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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을 용기 -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다
이승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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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4월...

죽은줄 알았던 나무에서, 황량한 벌판에서 새싹이 돋아나고 온갖 꽃들이 다투듯 피어난다.

거리가 온통 화려한 색깔로 물들고 이를보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훈풍이 분다.

그렇게도  긴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때를 알아 마음껏 자신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들판에 피어있는 야생화를 보면 꾸미지 않은 단아한 매력이 느껴진다. 또한 여러 꽃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비슷해지려하지 않고 각자의 개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바로 이러한 부분을 자연은 우리에게 가르친다.

 

남과 비슷해지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신의 존재 그자체를 사랑하고 자신의 길을 가는 것, 하지만 고집불통처럼 독단적이지 않고 주변의 식물들과 조화를 이루는 것,

바로 공자가 말했던 화이부동(和而不同)의 다름 아니다.

 

우리는 화하고 동해야만 마음에 안정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 안정감을 유지하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말과 행동을 하면서 관계속에서 상처를 받는다. 그렇다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있는 것인가. 들판에 피어난 각양각색의 생명체들처럼 자신만의 독특한 모양과 색과 향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인가.

 

저자는 자존감의 회복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자신을 높이는 감정으로부터 자신이 존재한다는 감정으로의 전환,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이 살아있고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는 것을 자존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자존감을 키우고 높이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자는 성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자신이 어떠한 상황에 있더라도 개인적인 성찰을 통하여 자신의 삶을 자존감을 높일 수 있다. 비록 단번에 성과가 나지 않더라도 성찰의 과정 자체가 의미있으며 자신의 생각을 한단계 높이는 계기가 된다.

 

행복이란 그냥 존재하거나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행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 또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다양한 인문학적인 생활, 사람과의 관계등 중요한 것이 많지만 자신만의 조용한 시간을 내어 찬찬히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것, 그리고 그를 통해서 생각과 관점의 전환이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현재도 많은 사람들이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웃고 울고 있다. 언제까지 상처만 받고 살것인가. 

당장 답답한 콘크리트 건물에서 나가 주변을 둘러보자. 그러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눈에 봐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피어난 풀과 야생화들,

그리고 각자 자신의 모습으로 함께 어울려 있는 모습들을..

 

자신이 누구든 세상에 유일한 존재이며, 비교할 수 없는 존재이며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책속의 문장>

"믿음을 바탕으로 친구를 사귀며, 내 친구들은 우리 부모처럼 나의 허물과 단점에도 불구하고 나를 좋아해줄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사람을 대하는데 있어서 불안감이 생기지 않는다. 세상의 다른 사람들도 우리 부모처럼 다정다감하다 생각하기 때문이다(42)"

 

"안정적인 양육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부모의 관심을 끌기위해 특별한 행동을 할 필요가 없는 반면, 반대의 경우 아이들은 특별히 주목받을 수 있는 환경을 계속 찾아낸다는 것이다. '저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이다'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을 때 주변 상황에 덜 민감해지고 스스로 중심을 지켜나갈 수 있게 된다(43)"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 이런저런 순간에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를 스슷로 알아차리며 사는것이 자존이다(58)'

 

"다양하게 인정받은 경험이 모여 나의 자존감을 형성하고, 이 자존감은 어떠한 비난과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중심을 만든다. '나를 스스로 높이고 존중하고 마음을 키워 나가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내가 존재함, 내가 살아있음'을  이해하고 느끼는 과정을 거처야 한다.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내가 요즘 하고있는 생각들, 내가 관심을 가지는 것들,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에 대한 조용한 성찰이 필요하다"

 

"특정한 상황에서 자신이 할수있는일이 거의 없다고 생각될 때, 또는 이런 사황이 반복될 때 절망에 빠지기 쉽다. 마르틴세리그만 이라는 사람의 유명한 이론중 학습된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라는 실험이 있다(158)"

 

"나를 표현하는 방법을 I-massage라 한다. 상대방은 아무리 가깝더라도 내가 표현하지 않는 감정을 알기 어렵다.

내가 어떻다는 것이지 내가 어떻다는 것을 전하는 말이 아니다. 따라서 불필요한 상대방의 적개심을 완화할 수 있다. 이는 상대방이 보다 편안하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해준다. 나의 감정 상태를 솔직하게 밝히는 말이기 때문에 보다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고, 내 감정의 이유와 상대에게 바라는 점도 상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도록 해준다"

 

"최대한 절제된 톤으로 '나는 당신이 ~헤서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해수질 수 있으신지요'라고 말하면 된다. 상대에게 바라는점도 명확히 밝혀야 한다.

감정은 최대한 유치하게 표현하면 좋다. 어런아이처럼(`169)

 

"자존감은 살아 있음을 느끼기 위한 행동이다.

'나라는 우주안에 스스로의 존재를 가득 채우는 일, 이를  위해 내 존재의 근육을 키우는 일, 이것이 '존재로서의 자존감'을 지키는 일일 것이다(185)"

 

"우리는 무엇이든 항상 남들과 함께 해야한다고 생각했던것 같다. 맛난 음식도 누구와 같이 먹어야 하며, 영화관에 가서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아도 누군가 내 옆에 앉아 있어야 마음이 든든하다. 혼자가는 산책은 심심하고 혼자먹는 점심이나 혼자 퇴근길에 기울이는 술 한잔도 왠지 어색하다. 남의 시선도 시선이지만 혼자서 뭘 해본 기억이 없다는 것이 더 큰 원인일 것이다. 혼자 있어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서 이러한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 외로움에 몸서리를 친다"(191)

 

"세상이 존재하려면 내가 존재해야 한다"(197)

 

"사람들은 대학에 입학하거나 직장에 입사하는 등 인생에 있어 중요한 결정등을 내리고나면 앞으로 더 큰 일은 일어나지 않을것이라는 생각에 '모험'을 하기 보다는 현상태를 '유지'하려한다. 현 상황을 유지 하는데 큰 결단이나 성철이 필요가 없다. 주어진 시간표대로 살면 된다.

원하기만해도 직장을 옮길 수 있다면, 조건과 적성 사이에서 고민할 수 있는 여유가  여전히 존재한다면 자기 성찰은 끊임없이 이루어 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여유가 없다. 적지않은 나이에 모험을 택하는 사람에 대한 주변의 반응을 봐도, 어른들의 사회가 '유지'의 사회임을 알 수 있다.

어느날 직장을 때려치우고 기약없는 배낭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나,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미래가 불확실한 사업체를 꾸리는 사람, 새로운 사람을 찾아 가정을 떠나는 사람들에 대한 주위의 시선은 어떠한가? 그나마 세상이 변해 많은 사람들이 멋있고 부러운 결정이라며 축복해 주지만, 이러한 축복속에는 무모하고 미성숙하며 무책임한 그들을 향한 비난이 숨어있다. 사실 어찌보면 가장 부러운 것은 그러한 결정을 하게 만드는 '용기'일지 모른다.

안정적 삶의 궤도를 벗어나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에 대해서 옹호하거나 반박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들이 그러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얼마나 치열하게 자신의 삶과 욕구를 이해하기 위한 시간을 보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떠한 결정을 내렸는가하는 문제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성찰의 과정을 겪었다는 것이다.

깊은 성찰 뒤에 인생을 뒤집을 결정을 내릴수도있고 현재의 삶을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결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두가 늦었다고 말할 때에도 자기 성찰을 할 수 있는 심리적인 여유와 동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성찰은 의미있는 것이고 존중받을만하다(199-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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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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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란 무엇일까. 단순희 책을 읽고 감명을 받고 전과는 다른 생각을 하며 삶을 살아가는 것? 물론 변화에 대한 저마다의 정의가 있을 것이다. ‘담론에서 작가는 단순히 기술을 익히고 언어와 사고를 바꾼다고 해서 변화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맺고 있는 인간관계가 바뀜으로써 변화가 완성된다. 이것은 개인의 변화가 개인을 단위로는 완성될 수 없음을 뜻한다라고 말한다.

이렇듯 관계 즉 관계는 담론의 일관된 화두다. 작가는20년간의 수형생활 동안 끊임없는 자기반성과 성찰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 변화란 개인만의 생각과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 맺기를 통하여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고 보았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클래식이 위대한 것은 시대의 조류에 상관없이 언제나 새로운 재해석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담론에서의 고전 재해석 또한 새롭다. 그리고 수형생활 일어나는 작은 에피소드를 통한 성찰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 시키려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성찰을 통한 변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가 그와 함께 생활하던 수형 생활의 사람들과 다르지 않고 같은 처지에 있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바로 입장의 동일함은 관계의 최고의 형태라고 강조한다.

갈수록 각박해지고 인간관계의 단절이 심화되는 이 시대에 담론은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면서 고통과 아픔을 이겨내고, 도우면서 감사하자고 한다. 함께 한다는 것. 그러면서 작은 변화부터 실천하여 이뤄내는 것. 그러면서 세상을 향한 자부심을 가지고 남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삶을 당당히 살아가는 것. 이것이 고인이 된 작가의 마지막 유훈인 듯 싶다.

자신이 외롭고 혼자라고 느낄 때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은 축 처진 어깨를 어루만져주면서 함께 옆에서 말없이 서 있어줄 것이다.

 

 

자신의 존재론적 한계를 자각하고 스스로를 바꾸어 가기를 결심하는 변화의 시작, 탈주이고 새로운 관계의 조직이다.”

 

모든 존재는 고립된 불변의 존재가 아니라 수많은 관계 속에 놓여있는 것이며 그러한 관계 속에서 비로서 정체성을 갖게 된다. 바꾸어 말한다면 정체성이란 내부의 어떤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맺고 있는 관계를 적극적으로 조직함으로써 형성되는 것이다.

 

독서 후 망각하는 것은 단순히 독서로 끝나버려서 이다. 책을 읽었으면 실행에 옮겨야 한다. 그리고 그 책을 찢어버려야 한다.”

 

차이를 존중하고 다양성을 승인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차이와 다양성은 그것을 존중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 차이는 자기 변화로 이어지는 또 다른 출발 이어야 한다. 차이는 공존의 대상이 아니라 감사의 대상이어야 하고, 학습의 교본이어야 하고, 변화의 시작이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노마디즘(유목주의)

 

똘레랑스는 은패된 패권 논리다. 타자를 바깥에 세워두는 것이기 때문에 타자가 언젠가 동화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강자의 여유이기는 하지만 자기변화로 이어지는 탈주와 노마디즘은 아니다

 

자기변화는 최종적으로 인간관계로서 완성되는 것이다. 기술을 익히고 언어와 사고를 바꾼다고해서 변화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최종적으로는 자기가 맺고있는 인간관계가 바뀜으로써 변화가 완성된다. 이것은 개인의 변화가 개인을 단위로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기 변화는 옆사람 만큼의 변화밖에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자기가 맺고있는 인간관계가 자기변화의 질과 높이의 상한이다.”

 

변화는 결코 개인 단위로 완성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모든 변화는 잠재적 가능성으로서 그 사람속에 담지되는 것이다. 그러한 가능성은 다만 가능성으로서 잠재되어 있다가 당면의 상황속에서, 영위하는 일 속에서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발현되는 것이다. 자기 개조와 변화의 양태는 잠재적 가능성일 뿐이다. 그런 변화와 개조를 개인의 것으로, 또 완성된 형태로 사고하는 것 자체가 근대적 사고의 자재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 사람의 인생사를 경청하는 것이 최고의 경청이다

 

대전의 노랑머리 창녀의 사례를 보며, 그 사람의 처지에 대해서는 무심하면서 그 사람의 품행에 대해서 관여한다는 것, 인간의 오만과 천박함,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수순한 어떤 것을 상정한다는 것은 참으로 왜소한 인간관이 아닐 수 없다.”

 

무궁화는 덕이 있는 꽃이다. 벌레와 함께 진드기까지 함께 살아가지 않느냐. 우리의 생각이 틀렸다. 꽃은 사람들의 찬탄을 받기위해 피는 것이 아니다. 자기의 아름다움을 위해 피는것도 아니다. 빛과 향기를 발하는 것은 나비를 부르기 위해서다. 오로지 열매를 맺기 위한 것이다. 시들어서 더 이상 꽃이 아니라 하지만 그 자리에 남아서 자라고 열매를 조금이라도 더 보호하려는 모정이다. 꽃으로서의 사명을 완수하고 있는 무궁화는 아름답다.”

 

약자의 위악과 강자의 위선, 약자의 위악은 잘 보이지만 강자의 위선은 잘 보이지 않는다. 잘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잘 보지 못한다. 위선과 위악의 베일을 걷어 내는 공부가 필요하다

 

공부는 우리의 동공을 외부로 향하여 여는 세계화가 아니라 우리의 내면을 향하여 심화하는 인간화가 아닐 수 없다.”

 

참된 인식이란 관계맺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인식이란 주체와 대상의 엄숙한 혼혈의식,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관계없이 인식 없다

 

머리좋은 것이 마음 좋은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것만 못한 법이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적 연대가, 실천적 연대 보다는 입장의 동일함이 더욱 중요하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이다.”

 

인식은 그것이 어떤것에 대한 인식이든 가장 밑바탕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러닝셔츠 없어도, 치약 없어도 떳떳한 게 차라리 낫다는 것이었습니다. 물질적 조건이 나아지는 것도 어려움을 견디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차라리 그런 것이 없더라도 떳떳한 자존심이 역경을 견디는 데 더 큰 힘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말처럼 자부심은 고난을 견디게 한다. 물질적 도움 보다는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것이 더 큰 힘이 된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다

 

혹서의 교도서 안에서의 고통,, 옆 사람을 향하여 부당한 증오를 키우지 않기 위해서 그 증오를 만들어 내는 보이지 않는 구조를 들어내고 우리를 가두고 있는 보이지 않는 감동을 들어내는 것이 공부의 목적이 아닐까

 

겨울을 선호한다. 몸이 차가울수록 정신은 은화처럼 맑아지기 때문이다. 겨울은 어지러운 생각을 청리하는 철학의 계절이다. 기상 한 시간 전에 일어나 찬 벽에 기대고 앉아서 열중했던 명상명상은 현재의 공간을 벗어나는 정신적 탈옥이다. 강의의 화두로 삼고있는 관계론의 산실이 겨울 독방이었다.

세계는 관계다. 나는 관계다. 아픔과 기쁨의 근원은 관계다

나의 겨울 독방은 무한한 시공으로 열려있는 정신적 비약이었다.”

 

증오하는 대상이 이성적으로 파악되지 못하고 말초 감각에 의해서 그릇되게 파악되고 있음을 발견하고 스스로 놀란다.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증오의 감정과 대상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으며 그런 자신에 대한 혐오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실망한다. 지금을 그때만큼 춥지않다. 덥지도 않다.

자신의 생각을 서슬 푸르게 벼를 수 있는 계절이 없다. 그것은 어디에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과제라면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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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의 미학이란 것은 극한 된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이공이산寓公移山을 쓴다고 하자. 첫 획을 너무 위로 치켜 그었다고해서 그것을 지우고 다시 쓸수는 없다. 인생과 마찮가지다. 지우고 다시 쓰거나 개칠치 못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다음 획으로 그 실수를 만회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한 자字가 잘못된 경우에는 그 다음 자 또는 그 다음다음 자로 보완해야 한다. 한 행은 그 다음 행으로, 그리고 한 연은 그 옆의 연으로 조정하고 조정시켜가야 한다. 그런 고민을 끊임없이 하면서 써야 한다. 그렇게 하여 얻게되는 한 폭의 글씨에는 실패와 사과와 감사등 파란만장한 인생사가 담긴다. 서로의 관계론은 획,,,연의 조화에 그치지 않는다. 최종적으로는 흑과 백이 조화를 이루워야 한다. 상당한 정도의 필력이면 까만 부분을 보지 않아도 된다. 하얀 부분이 얼마나 더 남았나를 더 많이 본다.”

 

 

처럼 한 획의 실수는 그 다음 획으로, 또 한 글자의 실수는 그 다음 글자로 만회해 가면서 씁니다. 자연히 획과 획, 글자와 글자가 서로 기대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방서와 낙관을 합니다. 전체 균형에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고 있는, 실수와 사과와 도움과 감사가 어우러져 있는, 그러기에 삶과 인생이 그 속에 담겨있는 경우 그것을 서로의 격조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이를 테면 구조에 있어서의 서도의 관계론이다.”

 

사람의 학식이 글에 담긴다. ,,사상과 뜻이 글에 담긴다. 최종적으로 그 사람과 같다.”

 

최고의 기교는 졸렬한 듯 자연스러운 것이다. 기교라는 것은 반 자연이다. 붓글씨도 마찬가지다. 명필이나 대가의 글씨는 졸렬하다. 졸렬해 보인다. 날렵하거나 아름답지 않고 어리숙하다. 어리숙하면서도 깊이가 있고 진정성이 느껴지고 싫증이 나지 않느다.”

 

나카지마 아쓰시의 단편작품 명인전’, 불사지사

 

대인춘풍 지기추상, 남을 대하기는 춘풍처럼 관대하게하고, 반면에 자기를 갖기는 추상같이 엄격해야 한다

 

콜롬버스의 계란 세우기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것은 단순히 발상의 전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계란의 모양은 어미 닭이 체온을 골고루 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어미품을 빠져나가 굴러가더라도 다시 돌아오게끔 만들어진 타원형의 구조이다. 바로 생명의 모양이다. 이것을 깨뜨려 세운다는 것은 발상의 전황이기에 앞서 생명에 대한 잔혹한 폭력이다.”

 

보르헤스 촛불, 촛불은 어둠을 밀어낼 수 있을뿐 그 대신 별을 보지 못하게 한다

 

 

나 자신이 등가물이었던 경험을 소개하겠다. 나는 오로지 무게로만 서있었던 경험이 있다. 자르는 나무가 움직이지 않도록 밟고 있는 역할이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내게는 나무를 밟고 움직이지 않도록 하는 몸무게 이외에도 여러가지 능력이 있다. 그런것이 모두 사장되고 오로지 몸무게 으로서만 의미가 있구나 하는 처량한 생각이 들었다. 등가물은 그 물건의 속성이 모두 사라지고 오로지 교환 가치만 남아있는 것이다.”

 

 

조광조가 죽고나서 우리나라 개혁 세력들이 일대 반성을 한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시작된다.

중앙->지방, 정치투쟁->사상투쟁, 기동전->진지전으로…”

 

 

갇히지 않는 사유, 100년후는 아니더라도 10년 후, 20년 후의 사유를 선취先取 할 수 있는 그런 사회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지식인 담론의 실천적 과제라 할 수 있다.

 

 

나는 나의 정체성이란 내가 만난 사람, 내가 겪은 일들의 집합이라고 생각한다. 만난 사람과 겪은 일들이 내 속에 들어와서 나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과 일들로부터 격리된 나만의 정체성이란 있을 수 없다. ‘나는 관계다를 주장하는 이유다. 독방은 내게 최고의 철학 교실이었다

 

내가 자살하지 않은 이유가 햇볕이라고 한다면,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하루하루 깨달음과 공부였다.

반 에덴의 동화 어린요한의 한 구절 버섯이야기….

 

이건 독버섯이야….~~~ 그건 사람들이 하는 말이야. ‘독버섯은 사람들의 식탁 논리다. 버섯을 식용으로 하는 사람들의 논리다. 버섯은 모름지기 버섯의 이유로 판단해야 한다. ‘자기의 이유이것은 우리가 지켜야 할 자부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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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박한 공기 속으로
존 크라카우어 지음, 김훈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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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로 끊임없이 전진하고 싶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상황이 있다. 도전하는 사람들은 항상 아름다워 보인다. 미지로의 여행에 대한 대리만족으로 이 책을 선택했다. 처음에는 소설인 줄 알았으나 1996년 에베레스트 원정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기록한 기록물이었다. 읽으면서 알았는데 최근에 개봉한 에베레스트라는 영화가 이 책을 원작으로 한 내용이다.

작가 자신의 직접 경험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기록하려는 노력이 느껴졌다. 또한, 에베레스트의 등반 역사 및 기타 원정등반에 대한 세부 상황을 매우 자세히 묘사했다. 전에 읽었던라인홀트 매스너의 글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존은 당시의 상황 재구성을 위해 당시 등반에 참여했던 주요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인터뷰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사실이라 믿었던 진실들이 왜곡된 부분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의 기억이란 100% 믿을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항상 자신의 의도대로 왜곡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예전부터 고산에서는 저산소증으로 인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1996년 당시 상황을 보며 역시 인간은 불안전한 존재이며 완벽한 계획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자만심은 언제나 화를 부른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산소가 지상의 1/3밖에 없는 곳에서는 오죽하겠는가.

정상 등정을 위한 설명서가 있다. 정해진 시간에 꼭 하산해야 한다는 것. 아무리 정상이 눈앞에 있더라도 시간이 되면 무조건 안전을 위하여 하산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밑 빠진 독 같은 욕망은 바로 눈앞의 목표를 두고 그들을 쉽게 돌아서게 하지 못한다. 그들을 돕는 가이드 또한 각자의 이해관계 때문에 고객들의 안전을 망각해 버렸다. 등반에 관련된 모든 사람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져 버려 더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이러한 대형 참사 후 일본 원정대가 정상등정을 시도하던 중 조난상황에 빠진 인도 원정대원을 만난다. 하지만 그들이 그냥 그들을 외면하고 지나치는 장면이 있다. 너무도 섬뜩한 장면이면서 한편으로는 이해가 간다.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는 목표를 눈앞에 두고, 자신들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목표를 포기하고 조난자를 돕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 상황에 있어 보지 않고는 누구도 자신은 어떻게 하리라 단언할 수 없으리라.

조난자를 구조하려는 정의에 넘치는 눈물겨운 장면도 볼 수 있다. 그러한 상황이 닥친다면 나는 과연 어떠한 선택을 할까. 결국은 사람이 우선이 아닌가.

고산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다양한 욕망의 내면을 보면서 과연 이러한 상황이 꼭 고산에서만 벌어지는가 싶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현실 또한 또 하나의 에베레스트인 것이다.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물질만능주의, 무분별한 등반으로 인한 환경파괴, 셰르파족 사회의 급격한 변화로 인한 문제점들 등 앞으로 생각하고 해결해야 할 많은 질문을 이 책은 던져준다.

 

“사건이 일어난 뒤에는 지혜가 쉽게 우러나오는 법이다

 

 

외로우므로 사람이며 완벽하지 않기에 인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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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로 끊임없이 전진하고 싶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상황이 있다. 도전하는 사람들은 항상 아름다워 보인다. 미지로의 여행에 대한 대리만족으로 이 책을 선택했다. 처음에는 소설인 줄 알았으나 1996년 에베레스트 원정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기록한 기록물이었다. 읽으면서 알았는데 최근에 개봉한 에베레스트라는 영화가 이 책을 원작으로 한 내용이다.

작가 자신의 직접 경험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기록하려는 노력이 느껴졌다. 또한, 에베레스트의 등반 역사 및 기타 원정등반에 대한 세부 상황을 매우 자세히 묘사했다. 전에 읽었던라인홀트 매스너의 글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존은 당시의 상황 재구성을 위해 당시 등반에 참여했던 주요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인터뷰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사실이라 믿었던 진실들이 왜곡된 부분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의 기억이란 100% 믿을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항상 자신의 의도대로 왜곡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예전부터 고산에서는 저산소증으로 인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1996년 당시 상황을 보며 역시 인간은 불안전한 존재이며 완벽한 계획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자만심은 언제나 화를 부른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산소가 지상의 1/3밖에 없는 곳에서는 오죽하겠는가.

정상 등정을 위한 설명서가 있다. 정해진 시간에 꼭 하산해야 한다는 것. 아무리 정상이 눈앞에 있더라도 시간이 되면 무조건 안전을 위하여 하산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밑 빠진 독 같은 욕망은 바로 눈앞의 목표를 두고 그들을 쉽게 돌아서게 하지 못한다. 그들을 돕는 가이드 또한 각자의 이해관계 때문에 고객들의 안전을 망각해 버렸다. 등반에 관련된 모든 사람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져 버려 더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이러한 대형 참사 후 일본 원정대가 정상등정을 시도하던 중 조난상황에 빠진 인도 원정대원을 만난다. 하지만 그들이 그냥 그들을 외면하고 지나치는 장면이 있다. 너무도 섬뜩한 장면이면서 한편으로는 이해가 간다.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는 목표를 눈앞에 두고, 자신들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목표를 포기하고 조난자를 돕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 상황에 있어 보지 않고는 누구도 자신은 어떻게 하리라 단언할 수 없으리라.

조난자를 구조하려는 정의에 넘치는 눈물겨운 장면도 볼 수 있다. 그러한 상황이 닥친다면 나는 과연 어떠한 선택을 할까. 결국은 사람이 우선이 아닌가.

고산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다양한 욕망의 내면을 보면서 과연 이러한 상황이 꼭 고산에서만 벌어지는가 싶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현실 또한 또 하나의 에베레스트인 것이다.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물질만능주의, 무분별한 등반으로 인한 환경파괴, 셰르파족 사회의 급격한 변화로 인한 문제점들 등 앞으로 생각하고 해결해야 할 많은 질문을 이 책은 던져준다.

 

“사건이 일어난 뒤에는 지혜가 쉽게 우러나오는 법이다

 

 

외로우므로 사람이며 완벽하지 않기에 인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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