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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의 마지막날, 1년의 반을 마무리하는 날 신촌의 한겨레 교육문화센터에서 19시 30분 김원중 선생님의 사마천의 <사기>에서 통찰력을 구하시는 강연을 들었습니다. 

사마천의 장인정신을 형상화한 장면인 백발의 백색옷을 입은 노인이 진지한 표정으로 붓을 잡고 종이를 응시하는 그림을 먼저 보여주셨습니다. 오늘은 시간관계상 형가,이사,한신 얘기로 압축하기로 정하셨습니다. 

天道是非 ?  권선징악?  世道,  人道.  안회는 훌륭한 인물이었지만 28세로 요절했고, 도척은 사람의 간을 회쳐 먹는 사악한 자였으나 천수를 누린 대비를 얘기하셨습니다.  사마천은 요임금의 선양 장면을 중시했습니다. 오태백의 양보, 백이와 숙제의 왕위 양보도 있었습니다. 제위(권력)를 두고 양보하지 않는 현실을 얘기하며 하늘의 도가 옳을 떄도 있고 그를 때도 있다는 천도시비의 뜻을 풀이하셨습니다. 

 

이연걸이 출연한 <영웅>에서 암살 결행 직전의 형가荊軻(이연걸 분)와 진시황의 독대 장면을 보여주셨습니다. 형가의 노래인 ``풍소소혜역수한  장사일거허불부환`` 을 제시하셨습니다. 장예모 감독은 역사 장면과는 다른 연출로 팍스 차이나를 보여주려는 연출 의도를 가졌습니다. 연나라 태자 단의 형가에 대한 함양 궁궐 잠입 암실 지시는 무모한 생각이었고 결국 연나라를 파멸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이는 어떤 일을 할 때 하나의 선택 문제가 큰 역할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예로 사마천이 이릉을 변호하다가 궁형을 당한 사실이 있습니다. 한순간의 판단미스가 자신을 파멸에 이르게 합니다.  

전국시대 지도를 보여주십니다. 진,제,조의 3강국,  조,위,한의 약소국, 중간세력인 연의 7국만 살아남았습니다. 주나라는 50국을 분봉했었습니다. 진나라가 천하통일한 이유(척박한 땅에도 불구하고 동방으로 진출하여 13년만에 육국을 통일한 것)는 2번에 걸친 대개혁입니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듯이 전통이 강하면 강할수록 개혁은 불가능합니다. 초나라는 도가 계통이 발달했고 제나라는 국내 영토인 옛 노나라 곡부 출신의 공자가 있었습니다. 

첫번째 개혁은 진 孝公 시절의 상앙(상군)의 시도입니다. 그는 기존의 법을 다 바꾸라는 변법을 건의했습니다. 처음에는 효공이 이를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기존의 기득권 세력을 무서워했기 때문이고 백성들도 이를 믿지 않았습니다. 즉 법이 신뢰를 획득하기 전의 단계였기 때문이죠. 교착상태의 타개책으로 移木之信의 방책을 씁니다. 나무를 옮기면 50금을 주겠다고 공고했고 실제로 이를 옮긴 자에게 포상을 하였습니다. 효공과 상앙은 사흘 밤낮을 얘기 나눌 정도로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법=원칙>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상앙은 주위에 적을 많이 두었고, 절대권력자 효공이 죽자 상앙은 적들에게 쫓기다가 국경에서 자신이 만든 법에 따라 신분증을 요구당하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상앙의 개혁은 진나라의 기반을 조성한 데 그 의의가 있습니다. 

두번째 개혁은 李斯의 시도입니다. 이사는 초나라의 낮은 벼슬아치 출신입니다. 어느 날 그는 두 마리의 쥐를 본 뒤 생각합니다. 먼저 본 쥐는 이사가 관청의 곡식창고에 들어가도 본 체도 안 하고 쌀을 먹고 있었는데, 다음에 본 쥐는 이사가 하수도를 지나가는데 사람이 먹다 버린 밥을 먹던 쥐가 그를 보고 도망갔습니다. 이사는 이를 보고 사람은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깨닫고 알아주는 이 없어 뜻을 펼칠 수 없는 초나라를 떠나 진나라로 가게 됩니다. 진나라는 개혁하여 자기 날개를 펼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시황 주변의 토착세력인 儒生들에 비하면 그는 客에 불과했습니다. 유생들은 진시황과 이사의 독대를 못마땅해 하고 간첩이라고 헐뜯었습니다. 진목공이 5명의 인재를 받아들였듯이 진시황도 이사를 받아들이게 되고 분서갱유를 단행합니다.  

이사가 개혁작업을 진두지휘하여 천하통일을 합니다. 그리고 단시간 내에 또다른 개혁정책을 실시합니다. (1) 화폐통일(60센티미터 화폐도 있을 정도로 화폐 종류와 크기가 다른 상황에서 이사는 9센티의 포전, 4.3센티의 환전보다도 작은 2센티의 화폐로 통일합니다.)   (2) 도량형 통일  (3) 도로 건설 (4) 군현제 실시 등입니다.  

연회 때 자기 집 앞에 수레가 너무 많아 이사는 몰락의 전조 같은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이사는 생각이 깊고 많은 사람이었지만 결국 권력자인 자신에게 사람들이 몰려 평가해주자 그 맛을 알게 됩니다. 이사는 客으로 결코 主人이 될 수 없는 한계가 있었는데 말이죠. 적절한 타이밍에 떠나가지 못했습니다. 진시황의 27년간 권좌에 있다가 49세로 객사하자 이사는 조고와 호해의 유서위조에 가담합니다. 그 이유는 조고의 압력이 있기도 했지만 이사가 몽염과 사이가 나빴기 때문입니다. 蒙焰은 부소와 함께 만리장성을 건설하였는데 장자인 부소가 황제가 되면 자신의 권세를 유지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죠. 

不遠不近 즉 권력자에게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사는 不近을 지키지 않아 유서위조의 비밀을 알고 있었으므로 조고에 의해 어떤 죄가 뒤집어 씌워져 거열형에 처해졌습니다. 결국은 처세의 문제입니다. 신호등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멈출 때, 기다릴 때, 나아갈 때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老馬之智 즉 위기에 처한 관중을 늙은 말이 구해준 고사입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오히려 다른 동물보다 환경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는 취약한 점이 있습니다. 객의 입장에서 주인 행세 해보겠다는 것은 기회주의자의 행태로서 安分之足을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及時勿怠 즉 때에 닥치면 꾸물거리지 마라는 경구도 새겨야 합니다. 이는 결단력을 강조한 말입니다. 

권력은 감출수록 강하고 들어내면(남용) 망합니다. 이것이 민심입니다. 권력이 수면 아래 있을 때에는 사람들이 무서워서 경계하나 수면 위로 오르면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승이 비록 노동하던 자였지만 왕이 된 것은 농민들이 호응했기 때문입니다. 

韓信은 빨래하는 어미의 밥을 얻어먹고 불량배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간 초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항우진영에서 건너왔기 때문에 유방은 간첩이라고 의심하여 등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소하는 떠나는 한신을 쫓아 유방에게 그의 등용을 청하였고 마침내 한신은 대장군이 되어 승승장구합니다. 그러나 多多益善의 고사에서 보듯 한신은 교만하여 유방의 눈밖에 납니다. 한고조의 아들이 23명이나 되나 제나라의 봉호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과욕을 부리다가 화를 자초합니다. 정권 잡은 후에는 권력투쟁이 뒤따르므로 봉읍을 사양한 소하와 은둔을 선택한 장량의 예를 한신은 깨우쳐 보아야 했으나 그렇지 못하고 모반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결국 몰락합니다. 

교훈 (1) 절대권력자랑 맞먹으려고 한 것이 문제입니다. 한비는 역린을 건드리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2) 한 사람에게는 꼭 인정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을 좋아하고 인정하는 삶을 만나고 이들을 꾸준히 관리하면 성공합니다. (3) 협력하고 믿고 겸손해야 합니다. 건드리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야심을 품은 것은 패착입니다.  

도주공 범려의 고사에서 *부자의 통찰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월왕 구천의 천하 절반을 주겠다는 제의를 사양하고 제나라로 건너가 장사를 시작하여 거부가 됩니다. 이때 세 아들 중 둘째가 살인죄를 저질러서 초나라에서 옥살이를 합니다. 그는 초나라의 강직한 신하인 莊生에게 석방 탄원 뇌물로 만금을 막내의 손에 들려 보내고자 하나 부인으 반대로 첫째를 보냅니다. 그러면서 돈을 주고는 바로 되돌아오라고 얘기하였으나 첫째는 돈 준 후 초나라에 머물다가 사면령 예정 얘기를 듣고 장생을 찾아가 돈을 회수합니다. 그러나 장생은 초왕을 찾아가 둘째를 사면령 대상에 서 제외할 것을 진언하여 둘째는 죽고 맙니다.  고생하여 자란 첫째가 돈이 아까워 결국 둘째를 죽게 만들었는데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자란 막내를 보냈더라면 살렸을 것이라고 범려는 말합니다.  

노자는 양보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사마천도 양보를 대단히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당시의 주류는 법가, 병가였습니다. ``훌륭한 상인은 물건을 깊이 숨긴다``고 제후들을 15년간 쫓아다닌 공자에게 충고하기도 합니다. 해체하고 재구성할 것이 요구됩니다. 로고스 중심을 거부한 특유의 모순어법입니다. 결국 자신의 행복을 찾는 것입니다. 노자,장자, 범려의 삶이 중요한 이유는사람은 끝이 좋아야 함을 시사하기 때문입니다. 젊을 때는 성취를 추구하더라도 나이가 들면 안분으로 가야 합니다. 老慾을 부리면 판단이 흐려져 패망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자기경영을 해야 합니다. 치욕을 견뎌야 합니다. 살면서 힘든 고비는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도광양회(韜光養晦) 즉 빛을 감추고 밖에 비치지 않게 한 뒤 어둠 속에서 은밀히 힘을 길러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믿고, 인생을 잘 살고 못 살고는 아직 결판이 나지 않았다는 것을 새겨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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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내가 감동하는 책은 말이야. 다 읽고 난 뒤에 그걸 쓴 작가가 친구가 되어 언제라도 전화를 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책이란다. 하지만 그런 기분을 주는 책은 좀처럼 없지."  -호밀밭의 파수꾼 中 

호밀밭의 파수꾼에서의 홀든의 이 이야기를 읽을 때면 난 소설가 공선옥이 떠오르곤 한다. 자신의 이야기속 주인공들을 끝도 없는 절망속으로 몰아세우는 작가, 마흔이 되어서야  길을 나서고, 흔들리지 않는다는 나이 불혹을 넘겨서도 사는 게 거짓말 같다라고 솔직할 수 있는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절망의 끝까지 경험하고서도 또 묵묵히 삶을 견디어내야 했던 그녀의 주인공이 가짜가 아니구나 하는 맘에, 그런 진짜 사람을 그려내는 그녀를 무작정 찾아가 그녀의 주인공들처럼, 한바탕 울음을 쏟아내고, 그렇게 다시 내자리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었다. 물론 그녀 자신은 독자에게 불친절한, 독자와의 만남같은 행사는 사양하고픈 작가라고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마련된 그녀와의 자리가 너무도 반갑기만 했다.  더욱이 이제는 어느새 중견이 된 작가와 2년차 새내기 작가가 함께하는 자리라니..

두 명의 여성작가와의 만남자리여서인지 대부분이 여자독자였고, 장소도 예쁜 커피숍이어서 정말인지 친구와 수다를 떨러나온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출판사 입장에서는 조금 안타까울 수 있었겠지만(^^:) 대화의 내용도 새로 출간한 책에 대한 것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얘기들이 오가 더더욱 그런 느낌이 들게 했다. 사실  함께 하는 정한아 작가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것이 없었는데 처음 정한아 작가의 모습을 보곤 너무 앳되고 예쁜 모습에 놀라기도 했다. 그리고 상상으로 가득차있는듯한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천상 글쓰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책만 읽으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그리고 나서 읽은 책은 누군가에게 주고 자신의 집엔 한 권의 책도 두지 않았음 좋겠단 공선옥작가와 재밌는 책은 다른 사람들이 몰랐으면 좋겠다고, 책을 빌려주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싫다는 정한아 작가...나이며, 살아온 환경이며, 쓰는 글의 내용이며 너무도 다르기만 한 두 사람인데, 나란히 앉아서 서로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상대방의 글을 낭독해주는 그녀들의 모습이 너무 잘 어울려 보인다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었을까.    

책을 읽는다는 것, 문학작품을 읽는다는 것이 삶에 대한 답을 줄까라는 질문에 공선옥 작가는 책이 현실의 문제에 대한 답을 줄 수는 없다라고 답했다. 다만 그럼에도 책을 읽는 것은 적어도 책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며, 그중에서도 문학은 가장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것이라 이야기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 정한아 작가가 낭독했던 [내가 가장 예뻤을때의 한 구절], 사람들이 이상하다는 왜 아무렇지도 않은거냐는 그 구절처럼, 그렇게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글... 아마도 내가 작가 공선옥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그래서 일것이다.. 끊임없이 왜라고 물어오는 그녀의 질문에 그럼 당신의 답은 뭔가요 그렇게 되묻고 싶은 마음...  설사 아무른 답을 듣지 못하더라고 말이다...

그녀들의 작품에 위안을 받았다는 누군가의 말에 공선옥작가와 정한아 작가는 전혀 다르게 답했다. 위안이 되는 글이 아니라 불편함을 느끼는 글을 쓰고 싶다는 공선옥 작가와 자신이 가장 절망하던 시기에 책이 그 절망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되어준 것처럼 자신의 글도 누군가에게 힘이 된다면 행복하겠다는 정한아 작가... 그렇게 다르기만 한 답에서 난 같은 방향을 보는 그녀들을 느꼈다. 절망하는 법... 적당히 멈추는 것이 아니라 절망의 끝까지 그녀의 주인공을 몰아붙이는 작가 공선옥과 그렇게 절망 끝에 다가앉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절망하는 법을 배웠을, 그리고 스스로 일어나 무언가 쓰기 시작했을 정한아작가를 머릿속에 그려본다.  

제대로 절망할 줄 알고, 그 절망끝에 생겨난 의문들은 글로 쓰는 그녀들... 그렇기에 그녀들은 천상 작가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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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마다 내가 읽든 안읽든 상관없이 꾸준히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주시는 분이 있다.

고도원님.. (매일 메일만 받아서 저자의 이름이라는 사실을 특강 들으면서 첨 알았다 ^^) 

책을 많이 좋아하셨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국내 최대(?)의 독서카드를 보유하고 계시다는 그분.. 내 자신을 위해서도 독서가 많이 필요하지만 언젠간 낳게 될 내 2세를 위해서도 독서하는 환경이 무척 중요하다는 사실도 문득 깨닫게 되었다.

 

1. Vision - 꿈너머꿈

단지 귀찮다는 이유로, 내 인생의 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고 사는 하루살이 인생 나에게, 고도원님의 특강은 하나의 큰 도전이 되었다.

"백만장자의 정신"이라는 책에서 백만장자들을 조사하였을 때, 그들을 성공으로 이끈 요인이 첫째가 꿈이요, 두번째가 기본기(반복하는 끈기?)라고 했다는데, 꼭 백만장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내 삶을 좀 더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꿈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매일 까먹는다.

꿈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어떤 꿈을 가져야 하는가? 나 혼자 잘먹고 잘살기 위한 꿈??

성경에서 나온, 무엇보다도 국의를 먼저 생각하라(정확한 문장은 생각 안나지만 어쨋든 이런 뜻) 라는 말처럼, 나 자신만을 생각하는 꿈이 아닌, 세상 사람들과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꿈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꿈은 어떻게 꾸어야 하는가? 최대한 구체적으로 그림을 그려야 한다. '성공'이라는 책에서도 자신이 성공했을 때를 상상하여 최대한 구체적으로 성공한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글로 설명하라는 얘기가 나온다.
고도원님도 마찬가지로 독자들에게 자신의 꿈에 대한 메일을 보냈을 때, 아주 구체적으로 그 모습을 기술하였다. 그 메일을 받은 사람들은 너무 황당한 꿈이라며 비웃었다지만, 몇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 많은 꿈들이 현실로 나타날 수 있었다. 이는 그가 제시한 구체적이고도 명확한 꿈을 보고 그와 같은 꿈을 꾸고 있었던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꿈을 가지고 있다. 부자가 되어야지, 어떤 대학에 가야지, 의사가 되어야지.. 하지만 next가 없다. 부자가 된 다음엔? 원하는 대학에 간 다음엔? 의사가 된 다음엔?? 고도원님은 그 첫번째 꿈을 훌쩍 넘어서는 더 큰 꿈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부자가 된 다음에, 원하는 대학에 간 이후에, 의사가 된 후에 어떤 꿈을 꾸고 실천할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 "꿈너머꿈"은 많은 세상사람들을 위한, 세상 사람들과 함께 꿀 수 있는 종류의 꿈이 되어야 한다.
고아에다가 시각장애라는 신체적 핸디캡도 가지고 있었지만 미국 백악관 차관보의 자리까지 오른 강영우 박사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이런 얘기를 했었다. 미국 유명대학으로 유학간 한국 학생들이 대학 들어갈 때만 해도 타국 학생들에 비해 우수한 경우가 많지만 졸업할 때에는 그 비율이 확 줄어든다고 한다. 그 대학에 들어가는 꿈까지는 가지고 있었지만, 대학에 들어간 이후에 어떤 비전(꿈너머꿈)을 가지고 정진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확 달라진다는 것이다.

 

2. 어떤 경우에도 절망 금지

고도원님, 그는 참 절망적인 순간이 많았다고 한다. 불우한 시절에 대학교를 다녔던 시절, 감방에도 갔었다고 하고, 그 빨간줄 경력 때문에 직업도 제대로 구할 수 없었다.
때문에 가난한데다가, 벼룩의 간을 빼앗듯 심지어는 사기까지 당했다고 한다. 어려운 환경 탓에 와이프는 유산을 연거푸 겪을 수밖에 없었고...

그런데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는 희망을 잃지 않았으며, 나중에 세월이 지나 돌이켜보니 그런 절망적인 순간들이 하나하나의 터닝포인트가 되어 지금의 훨씬 많은 사람들과 행복을 나눌 수 있는 삶을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만약 그런 절망적인 순간이 없었더라면 끽해봐야 혼자서 잘먹고 잘사는 수준 정도가 되었을 거라는...

또한 절망 속에서도 혼신의 힘을 다해 일하면 어디선가 누군가(소중한 인연)는 눈여겨보고 내게 더 의미있는 일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자신의 경험 속에서 깨달은 사실이라는데, 회사에서 상사가 안보면 대충 때우려고 하고 조금이라도 일을 덜하는 직원을 보면 똑같은 돈 받으면서 나만 왜 일을 많이 하는거야라면서 불평불만을 일삼았던 내 모습이 떠올라 많이 부끄러웠다.

나는 적어도 고도원님보다 절망적인 순간은 없었다. 괜히 반복되는 일상 자체에 혼자 절망하려 들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고 나락으로 떨어져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희망을 잃지 말자.

 

양재에서부터 백병원까지, 퇴근 후 부랴부랴 달려간 첫 특강은 배울 것도 많고 도전도 되고 내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얼마의 시간이 걸릴진 모르지만, 나의 꿈을 재정비해보고 제대로 된 꿈너머꿈을 함 꿔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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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번 저자 강연회에 가게 된것은 비즈니스 마인드가앞섰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대박이 난 가게의 사장이  강연을 한다는데 귀가 솔깃하지 않을수가.. 

그런데 홍석천씨는 사람이 오고 가고,음식을 대접하고,얘기 를  하는게 좋아서 찾아보니 그게 레스토랑이어서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인생에서 자기가 즐길수 있고 재미있는 일을 찾았다는  그가 너무 부러울 뿐이었다. 

나는 정말로 내생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지,온힘을 다해 노력은 해보았는지 다시 뒤돌아보게 된다. 

일적인 면에서는 자기가 하는 분야-레스토랑 경영-에 확고한 주관과 기준,꿈이 있기에 계속해서 매장을 늘려가도 확신이 있는듯하다. 

자신이 하는일을 잘 안다는것은 사업을 수성하는것에서 대단히 중요한 일인데,현재까지는 아주잘 하고 계시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초짜 사장이 챙겨야할 필수점검 포인트는 나처럼 창업에 발을 담그려는 분들께 도움이 되는 한마디이다. 

직원들이 남자들이 많아 여자화장실을 더 신경쓴다던가, 

여러매장을 어떻게 돌아가며 관리하는가등 직접 저자에게 들어 더 와닿는  경험담이었다. 

이제 또 다른 새로운 매장을 열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는데  

새로운 성공의 소식을 기대하며

끝없는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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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인문학이라는 학문은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을까? 간단히 말해서는 돈 안되는 거. 조금 어렵게 이야기 하면 배고픈 지식인들만의 리그로 인식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여기에 좀 엇나간, 우리 사회에 여러 신선한 파장을 주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진중권 교수이다. 그는 미학오디세이라는 대중적인 인문서적을 통해(그 전부터 다른 철학자들의 책을 번역하기도 했지만) 대중과 인사를 하였고, 그 이후에는 사회 비평 서적, 그리고 미학 서적, 영화 비평 등에 여러 장르를 왔다가 갔다 하며 전방위로 활약하는 움직이는, 단지 권위속에 갇혀 있는 엘리트 지식인을 거부하고, 한국의 스카이라는 기득권층에선 조금 독창적인 학자이다. 그런 그가 디지털, 미디어 아트라는 예술의 최전선으로 돌아왔다.



-근본은 철학과 미학의 세계.



그의 강연은 주제 자체는 새로운 출판 작인, 디지털 아트에 관한 것이었지만, 역시나 시작은 그의 근본인 미학으로부터 출발한다. 그가 한예종 미래 교육단에서 들어가 이런 미디어 연구를 하기 전부터 수많은 저서와, 강연으로 이름을 남겼던, 철학과 미학, 윤리학등의 근원적인 통일을 되살려 미적인 완성을 추구하려던 그의 근본에서부터 강연도 출발할 수 밖에 없다.


이번 강연의 주제였던, 디지털 아트, 즉 이제 일차원적인 텍스트를 지나, 그의 말대로 라면 드디어 하나하나의 픽셀, 점으로 돌아간 영차원적인 디지털 아트를 고찰하기에도, 강연 초반부는 이런 고대부터 근대의 미디어를 살펴보는 과정은 그가 여태 연구하던, 미학오디세이, 앙겔루스 노부스, 현대미학강의 등에서 줄창 이야기 하던, 미학을 여러 관점으로 제시하던 것들. 즉 그의 새로운 연구도 결국은 철학과 미학의 세계에서 출발한다.


-휴머노이드를 통한 예술과 과학의 융합



역시 강연초반에 이야기되던, 인문학과 과학의 결합을 설명하던 예로, 휴머노이드를 통한 언캐니 밸리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언캐니 밸리라는 것은, 기능적으로 개발되던, 인간의 모습을 닮기보다 단지 휴머노이드의 개발이라는 기능적인 층면에서 볼때 최대의 호감과, 그것이 인간을 완전히 완벽히 닮아갈 때까지의 과도기에 엄청난 호감도의 하락을 보여주며 그것이 완전히 인간의 모습과 구별할 수 없을때 비로서 최고로 호감이 올라가는 그래프이다.


진중권씨는, 처음에는 이것을 기능적인 면으로 바라보는 시선과, 그 이후에는 이것을 완전히 기술적으로 인간의 표면을 닮은 휴머노이드를 보여주지만, 그것은 완벽히 저 그래프에 최정상에 이르지 못했나라고 이야기 한다. 이후에 그것을 단지 표면적으로 완벽함이나 인간다움을 추구하기보다, 익살스러운 표정이나, 인문학적으로나 예술적인 상상력으로 극복한 어느 괴짜 예술가의 휴머노이드를 통해서 언캐니 밸리를 극복할 한 시점을 제시해준다. 이것이 강연의 가장 큰 줄기인, 디지털 아트에 대한 가장 적절한 예중에 하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언캐니 밸리의 그래프, 저기서 중간에 계곡처럼 파인 부분이 언캐니 밸리의 부분이다.)

 

 

 

-미디어는 세상과 반비례 한다?



진중권은 미디어는 계속 0차원을 향해 돌입하고 있고, 우리가 앞으로는 텍스트를 지나, 상형문자 같은 이미지를 통해서 세상을 이해가 하게 될 것이다 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는 이런 상형문자 같은 이미지의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현대 사회의 관건이 될 것이다 라고 이야기 한다.



원시 시대에 우리는 벽화를 그리며, 거기에 주술적인 의미를 불어 넣으며 그런 가상이 현실이 될 것이다 라고 믿었다. 한마디로 가상을 현실에 집어넣으면 그것이 이뤄질 줄 알았다는 것이다. 단순한 2차원적인 이미지를 통해서 우리는 실존을 확인했던 것이다.

이후에는 그것이 문자라는 기호를 통해서 지식이 담겨지고, 그것이 금속활자로 무한정 생산되면서 인류의 미디어는 문자로 옮겨 간다. 이후에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고 인간의 완전한 실존을 자연으로 부터의 탈존으로 이루기 위해서 숫자를 통해 세계를 바라보려한다. 하지만 이는 수학적인 계산문제로 컴퓨터라는 새로운 기계 매체를 통해서 우리는 해결하려 했고, 지금까지 우리는 이 컴퓨터라는 뉴미디어를 통해서 미디어를 영위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제 컴퓨터도 지나 우리는 이제 어떤 오브제를 통해서 미디어와 소통하려하지 않는다. 직접 체험하고, 오브제와 하나가 되며 그 이미지가 단지 2차원이 아닌 3차원까지도 넘나들며 손가락 하나로, 단지 말 하나로 세상과 대화하고 자연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단지 모두 점으로 이뤄져 있을 뿐인데.

우리의 기술과 생활 방식은 점점 고차원으로의 여행을 가고 있지만, 정작 우리가 자연을 벗어나 우리의 실존을 이루려는 방식은 0차원으로 내려가는 아이러니 속에 살고 있다. 진중권이 이야기 하는 미래는 이렇듯이 그의 시작점인 미학에서 출발해, 이제 점이라는 것으로 이뤄진 디지털 미학으로의 탈 바꿈을 시도 하고 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새로운 문화로의 진격




그는 아쉽게 지금은 잠시 이 연구가 아직 여태의 업적을 정리하는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고 하지만, 이런 차원을 거꾸로 달리고 있는 미디어와 예술, 그리고 과학과 공학, 총체적인 인류의 지식이 합쳐지는 통섭이라는 문화를 통해서 이제 그의 철학과 미학을 쏟아 부을 태세로 보인다.


그의 강연은 이런 수많은 주제를 포괄하기에는 좀 짧고 많은 아쉬움이 남았지만은, 이번기회를 통해서 대중들이 새로운 미디어와 그간의 수많은 예술과 과학과의 관계에 조금 더 많은 대중들이 관심을 가지고 앞으로의 미래 사회를 준비하고 수많은 이들이 디지털 문화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랬을 것이다.


나도 이번기회에 이런 새로운 문화와 만나면서, 예전부터 미학과 철학에는 관심이 있었지만, 이제 이 철학과 미학이, 2차원적인 이미지와 텍스트를 지나, 3차원적인 과학과 0차원적인 픽셀이 만나 새로운 생명력을 가지고 태동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 진중권씨의 미학과 윤리학, 과학등이 총체적으로 결합된 이 프로젝트의 연구가 한국 문화 예술, 그리고 과학의 한 단계 진보를 가져오기를 기원하며, 이런 강연이 많이 생기기를 기대한다. 진중권의 시계는 앞으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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