문을 빼꼼히 열었다. 

오오...참석자들의 그 뜨거운 열기라니..좌석은 물론이고 뒷편, 입구 복도까지 서서 듣는 분들이 무척 많으셨다.   

친절하신 행사 준비자님들 도움으로, 흰종이를 하나 깔아주셔서 그냥 털퍼덕 앉아서 조용히 경청을 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이렇게 많은 분들이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 자신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다니...하나도 아는 사람은 없었지만 왠지 이 분위기가 친근했다. (마치 2500년전 부처님의 녹야원 설법시간이나 2000년전 예수님의 산상수훈 모임에 둘러앉은 신도들같은 분위기??) 

그리고 실물로 보게된 강상중 교수님은... 

멋! 있! 었! 다!

정말 지성미가 철철 흘러넘치시는 모습, 거기다 그 나직하면서 조근조근한, 그러면서도 명료한 음성이 어찌나 좋던지, 일본어를 못알아듣는 내자신이 통탄스러울 정도였다.  

의외로 알라딘 독자님들은 박식하신 분들이 많은 모양. 강연 형식이 교수님이 일어로 말씀하시면 통역하시는 교수님이 한국어로 번역해주시는 식으로 진행되었는데, 강교수님 말씀에 벌써 웃음소리가 왁자하게 터지기가 반복되었다.   

지각을 해서 초반부 내용을 못들은게 좀 아쉽긴 하지만, 나름대로 간략히 정리한 강연 내용은 이렇다.  

20세기에 한국은 6.25를 겪으며 아프리카 최빈국보다도 못한 경제상황에서 놀라운 기적을 일으켜 유수의 산업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경제 파탄 상황에서 우리 스스로 새로운 방법, 새로운 경제 수단을 창출해야 하며, 그것을 위해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새로운 사회로 소생할 수 있으며, 만약 그렇지 못하면 10년 20년 후 한국의 전망은 그리 밝지 못하다는...다소 우울하지만 뭔가 생각해볼만한 과제를 던져주시는 말씀이었던 것 같다. 

1970년대 한국에 처음 교수님이 오셨을때, 평화시장 근처 빈곤한 사람들의 모습들이 교수님께는 지금까지 그리운 풍경 중의 하나라고 하신다. 그 빈곤한 모습이 재일교포들이 살고 있는 마을과 너무 흡사해서, 마치 서울이 거대한 재일교포들의 마을처럼 느껴지셨다고 한다. 

그러나 40여 년이 흘러, 한국이 이렇게 엄청난 변모를 하게 될 줄 몰랐고, 여기 고려대까지 와서 강연을 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이 시대가 교수님에게 준 은혜가 아닐까 생각하신단다. 

한국인들이 본인의 책을 통해, 재일교포를 포함한 소수집단들에게도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길 바라신다고 하셨고, 작은 힘이지만 일본에서 일본의 여론을 움직여 한일 우호를 위해 힘껏 노력하고 싶다..는 말씀으로 강연을 맺으셨다.

암턴, 교수님께서 3시 30분에 칼같이 출발하셔야 도쿄행 비행기를 타실 수 있다고 해서 많은 질문을 남긴채 강연회는 막을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를 타시기 전까지 몰려드는 독자들 한명한명에게 일일이 책에 싸인을 해주시는 자상한 모습도 보여주시더군. (저도 보고 있다가 운좋게 받았답니다~ ^^v) 

교수님은 우리 사회에 새로운 방법, 뭔가 다른 것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화두를 던져놓고 가셨다. 그것을 어떻게 나의 삶에, 우리 사회에 적용시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지는 각자의 몫일 것이다. 

그제서야 나는 교수님의 [고민하는 힘]이 결코 요즘 시의와 떨어져 있는 내용이 아님을 약간은 깨달을 수 있었다. 좀더 새로운 시각으로 [고민하는 힘]을 다시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강연장을 나섰다. 

좋은 참여기회를 주신 알라딘과 사계절 출판사에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글을 맺으며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위에 쓴대로, 장소안내를 좀더 자세하게!그리고 사전 참석 인원에 맞게 의자를 좀더 준비해주셨으면..(종이위에 앉은게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나중에는 엉덩이아파 혼났어요 ㅠㅠ. 담에는 저도 지각 안하고 제시간에 참석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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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의 마지막 날, 오랫만에 연극 나들이에 나섰다.  

나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의 2,30년대를 동경하고 알고 싶어하는 욕구가 강한지라 바로 이때를 배경으로 한 연극 <경성에 딴스홀을 허하라>가 궁금했더랬다.  

사실 이때는 일제치하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문화적 분위기는 일본 보다는 미국쪽에 더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정신적으로는 일제로 부터의 자주 독립이다.  

아니나 다를까? 연극 역시도 그 분위기를 그대로 가져 온듯하다.  

하지만 지금은 2009년. 그 시대를 겪어보지 않은 나로선 그때 정말 1937년의 '딴스홀 청원 사건'이 정말 있었던 것인지 의아스럽기만 하다. 이 사건은 일제 총독부가 시국이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조선의 딴스홀을 금지시켰고, 연극은 거기서 모티프를 따서 만들었다고 한다. 

웃기지 않은가? 딴스와 시국 불안이 무슨 상관이 있었던 걸까? 그리고 그것을 한 나라의 자주 독립과 연결지어었다니...! 

별 시답지 않은 것에서 억압을 했고 그래서 동시에 저항의 정서가 봇물을 이루었나 보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딴스홀 청원 사건'은 저항의 의미가 있겠지만 연극은 저항에 의미보단 그저 당시의 세태를 풍자하는 의미가 더 많아 보인다. 

사실 딴스홀이 오늘 날의 그것과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일제 시대가 막을 내린지도 오래고, 딴스홀은 그야말로 진화의 진화를 거쳐 10대도 드나들 수 있는 문화공간이 되어버렸다. 개인 사교춤이 나라의 자주와 독립에 이바지했다는 사실이 왠지 생뚱 맞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문화적 금기 사항이 너무 많았다.  

미니스커트 금지 단속. 장발 금지. 또 뭐가 있을까? 아무튼 기타 등등이다.  

나는 연극을  보는 내내 이러한 유령이 되살아 나는 것을 느꼈다.

아마도 문화의 발전은 이런 금기에 대한 저항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까 한다.   

하지만 딴스홀이라고 하는 장소가 주는 의미는 생각보다 의미가 강해 보인다. 

사실 인간이 모여서 뭔가를 해 보자는 것도 장소가 있고야 가능한 것이지 그 장소를 떠나서는 가능하지가 않다. 그래서 처음엔 그 취지에 맞게 의기투합이 잘 되는가 싶지만 어느 순간 개인적 문제가 불거져 나오면서 모임은 와해의 위기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장소(딴스홀)가 거기에 존재하고 있는 한, 사람은 결국 또 다시 모이게 되어있다. 인간은 혼자서는 잘 못 지내는 동물이 아닌가?  

만일 거기에 그 장소가 없다면 사람은 끊임없이 추억을 돼 씹을 뿐이다. 그러니 인간이 돌아갈 장소가 있다는 게 얼마나 복인 것인가? 그래서 연극은 해피엔딩이다.        

연극은 시종 유쾌하고 재밌다.  

연극인지 개근지 그 경계가 모호하다. 분명 연극속에 개그적 요소가 다분히 녹아져 있다. 그래서 지루하지가 않고 끝까지 웃을 수가 있다. 

그런데 요즘 연극은 바로 이것이 장점이자 단점이 되어버린 듯하다. 

심각하고 진지한 연극은 사람들이 잘 안 보는 경향이 있고 그래서 제작자들도 그런 것은 아예 배제한 듯하다.  

하긴 재밌고 신나지 않으면 누가 보러 오겠는가? 연극이 돈이 안 된다는 건 정설이 된지 오랜데 그나마 만드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들이나 이런 웃음의 요소가 없다면 신명이 나겠는가? 

그러고 보면 아무리 웃고 나와도 '연극, 넌 참 외롭겠구나'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동시에 드는 생각은 가끔 세익스피어의 '햄릿'같은 진지한 연극이 그리워지기도 한다.(아, 이 인간의 간사함이란...) 

연극은 공을 참 많이 들였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디테일한 면을 잘 살렸다는 느낌이 든다. 관객과 최대한 호흡 함께 할 수 있도록 했고 여러가지 면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살린 흔적이 보인다. 

별점을 주라면 별 다섯 개 만점에 네개를 족히 줄 수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뭔가의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막과 장의 처리가 그다지 세련돼 보이지가 않는다. 

딴스홀인만큼 춤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이긴 하지만 내가 볼 땐 좀 더 좋은 기량을 발휘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뭔가 그만그만한 연극이 되어버린 건 아닌지 아쉬움이 남는다. 후에라도 쇼닥터가 붙어서 좀 더 풍성하고 매끄럽게 해 준다면 이 연극은 오래 롱런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감히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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