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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첫마디는 이거였다. 

" 여기 어떻게 찾아오셨어요?  

  다들 좀 한가하신 분들인가봐요..ㅎㅎㅎ"  

 

손들고  " 아니요! 저 여기 오느라고 팀장한테 아양 떨어 한시간 일찍 퇴근하고 

신랑한테는 중요한 강연이 있으니 꼬마 데리고 와서 저녁 드시고 계시라고 해놓고 

별로 익숙하지도 않은 자가용 몰고  

그 낯선 동네에 네비게이션 찍어가며 왔단 말이예요~~~ " 라고 말하고 싶었다.  

 

어찌되었건, 

그렇게 힘들게 가서 그 분의 강의를 듣고 싶었던 이유는 

사실 임꺽정이라는 고전에 대한 관심이 있어라기 보다는 

그 분의 공부에 대한 태도,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자유로움, 몸과 사상의 일체감 강조와 같은 

기존의 저작물에서 내가 매력적으로 느꼈던 것들을  

실제로 어떤 저자가 어떤 목소리로 이야기 하는지 들어보고 싶어서였다.  

 



  강연의 요지인 즉슨, 공부를 하는 목표는 

자기 존재에 대한 긍정을 위한 것이다 였다.  

아~ 얼마나 멋진 말인가....? 

내공이 쌓이면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쌓이고 

그럼 세상앞에 언제나 당당할 수 있다는 거... 

 

고 선생님도 참 당당해 보였다. 

옆집 아줌마같은 푸근함이지만 

그 말씀에서 느껴지는 강렬함은 

내공을 가진 자만이 뿜을 수 있는 것이니깐... 

 

나는 내가 왜 없는 시간 쪼개서  

이 분의 강연을 듣고 있는 이유를 생각해 봤다.  

사실 현실 속에서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저히 따라하기 힘든 것 이다.  

사람은 누구나 남들과 다르게 사는 삶을 택하기가 

힘들어 한다. 그저 남들과 비슷하게 사는 자신의 모습에 안도하고 위안 받으며 사는게 대부분의 범인(凡人)들 아닌가? 

 

하지만 저 분의 이야기를 책이나 강연으로 들으면, 아~ 이 세상에서 저렇게 살아가는 방식을 선택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 내가 당장 그런 삶을 택할 수는 없으나, 저렇게 다양한 사고를 할 수도 있다는 걸 배우는 것이다. 

그래서 내 삶을 조금이나마 조정하고, 나의 아이에 대해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과 좀 달라도 괜찮다는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 견고해 보이는 모든 잣대로부터 스스로 자유로와지는 노력을 할 수 있도록  내공을 쌓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 

특별한 날이 되었다.  2009년 한여름 중간의 어느 두어시간을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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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SF 작가 테드 창이 한국에 왔다. 1990년 데뷔 이후 장편 하나 없이 10여 편의 중단편이 '고작'인 그가 SF 관련 권위있는 상을 휩쓸며 팬들의 주목을 받는 힘의 원천은 뭘까? 지난 7월 18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환상교실에서 만난 그는 그런 '상복'이 단지 행운만은 아니란 걸 보여줬다.  

 환상교실 강연. 그의 작품을 번역한 김상훈씨가 진행했다. 

"제가 테드 창씨 작품은 읽어보지 않았는데요..."

2시간 가까운 대담(?)을 마친 뒤 이어진 Q&A시간. 맨 앞 줄에서 손을 번쩍 든 첫 질문자의 첫 마디에 강연장은 뒤집어졌다. 이어진 질문 역시 만만찮았다. 테드 창 작품과 직접 관련없는 조금 일반론적인 질문. 진행을 맡은 김상훈씨도, 통역자도 난감한 표정이 역력했다.

이 때문이었을까? 다음 질문에 앞서 진행자가 "테드 창 책 읽어보신 분만 질문해 달라"고 주문하자 다시 장내에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첫 질문자로선 무안할 수밖에 없는 상황. 잠시 뒤 그는 슬며시 자리를 떠났다. 테드 창도 낌새를 챘으리라. 통역자와 소곤소곤 몇 마디 주고 받던 테드 창의 말은 뜻밖이었다.

"제 책을 안 읽은 분도 질문해도 좋습니다. 이 자리는 '테드 창 페스티벌'이 아니니까요."

이 행사가 자신의 '팬미팅'이 아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페스티벌)'의 공식 섹션이라는 걸 새삼 떠올리면서, 자칫 멀어질 수 있는 자신과 청중 사이를 좁히는 한편 앞선 질문자와 진행자까지 배려한 한 마디였다. 낯선 외국인 작가의 '그릇'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중국계 이민2세인 테드 창. 아시아인 특유의 감수성이 느껴진다.

 
앞서 대담에서도 자신의 '색깔'은 분명히 하면서도 지나친 경계 짓기를 피하며 청중과 거리감을 좁히려 애썼다. '하드SF 서사의 논리와 글쓰기의 미학'이라는 딱딱한 '공식' 제목 대신 'SF적인 논리, 사고방식'이라는 비공식 제목을 정한 것부터 그랬다. '하드SF'란 말 자체가 생소한 데다 이를 어렵게 느끼는 SF독자들도 많다는 걸 알았으리라.

"<스타워즈>는 SF가 아니다!"

이 한마디와 함께 그는 먼저 자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SF'가 무엇인지 풀어놓기 시작했다. 흔히 SF와 혼재되는 '판타지'란 우주의 일부는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가정하에 이를 신이나 마법으로만 설명하려 한다. 그런 점에서 미래를 다룬다고 해도 '옛날 이야기'일 뿐이라고 말한다. 대표적인 게 '스타워즈'와 같은 우주모험활극. 반면 SF(과학소설)란 우주를 (과학적)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는 가정에 기반한다.

그는 '세계 3대 SF 작가'로 꼽히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죽은 과거>란 작품을 예로 들었다.

이 작품에는 먼 고대 시대를 탐사할 목적으로 개발한 '시간탐사기'란 신기술이 등장한다. 정부는 이 기술을 감추려 하지만 주인공은 끝내 시간탐사기 기술을 스스로 발견하고, 이 기술로 100년 이상 과거는 볼 수 없다는 것과 사실은 정부의 '감시장치' 역할을 했을 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하지만 주인공이 개발한 기술이 일반에 노출되면서 누구나 '시간탐사기'를 이용할 수 있게 되고 개인 사생활이 보호되지 않는 사회가 되고 만다는 스토리.

테드 창은 여기서 SF란 장르의 특색으로 '시작과는 곳과는 다른 곳에서 결론이 맺어지는 것', 즉 '새로운 기술로 인해 세계는 변화하지만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을 꼽았다.

이는 판타지의 일반적 '패턴'과 다르다. 판타지에선 평화로운 세상을 (부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악의 세력'이 등장하고 주인공이 이에 맞서 승리함으로서 다시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간다. 즉 현상유지란 측면에서 "기존의 것이 좋았다"라는 보수적인 정치 메시지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반면 SF의 패턴은 '익숙한 세상에 새 기술이 나와 세상은 변화하고 그 결과는 좋을 수도 나쁠 수도, 그 두가지가 공존할 수도 있지만, 어쨌듯 과거로는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변화는 불가피한 것이다"라는 진보적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것. 즉 "SF는 변화의 문학"이라고 강조한다.

그런 의미에서 판타지로 분류되곤 하는 테드 창의 일부 작품들 역시 엄밀한 의미에서 SF라 봐야 한다는 메시지로 들렸다.


 강연 뒤 따로 진행된 팬미팅에서 자신의 미발표 작품을 낭독하는 테드 창. SF마니아 등 150여명의 팬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죽은 과거>를 '진보적 SF'의 예라고 강조하는 그는 마이클 크라이튼의 '주라기 공원'을 상반된 사례로 꼽았다. '가설 기술'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SF처럼 보이지만 주인공이 인류를 지키려 '신기술'을 파괴하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진보적 SF와는 거리가 있다는 주장이다. <주라기 공원>에선 과거 공룡들을 되살리는 기술('유전자 복제기술')로 인한 부작용(인류 살상)을 부각시킴으로써 '기술은 악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는 것.

자신은 이러한 크라이튼의 관점에 반대한다고 분명히 했다. 특히 크라이튼의 다른 소설에선 '지구 온난화'를 마치 과학자들의 음모로 묘사함으로서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려는 정치적 메시지가 강하다고 비판했다. 크라이튼이 부시 대통령 때 백악관에 초대된 일을 거론하며(미 공화당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 협약 가입을 거부해 왔다), 소설가로서 '이런 태도'를 취하는 건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편 그는 SF 기반이 '기술의 민주화'를 의미하는 산업혁명임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판타지에 등장하는 마법사의 '크리스탈 볼'이 대량생산이 불가능한, 희귀하고 가치있는 것인 반면 SF에 등장하는 '시간탐사기'는 그 기술만 알면 누구나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 놀라운 기술을 사람들이 누구나 받아들인다는 사실'임을 강조한다. SF 작가라면 2가지 접근법이 가능한데, 우선 새로운 발명품이나 기술을 경이롭고 값진 것으로 설정한다면 판타지에 가깝고, 그 기술이나 발명품을 누구나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사회를 그린다면 SF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100년 전 지금의 자동차를 소재로 누군가 SF소설을 쓸 때 가장 빠른 자동차를 가진 영웅이 여자주인공을 위험에서 구하는 모습을 그릴 수도 있지만(판타지), 자동차가 지금처럼 보편화돼 교통 체증이 일반화된 사회에서 벌어지는 어떤 사건(SF)을 그릴 수도 있다는 것.


                                                  사인회. 팬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는 테드 창.
 


이어 존 발리의 1976년 작 <캔사스의 유령>을 예로 들어, SF란 현재와는 다른 세상을 작가와 독자들이 머릿속에 그려보는 일종의 '사고 실험'임을 언급했다. 이 작품은 사람의 기억과 인성을 일종의 은행에 백업해 뒀다가 지금 육체가 수명을 다하면 새로운 육체에 복제하는 기술이 보편화돼 '죽음'이 사라진 세상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현실에선 실험 단계일 뿐인 '복제기술'에 대한 독자들의 철학적 흥미를 유발하고 있다는 것.

앞서 <죽은 과거> 역시 누구나 시간탐사기를 가질 때 세계는 어떻게 될까, 라는 질문을 독자 스스로 하게 만드는 일종의 '사고 실험'인 셈.

그는 비록 '시간탐사기'는 (물리적으로) 존재할 수 없지만, '감시장치'의 등장은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실증한다. 우선 20년 전에 비해 PC 데이터 저장 비용이 급속도로 감소하고 있고, 검색엔진 기능이 급속도로 향상된 점을 감안할 때, (지금의 유튜브나 블로그가 진화돼) 앞으로 20년 뒤엔 자신의 인생 하나하나를 녹화한 뒤 저장해 뒀다 검색엔진을 통해 자신의 과거 일거수 일투족을 되돌아볼 수 있고, (해킹 등을 통해) 타인이 이를 훔쳐보게 돼 사생활과 비밀이 모두 사라질 가능성 역시 충분하다는 것이다.

한때 불가능할 것처럼 여겨졌던, 정부가 수억대의 CCTV를 설치해 국민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일 역시 비디오 카메라의 가격이 계속 떨어질 경우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는 지금도 일부 지역에서 현실화되고 있다.)

현재와는 다른 세상을 상상하는 이런 '사고실험'을 통해 사람은 자신과 자신의 가치에 대해 질문하게 되고 사고의 틀을 넓히게 되며 미래에 벌어질 문제들에 미리 대비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는 점에서 이런 사고실험들이 결코 '시간낭비'가 아님을 설파한다.

두서없이 받아적은 내용을 정리하다보니 정작 테드 창의 소설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은 빠뜨리긴 했지만, '진정한 SF'란 화두 하나만으로도 내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10여 년 전 <개미>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방문에 흥분하던 일조차 뇌리에 또렷할 정도로 외국 SF 작가의 방한은 우리나라에선 보기 드문 일이다. 그만큼 우리 SF 시장 자체가 협소한 탓도 있겠지만, 귀하디 뒤한 토종 SF 작가의 전복적인 상상력조차 '불온소설'로 오인되는 분단국가의 뿌리깊은 한계도 느껴진다.

"SF소설을 읽다보면 내가 흥미로워 하는 부분을 써 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기존 작가들이 써주지 않아 내가 직접 쓰게 된 거죠. 많은 작가들이 이런 식으로 되지 않나요?"

SF 팬에서 작가로 변신하게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부디 테드 창의 약발이 SF 마니아 양산에만 머무르지 않고 '테드 창이 썼으면 하는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자신의 작품으로 만드는 토종 SF 작가들이 많이 등장했으면 좋겠다. 20여 년 전 테드 창이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들을 탐독하며 느꼈던 것과 똑같이 말이다.

                                                                                            *별빛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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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 2009-07-24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생생해서 좋네요^^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맨발의 청춘`을 보았다. 신성일님도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보셨다. 막상 영화가 만들어졌던 당시에는 전편을 감상하시지 못했다고 한다. 영화를 보려고 앉아 있어도 팬들이 영화를 감상하실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 차분히 보시니 좋았다고 하신다. 당시에는 조연출 등의 스태프들이 영화의 단역으로 많이 출연했다고 하신다. 그래서 제작비도 절약되고 흥행에 성공하여 제작사, 상영관 모두 수익을 크게 올릴 수 있었다고 한다.  

영화가 끝난 뒤 이런저런 회고와 현재 우리 영화계의 문제점과 나아가야 할 방향과 님의 현재 동향 등을 말씀해 주시고 질문에 답변도 열심히 해 주셨다. 여전히 멋있으셨다. 얼마 전에 알랭 들롱의 화보를 본 적이 있는데 프랑스의 미남 배우가 멋있게 늙었듯이 우리 대한민국의 미남배우께서도 우아한 백발에 충분한 근육을 유지하셔서 정말 레전드임을 실감했다. 

기억에 남는 영화로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을 들어주셨다. 원작의 내용상 북쪽으로 가자는 대사가 있는데 제작 당시 시대 상황으로 인해 상당한 제약을 받은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하셨다. 그리고 출연작 중 최고로 꼽으신 것이 이만희 감독님의 `만추`였다. 문정숙씨와 함께 출연하였는데 최고의 영상미를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하셨다.  

요즘 영화가 너무 폭력적으로 흘러가는 것을 걱정하셨다. 그리고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제작사가 어려움을 겪는 것도 문제라고 하셨다. `맨발의 청춘`을 찍는 데에 필름의 길이가 1만 피트도 안 들었는데 요즘은 너무 필름을 낭비하는 점을 지적하셨다. 그나마 반성의 기운이 일어 저예산 영화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최근의 동향은 바람직하다고 하셨다. 선생님은 뮤지컬 학교를 열어 후진을 양성하시고 계시며 대학에도 초빙되셔서 정기적으로 학생들을 사사하고 계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영화를 많이 찍으실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가 꾸준한 체력 관리임을 강조하셨다. 시나리오 작가에게 한 마디 가르침을 달라는 질문에는 신봉승씨가 영화 `말띠신부`의 시나리오를 구상할 때 이화여대 기숙사에 들어가서 갖은 수모를 겪으면서도 열심히 취재한 일화를 소개하시며 `발로 쓰는 것`이 중요함을 명심하라고 주문하셨다. 

프랑스의 경우는 도시 다운타운의 심장부에 영상자료원이 있는데 우리는 너무 외곽지대에 위치해 있어 아쉽다고 하셨다. 우리 영화계의 원로로서의 애정이 진하게 묻어나는 느낌이었다. 

여기에 적지는 않지만 이런저런 말씀을 직설적으로 잼있게  하셔서 가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질 정도였다. 강연 후에는 일일이 대화를 나누시며 집필하신 책에 사인도 해주시고 사진촬영에도 응해 주셨다. 대구에서 바쁘게 활동하시는 중에서도 짬을 내어 자리를 마련해 주시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끌어주신 선생님께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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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만남 2009-07-13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dware님/상세한 후기, 감사합니다. 이 후기도 마찬가지로 강연 주제였던 신성일님의 <배우 신성일, 시대를 위로하다>를 '알라딘 상품넣기'로 추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번에 나온 <도시심리학>은 작가의 6번째 저작물입니다. 1년에 1권씩 꾸준히 써오고 있습니다. 아래는 본 책과 관련한 강연 요지입니다. 

거리를 다니면서 보는 수맣은 이미지들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나의 삶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즉석김밥집은 24시간 영업하지만, 예전에는 어머니가 만들어야만 먹을 수 있는 김밥이었는데 대비됩니다. 식혜도 마찬가지로 언제 어디서나 사먹을 수 있게 되었죠. 요즘은 된장찌개를 돈 주고 시켜 먹으면 아깝다는 이미지나 생각이 형성되었죠. 고기 먹고 밥 시키면 된장찌개는 따라 나오기 때문이죠.  

동물행태학 공부하고 나면 기러기가 북쪽 시베리아로 날아가는 것은 알지만, 기러기가 가는 도중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그 방법론으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거시적 관점 뿐만 아니라 현미경으로 쪼개어 보아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본 책은 24꼭지(24시간의 의미 함축)로 기획했으나 22꼭지로 결국 만들어졌습니다. 나의 성격은 내가 타고난 것과 환경과의 상호작용의 결과물입니다. 현재의 optima 타협점 속에 나는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는 욕망과 이를 breaking하는 죄의식, 윤리의식 간의 타협점을 찾는 것입니다. 에스컬레이터 한줄서기 트렌드가 유행했으나 최근에는 두줄서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3,400여명이 다친데다가 연예인의 캠페인 후에 확산되기 시작했죠. 한쪽으로만 서면 승강기가 잘 고장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편리성 때문에 캠페인, 강제해도 잘 안 되고 있죠.  

우리의 삶의 모습은 어떤 타협점을 찾는 것입니다. 네이키드 뉴스를 보면 관음증,노출증 문제를 제기하는데 이러한 욕망을 병리로 해석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즈음 모든 것을 정신과 병리적으로 해석하려는 태도는 문제입니다. `아하 현상`은 일들이 반복되는 것 같은 현상입니다. 패턴 반복의 연관성을 찾아내고 그때서야 `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무의식적 반복을 알아내고 그 다음에 어떻게 할 것인지는 선택의 문제입니다.  

<소통과 관계>  

휴대폰 전화보다 왜 문자를 선호하게 되었을까요. 커뮤니케이션 패턴은 동시성과 비동시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동시성`은 순발력을 요구합니다. face to face나 전화가 그 예이죠. `비동시성`은 완급 조절이 가능하고 내가 페이스를 조절할 수 있다는 안정감을 줍니다. fax나 메일, 문자메시지가 그 예입니다. 우리는 자동응답기 잘 사용 안 하지만 미국은 영화,드라마 보면 자동응답기 많이 사용합니다. 그 이유는 1) 나의 생각의 흐름의 지속성이 타인에 의해 interrupt되는 것이 싫기 때문입니다. 쿨하게 굴자는 거죠. 2) 내가 조절하고 싶다는 욕망, 욕구 때문입니다.  

너무 강한 기술은 정착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예를 들어 3D 영상통화는 우리 나라에서는 실패했습니다. 알리바이가 다 들어나기 때문이죠. 친구찾기의 위치추적 기능도 외면받고 있죠. 나의 프라이버시, 나의 城, 내 방을 지키고 싶은 욕망과 타인가 교류하고 싶은 욕망의 타협점의 예가 문자메시지나 발신자번호표시 제도의 많은 이용이죠. 

`찰리 브라운` 중에 나오는 `라이너스의 담요` 이미지를 보면 이를 이행기 대상이라고 합니다. 인형, 배개를 남의 집에 갈 때 들고 가는 거죠 엄마가 안 보이면 어릴 때 불안해하죠. 조금 더 자라면 안정감을 느낄 물건을 찾습니다. 현대인에게 휴대폰이 그런 의미라고 할 수 있죠.누군가와의 connection과 확인받고 싶은 욕망을 구현해주죠. 일종의 가성(pseudo)친밀감이죠. 미니홈피나 블로그를 통해 만난 적 없는 사람들과 소통하죠. 대리만족이랄까요. 요즘은 연인이 헤어질 때 문자로 통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려움과 해결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죠. 이러한 문자를 받은 사람도 전화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것이죠. 실연한 대학생이 외래로 내원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두려워서 만나서 확인해서 풀지 못하는 요즘 세태를 보여줍니다.  

몸과 몸이 부딪치는 고전적 스타일이 기본에 깔려 있어야 합니다. 휴대폰 전화번호부에 수백 명이 입력되어 있지만 어떤 때는 연락할 데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외로움을 벗어나서 소속되어 있다는 안정감의 추구와 혼자 있고 싶은 마음과의 딜레마가 현대도시인에게 나타나고 있죠. 커피 문화에서 그 예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나만의 레시피를 추구하면서 커피 주문시 복잡하고 개성적인 요구 사항을 전달합니다. In divid ua tion(분절하면 더 이상 자를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 가능함)  개성화, 개인화는 개인주의(이기주의에 가까움)와는 구별됩니다. 나의 장점을 인정하면서도 한계도 인정하는 인간이 성숙한 인간입니다. 2) 어딘가에 속해 있는 나라는 것을 확인했을 때의 동질감도 중요하죠. 나와 네가 같다는 느낌을 믹스커피를 나눠 마시면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커피믹스는 모든 사람에게 일정한 평균적 친밀감을 주어서 잠깐이라도 하나 되는 느낌을 줍니다. 우리 나라 시장의 75%를 냉동건조커피가 차지하고 있죠. 

위의 두 가지 모드가 내 안에서 왔다갔다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나라는 사람의 개성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입니다. 에릭슨은 개인적 정체성과 사회적 정체성이 통합되는 것이 성인의 정체성(Identity ; ID)이라고 합니다. 정체성은 내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에 있으며 어디를 향해 가는지 알고 있을 떄 확립되는 것입니다. 일종의 벡터값이죠. 나를 소개할 때 내 이름이 제일 나중에 옵니다. 사회적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들(직장, 직함 등)이 소개할 때 먼저 나오게 됩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이 성인기의 가장 큰 딜레마입니다. 노래방에 갔을 때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와 조직이 분위기상 내게 요구하는 노래 사이에 딜레마가 존재합니다. 성공한 삶일수록 하고 싶은 것에 대한 포기가 많아져 직자인 사춘기(5년 근무, 3년차 대리)가 와서 내가 뭐지 하는 회의가 찾아옵니다. 나를 잃어버린다는 느낌도 들죠. 7년 정도 지나면 반년치 월급의 비용으로 여행을 가거나 공부 또는 창업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현대 도시에서의 삶이 가진 좋은 점은 내가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stereo-type의 삶이 아닌 `다름`(틀렸다는 가치 평가가 아니라)을 인정해주는 사회가 좋은 사회입니다. 선택의 문제는 존중받아야 합니다. 우리 나라의 경제 발전으로 인해 도시적 삶이 가능해지면서 내가 원하는 부분을 선택할 여지가 생겼죠. 도시적 삶의 리듬은 slow life인 농촌에서의 리듬감과는 다릅니다. 찰나적 변화를 원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미국에서의 설문조사 결과 성형수술의 만족도가 가장 큰 것이 가슴이고 그 반대가 코라고 합니다. 가슴은 따로 놀지만 코는 우리 얼굴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균형감의 영향이 크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현대 도시의 삶은 누군가와의 관계 설정시 파악할 시간이 짧습니다. 0.2~0.3초의 찰나에 첫인상으로 좌우되기 때문이죠. 백그라운드는 쉽사리 바꿀 수 없고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첫인사은 쉽게 바꿀 수 있다는 `변신환상`이 있습니다. 그 약점은 미운오리새끼, 백설공주 등의 전래동화에서 보듯이 자기 노력이 들어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rescue fantasy(구조환상)이나 orphant fantasy(고아환상)이 그 예인데,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인 자아존중감(자기정체성)이 낮은 사람은 뭘 해도 안 된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다른 점들은 다 좋은데 하나가 문제인 경우를 커버(성형)하려는 것은 노력으로 봐줄 수 있다고 하십니다.  

욕망이라는 것은 강화되고 합리화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지름신이 강림했다는 구매욕구가 그 예입니다. 이것과 구별되는 것이 쇼핑광입니다. 쇼퍼홀릭은 병이죠. 죄의식,도덕관(인내, 근검절약)이 욕망을 주저하게 만들죠. 그래서 밖의 초월적 존재(지름신)에 일종의 방어기제를 만들어 투사하는 것이죠. 썰렁한 농담하기, 허탈하면 크게 웃기도 일종의 방어기제입니다. 투사에서 합리화로 이어지는 현실에서 만족감을 얻고 싶은 장치이죠. 

<결론> 

내가 나이고 싶은 욕망과 어딘가 소속되고 싶은 욕망 사이의 갈등은 항상 존재합니다. 도시의 삶은 나의 욕망들을 충족시켜 주는 장치들(적당한 가격, 적당한 재화)을 갖고 있습니다. 도시적 삶의 trinity(삼위일체)는 자동차, 인터넷, 휴대폰입니다. 그런데 주의할 점은 내가 나의 삶의 조건들을 주도권을 쥐고 끌고 가야지 끌려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킹스크로스역의 벽에서 wizard의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을 보는 자만이 알 수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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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만남 2009-07-13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dware님/상세한 후기, 감사합니다. 강연 주제였던 책을 검색하신 분들도 함께 보실 수 있도록 위 페이퍼에 하지현 교수님의 <도시 심리학>을 '알라딘 상품넣기'로 추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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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몇년 동안 연극 볼 일이 거의 없었는데, 유난히 올 여름들어 연극을 자주보게 된다.
전쟁,사랑,예술을 이야기하던 <환상동화>, 영화 왕의 남자 원작극 <이(爾)>에 이어 풍자음악극 <그 놈이 그 놈> 까지 한달 동안 세 작품. 아마도 <차이와 반복>을 공부한 후로 예술을 접하는 어떤 다른 느낌들을 필요로 해서 그렇게 된건가 싶다. 어쨎든 내가 보고 싶어 하여 본 연극들 이니까...

알라딘 문화초대 이벤트에 당첨이 되었다는 문자메세지를 받았다. 9일 <그 놈이 그 놈> 관람 이벤트에 응모한 것이 된 모양이다. 첫 당첨이라 기뻐서 꼭 가겠다고 다짐했지만, 막상 당일이 되자 비가 너무 많이 쏟아져서 갈까 말까 한참을 망설였다.
그러고 있는 사이 비가 개었고, 비록 혼자지만 룰루랄라 대학로로 향했다.
풍자 음악극이라 하여 음악적 요소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 줄 알았지만 그런 건 없었고, 극에 사용되는 연주음악과 노래반주, 그리고 효과음을 라이브로 한다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라이브 음악이 있으니 현장감이 살아있어서 좋기는 했다.

배우 6명이 19인의 역할들을 '퀵 체인지'라 이름지어진 테크닉으로 재빠른 역할 전환을 하면서 놀라움과 재미를 주기도 하고, 뛰어난 연기력으로 요소요소에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장면들을 보여주었다.
크게 박수를 보내주고 싶은 것은 이렇게 재빠르게 역할을 바꿔가면서도 각각의 캐릭터들이 나름대로 살아있도록 해야하기 때문에 엄청난 연습에 따른 빼어난 연기력이 돋보인 다는 점이다.
연기력에 노래 실력까지 완벽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약간 무리였을까? 배우들이 노래를 통해 감동까지 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첫 회 공연을 봐서 그럴지도 모르니 이 부분은 얼마나 더 좋아질 지 좀 더 지켜보고 싶다.

개인적으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 점은, 세태 풍자가 있다니 뭔가 신랄한 비판을 기대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코믹한 버전으로 웃으면서 조롱할 수 있게...
그런데 우리가 웃음꺼리로 삼으려한 인물들이 연인관계의 연쇄살인범, 국회의원, 유명여자연예인, 춤교습제비, 돈밝히는 복부인 등등 이라니... 너무 일반적이지 않나... 그래서 애초에 기대했던 세태 비판에 대한 기대는 접어야 했다. 하지만 한가지 눈여겨 볼 점은 비판받아 마땅한 그 캐릭터들을 심판하여 벌을 내리는데, 그 벌은 바로 여러가지 가면을 쓰고 살지 말고 하나의 가면만 쓰고, 한가지 모습으로 살라는 판결이다.
이 것이 이 연극이 던져주는 강렬한 메세지일 것이다. 우리는 어떤 자기동일성에 따른 동일한 자아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자기 삶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되도록 유지하면서 살려고 하는 의지는 있지만 삶 속에서 그리 쉽게 유지되지는 않는다. 그런 비인칭적자아를 가진 우리들에게 조금도 어긋남이 없는 자기동일성의 모습을 가지고 살라니 감옥없는 감옥에 갇혀 사는 것과 다름 없는 일이다. 어찌보면 가혹하고도 가혹한 형벌이 아닐까? 그런데 우리는 그런 감옥에 알아서 들어가서 감옥살이처럼 준수하게 살려고 하고 있지는 않은가?
연극 <그 놈이 그 놈>은 이런 생각들을 목구멍에 걸린 생선 가시 처럼 남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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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별 2009-07-21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먼코메디를 살앙하는 팬으로써 추석씬이 축약된 내용을 길게 늘어놓은 느낌... 그들이 무대에 서면 달려가게 되는 중독성...아쉬우면 아쉬운대로 좋으면 좋은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