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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다큐멘터리를 너무 좋아하는데, 알라딘에서 다큐 영화 시사회가 있다고 메일이 왔어요. 그래서 보자마자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제목이 길이라고 정말 어떤 의미의 길일까? 너무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너무 보고 싶었는데, 제가 되었습니다. 너무 기뻐서, 와~저 혼자 감탄에 감탄을...^^ 솔직히 제가 저번 겨울? 초봄? 그때쯤에 워낭소리를 너무 보고 싶었는데, 못 봤습니다. 주변에서 꼭 보라고 했는데, 못 봤습니다. 시간도 시간이고 가까운 곳에서 상영도 안되... 그런데, 알라딘에서 메일이 와서 너무 좋아아서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제가 되었습니다...너무 기뻤습니다. 제가 너무 기대했던 거라 5월 13일이 정말 기대되었습니다. 2009년 5월 13일, 드디어 길을 보았습니다. 정말, 제가 좋아할수 밖에 없는 영화였습니다...감동...이기전에 너무 화가 나고, 안타까웠던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는 평택으로 미군기지을 이전을 다룬 다큐멘터리로 옛 대추리 사람들이 바다였던 그곳을 물을 못 들어오게 막아서 땅을 가꾸어 대를 이어 그 땅을 지키고 있는데, 그 땅을 뺏았는...   

논에서 벼를 가꾸셔야 할 분을 견건한 논에서 쫓아내어 경비를 만들어야만 하? 국방부와 정부, 그리고 무력한 젊음이 죄송스럽기까지 느끼게 했던, ...  영화를 보는내내 "살아가는데 기본적인게 있다고 오직 하나 정의" 말이 머리속에 맴돌았습니다... 그리고, 농부들이 촛불을 들 수 밖에 없는 현실이...안타까웠고, 화가 났습니다. 무엇이 중심이 되는 세상인지... 대추리 주민들의 권리는 묵살되어고 그들의 생명은 포기되었습니다. 이것은 국각가 이들의 권리를 위해 아무일도 하지 못했다는 거ㄹ ... 비록 935회 동안 이어졌다가 꺼진 촛불이었지만, 그 정신은... 잊을 수 없었습니다...  

대추리에서 시작된 평화의 발걸음 논에서 보낸 70년 땅이 가르쳐준 진실
2006년 5월 4일 정부는 대추리에 공권력을 투입해 대추초등학교를 무너뜨리고 볍씨가 뿌려진 논에 철조망을 쳤다. 미군기지 확장 공사를 위해서였다. 평생을 소중하게 가꿔온 ‘자식 같은’ 논밭이 바싹바싹 말라갈 때, 방효태 할아버지의 속도 함께 타들어갔다. 씨 뿌리고 농사 짓는 게 ‘죄’가 되버린 세상. 하지만 할아버지는 “논은 자식보다 소중한 것”이라며 논으로 가기 위한 길을 만들기 시작하고, 그 곳엔 ‘평화’의 힘을 믿는 마을 주민들과 대추리 지킴이들이 함께 있다.

 2006년 5월 4일 정부는 대추리에 공권력을 투입해 대추초등학교를 무너뜨리고 볍씨가 뿌려진 논에 철조망을 쳤다. 마을 주민들은 무너진 학교와 철조망 쳐진 논을 바라보며 힘들어 하고, 그런 상황을 촬영하던 감독은 묵묵히 텃밭을 일구던 방효태 할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할아버지는 철조망 건너편의 논에 가봐야 한다고 했지만, 이미 길은 끊어져 있다. 다시 농사가 시작되고, 할아버지는 논주변에 경운기라도 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기 시작한다. 

미군기지 확장공사 때문에 대대로 살아오던 고향에서 강제 퇴거 당하는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사람들...이기는 싸움이 아닌 생존을 위해서 힘겹고 힘든 싸움을 해야 했던 대추리 농민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보며 가슴이 아팠습니다. 제한구역이라는 표말 때문에 자신의 농작물에 손도 댈 수 없는 대추리 농민들과 바짝 마른 농부의 몸은 농부의 손길이 닿을 수 없어 무기력하게 말라버린 그의 논...영화를 보며 가슴이 찡했습니다. 정부 권력을 향해 목청을 높이는 농민들의 모습보다 땅에 기대 앉아 망연자실 황량한 논을 응시하는 농민들의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정의'라는 길이라 믿기 때문에 힘겨운 싸움을 선택했고 후회 없다는 영화 속 농부들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영원히 여운을 남기고 대추리 사건을 가슴으로 이해하고 슬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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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2009-05-28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연 우리가 지금의 시간에 가야할 길은 어떤 길인가?
그 길이 과연 옳은 길인가?
길은 진정 어떠한 의미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버지가 알려주신 그 길로 난 똑바로 가고 있는 걸까?
참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기회를 주신 알라딘에게 감사를 드리며~~~
 

 

 

  

후기를 꼭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이유는 오늘 김규항 선생님과의 만남에 128명의 댓글과 참석을 원했으나 참석할 수 없었던 분들에게 자그나마 위로가 될 수 있을까 해서다.




김규항 선생님은 안동 토론회 때 발제자로 첨 뵀었다. 이번이 두 번째다. 더 젊어지셨고 늘 유머가 넘치신다. 평소 모자 쓰신 모습만 봤는데 모자 벗으신 모습이 훨씬 멋지시다.




여기서 다른 내용보다 질문과 답변을 통해 오고갔던 내용들을 쭈욱 적어보려고 한다.

질문자의 내용은 김규항 선생님의 답변 글을 통해 유추가능하리라 보고 주로 선생님의 답변을 조용조용 정리해 보겠다.




상식이 통하는 세상에서, 상식은 여러 가지며 먹고살만하고 문화를 향유할 만큼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과 생존을 위해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상식은 다르다.(왜 아니겠는가. 있는 사람들이 매일 먹는 식사가 상식이라면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에겐 그 상식이 일 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하는 특식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이건 제 유머..)




더불어 사는 삶을 사는 것과 개인의 꿈과 욕망을 위해 사는 삶은 꼭 다르다고 볼 수는 없다. 더불어 사는 삶이 고통과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 있고 내 꿈과 욕망을 추구하는 것이 개인적이고 이기적일 수도 있지만 그러나 보편적이라면, 내 꿈이 더불어 사는 삶을 지향하는 것일 수도 있듯이 이 문제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 선택의 문제다.




평화가 온순하고 조용해야 한다고 보는 것은 나쁜 의도가 깔려있다. 평화란 깨진 균형, 조화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 조화를 회복하는 데는 온순하고 조용하지 않고 소란스러운 것일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비폭력주의자다. 악에 저항하기 위해 전쟁이라는 극단의 폭력을 일삼는다는 부시도 비폭력주의자라고 말한다. 즉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도 비폭력주의자라고 한다. 폭력이 나쁘다는 말은 아무것도 말하는 게 없다. 비폭력은 폭력의 현장에서만 가능한 말이다. 간디 등 비폭력주의자들은 폭력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비폭력주의자들은 논평으로 비폭력을 말한다. 그러나 성실히 일해도 품위유지는 고사하고 자존심도 유지할 수 없는 사람도 많다. 이런 사람들이 폭력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는 것이고 이런 사람들이 비폭력을 말하는 것은 정당하다. 이런 사람들은 하루 종일이 운동이고 싸움이다. 촛불시위에서 폭력, 비폭력을 말하는데 이런 사람들은 촛불시위에 나갈 수도 없다. 폭력의 현장에 충분히 자신을 노출시키고 난 다음에 비폭력을 말해야 한다.




목사나 교회에 대한 선택이나 비판에 대해선 먼저 예수정신이 살아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고 없다면 교회가 아닌 동네 가게나 마트다. 기독교 이전 예수님은 유대교시절 성전 안엔 지성소라는 하느님이 살고 있었음에도 인민을 억압하는 체제의 본거지였기에 벽돌 하나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라고 용기 있게 말씀하셨다. 교회를 잘 따져봐야 한다. 오히려 예수를 사칭, 빙자한 것이지 교회가 아닐 수도 있다.




옳고 그름에 있어서 모든 사람에게 다 옳고 다 그르고 다 선이고 다 악인 것은 없다. 한미FTA도 이건희나 극우파, 노무현이나 유시민처럼 개혁우파들에겐 이익이 되지만 그렇지 않은 쪽도 있다. 옳고 그름은 어느 계급, 계층에서 생각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국가전체를 내세우는 사람들의 생각과 성실히 일해도 자존심조차 세울 수 없는 사람들과 먹고 살만하고 문화를 향유할 만한 여유를 가진 사람에게 있어서 옳고 그름은 차이가 큰 것이며 별의미가 없다. 오히려 부각될수록 상황은 나빠진다. 개인의 선택이며 계급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편협하고 편향된 의견이다. 국민, 국가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선 정직하게 일하면서도 인간적 자존심을 유지하기조차 힘든 상황이다. 이것은 팩트다.




제도권 교육에서도 좌파 10년이라고 쓴다. 민주화는 자본화였을 뿐이고,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신자유주의를 가속화했을 뿐이고. 이런 곤혹스러운 상황에서 좌파가 경직돼있다고 하는 것은 문제다. 다른 가치가 존재한다. 좌파입장에서는 많이 과격한 게 아니다. 팩트를 말하는 것뿐이다.




주변에 존경하는 예수님 같은 존재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수많은 작은 예수들을 만난다. 실제 예수님은 너무 다양한 면모를 가지고 있고 포괄적이다. 즉 정치적 급진성을 가지셨고 차별받는 여성 편에 선 페미니스트시고 장애인들을 위로하고 소수자, 약자편이시고 특히 아동을 가장 높이셨고 이방인들에게 배타적이지 않으셨고 등등..에 부합하는 헌신적인 활동가들이 많다.




[예수전]을 쓰기 위해 많은 자료 연구를 하셨을 텐데 어디서 오는 통찰력이신가? 라는 질문에선, 순수한 탐구와 진실을 밝히고 접근하려는 진지한 태도면 가능하다고 본다. 삶의 현장에서 순수하게 길어 올릴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을 예수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은 나쁘다고 본다. 즉, 예수는 영성가였다라든가, 농촌공동체복원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예수가 그런분이셨다라든가, 예수 믿으면 축복 받는다라든가. 이런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진지하고 순정한 마음에서 해석하고 말씀과 행동을 잘 묵상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예수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은 나쁘다. 교회에 대해서나 예수론을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은 잘못된 역사 개념에 기대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규항 선생님은 자신의 독설에 대한 비판에 있어서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을 통한 묵상과 고민을 통해서 과격한 말, 행동을 위로받는다.




아이를 키우는 문제에 있어선, 우리 아이들이라고 작은 김규항이는 아니고. 어린이의 사회의식은 감당할 수도 참여할 수도 없고 정서적, 감성적으로도 결여돼 있다. 다만, 제국주의 문제나 불이익을 당하는 약자를 위한다든가 하는 것은 또래집단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모든 것은 아이들이 선택할 문제다. 아이들이 잘, 행복하고 풍요롭게 살기를 부모는 바라고 그렇게 살도록 도울 의무와 책임이 있다. 그러나 잘, 행복, 풍요가 뭔가? 라는 가치기준의 문제이고 여기에 어떤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다르다. 운전면허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학원을 다니는 사람도 있고 단번에 합격하는 사람도 있다. 여기에 학원을 다녔느냐 안 다녔느냐가 그렇게 가치판단이 들어갈 문제가 아니라 이것은 실용적 가치의 문제이듯이. 우리 아이들이 요즘 시대에 학원을 안 보내는 건 아이들을 희생시키는 것 아니냐도 같은 문제일 뿐. 아이들이 학교 수업으로는 수학을 이해하기 힘들다면 그 땐 학원을 다닐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교육은 자본주의 가치가 배어 있는 가치관의 문제고 고통과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선택의 문제다.




복음이 뭐냐? 라는 질문에, 기쁜소식.. 인문학 공부를 안 하고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이 가장 지적인 상태다. 최고의 지적 경지는 개념어가 들어가 있지 않은 상태다. 지적언어는 학술용어다. 그러나 개념어가 들어가 있지 않은 가장 쉽게 글을 쓰면 책을 통해 습득한 사람들은 불편해한다. 동네 아파트에서 평소에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과연 몇 명이 사용하는지 봐라. 그리고 젠더라는 용어를 제대로 이해하고 쓰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아마 1000명 중 한 명도 안 될 거다.




글을 통해 <내 안의 이명박>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내 안과 밖의 이명박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자기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지금 정부는 한국의 상태를 그대로 반영한다. 이건희 대 이건희를 욕하는 사람의 차이가 뭔가. 차이는 돈이 많고 적고 차이일 뿐이다. 삶의 가치관, 철학에선 차이가 없다. 이명박 정부는 쿠데타나 외부의 강제적 힘으로 된 정부가 아니다. 우리의 선택이고 지금 시대의 반영이다. 가장 인간적인 것은 다른 게 아니라 인간 본래의 모습, 하느님의 형상대로 만든 신성을 되찾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억압해선 안 된다. 온전한 개인의 변화가 중요하다. 체제가 변한다고 하느님의 나라 새로운 세상, 차별 없고 편견 없는 새로운 세상이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예수전]을 통해 영성만을 좇는 교회가 바뀌기를 바라고 예수님은 우리의 이분법적 사고로 나누듯 정치성과 영성성이 둘이 아닌 하나로 동시에 갖고 계셨다.




마무리 질문으로 정태춘 선생님의 질문인 새로운 세상에 대해, 너무 당연한 것을 회복하는 것. 새로운 세상이란 사람이 사람을 억압, 착취하는 것에서부터 벗어나는 것들이다. 러시아 혁명도 사실 쿠데타식 혁명론이었고 그 당시 그 사회의 반영이었고 그 통제 방식들에 세뇌돼 있는 구성원들의 내면은 계량할 수가 없다. 그것이 영성인데 겉으론 열심히 하나 속으론 얼마나 동조하는지 알 수 없다. 그 안에서 이중성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자발성에 기초해서 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기도하는 것이다. 내 안에 있는 것들을 은폐하지 말고 삶으로 열심히 싸우고 기도하고 동시에 해야 한다. 진정한 혁명은 종교적이다. 싸우고 기도하고. ‘영성 없는 혁명’, ‘혁명 없는 영성’이 아닌 온전한 개인의 변화가 우리사회에 지배적 형태가 될 때 새로운 세상이 가능한 것이다. 노동운동은 사람이 상품이 아닌 인간인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노동자의 권리, 임금, 생존권을 위한 투쟁도 중요하지만 노동자 자신을 더 상품화시키고 제값받기 운동은 될지 모르나 진정한 혁명은 아니다. 오히려 기득권에 부합하는 것이다. 제주도 늙은 해녀가 해녀복장으로 힘든 잠수를 하자 스킨스쿠버 장비를 이용하면 100명분을 할 수 있을 텐데 왜 안 하냐는 물음에 늙은 해녀가 말하길 그럼 99명은 어쩌냐는 답변에서 우리는 삶에서 가져가는 혁명성을 엿볼 수 있다. 우리 안에는 자본가들이 심어준 정서가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 안에는 혁명의 씨앗이 있다. 예수님이 기도하고 싸우는 영성 속의 정치성은 하나였듯.




이렇게 3시간 넘는 질문, 대답들이 오갔다. 잠시잠시 웃느라 붙잡지 못한 얘기들도 있고 잠시잠시 김규항 선생님 외모 감상하느라 핵심이 빗나간 것도 있으나 [예수전]책 속에 고스란히 있기 때문에 현장성을 살려 정리해 보았다. 가지 못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다.




김규항 선생님의 시기적절한 [예수전] 출간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질문에 대한 성실하고 유머 넘치는 답변이 무척 재밌었다. 알라딘의 단골 주 고객이면서도 이런 행사는 첨이었는데 너무나 유익했고 알라딘 주최 측에게 거듭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제 개인적인 감상으로 글을 마무리 한다면

종교화된 예수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세포의 부활이 아닌 예수님의 태도로 내 삶이 바뀌는 혁명을 매일매일 싸우며 기도로 가져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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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09.5.19 김규항과의 만남 후기
    from 서울비 블로그 2009-05-22 06:48 
    2009.5.20 / 합정 벼레별 카페 가져가는 것도 잊은 나는 애초에 책 내용에 대한 궁금증보다는 어떻게 생겼는지, 말의 억양과 앉은 품세는 어떠한지, 유머 감각은 어느 정도인지, 성량과 성대가 내는 색깔은 어떤지 등등이 더욱 궁금했었다. 그런데 평소 다소 딱딱했다고 생각했던 김규항의 이미지와는 달리 가보니깐, 생각보다 더 딱딱하다 (웃음). 목소리를 맺는 억양도 날카롭게 떨어지지 않고, 유머감각도 .. 글쎄요.. , 얼굴도 지식인처럼..
 
 
 

도로에서 꿈쩍도 않고 삼십분을 흘려보내서 

가지말까 가지 않으면 연락을 드려야 하나 고민하다가 

십분가까이 늦게 참석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가길 잘했다는 얘기죠. ㅎㅎ)

책을 완독은 못하고 13장까지 보다가 갔는데. ㅎㅎㅎ 

책속 내용과 더불어 규항님의 생각을 들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래서 구매결정. ㅋㅋ

그러나. 

가고싶은 사람 많으니 불참하면 꼭 연락달라. 

이렇게 홍보는 꼭 해놓고 바글바글 하는 사람들은 ㅡㅡ^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알라딘에 이벤트로 초청한 분만 참석하는 게 아니라 다른 루트로 초대한 분도 있으니

자리가 가득찰 것이다.정도 설명해주셨으면 좋았을걸 말이죠. 

암튼 직접 이야기 들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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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ngman68 2009-05-24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와 나 사이를 걷다'의 작가 김영식과의 만남.
 

지난 5월 15일 한홍구 교수의 강연이 있었습니다. 한홍구 교수는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로 국방부 불온도서에 포함된 대한민국史의 저사이며 최근 '특강 - 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이야기'란 책을 냈습니다. 

이번 강연은 이것과 관련되어 '군사주의와 불온도서를 통해 본 한국사회'라는 주제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군사주의와 불온도서는 어떤 관계가 있으며 그것이 한국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강연을 했습니다. 

최근 한국에 다시 '불온'이란 말이 얼굴을 디밀고 있습니다. 더불어 '좌빨'이란 말도 많이 쓰이고 있죠. 뭔가 조금만 다르고 튀면 좌빨이란 말이 아주 쉽게 붙습니다.

이러한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언제부터 좌빨이란 딱지를 붙이며, 어떤 책은 읽는 것 조차 하지 못하게 한국이란 나라에서 시작되었을까요?

우선 한홍구 교수는 요즘와서 다시 불온도서라는 말이 나왔는지 부터 되물었습니다. 
불온도서라는 말이 다시 나온 이유에 대해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말씀하셨는데요, 우선 긍정적인 면을 보자면 국민들의 문화가 많이 성숙했기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전보다 책을 많이 읽고 많은 문화를 접하면서 '똑똑해졌다' 는 것이죠. 그래서 예전처럼 국가에서 선전하는 것에 속지 않고 새로운 정보를 습득해서 판단을 해 나간다고 말하셨습니다.

이에 국방부의 높은 분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책들이 버젓히 군인들에게 읽히는 것이 못마땅했는지 그 책들을 불온도서로 낙인찍고 못읽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한홍구 교수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지금 윗자리에 계신분들이 읽었던 현대사에 관한 책들은 5공화국에서 주도해 만든 현대사 책이었다고 합니다. 이는 당시 한국 현대사연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의미하는데요, 한홍구 교수가 쓴 88년 독립운동사 논문이 한국인으로 최초였다고 하니 말은 다한 셈입니다.

금서는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요? 이에 한홍구 교수는 금서의 사회사를 이야기해주셨습니다. 금서는 아마 권력이 있을때부터 있었던것 같더군요. 아래의 책들은 한홍구 교수가 제시했던 예전 금서목록이었습니다.

성경, 도덕경, 수호지, 코란, 신곡, 데카메론, 군주론, 유토피아, 천로역정, 법의 정신, 에밀, 상식,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적과 흑, 종의 기원, 죄와 벌, 톰 아저씨의 오두막, 곤충기, 인형의 집, 아큐정전, 무기여 잘 있거라, 의사 지바고.....

정말 재미있는건 요즘 이 책들은 대학생, 혹은 고등학생 필독서이거나 교양인으로 읽어야할 책으로 선정되어도 손색이 없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옛날엔 금서였죠. 예를 들어 톰 아저씨의 오두막은 조금 알것 같습니다. 미국 흑인이 노예라는 신분에서 해방되기 전이라면 금서죠. 당시 미국인들의 관점에서 어떻게 동물과 같은 흑인 톰의 오두막에 놀러갈수 있겠습니까? 지금 이런 이야기하면 바보소리 듣기 십상이죠. 말하자면 권력을 잡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다수의 사람들이 새로운 사상이나 지식을 배워 눈을 뜨는 것을 왠지 두려워한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금서들이 선정 조건은 무엇일까요? 한홍구 교수는 몇가지 예를 듭니다.

금서
일본에서 발행된 <최신아세아요도>는 소련과 한국이 같은 색(분홍색)으로 되어 있어 판매금지 처분
<박정희 시대>는 월간지에 발표되었을때는 문제가 없었으나 단행본으로 출간하자 판매금지 처분
마르크스와 막스 베버, 마르크스와 막스의 발음이 같다고 하여 판매금지 처분
잘 판매되고 있던 책들도 시위하다 잡힌 학생의 집에서 나오면 판배금지 처분


금지곡
아침이슬/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 - 북한 찬양노래
행복의 나라/행복의 나라로 갈테야 - 한국이 행복한데 어디로 갈라고?
금관의 예수/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 잘살고 있는데 여기로 예수님을 왜불러?
거짓말이야/ 손동작이 간첩사인, 3선개헌과 맞물림
왜 불러/ 장발단속, 미니스커트 단속하는 경찰에게 하는 한마디(바보들의 행진이란 영화에 아주 잘 표현되어 있음)


뭔가 뚜렷한 이유가 없습니다. 뭐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군요. 금서 이외에도 필화사건-즉 글 쓰는 것을 박탈당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남정현의 <분지>나 김지하의 <오적> 등은 잡혀갈 각오를 하고 책을 썼다고 합니다. 그만큼 내용이 당시엔 읽히면 안되는 그런 내용이었겠죠.

이렇듯 국가에선 금서를 정하여 사람들의 눈과 귀, 그리고 입을 틀어막을 작정이었나 봅니다. 하지만 금서는 재생산됩니다. 무슨 말이냐구요? 한홍구 교수는 기자의 대량해직(동아투위 113명)과 제적당한 학생들이 생계를 위해 출판사를 차리거나 출판인으로 변신하게 된 것이 '금서'를 재생산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오히려 국가가 금서를 생산하도록 부축였다고 할까요? 돌베개, 한길사, 광민사, 형성사, 일월서각, 풀빛...등은 그때 만들어진 출판사들이라 합니다.

금서는 재생산되었지만 탄압은 계속됩니다. 전두환 정권은 1982년 이념도서를 해금한다는 조치를 발표했지만 그 도서들은 반공도서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작품들이었다고 합니다. 전두환 정권당시 언론인들에 대한 탄압(1천여명 해직)은 계속되었고 172종에 달하는 정기간행물이 폐간되었습니다.  특히 김지하의 시선집 <타는 목마름으로>는 사장이 직접 책을 작두로 자르고, 출판사는 세무사찰을 당하는 일도 있었답니다.

근데 웃긴건 아무리 금서로 정해져도 충분히 책을 구할수 있었다고 합니다. 때론 어떤 책은 금서목록에 올라서 오히려 책이 잘 팔려 재고를 처리해주기도 했다는군요.각주:1 일전에 한홍구 교수가 자신이 소속되어있는 평화박물관에서 '금서'라는 특별전을 했는데요, 그 책들을 어디서 구했는가 하니 자신의 책장을 조금 뒤져보니 다 나왔다 합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국방부에선 왜? 불온도서 목록을 만들었을까요? 앞서 이야기 한것보다 좀더 깊은 이야기를 들을수 있었습니다. 군인이란 직책은 많은 생각을 해선 안됩니다. 기본적으로 살인을 하도록 훈련을 받는 직책이기에 많은 생각을 하면 자신이 괴로워질수 밖에 없습니다. 군대에선 정훈교육을 통해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일사분란하도록 합니다. 또한 괴로운 사람들을 위해 군종-종교를 통해 보듬어줍니다.각주:2

재미있는건 이러한 분위기가 군대에서 끝나면 되는데, 국가전체로 퍼지는 것입니다. 한홍구 교수는 군대에서 배우고 몸에 벤 분위기들이 사회에 그대로 반영되어 국가 분위기가 하나의 병영과 같아진다고 하셨습니다. 70년대의 장발단속, 미니스커트 검사, 국기 하강식, 수업전 경례 등은 군대문화가 그대로 묻어있는 사회의 한 단면이었던 겁니다.각주:3 또한 한국 문화안에는 정말 많은 군대문화가 스며들어있다고 합니다. 아이들의 장난감, 군인과 정치가 중심의 위인전, 밀리터리 룩, 언어의 군사화, 초.중.고등학생의 극기훈련 등은 군대문화를 보여주는 또 다른 모습이라고 하네요.각주:4

군대문화가 스며든 분위기에서 남성은 군대가야 사람이 되었습니다. 말인 즉 엄격한 위계질서를 지키고, 선후배를 따지며, 힘에 논리에 쉽게 굴복하며, 하면된다라는 말도 안되는 정신 등을 배우고 나와서 그것들에 순응하는 것입니다.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인데, 이런 논리에 무너지면 안되는데 군대라는 곳에서 교육을 받고 일명 '사회인'이 되는 것이죠.

왜 금서를 만들었는지 결론이 나옵니다. 그들이 원하는 '사회인'을 만들기 위함이죠. 국민들이 더 이상 생각하고 똑똑해지면 윗분들이 피곤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이전에 배웠던 대로 지금의 학생들이 배운다면 윗분들의 통치는 쉽습니다만 그게 맘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국방부에선 금서를 만들고 반입을 금지해 읽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분위기에서 한국의 청년들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한홍구 교수는 '발칙한 상상력을 갖어라'라고 권유합니다.  최근 청년들의 모습을 보면 너무도 착하고 순한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발칙한 청년은 거의 없어보인다고 하셨습니다. 이에 지금 젊은 청년들에게 오히려 불온하고 발칙한 상상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역사의 진보는 늘 기성의 권에 대한 비판과 도전에서 비롯되었으니까요.

한홍구 교수의 강연회가 끝나고 박지웅 변호사의 강연도 이어졌습니다. 박지웅 변호사는 원래 육군법무관으로 '불온서적 헌법소원'으로 인해 징계를 받았으며, 현재 징계와 관련해 항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박지웅 변호사는 항소에서 승리하면 군으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군에서 잘못된 것들을 고치고자 했습니다. 뭐랄까 박지웅 변호사의 이야기를 들으니 왠지 한국 군대도 지속적으로 변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연은 늦게까지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많은 학생들이 중간에 나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인 바램이 있다면 앞에서 열심히 강연하시는 분을 봐서라도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었으면 합니다. 많은 준비를 해서 좋은 이야기를 더 들려주고 싶은 마음에 강연이 길어지는건 듣는 사람으로선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일이 아닐까 생각하네요.

아무쪼록 강연회를 마련해주신 알라딘과 한겨례출판사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수고해준 고려대학교 학생복지위원회분들도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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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번 국방부 불온도서 목록으로 인해 많은 책들이 팔렸습니다. 각 서점들은 '국방부 불온도서 목록' 코너를 신설해 책을 팔 정도였습니다.

2. 이에 대해 한홍구 교수는 많은 불만을 토로하셨는데요, 군종이 존재하는 것이 넌센스라고 하셨습니다. 살인을 금하는 종교에서 살인하는 군인들을 위로한다는 것이 넌센스라는 것이였죠. 또한 한국에서 병역거부를 하는 종교는 특정종교 하나밖에 없는데 이것 또한 넌센스라고 하셨습니다. '특정 종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들도 살인을 금하는데 왜? 한국에선 '특정종교'만 집총거부를 하는지 이해할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3.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4. 요즘은 모르겠지만 제 어린시절 위인전은 군인이나 정치가가 많았습니다. 맥아더, 박정희, 워싱턴, 장제스....휴. 또한 극기훈련은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어이없는 것이었습니다. 산에서 야영하며 텐트를 치는 보이스카웃 같은 것이라면 모를까? 이유없이 어린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얼차려를 받는 건 이해할수 없는 것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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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보 2009-05-20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세시간 가까이 이어진 강연을 하나도 빠짐없이 정리해주셨네요.
저는 독자로 갔다가, 이번주부터 한겨레출판에 나오고 있는 신입사원이에요
그 날 고려대 학생복지위원회에서 일을 열심히 하셔서
전 그저 포스터 붙이는 일만 도와드리고
강의 편하게 듣고 왔었죠.

아직 기획중이지만 특강은 후속 시리즈가 나올 예정이랍니다. (기대기대 >.<)

AdishNinsol 2009-05-20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좀 일찍 갔는데 그때 일하고 계신 분들중 한분이셨군요. 정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
계속 기대하겠습니다~ ^^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16일 토요일, <효재처럼 살아요>의 저자인 효재님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생각보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움직이기 불편했지만, 우산쓰고 걷는것도 나름 운치가 있어서 좋았답니다. 특히 성북동의 집!!! 드라마에 나올법한 집들이 즐비하더군요. '아~~나도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 혹은 '아~~이런데 사는 친구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감탄하며 오르막길을 올라 갔답니다.

 

일찍 간다고 갔는데도 미리 도착한 분들이 쭉 앉아 계시더군요.
효재 선생님이 이미 도착한 분들과 즐겁게 얘기를 나누고 계셨어요.

 





사진이나 화면에서 뵐때보다 훨씬 더 젊고 고운 모습이셨습니다. 들어가기 전에 신발을 벗고, 한쪽에 가방을 벗어놔야했어요.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씀해 주시더군요.



"신발을 벗는다는 건 무장해제 한다는 겁니다. 그 다음 한쪽에 갖고 온 백을 모으는 것이지요. 누군가 방문을 하더라도 신발과 백을 보면 행사가 있다는 것으로 생각하고 방해하지 않습니다."



1부는 여러가지 소소한 일상을 나누며 떡볶이를 먹는 것이였어요. 맛있는 떡볶이를 만들어 주셨는데 먹을 때 지켜야 할 몇 가지 규칙이 있었답니다.

"젓가락을 아무데나 놓는 건 보기 좋지 않아요. 접시를 손에 받친 뒤 젓가락을 놓을 때는 가운데 손가락에 끼어 주세요. 한꺼번에 너무 많이 뜨는 것보다 두세개씩 떠서 자주 왔다갔다 하는게 보기에도 좋고, 만든 사람에게도 기분 좋게 보입니다."


 


그래서 말씀대로, 차를 마실때는 젓가락을 가운데 손가락에 얌전히 모셔(?)두었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아무데나 젓가락을 놓는 것보다 훨씬 깔끔하고 보기 좋더라구요^^

 비가 오지 않았다면 마당에 나가서 먹을수도 있었을텐데, 아쉽게도 그러지 못하고 대신 바깥경치와 비를 구경하면서 떡볶이를 즐길 수 있었답니다. 간단한 간식시간이 끝난 뒤에는 효재네를 마음껏 구경할 수 있었어요.

 


























 







선생님의 고무신도 신어보고 비가 오는 마당을 거닐어 보기도 하면서 효재네를 마음껏 구경했답니다. 여기저기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을 보니 제 마음까지도 정갈해지는것 같더군요. 순간, 어지러운 제 책상이 떠오른 이유는 뭘까요(ㅠ.ㅠ)

 

책 속에 등장했던 인형들이 보이자, 어찌나 반갑던지 카메라에 정신없이 담았답니다.

 






















효재네 집구경이 끝나고 2부 행사로 보자기 싸는 법에 대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보자기를 쌀 때, 머리가 너무 어지러우면 안된다고 해요. 그래서 정갈하게 머리를 묶는 법을 알려주셨답니다.  







(더운 여름에 저도 꼭 저렇게 예쁘게 머리를 땋아봐야겠어요^^)
 
보자기로 예쁜 백을 만드는 법을 배웠습니다. 생각보다 쉬웠지만 너무나 예쁜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답니다. 유일한 어린이는 선생님이 너무 예뻐하셔서 보자기백을 만들어 선물로 주기도 하셨답니다.(그 순간 어린이가 되고 싶었답니다;;)




















 

책이 대박나면, 가을즈음에 마당에서 고기 구워 먹자고 웃으시면 말해주시던 선생님. 소박하지만 정갈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버렸답니다.  


생활 속 작은 것에도 예의범절이 있고 쓰임새가 있는 걸 알려주셔서, 많은 걸 배우고 많은 걸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아직 선생님처럼 조근조근하게 정리하고 살림을 정리할 자신은 없지만, 언젠가 저만의 보금자리를 만들면 꼭 선생님이 알려주신 방법을 써봐야지...라고 생각해봤답니다.
 
비가 오는 주말이였지만, 비까지도 사랑스러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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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9-06-01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까지도 사랑스러웠다는 그 행복한 맘이 읽는 이로 하여금 너무나 행복하게 합니다.
너무 이쁘고 사랑스러운 곳 경험하셨군요..부럽네요..
저 이 책 읽는 내내 효재네 마실가면 참 좋을것 같다고 혼자 중얼중얼했던기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