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는 사람의 결혼식엘 다녀왔다. 날씨도 구리한데(결국 식이 끝나고 비가 왔다.), 마음도 꾸리했다.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를 애절히 여기게 된 나보다 한 살이 어린 이 친구가 결혼은 한 것이다. 내 마음이 구린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이 친구의 결혼을 축하해주지 않을 이유는 없다. 구린 것 내 사정이고, 축하는 또 다른 사정이니, 진정으로 이 친구의 결혼을 축하한다.

결혼식이 막 시작할 무렵 도착했다. 식장에 들어서서 진행되는 결혼식을 지켜봤다. 주례가 끝나고 축가가 이어졌다. 신부가 학교 선생님인데, 역시나 축가를 제자가 맡았다. 클래식 기타 연주였는데, 음향 시설이 좋지않아, 뭘 하는지를 들을 수는 없었다. 클라이맥스는 이 친구, 오늘의 신랑의 노래였다. 신부에게 바치는 노래. 멋지게 불러제꼈다. 아무래도 노래 연습을 한 것 같다. 처제란 사람이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전해들은 바로는 처제가 바이올린 전공자란다.(이 정보를 입수하고 다정스레 이 친구에게 접근했더니 曰, "며칠 후에 독일로 유학가요.") 노래를 꽤나 잘 불렀는데, 아무래도 좀 모션이 어설프지 않았나 싶다. 하여간 그건 그거고, 중요한 건 이 신랑이 부른 노래다.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눈을 뜨기 힘든 가을 보다 높은
저 하늘이 기분 좋아
휴일 아침이면 나를 깨운 전화
오늘은 어디서 무얼 할까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가끔 두려워져 지난 밤 꿈처럼
사라질까 기도해
매일 너를 보고 너의 손을 잡고
내 곁에 있는 너를 확인해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걸
널 만난 세상 나는 소원 없어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걸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바리톤 김동규의 중후한 목소리에 실린 이 사랑의 노래는 99% 감동이기에 확실하다. 28의 젊은 신랑의 씩씩한 목소리로 전하는 이 노래도 그 날의 아름다운 신부에게 무한 감동을 선사한 듯이 보였다. "널 만난 세상"에서 "어디서 무얼" 하건, '사랑'만이 '가득'할 것이다. 이에 더 무슨 '소원'이 있겠는가? 다만 '시월의 어느' 날만이 멋지겠는가? 사랑하는 두 연인에게는 만날이 '멋진 날'일테다. 더 무엇을 바랄까? 바란다면 죄가 될지 모른다.

이 노래는 예전에 세계적 소프라노 조수미와 또한 그에 못지 않게 세계적인 바리톤 김동규하고 함께 부르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야말로 환상의 조합이랄 만큼 아름답게 울렸다. 그러나 이 "어느 멋진 날에" 울리는 이 노래의 감동이 100%가 되기에는 어딘가 1% 정도 모자란 감이 있는 것은 왜일까?

며칠 간의 신혼여행을 다녀온 신랑이, 나랑 포함한 직장동료들에게 피자를 쐈다. 모인 자리에서 화제는 결혼식 당일 신랑이 이 멋진 노래였다. 모두들 멋있단다. 노래도 너무 좋았단다. 인터넷으로 원곡을 찾아 듣기도 했다. 노래가 끝나고, 나는 '과감히' 말했다. "이 노래에서 틀린 게 있는데, '바래' 아니죠, '바라' 맞습니다."

근데, 반응들이 예상 외였다. 다들 '아 그렇지!'하고 넘어갈 줄 알았는데, 예상 외로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아니, '바래'가 아니고 '바라'야?" 눈이 동그레져서 쳐다본다. 전혀 몰랐다는 눈치다. '이거 이 사람들이 다들 대학나온 사람들이 맞나!'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말이다. 생각건대, '바래'가 아니고 '바라'인 건 대부분 다 잘 알면서 으레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줄만 알았다. 그런다 그게 아니었다. 이 사람들은 원래 '바래고, 바램'이었다. 아니 이런!

한 사람이 이렇게 물어온다. "'바라다'가 맞고 '바래다'가 틀리다고?"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바라다'도 맞고, '바래다'도 맞아." 여기서 '바라다'와 '바래다'의 사전적 의미를 알아보자.

   
 

바라다 「동」
  ① 생각이나 바람대로 어떤 일이나 상태가 이루어지거나 그렇게 되었으면 하고 생각하다.
  ¶요행을 바라다/도움을 바라다/너의 성공을 바란다.//시험에 합격하기를 바란다./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기를 바랍니다./전쟁이 빨리 끝나기를 바란다./기적이 있기를 바란다./부모는 자식이 행복하기를 바란다./부디 참석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그는 내심 아들이 하나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친구의 사업이 성공했으면 하고 바라 마지않는다.§ 
  ② 원하는 사물을 얻거나 가졌으면 하고 생각하다.
  ¶돈을 바라고 너를 도운 게 아니다./그는 한몫을 바라고 이 일에 뛰어들었다./딸부자 집에서 또 딸을 바란다니 의외이다.§
  ③ 어떤 것을 향하여 보다.
  ¶우리는 앞만 바라보며 죽을 힘을 다해서 인왕산을 바라고 뛰었다.§

바래다1 「동」
  ① 볕이나 습기를 받아 색이 변하다. ¶빛 바랜 편지/색이 바래다/종이가 누렇게 바래다/오래 입은 셔츠가 흐릿하게 색이 바랬다./누렇게 바랜 벽지를 뜯어내고 새로 도배를 했다./회색의 대문에 누렇게 빛이 바랜 종잇조각은 여전히 붙어 있었다.≪김승옥, 건≫§
  ② 볕에 쬐거나 약물을 써서 빛깔을 희게 하다.
  ¶속옷을 볕에 바래다/출입옷도 아니고 보통 때 입으라고 광목을 바래서 해 놨다.≪박경리, 토지≫§

바래다2 「동」
  가는 사람을 일정한 곳까지 배웅하거나 바라보다.
  ¶그녀는 친정어머니를 역까지 바래다 드렸다./감사역을 비롯한 사람들이 따라 나와서 그들을 바래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이렇게 되면 '바라다'와 '바래다'의 차이를 확연히 구분할 수 있게된다. 그 의미의 차이의 간격이 크기때문에 아무래도 이 둘을 혼돈하면 대략난감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주 혼동한다. 아니 요즘은 전혀 '바라'지 않고 '바랜'다.

고어에서 'ㅂ(아래아)라다'와 '바ㄹ(아래아)다'가 있었다. 전자가 오늘날의 '바라다'가 되었고, 후자는 '바르다'가 되었다. 예전에 있던 모음 '아래아'는 오늘날 'ㅏ, ㅡ'로 바뀌거나 탈락되어 나타난다. 그런데 이 둘이 모두 '바라다'가 되지 않고 분화된 것은 나름의 원리가 있긴 하지만, 이 둘의 혼동을 막기 위한 것도 작용했을 것이다.

'바래다1'의 경우 원래부터 '바래다'가 아니었을까 싶다.(과문한 탓에 어원을 잘 모르겠다.) '바래다2'는 '발다+애'의 형태로 분석된다. 분명 이 둘의 차이가 있었다는 얘기다. 우리가 혼동하는 것이 '바라다'와 '바래다'인데, 도대체 왜 이 둘이 혼동, 아니 '바래다'로 수렴되는가? 나로서는 좀 알기 힘들다.

원인을 생각해보자면 아무래도 움라우트 현상이 아닐까 싶다. 움라우트란 'ㅣ'모음 역행동화라고도 하는데, '먹이다'를 '멕이다'로 '학교'를 '핵교'로 발음하는 현상을 말한다. 그런데 이 움라우트는 그 원인자, 즉 'ㅣ'모음이 있어야 하는데, '바라다'에는 그것도 없다. 하여간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는 언어학자들이 찾아봐야 하겠다.

우리가 흔히 구어에서 사용할 때는 '바라다'라는 기본형으로 말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바라고, 바라니, 바라서'등이나, "~하기를 바라, 바라요' 등의 활용형을 사용한다. 그런데 이 활용형들이 좀 불안스럽고 발음하기 불편하다는 이유가 이를 '바래다'로 합치시켜버리는 게 아닐까 추측한다. '바라요'에서는 움라우트의 원인자가 '요'에 있기도 하다. "잘 살길 바라."는 어딘지 어색스럽다. "잘 살길 바래."로 대부분 말한다.

'바라다'를 '바라다'로 사용하는 예는 대부분 구어에서다. 쓸 때는 많은 사람들이 잘 구분해서 쓴다. 마치 '자장면'이라고 쓰고 [짜장면]이라고 발음하는 것처럼. 그런데 그 구분이 점점 모호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위의 노래 가사에서처럼 말이다. 점점 글을 쓸 때도 '바래다'로 수렴되는 현상을 곳곳에서 목격하기도 한다. 아직 '바라다'를 '바래다'로 쓰는 것은 죄(?)가 되지만, 어법이라는 것이 언중의 현실을 따라야 하는 것이어서, 언젠가는 '바래'도 죄가 없을지 모른다.

한글맞춤법이 언중의 현실을 따라가는 속도가 대단히 무디지만, 우리가 열심히 '바라다'를 '바래다'로 쓰면 지들이 어쩌겠는가? 근데, '바람'이 '바램'이 되면 우리가 '바라'는 것이 왠지 빛이 '바랠'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건 왜일까? 이래 생각하면 '바라다'를 '바래다'로 쓰기 왠지 거북스럽기도 하다. 아직은 '바램'은 죄가 된다.

덤으로, "회사의 (승패/성패)가 달려 있는 이번 사건에 전 직원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에서 무엇이 맞을까? 당근 '성패'가 맞다. '승패(勝敗)'는 이기고 짐을 말하고, '성패(成敗)'는 성공과 실패를 말한다. '성패 여부, 성패를 가름하다, 성패를 좌우하다' 등처럼 쓰인다. 세상이 신자유주의의 무한경쟁으로 빠져들고 있어 뭔 일만 있어도 그 일을 이루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보다, 다만 이기고 지는 것만이 중요해 진 것은 아닐까? '승패'는 저기 축구장에나 가서 따지고, 우리는 '성패'에만 신경쓰고 살자.

덤2. 제목이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인데, 흔히들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로도 쓴다. 근데 왜 "십월의 어느 멋진 날에"가 아닐까? 한글 맞춤법 제52항을 보면 알 수 있다. "한자어에서 본음으로도 나고 속음으로도 나는 것은 각각 그 소리에 따라 적는다." 따라서 十日은 십일이고, 十月은 시월이다. 八日은 팔일이고 初八日은 초파일인것 처럼. 마찬가지로 十王은 시왕으로 읽는다. 육월이 아니고 유월이고 오륙월이 아니고 오뉴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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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 2007-09-30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무식해서 그런지 시왕이란 낱말 처음 보는데 '왕 10명'이란 뜻인가요?

멜기세덱 2007-09-30 22:46   좋아요 0 | URL
시왕(十王)은 불교용언데요, 저승에 있다는 10명의 왕을 뜻한데요. 말하자면 염라대왕의 분신들이라고 할까요. 각각의 왕들이 임무가 좀 다른가봐요.
이 시왕이라는 말은 민요나, 굿, 불교음악에서 자주 보여요. 코미디언 이상해 씨의 부인인 김영임 씨의 「회심가(곡)」에서 "차례야 차례로만 흘러 시왕(十王)극락을 나립소사 나무아미로다."라거나, "열시왕이 부린 사자" 등의 노랫말에서 볼 수 있죠.
어른들 말씀에서는 간혹 듣기도 하는데, 요즘은 거의 사용을 안하는거 같아요.

순오기 2007-09-30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사연의 노래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 요 노래도 바로 바람을 바램으로 혼동하게 만드는데 일조를 했죠~~~ 멜기님의 친절한 설명에 정확히 인지하고 갑니다. 감사 ^*^

멜기세덱 2007-09-30 22:49   좋아요 0 | URL
앗, 사연누나도 있었구낭....ㅎㅎ
그러면, "우리 만남"이 빛을 '바래'는뎅....ㅋㅋ

Jade 2007-09-30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6차 수능세대는 아마 다 알거예요 맞춤법문제로 매일 나와서...ㅋㅋ

멜기세덱 2007-10-01 09:06   좋아요 0 | URL
아, 6차네요...ㅎㅎ
내가 5차 마지막인뎅....ㅎㅎ
근데, 6차에서 맞춤법 문제가 매일 나와요?
6, 7차 애들은 잘 모르는거 같던뎅....ㅋㅋ

심술 2007-09-30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뜻이군요. 이 낱말의 멸종을 막기 위해서라도 기회 나는 대로 써 봐야겠습니다.

멜기세덱 2007-10-01 09:07   좋아요 0 | URL
알라딘 서재지기 중 최고 10분을 뽑아서 시왕으로 삼으면 어떨까요?
알라딘 시왕....ㅋㅋㅋ

프레이야 2007-10-01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위 글 쓰시는 분들 중에도 이것 헷갈리는 분 많더군요. ㅎㅎ 괜히 씁쓸해요..
바램 아니고 바람 맞습니다. 그러고 보면 노랫말 속 바램은 그 바램으로 보면
일면 맞기는 하네요.^^ 멜기님, 시월입니다~

멜기세덱 2007-10-01 13:35   좋아요 0 | URL
아~~시월.....愛

마태우스 2007-10-01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바람이 맞다고 생각하는데요 부는 바람하고 헷갈릴까봐 자꾸 '바램'이라고 쓰게 되더군요. 그 표현이 더 익숙하구요. 글구 움라우트 현상이라는 멋진 말이 원래 있는가요 아님 님의 표현인가요? 전문가로서의 자질이 한껏 묻어나는 고마운 글이었어요^^

멜기세덱 2007-10-01 13:38   좋아요 0 | URL
ㅎㅎ 전문가라뇨, 조악한걸요..
아, 움라우트(umlaut)는 언어학 용어입니다. 우리말의 'ㅣ'모음 역행동화 현상이 바로 이 움라우트에 해당합니다.
예전 문법에서는 움라우트로 가르쳤던 것 같은데, 요즘은 우리 문법책에서는 이 말을 잘 안쓰더군요.
위에서 예를 든 내용이 이 움라우트에 해당하고요, 다만 이 현상은 지역이나 개별 차이가 커서 표준 발음으로는 인정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 우리 국어 발음의 한 현상인 것은 사실입니다.

마노아 2007-10-01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래 좋아요~ 반복해서 듣고 있답니다. 맞춤법 얘기하면 주변에서 사람들이 뭐라하지 않던가요? 전 맞춤벌 틀렸다고 넌지시 얘기해주면 '까칠한 녀석'이라는 취급을 받곤 했어요.
 

여러분들은 책을 어떻게 대하시나요? 알라딘에서는 이만한 우문도 없겠습니다만, 책을 귀하고 소중히 여기는 방법들이 요즘은 제각각일 거라고 생각이 되네요. 흔히는 밑줄을 그어 가면서 읽는 분이 많으시죠? 그런데 이 밑줄 긋는 도구도 제각각이더라구요. 저는 샤프를 줄곧 이용하는데요, 어떤 분들은 눈에 확 들어오게 색연필이나 형광펜을 이용하시기도 하고, 볼펜을 이용하시는 분들도 계시는 것 같더라구요.

예전에 저는 워낙에 책을 애지중지 귀하게 여긴 터라, 볼펜은 고사하고 샤프나 연필로도 책에 밑줄을 긋는 것까지 꺼렸더랬습니다. 그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어서, 한 번 읽고 난 후, 기억에 남는 대목을 찾아보려면 한참을 또 뒤적여야하는 어려움이 있더라구요. 요즘은 샤프를 이용해 약간씩 밑줄을 긋는 편이고, 포스트잇 같은 것을 이용해서 표시를 해놓은 방법을 사용한답니다.

어떤 분들은 중요한 대목 등에 책을 접어서 표시하거나 볼펜이나 형광펜 혹은 색연필로 찐하게 표시를 하시는 분들도 계시기도 하는데, 간혹 좀 지저분하다 싶을 정도까지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그런데요, 그런 것들을 보면 참 책이 안쓰럽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요, 자기 책 표시하겠다고 책표지 등에 매직으로 대문짝 만하게 도배하시는 분들, 이건 책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심히 안타깝게 여겨집니다. 제발 그런 거는 좀 안해주셨으면 하는 작은 바람입니다. 이왕 표시를 하신다면 깔끔하게 쓰신다던지, 책도장 같은 걸 이용하신다면 보기 예쁘고 좋지 않을까 싶어요.

어떤 저자들은 책머리말에 뜨거운 용기 받침으로라도 쓰인다면 다행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게 반드시 진심을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요즘 나오는 하드커버 책들은 라면 끊여먹을때는 받침으로 쓰기에 안성맞춤이지 싶기도 한데요, 여기 알라딘에는 그러실 분들은 거의 없으실 거라고 사료됩니다. 지나친 기대일까요?

책을 어떻게 대하건, 그건 읽는 분들의 자유시겠지만, 책 읽기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책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공통점이 분명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렇다면 옛날 사람들은 책을 어떻게 대했을까요? 지금으로써는 상상하기도 힘들만큼 책을 귀하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요, 다음의 연암 박지원의 말을 보면 억소리가 나실 수도 있겠습니다.

   
 

對書勿欠(대서물흠), 對書勿伸(대서물신), 對書勿睡(대서물수),

若有嚏咳(약유체해), 回首避書(회수피서),

翻紙勿以涎(번지물이연), 標旨勿以爪(표지물이조).
                                                                                         -朴趾源(박지원)-

책을 대해서는 하품을 하지 말고
기지개를 켜지도 말며 졸지도 말아야 한다.
기침이 날 때는 머리를 돌려 책을 피하고
책장을 뒤집되 침을 묻혀서 하지 말고
표지를 할 때 손톱으로 해서는 안 된다.

 
   

오늘은 문장이 좀 기네요. 간단하게 한자 공부를 좀 해보시죠.

첫 3구절은 문형이 유사합니다. 對書, 곧 "책을 대하다"라는 뜻이죠. 對는 대답할 대, 혹은 대할 대입니다. 그리고 축구나 야구 경기에서 "한국 대 일본" 혹은 "현재 스코어 3 대 0" 할 때의 대도 이 對입니다. 勿은 "~지 말다"라는 뜻이고, 欠은 하품 흠입니다. 그러니까 "하품하지 말아라" 이런 뜻이죠. 합쳐보면, "책을 대할 때 하품 하지 말아라."가 됩니다.

伸은 펼 신인데요. 申도 펼 신입니다. 여기에 人(사람 인)이 붙었죠. 그래서 伸은 "몸을 펴다"란 뜻을 더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이 몸을 펼 때는 흔히 기지개를 펼 때가 되죠. 따라서 여기서는 "기지개를 펴다"란 뜻으로 쓰였습니다. 첫 구절과 같은 방식으로 "책을 대할 때는 기지개를 펴지 말아라"라는 뜻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睡는 잠 수, 혹은 잠 잘 수인데요, 여기서는 동사 잠잘 수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책을 대할 때는 잠자지 말아라" 즉 졸지 말라는 얘기죠. 여기까지는 쉽죠?

若은 흔히 같은 약으로 읽는데요, 여기서는 "만약 ~ 라면"으로 해석합니다. 有와 함께 해석하면 "만약 ~가 있다면"으로 볼 수 있겠죠. 그런데 다음 두 글자가 어려운 한자입니다. 嚏는 한자변환이 안되서 한자사전 검색을 통해 따올 만큼 흔한 한자는 아닌데요, 이 글자는 기침 체로 읽습니다. 咳도 기침을 뜻하는 기침 해인데요, 굳이 구분을 하자면 嚏는 기침 중에서도 재채기를 뜻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냥 둘이 합쳐서 기침으로 해석하시면 되겠네요. 4번째 구절은 "만약 기침(재채기나 기침)이 날 때는"으로 해석하면 되겠습니다.

자 "기침이 날 때는" 어떻게 하라는 걸까요? 回은 돌 회고, 首는 머리 수입니다. 합치면 "머리를 돌려라"로 해석할 수 있겠죠. 머리를 어디로 돌려야 할까요? 避는 피할 피입니다. 여름에 피서를 가죠? 이때의 피가 이 避입니다. 그러니까 기침이 날 때는 책에 대고 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돌려서 책을 피해" 기침을 하라는 얘기가 되죠.

翻은 날 번인데요. 羽(깃 우)를 보면 뜻을 짐작할 수 있죠. 난다는 뜻에서 파생되어서 뒤집다는 뜻을 더하게 됩니다. 번역하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고요, 羽 대시에 飛(날 비)를 붙여서 飜(뒤집을 번)으로 더 자주 씁니다. 간단히 여기서는 뒤집을 번으로 해석하면 되겠습니다. 紙는 잘 아시다시피 종이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翻紙는 "종이를 뒤집다"는 뜻이겠죠? 以는 수단과 도구를 나타낼 때 쓰입니다. "~로써"로 해석하시면 되구요, 涎은 좀 지저분한 글자인데, 침을 뜻하는 한자입니다. 침 연으로 읽습니다. 합쳐보면, "종이를 뒤집을 때는 침으로써(침을 묻혀서) 하지 말아라"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標는 표시하다라는 뜻입니다. 旨는 뜻 지고요. 標旨는 "뜻을 표시하다"로 직역할 수 있겠는데, 흔히 합쳐서 표지로 자주 쓰입니다. 국어 시간에 표지에 대해서도 배우는데요, 표지판 할 때에 지는 識(기록할 지)를 씁니다. 뭐 대강 비슷한 뜻이라고 보시면 되겠어요. 標旨는 그러니까 어떤 것을 표시해 놓는다는 뜻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爪는 손톱 조를 뜻하죠. 앞 구절과 마찬가지 방법으로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표지를 할 때는 손톱으로써 하지 말아라"라는 뜻입니다.

이 구절은 첨언이 필요한 때요, 손톱으로 표지를 하지 말아라는 얘기는 무엇인고 하니, 옛날에는 종이질이 좋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중요한 곳을 표시할 때 종이를 접어 놓기도 했는데, 이렇게 종이를 접어 놓으면 종이가 금방 상해서 접힌 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경우가 있게 됩니다. 그래서 임시 방편으로다가 손톱으로 꾹 눌러서 표지를 해 놓기도 하는데요, 이 경우도 종이가 상하기는 별반 차이가 없겠습니다.

자, 어렵게 문장을 풀어봤는데요, 어지러우시죠? 그런데 어떻게 옛날 선비들이 책을 이렇게 대했을 거란 생각을 해보시니까, 더 어지럽지 않으세요? 뭐하지 말고 뭐하지 말라는 식의 예법들이 많았지만, 책에 대해서까지 이런 제약이 있을줄은 모르셨을 겁니다.

뭐, 예전에 그렇다는 거고, 요즘은 종이 질이 좋아져서 기침을 좀 해도되고, 접어 놓아도 별 탈은 없을 겁니다. 하품도 하고, 기지개도 책을 대놓고 하면 좀 어떻겠습니까마는, 이 구절을 보면서 느끼는 점은 점도 책을 귀하게, 소중하게 여겨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구요? 제 선생님께서 이 구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을 더하셨는데요,

   
  박지원은 진리가 담긴 책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책에 대한 사뭇 경건한 태도를 가졌다. 그래서 책을 베고 자거나, 책으로 그릇을 덮거나 책을 어지럽게 던져두는 것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다. -김영-  
   

여기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진리가 담긴 책"이란 말입니다. 여전에 책은 곧 경전이어서 더욱 그러했겠지만, 오늘날에도 우리가 읽는 책에는 어떤 일말의 진리를 담고 있다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되고, 그런 책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되기 때문입니다. 책을 보다 소중히, 귀히 여긴다면, 어느 책에서도 보다 값지고 귀한 진리를 얻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책을 소중히 여기는 세상은 또한 아름다운 세상의 또다른 얼굴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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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9-28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차마 책에 줄을 못긋겠고..한때는 공책에 책의 제목과 이름 그리고 페이지수를 적어놓고 꼼꼼하게 기재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그냥 뭐 막가파식인거죠..

멜기세덱 2007-09-28 01:45   좋아요 0 | URL
어쨌거나, 어떤 식으로 읽건간에, 메피님이야 책을 참 효과적으로 읽으실 것 같아요. 어쩌면 그게 가장 책을 귀하게 대접하는 것이 아닐까요? ㅋㅋ
저는 워낙에 미련 곰탱이식으로 무식하게 읽어서리....나중에 활용을 제대로 못한다는....ㅋㅋㅋ

로쟈 2007-09-28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공부하는 책들의 경우엔 형광펜을 사용합니다(복사할 때 흔적이 남지 않아서). 그게 나름 책을 '대우'해주는 거라고 생각하면서(그냥 꽂아두느니)...

멜기세덱 2007-09-28 01:49   좋아요 0 | URL
저는 '공부하는 책'은 자까지 동원해서 열심히 밑줄을 거요.(사실 공부를 거의 안 하지만....) 몇가지 색볼펜을 이용하기도 하고, 형광펜도 사용하고.
그런데 긋다보면 다 중요한 거 같고, 죄다 모르는 거고 그래서 거의 밑줄로 책을 도배해 버릴 지경까지 되기도 해요...그러면 좀 지저분해 지더라구요...
점점 내공이 쌓여서 로쟈님 반의반만 되도, 좀더 효과적이 될텐뎅....ㅋㅋㅋ
열심히 읽고, 열심히 공부하다보면....저도 언젠간 좋은 방법을 마련할 수 있겠죠? ㅎㅎㅎ(혹시나 좋은 노하우라도.....ㅋㅋ)

순오기 2007-09-28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말씀 잘 새겨둡니다. 저는 밑줄치기 위해서 책을 사는데, 밑줄 쳐 놓으면 나중에 금방 찾을 수 있어서 좋아요. 내가 책을 사랑하는 방법은, 책 읽다가 덮을때는 반드시 책갈피를 이용하죠. 책갈피를 만들어서 책을 빌려줄때도 같이 끼워 줍니다. 절대 그냥 엎어놓거나 책날개로 끼우지 말라고...

멜기세덱 2007-09-29 02:23   좋아요 0 | URL
책 읽다가 잠깐 딴짓할때는 자주 엎어두는뎅....ㅋㅋ
앞으론 순오기님 말씀따라 책을 좀더 곱게 다뤄야 겠어요....ㅋㅋ

2007-09-29 0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멜기세덱 2007-09-29 02:24   좋아요 0 | URL
궁중연인식이라....궁중에서 연애하면 임금님 빼곤 능지처참 당하는거 아닌가요...?ㅋㅋㅋ
따지면 저도 약간 궁중식인뎅....ㅎㅎ

웽스북스 2007-09-29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져요 멜기세덱님, 저는 한자 때문에 좌절하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어요, 그래도 이제 책에 한자가 많다고 피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더듬더듬 옥편을 친구삼아 읽고 있답니다 ^^
전 주로 포스트잇 애용, 포스트잇 없음 책끝을 살짝 접고, 밑줄은 샤프보다는 사각사각 연필로 ^^ 없을 땐 볼펜도 쓰고 그래요- 결국 내가 기억하고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니까요 제가 책을 사랑하는 방법은 많이 밑줄그어주기 ^^

멜기세덱 2007-09-29 02:27   좋아요 0 | URL
ㅎㅎ 멋지단말 감사합니다...ㅎㅎ
얼추 댓글단님들 말씀을 정리 쫙 해보면,
오늘날 책을 사랑하는 방법은 그 책 속에 담긴 소중한 의미(어쩌면 진리)들을 얼마나 잘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간직하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이 되네요.
하긴 옛날에는 오늘날보다는 현격히 적은 종류의 책 몇을 읽고 또 읽고, 외우고 읊어야 했으니, 계속해서 보아야 할 책을 보다 깨끗하고 온전하게 유지해야할 필요성이 있었던 거죠.
말씀대로 "내가 기억하고 받아들이는 게 중요"한 거죠....ㅎㅎ

Jade 2007-09-29 0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주로 하이테크로 과감하게 쫙쫙 그어버리는데....뜨끔한데요 ^^;;

프레이야 2007-09-29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읽으며 혹시 자까지 대고 샤프로 밑줄 좍~ 아니신가 했는데 로쟈님 댓글에 덧글 보니
정말 그러셨군요. ㅎㅎ 전 샤프 아니고 그냥 연필 뭉툭하게 깎아서 비뚤게 긋지요.
옆지긴 만년필로 긋더군요. 형광펜은 예전에 공부할 때 쓰긴 했지만 지금은 아니고 ㅋㅋ
그나저나 한자로 풀어주는 명언 시리즈, 좋습니다. 그래도 한자는 어려워용~
 
스포츠 키드의 추억
신윤동욱 지음 / 개마고원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우리말에서 스포츠(sports)는 외래어에 속할 것이다. 그것이 외국어가 아니라 외래어가 된 데에는 그만큼 우리 생활(혹은 언어생활) 속에 깊이 침투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외국어로서의 'sports'를 우리말로 번역해보자면, 얼핏 '운동'이나 '체육' 정도가 될 텐데, 우리는 굳이 'sports'를 스포츠라 애써 말한다. 왜일까? 거기에는 스포츠와 운동과 체육이 가지는 그 어감과 어의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무언가가 있다. 근대 이후에 'sports'가 전해지면서 형성된 스포츠는 나름의 영역을 구축해왔고, 또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또는 각기 대중들의 일상적 차원에서 그것은 '운동'이나 '체육'과는 다른 담화상황에서 사용되어 왔다.

흔히 우리는 "운동하러 간다"고 하지 "스포츠 하러 간다"고 말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일반인들에게 실행되어 지지 않는 '스포츠'의 특성이 내재되어 있다고 보여진다. 그러니까 스포츠는 아마추어리즘(amateurism)을 동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프로 스포츠와 대비되는 아마추어 스포츠가 가지는 좁은 의미의 아마추어리즘이 아닌 보다 넓은 의미의 아마추어리즘 말이다. 달리 말하면 일반인들의 '스포츠 활동'을 우리는 '스포츠'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지성이 맨유 팀에서 첼시와 축구를 하면 스포츠지만, 우리 옆집 아저씨가 조기 축구팀에서 축구를 하면 다만 운동이지 스포츠가 되지 못한다. 재밌는 것은 박지성이 우리 옆집 아저씨와 함께 조기 축구팀에가서 축구를 해도 스포츠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스포츠는 보다 프로페셔널(professional)한, 직업적 전문적 영역의 운동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스포츠와 체육 사이의 관계는 또다른 측면에서 대별된다. 체육이 보다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보여지는데, 그 차이는 '체육 뉴스'가 아니라 '스포츠 뉴스'라는 사실에서 잘 나타난다. '운동'되어지는 대부분의 것이 체육이라면, '운동'되어지는 것들 중에 '보여지는' 측면이 강한 것이 스포츠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체육 뉴스'가 아닌 '스포츠 뉴스'라는 조어에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두 가지에서 얻을 수 있는 스포츠의 영역은 보다 전문적이고 직업적이며, 대중에게 보여지는 영역의 운동 혹은 체육의 일부라고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우리말에서의 스포츠는 말이다.

그래서 이 스포츠는 근대 이후의 산물이면서 국가주의의 유효적절한 수단으로서 기능한다. 근대 이전에서도 체육이 이런 기능을 담당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근대 이후에 그것이 체육이나 운동으로부터 더욱 분화되면서 '스포츠'로서의 보다 강력한 영역을 구축했다는 의미에서 이것은 근대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진보적 지식인들로부터 스포츠는 비판받아 왔다. 3S 정책으로서 대중을 선동하고 현혹하는데 이용된다는 것이다.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현대에서 스포츠의 영역은 더욱 굳건해지고 그 영향력을 지대하게 확장해왔다. 이것은 스포츠가 3S 정책의 하나로서만이 아닌 그 어떤 무엇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근거이지 않을까? 여기 그 또 다른 무엇을 증거하는 한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신윤동욱이다.

신윤동욱이란 이름을 몇 번은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 이름을 어떻게 해서 듣게 되었는지는 지금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도 '디워' 논란에서 연유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하는데, 그것도 확실치는 않다. 하여튼 신윤동욱은 『한겨레21』 문화부 기자로 그간 스포츠 부분을 담당해왔다. 그는 오래전부터 스포츠와의 인연을 뒤늦게 되돌아보며 스포츠 칼럼을 풀어나갔고 드디어 그것을 모아 이 책 『스포츠 키드의 추억』을 내어놓은 것이다.

   
    태극기에 갇힌 스포츠, 그것은 『한겨레21』에 연재했던 「스포츠 일러스트」의 주요한 주제였다. 거꾸로 비추니 부끄럽기도 하다. 스포츠를 이렇게 애국주의 프리즘으로 보았던 것은, 뒤집어 보면 내가 스포츠를 즐기는 방식이 애국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뜻도 된다. 하여튼, 한국에서 그래도 정치적으로 올바르려고 하는 사람에게, 스포츠 보기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은 여전히 가벼운 커밍아웃이다. 이제는 스포츠를 인민의 아편으로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여전히 '스포츠를 좋아해?'란 질문에 의아해하는 분위기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6~7쪽)  
   

그에게 스포츠를 좋아한다는 사실의 고백은 아직 '커밍아웃'해야 할 것의 성질이다. 여전히 스포츠에 대한 어떤 경박함의 인식이 남아 있다는 얘기다. 적어도 이 사회의 지식인입네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이야기들 속에는 다분히 좌파스러운 부분이 많이 담겨있다. 스포츠를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좌파적이라는 사실에서 그가 스포츠를 좋아한다는 고백은 여전히 '커밍아웃'의 대상일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좀 다르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어차피 스포츠 보기에 중독된 인생, 태극마크에 대한 집착은 되도록 버리고 스포츠를 보면서 인생도 느끼고 세상도 생각하자는 뜻"(7~8쪽)에서 이 책을 엮었다고 말이다.

"스포츠를 보면서 인생도 느끼고 세상도 생각하자"는 좋은 뜻에서 대부분 스포츠를 보지만, 그 스포츠를 봄으로서 느끼는 인생이나 세상은 다분히 경쟁적이고 약육강식적인 단면들이 대부분이어서 문제이긴 하다. 그러나 그것은 스포츠를 전하는 주체, 곧 이 사회의 지배계극이 스포츠에 담아내고자 하는 부분들만을 전하고 있는 것일수도 있다. 이 책이 다루는 "스포츠중계에, 스포츠뉴스에는 제대로 나오지 않는 얘기"는 보다 넓은 시각에서 스포츠를 봄으로써 스포츠에 담긴 진정한 인생의 의미나 세상의 이면들을 엿보자는 것일테다. 하여튼 어느 시인이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라고 했지만 신윤동욱을 키운 것은 팔할, 아니 그 이상이 스포츠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만 같다.

스포츠는 그를 어떻게 키웠을까? 그의 인생에 있어서 스포츠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스스로를 '스포츠 키드'라고 말하는 그의 스포츠의 추억을 무엇일까? 우리가 이 책을 따라 읽으면서 공감할 부분이 무척이나 많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아마도 우리 모두가 그와 함께 '스포츠 키드'이기 때문이다. "나는 농구대잔치의 마지막 팬클럽이다. 내 인생에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바로 그 시절이다. 내 인생에 그토록 순수한 몰입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15쪽)라고 말하는 신윤동욱처럼은 아니지만 우리가 추억하는 한때의 시절에 어느 하나의 스포츠가 있는 것은 대다수일 것이다.

이 책은 다만 스포츠에 얽힌 추억을 주구장창 나열하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 스포츠에 담긴 다양한 이면들 속에서 그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들도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간혹 이런 서술을 보자. '나는 무조건 오래 뛰는 선수가 좋다. 오래 뛰는 언니들은 더 좋다. 즐기지 않으면 오래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맨날 맞고 한다면 오래 못한다. 언니들의 긴 선수 생명은 스포츠의 민주화를 상징한다."(24쪽) 우리나라 핸드볼팀의 언니, 혹은 아줌마 선수들을 보고 한 얘기다. 우리 사회의 스포츠에 담긴 어두운 이면들이 무척이나 많음을 우리는 이 책에서도 제법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체격 좋고, 얼굴 좋고, 스타일 좋은 청소년 대표팀이 좋다. '본 투 비'로다가, 애국심과 적당히 거리두기를 하는 그들의 태도는 더 좋다. 조국에 대한 비장미가 없으니까 상대에 대한 비정함도 없다. 내가 나카타에 매료됐던 바로 그 이유로, 청소년 대표팀에 매혹 됐다. 나는 근성 없는 한국 축구가 좋다.
  이제 그럴 때도 됐다.(30쪽)

 
   

우리 스포츠에서의 애국주의와 국가주의는 참 씁쓸하기만 하다.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이 어쩌다 일본에 지기라도 하면 치욕이니 어쩌니, 반면에 이기면 '도쿄 대첩'이니 하면서 얼토당토 않게 국가와 민족을 갖다 붙인다. 이 지지리 못난 궁상에서 이제는 벗어나 "애국심과 적당히 거리두기를 하는" 스포츠를 나 또한 보고싶다. "아버지 같은 명감독에 잘 따르는 여자 선수들이라는 '가부장 시나리오'가 완성된다. 유사 가부장에 유사 부녀 관계다. 한국 산업화의 눈물겨운 발전 모델과 유사하다."(58쪽)는 지적도 우리 스포츠가 여전히 품고 있는 문제들이다. 이런 우리 스포츠의 어두운 면들을 이 책은 곳곳에서 지적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이 단순한 스포츠 타령이 아니라는 얘기가 된다.

   
    빌 생클리 리버풀 전 감독은 이런 '명언'을 남겼다. "어떤 사람들은 축구를 생사가 걸린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태도에 실망을 감출 수 없다. 축구는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다."
  축구를 생사의 문제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팬들에 의해, 축구 선수들의 생사가 위협당하고 있다. 축구의 역사는 '광기의 역사'이기도 하다.(78~9쪽)
 
   

비단 축구에서만은 아닐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 스포츠에 생사 이상을 걸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누구하나 스포츠에 어느 정도 걸지 않은 사람은 드문 것도 사실이다.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4강에 진출하는 날, 나는 군생활을 걸기도 했다. 무슨 말이고 하니, 당시 스페인과의 경기 중 나는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다. 위병소 옆에 마련된 면회실의 텔레비전을 몰래 틀어놓고 중계를 관전하느라 여넘이 없었다. 그때는 누가 오건 말건 축구가 중요했었더랬다. 우스갯소리지만 우리는 흔하지 않는 귀중한 것들을 스포츠를 위해 간혹 희생하고 살아가기도 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책은 그러니까 이런 것들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스포츠에 담긴, 위에서 언급한 어두운 이면들과 함께 왜 이렇게 많은 것들을 스포츠에 걸고 살아가는가 하는 그 이유들을 엿보기도 하고, 정말이지 인생의 축소판같은 스포츠의 장면 곳곳에서 어쩔 수 없는 감동과 추억을 애틋하게 되돌아보기도 하고 있는 것이다. 신윤동욱에게는 농구가 무엇보다도 깊은 추억의 스포츠였듯이, 우리들 모두에게는 어떤 애틋한 스포츠 하나쯤은 갖고 있기 마련이고, 스포츠 스타에 대한 열광과 감동 하나씩쯤은 있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들이라면 이 책에서 저자와 함께 '스포츠 키드'였음을 자인하지 않을까 한다.

길게 쓸 리뷰가 아님에도 쓸데없이 길어졌다. 이 밖에도 세계 여러 곳에서 벌어진 스포츠 장면들을 이 책은 담아내고 있다. 이전의 기억들도 되새겨볼 수 있고, 우리가 몰랐던 스포츠의 이면들도 이 책을 통해 들여다보는 재미가 농후하다. 저자의 필치도 재치가 넘친다. 간혹 저자의 성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드는 '오빠'니 '언니'니 하는 언설이 있기도 하지만 말이다. 불악무도한 전장군의 무식한 전술에 전도된 듯한 혐오감이 없지않지만, 대한민국에 한번쯤 '스포츠 키드' 아니었던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쩌면 우리모두는 '스포츠 키드' 아닐까? 이 사실에 자못 분개만 할 것은 아닐 것같다. 적어도 이 책을 읽고나서는 말이다. 이 책은 떳떳하게 나도 '스포츠 키드'였음을 커밍하웃하게 해 주는 충분한 응원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앞서 스포츠가 가지는 의미를 나름 짚어보았지만, 여전히 스포츠는 3S 정책으로서의 일면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포츠 없이는 살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살아간다. 저자가 마지막 장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스포츠를 즐기되 "일주일에 3번 이상, 하루 30분 운동"(269쪽)도 함께 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하지 싶다. 그러니까 '스포츠=운동'까지는 아니더라도 스포츠는 스포츠대로 운동은 운동대로 어느하나 치우치지 않는 생활건강이 필수적이지 않을까? 한가지 더 붙이자면, 저자는 명확히 언급하지 않지만, 스포츠를 보는 맹목적 시선을 거두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 책을 통해서 그런 스포츠를 보는 보다 비판적 시선을 배울 수도 있다. 저자 신윤동욱에게서 말이다. 재밌게 읽히면서도 뼈가 있는 그런 책이라고 한다면 너무 극찬이겠지만, 약간 물렁뼈는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런 물렁뼈 하나쯤은 가지고들 계시라.

트집 : 이책은 편집에 약간 문제가 있다. 33쪽에 "1985년 훌리건의 난동으로 39명이 숨진 헤이젤 참사(32쪽 사진)"라고 했는데, 32쪽에는 아무런 사진도 없다. 그 사진은 뒷장 34쪽 상단부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또 있다. 131쪽 "34살 동갑내기 오모트(124쪽 사진)"를 보려면 124쪽으로 가면 안 된다. 거기엔 워메인지, 에토오인지 아님 드로그바인지 모를 축구선수 사진이 있을 뿐이다. 가려면 132쪽으로 가야할듯 싶다. 거기에는 노장 스키선수로 보이는 사진이 있다. 이런 실수는 좀 이해하기 어렵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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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9-27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윤동욱 기자가 이런 책도 냈군요. 이 기자분 한겨레21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기사 전담했던(?) 분이랍니다. 얼마전 책도 냈는데, 그 책이 이 책보다 먼저 나온거 같네...

멜기세덱 2007-09-27 16:01   좋아요 0 | URL
오늘 하루종일 답답해서 혼났어요. 우리학교는 이상하게 종종 알라딘이 안 될때가 있어가지구....ㅋㅋ
아 그랬었군요. 이름을 많이 들어봤다 했는데, 얼마전에 칼럼집을 낸 것이 있더군요. 그것도 함 읽어봐야겠군...추석 잘 보내셨죠?

비로그인 2007-09-27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나도 거의 다 읽었는데 흑흑... 멜기님 리뷰에 밀려서 난 리뷰도 못 올리겄네 ㅠㅠ...
넘 잘쓰셨다... 추천!

멜기세덱 2007-09-27 16:02   좋아요 0 | URL
헉!
전 체셔님이 리뷰 쓰실까봐 걱정이에요. 어째, 뭐만 쓰면 그렇게 인기가 폭발이신지....저 막 후달려요....ㅋㅋㅋ

2007-09-27 14: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멜기세덱 2007-09-27 16:03   좋아요 0 | URL
아 그게 그거군요. 좋은 정보 감사...
저는 추석을 그럭저럭 외롭게 잘 보냈어요....ㅎㅎㅎ

심술 2007-09-27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따금 알라딘에 안 들어가져요. 동병상련하는 분이 있으니 왠지 덜 외롭네요.

멜기세덱 2007-09-27 21:40   좋아요 0 | URL
제가 있는 곳은 대학교인데요, 여기 전체 망에 문제가 있는거 같아요. 제 컴퓨터가 안 들어가지면, 다른 컴퓨터도 안 들어가지더라구요....이상하게시리..
집 컴에는 아~무 이상이 없는데 말이에요....
도대체가 답답해서리....

잃어버린우산 2007-09-27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주문한 책인데, 리뷰 잘 읽었습니다.

멜기세덱 2007-09-27 21:40   좋아요 0 | URL
재밌게 읽으시길 바라요....ㅎㅎ

프레이야 2007-09-27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그인 안 하고 들어왔는데 추천하려고 로그인 했네요.^^

멜기세덱 2007-09-27 21:41   좋아요 0 | URL
담부턴 로그인 하고 들어오세요. 추천 안하려다가도 추천하시게....ㅋㅋ

시비돌이 2007-09-28 0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포츠가 나쁜 양부모라는 얘기군요. ㅋㅋ

멜기세덱 2007-09-28 09:41   좋아요 0 | URL
나쁜 양부모라기보다는,
친부몬데, 알고보니 이 부모가 입양아였다거나 혼혈이었다 정도요...ㅋㅋ
그렇다고 부모를 버릴 순 없다...뭐 이런거죠....ㅋㅋ

시비돌이 2007-09-28 09:43   좋아요 0 | URL
아, 그런거구나, 꼼꼼히 읽지 않고 단 댓글이라 금새 표시하네요. 어쨌든 나쁜 양부모도 버리긴 힘들잖아요. ㅋㅋ

twinpix 2007-09-30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굉장히 잘 쓰셨네요. 서평단 도서로 받아서 리뷰 써야 하는데, 이 리뷰보니 감탄만 나옵니다. 'ㅁ'

멜기세덱 2007-09-30 22:51   좋아요 0 | URL
잘 쓰긴요 무슨...좋게 봐주셔서 그렇죠...ㅎㅎ
근데, 감탄만 나오시는게 좋아요. 토까지 나오면 지지잖아요...ㅎㅎ
 

오늘부터 추석 연휴가 시작된다고 봐야겠죠? 다들 명절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시기 바라겠습니다. 저는 이번 추석에도 방콕할 가능성이 농후하답니다. 핑계는 공부한다는 거죠.ㅎㅎ 작년에도 집에 내려가지 않았는데, 제일 큰 걱정은 밥 먹는 거랍니다. 근처 식당들이 죄다 문을 닫더라구요.

지난 주 목요일부터 시작한 <한문교양강좌>를 이번 주에도 들었는데, 이번에 새롭게 다가온 구절이 있어, 여기에 또 소개를 하게 됩니다. 어떤 구절이냐고요? 함께 음미해 보시겠습니까?

   
 

與善人居(여선인고), 如入芝蘭之室(여입지란지실),

久而不聞其香(구이불문기향), 卽與之化矣(즉여지화의).

선한 사람과 더불어 사는 것은
지초와 난초가 있는 방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서
오래 있으면 향기를 맡지 않아도 같이 동화된다.

                                                           -『孔子家語』-

 
   

이 구절은 『공자가어』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선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선해진다는 것이죠.

알라딘 서재지기들이 있는 곳, 바로 이 곳이 "芝蘭之室" 아닐까요? 이 곳 알라딘 서재에서는 서재지기들의 선한 향기가 가득한 곳으로 느끼는 건, 다만 저 뿐일런지요?

이곳 알라딘의 많은 알라디너를 보면서, 그들의 선함과 뛰어난 지성과 재치와 정감과 기타 등등의 아름다움을 봅니다. 공자님은 제자들에게 "어진 사람을 가까이하라."하라며 '親仁(친인)'을 말씀하셨다지요? 그 親仁의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알라딘 서재에 있지 않나합니다.

알라딘의 많은 지인들을 통해 그들의 지성과 감성의 향기를 맡으며, 저도 자연스레 (무디긴 하지만) 동화되어 가고 있음을 느끼며, 감사드립니다. 언젠가는 저도 같은 향기를 뿜어내어 다른 사람들을 동화시킬 경지에 달할 수 있을 거라는 상상을 감히 해보게 됩니다.

이 곳 알라딘의 "芝蘭之室"에서 우리 오래도록 함께 아름다운 향기로 서로를 동화시키며, 동화받으며, 그렇게 살아가요? 떠나신다는 말은 저를 아프게 한답니다.ㅎㅎ

올 추석, 저는 이곳 "芝蘭之室"에서 더욱 "與之化"하겠습니다. 다들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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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21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두 집에서 방콕-

멜기세덱 2007-09-21 20:21   좋아요 0 | URL
놀러 갈까요? ㅋㅋㅋ

비로그인 2007-09-21 20:44   좋아요 0 | URL
으음... 추석 임시 금촌 캠프라도? ㅎㅎㅎ

멜기세덱 2007-09-22 00:34   좋아요 0 | URL
앗! 금촌.
금촌, 그곳은? 안 좋은 추억이 있는데...ㅋㅋㅋ

라주미힌 2007-09-21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구절이네요...

멜기세덱 2007-09-21 20:21   좋아요 0 | URL
언제부턴가, 라주미힌님의 댓글이 하나둘 늘기 시작했어요...ㅋㅋ
기뻐요...ㅎㅎ

라주미힌 2007-09-21 21:55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 흥미가 별로 없었는데... 다시 생겼나봐요 ㅎㅎㅎ

멜기세덱 2007-09-22 00:33   좋아요 0 | URL
저 때문에(라고 말하지는 말아요.)? ㅋㅋㅋㅋ

마늘빵 2007-09-21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집구석 프로젝트.

멜기세덱 2007-09-21 20:21   좋아요 0 | URL
그래도 그대는 가족과 함께 아닌가요?
전 혼자라구요...ㅠㅠ;;

마노아 2007-09-21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집구석은 맞는데 조카들과 함께 데굴이에요. 멜기님 추석 연휴 잘 지내셔용^^

멜기세덱 2007-09-21 20:22   좋아요 0 | URL
저는 빡세게 공부할게요....ㅋㅋ

2007-09-21 1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멜기세덱 2007-09-21 20:25   좋아요 0 | URL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
근데,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은 "다 이루었다."이고요, 이 "엘리 엘리 ~"는 우리말로 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뜻인데요.... 음~~
하여간 추석 즐겁게 보내세요....ㅎㅎ

순오기 2007-09-21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싱글들은 방콕인가요?
저는 미국인 친구 데리고 목포 큰댁으로 갑니다~~~~
"芝蘭之室" 마음에 새깁니다.
님은"~향기를 뿜어내어 다른 사람들을 동화시킬 경지"에 이르셨다고 사료되옵니다~

멜기세덱 2007-09-21 20:26   좋아요 0 | URL
커플들은 그럼 태국?

Mephistopheles 2007-09-21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善人- 이 한자 두글자에 마구 오금이 저리며 뒤틀리는 메피스토 1人

멜기세덱 2007-09-22 00:36   좋아요 0 | URL
메피스토님께 제가 동화되어도 행복하겠어요....ㅎㅎㅎ

프레이야 2007-09-21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멜기님 혼자 명절 보내시는 거에요? 어째 송편이라도 좀 드리고 싶네요..
시험공부 하시며 보내시겠군요. 나름 잘 보내시기 바래요^^

멜기세덱 2007-09-22 00:37   좋아요 0 | URL
주소 알려드릴까요? ㅋㅋㅋㅋ

프레이야 2007-09-22 12:30   좋아요 0 | URL
님, 진짜 주소 좀 알려주세요^^ 속닥속닥~~

2007-09-21 2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멜기세덱 2007-09-22 00:38   좋아요 0 | URL
설마, 굶어 죽기야 하겠어요? ㅎㅎㅎ
정말 식당문 다 닫았으면 전화드릴게요....ㅋㅋㅋ

비로그인 2007-09-22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 한 표.
좋은, 그리고 적절한 글이군요.^^

Jade 2007-09-26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멜기님도 혼자 사셨어요? 몰랐네 - 혼자사시는데 책이 천권이면....와 부러워 *_*
 

秋夜雨中(추야우중)

                                -최치원

秋風唯苦吟(추풍유고음)  가을바람에 괴로이 읊나니

世路少知音(세로소지음)  세상엔 날 알아주는 이 없네

窓外三更雨(창외삼경우)  창밖엔 삼경의 빗소리

燈前萬里心(등전만리심)  등불 앞엔 만리로 내닫는 이 마음

 

최치원의 절창이다. 저작 시기에 따라 해석이 약간 달라지기는 하나, 그에 상관없이 절절히 울리기는 다름없다.

지음(知音)이란 말은 잘 아는 고사를 담고 있다. 이 세상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진정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세상이 다 아는 천재 최치원, 그러나 세상은 그의 뜻을 알아주지 않는다. 당대의 천재가 그러한데, 이 하찮은 둔재를 이 세상 어느 누가 알아주리오.

오늘 밤도 비는 내리고, 내 마음은 또 어데 만리(萬里)를 내달을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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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7-09-20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가을밤 비는 내리고' 정말 멋집니다~~~~
지음의 고사를 생각하며, 내겐 그런 사람이 있는가 헤아립니다~~

멜기세덱 2007-09-20 01:31   좋아요 0 | URL
아~~~ 순오기님은 옆지기가 계시잖아요 ㅠㅠ;;

웽스북스 2007-09-20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 딱 오늘밤의 시네요 ^^
방황하는 마음 붙잡고 얼른 주무세요 (라고 말하면서 못자고 있는 저는 또 뭐랍니까 ;)

멜기세덱 2007-09-20 23:27   좋아요 0 | URL
오늘밤도에요.ㅎㅎㅎ 비가 오는데, 어떻게 자요? ㅎㅎㅎ

2007-09-20 1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멜기세덱 2007-09-20 23:27   좋아요 0 | URL
이 이게 국어책에 나왔었나요? 난 왜 몰랐지....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