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은 사람이 아니라 사건이었다."

  고은은 <<만인보>>에서 이상을 '사건'이라 칭하였다.

  어쩌면 당시의 문단의 글쟁이나 문학 꽤나 읽는 사람들에게 그는 하나의 사건이었을 것이다. 지금에도 이상은 참말 '쇼킹한' 사건으로 다가온다.

 

 

 

 

 

  내가 이상에 관심을 두는 것은 그의 '쇼킹한' 시 때문이다. 전위라느니, 다다라느니 하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그의 시는 지금에서도 굉장히 실험적인 것에 속한다. 우리 시사에서 최초이자 최후, 아니면 최대로 전위적이랄까. 현대의 시들도 이상 이상의 도전적 시들을 찾아보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것은 어쩌면 당시 이상 시의 실패에서 기인할 수도 있겠지만 이상이라고 하는 사건을 일으킨 당사자 김해경의 천재성에서 기인하는 것이 더욱 크다고 본다.

  이상의 수필은 매우 뛰어난 수필 중의 하나로 치고 있다. 오히려 시보다는 수필이나 소설에서 이상의 가치를 더욱 높이 평가하고 있다. 어쩌면 시는 이상의 열혈청년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서 일지도 모르겟다. 그래서 이상의 시는 다분히 매니아적 팬들을 나름대로 확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나 말고도 이상의 광팬들은 내 주위에 몇 있으니 말이다.

  이상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그가 남긴 작품들을 읽어내야 하는 기본적 임무를 수행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은 책들을 사 모았다.

 

 

 

 

  <<이상문학전집>> 1~5권. 1권은 시를 2권은 소설, 3권은 수필, 4~5권은 연구논문들을 모아 놓았다.

  이 책들을 다짜고짜 사둔지는 오래되었다. 다분히 시간을 가지고 읽어야할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손이 잘 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금은 저 위의 책 <<이상 평전>>을 읽기 시작했다.

  문학작품을 보는 관점이나 방법들은 다양하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한국의 문학교육이 가져왔던 병폐가운데 하나가, 작품 자체를 제대로 보지 않고, 시대와 역사에 어거지적으로 짜 맞추는 식의 교육이다. 이러한 것에 대한 혐오내지 반감으로 작품에서 역사적, 시대적 요인에 대한 적용을 기피하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빼먹는다면 작품은 오독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나는 우선 '평전'을 읽기로 한 것이다.

  작품 자체만을 가지고 이상을 읽는 것도 나름 의의가 있겠지만, 작품은 작가를 떠나서는 탄생할 수 없었기에, 이상의 삶을 우선 이해하고 가는 것은 효과적인 일이다.

  흔히 평전하면 위인들의 전기, 영웅들의 뛰어난 활약상을 담아내어, 거기서부터 교훈과 도전을 받기를 원하지만, 이상 평전을 읽고 나는 전혀 그러한 것들을 기대도 하지 않는다.

  이상이라고 하는 그 사건이 도대체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나는 그의 삶을 이해하고 싶을 따름이다.

  지금 이상의 삶과 조우하고 있는 나는 어쩌면 이상과도 같이 삶이 우울해질 것만 같다. 계속 만나다가는 나도 '이상'(해 지는 것)이 되는 것 아닌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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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과 코스타리카의 개막전. 독일의 막강한 화력과 코스타리카의 끈질긴 추격이 어울려 멋진 경기를 만들어 내며 2006 독일월드컵은 그 장대한 막을 올렸다. 조별예선. 한국은 명실상부 세계 최강의 하나인 프랑스, 젊은 혈기로 뭉친 스위스, 월드컵 처녀출전의 부푼 꿈 가득한 토고와 함께 G조에 속하게 되었다. 

  조별예선 첫 경기 토고와의 일전은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어느 팀에게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우리에게는 특히나 중요한 경기였다. 조별예선을 통과하고 결승토너먼트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첫 경기부터 잘 풀어나가는 것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모든 본선진출국도 강조하는 바이다. 그동안의 역대 월드컵에서 첫 경기를 승리한 팀이 16강에 진출할 확률이 무엇보다 높았던 것은 첫 경기의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기에, 우리에게는 가장 약체로 꼽히는 토고와의 첫 경기를 이기는 것은 중요했다.

 

  그뿐 아니라, 우리에게는 불명예스러운 역사가 있다. 지금까지 월드컵 출전 역사상 2002년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월드컵을 제외하면 원정에서 한번도 이겨보지 못한 서글픈 역사 말이다. 토고와의 첫 경기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우리나라 대표팀의 첫 경기에 대한 부담감은 컸을 것이다. 약체 팀을 상대한다는 이점 그 이상으로 우리나라 대표팀에게는 부담감으로 인한 긴장이 컸을 것이고, 그만큼 아데바요르는 무시무시해 보였다.

 

  문제는 수비불안이었다. 이것이 아데바요르 같은 정상급 스트라이커를 보유한 토고가 우리에게 위협적일 수 있는 커다란 이유가 된다. 그리고 그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월드컵 첫 출전에 빛나는 토고에게 토고 월드컵 역사상 첫 골을 내주게 된 것이다. 이 골은 토고의 이번 월드컵 유일의 득점으로 기록되었다. 전반전 우리나라 선수들은 첫 경기에 대한 부담감에서 오는 긴장이 컸었던 듯 하다. 특히 월드컵에 첫 출전한 어린 선수들의 잣은 실수가 많았다. 어쩌면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에서 뛴다는 긴장감을 이겨내기는 여간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또 한편으로는 94 미국월드컵 독일 전에서 전통의 강호 독일을 맞아 필요이상으로 긴장한 가운데 전반 초반 3실점한 또 하나의 서글픈 역사가 떠오르기도 하면서, 전반전을 1실점으로 마감한 것이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되기도 했다.

 

  후반 들어서 우리나라는 공격수를 늘려 파상공세에 들어갔다. 안정환의 투입이 결정적이었으며, 박지성의 활약이 더욱 두드러졌다. 박지성의 페널티에어리어 앞에서의 드리블에 의한 상대팀 파울유도와 퇴장은 우리나라의 역전 드라마의 서막이었다. 이천수의 멋진 프리킥으로 동점, 곧이어 안정환의 더욱 멋진 중거리 슛으로 역전에 성공했다. 역전을 하고 난 10여분 동안 수적인 우세에도 불구하고 추가득점하지 못한 것이 결과적이지만 뼈아팠다. 공돌리기에 대한 논란도 있었지만, 추가득점을 노리는 적극적이 플레이가 아쉬웠다고 본다.

 

  결국 첫 경기는 ‘드라마틱’하게 승리했다. 역사적인 날이었다. 우리나라의 월드컵 출전 역사상 원정경기 첫 승의 기쁨을 만끽하기에 충분한 승리였다. 이날 우리나라 ‘태극전사’들은 첫 경기의 중요성과 원정경기 첫 승을 위한 꼭 이겨야만 하는 부담감을 안고도 잘 ‘싸워주었고’ 결국은 이겨낸 것이다. 여기에 ‘투혼(鬪魂)’이라는 수식어는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우리나라 대표팀은 “투혼을 불살랐다.”

 

  두 번째 경기는 첫 경기에 대한 승리, 그것도 원정경기 사상 첫 승의 기쁨을 아예 접어두어야 할 정도로 승리는커녕 비기기도 어려운 강팀 프랑스와의 일전이었다. 프랑스는 누가 뭐래도, 지단이 아무리 노쇠했다고 해도, ‘팀가이스트’가 모자란다고 해도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최강의 하나이다. 그러나 프랑스와의 일전은 어느 정도 방법이 나와 있는 경기였다. 2002 월드컵의 재현 혹은 그 이상을 꿈꾸며 독일로 날아온 대표팀인 만큼, 2002년의 포르투갈과의 경기는 프랑스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명백히 알려주고 있었다. 프랑스의 중심 지단에게 투입되는 공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문전 앞에서의 앙리의 움직임을 이중 삼중으로 봉쇄하는 작전, 그리고 프랑스의 11명의 선수들을 우리나라의 강력한 체력을 앞세워 강한 압박으로 밀어 붙인다면 승산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전반전, 강한 압박은 그리 잘 이어지지 못했다. 결국 앙리에게 선취점을 허용하게 되었다. 계속되는 프랑스의 파상공세는 우리나라 선수들이 정말 ‘투혼’을 보여주며 막아내었다.

 

  후반. 승부의 시간이 돌아왔다. 전반전과는 좀 다른 양상이었다. 간간이 프랑스의 날카로운 공격에 위기도 있었지만, 전반전보다는 더 적극적인 압박과 공격으로 한국은 프랑스의 떨어진 체력을 바탕으로 결국 동점골을 터트렸다. 말 그대로 ‘기적’, 여기에는 또한 ‘투혼’의 수식어를 붙일 수 있겠다. “태극전사의 투혼으로 이뤄는 기적.”

 

  1승 1무. 스위스가 토고를 2 : 0으로 격파하며 우리와 승점 4점으로 동률을 이뤘지만, 골 득실에서 1점 앞서 한국은 조 2위를 기록하게 되었다. G조에서 최강으로 꼽히는 프랑스는 첫 경기 스위스와 그리고 두 번째 경기 한국과의 경기에서 졸전 끝에 2무를 기록하는 초라한 성적을 기록하며 조 3위. 우리나라는 16강에 진출하기 위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것이 확실했다. 하지만, 토고 전에서의 추가득점 실패의 아쉬움은 스위스를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2무를 기록한 프랑스의 토고 전 승리는 불을 보듯 뻔하며, 그것도 대량 득점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스위스와의 경기에서 무승부를 하더라도 우리는 프랑스에 골 득실에서 뒤져 탈락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었다. 우리 ‘태극전사’는 반드시 이기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되는 것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각오가 높을수록 부담은 커지는 법.

 

  결전의 순간이 다가왔다. 우리나라 시간으로 6월 24일 토요일 새벽 4시. 2006 독일월드컵의 조별예선의 마지막 경기이자 우리나라의 16강 진출이 결정되는 결전의 날이 온 것이다.

 

  스위스와의 경기는 맞불작전. 한국은 공격수를 평소보다 많이 투입하며, 초반부터 강공으로 밀어붙이는 작전으로 임했다. 작전은 옳았다. 하지만, 수비불안이 과제였다. 조직력이 강하고 빠른 공격과 세트플레이가 장점은 스위스를 막아내는 것은 공격이전에 선결해야하는 문제이다. 몇 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한국은 결전의 각오만큼이나 ‘투혼’을 펼치며 잘 막아낸 듯 하다.

 

  하지만 한국의 맞불작전에서 결정적 미스가 2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박주영의 투입이었다. 박주영은 이번 월드컵에서 크게 기대되는 선수였지만, 그 기대를 충족되지 못했다. 박주영은 첫 출전인 만큼 긴장해 보였고, 스위스 선수들은 강한 체구에 여실히 밀렸다. 결국 박주영은 스위스의 장점은 세트피스의 상황을 만들어주는 반칙을 범했고, 우리나라는 뼈아픈 실점을 하게 되었다. 그래도 아직은 희망이 있었기에, 전반전 끝날 무렵 한국은 공격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전반전 1 : 0.

 

  후반 시작. 박주영이 계속 투입된 가운데, 후반전에 돌입했다. 왜 박주영을 빼지 않았을까 라는 의문과 불안 속에 경기를 지켜보았다. 하지만, 박주영은 그 의문과 불안을 가중시키는 플레이를 벗어나지 못했다. 한국은 후반 들어 더욱 강력하게 밀어붙였고, 그 와중에 프랑스의 선취점, 그리고 추가득점이 이어지면, 토고를 2 : 0으로 이기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제는 스위스를 이기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었던 것이다. 후반 초반 안정환의 투입. 승부를 보겠다는 얘기인데, 나는 이것이 적절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맞불작전으로 나서는 것이었다면 안정환을 선발로 내세웠어야 한 것이 아닌가? 그나마 결정력이 있는 안정환은 조재진의 센터플레이를 받쳐줄 가장 적절한 대안이었다. 그래야 박지성의 플레이가 살아난다. 그게 아니었더라도 후반의 시작은 안정환이었어야 했다. 안정환의 투입이 그 시기가 늦었다는데 아쉬움이 있다. 박주영은 아직은 미완성이었기에 박주영으로 띄운 승부수는 스위스와의 결전의 비중에 못 미치는 카드였다. 이것이 우리가 골을 기록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또 하나의 결정적 패배 원인은, 심판이었다. 명백한 핸드링이 3번 이상 무시되었고, 반칙 상황은 절대적으로 스위스에게 유리하게 판정되어졌다. 그것을 봐준다고 하더라도, 주심과 선심의 합작으로 이루어낸 아무도 속일 수 없는 ‘사기’는 차마 눈 뜨고 못 봐주는 넌센스였다. 오프사이드 반칙이 명백했고, 선심은 기를 높이 들었지만, 이내 프라이의 골이 선언되고, 선심은 언제 그랬냐는 듯 어깨를 으쓱대고, 주심은 이래저래 항의하는 우리 선수들에게 경고를 주느라 바쁘게 뛰어다녔다. 스위스 추가득점 2 : 0.

 

  지금 생각하니, 또 열이 받는다. 결국 한국은 16강 좌절. 2002년을 제외하고 가장 유력했던 16강 진출은 한편의 넌센스로 물 건너갔다.

 

  나는 한국이 스위스 전에서도 나름대로 잘 싸웠다고 생각한다. 스위스가 더 잘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한국은 골을 넣지 못했다. 심판이 명백한 페널티 장면에서 외면한 것도 이유일 테지만, 골을 넣을 선수를 고르는 데에 명백한 미스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패배의 원인은 심판일 터이다.

 

  하지만 이 패배에도 우리 ‘태극전사’들은 ‘투혼’을 불태웠다. 잘 ‘싸웠다’는 말을 나도 해주고 싶다. 하지만 나는 온갖 매스컴을 통해 우리나라 대표팀 소식들을 찾아보고 들으면서, 한국의 모든 경기들은 선수들의 ‘투혼(鬪魂)’으로 점철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투혼(鬪魂)’, 이 한자어는 명사로써 “끝까지 투쟁하려는 기백”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예를 들어 “투혼을 불태우다”라는 관용적 표현으로 자주 쓰인다. 이 투혼이라는 말은 우리와 매우 친근하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우리는 수출의 목표달성을 위해 ‘투혼’을 불살라야 했다. 축구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북한과 일본을 만나면 언제나 ‘투혼’을 불살랐다. 이것은 1980~90년대에도, 그리고 2000년을 넘어선 지금에도 아주 자주 우리에게 나타난다.

 

  가장 불티나게 ‘투혼’이 불살라진 것은 2002년 월드컵 당시가 아닐까 한다. ‘투혼’을 불사른 끝에 한국은 세계 4강 신화를 이루어냈다. 내가 생각해도 이것은 ‘투혼’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왜 아직까지 우리나라 축구 선수들은 ‘투혼’을 불살라야 하는가? 나는 이것이 조금은 못마땅하다.

 

  축구에 관해서만 이야기 하자면, 1994년 스페인, 독일과의 경기에서, 1998년의 마지막 경기였던 벨기에 전에서, 그리고 2002년 4강 신화를 이룩한 7경기에서 그리고 토고, 프랑스,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모두다 우리 선수들은 ‘투혼’은 불살라졌다. 무엇보다도 나는 왜 우리 선수들이 ‘투혼’을 불사르는 데까지 가야하는 모르겠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꼭 ‘투혼’까지 불살라야 되는 것인가? 아마도 ‘투혼’은 최선 그 이상을 의미하는 것일 테다.

 

  ‘최선(最善)’, “최선을 다하다”같이 쓰이는데, 이것은 가지고 있는 역량을 모두 다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투혼’은 그 능력이외에 선수들의 ‘혼’까지 빼내어 불에 살라야 한다. 어쩜 이리 잔인할 수가.

 

  우리가 투혼을 불살라야 했던 예전을 되돌아보면 참으로 서글픈 역사가 고개를 든다. 가깝게만 가도, 한국전 이후에 폐허가 된 나라를 일으키고, 먹고살기 위해서는 ‘최선’보다도 ‘투혼’이 필요했다. 그럴 수 있다고 보자. 먹고살기의 논리에 의해 공업화가 가속되면서 저 공장의 노동자들은 제임금 못 받고 먹을 거 못 먹으며, 밤잠까지도 설쳐가면서, 자신의 손가락이 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 잘려나가도, 갯값도 못 받고 내버려져도, 수출목표 달성위해 이 ‘투혼’을 불살라야 했다. 결국 그 ‘투혼’이, 이 4강 신화와도 같은 경제성장의 밑거름, 아니 그 본체가 되고도 남는다.

 

  이 ‘투혼’은 우리나라 축구에서 또한 너무도 많이 불살라졌다. 한국의 척박한 축구환경에서 선수들의 ‘최선’으로는 결코 이루어낼 수 없는 목표를 요구했다. 결국 ‘투혼’이어야 했다. 머리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해서도 그들은 ‘투혼’을 끄집어내야 했다.

 

  어쩌면 이 축구에서 선수들에게 ‘투혼’을 더욱 요구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지더라도 언론은 선수들의 ‘투혼’을 강조했다. 이것은 축구 자체에 대한 것보다도, 조국을 위한 ‘투혼’이었다. 선수들은 조국을 위해서 싸웠다. 그들도 그래야만 하는 줄로 알고 싸운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정치적인 것이다. 축구선수들의 ‘투혼’은 그대로 모든 국민들에게 요구되어지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저러한 ‘투혼’의 정신이야 말로 본받아야 마땅할 것이라고 말이다. 텔레비전이나 신문이나, 라디오 등등, 모든 매체들은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축구, 그것도 대표팀 간의 경기, 그것도 북한을 만나거나 일본을 상대하는 경우, 그리고 멀리 외국에서 펼쳐지는 월드컵에서, 우리 선수들은 ‘투혼’을 불살랐다고 떠들어댄다.

 

  왜 ‘투혼’이어야 하는가? 나는 이제 ‘투혼’은 집어치우라고 말하고 싶다. 선수들이 무엇을 잘못했기에 혼까지 빼서 불태우라는 말인가? 최선만을 다하면 안 되는 것인가? 축구만을 보자면, 열악한 환경을 전혀 개선하지도 않으면서, 최선을 다해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미래 유소년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도 안 하면서, ‘투혼’, ‘투혼’, ‘투혼’. 이런 못돼먹은 심보가 어디 있는가?

 

  2006 독일월드컵 조별예선에서 탈락한 한국 대표팀 선수들이 어제 입국했다. 이제 이들에게 이 못돼먹은 ‘투혼’이라는 말은 좀 거두어 주었으면 한다. 그들은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랬으니, 그들의 ‘혼’까지 빼지 그랬냐고 말하면 너무 잔인한 것이 아닌가? 최선을 다해서 도달하지 못한 것이라면, 최선을 다했을 때 도달할 수 있도록, 그 역량을 높여주고,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 될 것이지, 그러지도 못하면서, 그 알량한 ‘투혼’을 요구하는 구시대적 발상을 이제 접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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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당신 문학동네 시집 71
김용택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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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진강>의 시인, 섬진강의 작은 시골 마을의 교사로 재직하면서 순박하고 순수함 그 자체의 아이들의 모습들을 그려낸 <섬진강 이야기>, 이런 것들이 주는 그는 '섬진강'으로 존재한다. 그는 "1948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나 1982년 '창비 21인 신작시집' <<꺼지지 않는 횃불로>>에 <섬진강 1> 등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섬진강으로 시작한 그는 아직 끝끝내 섬진강을 벗어나 살지 못하고 있으며, 우리에게 또한 섬진강 이상으로 기억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시인에게는 자랑이면서도, 아픔이지 않을까?

  <섬진강> 연작에서 그려지는 그의 농촌시적 경향은 김용택이란 시인을 가히 우리 문단의 총아의 위치를 만들어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이후 펴낸 시집이건, 산문집이건, 시선집이건 간에 그야말로 대박들을 만들어 내긴 했지만, 그 무엇도 <섬진강> 이상은 아니었다. 시집의 판매량만을 놓고 본다고 한다면야, 이후의 책들이 베스트셀러를 연신 기록하고 있지만, 시인 김용택에 붙은 섬진강은 여전하게 그를 휘어감는다. 이것은 섬진강의 시인 김용택의 딜레마라고도 할 수 있고, 김용택을 읽는 우리 독자에게는 아쉬움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분명 나에게는 그 아쉬움이 아주 진하게 남아있다.

  나는 근래에 김용택을 멀리하고 있었다. 그가 펴낸 책들은 그에게는 소중한 것들이겠지만, 어딘가 모르게 대중에게 영합하는 외로움과 고독을 본으로 하는 서정시인의 본령에서 벗어난 듯한 냄새가 나기때문이다. 이것은 나의 독특한 성향에서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한번쯤은 김용택 시인에게 날카롭게 딴지 걸어보고 싶은 부분이기도 하다. 과연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대답이 궁금해 진다.

  시인 김용택이 조금씩 류시화처럼 되어가는 느낌! 나에게는 좋은 느낌은 아니다. 그가 이전에 펴낸 <<그 여자네 집>>은 어느 정도의 성취를 거두었다고는 하나 <<연애시집>>에서는 조금 갸우뚱이다. 이어서 나온 것은 이 시집 <<그래서 당신>>인데, 이것에게서도 아쉬움은 남는다.

  "잎이 필 때 사랑했네 // 바람 불 때 사랑했네 // 물들 때 사랑했네 // 빈 가지, 언 손으로 // 사랑을 찾아 // 추운 허공을 헤맸네 // 내가 죽을 때까지 // 강가에 나무, 그래서 당신"

  '사랑타령'이라고나 할까? '그래서'라는 접속사의 사용에서 번뜩이는 기지를 느끼기는 하지만, 그런 시적 깨달음은 뭐랄까? 수준미달이 아닐까? 이 시집은 참 가벼웁다. <섬진강>의 무게보다도 가볍다. 어쩌면 그의 시들이, 이전의 섬진강의 그 구체적 모습들과 거기에 담긴 구구절절의 이야기들이 그 끝을 보여서인 것인지, '사랑타령'의 관념 속에서, 날아다니는 그 관념들을 가슴에서 울렁이다가 내보내고 있는 것이서인지 모르겠다. 그가 서문에서 쓰고 기뻤다는 <남쪽>이라는 시를 보자.

  외로움이 쇠어

  지붕에 흰 서리 내리고

  매화는 피데

  봉창 달빛에

  모로 눕는 된소리 들린다

  방바닥에 떨어진 흰 머리칼처럼

  강물이 팽팽하게 휘어지는구나

  끝까지 간 놈이

  일찍 꽃이 되어 돌아온다

  '지붕', '매화', '달빛', '꽃' 등 이러한 것들이 더이상 우리에겐 구체화되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이 시가 담고 있는 것은, 어느 옛 선비의 읊조리는 시조와 같은 그런 고상한 감이 담겨 있는듯도 하다. 왜 이 시를 쓰고 시인은 기뻤을까?

  "바람이 불면 // 내 가슴속에서는 풀피리 소리가 납니다"<그리움>

  2연으로 된, 위에서처럼 문장으로는 단 한 문장으로 되어있는 시. 이런 것들이 많이 있다. 이것은 꼭 일본의 하이쿠같은 느낌이다. 이것은 <<연애시집>>에서도 주로 사용되고 있는 방법들이다. 이것은 좀 구식의 느낌이 든다. 시적 후퇴, 아니면 시적 능력의 후퇴? 어떤면에서 나는 그가 시인으로서는 진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것이 아쉬움이다. 그리움이라고 하는 것이 '풀피리 소리'가 된 것은 더이상 새롭지 못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나만의 느낌인 것인가?

  이런 점에서 안도현 또한 그런 종류의 아쉬움이다. 어쩌면 김용택은 많은 책들을 펴내야 하므로, 시를 쓸 시간이 꽤나 없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와중에 시집 한 권 내자고 이쪽 저쪽에서 보체는 통에 이런 후퇴한 시들을 토해낸 것은 아닌지. 내가 너무한 듯도 하다.

  <그래서 당신>에서 나는 대부분의 경우에 수긍할 수 있었다. "음! 그렇지" 정도의 감탄사 외에서, 어떠한 새로움도, 그 이상의 통찰도, 명쾌함도, 번뜩이는 기지도 보기 어려웠다. "그래서 당신"이 아닌 "그러나 김용택은"이라고 묻고 싶다. 김용택 시인의 시적 진화는 어젠쯤 이루어 질 수 있을까? "그래서" 아쉬움이 남는 "당신", 시인 김용택의 이번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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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기세덱 2006-06-19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가 미안한 마음이 있어, 별을 하나 더 띄워준다.
 

 

  Ⅳ. 結語


  지금까지 가르침과 배움의 道는 무엇인지를 옛 聖賢의 지혜와 寓言을 통해 살펴보았다. 미약하나마 先學의 연구를 탐하여 전개한 서툰 論考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우선 聖賢들이 전하는 지혜 가운데서 가르침과 배움이 진정 나아갈 바가 무엇인가를 알아보았다. 곧, 孔子의 즐거움을 찾는 배움, 不恥下問과 爲己之學의 자세에서 배움의 道를 밝혔으며, 가르침에 있어서는 조력자로서의 교사, 선입견을 버리고 학생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며 이끌어갈 수 있는 교사의 자세를 강조함을 볼 수 있었다. 이와 함께 老子의 말씀을 통해서는 슬기로운 교사가 되어야 함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밖에 다른 여러 聖賢과 先人들의 지혜를 통해서는 무엇보다도 自得의 중요성을 강조함을 볼 수 있었으며, 그것을 寓言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이 ‘自得’은 孔子가 말씀한 즐거움을 찾는 배움, 老子의 학생들의 자유롭게 해주는 슬기로운 교사와 하나로 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 논고의 주제를 ‘하나의 길을 向하는 가르침과 배움의 道’라 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 이 나라의 교육 현실은 무너질 대로 무너져 있음이 많은 이들이 동감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가르침과 배움’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이며 그 道는 어떠한 것인지를 살펴보는 일는 자못 의미 있는 일이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볼 수 있는 한 줄기 밝은 빛과 같은 것이다.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두 가지 일이 아니다. 내가 성실한 배움으로 선을 행하면 선을 향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은 나와 기운이 서로 감응하여 나의 가르침이 그 가운데 행해진다. 또한 다른 사람이 선을 행하기를 바라서 성실한 마음으로 깨우치고 지도한다면 나의 배움이 그 가운데 있다. 그러므로 스승과 제자가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쳐, 배우는 것으로 가르침을 밝히고 가르치는 것으로 배움을 밝히면 곧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는 가르침과 배움이 될 수 있다.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일로 배움을 삼는다면 가르침이 모든 사람에게 행해질 수 있지만, 단지 옛날의 지식을 주워 모으기만 하고 깨달은 바가 없다면 남을 가르칠 수 없다.1)


  최한기의 말처럼 가르침과 배움은 ‘두 가지 일’이 아닌 하나의 일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길을 向할 때에 분명 ‘가르침과 배움의 道’는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이다.

 

 


 

  • 1) 박희병 편역, 󰡔선인들의 공부법󰡕, 창작과비평사, 1998, pp.214~5.

 

 

 

 

 

 


 

 ※ 참고문헌

  경상대학교남명연구소 역주, 󰡔사람의 길 배움의 길󰡕, 한길사, 2002.

 

 

 

 

 

  김영, 󰡔네티즌과 함께가는 우언산책󰡕, 한울, 2003.

 

 

 

 

 

  김영, 󰡔논어를 읽는 즐거움󰡕, 인하대학교출판부, 1998.

 

 

 

 

 

 

  김영, 󰡔인터넷 세대를 위한 한문강의󰡕, 한울, 2005.

 

 

 

 

 

  김영, 󰡔한국의 우언󰡕, 현암사, 2004.

 

 

 

 

 

  김영, 「군신 ․ 사제 관계 重言과 寓言」, 󰡔한국한문학 연구의 새 지평󰡕, 소망, 2005.

 

 

 

 

 

  모로하시 데쓰지, 󰡔中國 古典 名言 事典󰡕, 김동민 ․ 원용준 역, 솔출판사, 2004.

 

 

 

 

 

 

  박희병 편역, 󰡔선인들의 공부법󰡕, 창작과비평사, 1998.

 

 

 

 

 

  이돈희, 󰡔교육사상사󰡕, 학지사, 1997.

 

 

 

 

 

 

  조현규 역저, 󰡔노자의 풍경소리 왕필이 울리다󰡕, 새문社, 2004.

 

 

 

 

 

  파멜라 메츠, 󰡔배움의 도󰡕, 이현주 옮김, 민들레,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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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Ⅲ. ‘自得’을 강조하는 寓言


  옛 성현들의 말씀에서 결국 가르침과 배움의 道는 ‘自得’으로 向한다고 할 수 있다. 김영 교수는 사제관계의 우언을 연구하면서 이와 같은 점을 이미 지적한 바 있다.1) “학생들에게 직접 정답을 가르쳐주기보다 학생들이 스스로 깨닫고 생각할 시간을 부여하며 침묵을 기다려주는 것이 학생들의 자존심과 창의성을 살려주는 교육방법”임을 󰡔列子󰡕의 우언 「관윤자의 가르침」을 통해 이끌어 내고 있다.

  이러한 ‘자득’을 강조하는 우언으로 姜希孟의 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도둑질이 직업인 사람이 있었다. 그는 아들에게 자신의 솜씨를 모두 가르쳐 주었다. 아들은 자신의 재능을 자부하여 자기가 아비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도둑질을 나가면 언제나 반드시 아들이 먼저 들어가고 나중에 나오며, 가벼운 것은 아비에게 맡기고 무거운 것을 들고 나왔다. 게다가 먼 곳에서 나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고, 어둠 속에서 사물을 분별하는 능력이 있어 도둑들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하루는 아비에게 자랑삼아서 말했다.

“제가 아버지의 솜씨보다 조금도 손색이 없고, 억센 힘은 오히려 나으니 이대로 나간다면 무엇은 못하겠습니까?”

“아직 멀었다. 지혜란 배워서 이르는데는 한계가 있는 법이어서 스스로 터득함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너는 아직 멀었다.”

“도둑이란 재물을 많이 얻는 것이 제일입니다. 저는 아버지보다 소득이 항상 배나 되고 나이도 아직 젊으니 아버지 나이가 되면 틀림없이 특별한 재주를 터득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 나의 방법을 그대로 따라하기만 해도 겹겹의 성에 들어갈 수 있고 깊이 감춘 물건을 찾아낼 수는 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화가 따른다. 아무런 단서도 남기지 않고 임기응변하여 거침이 없는 그런 수준은 어느 경지에 이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너는 아직 멀었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건성으로 들어 넘겼다.

다음 날 밤 아비 도둑은 아들을 데리고 어느 부잣집에 들어갔다. 아들을 보물 창고 안으로 들어가게 하고는 아들이 보물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을 때쯤 밖에서 문을 닫고 자물쇠를 채운 다음 자물통을 흔들어 주인이 듣게 하였다. 주인이 달려와 쫓아가다가 돌아보니, 창고의 자물 쇠는 잠긴 채 그대로였다. 주인은 방으로 되돌아갔고, 아들 도둑은 창고 속에 갇힌 채 빠져나올 길이 없었다. 빠져나갈 방도를 궁리하던 아들 도둑은 마침내 손톱으로 박박 쥐가 문짝 긁는 소리를 냈다. 주인이 소리를 듣고 말했다.

“창고 속에 쥐가 들었군. 귀중한 물건들을 망치겠다. 쫓아버려야지.”

주인이 등불을 들고 나와 자물쇠를 열고 살펴보려는 순간, 아들 도둑이 쏜살같이 빠져 달아났다. 주인집 식구들이 모두 뛰어나와 뒤쫓았다. 아들 도둑은 더욱 다급해져서 벗어나지 못할 것을 알고는 연못가를 돌아 달아나다가 큰 돌을 들어 못 속으로 던졌다. 뒤쫓던 사람들이 말했다.

“도둑이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모두가 못가에 빙 둘러서서 찾았다. 아들 도둑은 그사이에 빠져나갔다.

집으로 돌아와 아비를 원망하여 말했다.

“새나 짐승도 제 새끼를 보호할 줄 아는데, 제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렇게 욕을 보이십니까?”

그러자 아비 도둑이 말했다.

“이제 너는 천하의 독보적인 존재가 될 것이다. 사람의 기술이란 남에게서 배운 것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지만, 스스로 터득한 것은 응용이 무궁한 법이다. 더구나 곤궁하고 어려운 일은 사람의 심지를 굳게 하고 솜씨를 원숙하게 만드는 법이다. 내가 너를 궁지로 몬 것은 너를 안전하게 하자는 것이고, 너를 위험에 빠뜨린 것은 너를 건져 주기 위한 것이다. 네가 창고에 갇히고 다급하게 쫓기는 일을 당하지 아니하였던들, 어떻게 쥐가 긁는 시늉과 돌을 던지는 기발한 꾀를 냈겠느냐. 너는 곤경을 겪으면서 지혜가 성숙해졌고 다급한 일을 당하면서 기발한 꾀를 냈다. 이제 지혜의 샘이 한번 트였으니 다시는 실수하지 않을 것이다. 너는 천하의 독보적인 존재가 될 것이다.”

그 후에 과연 아들은 천하제일 도둑이 되었다.2)


  이 우언은 현재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수록되어 있는 글이다.3) 이것은 강희맹이 아들을 훈계하기 위해서 지은 다섯 편의 글[訓子五說] 중의 하나로, “도둑질이란 세상에서 지극히 천하고 악한 기술이지만, 그것도 스스로 터득한 다음에야 비로소 세상에서 으뜸가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하물며 學問의 길에 있어서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느냐?”라고 반문하면서 ‘스스로 지혜를 터득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즉, ‘自得’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라 하겠다.

 

 


 

  • 1) 김영, 「군신 ․ 사제 관계 重言과 寓言」, 󰡔한국한문학 연구의 새 지평󰡕(소명, 2005), pp.1070~2. 참조.
  • 2) 姜希孟, 󰡔私淑齋集󰡕, 「盜子說」. 번역문은 김영, 󰡔한국의 우언󰡕, 현암사, 2004, pp.100~2.
  • 3) 중학교 1학년 󰡔국어󰡕 3단원(문학의 의사소통)에 「스스로 터득한 지혜」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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