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교육을 보는 또 다른 시각, 안선재 교수

얼마 전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을 '이별의 시'가 아니라 '사랑의 시'로 보아야 한다. 이 시는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이다 나온 일종의 농담시(joke poetry)다"는 논문이 발표됐다. 너무나도 당연히 여겨왔던 사실도 되돌아보면,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논문의 주인공은 안선재교수(1994년 귀화, 서강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그는 한국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현재 교단에 서서 직 · 간접적으로 시교육 현실을 체험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시교육을 접해왔고, 앞서 언급했듯이 시에 대한 다른 시각을 제시한 바 있다. 덕분에 우리의 시교육에 대해서도 비교적 정확히 짚어 볼 수 있는 사람이겠다. 가을이 깊어가는 10월 26일 오후, 바람이 제법 선선한 서강대 교정을 가로질러 그를 만나러 갔다. 차와 찻잔 그리고 책으로 가득 찬 연구실. 따뜻하게 맞아주는 그의 미소가 하얀 목화 같았다.

시 번역도 많이 하시고 시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하시는 것 같은데, 특별히 시에 관심이 많은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시를 좋아하니까(웃음). 시는 짧지만 강하고 집약적인 힘이 있어 좋아요. 그리고 영문학을 가르치고 있는데, 주로 시문학이예요. 한국에서 영국의 전통 시를 가르치니까, 영국에 한국시를 소개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양 문화를 나눈다는 그런 정신으로. 그런데 옛날 한국시는 어려워서 현대시를 번역하기로 했어요. 여유시간에(웃음)

그러면 특별히 좋아하는 시나 시인이 있으신가요?
다 좋아하지만 하나만 꼽으라면,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가장 좋아합니다. 짧지만 깊은 내용이 담겨있어요. 천상병 선생은 폐렴을 앓았고, 고문도 당해서 몸이 약해져 죽는다고 생각했었죠. 그런 고통 가운데서도 아무 원한도 없이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한다고 한 그 힘, 용기, 희망이 좋아요.

그럼 이제, 한국의 시교육은 어떠한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에 대해 질문할게요. 영국에서 태어나셨고 프랑스에서도 유학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테제공동체 생활을 하시면서 다른 나라들도 보셨을 것 같습니다. 그런 경험들을 통해서 보셨던 시교육은 어떻든가요?
최근 서양의 문제는 학교에서 시를 거의 안 본다는 거예요. 현대시나 재미있는 시, 아니면 performance나 rapping 같은 것에 관심을 두죠. 옛날 문학 재미없다고 기피해요. 기본적으로 시는 가르치는 게 어렵구요. 한국에선 그런 것들이 덜한 편이죠. 한국 사람들은 문학이 의미 있다는 걸 믿어요. 그래서 한국문학에는 희망이 있어요. 한국학생들은 시에 아름다움이 있다, 의미가 있다고 말해요. 삶에 대한 메시지를 준다고. 서양은 대부분 그만큼은 아니고 그냥 재밌다, 잘 썼다고 하죠. 그래도 프랑스나 독일보다 영국에서 시가 살고 있는 편이예요. 사람들이 많이 보고, 좋아하고, 시축제가 있으면 즐기고.

아, 시축제도 있어요?
아, 그럼요. 많죠. 미국도 많아요. 2주 전에도 미국에서 닷지문학페스티벌(자동차회사 닷지가 후원하는 행사)이 있었어요. 시인들이 와서 시 낭송하고, 시인하고 대화도 하고, 음악도 있는 축제였는데, 4일 간 2만 명 정도가 참석했어요. 고은 시인도 참석했었죠. 미국, 영국 등지에서는 문학축제가 많은 편인데, 한국에는 활성화되어있지 않아서 아쉬워요. 한국에서 시는 책만 생각해요. 한국에선 오랫동안 낭송이나 퍼포먼스를 안 했으니, 이제라도 하면 좋을 거 같아요. 한국시인들은 문화적 체면의식이 강해요. '난 시인이다'(고개를 들고)라고 하는 거죠.

네, 권위의식이요. 아무튼 시축제가 없다는 것은 아쉽네요.
시인이 그러면 재미없죠. 시인은 독자와 대화를 해야죠. 사실 시마다 새로운 시작이니까, 시인이면 매일 새롭게 시작하고 새롭게 시를 쓰고 그래서 시가 어디로 나오는지 알아야 시에 의미가 있어요. 난 시인이기 때문에 시 쓴다고, 대외적으로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고 하는 의식 좋지 않아요. 한국시인들, 시집만 주고 끝나는 게 아니라 조금 더 사람들하고 관계있어야 해요. 우리 학생들에게 살아있는 시를 가르칠 필요가 있어요.

영문학을 가르치실 때 시를 수업하실 텐에요, 시를 가르치실 때 어떻게 가르치시나요?
오래된 시이기 때문에 시인 소개, 역사적 배경, 구조 등등 시에 관한 제반사항을 먼저 알려주죠. 다음에 학생들이 직접 느낄 수 있도록 낭송을 해요. 그런데 우리 아이들 시를 책 안에서만 접하고 낭송하는 법이 없어요. 영시도 마찬가지예요. 조금 살아있는 방식으로 낭송해야 의미가 있어요. '뫄뫄뫄뫄뫄'하고 웅얼거리기만 해서는 소용 없죠. 감정을 담아서 시 느낌이 들게 낭송해야 해요. 영시는 리듬이 있으니까요.

그건 그럼 영시에 보다 적합한 방식이네요. 그렇다면 아까 제일 좋아하신다고 한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만약 가르친다면 좋은 방법은 뭘까요?
한국 국내에서요? 글쎄. 그냥 읽어보고, 배경 이야기하고, 다음에 어떻게 느끼는지 물어볼 수 있겠죠. 귀천은 어렵지 않기 때문에. 하지만 <귀천>은 가르칠 일이 거의 없어요(웃음).
가르쳐야 할 시는 아이들이 어려워서 무슨 이야기 하는지 알 수 없다거나, 왜 중요한 것인지 모르거나, 그냥 본다면 재미없어할 시를 교육해야 합니다. 사실 시를 가르친다는 것은 문학사, 시의 특징 이런 학문을 가르치는 것이지, 여러 시인들을 다 가르칠 필요는 없어요. 그냥 읽어보라고 해야죠. 자체로 살아있는 시이니까요. 생각해 봐요. "학교에서. 왜. 시. 가르쳐야. 하느냐." 시가 아름답기 때문에? 시의 감성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가르치는 것도 어렵죠. 학교 다닐 때 음악시간에 화음이나 구조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레코드판을 그냥 들었어요. 어떤 학생들은 코골며 자고(웃음) 어떤 학생들은 '아'하고 느끼기도 해요. 사실 음악, 시, 미술에 대한 감상은 가르칠 수 없어요. 아까도 말했지만 감상하도록 북돋아 줄 수는 있지만 가르칠 수 없어요.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감상을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선생님의 역할입니다. 우리 희망은 어느 날 시를 보고 '팍'하고 감동을 받는 학생이죠. 이런 학생들이 다른 시도 더 보고 싶어하고, 시를 쓰기도 할 겁니다. 어떤 때는 음악회에 가서 시를 보고 느꼈던 감동과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될 수도 있겠죠. 인간의 기본적인 체험을 돕는 것이 인문교육이라 생각합니다. 시험을 위한 것이 인문교육이 아니에요. 시나 음악에 대한 감성은 시험 볼 수 없습니다. 귀천을 배운다고 해도 그에 대한 감성을 시험 볼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은 아름다운 시라고 느낄 거고, 다른 사람은 별로 느낄 수 없는 시라고 생각할 거예요. "Ok, that's you."

말씀하신 것처럼 학생들이 살아있는 시를 배우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한국의 교육방법은 대부분 지시적입니다. 이런 방식에 익숙해진 학생들은 대답주기를 기다리죠. 하지만 선생님은 가르치고 학생은 배운다는 생각은 완전히 잘못된 거예요. 스스로 경험하고 배워야죠. 학생들이 직접 생각해보고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알고, 그것을 말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학생의 독립된 정신이 있어야 해요. 선생은 학생이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지, 이렇게 느끼고 생각하라고는 할 수 없어요. 선생님은 아이들의 생각을 대신해 줄 수 없어요. 아이들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질문하면, 조금 더 넓게 생각하도록 유도해야 해요. 자신의 생각 없이 문학을 대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시를 조금 더 살아있는 것으로 배울 수 있는 방법이 하나 더 있다면, 아이들에게 자신의 시를 직접 써보게 하는 방법이 있어요. 학생들에게 시를 제시하고 비슷한 제목으로 시를 써달라고 하면 '멍'해요. 자신의 생각을 시로 이야기하지 못하더군요. 시를 창작해보면, 시가 어떤 것인지, 어떻게 나오는지 좀 더 느낄 수 있을 텐데도 말이죠.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못한다는 점은 충분히 공감합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시를 직접 읽게 하고, 스스로의 생각을 말할 수 있게 하고, 직접 시를 써보면 시를 살아있는 것으로 배울 수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그리고 넓게 보라고 다독여줘야죠. 현대에는 시인도 많고 시도 많아요. 사람들 좋아하는 시도 제 각각이죠. 어떤 사람이 좋아하는 시를 다른 사람은 재미없다고 느낄 수도 있죠. 사실 모두에게 좋은 시는 없어요. 모든 시가 좋죠(웃음). 각자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거예요. 어느 날 문득 어떤 시가 '우왓'하고 자신에게 의미 있게 아름답게 다가온다면, 다른 사람이 그 의미를 못 본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개인이 시를 보고 체험해야죠.

자기 자신의 의미를 찾으면 된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럼 이제 마지막 질문 하겠습니다. 이번 호의 테마가 "시를 가르친다는 것이 시작품을 가르치는 것인가, 시를 통해 인생을 가르치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어떤 때는 시가 삶에 비중을 더 두기도 하지만, 시를 가르치는 본래의 목적은 수업을 통해서 시작품을 직접 볼 수 있게, 감상할 수 있게 하기위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난 시 더 보고 싶어요. 다른 시 읽고 싶어요. 나도 시 쓰고 싶어요."라고 말할 수 있도록 도와야죠. 시의 아름다움, 시의 힘, 시 존재 자체가 목적입니다.

"살아있는 시교육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학습 스스로 시를 경험 · 체험하고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의미를 찾고, 나아가 자신의 말을 자신의 시로 쓸 수 있어야 한다. 시교육이란 시에 대한 제반사항이나, 접하기 어려운 시를 가르쳐 주고, 시의 감상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안선재교수의 생각이다. 그의 문화적 기반인 서양의 시교육론 일수도 있다. 이는 완전히 새로운 방법론은 아니다. 더욱이 우리 교육에 비교해 볼 때 서양의 교육방식이 막연히 우월하다 말할 수 없으며, 시가 다른 만큼 그들의 방법로을 우리 시교육에 쉽게 적용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안선재교수의 말에서 우리가 들었던 것은 시교육의 또 다른 방법론만은 아니었다. 정작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주었던 것은, 시와 학생들을 향한 그의 따스한 시선이었다.

<시교육> 001,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시교육' 편찬위원회, 16~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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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길에서 만나다

미당 시문학관

여행지에서 시를 만나다
홀로 떠나는 여행, 가방 속에 챙겨 놓은 작은 시집 한 권은 여행을 더욱 풍부하게 해준다. 하지만 시를 만나기에 시집 속은 너무 좁고, 시가 품은 것은 너무 크다.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우리나라의 푸른 숲과 맑은 강, 숨 쉬는 생동감 속에서 시를, 시인을 만나보자. 여행지에서 길을 걷다 우연히 만난 그들이 얼마나 반가울까.

시인, 미당을 만나러 가자
유난히 더우가 길었던 탓인지, 선선한 바람에 저절로 옷깃을 추스르게 되는 가을이 차마 반갑니다. 온 나라가 부끄러움으로 물드는 가을엔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마음 푹 놓고 이 계절을 만끽할 수 있는 곳으로 떠나볼까'하니 구름 한 점 없이 높고 푸른 하늘만으로는 가을을 느끼기에 부족한 것 같다. 하늘만을 향했던 시선을 발 아래로 떨어뜨려 보자. 가을 향기에 취해 무심코 따라간, 노오란 국화가 만발한 그곳에서 우리는 미당을 만날 수 있다.

얼마 전 젊은 문인들은 과대평가된 시인으로 고은과 서정주를 꼽았다. 미당의 경우, 그의 문학에 대한 언급은 없이 '작품을 평가하기에는 친일로 인한 과오가 너무 크다'는 지적을 받았다. 물론 미당은 생명을 노래하던 입으로 친일을 행했다. 뿐만 아니라 이어지는 친군부행위 등을 통해 권력을 향한 기회주의자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미 그의 부끄러운 행적이 알려질 만큼 알려진 때에 더 이상 그에게 덧칠을 할 필요가 있을까. 미당을 향한 젊은 문인들의 씁쓸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긴 작품의 우수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의 문학을 살펴볼 때, 우리는 무엇을 얼마만큼 볼 수 있는가. 미당의 전기적 요소를 살펴보는 것은 그의 문학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미당 문학의 뿌리이자, 그의 삶이 진솔하게 담겨있는 '미당시문학관'으로 떠나보자.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한 초등학교 분교를 개조해 만들었다는 '미당시문학관'에 도착하면 수줍던 신부의 초록 저고리 빛깔을 가진 잔디밭이 우리를 맞이해준다. 낮은 산과 낮은 집들이 모인, 한가로운 선운리에 낯선 콘크리트 건물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양쪽에는 옛 초등학교 건물을 개조한 전시실이 있다. 전시실에 놓인, 친숙한 시 뿐만 아니라 그의 친일 행적을 보여주는 작품들은 미당에 대한 진솔함에 충실하고 있다. 또한 그와 부인의 다정한 사진, 여행지에서 아내를 걱정하며 쓴 편지, 손때가 묻은 소파 등을 통해 한 시인의 삶이 알몸을 드러내고 있다. 미당의 모든 것을 다 보여 주려는 욕심이 지나친 탓인지, 아직은 여유를 가지고 그의 삶을 함부로 정리할 수 없는 탓인 지, 전시물들이 체계를 갖추고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아 관리가 소홀해 보이지만, 제법 풍부한 유품을 보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전망대에 오르면 비로소 그가 보인다
1층 전시실의 유품들과 작품들로는 부족하다. 미당을 진정 느끼고 싶다면 콘크리트 건물의 계단을 따라 무거운 다리를 옮겨보자. 계단을 올라가면 액자에 걸린 그의 작품들이 이어지고, 각 층의 좁은 공간에는 생전에 그의 집필 공간, 그가 사용하던 돋보기, 파이프, 지팡이 등이 전시되어 있다. 세계 여러 산의 이름과 높이를 외우며 치매를 예방한 그의 흔적들을 보고 새삼 그의 정신력에 놀라기도 한다. 바다가 보내는 바람이 느껴질 때면 어느새 탁 트인 전망대에 도착한다. 전망대 위의 대리석에는 '스물 세 햇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라는 그의 대표작 '자화상'의 일부가 새겨져 있다. 이제야 그동안 낯설었던 그 시구가 한 발짝 다가오며 악수를 건넨다. 한 쪽에는 동그란 구멍 사이로 미당의 생가가 보인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시인의 묘소, 이제 그가 부인과 함께 누워 있는 곳에는 가을마다 국화가 장관을 이룬다.
이처럼 미당의 삶의 흔적을 되짚어 가며 전망대에 오르면 비로소 왜 이곳에 문학관이 자리했는지 절로 알게 된다. 질마재 신화를 낳은 한가로운 평야, 겸손하게 낮은 산, 멀리 보이는 곰소향, 정겨운 선운리 사람들까지, 문학관은 그의 시가 존재할 수 있게 한 이곳을 느껴보라 말하고 있다. 그의 삶을 따라 전망대에 올라 이곳이 가진 독특하지만 낯설지 않은 정서를 발견했을 때, 적어도 미당 문학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탁 트인 시야를 통해 한결 가벼워진 마음을 가지고 내려오는 길에 다시 만나는 미당과는 왠지 가까워진 느낌이다. 눈과 마음으로 받아들인 소중한 경험을 간직하고 시문학관을 나서면 왠지 아쉬움이 남는다. 조금 더 발길을 넓혀 그 엷붉은 땅의 촉촉함을 피부로 느껴보자. 미당에게 스며들어 있는 이 촉촉함을 직접 느낄 수 있다면, 그의 시를 이해하고, 가르침에 있어 더 이상 그늘에서 헤매며 혼란스러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인적이 드물어 더욱 여유로운 선운리는 국화 향기가 진동하는 가을이면 국화축제에 활기를 찾는다. 또한 국화가 만발한 어느 때에 '미당 시문학제'도 열리고 있다. 하지만 단지 한 계절의 축제에 지나지 않는다. 평소에 이곳을 목적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은 그가 그리워 간간히 방문하는 문인, 작가들, 또는 관광의 연장으로 미당을 기념하는 박물관을 견학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단순히 그를 그리워하고 잠시 쉬어가는 곳, 발길이 뜸한 기념관으로 이곳을 바라보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남도의 여유로움이 머무는 이곳을 우리나라 젊은 작가들이 마음 놓고 시를 지을 수 있는 곳으로 확대할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하지만 미당 시의 우수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래서 미당 문학관은 자연스럽게 우리를 창작의 길로 이끌지 않을까.

가을이 아니어도 좋다. 국화꽃이 만발한 언덕이 아니라도 좋다. 전망대에서 바라보이는 남도의 평야가 주는 여유로움을 느껴보자. 자신에게 쏟아지는 숱한 세상의 말들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 질마재 언덕의 고립도 대립도 없는 길 위에서 우리는 미당을 비로소 만날 수 있다.

<시교육> 001,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시교육' 편찬위원회, 1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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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독서노트 쯤 한 번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지 단 한 번도 그 비슷한 걸 해본 노릇이 없다.

워낙에 꼼꼼스런 성격이 못 되다보니, 그런 종류의 것에 영 둔감하게 작동하나보다. 나의 단점이다.

굳이 이런걸 단점이라고 꼬집기는 좀 뭐하다.

얼마전 알리딘 서재에서 한 해 동안 읽은 책이 몇 권인가를 설문한 적이 있다.(아직도 하나,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나도 남 못지 않게(알라딘의 대다수 주요 서재폐인 분들께는 적잖이 못 미치지만서두) 2006년 한 해 열심히 책을 읽었기에 이 설문에 당당히 응해보려고, 한 해동안 내가 몇 권이나 읽었는지 가늠해 보려 했는데, 이건 영~ 올해 읽었는지, 작년에 읽었는지 영 감이 안 잡히고, 읽고는 책장 어딘가에 쳐박아둬서 찾기도 힘들고, 도대체 셈이 제대로 되지가 않는거다.

그나마 리뷰에 몇 권 올린 것들을 기준삼아, 대강을 정리해 보니, 한 7~80권 되는 듯하다. 누구는 100권을 읽었느니, 200권도 웃습다느니 하시지만, 내가 볼 때 나에게는 이것도 좀 했구나 싶다. 그리 뿌듯할 정도는 아니지만.

내심 2006년 한 해 동안 한 100권은 읽었으면 싶었는데, 그게 맘대로 잘 되지 못했다. 한 해 동안 100권을 읽는다는게, 따지자면 3일에 한 권을 읽는다는 얘긴데(내가 읽은 것 중엔 시집 같은 얇은 종류의 책이 있는가 하면, 500쪽이 넘는 두꺼운 종류의 책들도 있다. 그러니깐 평균잡아 한 3~400쪽 짜리 책들을 읽은 듯 싶다. 평균은 좀 낮아질 가능성도 농후하다. 그렇다고 한 해 읽은 시집은 채 10권이 되질 않는다.) 이게 나한테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워낙에 정독(?)을 하는 성격이라(사실 좋게 말해 정독이지, 하는 짓이나 책읽는 속도나 느려터지긴 매일반이다. 이것도 내 단점이라고 한다면, 어쩔 수없이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어지간한 책은 며칠을 잡아먹어야 완독이 가능하다. 요즘들어 빨라진 탓에 80권 정도를 달성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래서 2007년에는 독서일기나 독서노트 까지는 못 쓰더라도 책계부(冊計簿)를 한 번 써보실 작정이다.(이넘의 작정이란 것이 매반 년초의 작심삼일이 되는 것이 통상인데, 내가 또 요런 장점은 내세울 만한 것이, 한 번 작정한 노릇은 어지간히 밀고간다는 거다. 작심 한달은 기본이라고 본다.ㅎㅎ)

얼마전 구입한 도서에 이벤트로(그 책은 아마 <4천만의 국어책>이던가 그랬다.) 쬐끄만 다이어리 비슷한 것을 받았다. 그렇다고 내가 다이어리 기록하는 성격 못된다. 이걸 나둬봤자 양중에 쓰레기 된다. 그래서 그놈을 활용하면 딱이겠다 싶어, 당장에(2007년 황금돼지 날아온 첫날) 책계부를 쓰기 시작했다.

내가 600년 만에 날아온다던 황금돼지를 맞이한 첫날 무엇을 했느냐 하면, 집에서 뻔드러지게 주무시다가, 잠에 지쳐 무작정 교보문고 인천점을 찾아나섰다. 가는 날이 장날이 아니라 쉬는 날이어서, 고 쪼~옴 옆에 있는 영풍문고엘 갔다. 가서 책 3권을 모셔왔다 이거다.

그래서 2007년 1월 1일자 책계부를 썼다.

앞부분엔 그날 읽기 시작한 책, 다 읽은 책을 날자에 맞게 기록하고, 뒷부분 메모란에는 책구입내용을 적어 넣기로 했다.(사실 겸사겸사 2006년 한해 구입한 책이 얼마나 될까를 셈해보려 했는데, 그것도 만만찮았다. 워낙에 지름신이 강림을 밥자시듯이 하셔서 말이다. 어림잡아 한 300권 되나보다.)

책계부 첫 기록은 다음과 같다.

2007년 1월 1일

 서평단 모집에 딱걸려서 받은 <천양희의 시의 숲을 거닐다>를 읽고 서평을 쓰고 읽기 시작했다. 사실은 서평단에 걸린게 또 하나 있어서 고게 배달되면 읽어야겠기에, 고 사이 간단하게 읽어낼 꺼리를 찾다가 주워든 것이다. 졸지에 내 책계부 첫페이지를 장식하는 영광을 얻으셨으니, 서머싯 몸이 몸을 부르르 떨 일이지 않은가? ㅎㅎ

 

 

책계부의 또다른 첫 기록은 다음과 같다.

2007년 1월 1일 도서 구입 내역 영풍문고 인천점

 

 

 

 

<현대시 교육론> 14,000원 계속 눈여겨 오다가 큰맘먹고 샀다. 이런 종류의 책이 다소 비싸긴 하지만, 이 책은 그 가격에 비해 좀 얇팍해서 쉽게 계산대에 올려놓기가 뭐했었다. 황금돼지가 날아왔기에 한 번 쐈다.

<한자놀이 이야기> 12,000원 평소 한자에 관심을 가져왔는데, 제대로 아는 건 많지 않다. 한자를 보다 재밌게 하는게 한자놀이, 그중에서도 파자놀이다. 이 책은 파자놀이에 대해 재밌게 소개하고 있기에 냉큼 집어들었다.

<단군, 만들어진 신화> 13.000원 최근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란 책을 읽고 고조선에 대한 관심을 조금씩 늘려가고 있었던 와중에 이번 서점 행차에서 발견했다. 이 저자의 시각은 조금 다른듯 싶었다.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어느게 다른지, 그 다른 목소리도 들어보고 싶다. 하긴, 아직까지 어느것 하나 해결되어진 것이 없는 논란이 고조선에 대한 것 아닌가. 무엇보다 이 책이 그간 고조선사의 여러가지 논의들을 정리하고 있다기에 한 번 읽어보고 싶었다.

사실 책계부에는 책이름과 가격만을 적었을 따름이다.

책계부를 적으면서 제일 기대하는 것은 2007년 한 해는 보다 자극받아서 100권 돌파의 작은 목표를 달성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잘 돼야 할텐데.....ㅎㅎ(조금 어려운 노릇이 올 한 해는 내 본업을 위한 공부에 집중해 보자는 맘을 요전에 먹어놔서, 뜻대로 독서가 되기는 애당초 힘들성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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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1-02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홧팅. 제가 하고 있는 목록작업에 가격만 적어넣으면 되는건가요? 그럼 책에 쏟아부은 돈이 얼마인지 알 수 있겠어요.

해리포터7 2007-01-02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를 달과 6펜스로 시작하셨다니 예상하기에 아마 작년보다 더욱 열정적인 해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멜기세덱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마노아 2007-01-02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님들은 책상에 세워두는 달력에 책 제목 적어놓으면서 책계부 쓰시더라구요. 그것도 나름 괜찮은 것 같아요. 칸이 넓잖아요. 전 다이어리 얇은 것을 애용해요. 들고 다니기에 무겁지 않은 것으로요. 6^^

멜기세덱 2007-01-03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투자한다라고 하죠 뭐. 아무래도 '쏟아붇는다'는 표현은 우리 알라디너의 용법이 아닐거 같아요.ㅋㅋ 홧팅! 감사합니다. 아프락사스님 올 한 해 저보다 꼭 하나씩 더 행복하세요...ㅎㅎ 참고로 전, 올해 무쟈게 행복할 생각이랍니다..ㅋㅋ
해리포터7님> "더욱 열정적인 해"라! 예전에 저도 그림을 좀 그려보고 싶긴 했었는데요..ㅎㅎ 아직 내 나이 30이 못되는데, 왠지 '열정'을 눈을 씻고 찾을래야 찾아볼 수가 없으니 원! 해리포터의 모든 행복의 마법이 님에게로 통하시기 바랍니다.
마노아님> 앗하 달력이 있었군요. 지금 제 탁상달력을 보니 조막만해서 적기가 애매하네요..ㅎㅎ 마노아님 올 한 해 황금돼지를 수백마리 잡으시길 기원합니닷!

marine 2007-01-03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과 6펜스, 저도 꼭 읽고 싶은 책이예요

2007-01-05 1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멜기세덱 2007-01-07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마린 님> 다소 지루한 감을 느끼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흥미롭고 재밌게 읽히더군요... 꼭 한 번 읽어보세요.
속삭이신 님> 감사합니다. 아이들에게는 책계부가 좀 부족한 감이 있죠. 교육적으로 좀 효과를 생각하신다면, 책계부보다는 독서일기 비슷하게 가는 게 좋을 듯 해요..ㅎㅎ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우리 역사 바로잡기 1
이덕일, 김병기, 신정일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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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흔히 우리 역사의 자랑거리로 “역사상 한 번도 다른 나라를 침입한 적이 없다.”는 것을 말하곤 한다. ‘얼마나 자랑할 것이 없으면 그런 것을 자랑할까?’ ‘뭐, 내세울 것 없으니 임기응변으로 갖다 붙인 것 아니겠는가?’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간혹 이런 생각들을 해오곤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또한 그만한 자랑거리가 없다. 드넓은 벌판을 누빈 징기스칸의 몽고나, 아직도 거대한 영토를 거느린 중국 등의 대제국의 역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찬양을 받아왔다. 우리의 역사에서 그렇지 못한 것을 한탄하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그래서일까? 주변의 다른 나라를 침범하지 않았다는 것을 자랑으로 내세우는 한편, 우리 역사에서 숨은 대제국의 역사거리가 없는가를 열심히 찾고 있지 않은가?

  사실 우리가 다른 나라의 침입을 수백차례 당한 것은 뼈아픈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우리 역사에서 다른 나라를 침범한 적이 없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하기 어렵다. 어찌 과감히 ‘단 한 번도’를 내세울 수 있느냔 말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의 역사가 말 그대로 다른 나라를 침입하여 칼과 창을 흔들어 파괴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면 그것은 정말이지 자랑거리가 아니겠는가? 난 요즘들어 그런 생각을 해보곤 한다.

  일본의 역사왜곡의 지난한 문제에 골머리를 앓아오던 차에, 저 기세등등의 대륙의 지배자께서 우리의 역사를 갈아먹으려 하고 있으니, 양수겸장을 맞은 것이 아닌가? 난감한 노릇인 것은, 말도 안 되고, 허무맹랑하기까지 한 논리로 우리의 고대사를 가로채려 하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우리의 역사학계에서는 당황한 탓인지 속수무책으로 이렇다 할 대응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다.

  나는 이런 현실 속에서 차라리 우리의 역사가 한낱 보잘 것 없는 영토를 차지해 왔다손 치더라도 ‘다른 나라를 단 한 번도 침입한 적이 없는’ 평화를 수호하고 지켜온 아름다운 역사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일본의 역사왜곡이나 중국의 동북공정은 무력과 전쟁의 목적, 즉 대제국의 옛 꿈을 다시금 실현하고자함에 그 기저를 두고 있다. 이것은 다만 지나간 역사의 왜곡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 거기에는 피와 전쟁의 참혹한 역사만을 남긴 제국주의의 부활의 꿈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는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들과 똑같은 논리, 똑같은 목적에서의 ‘이에는 이, 눈에는 눈’식의 대결적 대응은 바람직한 것이 못 된다. 예를 들어, 우리의 옛 역사에서 “광활한 저 대륙을 종횡무진 누비며 대제국을 지배했었다”느니 하는 대응 말이다. 제국주의에 제국주의로 맞서는 것은 끝없는 파멸을 자초하는 것일 터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역사가 사실과는 다르게 왜곡되는 것에는 어떠한 타협과 정치적 의도가 반영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주변 강대국의 무서운 의도가 숨어 있는 역사왜곡의 문제에 대해 유효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충실한 우리 역사의 발굴과 체계화가 필요하다. 허무맹랑의 논리에 실증적 사료와 논리적 역사기술을 내세운다면 그들의 역사왜곡은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는 다소 선정적 제목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동북공정에 보다 유효적절한 대응의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제목이 선정적이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우리 역사 인식이 위에서 말한 것처럼 좀 위험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제국주의에 대한 제국주의적 대결이 바로 이러한 인식이다. 어린아이들의 싸움에서 흔히 보이는 것이 자기 아빠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서로 주장하는 것이다. “너희만 강대국이었니? 우리도 강대국이었어 임마! 까불지 말라고. 확 그냥!”식의 논리가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는 한 마디에 담겨 있지는 않은 것인가?

  그러나 이런 제목을 담은 의도가 보다 대중의 주목을 끌기 위한 방편이라고 보여질 뿐, 책 속의 내용은 꼼꼼한 사료를 바탕으로 한 고조선의 역사를 재검토하고 서술하고 있다. 말하자면, 고조선이란 나라가 역사적 사실일 뿐 아니라, 과거 중국 고대의 한나라와 견주어 손색없었던 강대국이었음을 강조한 것일 뿐이다. 난 적어도 저자들의 집필의도가 거기에 있을 뿐이라고 보고 싶다. 그들과 똑같은 제국주의의 끝없는 열망이 담겨져 있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저자들이 밝히고 있는 이 책의 의도를 “일제 식민사관과 중화 패권주의 사관은 한 세기 가까운 시차를 두고 있지만 두 사관의 한국사 공격이 고조선이란 동일한 대상에게 집중”되고 있고, “우리 국민들의 현재의 역사관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식민사관’에 대해 그를 바로잡고자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 고조선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인식을” 갖게 하기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우리 역사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인식”이다. 그것을 위한 이 책의 노력은 가히 높이 살만하다.

  이 책에서는 우선 국사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고조선이 어떻게 잘못되어 있는지를 조목조목 따진다. 우리 국사 교과서는 대강 훌터 보아도 오류와 정리되지 않은 서술임을 알 수 있다. 거기에는 고조선에 대한 우리 학계의 체계화되지 못한 역사서술의 문제가 담겨 있고, 또한 식민사관에 의한 역사 기술의 더 큰 문제가 담겨있다 하겠다. 우리 역사에 대한 ‘정확한 인식’의 초석을 다잡는 것은 바로 우리 역사 교육의 현장부터가 시급하다고 하겠다. 고조선에 대한 신화적 인식은 우리의 역사의 기초를 단순한 신화로 치부하게끔 한다. 그러니까 우리의 역사 인식의 기초가 그런 오류를 바탕으로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신화속의 고조선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역사적 사실로서, 정확한 역사 인식을 위해서 이 책은 단연 돋보이는 성과를 이루었다고 생각된다. 흔히 ‘고조선’의 ‘고’가 이성계가 세운 ‘조선’과 구분하기 위해서 붙인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었다는 아주 기본적 사실조차 잘 모르고 있었으니, 다 아는 듯하지만 거의 모르고 있는 것이 우리 역사의 시작이랄 수 있는 ‘고조선’이 아닌가 한다.

  이 책은 이 외에도 다양한 사료를 바탕으로 고조선의 모습을 복원하고 있다. 전체적 맥락이 고조선이 광활한 영토를 차지했던 강대국이었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지만, 그것이 다만 우리 역사가 광대한 제국의 역사를 가졌었다는 뿌듯한 자랑거리로만 다가오지 않길 바란다. 이 책이 우리에게 보다 가치가 있는 부분은 고조선에 대한 보다 정확한 역사 인식을 갖추게 하는 것임에 있다고 하겠다. 고조선을 알고자 하는 것이라면 이 책이 적절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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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수록 시의 시인을 만나다]

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 정.일.근

교과서에 작품이 수록된 시인을 찾아가서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것은 바람직한 시교육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직업이다. 해당 작품을 어떠한 상황 속에서 어떤 생각으로 썼는지, 자신의 시를 어떻게 교육하기 바라는지, 혹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학생들이 어떤 것들을 배우고 느끼길 바라는지를 물어보고, 그들의 대답을 듣는 것은 바람직한 시 교육을 위한 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으로 우리는 중학교(1-2) 국어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는 연작시「바다가 보이는 교실 10 - 유리창 청소」의 작가 정일근 시인을 만났다. 그의 작품을 통해서 학생들이 어떠한 것들을 배우고 어떻게 감상하기를 바라는지, 더 나아가 바람직한 시 교육을 위한 선생님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바다가 보이는 교실

  참 맑아라.
  겨우 제 이름밖에 쓸 줄 모르는
  열이, 열이가 착하게 닦아 놓은
  유리창 한 장

  먼 해안선과 다정한 형제 섬
  그냥 그대로 눈이 시린
  가을 바다 한 장

  열이의 착한 마음으로 그려 놓은
  아아, 참으로 맑은 세상 저기 있으니.

선생님,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2001년 지금 살고 있는 울산시 울주군 웅촌면 은현리, 솥발산 자락에 들어오면서 '전업시인'을 선언했습니다. 전업시인이란 시를 쓰는 일을 업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 쓰는 일이 주업이니 시를 많이 씁니다. 그리고 올해 처음 마당 텃밭에 어머니와 함께 배추 15포기를 심었는데 5포기는 실패하고 지금은 남은 10포기를 키우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올해 제 손으로 키운 배추로 김장을 담는 즐거움에도 빠져 있습니다.

연작 시「바다가 보이는 교실」에서 (-유리창 청소)가 현재 중학교 1-2학기 국어교과서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작품 창작 당시의 상황이나 작품을 쓰게 된 배경, 후일담 등을 말씀해 주세요.
1985년에 경남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과를 졸업하고 모교인 진해남중학교에 부임했습니다. 그리고 신문사로 자리를 옮기기까지 3년 반을 시의 제목 그대로 바다가 보이는 교실인 모교에서 국어교사로 근무했습니다. 지금의 교육여건과는 많이 다른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국어와 한문을 가르쳤는데 정규 수업이 30시간, 보충수업이 13, 4시간으로 주당 43시간 이상을 수업하는 후진국 교사였습니다. 저는 그런 우리나라 교육현실에 불만이 많앗습니다. 대학시절과 휴학시절을 포함해서 7년을 야학교사로 일했습니다. 그래서 1984년 10월에 '야학일기'라는 연작시 등으로 당시 무크지였던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을 하고 1985년 1월에는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가 당선되었습니다. 제가 알기로 제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교육시'를 썼던 시인일 것입니다. 그 이후에 교육시와 교육문제에 대한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진해남중에 근무하면서도 <바다가 보이는 교실> 연작시를 썼습니다. 모두 피가 뜨거웠던 20대에 썼던 시들입니다. 함께 했던『시힘』동인 중의 한 명인 안도현 시인도 당시 이리중학교에 국어교사로 있었는데 안 시인에게 교육현장의 시를 쓰자고 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교실'은 모두 11편을 썼습니다. 제가 담임을 했던 '열이'에 대한 이야기는 바다가 보이는 교실 홈(HTTP://WWW.1318POEM.NET/)에서 제가 쓴 '처음의 아름다움'이란 산문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현재 일선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시를 다음<첨부1>과 같이 배우고 있으며 평가<첨부2>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첨부1>과 <첨부2>는 어떤 문제집에서 따온 듯 하다.)
저는 시는 읽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학교수업에서의 시는 시험을 전제로 한 학습이 되다보니 어려서부터 시를 읽기가 싫어지는 것입니다. 사실 저도 그렇게 배웠고 저도 그렇게 가르쳤습니다만 시의 이해는 교육을 통해서 이뤄지기 보다 시를 읽는 사람 스스로 시의 즐거움을 아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모 중학교 국어선생님께서 제 시에 대한 시험문제를 들려주고 답을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모두가 답이 될 수 있고 답이 아닐 수 있다고 했습니다. 주관적인 시에 너무 객관적인 답을 요구하는 것이 시 읽기를 방해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중 ·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시에 혼이 난 친구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시를 멀리하게 됩니다. 시가 시험이 아닌 읽고, 쓰고, 생각하는 그 처음이 되었으면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선생님의 시를 통해서 독자(학생)들이 어떤 것들을 느끼고, 생각하게 되길 바라는지, 말씀해 주세요.
교과서에 수록된 제 시는 스무 해 전에 쓴 시입니다. 그 사이 저의 시 세계는 많이 변화되어왔습니다. 그 한 편의 시를 읽히는 것보다 학생들에게 다른 대표작들도 함께 읽혀서 한 시인을 이해하는 교육도 함께 되었으면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교과서에 실린 저의 작품은 연작시「바다가 보이는 교실」중에서 하나일 뿐입니다. 나머지 9작품도 함께 읽어보고 감상함으로써 다양한 시적인 감수성과, 시적 상황을 폭넓게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학생들이 좋은 시를 많이 외웠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한 사람이 인생을 사는데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어릴 때 외운 시는 지금도 외우고 있습니다. 평생을 외우는 명시는 중 · 고등학교 국어시간을 통해서 꼭 이뤄졌으면 합니다.

선생님께서도 교단에서 학생들을 지도한 경험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바람직한 시 교육이란 어떤 모습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묻고 싶습니다. 아울러 시 교육에 대한 '평가'는 이루어져야 하는지? 이루어져야 한다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 생각이 있으시면 덧붙여 말씀해 주세요.
어려운 질문입니다. 위의 물음에 대한 답과 중복이 됩니다만, 먼저 스스로 시를 읽어내는 힘을 길러줘야 합니다. 시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게 만드는, 시와 친구되게 하는 교육도 필요합니다. 세 살 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합니다. 어려서부터 시를 읽게 한다면 한 사람의 평생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상급학교 진학이 아닌 평생교육으로 시를 가르쳐주었으면 합니다. 현재의 평가방식에 관해서는, 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건 시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 전반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수행평가에서 좋은 시집을 많이 읽고 좋은 시를 많이 외우고 좋은 시를 창작할 수 있는 학생들에는 국어점수에 가산점이 있었으면 합니다.

교과서라는 매체의 특성상 수록된 작품의 영향력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혹시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수록 작품 선정기준이 있다면 한 말씀 듣고 싶습니다.
학생들의 눈높이를 생각하는 시 선정은 필요합니다. 곧 중학교 국정교과서도 검인정 교과서로 제작된다고 합니다. 앞으로 시를 선정하시는 분들이 시인의 명망에만 기대기보다는 시를 우선하는 시인(詩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학생들을 가르치는 현직 선생님들에게 많은 의견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안빈낙도가 즐거움이니 욕심 없이 살고 있습니다. 다만 늘 건강이 조심스러운데 건강한 몸으로 건강한 시를 쓰는 것이 꿈이니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일이 제 계획입니다.

정일근 선생님은 자신의 시를 통하여 학생들이 시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길 바라셨다. 때문에 시인은 단순히 교과서에 실린 작품만이 아니라, 다른 연작시들도 함께 교육되길 기대하였으며 아울러, 학생들에게 시를 많이 접하게 하고, 많이 외우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어렸을 때 시를 가까이하고, 시적인 체험을 경험하는 것은 자기를 발견하고 반성과 발전의 계기가 될 뿐만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깊이 있게 관찰하고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현재 학교에서의 시 교육은 시험이라는 전제 하에 이루어지고 있어서 안타까우며, 주관적인 시에 너무 객관적인 답을 요구하는 것은 시 읽기를 방해한다고 말씀하셨다. 즉, 중 ·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시에 혼이 난 친구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시를 멀리 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시가 시험이 아닌 읽고 쓰고 생각하는 그 처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신 정일근 시인의 말은 학교 현장에서 시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귀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미약하지만, 바람직한 시 교육에 대해 고민하고, 시 교육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해보았다. 이러한 노력들이 하나 둘 지속될 때, 학교 현장에서의 시 교육은 제 자리를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정일근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작가들의 목소리를 통해 바람직한 시 교육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하는 시간을 다짐해 본다.

정일근 시인은 현재 울산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그가 운영하고 있는 '인터넷 문화공동체-다운재(http://www.ulsan21.com/)'에 가면, 그가 지역 사회 문화 발전을 위해서 얼마나 애정을 갖고 노력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우리 문학은 그동안 너무 중앙 중심적이었다. 다양성을 상실한 채, 몇몇 대표적인 작가와 작품들에 의해서 한국 문학은 이야기 되어 왔던 것이다. 지방 문학의 발전은 결국 우리 문학 전체의 풍요로움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또한 한국 문학의 한국다움에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 정일근 시인의 노력은 높게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정일근 선생님을 첫 번째 인터뷰 시인으로 선정하였다.

 

 

 

 

 

<시교육> 001,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시교육' 편찬위원회, 10~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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