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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 누구로부터인지도 인식되지 못한 채, 어느새, 어딘가에서, 누군가로부터 전해져 머릿속에 자리잡은 생각들이 있다. 그것들은 때로는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규범과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내 머릿속에 살면서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하게 하는 잣대 노릇을 당당히 하고 있다.  그것이 정해놓은 범위안에서는 모든 것이 정상으로 문제없이 흘러가지만, 그 경계를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비정상'으로 낙인을 찍고 뭔가 모를 '불편함'을 느끼게 만든다. 놀라운 것은 모든 사람이 동일한 그것들을 가지고 있기에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대상은 금새 모두로부터 '소외'되고 만다.  

< 3xFTM >이라는 이 다큐영화는 바로 그것들에 대해 질문을 하게 만든다. 출처도 알 수 없는 생각에 나는 왜 이렇게 익숙해져 있었던 것일까? 왜 당연한듯 받아들이고 있었을까? 왜 그 기준에 벗어나는 것들에 나도 모를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을까?   

다수가 가진 기준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에 대해 다양성을 인정해야 된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 한켠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저도 모르게 거리를 두는 경험을 누구나 한번쯤은 해보았을 것이다.  나 역시 고등학생 시절 동성의 친구로부터 우정 이상의 감정을 전해받은 적이 있었다. 친구에게 상처가 될까봐 내색은 못했지만 너무 당황스러웠고 조금은 두려운 느낌까지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나는 왜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어렸기 때문에? 그것은 아닐 것이다.  사회적 관념과 인식이라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어쩌면 더욱 견고한 위치를 차지해 가는 것 같으니까. 

다시 한번 질문을 해본다. 도대체 그 사회적 관념과 인식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다수가 가진 기준은 무엇일까? 그것들이 항상 옳은 것일까? 추상적이면서도 너무나 구체적인 그것들은 누가 정한 것일까? 

영화를 돌이켜 본다. '여성성과 남성성'은 대체 무엇일까? '여성다움'과 '남성다움'은 과연 무엇일까? 분홍색은 여자의 것, 하늘색은 남자의 것, 인형은 여자의 것, 로보트는 남자의 것. 하나하나의 사물에까지 적용되는 그 여성과 남성은 도대체 누가 정해놓은 것일까?  

누구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모두에게 너무 자연스러운 것들이, 또 다른 어떤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못할수도 있다. 이 영화 속의 세명의 주인공들이 바로 그러하다. 언제, 어디서, 누구로부터인지도 모르나 모두가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전혀 문제되지 않는 것이, 주인공들에게는 너무도 커다란 문제이며 그로인해 그들에게 아픔과 슬픔이 된다.  

남자는 1번, 여자는 2번이라는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어떠한 문제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그것이, 삶의 커다란 장애가 되는 사람들.  남자와 여자의 신체는 다르다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때문에, 늘 긴장하고 움츠리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  영화를 통해 내가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마 그들이 겪어왔던 수 많은 어려움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 '당연함'때문에 '비정상'이 되어야 했던, 그래서 자기 자신을 긍정할 수 없었던, 그래서 너무도 힘들었던 그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사회가 들이미는 잣대때문에 자기자신을 긍정하지 못하는 사람들..  

어쩌면 떠올리고 싶지도 않았을 이야기들을 끄집어내고, '다수'라는 사람들에게 먼저 손을 내민 그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평생을 숨기며 조심스럽게 살아온 이야기들을, 불안과 긴장을 안고 살아온 시간들을 들려준 그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어쩌면 너무 상투적인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여러분은 틀린 것이 아니라 그냥 조금 다른 것일 뿐이라고.  

"부모님께서 이혼하셨어요"라는 말이 도저히 입 밖으로 소리낼 수 없는 힘든 이야기였지만,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색안경을 끼고 말한 이를 바라보게 하는 이야기였지만, 지금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이해받는 것처럼, "나는 FTM이예요"라는 말 또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이해되는 날이 올 거라고. 

그리고, 스스로 당당하고 행복해지시길 바란다고. ^^

덧붙이기. //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해준 영화, 너무 아름다우시던 감독님의 말씀, 정말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  그리고 개인적으로 백가흠 작가님을 직접 뵙고 싸인까지 받을 수 있어서 또한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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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목요일, 이 강연을 듣고 느낀 것들 중 지금 생각나는 것 하나.  

바로 우리는 희망하기 위해 절망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그가 존경하는 한승원 작가님의 작가의 말이라며 소개해 준 구절이 있다. 

화가들이 데생하는 것을 보면 놀라운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어두운 면을 그리면 밝은 면이 자동적으로 드러나게 되면서 그림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이 시대,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통해 우리는 밝은 면이 드러나게 되고 그 밝은 면에서 희망을 찾는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통일 후의 상황들,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라 과학적 사실에 근거한 절망적 상황이라는 것을 이응준 작가는 강조했다. 사실, 강연을 듣기 전에는 참 잔인하다고만 생각했지, 그것이 과학적 사실에 기반해서 통일 한국의 실제 모습이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아니 상상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자신 속의 방어기제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기피했을지도 모를일이다. 언젠가 통일된 한반도의 모습을 그려는 보았겠지만 참담함은 외면하고, 민족의 소원을 이룬 감격적인 면만 보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의 그 감격적인 순간만을 보는 버릇을 무참히 깨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진정 그 감격적인 순간을 맛보기 위해서는 기꺼이 환란을 감내해야 한다고 말한다. 환란, 그 끝없는 어둠 속에서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을 심기를 주문한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 모든것이 평온한 상태에서 그 질문은 간절해지지가 못한다. 환란, 내 모든 것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절박하게 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란으로 다시금 태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데생의 어두운 면에서 밝은 면이 저절로 드러나는 것처럼. 

어쨌든, 이 강연을 통해서 환란의 희망적 의미, 즉 남북 통일의 현실이 어두울지라도 그것을 감내해야 하는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가장 큰 소득이었다. 결국 이 책에 나오는 구절처럼 통일이 되어 우리는 불행할 지라도, 나는 너를, 너는 나를 만나서 좋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보다 통일 후 우리 앞에 닥쳐온 현실은 훨씬 잔인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운명의 주인은,  혹은 국가의 주인은 누구인가. 라는 근본적 물음의 지속적인 제기는 결국 밝은 면을 드러낼 것이다. 그 환란의 시기가 언제까지인지는 약속할 수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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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도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경제가 정치와 묶여서 정치•경제라는 이름으로 한 과목을 형성했다. 그 당시에 정치나 경제는 따로 떼어서는 1학점도 되지 못하는 그야말로 비중도 낮고 재미도 없는 과목에 불과했다. 하지만 경제학이라는 학문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접한 몇 권의 책은 정치와 경제가 한 과목으로 묶어져 있어져 있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란 생각이 들게 했다. 경제활동이란 것이 “합리적인 인간의 선택”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결국은 그가 할 선택은 그가 사는 세상이라는 환경 속에서 일어날 수 밖에 없고, 그의 환경을 결정하는 국가의 정책, 정치적인 성향은 경제활동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 중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정치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면 정책과 경제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들었던 아쉬운 점 중 하나는 우리나라에서는 현실에서 발생하는 정책을 경제학의 관점에서 토론하는 문화가 너무도 부족하지 않나 하는 점이었다. 사실 만성적인 젊은 층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상당부분 우리의 정치가 이념논쟁의 장이 되어버린 탓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국가의 정책을 경제적 관점에서 토론하는 문화가 형성된다는 것은 그만큼 젊은 층이 정치 혹은 정책에 대해 고민하고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재테크에 관련한 책들이 넘쳐나는 반면, 우리나라의 과거부터 현재의 이르는 정책들을 경제학의 관점에서 이야기 하고 분석하고 비판하는 그런 류의 책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국가라는 경제기반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할 때 재테크 책을 아무리 열심히 파고 든다해도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반을 다지는 일에 우리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랬기에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우리나라 최고의 주류 경제학자인 이준구 교수가 바로 지금, 비판이 곧 색깔논쟁으로 변절되어 버리는 이런 때에 한국 경제문제에 대해 논하는 책을 출간했다는 소식은 너무 반가운 것이었고, 책 출간과 더불어 개최되는 독자강연회에 참석하고 싶은 마음은 당연히 클 수 밖에 없었다. 그의 강연회가 기다려졌던 것은, 부동산 시장이나 주식시장의 변화가 궁금했기 때문도 아니고, 앞으로 환율이 어떻게 될지 혹은 경기 회복은 언제쯤 될지 알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물론 그런 점들이 나역시도 궁금하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제학자들 중에 실제로 부를 제대로 축적한 이가 몇 명에 불과하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실물경제에 대해서 경제학자가 내놓을 수 있는 대답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그로부터 내가 정말 알고 싶었던 것은 내가 발 디디고 사는 바로 이곳 한국에서 나에게 주어진 선택을 올바르게 하기 위해서, 다시말해, 경제학에서 전제하는 합리적인 경제주체가 되기위해서 내가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였다. 

경제학은 선택의 학문이다. 경제학에서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끊임없이 선택하는 존재이며, 그런 이기적 선택이(합리적이기만 하다면) 사회의 이익에도 양의 효과를 낸다는 것이 자유시장경제론의 기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기적이기는 하나, 합리적이지는 못하다는 사실, 다시 말해, 자신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못하는 어리석은 존재라는 사실 때문에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기에 충분히 이기적이지만, 충분히 현명하지 못하다는 그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는가가 결국 내가 경제적인 주체로 옳게 행동할 수 있는가에 대한 관건이 될 것이다. 적어도 옳은 선택(도덕적인 의미일 수 있지만, 여기서는 경제적인 의미가 더 크다)을 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현재 일어나는 수많은 정책이 우리에게 과연 어떤 기회비용을 요구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그것들이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 손해가 되는가 하는 바로 그런 문제 말이다.  

이번에 이준구 교수께서 출간한 [쿠오 바디스 한국경제] 책에서는 교육, 한미 FTA 협정이나 마약, 도박에 대한 문제, 혹은 십부제 이야기등 다양한 사회 이슈들에 대해서도 논하고 있지만, 강연회에서는 현 정부의 주된 공약 747공약, 그로인한 대운하 사업이나 녹색뉴딜 그리고 이제 거의 숨이 끊길 지경에 이른 종부세 이들 문제에 대해서 주로 강의하셨다. 이러한 문제들 역시 책에서 훨씬 더 자세히 다루고 있으며, 특히 종부세의 경우, 책에서는 거의 절반 가량의 내용을 차지함에도 오히려 강연회에서는 상대적으로 짧게 다루어졌는데, 앞의 두 가지 문제가 아직 진행중인 앞으로 훨씬 더 나빠질 가능성이 있는 문제들인 반면, 종부세는 자신의 책에서 “종부세여, 안녕”이라고 고할만큼 이미 너무 만신창이인 상태로 회복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바로 이 종부세 문제에 대해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책을 통해서 좀 더 깊이 접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 문제만큼 이론에서 합리적 주체라고 가정하는 인간이 얼마나 합리적이지 못할 수 있는지여실히 보여주는 예가 없기때문이다.   
  

이준구 교수는 강의 중간 지금 현상황에서 정책적인 문제에 있어 개인 특히 젊은 층이 개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지 않은가 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렇다면 책을 쓰고, 강연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처음에 이야기 했지만 경제학은 선택에 대한 학문이다. 각 개인은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해야 하는데, 문제는 많은 경우 합리적인 선택, 다시 말해 자신을 위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정부나 언론이 특권층의 이익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무엇이 옳은지 감추는 경우도 있고, 또 옳은 판단을 하기 위한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유야 어떻던 자신을 위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의사결정은 잘못된 정책을 낳고, 그 결과 사회는 더 큰 문제를 잠재하게 되고, 더 이상 문제가 잠재되어 있을 수 없을 때, 커다란 혼란을 맞게 되는 것이다.  


이미 완숙단계에 다다른 한국 경제성장률을 7%로 끌어올리겠다는 공약으로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당선된 현정부의 과도한 자만심은 무리한 경제 정책을 나았고, 미국발 경제위기가 닥치기도 전에 이미 한국경제기반을 취약하게 만들고 말았다. 아마도 성숙단계에 이른 국가 경제의 성장률을 7%로 만든다는 것이 극단적인 처방없이는 불가능한 것이고 그러한 시장에 대한 인위적인 개입은 자칫 더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국민의 절대적 다수가 현정부를 지지했을까? 마치 악한 세금의 대표인 듯 한 종부세가 사실 전체 국민의 2% 정도에게만 부과되는 반면, 그로 발생된 국가의 세입은 사회의 소외계층 혹은 다른 부분에 투입될 수 있고 또한 부동산 투기에 대한 효과는 다른 어떤 세금보다 클 수 있으며, 몇 가지 추가적인 손질 만으로 예상되는 부작용 중 상당수를 상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이명박 정부가 지난 1년 남짓한 기간동안 한 가장 좋은 정책 중 하나가 이 종부세 등 세금 감면을 행한 것이라는 설문결과가 가당키나 했을까? 해당도 되지 않는 종부세(해당이 된다면 오히려 이익이 되는)의 폐지를 스스로 반겨함으로서 부동산 폭등이라는 잠재적 위험 요소를 품고 살아야 하는 서민들, 만약 예정데로 실시된다면 대운하로 파괴된 생태계에서 어떤 위기가 닥칠지 모른채 살아야할 우리들은 우리 앞에 놓인 그러한 문제들의 기회비용가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이익들을 제대로 알고 비교했다면 그때도 우리는 똑 같은 선택을 할까? 분명히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천상 학자인 그가 더 이상 사회문제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신이 무엇을 선택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선택을 해야할 당사자 앞에 모든 정보를 풀어내 알려주는 것, 적어도 선택을 하는 개인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선택의 기회비용이 무엇이 될 것인지 알게 될 때 분명 지금과는 다른 선택이 있을 것이고, 그런 선택들이 모인다면 사회 전체가 오른 쪽이 아니라 옳은 쪽으로 가도록 하는 힘이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램이 학자인 그가, 블로그와 신문의 칼럼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려하고 결국 책을 내고 강연까지 나서게된 이유가 아니였을까?

앞으로도 자주 이런 기회를 만드실 것이냐는 독자의 질문에 학자는 강의하고 연구하는 것이 본연의 임무이며, 그렇기에 그런 기회는 자주 없을 것이라고 답하셨다. 학자로서 그의 신념을 존경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러한 토론 문화가 너무나도 부족한 우리 현실을 생각할 때 그의 그런 신념은 안타깝기도 하다.

나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의 그의 책을 읽었으면 하고 바란다. 수많은 정책들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충분한 고려 끝에 자신에게 가장 옳은 선택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자신이 치뤄야 할 기회비용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이루어진 선택으로 고통스런 결과를 감내하며 살지 않기를 바라고 그렇기에 우리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그와 같은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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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들이 보기에는 다소 유치할 수는 있지만 나는 항상 책을 구입한 후 맨 앞 장에 간단한 소회나 다짐을 써두고는 한다. 정욱식 선생님 책은 출간 소식을 익히 매체를 통해 알고 있었기에 출간 직후 바로 구입을 해서 읽기 시작했다. 그 때 앞에 적어두었던 말은 거창하게도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였다. 
 

2.  

 400여 페이지에 이르는 책을 단숨에 독파한 후, (이것은 내 집중력보다는 정욱식 선생님의 글 솜씨 덕택이다) 한반도의 상황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볼 수 있었다. 그러나 한 번 읽고는 이해하기 힘든 여러 개념들(ex : 조선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비핵화의 구분, 비핵화와 비확산 등), 미국, 중국, 러시아, 중동, 그리고 이라크에서 아프가니스탄까지 넘나드는 그의 책을 따라가기가 ‘살짝’ 버거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직접 저자의 목소리를 들어볼 겸, 더 솔직하게는 이를 계기로 다시 한 번 책을 꼼꼼하게 읽어보자는 생각으로 강연회 신청을 했다. 운 좋게 당첨이 되어서 드디어 5월 20일 상암동 누리꿈스퀘어에서 열리는 정욱식 선생님 강연회에 다녀올 수 있었다.

강연회의 내용 구성은 기대와는 달리 사실 책 내용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이를 책의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3.  

  우리는 흔히 경제, 즉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간과하는 평화의 문제는 말 그대로 ‘죽고 사는’ 생존의 문제이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분단된 한반도의 상황을 문제 대상으로 삼는다. 하지만 지금까지 수많은 논의들은 지나치게 한반도 문제를 남과 북의 문제로만 바라보았고, 밖으로 시야를 넓히더라도 그것은 동아시아의 문제, 혹은 북한과 미국의 문제로서 접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도 복합적이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현재의 세계의 문제는 안의 시각으로든, 밖의 시각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문제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데 있어서는 안과 밖을 아우르는 세계적 시각이 필요한 것이다. (정욱식 선생님은 이를 거대한 그물망network을 읽어내는 시각이라고 표현하셨다.)
 

  그런 의미에서 우선 오바마의 미국은 분명히 한반도 문제 해결에 있어서 새로운 변화의 출발점이다. 정욱식 선생님은 부시 정권의 ‘미국 예외주의’와 대비되는 오바마 정권의 ‘스마트 파워’를 제시하면서 오바마 정권이 정말 부시와는 달리 큰 변화를 이루어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과연 오바마 정권의 여러 외교 정책들이 구체적인 결실을 내놓을 수 있을 지에 대해서 선생님은 비관적인 입장을 취하셨다. 오바마의 정책이 외교적 수사가 아닌 현실적인 성과를 내기는 사실상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외교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쌍방향이 함께 이루어가는 것인데, 오바마의 미국이 아무리 담대하게 바뀐다고 한들, 그것이 타방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지 없는 지는 기본적으로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최근 이란의 사례, 미국의 NATO군 증파를 거절한 유럽의 사례에서도 이는 잘 드러난다.)
 

  또한 설령 미국의 새로운 외교 정책이 지금까지 ‘불량국가’인 이란이나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낸다고 한들, 전통적 우방이었던 중동의 이스라엘이나 동아시아의 한국, 일본의 반대를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역시 매우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부시 정권이 야심차게 시작했으나 결국 정권 몰락의 결정타가 되어버린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은 현재 오바마 정권의 외교력을 무의미하게 소진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제부터 강연회의 묘미는 시작된다. 이렇게 비관적인 분석 중에도 정욱식 선생님은 희망을 잃지 않는다. 물론 세계 정치적 삶을 살고 있는 지금 시대에 세계 정치의 수많은 외부효과들이 한반도 상황에 악영향을 미쳐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중에는 긍정적 외부효과들도 있었다. 이라크인 들에게는 참혹한 비극이지만, 이라크 전쟁의 장기화는 네오콘의 몰락을 가져왔고, 이로써 북한은 핵 실험을 하고도 오히려 케리가 아닌 ‘부시’ 정권과 대화를 지속할 수 있었고 6자 회담을 성사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를 좀 더 나아가보면, 한반도 문제의 해결은 전 세계적으로 ‘긍정의 나비 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012년 체제를 고민하는 것은 실천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2012년은 이 지역의 정치질서가 요동치는 해이다. 미국에서는 오바마의 재선 도전이 확실시 되는 대선이 있고, 중국에서는 후진타오 이후의 시진핑 체제가 첫 출발을 하는 시점이다. 또한 대만의 총통선거도 2012년이다. 한국에서는 대선과 총선이 맞물리며, 한국전쟁 당시 넘어간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 받게 된다. 북한에서는 포스트 김정일 체제가 구체화되고 내부적으로 2012년은 김일성 탄생 100주년이자, 김정일 탄생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러시아에서는 메드베네프 이후 푸틴이 다시금 대선에 도전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렇게 겹칠 수 있을까. 이를 포착해낸 저자의 혜안이 돋보인다.)
 

4. 

   

  이 때 만들어지는 질서가 정말 책 말미에 나오는 것처럼 평화 한반도의 첫 단추가 될 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거대한 그물망 시대의 외교는 서로 마주보고 두는 체스라기보다는 마치 결과를 쉽사리 예측할 수 없는 ‘사다리 타기 게임’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강연회를 마치고 후기를 쓰는 그 짧은 기간 와중에도 북한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2차 핵실험을 강행했으며, 한국 정부는 상대적으로 미국이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데 반면, PSI에 전격 참여를 결정해 맞불을 놓았다. 북한의 핵 실험이 무엇을 목적으로 한 것인지, 그것이 추구하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 면밀히 분석하고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기보다는 단기적인 보복성 화풀이 정책에 급급하다. 한반도 문제가 다시금 어려움에 빠지고 있다.

  이 강연회를 통해 나는 이렇게 상황이 긴박하고, 급박할수록 거시적으로 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시야가 중요하다는 소중한 문제의식을 배울 수 있었다. 현재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끊임없는 악무한으로 빠지게 하는 힘 대 힘 정책이 아닌 진정으로 한반도 평화 체제의 기틀이 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이 강연회의 참여했던, 그리고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고민해야할 숙제로 남았다. 

 

5. 
 

  강연회를 마치고 저자 사인을 받기 전, 책 맨 앞 장에는 새로운 구절이 하나 더 조심스럽게 추가되었다. 그리하여 최종 구절은 다음과 같았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그리고 세계를 위해서”

 

사족

정욱식 선생님 강연은 오마이뉴스에서 동영상으로 서비스되고 있다. 책을 읽지 않았거나 사정상 강연회에 참여하지 못한 분들은 동영상을 통해 정욱식 선생님을 만나고, 또 2차 북핵 실험에 한국의 전격적인 PSI 참여로 날로 우울해져 가는 한반도에 대해 고민해보고 대안을 암중모색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바쁘신 와중에 좋은 강연회를 해주신 정욱식 선생님과 강연회와 즐거운 뒤풀이까지 좋은 기회를 준 알라딘에게 감사를 전한다. 

 

1부 - 저자 강연회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mov_pg.aspx?cntn_cd=ME000059629)

 

2부 - 저자와 청중의 대화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mov_pg.aspx?cntn_cd=ME000059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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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사회에 발을 내딛은 나는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새삼 실감하고 있다. 계산된 호의, 진심으로 다가갈 수 없는 거리감 그리고 위선의 가면.

'나쁜 자석'의 주인공인 민호, 은철, 봉구 역시 그렇게 변해갔다.

단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세상 무서울게 없었던 어린 시절은 추억 속에 묻히고

어느새 그들은 너무 쉽게 친구를 평가하고 속이고 비난하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런 세 명의 앞에 나타난 우울한 얼굴의 원석.

원석은 누구보다도 타인에게 가까워지길 원했던, 연약하고 순수한 영혼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갈망하면서도 한편으론 두려워 했기 때문에

자신의 억눌린 감정을 동화를 통해 표현하였다.

하늘 정원. 그리고 나쁜 자석.

나쁜 자석은 바로 원석 자신의 이야기다.

아무리 다가가려고 해도 서로를 밀어낼 수밖에 없는 '좋은 자석'.

그래서 '좋은 자석'은 '나쁜 자석'이 되기로 결심한다.

나쁜 자석이 되면, 그렇게 되면 분명 타인에게 다가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나쁜 자석이 선택한 것처럼 원석 역시 자살을 선택한다.

비록 죽더라도 타인에게-민호, 은철, 봉구에게 영원히 기억 될테니까.

비록 죽더라도... 비로소 타인에게 다가갈 수 있을 테니까.

그의 깊은 외로움이 내 마음 속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 원석을 두고 민호, 은철, 봉구는 격렬하게 다툰다.

원석이라는 존재를 세 사람은 완전히 다르게 기억하고 평가한다.

인간 관계가 어려울 수 밖에 없는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이것인지도 모른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갈등하고 상처받는다.

그들의 갈등이 최고조에 치달았을 때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꽃 비'가 내린다.

원석의 동화 속에 나왔던 '하늘 정원'.

그것은 어린 시절의 순수에 대한 향수였고 동시에 아픔이었다.

마치 모든 것을 용서하고 치유하려는 듯 끊임없이 흩날리는 꽃 비.

한편으론 흩날리는 꽃잎이 산산조각난 어린 시절의 꿈으로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 사이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 어린 원석이 모든 것에 대한 답이었던 것 같다.

문득 내가 죽으면 착한 귀신이 되어 돌아올거라던 원석의 말이 떠올랐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만큼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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