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움직인 한 卷의 冊]『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歷史 속에 놓여진 한 女人의 사랑

兪垣濬 (慶熙大 史學科 敎授)


  高等學校 2學年 여름, 서울에 올라와 鐘路書籍에 갔다가 偶然히 ꡔ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ꡕ를 사게 되었다. 아무리 좋은 映畵라도 原作만 못하다는 國語 先生님의 말씀이 생각나 冊을 고르기는 했지만 너무나 두껍고 빽빽한 活字에 언제 이것을 다 읽을 수 있을까하는 負擔도 있었다. 하지만 高等學生이라면 이 程度의 冊은 읽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괜한 自尊心에 冊을 읽기 始作하였는데, 豫想과 달리 今方 冊에 魅了되기 始作하였다.

 

 

 나는 그때까지 ꡔ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ꡕ는 아름다우면서도 虛榮心 많고, 自由奔放하며 强忍한 女主人公 스카렛 오하라가 自身의 眞正한 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小說을 읽으면서 그러한 認識이 漸次 바뀌기 始作하였다.

  메이 플라워호를 타고 新大陸으로 移住한 初期 移住民을 除外하면 거의 모든 移民者들은 굶주림과 가난을 떨쳐 버리고자 大西洋을 건너 왔다. 그들은 유럽에서 社會의 下層民이었고, 敗北者였으며, 尊重받지 못한 者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유럽의 上流層을 흉내내고 싶었고, 自身의 成功을 유럽人들로부터 認定받고 싶어하였다. 成功한 移民者들은 奴隸를 부리며 貴族 흉내를 냈고, 유럽 旅行을 通해 同質性을 確認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歲月의 흐름과 함께 美國은 美國일 수밖에 없는 方向으로 發展하였고, 그에 대한 認定과 不認定, 卽 繼續 유럽의 一部로 남고자 하는 勢力과 그렇지 않은 勢力과의 葛藤은 不可避한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스칼렛이 사랑했던 男子, 애슐리 윌크스가 뛰어난 知性과 節制力에도 不拘하고 軟弱한 理想主義者로밖에 그려질 수 없는 까닭이었다. 卽 스칼렛이 眞正한 사랑의 對象이라고 생각했던 애슐리는 事實은 漸次 사라질 수밖에 없는 유럽의 痕迹에 不過했던 것이다. 結局 스칼렛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淺薄한 商人이며 行動主義者로 보였던 레트 버틀러였는데, 그는 南部人에 依해 輕蔑의 對象으로 여겨졌던 ‘양키’의 典型이었지만 結局 그는 勝利者로, 그 땅의 主人으로 그려지고 있다.

  南北戰爭은 美國이 美國답게 가기 爲한 不可避한 葛藤이었다. 映畵의 첫 場面에 나오는 멋진 파티, 그리고 戰爭, 輕蔑해 마지않았던 양키의 支配, 慣習을 뛰어넘어 製材所를 直接 經營한 스칼렛의 變身 等은 自身을 유럽과 同一視하려던 南部 美國人의 自己 催眠이 現實 속에서 어떻게 부서져 나갔는지를 잘 보여준다.

  ꡔ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ꡕ를 읽으면서 發見한 이 같은 事實은 高等學校 時節 적지 않은 ‘自我陶醉’를 내게 안겨주었고, 繼續해서 ꡔ아메리카의 悲劇ꡕ, ꡔ忿怒의 葡萄ꡕ 等 美國 小說을 읽게 한 動機가 되었다. 結局 이 世上에서 歷史로 解釋하지 못할 일은 거의 없으며, 때로는 極히 個人的인 일로 여겨지는 ‘사랑’에서까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면 너무 지나친 擴大 解釋일까?

(<語文생활> 통권 제109호,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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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그제 밤부터 내린 눈이 온세상을 하얗게 덮어버렸습니다. 곧있으면 크리스마스인데, 이 한 주간 맑고 깨끗한 마음가지고 아기 예수 탄생의 그 날을 맞이하라는 뜻이 아닐까 합니다. 또한 기대되는 것은 화이트 크리스마스네요. 크리스마스 이브날 밤에 환하게 하얀 눈이 날리면 그것처럼 아름답고 기분 좋은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2000여년 전에 이 땅에 아기예수가 탄생했습니다. 우리가 이 날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이 크리스마스인데요, 요즘은 단지 크리스마스 그 날 자체만 기억되고 기념되는 듯한 인상입니다. 연인들의 특별 이벤트 기간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송년 혹은 망년의 즐거운 밤으로만 말입니다. 호시탐탐 요날 어떻게 좀 낚아보자는 심사가 발동하는 날이기도 하죠. 그런데 이런게 과연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면, 다소 아쉬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나, 그렇지 않은 타종교의 사람들이나, 또는 무신론자들이나 크리스마스는 '휴일' 이상의 특별한 날일 것입니다. 아기 예수가 '메시아'로서, 이 땅의 죽어가는 인간들을 구원할 하나님의 영으로서 오신 날이기에,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일년의 어떤 날보다도 이 날이 소중하고 감사하며, 복된 날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비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크리스마스가 의미 없는 날은 아닐 것입니다.

부처님 오신 날, 우리는 불교도가 아닐 지라도, 다만 한 뛰어난 성인으로서의 부처님의 자비가 이땅에 충만히 내려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 날을 맞이합니다. 이 크리스마스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기독교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사랑'의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처음이자 끝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기독교, 우리 한국의 교회에서 그런 진정한 예수님의 '사랑'을 보지 못 할 때가 많습니다. 아타까운 일입니다만, 이 날 만큼은 우리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무엇보다도 기독교 만의 신으로서 '예수'가 아닌 사랑과 헌신으로 이 땅에서 삶을 살아간 '예수'를 기념하고 본 받기를 바랍니다.

크리스마스는 그래서, '사랑'의 날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무척 연인들은 이 크리스마스를 고대합니다. 무언가 '합법적으로' 데이트할 수 있고, 뜻깊은(?) 시간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일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것에서 크리스마스의 의미가 조금씩 축소되고 변질되는 것을 느낍니다. 연인들의 그런 사랑을 탓할 바는 못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무언가 변질의 원인소가 침투한 것은 아닐까요? 온갖 잡다한 상업주의들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부추기고 있는 기분입니다.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예전의 기억을 되살려 보면, 제게도 크리스마스는 다만 아기 예수 탄생의 거룩한 날만이 아니었습니다. 거기에는 어떤 이성적 설레임도 있던 날이었습니다. 그 때는 인터넷이 그렇게 발달한 때가 아니어서 크리스마스에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고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소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정성스레 만들어서(혹은 만들어진 크리스마스를 사기도 하지만 그 안에 소중한 이야기들을 담았답니다.) 건내주었지요.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그 느낌이 그립습니다.

가족에게, 선생님에게, 주위 친구들에게 카드를 주고 받는 기분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평소 마음에 두었던 여자 친구에게, 평소에는 말 한 번 제대로 붙여보지 못하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니까 큰 맘 먹고 크리스마스에 '사랑'을 둠뿍 담아 보내기도 하였던 그런 날이었습니다. 그렇게 이뤄지는 커플들도 많이 있었죠. 안타깝지만 저는 예외였지만 말이에요.

이런 기억도 있습니다. 여자 애들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애들한테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냈습니다. 그래서 우리 반에서 젤 이쁜 애한테 카드를 못받은 저같은 애들은 괜히 시무룩하고, 받은 놈들은 자기가 최고인양 으스대도, 괜히 기분 나쁘고, 그 여자 애를 못된 계집애로 치부해 버리기도 하고, 그런 설렘과 어쩌면 안타까운 마음들까지도 지금에서는 모두 소중한 추억으로 기억됩니다.

요즘 아쉬운 것이 이런 것입니다. 여자친구와 혹은 남자친구에 소중한 사랑의 추억을 만들어 가는 것은 무척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그것을 탓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보다 넓고 깊고, 그리고 내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작은 사랑의 마음을 나누어 주자는 것입니다. 거기에 진정한 크리스마스의 의미가 있는 것을 테니까요.

그 좋은 방법이 바로 지금은 잃어버린 듯한 크리스마스 카드 보내기입니다. 언제부턴지 보내는 것도 줄어지더니 요새는 생각조차 못하고 있고 받는 것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다시 이것을 되돌려보면 어떨까 합니다. 이쁘고 비싸게 치장된 것 보낼 필요 전혀 없습니다. 다만 그 안에 '축복과 사랑'의 말 듬뿍 담아 보내면 되는 것입니다. 직접 정성스레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것이구요. 저는 손재주가 없어 엇그제 문방구에 가서 하나에 1000원 쯤 하는 카드를 몇 개 골라왔습니다.

크리스마스 카드를 쓰면서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몇마디 쓰는 것 같지만, 그게 또 그런게 아니더군요. "메리 크리스마스" 뿐이어도 좋다는 생각입니다. 우선은 그 카드를 받을 상대방을 다만이라도 생각하게 된다는 것, 그 생각가운데 그를 축복하고 행복하기 바라는 마음을 갖는다는 것 그것 자체로 굉장히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주저리 주저리 떠들었지만 오늘부터 저와 함께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보기로 하는 것을 어떠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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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語文生活 바로잡기> 한글專用論과 國漢混用論의 虛實(5)

말과 뜻과 소리와 글자

鄭琦鎬(仁荷大 人文學部 名譽敎授)


  글은 ‘말의 소리’(1914年 刊行된 周時經 先生의 冊 標題이기도 하다.)를 적은 것이요 글자는 소리를 적는 符號다. 우리에게는 世界 最高의 한글이라는 소리 符號가 있다. 그러니 한글만 쓰면 되고 한글만 써야한다.―우리의 停滯가 漢字 때문이라는 20世紀 初 以來의 專用論의 이 金科玉條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터라 言語의 基本 公理를 내세운 ‘소리’얘기를 또 들어도 ‘事實’은 別般 새롭지도 않다. 이 學術的 公理도 모르는, 도깨비씨름 얘기 같은 混用論이라 하지만 公理가 그렇게 밖에 解說될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없지 않으니 ‘事實’은 別般 부끄럽지도 않다.

  筆者는 “恣意的 音聲 記號의 體系”라는 어려운 말을 제대로 理解할 能力도 없으며, 그 公理 뒤의 理論이 어떻게 展開되는지도 알지 못하는 言語學의 門外漢이지만 그저 常識으로 생각해 보자.

  言語(말)는 사람의 생각을 規制하고 사람의 생각을 表現 ․ 傳達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뜻’이다. 그 뜻이 소리로 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뜻과 分離된 소리는 말의 次元이 아니다. 그저 物理的인 소리(空氣의 振動), 動物의 울음소리를 말이라고 할 사람이 어디 있는가. 形態의 ‘素’라 해도 뜻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 ‘말의 소리’는 뜻에 따라 各各 달라지는 構造物이다. 쉽게 말해서 ‘하나하나 다르게 짜여진 소리 덩어리’다. 그것이 “恣意的 (音聲) 記號의 體系”라는 것일 게다. 專用論者(言語學者?)는 ‘恣意的’ ‘體系’같은 ‘소리’ 다음의 말의 ‘뜻’을 모르는 模樣이다. 그리고 ‘소리만’ 내세운다. 그 소리 덩어리(體系)를 어떤 글자로 어떻게 적느냐 하는 것까지 言語 公理에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적힌 文字(表音) 構造가 말의 소리 構造와 一致하는 法도 別로 없다. 一例로 英語를 볼 때 alphabet 26字와 소리 덩어리 表記의 一定한 對應關係는 없다. ‘man make banana party daughter’―그 글자들의 ‘짜임’의 個別性도 그렇거니와 그 속의 ‘a’만 보더라도 그 소리는 ‘æ ei ə ɘ: ɑ ɑ: ɔ: …’ 等으로 다르다. ‘소리 적는 符號(글자)’를 익혔다고 말이 되는 것은 아니다. 中-高 그 위에 大學까지 그 많은 時間 配定으로 英語 敎育 받고 얼마나 英‘語’를 하는가 생각해 볼 일이다. 말이 되기 위해 入力되어야 할 單位가 다만 소리 그 소리 符號 單位인 것은 아니다. 表音文字의 宿命이다. 그런데 글은 말의 소리를 적은 것, 글자는 소리 적는 符號일 뿐이라고 强調하는 專用論者의 뜻은 무엇인가. 公理를 提示한 다음에도 “言語는 文字 記號의 體系가 아니다.”라고 덧붙이고 “文字와 關係없이 理解하는 것이 言語”라고 强調하니―一般은 소리말이면 그만이고 글자말은 있어도 없어도 相關없는 것으로 듣는다. 幼兒語, 日常語 말고 모든 知識語를 우리는 文字를 通해서 익힌다. 初等學校부터 ‘敎科書’를 通해 익힌다.

  말의 소리 소리글자만을 내세우는 것은 表音文字 漢字는 소리와 關係없는 文字인 것처럼 들리게 한다. 적어도 소리文字의 소리와는 다르다고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소리글자들이 글자와 關係없는 뜻의 複雜한 構造物들을 따로 入力시키는 것과 달리 漢字는 한 소리 한 뜻을 同時에 入力한다. 初等學校 2千餘 字면 1萬餘 ‘語’를 쉽게 익힌다(後述). 2,000餘 字 익히기는 1萬餘 單語의 소리덩어리와 함께 익혀야 하는 소리말 敎育 配定時間의 몇 十分의 1이면 足할 것을 말과 글자의 次元을 뒤엎어 쉽고 어려운 逆의 論說을 일삼아 韓國人을 戱弄하다. (<語文생활> 통원 제109호,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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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語文政策> 元老에게 듣는다

金點坤 先生을 모시고


[金點坤 先生은 1932年 全南 光州에서 出生하였으며, 1946年 陸軍士官學校 1期로 卒業하였다. 1952年 9師團長을 歷任하는 等 여러 補職을 거쳐, 1962年 國防部 次官補를 끝으로 陸軍 小將으로 豫編하였다. 以後 1962~1988年까지 慶熙大 政治外交學科 敎授로 歷任하였으며(1971年 慶熙大 法學博士 取得) 現在는 平和硏究院長, 慶熙大 名譽敎授로 活動하고 있다. 賞勳으로는 太極武功勳章, 國民勳章 牧丹章 等이 있다. 韓國語文敎育硏究會 創立會員인 金點坤 先生을 모시고 語文運動에 對한 말씀을 들어보았다.]


鄭有和  先生님을 모시고 對談을 하게 되어 榮光입니다. 先生님께서는 韓國語文敎育硏究會 創立會員으로서 國漢混用 語文運動에 參與해 오셨습니다. 이러한 運動에 參與하게 된 特別한 動機가 있었다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金點坤  특별한 動機가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그리고 語文運動에 앞장서서 積極的으로 活動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特別히 내세울 것도 없어요. 다만, 國漢混用을 하는 것이 必要한 智慧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創立會員으로 加入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러한 側面에서 語文運動을 支持한 셈이지요. 只今도 내 생각에는 變함이 없어요. 言語를 機能的인 面에서 본다면, 그것은 意思疏通입니다. 한글만 가지고 意思疏通을 하는 데에는 限界가 있어요. 當場 보세요. 우리의 傳統文化를 漢字 없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한글과 漢字가 調和를 이룰 때 우리 民族的인 것을 찾을 수 있어요.


鄭有和  一部 사람들 中에는 漢字 無用論을 主張하고 있습니다. 이에 對한 先生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金點坤  事實, 나는 늦둥이로 태어나서 큰兄님이랑 나이가 18살 差異가 납니다. 내가 어릴 때에 큰兄님께서는 放學을 맞아 故鄕에 오곤 했는데, 언젠가는 兄님께서 붓으로 千字文을 直接 써서 나에게 줬어요. 그 當時에는 너무 내가 어렸기 때문에 아무 뜻도 모르고 그냥 외우고 다녔어요. 나중에야 그것이 나에게는 매우 重要한 知的 資産이 된 것을 알았어요. 勿論 내가 特別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아마도 요즘 아이들도 그렇게 暗記시키면 다 외울 수 있을 겁니다. 거기에다 理解까지 시켜주면 더 잘할 겁니다.

  漢字敎育은 有用합니다. 漢字를 배우지 않으면 知的 缺陷이 생기고 말지요. 漢字를 一方的으로 度外視하는 사람들을 달래서 漢字를 익히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마치 한글만을 쓰면 民族主義를 實現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이는 說得力이 弱합니다. 한글과 漢字 混用은 民族主義와는 相關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저 어렵기 때문에 漢字를 배우지 않으려고 할 뿐입니다. 初等學校 學生을 對象으로 實驗을 한 硏究를 본 적이 있어요. 漢字를 가르친 그룹과 가르치지 않은 그룹이 數學과 英語를 배울 때, 어느 그룹이 더 成果가 있느냐 하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豫想과 달리 漢字를 배운 그룹이 數學과 英語에서 더 成就度가 높았다는 겁니다. 漢字의 機能的인 面을 否定할 수는 없어요. 그리고 約 2千字만 배우고 나면 그만큼 便한 게 또 없거든요.


鄭有和  陸軍 小將으로 豫編한 다음, 先生님께서는 慶熙大에서 敎鞭을 잡고 學生들을 指導해 왔습니다. 學生들을 가르치시면서 생긴 逸話가 있다면 紹介해 주세요.


金點坤  한番은 試驗 答案紙에 學生들의 이름을 모두 漢字로 쓰게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學生들이 漢字를 잘 쓸 줄 모르니까 漢字 글씨를 쓰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림 그리듯이 그리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劃이 좀 複雜한 漢字는 이름 쓰는 칸을 벗어나 엄청난 큰 그림으로 그려져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漢字를 쓴 學生들의 答案은 10點씩 깎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지요. 그리고 또 하나 있습니다. 내 弟子 中에 中央情報部에 入社한 親舊가 있어요. 그렇다고 工夫를 썩 잘한 親舊는 아닙니다. 그래서 내가 물었지요. 어떻게 入社를 했느냐고? 그랬더니 바로 漢字 實力 때문에 붙었다는 거예요. 다른 應試生들은 거의 漢字를 몰랐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親舊들이 漢字 實力을 兼備할 수 있었을까요. 不平不滿을 했지만, 授業 때마다 내가 漢字를 꼭 쓰라고 했거든요. 그 德澤에 勤務하게 되었으니, 나를 만나면 늘 感謝하다고 人事를 해요.


鄭有和  先生님께서는 ‘濟州 4 ․ 3事件 眞相 糾明 및 犧牲者 名譽 回復委員會’에 委員으로 參與하시다가 辭退를 하셨습니다. 眞相 糾明에 對한 先生님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金點坤  歷史에서 가장 重要한 것은 眞實입니다. 그리고 眞實을 바탕으로 歷史的 事實을 解釋해야 합니다. 지나쳐온 일의 順序를 바꾸거나 여러 가지 中에서 한 가지 事實만을 强調하게 되면, 歷史의 偏述이 나오게 됩니다. 濟州 4 ․ 3事件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한쪽만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보다 가장 重要한 것은 罪가 없는 사람에게는 罪가 없다는 眞相을 確實하게 밝혀주는 것, 이것이 眞理라고 봅니다.


鄭有和  近來 들어 初 ․ 中 ․ 高 學生들뿐만이 아니라 一般 社會人들도 漢字敎育에 많은 關心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不拘하고 現場敎育에서도 그렇고, 政府 當局도 漢字敎育에 對하여 關心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對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金點坤  于先, 一線 敎師들이 漢字를 外面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問題입니다. 그래서 漢字를 가르칠 수 있는 敎師를 育成하거나, 旣存 敎師들에게 漢字敎育 硏修를 通해서라도 漢字敎育을 實施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個人的인 생각이지만, 이러한 敎師들에게 漢字敎育 特別手當이라도 줘야 합니다. 現實的 인센티브가 있어야 自負心을 가지고 敎育을 할 게 아닙니까. 말하자면 政策的으로 優待한다는 誠意라도 表示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여 우리가 常用하는 漢字는 中國 글자가 아닙니다. 우리의 글로 受容하려는 態度가 必要합니다.

  마찬가지로 漢字를 工夫하는 學生들에게도 利點이 있어야 합니다. 漢檢 試驗 資格證만을 따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되죠. 入試를 準備하고 있는 學生들이 漢字를 工夫하는데 얼마나 負擔이 되겠어요. 그런 狀況에서도 漢字를 工夫하고 있으니, 大學入試에도 漢字를 많이 出題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學習 認知에 漢字가 얼마나 重要한지를 理解하게 됩니다.


鄭有和  앞으로 韓國語文會가 나아가야 할 方向에 對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金點坤  言語는 學者를 爲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使用하는 大衆들을 爲해 存在하는 것입니다. 言語라는 것은 文化의 基本的인 要素이지요. 그래서 韓國語文會에서는 實生活에서 漢字를 쓸 수 있는 그러한 狀況을 制度的으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鄭有和  對談에 應해 주셔서 感謝합니다. 康寧하시기를 祈願합니다.

(<語文생활> 통권 제109호,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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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한겨레신문> 11. 14. opinion 게재분 轉載


새 電子住民證 姓名에 漢字 倂記해야


박광민(韓國語文敎育硏究會 硏究委員)


  子息에게 부르기 좋고 瑞氣도 담긴 이름을 지어주고 싶은 것은 이 世上 모든 父母의 바람일 것이다. 作名에 관해서는 ꡔ禮記ꡕ「曲禮」篇을 參考할 만하다.

  “子息의 이름을 지을 때는 나라 이름을 避하며, 해와 달로 짓지 않으며, 보이지 않는 곳에 나는 病名의 글자를 섞어 짓지 않으며, 山川의 이름으로 짓지 않는다.”

  이렇게 父母가 苦心하여 지어주신 이름은 各 個人에게 所重하고 象徵的인 意味를 갖는다. 그래서 예전에는 이름 外에 字를 지어서 이름 代身 불렀고, 成人이 되면 號를 지어 불렀다. 歷代 임금의 이름字 大部分에 平素에 잘 쓰이지 않는 漢字를 쓴 것은 百姓이 임금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기 위해 애쓰는 不便을 덜어주고자 함이었다. 只今까지도 우리는 남에게 自己 父母의 姓名을 紹介할 때 “○字 ○字를 쓰십니다.”라고 하여 敢히 父母 姓名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는다. 이렇게 부르기조차 두려워하고 所重히 여겼던 것이 韓國人의 이름이다. ‘어찌어찌하면 내 姓을 간다.’는 말로 自己 確信을 表現하는 이도 있다. 그만큼 韓國人의 情緖에는 自己 姓名에 대한 自負心이 內在해 있는 것이다. 日帝 侵奪期에도 뜻있는 이들은 목숨 걸고 創氏改名을 拒否했고, 日帝의 劫迫에 못 이겨 姓과 이름을 바꾼 이들은 只今도 親日의 멍에에서 自由롭지 못하다.

  그렇게 지켜온 韓國人의 姓名이 危機를 맞았다. 行政自治部는 2009年부터 새로 發給할 새 電子住民證에 한글과 로마字를 倂記하고 漢字 姓名은 겉에는 보이지 않는 電子칩에 넣겠다고 한다. 判讀機가 있어야만 읽을 수 있으니 아주 뺀 것이나 마찬가지다.

  韓國人의 族譜 姓名에는 個人마다의 自己 뿌리가 담긴다. 그 姓氏와 行列字의 漢字를 보면 一家間 序階까지도 금세 알 수 있다. 韓國의 族譜를 最初로 硏究하고 電算化했던 美國 하버드大學의 故 와그너 博士는 “나는 曾祖父 以上의 얼굴과 이름을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한 바 있는데, 美國人들은 이제야 族譜에 關心을 갖고 뿌리 찾기를 始作했다. 舊韓末 學者인 鄭萬朝 先生은 ꡔ萬成大同譜ꡕ 序文에서 “옛날 中國 族譜는 4, 5代 記錄에 그쳤지만 韓國의 族譜는 始祖부터 詳記해 있다.”고 하였다.

  現行 한글表記法에서 ‘유’로 적게 되어 있는 姓氏는 ‘柳’ ‘劉’ ‘兪’ ‘庾’ 等이 있고 ‘신’ 氏는 ‘申’ ‘辛’ ‘愼’ 氏가 있다. 그 밖에 ‘鄭’ 氏와 ‘丁’ 氏, ‘趙’ 氏와 ‘曺’ 氏, ‘陳’ 氏와 ‘晉’ 氏, ‘姜’氏와 ‘康’ 氏, ‘朱’ 氏와 ‘周’ 氏 等 같은 한글 音의 姓氏는 많다. 새 住民證 姓名에서 漢字를 뺄 境遇 같은 한글 音을 가진 姓氏는 祖上이 다른데도 모두 한 個의 姓을 가진 一家가 될 판이요, 族親間의 序階도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1999年에도 行政自治部는 住民登錄證 姓名을 한글만으로 表記하려다가 輿論에 밀려 한글과 漢字를 倂記한 적이 있다. ꡔ禮記ꡕ「曲禮」篇에는 ‘잘못을 알았으면 즉시 고쳐야 한다.’고 하였다. 行政自治部는 이제라도 새 住民證 姓名의 로마字 倂記 案을 廢棄하고 한글과 漢字 倂記로 바로잡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語文생활> 통권 제109호,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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