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가 바라본 한국, 그리고 이 세계의 모순과 편견들을 까발리는 그의 말에 우리는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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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대한민국 1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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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대한민국 2- 박노자 교수가 말하는 '주식회사 대한민국'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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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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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배반한 역사
박노자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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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를 좀 쳐본 이들이라면, 당구장에서의 자장면 맛을 그리워할 성 싶다. 게임비 내기만으로도 긴장감이 오는데, 덤으로 자장면을 걸면 당구는 더이상 게임이 아닌 게 된다. 예전엔 당구장 출입하면 흔히 건달이거나 불량배거나 문제아로 보는 시절이 있었지만, 레저스포츠로 분류되면서 당구장에 대한 편견은 많이 줄었다. 하지만 아직 당구에는 도박성 짙은 내기들이 여전하기도 하다. 그러나 자장면 내기쯤이야 게임의 흥취를 더하니 금하기는 좀 뭐하다.

"사장님, 여기 짜장면 4개요. 단무지 좀 많이 가져오라 하세요. 거긴 맨날 단무지 달랑 몇 조각 가져오더라. 아참, 고춧가루도 가져다 달라고 하세요."

"여기 ~당구장인데, 짜장면 4개, 고춧가루도 가져와."

"아저씨, 단무지도 많이 가져오라고 하시라니깐."

자장면 / 醬麵 / [zhá jiàng miàn] / 짜장면

"오늘 우리 자장면 먹을까?"하고 친구가 물어오면 왠지 입맛이 돌지 않는다. "야 짜장면 시켜 먹자!"고 하면 입안 가득 군침이 돈다. 중국집에 전화를 걸어, "아저씨, 자장면 3개 갖다 주세요."하면 "짜장면 3개요?"로 되물어 온다. 하긴 "자장면 3그릇 주세요"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을까? 죄다 "짜장면 주세요."다.

우리는 '짜장면'이 아니라 '자장면'이 맞다는 걸 잘 안다. [짜장면]하면 안 되고, [자장면]해야 옳다고 아나운서들은 예의 그 정확한 발음으로 [자장면] 한다. 나는 [자장면]하면 그 맛이 싱거울 것 같고, '자장면'이라 쓰면 그 집에 시켜먹기 꺼려진다. 난 [짜장면]이 맛있다.

우리 언중들의 대부분은 '짜장면'이 아니라 '자장면'임을 잘 알고, '자장면'이라고 쓴다. 그런데 [짜장면]이 아니고 [자장면]이라고 말해야 하는 줄 알면서도 [짜장면] 한다. '에이, 이런 무식한 사람들'하고 누가 감히 욕하랴?

여기서 '자장면'이 옳으니, '짜장면'이 옳으니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내가 시비걸자는 것은 왜 [짜장면]이 아니고 [자장면] 해야 되느냐다.

자장면의 유래를 따져보면 1883년으로 올라간다. 인천이 개항되면서 중국(당시 청나라)인들이 거주하게 되면서 부터란다. 중국인들의 음식 중에 볶은 춘장에 국수를 비벼먹는 것이 있었는데, 그걸 그들은 麵(炸酱面)이라고 썼고, [zhá jiàng miàn]이라고 발음했다. 그 발음을 무식하게 풀어보면 [자아(중국 성조에서 제2성으로 끝을 올린다.) 지앙(제4성으로 바로 내려 꽂는다.) 미엔(지앙과 같다.)]을 빠르게 발음하면 될 거 같다. 이걸 간단히 우리말로 옮기면 [자장면] 한 것과 비슷하다. 적어도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말이다. 지금까지의 자장면의 유래 연구상으로 우리나라의 자장면의 시작은 이 즈음이 된다. 이때부터 우리는 자장면을 먹게 된다. 그 말은 곧 우리가 [자장면] 했다는 것이다.

원래 麵을 우리 한자음으로 읽으면 작장면이 된다. 그러나 자장면은 우리에게 麵으로 먼저 오지 않았고 [zhá jiàng miàn]으로 먼저 왔다. 그래서 처음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설프게 [자~장~면]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10년이 지나고 20십년이 지나면서 어설픈 [자장면]에서 친근감 있게끔 [짜장면]으로 변화해 왔다. 그래서 우리는 [짜장면]을 주로 한다.

1986년 고시된 외래어 표기법에 의하면 직접 명시된 것은 아니지만 '자장면'이라 쓰고 [자장면]이라 발음해야 한다. 여기에는 본토발음 존중의 원칙같은 것이 적용된다. 그러나 '표기의 기본 원칙' 제5항에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을 존중하되"라고 되어 있다. 그렇게 볼 때, 자장면은 이미 예전에 짜장면이 관용 아니었나 생각된다. 아직도 '짜장면' 시키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을 보면 말이다.

뭐 여기서 외래어 표기법의 문제점을 세세히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외래어 표기법이긴 하지만, 내가 그 문제를 따질만한 권위도 능력도 없다. 하지만, '짜장면'을 '자장면'하니 귀에도 거슬리고, 입에도 거슬리는 것 같아, 시비 걸어 보자는 거다.

외래어 표기법은 외국어를 우리말로 적자는 것이 아니다. 엄밀히 외래어도 우리말이니, 이것은 우리말을 우리가 보게 잘 적자는 것일진대, 원음을 존중하자는 건 골치 아픈 노릇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이들이 이 외래어 표기법을 잘 모르는 게 사실이잖은가? 동경을 도쿄로 적는다거나, 북경을 베이징이라고 적어야 한다는 정도의 문제 그 이상으로 우리는 이 외래어 표기법을 잘 모른다. 아니 잘 알기가 매우 어렵다. 전공자들도 그 어려움에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여기서 외래어 표기법은 각설하고, 麵은 [zhá jiàng miàn]으로 와서 [자장면]하였으되, 얼마 못가 [짜장면]하였고, 여전히 [짜장면]하니, 관용도 어지간한 관용 아니겠는가? 아무리 '자장면'으로 쓰고 [자장면] 하라고 해도, '자장면' 이라고는 쓰되 여전히 [짜장면]하는 언중이 살아 있는한, 당구장에서 자장면 시킬 때 [짜장면] 달라고 하는 한, 언젠가는 '짜장면' 쓰고 [짜장면] 해야 옳은 날이 올 것이다.

난 '자장면' 보단 '짜장면'을 더 좋아한다. '자장면' 보단 '짜장면'이 더 맛있다. 중국집에서 [짜장면] 주세요 해야 맛있는 '짜장면' 줄 것만 같다. [버스]가 아니라 [뻐쓰]가 와야 올라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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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5-28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 한강고수부지에서 주말마다 농구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한게임 끝나고 출출했는데...농구대 파이프에 왠 중국집 전화번호 스티커가
붙어있더군요...시켰더니....진짜 오더군요...허허

멜기세덱 2007-05-28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우리 배달의 나라에 최고 가는 기수, 곧 배달의 기수 아니겠습니까? 어디든 안 가는 곳 있어도 못 가는 곳 없다는....중요한 건 "짜장면 시키신 분?"한다는 거죠...ㅎㅎ

이매지 2007-05-28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 맞춤법 수업듣는데 요새 진도가 외래어 표기법인 ㅎ
로브스터가 가장 인상에 남더군요 ㅎㅎ

멜기세덱 2007-05-29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브스터라고 쓰면 사람들이 lobster를 말하는 거라고 과연 알까요? 참 웃기는 노릇이죠...ㅎㅎ 바닷가재로 순화되었네요...ㅎㅎ

순오기 2007-08-12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멜기님, 작년에 창비의 좋은 어린이책 창작부문 대상을 받은 작품이 당당하게 '짜장면 불어요'였답니다. 철가방 기삼이를 통해 들려주는 짜장면 철학과 배달의 기수, 전국민이 좋아하는 짜장면의 날을 국경일로 해야 한다는 등, 아주 유쾌한 동화인데요...^^

멜기세덱 2007-08-13 00:30   좋아요 0 | URL
앗, 또 이런 정보를....ㅎㅎ ㄳ
근데, 창비는 지들 자체적인 외래어 표기법을 적용하고 있어요...
그건 좀 아니라고 보는뎅, 그래도 '짜장면' 하나는 괜찮네요...ㅎㅎ
 
07년 6월 권장도서 - 김훈의 (남한산성)
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김훈의 소설을 읽었다. 두 번째다. 『칼의 노래』가 그 처음이었다. 사실 김훈이란 이름이 유명해진 것은 이 『칼의 노래』덕분이다. 아니 정확히는 노무현 대통령 때문이었고, 더 정확히는 사상 초유의 탄핵사태 때문이었다. 노무현의 탄핵은 대한민국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민주공화국 역사상의 치욕이라기 보다는, 스타크래프트의 종족간 싸움보다도 질 낮은 블랙코미디였다고 난 생각한다. 우리 역사에서 이 탄핵의 처음이(이 탄핵으로 물러난 것은 아니지만) 노무현이었다는 사실이 웃기는 노릇이라는 것, 노무현을 탄핵한 세력이 진작에 탄핵되어 없어졌어야 할 인간들이었다는 사실이 이 블랙코미디를 가능케 한다.

『칼의 노래』가 탄핵이라는 이벤트에 당첨되었던 것 때문인지, 외롭고 고독한 사나이 노무현의 간택을 받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 모든 때를 잘 만났기 때문인지, 무엇보다도 김훈의 소설이 탁월했었기 때문인지,  그것들을 가릴 필요는 딱히 없다. 하여간 중요한 것은 이 소설이 시류를 탔다는 것이고, 김훈의 소설이 얼마나 탁월했던 것인지 아닌지에 관계 없이 세상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는 것, 그로 인해 어느 정도 과대평가 되었을 수도 있고, 그로 인해 그런 것에 상관 없이 많이 팔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모든 것을 고려한다고 해도 소설이 개떡 같은 탄핵세력 같았다면야 아무리 떠들어도 읽히지 않았을 것은 자명한 노릇이다. 내가 읽은 『칼의 노래』는 이러한 연유에서 읽혀졌을 가능성이 컸고, 또한 그런 연유에서인지 그리 달가운 평가가 내려지지 않는 작품이기도 했다.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을 읽었다. 김훈이 『칼의 노래』로 인해 세상의 주목을 받으면서, 잇다른 작품들을 내어놓고, 대중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우리나라 소설계의 거목으로 부각된 지금, 이 소설 『남한산성』은 그런 이유들로 세간의 입에 오르내려 떠들석하다. 『칼의 노래』와 어느 정도 겹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 세간이라는 것은 주로 언론을 통해서 주도되고 있는 것인데, 이전의 것은 시류를 잘 탔다는 점과 지금의 것은 김훈이라는 이름의 상업성에서 오는 것이라는 점에서 차이는 있다. 어쨌건 나는 『남한산성』을 읽었고, 지금 리뷰를 쓰고 있다. 『칼의 노래』에는 리뷰를 다는 수고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다. 그리고 지금 리뷰를 쓰는 이유는 리뷰를 쓰게끔 하는 무언가 마음의 동함을 『남한산성』에서 받았다는 것이기도 하다.

우선 이 책 『남한산성』은 빠르게 읽힌다는 데에 나름의 장점이 있겠다. 소설이 빠르게 읽히고 느리게 읽힘에 그 장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빠르게 읽힌다는 것은 느리게 읽히는 것보다 서사적 강점을 더 많이 지닌다는 것을 뜻할 수는 있다. 빠르게 읽힌다는 것은 복잡스럽지 않다는 것이고, 서사의 진행이 간명하다는 것이며, 그 간명한 진행이 지루하지 않고 흥미롭게 이어진다는 것을 뜻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소설 『남한산성』은 바로 그런 것들을 분명 지니고 있었다. 밤의 야심을 틈타 읽은 이 소설을 새벽녘까지 끌고와 마침내 모두 읽어낸 후에, 이른 아침 이렇게 리뷰를 쓰게하는 그 힘을 분명 가지고 있다.

  "칸은 붓을 들어서 문장을 쓰는 일은 없었으나, 문한관들의 붓놀림을 엄히 다스렸다. 칸은 고서를 끌어 대거나, 전적을 인용하는 문장을 금했다. 칸은 문채를 꾸며서 부화한 문장과 뜻이 수줍어서 은비한 문장과 말을 멀리 돌려서 우원한 문장을 먹으로 뭉갰고, 말을 구부려서 잔망스러운 문장과 말을 늘려서 게으른 문장을 꾸짖었다. 칸은 늘 말했다.
  ― 말을 접지 말라. 말을 구기지 말라. 말을 펴서 내질러라."
 (284쪽)

김훈의 소설은(이 소설 뿐만 아니라, 『칼의 노래』에서도) 칸으로부터 붓놀림의 엄한 다스림을 받은 듯 하다. "문채를 꾸며서 부화한 문장", "말을 멀리 돌려서 우원한 문장", "말을 구부려서 잔망스러운 문장", "말을 늘려서 게으른 문장"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칸의 이런 엄함으로 인해 "글을 짓는 일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던 것 처럼, 이 소설을 읽어내는 데에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 것인가 보다.

이 소설의 이런 빠르게 읽힘과 더불어 장점이랄 수 있는 것은 여러 인물군상의 다양한 구도설정에 있다. 얼핏 이러한 구도가 복잡스러움으로 얽히고 설킬 수 있지만, 여기서는 지극히 간명한 문체로 처리되면서 그런 복잡성을 타파한다. 여러 갈래의 샛길이 있고, 그것은 큰 길, 곧 대로를 향하다가, 다시금 두 갈래의 길로 나뉜다. 그 두 갈래의 길은 본래의 길이었다. 길이 갈리고, 다시 합치고, 원래의 두 길로 돌아가는 이 구도의 설정은 길의 얽히고 설키며 이루어지는 긴장감과는 다른, 간명함의 극치를 이루는 데서 오는 어떤 이질적 종류의 긴장감을 형성하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더욱 빠르게 읽히는 힘을 발휘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버티는 힘이 다하는 날에 버티는 고통은 끝날 것이고, 버티는 고통이 끝나는 날에는 버티어야 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었는데, 버티어야 할 것이 모두 소멸할 때까지 버티어야 하는 것인지 김류는 생각했다. 생각은 전개되지 않았다. 그날, 안에서 열든 밖에서 열든 성문은 열리고 삶의 자리는 오직 성 밖에 있을 것이었는데, 안에서 문을 열고 나가는 고통과 밖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고통의 차이가 김류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날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김류는 느꼈다." (94쪽)

이것은 김류의 길이다. 김류 앞에는 김상헌의 길과 최명길의 길이 두 갈래로 나 있었던 것이다. 그 길 사이에서 김류는 시간의 길을 가고 있다. 어느 길로든 합쳐져야 할 것인데, 그 합쳐져야 할 길이 "김류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시간을 기다리면서 그 가운데의 길로 느리게 걸음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길은 임금의 길과도 조금 다르다. 임금의 길은 최명길의 길과 김류의 길 사이에 있는 또다른 길이었는지 모르겠다. 묘당의 길도 제각각이며, 체찰사의 길과, 김상헌의 길과, 최명길의 길과, 당상의 길과, 당하의 길과, 간관의 길이 또한 제각각 달랐다. 성안의 백성의 길은 저마다  다른 듯 하나 그 길은 어쩌면 같은 길, 삶기만이라도 하자는 길이었다. 정명수의 길은 또다른 삶의 길이었다. 비난하지 못하는 길, 어느 누구의 길도 나무랄 수 없다. 제각기 나름대로 "아름다운" 길일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수어사는 어느 쪽이오?
  이시백이 대답했다.
  ―  나는 아무 쪽도 아니오. 나는 다만 다가오는 적을 잡는 초병이오."
(218쪽)

이시백의 길은 이처럼 또 달랐다. 여기에 자못 김훈의 목소리라고 여겨지는, "조선에 그대 같은 자가 백 명만 있었던들"이라는 언설은 쓸데없이 보이기까지 한다. 이시백은 그것이 그의 길이었거늘, 이시백 같은 자가 많지 않았음을 한탄하고 있을 필요는, 이 소설에서는 하등 없어 보인다.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고통 받는 자들의 편이다."라는 김훈의 말은 이시백과 겹쳐져서는 아니된다. 그런 점에서 이 한탄이 쓸데없어 보이는 것이다. 과연 김훈은 누구의 편이란 말인가? 김훈의 길은?

그렇다면 '고통 받는 자들'은 누구일까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임금으로서나 당상으로서나 당하로서나 저 나름의 고통이 있겠으되, 김훈의 '고통 받는 자들'은 민중으로 기운다. 그러므로 김훈의 길은 민중의 길로 합쳐진다. 임금이 성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것은 임금의 길, 종묘사직을 보존하는 길이었다. 그 길에 다시 당상과 당하의 길이 합쳐지고, 양반의 길이 합쳐진다. 남겨진 성 안에는 김훈의 그 '고통 받는 자들'의 길이 있다. 이시백은 성 안에 있었지만 그도 다시 성밖의 임금의 길로 합쳐져야 할 것이다.

  "백성들이 날마다 몇 명씩 성 안으로 돌아왔다. 봄농사를 시작하기가 너무 늦지는 않았다.
  서날쇠는 뒷마당 장독 속의 똥물을 밭에 뿌렸다. 똥물은 잘 익어서 말갛게 떠 있었다. 쌍둥이 아들이 장군을 날랐고, 아내와 나루가 들밥을 내 왔다. 다시 대장간으로 돌아온 날 나루는 초경을 흘렸다.
  나루가 자라면 쌍둥이 아들 둘 중에서 어느 녀석과 혼인을 시켜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며 서날쇠는 혼자 웃었다."
(363쪽)

이것이 곧 민중의 길이다. 김훈은 이렇게 그들의 편을 들고 있다. "봄농사를 시작하기"에 "너무 늦지는 않았다"는 안도감 속에 민중의 삶의 길이 열렸다는 희망이 담긴다. 나루가 초경을 했다는 사실은 또한 그 희망의 씨앗이다. 서날쇠의 웃음 속에서 민중의 아들과 또한 그 딸들은 질긴 생명을 살아가면서, 늦은 봄농사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그것이 곧 민중의 길이고, 그들 편에선 김훈의 길이다. 그길은 곧 희망의 길이다. 임금의 길에서는 그런 희망의 메세지를 김훈은 남기지 않았다.

흔히 임란과 호란을 우리는 우리 민족의 치욕스런 한 장면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임란과 호란의 치욕의 비중은 조금은 다르게 느껴진다. 우리 인식 속에 더 큰 치욕은 임란으로 기억되며, 또한 더 큰 자랑은 이순신 장군의 용맹함을 부각시키는 임란에 있다. 호란은 그러한 임란의 기세에 눌려 조금씩 잊혀져 간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호란의 그 치욕을 우리가 잊지 않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박씨전』이란 고전소설은 또 다른 종류의 『남한산성』이랄 수 있겠다. 요즘식으로 한다면 환타지계열이겠다. 호란의 치욕에 대한 반향으로서의 작품이 『박씨전』이라 한다면, 우리에게 호란의 치욕의 잊지 못함을 말하는 것은 그것으로 충분할 듯 싶다. 이 소설 『남한산성』은 '고통 받는 자들'의 편에서 이 땅의 고통 받는 민중의 길이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 것이지 싶다. 그 길을 김훈은 '남한산성'에 올라가 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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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훈이 "남한산성"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11-05 02:31 
    남한산성 - 김훈 지음/학고재 2007년 10월 31일 읽은 책이다. 올해 내가 읽을 책목록으로 11월에 읽으려고 했던 책이었다. 재미가 있어서 빨리 읽게 되어 11월이 아닌 10월에 다 보게 되었다. 총평 김훈이라는 작가의 기존 저서에서 흐르는 공통적인 면을 생각한다면 다분히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매우 냉정한 어조로 상황을 그려나가고 있다. 소설이기에 작가의 상상력이 개입이 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읽었음에도 주전파..
 
 
프레이야 2007-05-28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동의 리뷰입니다...

마노아 2007-05-28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감동 받았어요. 멜기세덱님 멋져요^^

Passionian 2007-05-28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작가의 필체에 영향을 많이 받으셨나보네요. 리뷰 문체가 완전 김작가 풍입니다.

멜기세덱 2007-05-28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이런 보잘 것 없는 것에도 감동하시면, 감동하실 일 너무 많으셔서 피곤하셔요...ㅎㅎ
마노아님> 제가 멋진 걸 이제야 알아 주시는 군요....ㅎㅎ^^;;
Passionian님> 과분하고 당치 않으신 말씀이세요. 부화한 문장, 우원한 문장, 잔망스러운 문장, 게으른 문장 투성이인걸요. 김훈 작가에게 누가 될 따름입니다. 다만 부끄럽게도 기분은 좋네요..ㅎㅎ

2007-07-02 16: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멜기세덱 2007-07-02 17:09   좋아요 0 | URL
^^;; 저의 첫 트랙백이에요...ㅎㅎㅎ

책속에 책 2007-08-03 0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긴 리뷰를 긴 줄 모르고 읽었어요..서평 잘 읽었습니다.^^
 

민주항쟁 20년 기념 대토론회  '민주화 20년, 문화 20년 상상변주곡' 여섯 번째 시간, 김명인 교수의 발제와 토론에 대한 오마이뉴스 보도기사를 옮겨온다.

 

프라이팬에서 탈출, 화덕에 뛰어든 '한국'
[상상변주곡 ⑥] 다시 민중을 부른다. 신자유주의 시장 독재에 맞서

  이정환(bangzza) 기자  

"프라이팬에서 탈출했다 싶었더니, 화덕 속으로 뛰어든 셈이다."

김명인 교수(인하대, '황해문화' 주간)의 '전주'는 우울했다. 23일 열린 6월 민주항쟁 20년 기념 대토론회 '민주화 20년, 문화 20년 상상변주곡' 여섯 번째 시간, 김명인 교수(아래 호칭 생략)는 '다시 민중을 부른다'는 제목의 주제 발표를 통해 "우리가 함께 지향했던 아름다운 민주적 공동체는 간 데 없이, 신자유주의 시장 독재만 눈앞에 아득하게 펼쳐진 시대"라고 '현재'를 진단했다.

그래서 "20년 전 뜨거웠던 시절, 지금보다 분명히 더 가난했고 더 억압받았지만, 변화에 대한 희망이 있었기에 지금보다는 행복했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시장 독재 시대에도 희망이 있는가"는 질문과 함께 '본 공연'이 시작됐다.

 
▲ 여섯 번째 '상상변주곡' 주제 발표를 맡은 인하대 김명인 교수
ⓒ 이정환
 
민주주의 정착 과정으로 알고 있던 지난 20년

먼저 김명인은 "우리가 세계사적 반동의 흐름을 인식하지 못했기에", 화덕 속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비록 "1987년에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이 혁명적 변화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민주주의 정착 과정으로 알고 있던 지난 20년 또한 '신자유주의 세계체제'가 남한 사회에 관철된 시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이다.

"70년 오일 쇼크로 결정적 위협을 감지한 세계자본은 이미 당시부터 공공부문 등 사회 전 영역을 상품화하는 새로운 노선을 개발하고 실현시키고자 했다"고 전제한 김명인은 박정희의 죽음에서 참여 정부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통해 "부르주아 민주혁명을 성취"했지만, 동시에 "신자유주의 드라이브에 의해 부르주아 민족국가가 해체될 운명에 놓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김명인은 '문민정부'를 "OECD와 WTO 가입을 통해 신자유주의 체제 정착을 위한 지반을 다진 정권", "경제 민주주의를 정착시키지 못하고, 결국 정치적 민주주의조차 불구로 만들어버린 국민의 정부", "본격적으로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밀어붙임으로써 시장 독재 체제를 완성시킨 지금의 참여 정부"라고 각각을 규정했다.

특히 "국민의 정부가 최대 치적으로 삼는 햇볕 정책"에 대해서도 김명인은 "이미 남북 관계는 군사적 긴장을 통한 적대적 의존 관계에서 교류 협력을 통한 비적대적 의존관계 단계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며 "훌륭하긴 하나 정말 엄청난 것은 아니라는 말"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김명인은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20년 전에 가졌던 인간 해방에 대한 희망을 신자유주의의 주구가 되어 버린 제도권 민주화세력들에게 도매금으로 팔아 넘겨 버리고 대부분 공동체에서 개인의 영역 속으로, 신자유주의 경쟁 체제 속으로 도피하고 투항했다"는 말로 지난 20년 동안 일어난 일을 정리했다.

"이른바 '운동권'도 신자유주의 세력과 유착"

이제는 '화덕 속에서 펄펄 뛰는 오늘의 현실'과 마주 할 차례다. 김명인은 "1997년 IMF 사태를 계기로 완전히 신자유주의 세계 체제의 일부분이 된 한국은 이제 세계적 자본 각축이 일어나는 하나의 지역 시장에 불과하다"며 "미국은 자국 출신 초국적 자본이나 자국 자본의 이익을 보장하는 시장으로서만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객관적 조건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 소설가 방현석 씨
ⓒ 이정환
이어 김명인은 "다만 미국 자본 이익 실현에 있어 경제적, 경제외적 기득권이 살아 있는 특수 지역이 한국 시장"이라며 "중국 등의 영향력을 독점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미국의 노력이 한미FTA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한미FTA 체결을 "균질화(성분이나 특성이 고루 같게 됨)-미국화 프로젝트의 구조적 정착"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체적 조건은? 그는 "정치 엘리트에서부터 자칭 진보 인사들까지 모두 한 편으로는 분배정의와 복지를 말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성장동력 발굴론, 사회 전 부문 경쟁력 강화론, 개방 불가피론 등을 말하고 있다"면서 "이렇게 뒤섞여 헝클어진 현실 인식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시장독재 대항 주체 구성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와 같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압도적 우위 속에서"는 "변혁적인 정치 역량 형성 역시 기대하기 어려우며", 이런 현실에서 "시민사회운동·노동계급운동 영역 또한 신자유주의 세력과 이데올로기적·제도적 유착 상태에 빠져 있다"고 이른바 '운동권'을 함께 비판했다.

"운동권이란 말이 나오면서 변혁운동 혹은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사람들이 대중으로부터 분리되어 타자화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한 김명인은 '신자유주의 세력과 유착의 예'로 "민주화 이후 운동의 준 국가기구화와 관료화, 자기 재생산을 위한 보수화, 대중으로부터의 고립"등을 꼽았다.

김명인은 지식인 사회에도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나 스스로도 '선진대안론'에 참여한 것처럼, 한국 지식인 사회가 본래의 변혁성을 잃고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다"며 "이제 한국의 지식인 사회는 신자유주의 시장독재를 용인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를 명확하게 선을 그어야 할 시점에 와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덕분에 "비정규직 노동자, 농민, 도시 빈민, 이민자, 실업자 등 각종 소수자들은 아무런 조직도 대변 세력도 없이 맨몸으로 신자유주의 시장 독재 체제에 맞서고 있는 형편"이라며 "신자유주의 경쟁 대열에 합류할 수 없었던 민중들은 양극화라는 길고 어두운 터널 속에서 불안과 공포 속에 떠돌고 있다"고 못박았다.

민중의 이름으로, 하나의 연합으로

암울한 진단은 끝났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시장 독재의 시대에도 희망이 있는가"란 물음의 대답을 찾기 시작했다.

김명인은 "자기 영역 확장에 필요하다면 낡은 이데올로기 대립이나 적대적 분단 체제도 얼마든지 붕괴시킬 힘이 있는 체제가 신자유주의"라며 "이에 대한 저항이라는 맥락에서 본다면, 민족국가의 자주성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말로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민족적 자주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정통 맑시즘이든 비정통이든, 환경·생태주의든 근본주의 페미니즘이든, "신자유주의 시장독재로부터 삶의 자유를 지키려는 모든 움직임들은 복수의 대안, 복수의 세계를 인정하고 가능성을 열어놔야 한다"고 반 신자유주의 시장 독재 세력의 '연대'를 이야기했다.

 
▲ 토론자로 나선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수. 그는 주제 발표에 "전반적으로 동의한다"며 '민중론'에 대해서는 "실천 주체로서의 민중이 누구를 말하는지 다소 모호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 이정환
이처럼 '자주'와 '연대'를 신자유주의 체제 극복을 위한 '과제'로 제시한 김명인은 이를 위해 "반신자유주의 투쟁 주체의 구성이라는 보다 적극적인 맥락에서 민중 개념을 다시 복원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70~80년대적 민중 개념은 근대 부르주아 사회와 세계 체제의 한계와 모순을 극복하는 이념형적 주체 개념이었다"면서 "이는 한국 사회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시장 독재 체제에 반대하는 지구상의 모든 지역 인민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개념으로 상당한 적합성을 지닌다"고 민중 개념 귀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끝으로 김명인은 "신자유주의 시장독재 체제의 현재적·잠재적 희생자들이 민중의 이름으로 하나의 '연합'을 이뤄 전면적으로 또 세계적 규모로 저항운동을 전개하는 것이 최대치의 전망이자 희망"이라며 "저항 투쟁은 동원이 아닌 참여로, 중심화가 아닌 탈중심화로, 위계화가 아닌 평등화로, 동일성이 아닌 차이의 힘으로, 그러면서도 긴밀한 네트워크적 연대를 통해 전개되어야 할 것"이라는 말로 '희망이 있는가'란 질문의 대답을 마무리했다.

한편 '풀로엮은집'이 기획·진행하는 '상상변주곡'은 '아름다운 저항' 등의 방현석 소설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수 등이 토론자로 참여했으며,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와 6월민주항쟁 20년사업추진위원회가 주최했다.

7회 토론회는 '세계화 시대에 구상하는 진보 운동의 문화 전략'을 주제로 5월 31일(목) 저녁 7시에 서울 배재정동빌딩 B동 1층에서 열린다. 조정환 문학평론가가 주제 발표를 맡을 예정이다.

 
  방현석 "민족문학작가회의 하루 빨리 해산해야"  
  "최소한의 연대 틀만 남기고 분화 바람직"  
 
 
주제 발표에 이어 토론에 나선 방현석 소설가(아래 호칭 생략)는 "8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되돌아 볼만한 주제 발표였다"며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방현석은 "지나치게 주체적인 역량과 역할이 과소 평가된 측면이 있는 역사 해석이란 생각이 든다"면서 "자칫 주체적인 노력들까지 미국의 세계 질서 재편 과정의 부속물로 취급되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김명인의 '87보다 못한 후퇴' 주장에도 방현석은 "광주 항쟁이나 6월 항쟁에서 나타난 대중들의 요구는 혁명적·변혁적 이데올로기 수준에 이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라며 "7·8월 노동자 대투쟁의 핵심 사안이 노조 결성 등 최소한의 권리였던 것을 감안하면, 87년 이후 민주노총 합법화 등을 통해 노동 대중의 요구 역시 거의 실현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리고 방현석은 "이른바 '운동권'에게 갖고 있는 '민주화를 위해 희생된 세력들'이란 대중들의 부채 의식 역시 노 정권 당선 등을 통해 해소됐다고 본다"며 "이미 몫을 성취하고 부채를 청산했다고 생각하는 대중에게 그 이상을 요구한다면, 바로 그것은 그 이상 꿈을 꾸는 사람들의 몫 아니겠냐"는 반문으로 '운동권'에 대한 비판으로 눈을 돌렸다.

방현석의 비판은 "민중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다음 단계로 상정할 수 있도록 과연 어떤 작업을 해왔나. 아무도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는데, 오늘의 현실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라는, "90년대 저쪽이 신자유주의 질서를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세력을 재편하는 동안, 이쪽은 진영 개편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뼈아픈 자성으로 이어졌다.

자연스럽게 최근 '민족문학작가회의' 단체 이름 변경을 둘러싼 논란으로 화제가 옮겨갔다. 방현석은 "정체성이나 지향성 등에서 동일성을 찾기 어려워 현실적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작가회의란 '조합'은 명칭 논란을 벌일 것이 아니라 하루 빨리 해산해야 한다"며 "각 분야로 나뉘어 활발한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연대 틀만 남겨 놓는 형태로 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끝으로 방현석은 "주제 발표 덕분에 '운동권'이란 말이 한참 뒤에 나온 것을 깨닫게 됐다"며 "운동권이란 말이 나오면서 '망했구나', 그런 '딱지'를 받아들인 순간에 이미 운명을 다했던 것"이라고 이른바 '운동권' 호칭 문제에 공감을 표시했다.

당연히 '386'이란 호칭에 대한 문제 제기도 나왔다. 방현석은 대학생이 아닌 노동 계급은 80년대 세대가 아니라는, 그런 민중 배제적인 규정이 어디 있느냐"면서 "386이란 용어를 아무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순간, 80년대 운동권은 끝이 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386이란 개념을 수용하지 말았어야 한다. 광주항쟁 세대가 가장 정확한 표현이라 생각한다"며 "이것도 양보한다면, 적어도 80년대 세대라 불러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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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에 시비걸기를 시작한다.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시비는 아니고, 우리가 흔히 쓰는 우리말들 중에서 괜히 잡생각이 드는 말들에 대해 깐죽대보자는 것이다.

파이팅 / fighting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올라있을 정도로 이제 거반 우리말인 듯 싶다. 우리말의 분류를 따르더라도 이 말은 외래서로서 우리말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운동 경기에서, 선수들끼리 잘 싸우자는 뜻으로 외치는 소리. 또는 응원하는 사람이 선수에게 잘 싸우라는 뜻으로 외치는 소리.'라고 그 뜻을 풀이하고 있다. 품사로는 감탄사다.

영어 fighting은 형용사로서 '싸우는, 호전적인, 투지 있는, 무를 숭상하는, 전투의, 전투에 적합한, 교전중인, 전쟁의'란 뜻이 있으며, 명사로서는 '싸움, 전투, 교전, 회전(會戰), 논쟁, 격투, 투쟁'의 뜻을 가지고 있다.

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뜻으로 볼 때, 영어로서의 fighting과 우리말의 파이팅은 좀 차이가 있다. 우선 우리말의 파이팅은 감탄사인데 반해, 영어의 그것은 주로 형용사나 명사로서 기능한다.

내가 영어를 원체 못해서 잘은 모르겠으나, 우리말의 파이팅과 같은 용례가 영어권에서 실제적으로 (우리말에서처럼) 활발히 사용되고 있는지는 확인한 바 없다.

여기서는 많이 쓰고 안 쓰고의 문제를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영어권에서 어떻게 쓰이건 간에, 우리말에서는 감탄사로서 이 사람 저 사람,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릴 것 없이 두루 사용되고 있다. 그게 중요한 거다.

실제로 파이팅이라는 말은 어느 회사의 광고에서도 비중있게 표현되었다. 코리아팀 파이팅이라던가. 월드컵의 열기와 함께 자기 회사의 이름과 이 파이팅을 연결시켜 표현한 것 같다.

전국적으로 대부분의 상황에서 가리지 않고 쓰는 표현이 이 파이팅인데, 이 파이팅으로 인해서 우리 전통의 감탄사들, 이를테면 얼씨구니, 지화자니 하는 것들이 저만치 밀려나 버렸다. 많은 부분에서 이 파이팅으로 대체되었는데, 그 원인 중의 하나는 서구화의 영향이랄 수도 있겠지만, 그 말의 호전적 성격때문이 아닐까 한다.

근대화는 곧 전쟁이다. 우리 사회의 여러 모습들이 전쟁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 대표격이 운동경기, 특히 축구라고 할 수 있겠다. 인생 자체를 전쟁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파이팅은 적재적소에서 빛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좀 생각해 보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이 말을 '힘내자'로 순화하고 있다. 2005 우리말 다듬기 자료집에는 '아자' 정도로 순화하고 있다. 이외에 '영차, 잘 하자, 패기' 등의 말로 파이팅을 순화하고자 한다. 나는 원래가 이 인위적 언어 순화에 반대하지만, 파이팅의 경우 순화가 아니라, 그 말의 사용 상황에 따라 더 적합한 언어를 선택해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얼마전 사무실에 불우이웃을 돕자는 사람이 찾아온 적이 있다. 내가 바쁜 중이어서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던데, 그 사람은 연신 '파이팅, 파이팅'을 외쳐댄다. 좋은 뜻에서 이겠지만, 어려운 사람 돕자는 사람이, 싸우자고 부추기는 듯해서 영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다 싶었다.

그래서 생각인데, 이 호전적 성격의 단어의 사용은 조금 줄일 필요가 있겠다. 운동경기나 그와 비슷한 상황에서 사용하되, 우리 사회에서 호전적일 필요가 전혀 없는, 아니 호전적이서는 안될 상황에서는 이 단어는 좀 꺼려져야 하지 않을까? 나랑 싸우자는 게 아닐진대, 파이팅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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