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語文隨想]

讀書는 知識의 生命水

文福姬(暻園大 敎授)


  白凡 金九先生은 『내가 願하는 우리나라』에서 “우리의 强力은 남의 侵略을 막을 만하면 足하다. 오직 限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文化의 힘이다.”라고 했다. 精神을 培養하는 것, 그것이 文化이다. 文化는 나와 世上과 事物의 關係性을 들여다보며 意味와 기쁨과 勇氣를 찾아가는 어떤 것이다. 自身을 省察하는 힘, 내 안에 眞正한 感覺과 叡智와 精神을 보듬어 가는 힘, 이것이 文化의 힘이다. 그가 限없이 가지고 싶어했던 最高의 價値가 높은 文化의 힘이라면 그 힘의 基礎를 어떻게 다져 가야 할까?

  開講을 하고 새 學期를 맞으니, 노오란 山茱萸가 무리지어 터지면서 校庭은 活氣가 넘친다. 캠퍼스에는 꽃消息과 함께 學生들의 젊음이 봄을 재촉하고 있다. 새 學期를 始作하면서 나는 大學生들의 삶을 質的으로 向上시킬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結局 人間의 具體的인 삶을 探究하고 自我를 發見하는 지름길은 讀書라는 結論에 이르렀다. 學問의 世界에서 讀書는 地下水의 水脈과 같다. 젊은이들이 讀書를 通해 眞正한 自我를 돌아보고 各自의 삶에 對한 省察의 機會를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이 곧 文化의 힘을 키울 수 있는 端初가 되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讀書하는 習慣을 갖는 것이 但只 大學生들에게만 要求되는 일은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適用되고 勸獎되어야 할 일이다. 사이버 空間이나 인터넷 情報를 通해 冊을 接하지 않고도 知識을 習得할 수는 있지만, 冊을 通해 自身을 省察하는 時間을 갖는 것이 精神生活의 健全한 發育을 爲해 가장 바람직한 길이라는 點에서 讀書는 必須 要件이다.

  讀書는 知識의 寶庫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知識이 담겨 있는 書籍을 要求하고 그것을 攝取하는 讀書가 必要하다. 物質的 生命을 支撐하기 爲해 飮食物 攝取가 必要하듯이 精神的 生命을 維持하기 爲해 知識을 攝取해야 한다. 나를 發見하는 것은 한 卷의 冊, 한 줄의 글일 수도 있다. 나의 自意識을 깨우쳐 주는 것도 冊과 對話하는 時間일 境遇가 많다.

  冊은 貴하고 所重한 存在이다. 儒敎의 根本 精神을 文治主義로 본다면, 글로 다스린다는 것은 冊에서 얻어지는 것, 卽 知識에 依해 國家 社會를 運營하겠다는 意志가 아닌가. 우리 先人들은 晝耕夜讀이라 하고 燈火可親이라 하며 冊 읽는 것을 높은 價値로 보고 讀書를 積極 獎勵해 왔다. 冊을 通하여 知識을 習得하며, 有識하다든가 博學多識하다는 말을 最高의 稱讚으로 여겨 왔다.

  讀書는 知識의 生命水이다. 冊에 담겨 있는 知識이 重要한 生存 戰略이다. 마음의 糧食을 通해 冊에 對한 믿음을 갖고 冊과 함께 숨쉬어야 한다. 知識社會의 基盤은 讀書이다. 그러나 德性 따르지 않는 知識은 毒이 되기 쉬우니 善用되어야 하며, 知識의 濫用이나 惡用으로 弊害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知識은 義를 지나쳐 보고 利를 따르는 데 퍽 銳敏하지만 德性은 私私로운 利益을 犧牲시키더라도 義理를 지키는 데 더 너그러움을 보인다. 이 너그러운 面, 卽 義를 忘却하거나 無視하는 知識은 그 分量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지어내는 바 害毒이 커서 오히려 知識이 없느니만 못하니, 오늘날 우리 農村의 匹夫匹婦가 풋知識을 가진 都市의 冷血兒, 狡智漢보다 얼마나 淳厚하고 무던한 義理와 人情味를 實踐 發揮하고 있는가.”를 指摘한 李熙昇의 글에서 德性이 缺如된 知識의 危險性을 생각하게 된다. 따라서 知識 習得의 秘訣이 讀書에 있으나, 豊富한 知識의 攝取만 내세우기 前에 眞正한 意味의 知識 習得이 徹底히 要求되어야 한다.

  우리 韓國 農村에서 볼 수 있던 옛 모습 中에 너그러움이 담긴 아름다운 光景 하나를 紹介하면, 지게에 볏가리 짐을 가득 담아 등에 짊어진 農夫가 볏단을 실은 달구지를 같이 끌고 가는 모습이다. 소달구지에만 무거운 짐을 모두 맡기지 아니하고 한낱 짐승과도 짐을 나누어 짊어지며 살아가는 農夫의 모습, 이것이야말로 人間에 對한 사랑을 넘어서서 動物에게까지 베푸는 너그러움의 極致이며, 世上을 支撐하는 德性의 한 斷面이다. 讀書가 知識 習得의 捷徑이지만 知識도 人間이나 自然에 對한 너그러움과 사랑이 따르지 않는다면 人間의 삶 속에 生命水가 될 수는 없다.

  끝으로 “時計를 보는 것보다는 羅針盤을 보라.”는 말을 우리 人生의 具體的인 삶에 適用해 볼 때, 그 內面的인 뜻은 時間처럼 그냥 가는 것보다는 올바른 方向으로 가고 있느냐가 더 重要하다는 意味일 것이다. 熾烈한 時間 다툼의 時代에 時計를 보는 것은 競爭에서 이길 수 있는 緊張感을 造成해 주지만, 羅針盤은 올바른 目的地로 가기 爲한 道具에 不過하다. 目的地가 잘못 標示되지 않는 限 羅針盤의 役割은 方向을 알려주는 意味 있는 道具이다.

  讀書는 우리가 가야 할 目的地의 方向을 提示하는 羅針盤과 같은 구실을 하며, 어느 한쪽만 치우쳐 보지 않고 均衡 잡힌 視覺을 갖도록 해준다.

  讀書는 작은 世界에서 未來의 넓은 世界로 나갈 수 있도록 情緖를 擴大 深化하는 作業이다. 또한 讀書는 人生을 多樣한 角度로 보게 해주는 創意的 活動이며, 높은 文化를 이끌어 내는 힘의 根源이다.

<語文生活> 2007.4 通卷 第113號 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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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폭력의 세기를 고발한다 - 박노자의 한국적 근대 만들기
박노자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그간 박노자를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아껴 읽어왔다. 『당신들의 대한민국1, 2』에서부터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나를 배반한 역사』, 『하얀 가면의 제국』에 이르기까지, 그의 저서들을 열심히 탐독했다. 분명히 그의 필치는 나름의 매력이 있었고, 다루는 주제들도 나의 관심사 중의 하나였지만, 그의 이런 저서들을 탐독하게 만든 것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가 말하고 있는 것들이 나를 화끈거리게 만들었다고나 할까? 아마도 그런 것이 있었더랬다.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읽고서 나는 이런 화끈거림을 살뜰히 느꼈다. 부끄러움에 고개숙이기 보다는 '우리들의 대한민국'을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박노자에게 매력 만점을 주었고, 나는 그를 칭찬하는 리뷰를 쓰게 되었다. 그를 '경계인'이라고 애써 치부하면서, 그러기에 그런 날카로운 지적들이 가능하다고, 우리가 숙연히 받아들이고 고쳐가야하지 않겠냐고. 그렇게 박노자의 첫 저서에 평을 단 적이 있었더랬다.

그 후로 계속된 박노자 읽기에서 나는 더이상 그의 저서에 어떤 평도 달지 못했다. 무엇때문이었을까? 그의 저서들을 읽어갈 수록 나의, 그리고 우리의 부끄러움들이 너무도 무섭게 까발겨져서, 더이상은 고개를 들 수 없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다만 박노자 잘한다를 속으로 뱉어냈을 뿐이었다. 한가지 이유를 첨언한다면, 그를 이제는 더이상 '경계인'으로 규정할 수 없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 귀하한 법적 한국인 박노자를 경계인이라 규정했던 내게는 '그는 나와 다르고, 우리와 다르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라는 생각에서 오는 관용이랄까? '남이니까 그런 소리가 가능한거지'라는 타자화였을까? 그런 것들이 분명 있었더랬다. 그러나 이제는 더이상 박노자를 우리와 다른 타자로 규정하는 '경계인'의 칭호를 붙여둘 수가 없다.

끊임없이 까발리고, '고발'하는 그에게 나는 이제 '우리'라는 동질성을 부여하고자 한다. 나 아닌, 우리 아닌 박노자의 진심어린 충고를 받아들이기엔 우리의 부끄러움이 너무 크고, 그의 충언을 받아들이고 '우리'를 반성하고 성찰하기 위해서도 이제는 그를 우리 안에 끌어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럴때 그의 까발림은 충언이 되고, 그의 고발은 우리의 반성과 성찰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는 지금 저 먼나라 타국땅 노르웨이 오슬로에 가 있다.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그가, 저 먼 타국 노르웨이로 날아가버린 이유가 무엇일지 난 궁금하다. 그는 왜 노르웨이로 날아갔는가? 우리 (대학)사회가, 우리 사학계가 그를 진정 '우리'로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단지 나의 추측일 따름이지만, 그의 우리 가까이에 있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우리 안에서, 우리와 함께하며, 가까이서 '까발리고 고발' 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말이다.

그의 까발림과 '독설'적 고발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김일성 동상'과 '이순신 장군 상'의 담긴 이데올로기적 동질성을 말했을 때, 외국인 노동자(특히 동남아 및 아랍)를 대하는 우리의 오리엔탈리즘적 모순과 식민주의, 제국주의적 행위들에 대한 그의 냉혹한 필담에서 나는 진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화끈거릴 수밖에 없었고, 그러면서도 옷깃을 여미며 그의 목소리를 경청했던 것이다. 여기 『나는 폭력의 세기를 고발한다』를 읽으면서도 달라질 것은 전혀 없었다.

이 책은 "이 사회를 지배하여 개개인에게 체제를 뒷받침할 '경쟁의 영웅'이 되게끔 감요하는 '힘'의 논리를 예쁘게 포장하는 군대, 스포츠, 종교 등 각종 담론들을 해부하여 그들의 '고상함' 두에 숨겨져 있는 진짜 내용이 무엇인지"를 고발하고 있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힘'과 '폭력성'들을 추적하면서, 우리 사회 안에서 그것들이 어떤 모습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어떠한 과정을 통해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게끔 조작되어 있는가를 탐구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우리 안의 '폭력'을 까발리고 '고발'함을 통해서 우리를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부제가 "박노자의 한국적 근대 만들기"라는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의 '고발'과 까발림, 현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폭력적', '힘'의 논리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작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탐구는 우리의 근대가 '한국적'이지 못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왜 한국적이지 못했던 것일까? 그 원인을 추적하고 고발하는 그는 이제 제대로 된 근대,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한국적 근대'를 만들고자 하는 박노자의 '한국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우리의 역사 해석에서의 '힘'의 논리는 고대로까지 수렴된다. 삼국시대 피비릿내 나는 전쟁 속에서 무참히 죽어간 이름모를 민중들은 역사의 어느 페이지에도 기록되지 못했다. 얼마전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주몽>에서도 고구려의 '민족적' 힘의 번성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을 뿐이다. 이에 우리는 열광했고 공전의 히트를 쳤다. 우리 안에 내재된 이 폭력성은 곳곳에 숨어 있다는 것을 박노자는 세세히 까발린다.

한국 개신교 역사에서의 배타성과 폭력성을 비롯해서, 교육에 있어서의 적자생존, 강한 '힘'을 가진 인간육성, 위인전에 담긴 '힘' 있는 영웅에 대한 숭배 등 이러한 '힘'의 담론은 종교, 역사, 교육, 문화 등등 어느 곳에서도 잠재해 있다. 강한 국가를 꿈꾸었던 개화기 인사들의 '경찰국가의 이상'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우리의 절대적이고 신성한 '국방의 의미'라고 여기는 징병제에 담긴 내막까지도 속속들이 추적해 내고 있다.

일제시대 '유도'가 유입되는 과정에서 어떤 논리가 작용했는지를 추적하는 그의 작업 또한 흥미롭다. "얼핏 보면 '일상의 당연한 부분'으로만 보이는 무술 수련이, 태권도를 위시한 여러 무술 종목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던 권위주의 시대가 끝난 뒤에도 계속 이 사회의 각종 지배 담론들과 복잡한 유착 관계를 유지한다는 사실"을 말하면서 우리 사회의 "가장 일상적이고 생활적인 것들이, 보이지 않게 가장 정치적일 수도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기억해야 할 것을 박노자의 말하고 있다.

우리가 오늘날 '테러'를 보는 의식의 기반들은 어떻게 형성되었고, '동북공정' 논란에서 엿보이는 우리의 '힘'의 논리들 또한 해부하고 있다. 나혜석이란 한 여자를 끌어들이면서 근대가 던져준 여성의 고통을, 국가주의에 의해 잃어버린 우리의 개체성, 개인성을, 그리고 지역감정에 이르기까지, 박노자의 우리 사회의 '폭력'과 '힘'의 논리들의 원인자들을 찾아나선다.

이러한 대부분의 것들은 바로 우리의 '근대'형성기에서 적지않은 오류를 범하며 형성되었다는 것을 박노자는 진중하게 탐구하고 있다. 오늘날의 "체제의 수사와 권력관계의 현실 사이에서의 괴리는, 100년 전과 결코 다르지 않다"고 그는 말한다. 또한 "소위 '신성한 국방의 의무'가 실상 국가에 의한 상명하달적인 생활양식의 훈련을 받을 권위주의 사회 남성 구성원의 '사회화 의무'를 의미"하는 우리 사회의 이런 폭력성들은 "일제 말기의 총동원 체제와 식민지 이후의 남북한 군사주의 문화였"음을 그는 파헤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한국적 근대'를 만들 수 있을까? 박노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자. "개인 차원의 적극적인 저항은, 저들이 강요하는 생활 방식을 생각과 몸으로 동시에 부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현실적으로 버티기" 힘들다. 쉬운 방법으로는 "어쩔 수 없이 재벌이 만드는 물건을 쓰더라도 노동 탄압과 극우 정당에의 기부로 악명을 얻은 악질 재벌들의 물품을 보이콧하고, 학벌 타파를 위해 분투하는 시민단체들을 할 수 있는 대로 지원하고, 합법적인 병역 거부와 대체 복무를 위한 친화적 여론을 인터넷 등을 통해 조성하는 등 한 개인이 온몸을 내던지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들이 있겠다. "바로 현 체제가 인간의 심신을 파괴하고 인간의 행복추구권을 빼앗는다는 의식"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박노자는 말한다. 그럴 때 우리의 '폭력의 세기'는 마감될 수 있을 것이다. "'힘의 숭배'는 생명 파괴의 길이요, 죽임의 길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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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04-18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을 때마다 부끄러움이 앞서서 선뜻 집어들지 못하는 이름 중 하나입니다. 리뷰 잘 보았어요.^^
 

한미FTA가 타결되고 몇 주가 지난 지금이다. 이래저래 각 방송사들에서 관련 보도나 토론 등이 잇따랐고, 각 신문사들은 저마다 찬반이 분분하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한미FTA를 찬성하는 사람들이 과반수 이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한갓 미국이라는 대제국에 편승해서 우리도 잘 살아보자는 막연한 희망 섞인 긍정이 아닐까하는 걱정이 든다.

한미FTA에 관련해서 최근 김명인 교수가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이 있어 소개한다. 이번 협상 타결을 그는 80년 신군부세력의 쿠데타와 동일 선상에서 해석한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한·미FTA에 부쳐]1980년 5월, 그리고 2007년 4월

2007년 04월 10일

〈김명인/인하대 교수·‘황해문화’주간〉

1980년 5월, 12·12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세력들은 꼭두각시 대통령 최규하와 ‘TK 대부’라 불리던 총리 신현확을 앞세우고 자신들의 집권을 위한 시나리오를 완성시켜 가고 있었다. 박정희의 죽음과 더불어 오랜 군사독재체제의 청산과 문민 민주주의의 정착을 갈망하던 재야인사, 학생, 시민 등 민주세력들은 비상계엄 해제와 군부세력 퇴진을 요구하며 연일 성명과 시위, 농성으로 신군부세력의 음험한 기도를 저지하기 위해 진력했지만 전망은 불투명했다.

-역사퇴행 ‘닮은 꼴’ 사건-

그 시절은 이른바 ‘안개정국’으로 신군부세력의 폭력적 집권야욕을 걱정하는 비관적 전망과 설마 다시 또 군사독재의 수렁으로 빠지기야 할까 하는 낙관적이고 순진한 전망이 하루하루 교차되던 ‘타는 목마름’의 시기였다.

하지만 신군부세력은 5월18일 0시를 기해 이른바 ‘비상계엄 확대조치’라는 이름으로 2차 쿠데타를 감행했다. 비극적인 광주학살이 뒤따랐고 민주세력은 초토화되었으며 역사의 시계는 다시 거꾸로 돌게 되었다.

그로부터 27년이 흐른 2007년 4월, 신군부세력에 대한 민주세력의 승리의 기념비라고 할 수 있는 6월 민주항쟁 20년을 맞는 이 봄에 반군부독재 민주세력 승리의 마지막 결실이라고 믿었던 노무현정권에 의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치명적인 결과를 걱정하며 협정 계획이 발표되던 그날부터 지금까지 연일 집회와 시위와 성명과 단식농성과 심지어 분신까지 하면서도, 어쩌면 협상이 결렬되지 않을까 한 가닥 기대를 버리지 않았지만 민주정권을 가장한 신자유주의 정권은 27년 전 신군부세력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들의 쿠데타적 FTA 시나리오를 그대로 밀어붙여 마침내 현실로 만들고 말았다.

80년 5월과 2007년 4월을 이렇게 동일시하는 것을 이른바 ‘반대를 위한 반대론자들’의 강변이요, 어불성설이라고 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80년 5월은 전국민의 민주화에 대한 염원을 저버린 시대착오적인 폭력적 권력탈취이고, 2007년 4월은 절차적 문제는 있지만 세계화와 개방이라는 대세를 앞서 선취한 불가피한 결단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두 사건은 그렇게 판이한 것일까.

80년 5월의 신군부 집권 과정이란 역사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본질적으로 박정희식 쇄국주의를 깨뜨리고 전개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 세계질서의 한국적 재편성 과정이었다. 그러면 2007년 4월의 이 FTA 협상 타결 과정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그 신자유주의 세계질서의 한국적 관철이 종지부를 찍는 일인 것이다.

27년 전에 반민주적 신군부세력에 의한 폭력적 쿠데타의 형태로 시작되었던 그 하나의 과정이 27년 후인 지금엔 위장한 민주세력에 의한 헤게모니적 정책 집행이라는 형태로 완결되었을 뿐이다. 이 뚜렷한 동질성에 비하면 두 사건의 차별성은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27년 전 신군부의 집권 앞에서 용비어천가를 드높이 불렀고 이 FTA 타결을 놓고 그동안 그렇게 사사건건 시비를 걸던 노무현정권을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는 일부 언론사야말로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두 사건의 동질성을 꿰뚫어 알고 있는 노회한 통찰자들이며, 87년체제를 운위하며 한국사회가 민주화되었다는 환상에 몸과 마음을 내맡기고 있다가 지금에 와서 노무현정권과 386세력의 배신을 운위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순진한 햇내기들에 불과하다고 할 것이다.

-대안 촉구 머물러선 안돼-

지난 27년에 걸쳐 한국사회는 단지 하나의 길,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길을 걸어왔을 뿐이다. 그리고 이번 FTA 타결은 이제 그 외의 다른 길, 다른 사회, 다른 국가로 가는 모든 대안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마지막 봉인과도 같은 것이다.

이 앞에서 개방은 대세로되 절차상 문제가 있다거나 철저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거나 하는 논의들은 모두 한갓 투정에 불과하다. 한·미 FTA를 반대하는 투쟁이 진정 진보적인 투쟁이 되려면 이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보다 본질적인 투쟁으로 발전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 칼럼과 관련해서 <오마이뉴스>의 백병규 기자의 간략한 논평이 있어 덧붙인다. 같이 읽어보면 좋을 듯 싶다.

 
"진실도, 기사도 디테일 속에 있다"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한 꼭지 조간신문 리뷰

문제는 다시 민주주의다.

한미FTA 타결을 선언한 지 1주일이 조금 넘었다. 한미FTA에 대한, 이를 이룬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찬사와 칭송도 이제는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수그러들지 않는, 아니 못하는 사람과 신문들이 있다.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한겨레> 등등 절대적으로 열세에 놓여 있지만, 한미FTA에 그대로 동의할 수 없는, 순응할 수 없는 신문과 인터넷 언론들….

아마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기로 작정한 듯하다. 설령 진다하더라도, 아니 질 것이 뻔히 내다보인다고 하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기로 한 듯하다. 그들이 지난 1주일여 돌고 돌아 도달한 지점은 '다시 민주주의의 문제'다.

FTA 반대 단체에 대한 보복적 지원금 중단이라니...

<한겨레>는 어제(10일) 오늘 위험 수위를 넘은 정부의 FTA 여론몰이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산하단체는 물론 산하 기관이나 기업까지를 총동원한 산업자원부의 FTA 과잉홍보 실태를 어제 1면 머리기사로 올린 데 이어 오늘은 한미FTA에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는 정부 보조금 지급대상에서 배제하라는 행정자치부의 '지침'을 폭로했다.

행정자치부의 지침은 엉뚱한 데서 드러났다. 인천 연수구에 있는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측준비위원회 연수본부'라는 작은 사회단체에 대한 정부 지원금 중단이 발단이 됐다. 인천 연수구는 2002년부터 지원해오던 지원금을 올해는 중단했다. 지난해 8월 통일한마당 행사장에 한미FTA를 반대하는 홍보물을 전시하는 등 국가 정책인 한미FTA를 반대했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인천 연수구의 총무과장은 그 이유를 분명하게 밝혔다. "지난해 11월 행정자치부 장관 주재로 시·도 행정부지사․부시장 회의가 열린 뒤 내려온 지시에 따른 것"이다. 당시 회의 자료에도 '한·미 자유무역협정 반대 단체에 대한 보조금 지원 등 금지'라는 문구가 뚜렷하게 기록돼 있다.

산하 단체에 기업까지 일사불란하게 동원한 한미FTA 홍보, 반대 단체에 대한 보복적 지원금 중단 조치…. 충격적이다. 지금이 도대체 언제인가. 70년대인가, 아니면 80년대 군사정권 시절인가.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잘못 거슬러 온 것인가, 아니면, 내내 착각하고 살았던 것일까?

그리하여 <한겨레>의 어제와 오늘 1면 머리기사는 "우리는 지금 민주주의 정치 시대에 살고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

강준만 "노무현, 역발상과 도박의 연속으로 점철돼 온 정치 이력"

오늘(11일) 그 같은 물음에 나름대로 답을 내놓고 있는 두 편의 칼럼이 눈에 띈다. <한국일보>에 실린 '강준만 칼럼-노무현과 박정희'와 <경향신문>에 실린 '1980년 5월, 그리고 2007년 4월'의 기가 막힌 '동질성'에 관한 김명인 교수(인하대)의 칼럼이다.

강준만 교수는 인간 '노무현'에 초점을 맞췄다. 인간 '노무현'은 "늘 역발상과 도박으로 커 온 인물"이라는 게 강준만 교수의 진단이다. "30대 중반까지 '민주화'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는 사람", "인권변호사로 변신했지만 '의식화교육'은 수박 겉핥기에 머물렀던 것 같"은 사람, "역발상과 도박의 연속으로 점철돼 온 정치 이력"의 소유자가 바로 '인간 노무현'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박정희는 왜 나오는가? 노 대통령의 정치적 사부는 없지만 "굳이 찾자면 박정희"라고 보았다. 강 교수는 그 근거를 이렇게 제시했다.

"그(노 대통령)는 2004년 5월 연세대 특강에서 박정희는 절대 찬성할 수 없지만 박정희가 목숨을 걸고 한강 다리를 건넜다는 건 평가한다는 말을 했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다는 식으로 올인을 해 성공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

바로 이 발언에 노무현의 정체성이 잘 드러나 있다. 노무현의 '동업자' 안희정도 "우리는 노사모와 노란 목도리를 매고 한강을 건넜다"고 했는데, 노무현 사단의 의식 심연엔 박정희가 자리 잡고 있다. 노무현은 "나는 성격적으로 혁명을 좋아하는 편이다"고 했는데, 평화적 방법에 의한 혁명은 곧 '역발상에 근거한 도박'을 의미했다."


강 교수는 한미FTA는 이런 노대통령이 '국가주의적 의제'를 골라 도박을 한 것으로 보았다. 강 교수가 그러나 정작 주목한 것은 그 방법. "극우 인사 조갑제가 격찬한 것처럼 '초인적인 능력'으로 고압적인 밀어붙"인 방법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생각이나 주장은 매도하거 단죄하는 방식으로 "전형적인 박정희식 방식"이라는 것이다.

김명인, "FTA 타결, 민주정권 가장한 신자유정권의 쿠데타"

<경향신문>에 실린 김명인 교수의 글은 보다 거칠고, 근원론적이다. 김 교수는 한미FTA 타결을 민주정권을 가장한 신자유정권의 '쿠데타'라고 규정지었다. 27년 전 신군부의 행태나 다름없다는 진단이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김명인 교수 스스로 "80년 5월과 2007년 4월을 동일시하는 것은 반대를 위한 반대론자들의 강변이요, 어불성설이라고 할 사람이 많을 것"을 알고 있다. "전 국민의 민주화에 대한 염원을 저버린 시대착오적인 폭력적 권력탈취(80년 5월)"와 "절차적 문제는 있지만 세계화와 개방이라는 대세를 앞서 선취한 불가피한 결단(한미FTA)"를 어떻게 동일시할 수 있겠는가?

김명인 교수는 그러나 이 둘은 27년의 격차를 둔 '이란성 쌍생아'라고 단정한다. 조금 어렵지만 그대로 기록해보자.

"80년 5월의 신군부 집권 과정은 본질적으로 박정희식 쇄국주의를 깨뜨리고 전개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 세계질서의 한국적 재편성 과정"이고 "2007년 4월의 한미FTA 협상 타결은 그 신자유주의 세계질서의 한국적 관철이 종지부를 찍는 일인 것이다."

김명인 교수의 이런 분석에서 주목할 점은 그 주어가 '미국'이라는 점이다. 신자유주의적인 세계질서의 재편은 바로 미국의 세계 질서 재편 전략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 손바닥 위에서 79년 궁정동의 총소리도, 12·12 쿠데타군의 기습 공략도, 5·17 쿠데타도 가능했고, 그 대미가 바로 한미FTA라는 풀이다.

이미 '시스템'은 거꾸로 돌기 시작한 지 한참 됐다

어떻게들 생각하시는지? 중요한 건 '민주주의'다. 이런 평가도, 저런 평가도 있을 수 있다. 물론 비판의 당사자로서는 참기 힘든 '비난'이며 '매도'일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런 민주주의가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 <한겨레>의 기사가 그것을 잘 보여준다. 아니, 그 작은 사안 하나 갖고 무슨 호들갑이냐고? 시스템의 말단이 역방향으로 움직일 때는 '거대한 시스템'이 확실하게 거꾸로 돌기 시작한 후에나 가능한 일이다. 서울시 3% 강제 퇴출이 아무런 '사회적 저항' 없이 관철되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이미 '시스템'은 거꾸로 돌기 시작한 지 한참 됐다. 소름이 끼치지 않는가?

"악마는 디테일(구체적인 세부 사항) 속에 있다(Devil is in the details)"는 말이 있다. 하지만 악마만 디테일 속에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진실도, 기사도 디테일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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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MBC 100분 토론의 주제가 "3不 정책 고수냐 폐지냐"였다. 우연찮게도 오늘 내가 옮길 김명인 교수의 칼럼도 '3不 정책'에 관해서다. 우리의 손석희님께서 마지막 멘트로 이런 말씀을 하셨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 했는데, 요즘은 이런 말을 잘 않하는 것 같다. 오히려 백가쟁명(百家爭鳴)이란 말이 더 어울린다. 중요한 것은 합리적인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이다."(나의 기억에 의존하여 재구성한 것임)

  대통령은 누구를 기만하는가?
  [김명인 칼럼]3불정책 찬반론을 넘어서 2007-03-26

  교육문제라는 것이 워낙 난마같이 얽혀 있는, 대한민국 사회 최대의 미스테리이자 스캔들이고 아킬레스건이기 때문에 여러 해째 시사문화 계간지를 만들어 내면서도 특집 한 번 못 만들고, 이런저런 매체에 칼럼을 기고한 지 꽤 오래면서도 제대로 된 글감으로 다루어 본 기억이 별로 없었으며, 대학교수로서도 학교사회 내에서조차 이렇다 할 발언을 한 적이 없다.(현재 국어교육과 교수다. 김명인 교수에겐 교육이라는 지독한 물음에 어떤 방식으로든 답하지 않을 수 없다. 그에게 덧씌워진 숙제라고나 할까?)
  
  지식인은 구체적 문제에 대해 구체적 대답을 할 줄 아는 인간이라는 사르트르의 말에 공감해 왔으면서도 한국의 교육 문제에 관한 한 그 명제는 늘 무기력했다. 교육문제에 관한 한 일종의 '올 오어 나싱'-혁명적 단절을 통하지 않고는 풀 수 없는 문제라고 밀쳐두었던 것인데 요즘 다시 '3불정책'과 관련한 사회적 논란이 일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그 논란에 불을 붙이고 있는 형세라서 대학교수로서의 나 자신의 입장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입을 열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밀쳐두었던 교육문제, '3불정책'으로 불붙다
  
  이 3불정책은 1998년 국민의 정부 시절에 확립된 대학입시 관련 기본 정책으로서 기여입학제 금지, 대학별 본고사 금지, 그리고 고교등급제 금지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정책과 관련된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대학입시 관련 논의가 있을 때마다 정부와 대학들 간에 오고 가는 단골 논쟁거리였다. 그런데 마침 서울대 장기발전계획위원회라는 곳에서 '서울대 발전의 걸림돌'로 3불 정책을 지목했고, 사립대학총장협의회에서도 같은 말이 나왔으며, 여기에 전직 서울대 총장이자 잠재적인 유력 대선주자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사람과 대통령이 그 폐지와 유지 양론으로 맞서고 또 여야가 입장이 갈리고 하는 와중에 그러지 않아도 교육문제라면 4000만이 전문가라는 한국사회에서 네티즌을 위시한 여론층들이 이 의제를 중심으로 술렁이고 있는 형국이다.
  
  현재로서는 이 정책에 반대하는 입장이 절대 다수인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사립대 총장협의회에서 폐지 논의가 나왔다고는 하나 이른바 일부 메이저 사학들을 제외한 상당수의 사립대에서는 폐지 의견에 찬성한 바 없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고, 전반적으로 그 폐지는 중등교육의 서열화, 사교육의 전면화, 교육 양극화의 극한적 확대로 이어질 것이 명약관화하다는 판단이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언제부턴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본산이 되어버린 일부 언론이 '3불정책 폐지' 여론을 집요하게 확산시키고 있을 뿐이다.
  
  '3불정책 반대론'은 차라리 솔직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3불정책 반대론 혹은 폐지론은 윤리적으로는 잘못된 것일 수 있지만 논리적으로도 잘못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3불정책 고수 입장은 교육의 극한적 서열화와 경쟁, 양극화, 정확히 말하면 계급화를 반대하는 입장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상 지금 한국의 교육은 초등교육부터 고등교육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양극화, 계급화의 길로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내신제가 있건 없건, 수능 등급제가 되건 말건, 대입제도가 매년 어떻게 손질되건 어떤 경우의 수가 제시되더라도 이미 한국 교육은 부모가 사교육에 얼마나 많은 돈을 퍼부을 수 있는가에 따라 성패가 좌우되는 차원으로 완전히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고교 등급을 매기고 본고사를 부활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검증된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 우수한 학생이란 것이 결국 사교육비로 성형된 존재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그에 따라 고교 등급도 달라지고(특목고 열풍을 보라!), 본고사 성적도 결정된다(사교육의 끝없는 진화와 고도화를 보라!)고 볼 때, 결국 현재 계급교육으로서의 한국교육의 내용과 형식, 명과 실을 논리적으로 서로 부합되게 하자는, 형식논리상 자연스러운 주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른바 일류대학들은 바로 현행 계급교육의 황금과실을 독점하겠다는 것이며, 그 검증된 '돈 덩어리들'을 토대로 하여 일류대로서의 기득권도 유지하고 이른바 '국제경쟁력 강화'도 노려보겠다는 것이다. 기여입학제는 불행히도 돈은 있지만 아무리 퍼부어도 성적이 안 따라주어 일류대-상류계급의 순환구조에서 탈락하게 된 그 불우한 '돈 덩어리들'을 일부 구제해 주고 그 돈을 나누어 먹자는 논리이다. 이 얼마나 논리적으로 현실에 부합하는 입장인가?
  
  대통령, 국민을 기만하거나 자신을 기만하거나
  
  3불정책 폐지 불가론을 가장 강력하게 천명한 것은 대통령이다. 3불정책을 고수하겠다는 대통령의 강력한 입장은 국민 절대다수의 윤리적 감각에도 부합하고, 어쩌면 그의 신념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는 대통령과 그가 이끌어 온 '참여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신념 및 정책과는 상호 부합하지 않는 모순된 입장이다.(어쩌면 그간 노무현은 모순의 사나이였다.)
  
  대학을 비롯한 교육과정 전체의 초점을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목표에 맞춰놓고 채찍과 당근을 섞어가며 대학교육을 통제하여 계량적 서열화를 조장해 온 것이 참여정부가 시작한 일은 아니지만 참여정부가 이 흐름에 어떤 제동도 걸지 않은 것 역시 사실이다. 3불정책 고수를 천명하기 전에 대통령은 교육정책에 관한 자신의 신념이 과연 무엇인지 먼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만일 지금의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이 신념이라면 그의 3불정책 고수 발언은 국민을 기만한 것이며, 교육 양극화와 계급화 저지가 신념이라면 그가 수반으로 있는 참여정부의 현행 교육정책이 그 자신을 기만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교육을 할 것이냐'를 먼저 물어야
  
  결국 현재 3불정책을 지탱하는 유일한 힘은 좋게 본다면 교육 계급화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며, 현실의 전개과정보다 늘 지체되기 마련인 사회구성원들의 윤리감각, 혹은 국민정서라고 불리는 이데올로기적 잔영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만 자기기만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식 교육에 필요하다면 부유층, 중산층, 빈곤층 가릴 것 없이 어떠한 성찰보다도 먼저 돈으로 해결할 생각부터 하는 이땅의 대다수 학부모들도 자기기만에 빠져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자기기만의 그늘 속에서 대학과 교육부 관료와 교육이론가들과 사교육 업자들과 참고서, 교과서 출판자본들의 강고한 이해관계의 트러스트가 악성 종양처럼 한국교육 전체를 뒤덮어 회생불능의 상태로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더욱 더 절망적인 것은 이 악성종양의 규모와 감염성에 질려 '올 오어 나싱'이라는 패배주의에 빠진 진보적 지식인사회의 무기력, 특히 대학교수들의 놀라운 무감각 혹은 순응주의일 것이다.
  
  부자 빈자 무차별하게 부과되는 막대한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국립서울대학교 교수들이 3불정책의 폐지를 주장하고 나서는 이 기막힌 몰지성적 상황에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나 역시 같은 교수의 한 사람으로서 이 구체적인 질문에 어떤 구체적인 대답을 준비하고 있었는가 자문하면 부끄러운 마음 감출 수가 없다.
  
  3불정책이냐 아니냐를 따지기에 앞서 어떤 교육이어야 하는가를 먼저 묻고, 헌법정신에 의거한 교육의 사회성과 공공성을 과연 지금의 한국사회가 수호해 나갈 의지와 능력과 구조를 가지고 있는가 아닌가를 고민해야 하고, 그 판단에 따라 보다 근원적인 교육변혁, 나아가 사회변혁의 실천을 해 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먼저 묻는 것이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밟아 가야 할 생각과 삶의 바른 순서일 것이다.

 

  김명인/인하대 교수,<황해문화>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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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 전차 창비시선 264
손택수 지음 / 창비 / 2006년 6월
평점 :
일시품절


1.

  작년 여름, 학교 구내서점엘 놀러 갔다가『목련전차』란 시집을 보고 집어 들었다. ‘목련’과 ‘전차(電車)’의 생소한 합성에서 오는 낯섦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늘날 ‘전차(電車)’란 낱말은 지하에 숨어버려 꼬부랑 어르신네들께서나 부르실 뿐이지, 요즘 사람들에게 ‘전차’라 하면 우선 전차(戰車)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내가 먼저 떠올린 것이 이 전차(戰車)다. ‘이상도 하지!’ ‘목련’과 ‘전차’의 결합은 다분히 시적이면서도 뭔가 어울릴 법하지 못하다. 이 시집을 집어 들고 나와서는 꽤 오래 묵혀 두었다가 며칠 전에야 펼쳤다. 오래 묵혀둔 탓일까, 울림은 사뭇 커다랗다.


2.

  『장자』의 <응제왕>편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남해의 제왕은 숙(儵)이고, 북해의 제왕은 홀(忽)이며, 중앙의 제왕은 혼돈(混沌)이었다. 숙과 홀이 마침 혼돈의 나라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혼돈은 그들을 극진하게 대접했다. 숙과 홀은 혼돈의 후의에 보답하고자 상의하기를, “사람들은 모두 7개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먹고 숨쉬는데 혼돈만이 없다. 우리가 뚫어줄까 봐.” 하루에 구멍 하나씩 뚫어주었는데 일곱째 날에 혼돈은 죽고 말았다.(강조 필자, 우리말 번역은 이인호,『장자 30구』, 89쪽에서 가져 옴.)



  이 우언(우화)은 “인간의 이지(理智)가 깨이게 되면 오히려 이지의 속박을 받게 된다는 것”(이인호, 위의 책)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사람들은 모두 7개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먹고 숨쉬”고 있다는 구절에 주목하려는 것이다. 여기서의 ‘구멍’은 생명을 지속시키는 하나의 수단이며 통로로써 인식된다. 우리 옛말에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할 때의 ‘구멍’도 속되긴 하지만 이런 ‘생명의 통로’란 인식과 다르지 않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란 속담에서의 ‘구멍’은 넓은 의미에 ‘생명’ 유지의 통로이겠다. 이렇듯 우리의 언습(言習)에서 ‘구멍’은 질긴 삶과 인생의 의미를 서민적으로 담고 있는 것이다.


화엄이란 구멍이 많다

구례 화엄사에 가서 보았다


절집 기둥 기둥마다

처마 처마마다

얼금 송송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


화엄은 피부호흡을 하는구나

들숨 날숨 온몸이 폐가 되어

환하게 뚫려 있구나    -「화엄 일박」부분.(강조 필자)


  홍용희는 <해설>에서 손택수의 시세계를 두고 ‘화엄의 견성’이란 말을 썼다. 견성(見性)이란 “모든 망념과 미혹을 버리고 자기 본래의 성품인 자성을 깨달아 앎”을 말한다. 견성성불(見性成佛), 곧 견성의 경지에 이르면 부처가 되는 것이다(成佛). 홍용희의 말처럼 “화엄 사상의 종지를 깨닫고 있는 것”이면서 “삼라만상의 우주적 존재원리를 체득하고 구현하는 화엄의 노래로 귀착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구멍’이 “환하게 뚫려 있”음을 통해서 “들숨 날숨 온몸이 폐가 되어” 호흡할 수 있는, 즉 ‘살아 있음’, 생명의 존속이 가능하다는 것, 이것이 손택수에게 있어 ‘구멍’의 중요성이랄 수 있다. 손택수는 그 ‘구멍’ 있음으로 호흡하고 박동(搏動)하는 삶의 제(諸)모습들에 천착할 수 있는 것이다. 삶의 근원, 생명 유지의 가장 원초적 역할을 하는 ‘구멍’은 그의 시적 방향을 제시하면서, 이 시집에서 중요한 키워드로 기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스윽, 제비 한마리가,

집을 관통했다.


  (…)


집이 잠시 어안이 벙벙

그야말로 무방비로

앞뒤로 뻥

뚫려버린 순간,


제비 아랫배처럼 하얗고 서늘한 바람이 사립문을 빠져 나가는 게 보였다 내 몸의 숨구멍이란 숨구멍을 모두 확 열어젖히고  -「放心」부분.


  ‘숨구멍’이 “확 열어젖”혀진 시적 화자를 떠올릴 때 우리는 그에게 삶의 활기를 되찾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손택수에게 ‘구멍’의 열림은 생의 열림과 동일한 의미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작용은 ‘방심(放心)’함으로 가능한 것이다. 마음을 굳게 닫혀 있음은 ‘구멍’의 막혀있음에 다름 아니다. ‘구멍’이 막혀있다는 것은 호흡 불능, 소통 불능으로 이어질 터이다. 따라서 ‘방심’은 곧 마음의 ‘구멍’을 뚫는, 생명유지의 필수적 과정인 것이다.

  「혼쥐 이야기」에서는 ‘할머니’의 “사람의 콧구멍 속에” 사는 ‘쥐 두 마리’ 이야기가 나온다. 시인은 할머니의 옛이야기를 시속에 끌어 오면서 ‘구멍’의 이런 생명 유지의 수단의 기능이 옛이야기처럼 오랜 우리 삶의 지혜와 사상임을 강조하는 것일 수도 있다. “들숨 날숨 따라 들”고 나가는 쥐처럼 삶의 ‘구멍’은 어떤 조력자들이 있어야 뚫려질 수 있다.


3.

  앞에서 살펴 본 「放心」에서 ‘구멍’을 뚫리게 한 도우미는 ‘제비’다. 이 ‘제비’가 얼마나 고마웠을까? 시인은 ‘제비’에게 집을 빌려준다.(「제비에게 세를 주다」) ‘제비’는 어쩌면 “아무도 들어오려 하지 않는” 외로운 사람에게 유일한 소통의 존재일 수 있다. 세상의 고된 삶 속에서 ‘방심’은 불가능하고, 답답하고 꽉 막히는 현실에서 벗어나 ‘제비’와 소통할 때 ‘구멍’은 ‘뻥’ 뚫리고 삶의 호흡은 유지되는 것이랄 수 있다. 그래서 진정한 삶의 지속과 생명의 유지는 자연과의 호흡/소통/교류를 통해서 가능해 지는 것이다. 그의 시편들에서 이런 자연의 여러 모습들과 “구체적인 살림살이의 성정과 표정”(홍용희)들이 뒤섞이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가 아닐까?


강이 휘어진다 乙, 乙, 乙 강이 휘어지는 아픔으로 등굽은 아낙 하나 아기를 업고 밭을 맨다


호밋날 끝에 돌 부딪는 소리, 강이 들을 껴안는다 한 굽이 두 굽이 살이 패는 아픔으로 저문 들을 품는다


乙, 乙, 乙 물새떼가 강을 들어올린다 천마리 만마리 천리 만리 소쿠라지는 울음소리―


까딱하면, 저 속으로 첨벙 뛰어들겠다  -「강이 날아오른다」전문.


  ‘강’과 ‘물새’와 ‘아낙’은 모두 乙의 모습으로 하나가 된다. 동일시되는 것이다. ‘들을 품는’ ‘강’의 아픔이나 “아기를 업고 밭을 매”는 아낙의 아픔은 다르지 않다. 이 모든 것을 ‘들어올’리는 ‘물새떼’는 세상의 아픔을 저 높은 하늘로 ‘들어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시 속에서처럼 자연과의 교감은 ‘아낙’의 궂은 삶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숨구멍’을 트이게 해주는 유일한 통로(구멍)이겠다. “나는 잠시 청둥오리 몸속에 있다 청둥오리 몸속 가장 깊은 곳에 닿았다 떨어진다”(「청둥오리떼 파다닥 멀어지기 직전」)는 이런 ‘구멍’ 뚫림은 한 방법인 것이다.


4.

  우리 인간들은 왜 이런 자연만물과 교감해야 할까? 세상적인 것에서 우리의 ‘숨구멍’을 뚫을 수는 없는 것일까? 인간은 7개의 구멍이 뚫려 세상에 나와 살아가면서, 천천히(어쩌면 무척 빠르게) 막혀간다. 우리가 태어난 날은 곧 죽음의 시작일 것이다. 세상은 그 구멍들을 서서히 막아가는 것이다. 죽음의 막힘을 세상의 여러 질곡(桎梏)을 통해 얻는 인간은 세상에서는 이런 ‘구멍’ 뚫림의 생명적 경험을 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아무도 들어오려 하지 않는 단칸집”(「제비에게 세를 주다」)에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가난과 외로움의 막힘만이 있을 뿐이다.


스무살 무렵 나 안마시술소에서 일할 때, 현관 보이로 어서 옵쇼, 손님들 구두닦이로 밥 먹고 살 때


맹인 안마사들도 아가씨들도 다 비번을 내서 고향에 가고, 그날은 나와 새로 온 김양 누나만 가게를 지키고 있었는데


이런 날도 손님이 있겠어 누나 간판불 끄고 탕수육이나 시켜먹자, 그렇게 재차 졸라대고만 있었는데


그 말이 무슨 화근이라도 되었던가 그날따라 웬 손님이 그렇게나 많았는지, 상한 구두코에 광을 내는 동안 퉤, 퉤 신세 한판을 하며 구두를 닦는 동안


누나는 술 취한 사내들을 혼자서 다 받아내었습니다 전표에 찍힌 스물셋 어디로도 귀향하지 못한 철새들을 하룻밤에 혼자서 다 받아주었습니다


날이 샜을 무렵엔 비틀비틀 분화장 범벅이 된 얼굴로 내 어깨에 기대어 흐느껴 울던 추석달   -「추석달」전문.


  세상에서는 ‘신세 한탄’을 할밖에 “어디로도 귀향”할 우리의 안식처는 없는 것이다. 세상살이의 힘겨움을 보여주는 투사물로써 시인의 ‘구두’를 제시하기도 한다. “한쪽에 초라하게 낡은 한 켤레/…/상할 대로 상해 알아볼 수조차 없었습니다/뒷굽은 닳을 대로 닳았고 반짝이던 코는 무참히 깨어져 있었습니다”(「매제의 구두」) 이런 ‘구두’의 모습은 곧 우리들 자신의 모습일 것이다. 시인은 이런 우리의 삶, 곧 우리의 ‘구두’는 “죽음만이 벗겨줄 수 있네/죽음까지 껴 신고 가야 한다”(「살가죽구두」)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이런 삶에서 어떻게 진정한 생명의 ‘구멍’을 찾을 수가 있겠는가?

  시인에게 ‘좋은 세상’, 곧 진정한 생명의 ‘구멍’이 존재하는 세상은 “젊으나 젊은것들이 불알 두 쪽만 갖고도 연애를 걸 수 있는 세상”(「자전거의 연애학」)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런 삶은 세상에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혼자서 살”수밖에 도리가 없다.


5.

  손택수의 시편들은 다분히 서정적이다. 생명의 근원인 ‘구멍’을 온 세상에 뚫고 다니는 그에게 가족과 세상 사람들과 산과 바다와 하늘의 모든 것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내 주위 사람들의 막힌 구멍을 바라볼 때에 서글픔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시편들에 짙게 깔린 애잔함은 그의 시를 깊은 서정으로 침전하게 하는 것이다.


아내의 빤스에 구멍이 난 걸 알게 된 건

단풍나무 때문이다

단풍나무가 아내의 꽃무늬 빤스를 입고

볼을 붉혔기 때문이다


열어놓은 베란다 창문을 넘어

아파트 화단 아래 떨어진

아내의 속옷,

나뭇가지에 척 걸쳐져 속옷 한 벌 사준 적 없는

속없는 지아비를 빤히 올려다보는 빤스


누가 볼까 얼른 한달음에 뛰어내려가

단풍나무를 기어올랐다 나는

첫날밤처럼 구멍 난 단풍나무 빤스를 벗기며 내내

볼이 화끈거렸다


그 이후부터다, 단풍나무만 보면

단풍보다 내 볼이 더 바알개지는 것은  -「단풍나무 빤스」전문.


  “아내의 빤스에 구멍이 난” 건 분명 세상의 가난 탓이리라. 이 시를 읽어내면서는 웃음짓게 하지만, 그 웃음은 다분히 씁쓸하다. “볼이 더 바알개지는 것은” 그런 가난의 질곡으로부터 오는 애잔한 슬픔이고 미안함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서정은 짙다. 그러나 그것은 깊은 감상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은 유머가 있어서이다. 쓰라림과 고통과 아픔과 슬픔을 유머로 풀어나가는 손택수의 재치에서 우리는 짙은 서정과 함께 언뜻 지나치는 웃음을 통해서 하나의 희망의 ‘구멍’을 뚫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집에서는 시인의 뛰어난 시적 감수성과 재치, 그리고 친근한 옛이야기와 솔직한 고백, 다양한 소재로부터의 깨달음 등이 뒤섞이면서 그의 시편들을 아름답게 꽃피우게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내, 매제, ‘홀아비로 사는 내 늙은 선생님’ 등의 친근한 가족과 이웃에서부터, 하늘과 바다와 산과 강과 멀고 먼 우주에까지, 그리고 자연 속에 거하는 ‘물새떼’, ‘제비’, ‘청둥오리떼’, ‘메주’, ‘홍어’, ‘명태’ 등 많은 생명들이 담겨져 이 한 권의 시집으로 탄생되었다.


버스를 기다리던 할머니가 손주의 고추를 잡고 가로수 밑에서 오줌을 뉜다 마음처럼 시원하게 나오질 않는지 쉬―, 쉬―, 하고 이어지는 할머니의 오줌 뉘는 소리


화장실에 갔다가 오줌이 나오질 않아 머쓱해질 때가 있다 시가 반짝 떠올라 책상 앞에 앉았는데 한 구절도 씌어지지 않아 애를 태울 때가 많다 그때마다 떠오르는 할머니의 오줌 뉘는 소리


무슨 주술처럼 시―, 시―, 아득한 기억 저편에서 노루오줌꽃이 터져나오듯 망울망울 남은 한 방울까지 탈탈 털어주며 따로 노는 몸과 마음을 한데 이어주는 소리  -「오줌 뉘는 소리」전문.(강조 필자)


  그의 시는 이렇듯 세상 모든 것들, 자연의 모든 만물들을 ‘한데 이어주는’ 대소통의 ‘구멍’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분명 이 시집의 시편들은 내 마음에 커다란 울림 ‘구멍’을 뚫어 놓고 말았다.


6.

나뭇가지에 코일처럼 감기는 햇살,

저 햇살을 따라가면

나무 어딘가에 숨은 전동기가 보일는지 모른다

전차바퀴 기념물 하나만 달랑 남은 전차기지터

레일은 사라졌어도, 사라지지 않는

생명의 레일을 따라

바퀴를 굴리는 힘을 만날 수 있을는지 모른다  -「목련 전차」부분.


  꽃놀이 철이 언제 왔는지 모르게 끝물을 맞고 있다. 아! 이 봄엔 꽃놀이 한번 못가 보는구나! 전차는 전차(電車)임이 분명해졌다. 전차(電車)는 ‘레일’을 잃어버려 더 이상 달리지 못한다. 막혀있는 것이다. 하지만 ‘생명의 레일’이 있어 그 길 따라 ‘목련 전차’, ‘꽃전차’ 타고 꽃놀이 가고 싶어진다. 가슴 깊은 ‘구멍’으로 꽃내음 깊게 들이마시면서 우리 생명 깊게 호흡하면서.

  손택수 시인은 1998년 『한국일보』신춘문예에 「언덕 위의 붉은 벽돌집」등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단다. 그의 첫 시집 『호랑이 발자국』을 최근 냉큼 구입했다. 이 시집을 읽고 난 후의 울림이 작용한 것이다. 내쳐 읊어볼 작정이다.

  알고 보니, 『목련 전차』를 내기 몇 달 전,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아이세움, 2006.)를 냈다. 유난히 바다 시편들이 많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바닷가에서 오래 산 시인은 어떻게 바다와 ‘구멍’을 뚫어 호흡하는지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의 머리말을 보면 훔쳐볼 수 있다.


한번은 거제도 앞바다까지 배를 타고 나가 낚시도 잊은 채 오르내리는 파도의 리듬에 몸을 맡긴 뒤 실컷 잠만 자고 온 적도 있다. 그때 내가 만난 파도의 리듬은 어머니 배에 배를 맞대고 젖을 빠는 아이처럼 근원적인 휴식감과 세계에 대한 밀착감을 선물해 주었던 것 같다.


  손택수라는 멋진 시인을 만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요즘 같은 답답한 세상에서 손택수의 시편들은 우리를 숨 쉬게 하기에 충분할 것만 같다. 사람은 7개의 구멍이 뻥 뚫려 있어야 살 수가 있다. 우리 온몸의 생명 ‘구멍’들, 마음 ‘구멍’들을 ‘환하게 뚫’어야 이 험한 세상, 답답한 세상, 살맛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삶을 원하는 이들에게 손택수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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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4-13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공하시는 분답게 시를 어쩜 이리 세밀하게 맛보시고 안내해주시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