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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분토론, 칼라TV의 꽃미남(?) 리포터…

평소 거침없는 솔직한 언변으로 무장한, 진중권교수를 설명할 수 있는 말들이다.

지난 22일, 마포구 상암동 누리꿈스퀘어 비즈니스타운 18층에 위치한 오마이뉴스 스튜디오에서는 진중권 교수의 강연이 열렸다. 바로 <미디어아트> 책 발간 기념으로 열린 '예술의 최전선, 미디어아트의 세계' 라는 주제를 가지고 열린 특별 강연이였다.

 

 


대중은 '소통'하고 싶어한다
TV, 신문, 라디오 등 다양한 매체가 존재하지만 예전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일방적으로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최근의 대중들은 적극적으로 미디어와 소통하고 싶어한다.

진중권교수는 본인이 대활약한 칼라TV의 예를 대표적으로 들었다. 칼라TV의 카메라가 현장을 보여주면, 대중들은 그 화면을 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저 쪽도 보여주세요!", "저 사람과 인터뷰해주세요!" 하고 요구하기에 이른다. 미디어가 보여주는 화면을 대중들이 바꾸고 싶어하는 것이다.

특히 진중권교수는 본인을 게임 캐릭터에 비유하는 재미있는 예를 들기도 했다. 화면에 있는 리포터 진중권교수는 어찌보면 게임상의 캐릭터라는 것이다. 그가 이렇게 움직이고, 저렇게 움직이는 것을 대중들이 조종하고 싶어하며 특별한 상황에서 진중권교수가 화면에서 사라지면 결국 게임 캐릭터가 실종된 것이기 때문에 대중들은 초조해한다는 것이다. 매우 독특하고 재미있는 예시였던 것 같다.

어찌보면 매우 철학적인 주제, 진중권교수만의 유머러스함으로 부드럽게 풀어가
'미디어아트', 생소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막상 알고보면 우리 삶 속 깊숙이 이미 스며들어와 있는 것이 바로 미디어아트 이다. 현재의 미디어아트를 설명하기 위해 고대 인류의 예술부터 설명하기 시작한 진중권교수는 특유의 유머러스함으로 강연을 부드럽게 풀어나갔다. 강연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준비해오셨던 PPT 및 이미지 자료들은 강연 참가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미디어아트는 현실세계에서부터 접근해야 한다
미디어아트라는 예술을 단순히 '창의적인' 것에서만 파고들려고 해선 안된다. 현실세계와 동일한 상황에서 약간의 변화가 강한 임팩트를 살려주는 것이 바로 미디어아트의 묘미라는 것이다. 강연과 함께 예시자료로 보여주신 일본작가의 작품은 10년 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촌스러움이 없었다. 이는 현실과 결부된 상황에서 약간의 변화가 작품을 보는 이에게 신선함을 던져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미디어아트'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 촉구
미디어아트라는 것이 "미디어아트 분야를 일으켜보자!" 라고 다짐하고 무작정 삽질만 한다고 해서 미디어아트가 갑자기 발전할 수 있는 분야는 결코 아니다. 끊임없는 연구와 분야의 벽을 넘은 다양한 지식의 결합, 꾸준한 관심이 있어야 비로소 '미디어아트' 분야에 발전이 올 수 있는 것이다. 예술이라고 한정짓고 예술가들만 연구에 매진해서 되는 분야도 아니고, 예술분야라고 해서 결코 이론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론이 탄탄한 가운데 예술이 탄생해야만 완성도가 높은 예술을 창조해낼 수 있다는 것이 진중권교수의 예술분야 발전에 대한 견해였다.

당연한 말이지도 모르나, 우리는 어느순간 부터인가 이론은 고리타분한 것이라 치부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무조건 결과가 나와야 하고, 그 결과는 당장 이윤창출과 연결될 수 있어야만 멋진 작품이라고 생각해버리는 요즘 사회의 모습은 왠지 슬프기까지 하다. 진중권교수는 적어도 '미디어아트' 강연에 참석한 사람들 만큼이라도 '미디어아트'에 꾸준한 관심을 가져주기를 촉구했다. 꾸준한 관심 없이는 그나마 지금까지 연구해온 미디어아트마저 무너질 위기라며 현재 우리 사회에서의 예술에 대한 경시풍조를 경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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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 2009-06-28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컥~ 이 글 제 블로그에 썼는데.. 다음뷰 베스트 종합2위로 올라갔네요~~!! ^^(이런거 처음되보는데....^^;;;;;)
진중권교수님의 인기를 새삼 실감해보며.. ㄷㄷ
http://v.daum.net/info/3526345?tType=2
 

 

 

 

 

 

 

 

너! 거기가면 굶고살꺼야, 왜 갈려그래?.

고1때부터였다. 원래 사회학쪽으로 진로를 굳힌 상태였지만, 뚜렷한 목표의식은 없었다. 하지만 고1담임선생님은 국사담당이셨고, 그분을 보면서 학문의 재미나 열린 학문의 재미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목표는 고3수능볼때까지 이어졌고, 무조건 사학과 아니면 갈려는 생각밖에 없었다. 이런 결정에 주위에서 나오는 반응은 무조건 ‘거기가면 굶고 살걸, 선생님 않되면은 그 학과 나와선 할수있는게 없어, 왜갈려그래? 경영학과 이런 쪽으로 가보지?’ 이런 식이였고, 당시 아니 지금 사회풍조도 이윤을 너무나 따져서 인문학과 가서는 비전이 없다는 둥 인문학의 위기라고 떠들어대고 있었다. 하지만, 우연히 아주 우연히 진중권 교수님의 [이매진]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영화와 인문학관계의 담론이라나.처음엔 갸우뚱하면서 책을 넘겨보았다. 넘겨볼수록, 인문학과를 갈려는 나에게 불을 질렀고 인문학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는 책이었다.



상상의 시대로 뻗어나가는 현실, 점수와 찍기에 급급한 교육

[이매진]이라는 책에서도 말씀하셨지만 어제 강연회에서도 말씀하셨다. 현재 세계는 미학-인문학-엔지니어 이 3가지의 생각이 유기적으로 구현되는 사회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가령, [트랜스포머]라는 영화를 보면 은 인문학적인 구성 ‘트랜스포뮬라이즘’이라는 토대위에 아티스트들의 상상력들이 덮이고 그 다음이 엔지니어들의 CG참여 이런 3가지가 구성되었기에 아무리 영화가 어린이들 장난감을 토대로 만들었어도 세계 어느 곳에서도 통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이 3가지의 구성의 공통적인 점은 상상력 즉, 창조능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의 미술발전사를 보면 은 알 수가 있다.

뷜렌도르프의 비너스조각상을 보면 은 가슴과 엉덩이가 풍만하게 조각된 조각상을 볼 수가 있다. 이런 것처럼 옛사람들은 이렇게 모형을 만들어 놓고서 다산을 기원했던 것이다. 3차원적인 구성이었다. 시대가 조금 발전하여 라스코 동굴벽화를 보면 은 소가 창에 찔려죽는 장면들을 그려놓고서 그러길 바랐다. 2차원적인 구성이었다. 더욱 시대가 발전하여 글이 발전하였고, 현시대는 컴퓨터가 발전하면서 픽셀(점)로 이루어지는 0차원적 세상이 되었다. 즉, 시대의 기술은 진보함에 따라, 추상화정도는 더욱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점은 앞으로 세상은 추상성을 읽어내고 숫자로 점을 만들 수 있는 창조, 상상력이 중요시되는 사회, 세계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가령, 실리콘 벨리에 높은 자리에 있으신 분들은 상상만하시고 그 상상을 구현하는 것은 아래 분들이 하신다. 또한 스티븐잡스도 버튼 없는 mp3을 만들 때 상상만하고 그 구현은 엔지니어들이 한 것이다.

눈을 돌려서, 우리나라 교육현실을 보면 은 너무나 암담하다, 늘 언제나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문장을 어떻게 빨리 읽어서 답을구해내고, 2개있을 때 가장 가깝게 답을 찍는가? 이런 것들을 가르치고 있다. 물론, 이런 교육현실에서도 다른 방향으로 교육을 하고 계신 선생님들은 계시지만, 늘 무시당하신다. 또한 현 정권에서는 공교육 강화차원에서 방과 후 보충수업을 늘리고, 학교에 더욱 잡아두시겠다고 한다. 잡아두는 건 좋지만 교육방향이 옳아야한다. 이것이 한국의 교육현실이었고, 세계의 발전방향과 완전히 위배되는 교육현실이다. 또한 한 가지 시대에 역행하는 짓을 하였다. 이런 문화적 패러다임을 전파하기위해 진중권교수님이 활동하시던 포럼들을 해체하고 나섰다는 게 현 정권의 문화부 장관이셨다는 것이다.
 


인문학 선택은 올바른 방향이고, 모든 창조의 기본토대


이 같은 내용은 어제 강연에서 듣고 나니, 인문학을 공부하겠다던 나의 다짐을 더욱 공고히 하게 되었고, 재수를 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1년 더 공부해서라도 인문학을 선택하려던 나의 선택이 가치가 있고 비전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단지 저런 변화세태에 합류했다는 점이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그저 고1때 선생님께 영감을 받아서 선택하게 된 학문이 길이 옳음을 증명해준 것이 보람 있었으며,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면 나머지 이윤적인 것은 부차적이 되도 좋다는 나의 신념이 옳음을 새삼스레 느끼게 되었다. 진중권교수님의 마지막말이 아직도 귀에 남아있다. ‘ 인문학, 사학, 문학 이런 것들이 살아나야지만 미학도 토대가 튼튼해지는 것이며, 가치가있어진다.’ 즉, 기본토대가 된다는 말씀이셨다.



잡담


강연을 듣는 동안 시간가는 줄 모르게 된다. 100분 토론이나 다른 곳에서 교수님을 본 사람들이라면 말씀하실 때 자신도 모르게 그 말과 내용에 흡수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진 않겠지만..몇 권을 책을 읽고가서 그런지 교수님이 강연을 잘하셔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강연회는 미학이나 미디어아트를 몰라도 듣기가 쉽고 위에서 얘기한 패러다임들을 쉽게 들을 수 있는 좋은 시간이였던거 같다. 강연회를 마치고 싸인 을 받을 때 뒷사람들에게 미안했지만 나는 내가 가진 책들에 다 싸인 을 받으면서 교수님께 얘기했다. 몇 년 만 더 기다려달라고 인문학으로 진학하기를 희망해서 교수님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는 인재가 되겠다. 그러더니, 한번 쳐다보셨다. 그냥 나만 책을 4권들 고와서 쳐다보신건지, 정말 기다리겠다는 뜻으로 쳐다보신지 모르겠지만, 좋은 쪽으로 생각하여 더욱 학문에 정진하는 자극제가 되었다고 생각해야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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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 2009-06-27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4권 들고 오신 분... 저 누군지 알 것 같아요. ㅎㅎ

시세로 2009-06-28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ㅋ 뒤에 계셨던분? ㅋ ㅎ ㅎ
 

안산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지하철을 여러번 갈아 타고 목동으로 향했다. 멀다고 하면 먼 거지만 사십대에 들어서야  나의 정체성과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걸 생각하면 거리와 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용기를 내어 맨 앞 자리에 앉았다. 그렇지만 강연 후기는 용기만으로는 글솜씨를 메울 수가 없어 이이화 선생님의 귀한 말씀 중에서 개인적으로 깊이 와 닿았던 몇 말씀만 올리고자 한다. 
이이화 선생님께서는 역사에 대한 대중들의 공감과 이해를 목표로 글을 쓰신다고 하셨  
다. '아~ 그래서 이긴자만의 역사가 아닌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시는 구나' 라는 궁금중 
 풀린다. 더불어 사는 것,  미래의 시대는 인권의 시대라는 말씀과도 일치하는  내용이였 
다. 
인권의 문제는 종교,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정당성을 고민해야 하고 국가의 문제를 넘어서 세계의 문제라는 것이다.  
인권의 문제를 희망적으로 보셨는데, 옛날 신체와 관계된, 신분에 관계된, 형벌을 받는 것의 변화에서 그 중 몇가지 예를 들 
어 귀족이 없어지고, 호주제가 폐지되어 가족제도로 바뀐 것, 일부일처제, 여성의 의복의 변화 (가슴을 조여던 부분이 끈으  
로 대체되는 일..) 등을 말씀하셨다. 뒤안길을 봐야 하고 더 좋도록 노력해야 한다 라는 말씀도 생각난다.  
새로 나온 오만원권을 서두로 그동안 우리 나라의 화폐에 실린 여러 인물에 대한 기준을 쭈욱 말씀 하셨는데, 이제는 인물의 
평가기준도 사회의 공헌이나 사회의 개혁 기준으로 보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광활한 영역을 넓혔던 광개토대왕, 신분을 극 
복 하고 학의 우수성을 널리 알린 장영실, 여성인권에 도전장을 던진 황진이, 뛰어난 시를 지은 허난설헌 등) 지나온 역사 
와 현재를 바라볼 때도 당연시 하는 나의 시각과 일방적으로 받아들 이는 수동적인 태도, 오늘날 변화의 흐름에 주체적으로  
따라 가지 못하는 나를 반성하는  시간이였다.  
선생님께서는 동북공정에 대해서도 현실을 직시하며 새롭게 다가가야 한다는 말씀이셨다. 영토 분쟁이 있는 지역은 자원이  
는 엄청난 경제 논리가 깔려있었다. 고구려사는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걸려있는  중요한 일 이라는 걸 새삼 느끼는 시간  
다. 역사자료 논증은 상식의 흐름에, 역사의 상상력은 역사의 법칙안에서, 역사의 접근방법은 생활사, 민중사, 문화사로 
다가 서야 한다는 것이다. 바탕이 없으면 상상력은 발휘할 수 없다 라고 하신다. 오늘 날 자녀 교육에서 강조하는 창의력과  
상상력은  역사에서도 꼭 필요한 부분이였다. 교육에 관해서도 말씀하셨는데, 시대가 바뀌었으며 무엇이 중요한가를 들여  
다  봐야 한다고, 유행에 따르는 것은 금방 잊혀진다고, 창의성와 개성을 너무 무시해 왔는데, 이제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개성을 살려주어야 한다고, 출세의 방향이 달라졌다. 다양한 재능을 키워줘야 한다는 것인데 선생님께서는 어렸을 때 다양  
한  경험, 고생했던 경험이 내성이 생겨 10년에 걸친 여러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한국사 이야기' 22권 소중한   
기록 유산을 남길수 있었다. 끝으로, 구체적인 역사, 정확한 역사를 통해 역사를 공유하고 국민의 동질성, 통일성은 정신적   
자산이라고 말씀 하셨다.  
후기를 쓰면서 잘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절실하게 느낀다. 역사의 연속선상에서 매 순간의 물음을 가지는 태도를 지녀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무엇보다 역사책을 균형있게 보는 데 있어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되며 뜻깊은 시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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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화 선생님의 '끝나지 않은 역사 앞에서'-6.25가 왜 터졌을 까

2009년 6월 24일 오목교에 위치하고 있는 현대백화점에서 이이화 선생님 강연회가 있었다. 이 강연회는 청소년을 위한 마지막 강의를 저술한 윤승일 저자의 소개로 시작되었다.




그날의 강연은 이이화 선생님의 책 내용으로 강연을 했던 것이 아니라 윤승일 저자의 책 내용에 멘토로 들어가 있는 이이화 선생님의 저술 이야기와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그런 전반적인 내용을 묻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면서 이이화 선생님은 말을 이어가셨다. 선생님의 강연 내용의 주요 내용은 '희망'이었다. 그리고 패러다임의 '변화' 였다.

하루 10시간씩 글을 쓰는 선생님의 집필 능력이 특히 귀에 들어 왔는데 그렇게 집필을 끝내면 자식을 얻은 것처럼 자신이 생산을 한 것 같아 뿌듯해진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나에게 역사란 대중들과 같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오만원권이 왜 신사임당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며 의문점을 이끄셨다. 왜냐하면 신사임당을 둘러싼 유교의 열녀 이미지는 다분히 남성 중심의 생각이 작용된 것이라며 차라리 황진이허난설헌이 더 이 시대의 여성상에 근접한 인물들이기 때문이라는 말씀을 잊지 않으셨다.

이이화 선생님은 시대가 바뀌고 있지만 여성들의 상은 아직도 바뀌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 여겼고 그 문제에에서 앞으로의 시대에 대해 언급을 하셨다.

앞으로의 시대는 경제적으로 녹색의 시대를 걷는 것이 당연하고 문화나 역사로는 인본중심, 인격존중 시대로 나아갈 것이라고 제시하였는데 여기서 의문점이 들었다.
바로 이번 정부의 녹색정치 운운하는 따위 즉 4대강에 대해 이이화 선생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에 대해 여쭤보고 싶었다.

선생님은 역사학자이기에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 가급적 애기하고 싶지 않다고 처음에 말씀 하시다가 이번 4대강 개발은 적당함에서 너무 벗어난 개발이라며 모든 것에서 개발은 필요는 하지만 우리는 지금 무분별하게 개발을 하고 있다고, 이번 4대강도 그러한 축에 들어가는 것 같다며 답변을 하셨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래도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살아야 함을 재차 강조하셨다.

동북공정에 대한 질문에서는 이미 서남공정은 중국이 마무리 했고 이제 서북공정과 동북공정의 문제만을 중국이 다루고 있는데 이 문제는 모택동 이후에 다시 등장한 중화 정신을 갖은 학자들의 의해 생겨난 것으로 보고 계셨다. 모택동 시절에는 중국인들은 소수민족을 존중했고 그들의 역사를 인정했었는데 그 이후의 학자들이 소수민족들의 역사를 자신의 역사로 편입하는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역사는 상식과 상상력으로 살펴보아야 하는데 중국의 역사가들이 그런 말도 안되는 역사관으로 문제를 일으켰고 현재는 중국 역사가들 중 일부가 반성을 하고 다시 재조명하는 추세인 것 같다며 다음 질문으로 이어 가셨다.

다음 질문이 바로 역사는 왜 배워야 하는 것이었다. 앞서 잠깐 애기하셨듯이 역사가는 상식인 사실로만 역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그 상식을 기본으로 역사는 다시 재편집되고 시대에 따라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런 작업을 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런 뼈대 위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라고 마무리를 지으셨다.

강연이 시작하기 전에 '청소년을 위한 마지막 강의'를 저술한 윤승일 저자가 이런 말을 했었다. 그가 가장 영향을 받은 분이 이이화 선생님이었고 나의 멘토이시라고. 나 역시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이화 선생님의 강연내용을 정리하면서 선생님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다시 이런 기회가 있어 선생님을 또 뵙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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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님을 만나고 오다
    from # 간이역, 꿈꾸는 식물 2009-06-26 01:47 
    이이화 선생님의 '끝나지 않은 역사 앞에서'-6.25가 왜 터졌을 까 2009년 6월 24일 오목교에 위치하고 있는 현대백화점에서 이이화 선생님 강연회가 있었다. 이 강연회는 청소년을 위한 마지막 강의를 저술한 윤승일 저자의 소개로 시작되었다. 그날의 강연은 이이화 선생님의 책 내용으로 강연을 했던 것이 아니라 윤승일 저자의 책 내용에 멘토로 들어가 있는 이이화 선생님의 저술 이야기와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그런 전반적인 내...
 
 
 

 

과학의 얼굴은 몇 가지일까? 적어도 하나는 아니다. 인류를 미몽과 마법에서 해방시킨 얼굴 하나. 다시 재영토화를 해내는 얼굴 하나. 재영토화를 하는 과학의 얼굴에는 두 그림자가 지워져 있다. 그 이름은 정부와 자본이다. 저자의 강연에서 그 기점은 80년도다. 80년을 기점으로 과학은 정부에서 자본으로 스폰서가 바뀐다.  

저자의 강연 초두에서 과학이 팽창한 시대는 1,2차 대전과 더불어서다. 과학의 최초 스폰서는 정부였다. 정부의 예산은 과학의 본질을 변화시켰다. 과학은 권력의 시녀가 되기를 시작했고, 그후 주인은 정부에서 자본으로 넘어간다....김명진 강연을 짧게 골자만 잡은 것이다. 강연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이 훨씬 많았고, 책에는 좀 더 정교한 서술이 있다.   

강연에서 Big SCIENCE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요즘의 과학 연구 추세에서의 테마잡기 방식의 특정한 부분을 지적하는 것이고, 여기에는 비판적 뉘앙스가 내포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과학의 스폰서가 정부에서 자본으로 이행된 후 특히 강화되는 경향이다. 90년대 미국에서의 게놈프로젝트, 허블망원경 등과 같이 거대규모의 프로젝트가 실시되는 것은 과학과 자본의 결탁이 초래한 결과다. 

그 결과로 과학연구자의 위계구조화, 연구와 연구자의 소외와 같은 자본주의적 모순구조들이 과학계, 연구프로젝트에 비대해 진다. 기실, 빅 싸이언스화는 그 자체로만 보면 정당한 것이며 사회와 과학사의 진전에 적절하게 조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큰 과학연구를 수행하기에는 이런 방법 외에는 다른 수가 없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것에 대해서 직접 비판을 삼가한다.  

빅싸이언스의 또다른 얼굴은 업청난 비효율성과 낭비다. 무책임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터무니 없는 일들이 자행되고 그것은 고스란히 국민(주도자가 정부인 경우), 노동자(주도자가 자본인 경우)에게 전가될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돈이 도는 구조를 생각하면 그 비용이 누구에게 전가될 것인가는 뻔하다. 그런데 이런 식의 지적은 강연에서 배제되어 있다. 

강연의 전반적 구조는 입증가능한 상황들의 제시와 그 증거제시로 되어있다. 이번 강연에서 상상력은 설 자리가 없어 보였다. 강의자는 직접적으로 자신이 비판하는 것이 무엇인지 노출시키지 않았다. 수강자(또는 독자)에게 나머지 몫을 차지하라고 안겨준 기분이다.   

강연내내 그리고, 질의응답에서 느낌은 탈주당한다는 것이다. 강연자는 무언가 회피하는 가운데 무언가를 말하고 답했다. 피하고, 우물거리고, 생략하고, 넘어가고가 간간히 등장하면서 강연자는 자신의 로직에 충실했다. 메모를 안하는 나로서는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다. 강연의 구조가 논리적이라는 인상은 받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 반쪽은 내가 내 생각을 더해서 조합해 낸 것들이다. 거기에 강연자의 탈주본능은 되려 방해가 되는 것이다. 

강연자는 지식을 전당할 의무가 있다? 없다! 강연자는 자신의 말을 자신의 방식으로 전달을 하고,수강자는 자신의 말로 정리를 한다..... 대충 내가 생각하는 강의의 구조다... 그런 것들이 '탈주'를 낳는다.  

강의자는 20세기 초엽부터를 강의의 초두로 삼는다. 그전이 개인과학자, 즉 천재가 과학을 발명하는 시대라면 20세기부터는 과학자 수가 급속히 팽창한다. 시기적으로 양차대전에 조응한다. 그리고, 윤리가 과학세계에 등장한다. 전쟁에 복무한 과학자에게는 죄의식이 드리운 것 일까 아니면 윤리가 제어하지 않는다면 과학의 폭발해 버리는 것 일까? 양차대전후 뚜렷한 변화는 과학에 윤리가 요구되고 과학이 제도가 되는 것 이다. 

최초에 과학을 지원한 스폰은 정부다. 정부는 왜 과학을 스폰할까? 과학엔 정부 밖에 스폰이 될 수 없었을까? 양차대전은 과학자를 국가과학자로 양성하는 계기가 된다. 국가가 강화되고 과학은 국가에 복속된다. 이 구도는 그후 80년대가 되어 그 주인이 자본으로 전환될 때 까지 우세한 구도다.   

2차대전후 동서냉전이 심화된 것은 이 구도를 계속 유지, 존속, 재생산한다. 대체로 강의에서 노출된 정보들은 미국위주다. 그러나 이 구도는 다만 미국에만 한정된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전세계적인 현상이라고 강의자는 평가하는 것으로 사료된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한다면 강의의 스토리텔링은 완결되지만 너무 단순화된 감이 든다.  

이번 강의는 한편의 뛰어난 스토리텔링이다. 책도 궁긍적으로 일정한 스토리텔링에 기초해 있을 것이다. 스토리텔링이 결여된 것은 받아드릴기 힘들어지는 경우가 많고, 잊혀지기도 쉽다. 이것은 스토리텔링의 장점이다. 학술논문이 아닌 다음에는 스토리텔링이 필요불가결하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은 단점도 있다. 그걸 기억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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