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대한민국, 두 개의 현실 - 미국의 식민지 대한민국, 10 vs 90의 소통할 수 없는 현실
지승호 지음, 박노자 외 / 시대의창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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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 초엔가, 서울 교보문고엘 심심풀이차 왕림한 적이 있었더랬다. 한 바퀴를 풀코스로 도는 데만도 한 시간을 족히 잡아먹고도 남음이 있으니, 이는 내 심심파적을 여한없이 달래주기에 딱 알맞은 놀이다. 여기서 가장 먼저 대면하는 곳은 신간서적 코너다. 이날도 신간들을 어영부영 살펴보던 차에 눈에 확들어오는 책이 있었더랬다. 제목이 인상적이었다. 『禁止를 금지하라』, 멋있는 제목이라고 해야할까? 왠지 단순히 멋지다고만 할 수 없는 어떤 포스를 담고 있는 것같았다. '무슨 책이지?'란 의문이 들어 집어들었다. 여러 사람들의 얼굴이 새겨있었다. 딱 봐도 알만한 사람들말이다. 박원순, 조정래, 마광수를 비롯 <PD수첩>의 PD들. 이 사람들이 왜 이리 한데 모여있을까 하는 궁금증은 '지승호의 열 번째 인터뷰집'이란 안내로 이내 풀렸다. 그런데 지승호? 과연 못 들어본 이름이다. 탓하자면 나의 귀가 과문한 책임이지만, 지승호란 이름은 못 들어본 대로 지나쳐도 좋았다. 흥미를 끄는 책 제목과 관심을 끄는 인터뷰이들이 충만했으니 말이다.

집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 대강 목차정도를 훑어보고는 책장 한켠에 모셔져 있었다. 인연이 아직 아니었던 것일까? 아직 순서가 오지 않아서였던 것일까? 순서가 아직 안 왔다는 것은 그 전에도 사 놓은 책들, 그러니까 읽어주어야 할 책들의 목록이 이미 줄줄이 예약되어 있었다는 것이고, 인연이 아직 아니었다는 것은 아마도 지승호란 인터뷰어와의 그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 그 예약된 목록들을 다 소화해 낸 것도 아닌데, 인터뷰어 지승호와의 인연은 얼렁뚱땅 시작해 버리고 말았다. 그러니까 이런 걸 인연이라고 하는 것이지 싶다. 어쩌면 그와의 인연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비판적 지성인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든가, 『마주치다 눈뜨다』, 『7인 7색』이란 인터뷰집이 이미 내 눈에 걸리기만 고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지승호 때문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그 쟁쟁한 인터뷰이들 때문에, 나는 인터뷰어 지승호와의 인연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피할 수 없고 말았다.

최근에 나온 지승호의 인터뷰집 『하나의 대한민국, 두 개의 현실』은 그 주범이고 말았다. 그 주범은 박노자, 한홍구, 진중권, 손석춘을 '납치해 심문'하고 나를 협박하고 있었으니 내가 어찌 피해갈 수 있었겠는가? 박노자나 한홍구는 내가 꾸준히 구해 읽는 1순위 저자들이고, 진중권은 최근 관심을 갖고 있던 이고, 손석춘은 얼마 전 읽은 그의 책 『과격하고 서툰 사랑고백』때문에 호감을 갖고 있던 이다. 결국 지승호는 알게 모르게 내 성향을 정확히 파악하고 피할 수 없는 유혹의 손길을, 아니 유혹의 그물망으로 나를 덮쳐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지승호의 이 협박과 유혹의 구렁텅이에 풍덩 빠져버린 것에 그 어떤 불만이나 피해보상을 요고하고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가령 "대학등록금 문제는 국민적 문제라고 볼 수 있는데, 문제는 학생들이 학교가 자신을 현금지급기로 취급해온 것을 더 이상 당연시하지 않아야 한다는 겁니다."(30쪽), "이것이 더 이상 투자라기보다는 자본에 돈을 빼앗기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거나, 무료로 공부를 한다는 것이 나의 천부인권이라는 의식을 가져야 되는데, 우리는 아직까지 자본하고 거래를 해서 뭘 얻을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습니다."(31쪽)라는 박노자의 날카로운 지적을 속시원히 듣게 해준 데 대해서는 감사해야 하는 것이 지당하기만 하다.

한홍구는 어떤가? "피폭당해 죽은 한국 사람이 히로시마에 3만, 나가사키 1만, 모두 4만 명이 넘어요. 그런데 우리 역사책에서는 이걸 안 가르칩니다. 20세기 우리 역사가 정말 울퉁불퉁했다지만 하루에 3만 명이 죽은 날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폭이 떨어지고 나서 4만 명이 죽었는데 이걸 역사 시간에 안 가르친다니까요. 왜냐하면 수십 년 동안 미군의 핵무기가 우리한테 있었잖습니까? 그래서 핵무기가 이렇게 나쁜 거라는 얘기를 하면 안 되는 거죠. 아직도 미국의 핵우산 속에 있다는 걸 다행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많고요. 한반도의 핵 문제를 가지고 얘기하려면 이런 문제를 얘기해야죠."(193쪽)라는 말씀에 가만히 귀기울이게 된다. 이 아니 감사한 일 아닌가?

진중권의 인터뷰에서는 또한 실망시키는 않는 차갑도록 유쾌한 언설이 있다. "사람들이 미래를 못 보니까 자꾸 과거를 보는 거예요. 미래에 대한 프로젝트가 없으니까 기껏 정치권에서 나온 유일한 프로젝트가 운하를 파겠다는 거잖아요. 독일에도 운하가 있는데요. 석탄 나르는 것 외에는 다른 용도로 사용되지 않아요. 그런데 요즘 같은 시대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석탄 나를 일은 없잖아요."(299쪽)라거나 "인구의 99퍼센트가 영어 해서 뭐해요. 자기 직업상 필요해서 하는 거라면 좋은데, 그게 아니잖아요. 재는 거잖아요, 성적으로 자르는 거. 일종의 과거 시험처럼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걸 하는 거죠. … 사람들이 영어를 유창하게 해도 무식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돼요. 그런데 그런 생각을 안 하잖아요. 발음 막 굴리는 무식한 애들 있잖아요.(웃음)"(303쪽)에서는 웃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이 외에도 그간 내 관심을 끌지 못했던 지식인들에 대해 접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는 것은 또한 귀한 이 책의 미덕이다. 홍세화, 김규항, 심상정이 그들이다. 막연했던 심상성의 이미지를 얼마간이라도 좋은 내용으로 채워넣을 수 있었고, 내 독서목록에 홍세화나 김규항의 책들을 집어넣어야만 하게 만들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구구절절이 인터뷰이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밑줄 그어가면서 읽는 내내, 참 만족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인터뷰만의 모자람에서 오는 갈증을 또다른 것으로 채우게끔하는 그런 달콤한 유혹 혹은 맛보기로서 말이다.

인터뷰가 본시 영어인데, 영문으로는 interview라고 쓴다. 이게 'inter-'와 'view'의 합성이다. 'inter-'는 상호(相互)를 의미하고 'view'는 '보다'라는 뜻이 된다. 합쳐보면 '서로 보다'라는 뜻이 되는데, 그렇게 보면 인터뷰는 어원적으로 '서로 보는' 행위를 전제하는 것이 된다. 서로 보며 무엇을 하겠는가? 서로 쳐다보면서 대화하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때론 상대의 말씀을 경청해 듣는 것 아니겠는가? 근래에 우리가 인터뷰라고 하면 기자가 어떤 특정인을 상대로 무언가를 캐묻는다던지, 대학입시나 취업시험에서의 면접 등을 떠올리게 된다. 이는 대면하여 물음으로써 상대의 그 어떤 것을 알아내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찾아보니 'view'에는 '조사하다'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 조사한다는 것은 어떤 것을 살펴 알아내는 것이다. 알고싶은 것을 밝혀 끄집어 내는 것 말이다.

이 인터뷰집도 본시 그런 것이지 싶다. 무언가를 끄집어 알려내는 것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인터뷰집의 생명은 인터뷰어가 누구냐에 달려 있다. 이 책의 인터뷰어가 누구인지를 다시 살펴보게 되는 것은 별 일이 아니다. 내가 듣고 싶었던 박노자의 이야기, 내가 들을 수 없었던 한홍구의 또다른 이야기, 내가 알지 못했던 진중권의 재치와 위트 혹은 독설, 그리고 한편으론 그동안 관심두지 않았던 또다른 지식인들에게 흥미를 가지게 만드는 것, 이런 것들이 이 인터뷰집에 담겨있었다. 이것만으로도 이 인터뷰집의 인터뷰어를 다시 보게 만드는 무언가로써 충분하지 않은가? 지승호. 그는 '무엇을 말하게 할 것인가?'를 항상 심도있게 고민하고, 결국은 그것을 말하게 하는 능력을 지녔음에 틀림없다. 그와의 인연을 이렇게 흥미롭게 시작하는 것은 새로운 즐거움이고, 또한 거대한 기대를 품게 만드는 것이며, 피할 수 없는 운명에 순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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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7-10-20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이 책 구입했어요.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금지하라는 '조정래'편만 읽었는데, 요 리뷰 읽으니 빨리 봐야겠단 생각이 드네요.

멜기세덱 2007-10-20 19:46   좋아요 0 | URL
저도 금지를 금지하라 빨리 읽어봐야 되는뎅...ㅎㅎ 특히 조정래 선생 편이요..ㅋㅋ

2007-10-20 15: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멜기세덱 2007-10-20 19:46   좋아요 0 | URL
저도 잘 알고 있는 걸요..ㅎㅎ
 

漢字의 올바른 인식을 위하여

安秉禧(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우리가 가용하는 漢字를 '중국글자'라 부르는 사람이 간혹 있다. 우리나라 글자인 한글과 대비하려는 뜻이 숨겨져 있다. 나아가 한자를 混用하자는 사람을 중국에 빌붙는 非愛國者로 치부하려는 含意가 내포된 용어이다. 그러나 나라 사이의 문물교류를 생각한다면, 더욱이 우리나라 한자의 특수성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이 용어가 적절하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우리 현대생활의 대표적인 의식주를 비롯하여 그 밖의 문물제도에 대하여 그 原籍의 나라 이름으로 부른다면 큰 망발이 될 것이다. 한자를 중국글자라고 하는 일도 똑같이 망발에 속한다.

중국글자라 하지 못하는 근거는 우리나라 한자 안에 존재한다. 한자의 三要素에 形音義가 있다. 可視的인 글자의 꼴을 字形, 글자가 나타내는 發音을 字音, 글자의 뜻을 字義라 하는데, 모든 한자는 이 三要素를 갖추고 있다. 表音文字가 形音의 두 要素만을 가진 것과 대립된다. 이들 三要素를 우리나라, 중국과 일본에서 사용되는 한자에서 살피면 공통되는 점도 있지만 차이나는 것도 있다. 字形과 字義는 대체로 공통된다. 오늘날 標準字體가 中國에서는 簡體字로 되고 日本에서는 많은 略字로 되어 있으나, 간체자나 略字의 기본은 이른바 繁體字나 正字라고 하는 우리나라의 標準字體이다. 따라서 字形의 공통성은 인정된다. 字義도 똑같다. 나라에 따른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의 한자는 세 나라에서 같은 뜻으로 사용된다. 그런데 字音은 세 나라가 확연히 다르다. 일찍부터 언급되는 사실이지만 '韓國'을 '한국'으로 발음하는 일은 우리나라에서만 허용된다. 극히 일부 한자의 발음이 같을 수는 있으나 우리나라 한자의 거의 대부분은 독특한 발음을 지닌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나라 한자를 중국글자로 부르지 못하는 근거가 된다.

우리나라 한자학습은 《千字文》과 같은 蒙學書로 행해져 왔다. 책을 펼치면 大字로 된 한자가 있다. 韓石峯과 같은 名筆이 쓴 한자로 字形을 익히면서 習字도 하고, 그 아래 한글로 된 '하늘 천'과 같이 한자의 뜻과 발음을 공부한다. 그리하여 '天'이란 한자의 形音義를 익히는 것이다. 《千字文》은 16세기 후반에 비로소 나타나지만 이러한 학습법은 훨씬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자료가 없으나 아마도 한글 창제 훨씬 이전부터 있은 것으로 추측된다. 字形을 보이지 못하는 한글로나 口頭로 한자를 가리키게 되는 경우에 '뜻+발음'이란 묶음이 한자의 이름으로 사용된 역사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15세기 후반의 醫學書諺解에 《救急方》과 《救急簡易方》이 있다. 前者는 國漢混用이나 後者는 한글만으로 번역되었다. 두 책에는 환자의 혓바닥에 漢字 '鬼'를 쓰라는 方文이 똑같이 수록되었는데, 前者는 '혀에 鬼ㅅ字를 쓰고'(권 상, 16)로 되었으나 後者는 '혀 위에 귓것 귀짜를 쓰고'(권 1, 49)로 되어 대조적이다. 前者는 國漢混用으로 '鬼'의 字形을 보일 수 있으나 後者는 字形을 보일 수 없어서 '귓것+귀'(여기의 '귓것'은 雜鬼란 뜻이다)란 한자의 이름을 보인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口頭로 말할 경우에도 같다. 필자도 어렸을 적에 이름의 글자를 묻는 어른 앞에서 같은 묶음의 이름으로 대답한 경험이 있다. 이 묶음은 오랜 학습에서 굳어진 한자의 이름이다. 그런데 이 '뜻+발음'이란 이 이름은 우리나라 한자만이 가진 특징이다. 이 이름으로 부르는 글자가 어떻게 중국글자인가?

더욱 중요한 사실은 우리나라 한자 중에는 우리나라에서만 사용되거나 독특한 뜻으로 사용되는 글자가 있다. 이른바 韓國俗字가 존재한다. 일본에도 그 나름의 俗字가 있으나 전혀 다르다. 妹, 田沓, 垈地, 媤家, 黑太' 등등의 ', 沓, 垈, 媤, 太'가 우리의 俗字다. 이러한 한자는 古文書는 말할 것도 없고 實錄과 같은 史書에도 빈번하게 사용되어 있다. 이들 俗字까지 통틀어서 중국글자라 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이들 한자가 우리나라의 글자라 할 수 없다면, 우리나라의 특수한 한자라 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들로 우리나라 한자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된다.

그러나 동양 세 나라의 한자는 공통되는 성격이 많다. 서구문물의 東漸으로 일본에서 일어난 한자폐지론이 다른 나라로 번져 간 사실이 그것을 말한다. 한자의 부정적인 측면이 사실 이상으로 강조된 점까지 같다. 그러나 한자가 이들 세 나라의 문화 발전에 남긴 불후의 功績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수한 중국 고전이나 우리 고전을 들지 않더라도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된 《朝鮮王朝實錄》과 《訓民正音(解例本)》(한글이 아니라 한글을 한문으로 설명한 책)이 우리에게 문화민족으로서의 긍지를 가지게 한 사실로써 충분히 인정된다.

그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큰 효용을 가진 문자다. 한자는 경제대국인 일본과 중국의 常用文字이고, 그 언어에는 우리와 공통되는 많은 漢字語가 있다. 이들 한자와 한자어는 세 나라 사이의 문화교류나 經濟交易에서 사회간접자본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지난 연말 경제5단체 대표가 각 단체 新入社員 채용에서 한자시험을 치르기로 하고 회원사의 채용 시험에도 이를 권장하기로 하였다는 보도는 바로 그 기능을 인정한 일이다. 이러한 사실에서도 우리는 한자에 대한 올바른 認識이 있어야 할 것이다. 편협한 애국주의는 우리의 시야를 가리는 帳幕일 수 있다. 역사의 이해를 위할 뿐 아니라 미래의 발전을 위하여도 止揚되어야 할 태도이다.

<전통문화> 2007년 가을호, 9~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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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 2007-10-20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멜기님 이걸 일일이 타자치신 거예요?

멜기세덱 2007-10-20 19:45   좋아요 0 | URL
이정도는 약과에요..ㅎㅎ 예전엔 모든 한자어를 죄다 한자로 바꿔서 쳤거든요..ㅎㅎ

심술 2007-10-20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퍼맨이십니다.

누에 2007-12-30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漢字를 살려 쓰자는 意見엔 同意
 
우리말의 탄생 - 최초의 국어사전 만들기 50년의 역사
최경봉 지음 / 책과함께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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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반포 561주년을 기념하는 한글날이 며칠 전이었다. 5백여년 전에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이땅에 태어난 우리의 문자는 그 자체로 일대 사건이었다. 28개의 글자로 세상의 모든 소리들을 적어낼 수 있는 문자가 우리 손으로 탄생한 것이다. 음소문자에서 한층더 진화하여 자질문자의 탄생이었다. 과학적이며 논리적 체계로 가장 단순하고 간명하면서 그 소리의 가짓수는 풍부한 문자가 탄생한 것이다. 이전에도 우리에겐 말이 있었지만, 훈민정음의 탄생과 더불어 새로 태어남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500여년을 지내오면서 어느덧 전국민의 90% 이상이 문자생활을 영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세상의 어느 문자도 이렇게 단기간에 최강의 성능을 발휘하지는 못하였다. 한자를 보자. 기원전 2~3세기에 한반도에 전해졌다고 하지만, 수천년을 지내었어도 그 문자를 아는 사람은 30%에도 지나지 않았다. 로마자는 또한 어떠한가? 그 문자의 역사도 수천년이다. 그러면 그 글을 쓰고 읽을 수 있는 사람은 한글을 아는 이에 못미친다. 사실 한글의 전래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후 조선왕조 내내 미약하게나마 전달되었을 뿐 그 사용이 전폭적인 것은 아니었다. 언문, 반절이란 다소 저급스런 이름으로 불리우면 아녀자들의 규방에서나, 어린 아이들의 글놀이에서나 쓰여 왔을 뿐, 그 시대의 지배적 문자로 기능하지는 못하였다.

그런데 지금 이 문자가 전국민의 90% 이상에게 사용될 수 있었던 시간은 최근 100년 간의 일이지 싶다. 우리는 이것을 우리말의 제2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개화기말 제국열강의 위협속에 시달리던 시절, 일본 제국주의의 먹이감이 되어 강제 합방을 당하게 된 시 시절에, 이 반도의 지식인들은 저마다의 국민 계몽을 꿈꾸었다. 부국강병을 외치기도 하였도, 전 민족적 각성을 외쳤다. 그런 지식인들의 한편에서는 또다른 계몽과 각성의 일환으로 우리말 우리글을 정리정돈하는 일을 소중히 여긴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조선의 말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조선어사전을 편찬하고자 열망했던 것이다. 이로부터 우리말은 또한번 새롭게 탄생하게 되었다고, 그 당시의 사전편찬의 과정과 경위를 조사하여 밝힌 저자 최경봉은 말한다. 여기 이 책 『우리말의 탄생』을 읽고 나면, 어느새 저자의 그 말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말의 제2의 탄생. 그것은 어느 개인의 노력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나의 사전을 만든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그 당시 어떤 체계나 자료도 있지 않은 상태에서 한 나라의 말을 총체적으로 수집 정리한다는 것은 맨땅에 헤딩하는 것에 다름없다. 그러나 그들은 헤딩하기로 마음먹었다. 각계의 인사들 또한 우리말 사전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사전 편찬에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당대의 지식인들은 계파를 막론하고 이 사전의 발간을 후원했는데, 여기에는 최남선의 이름도 보인다. 주시경의 영향을 받은 그의 제자들이 모여 만든 조선어학회를 위시해서 우리말 사전 편찬을 위한 여러 노력들은 이루 말하기 힘들 정도의 매우 번거롭고 힘겨운 것들이었다.

각계의 후원과 동조가 있긴 했지만, 일제 강점하의 시기에서 위축될대로 위축된 우리말의 사전을 편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일제시기에 그 사전이 빛을 보지는 못했다. 일제의 억압에 의해 일제말기에는 사전 편찬에 치명적인 사건, 즉 조선어학회 사건이 일어나 사전 편찬에 각고에 노력을 다한 이윤재 선생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옥사를 하기까지에 이른다. 우여곡절의 사전 편찬 작업은 이런 사건으로 인하여 그 원고까지 잃어버리면서 모든 것이 숲으로 돌아가는 듯 보였지만, 해방과 함께 잃어버렸던 원고를 다시 찾으면서 결국은 그 사전이 해방후 빛을 보게된다. 사전은 총 6권으로 10여년에 걸친 작업끝에 완간되기에 이른 것이다.

왜 이런 피나는 노력을 그들은 했던 것일까? 그깟 사전이 무슨 소용이길래 이렇게도 많은 이들이 동참하고 죽음에까지 이르는 고통을 감수했던 것일까? 그것은 어떤 사명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세종대왕이 이름하여 '훈민정음'이라고 하였듯이, 이 당시의 지식은들도 우리말을 통한 조선 민중의 각성을 통해 다시금 잃어버린 민족과 조국을 되찾고자 하는 기반을 마련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것은 가히 우리말이 새롭게 태어나는 일이었다. 그것이 민족주의적이고 부르주아적이었던 일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끝끝내 그 시작을 함께한 이들이 그 사전의 탄생을 지켜보지 못했지만 대를 이어 결국은 빛을 발하게 된데에는 그들의 이런 정신과 사명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리라.

얼마전 금강산에서 남북의 지식인들이 통일 사전을 편찬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이는 어쩌면 우리말의 제3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은 아닐까? 저자가 이 통일사전을 간절히 바라는 것처럼, 우리에게 있어 남과 북, 그리고 해외동포들의 말과 글을 아우르는 이 사전은 또 한 번은 우리말의 탄생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반포 561돌을 지내면서 세종대왕의 위대한 유산인 한글은 그 자체로 가치있는 것임을 기억한다. 그러나 그 우리말, 우리글의 가치를 더욱 높인 것은 일제시기 우리말 사전에 각고의 노력을 아끼지 않은 이들이다. 그 노력은 아직 끝나서는 안된다. 통일 사전을 위하여, 우리말이 다시금 새롭게 태어날 날을 위하여, 우리 모두 최초의 국어사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그들의 정신을 되새김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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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高馬肥(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들 하지요. 가을입니다. 가을 중에서도 10월은 그 마지막 밤을 기억하게 하는 달이지요. 독서의 계절이라고도 부른답니다. 어데 계절이 따로 있어 책을 읽는 것이겠습니까마는, 오늘은 따사로운 햇살을 내려 받으며 서늘한 바람부는 벤치에 앉아 세상 모르고 책을 읽고 싶어지더군요. 그래서일까요?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는 것은.

책을 읽다보면 문득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한평생을 이렇게 여유 있고 한가하게 책이나 읽으면서 유유자적 보내고 싶다는. 무엇에 쫓기지 않고, 걱정 없이, 가는 세월을 벗 삼아서, 책 속의 글줄기들을 찬찬히 따라가고 싶다는 생각. 그러나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어질 수 없는 상상이겠지요?

陶淵明(도연명)의 「五柳先生傳(오류선생전)」에 이런 글귀가 있어 옮겨 봅니다.

   
 

閑靖少言(한정소언), 不慕榮利(불모영리),

 好讀書(호독서), 不求甚解(불구심해).

한가하고 편안하게 생활하며
말을 줄이고,
명예나 실리를 바라지 않고,
책 읽기를 좋아하나
깊이 따지려 하지는 않는다.

 
   

삶은 항상 분주하고, 이 일이 끝나면 저 일이 닥치고, 말은 점점 늘어만가고, 높아만 가고. 바쁜 일상 속에서 책을 읽는 것은 어쩌면 죄가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책을 읽을 수 있는 작은 여유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겠지만, 늘상 한없이 책에 빠져 지내고 싶은 마음 또한 숨기지 못하겠습니다.

한가하고 편안하게, 쓸데없는 말 섞을 필요도 없이, 별반 이익이 될 것도 없지만, 그저 책에 묻혀 한세상 여유로이 살아봤으면, 이것 저것 따지지 않고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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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10-12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뜨끔.

승주나무 2007-10-13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만에 맡아보는 동양의 향취.. 감사합니다. 아프 님은 좀 뜨끔했을 것이에욧.. 저도 좀 뜨끔~~~

순오기 2007-10-20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뜨끔... 침 맞았어요!

멜기세덱 2007-10-20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침? 엥...저는 뱉은 적이 없는뎅...ㅋㅋ
 

[語文隨想]

"'한글' 創制 전에는 어느 나라 말을 썼나요?"

우리 학교 편입생 面接試驗을 치를 때마다 내가 즐겨서 던지는 質問이 있다. "世宗大王이 한글을 만들기 전에는 우리 민족은 어느 나라 말을 썼을까요?" 그 질문을 면접시험 문제로 추가하게 된 데는 背景이 있다.

평소에 가깝게 지내는 어느 學者와 대화하던 어느 날이었다. 이른바 一流 大學을 나오고 博士學位까지 받은 그분이 아주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創制하시기 전에는 우리는 어느 나라 말을 썼지요?" 나는 너무도 놀라 그 질문의 내용을 다시 확인했다. 혹시 내가 잘못 듣지는 않았나 해서였다. 하지만 그분의 질문은 確實했다. 그분은 세종대왕이 만든 것이 바로 우리말(國語)이라 알고 있었고, 따라서 세종대왕이 우리말을 만들기 전에는 말이 없었던 것은 아닌지, 있었다면 어느 나라 말을 썼는지 이 점이 궁금해서 내게 물은 것이었다. 아주 심각하게.

세상에, 박사이며 교수인 분도 한글과 국어를 混同할 수 있구나! 國語敎育에 문제가 있구나! 그 후로부터 나는 시험 때 이 질문을 종종 한다. 지난번 수시면접 때도 물었더니, 세종대왕이 만든 게 우리말이라고 自信 있게 대답하기에 설명해 주었다.

周知하듯, 우리말은 세종대왕 이전부터 있었다. 다만 우리말을 적는 文字가 없어 漢字를 빌어다 적었고, 세종대왕께서 우리 글자인 한글을 만들어 우리말을 소리 나는 대로 적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세종대왕이 만든 것은 우리 글자인 한글이지 우리말은 아니다. 정확히 말해서 한글은 國文과도 다르다. 한글은 英語의 'A B C D' 같은 알파벳이다. 'ㄱ ㄴ ㄷ ㄹ ㅏ ㅑ ㅓ ㅕ' 같은 우리 알파벳을 運用해 우리의 입말(국어)을 적어 놓은 결과물은 國文이다. A, B, C, D를 운용해서 영국인의 입말을 적은 것이 英文이고, 한자를 활용하여 작문해 놓은 것이 漢文이듯 말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우리말, 즉 국어는 한글로 表記할 수도 있고 漢字로도 로마자로도 표기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영어를 한글을 이용해 표기할 수 있다. 실제로 요즘 자기네 固有 文字가 없는 種族에게 우리 한글을 가르쳐서 자기네 말을 적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운동이 펼쳐지고 있기도 하다. 한글이 얼마나 優秀한지, 자음 모음 몇 가지만 補完하면 대부분의 音價를 다 적을 수 있다. 예컨대 脣輕音(순경음) 'ㅸ'같은 것을 되살리면 有聲音 'ㅂ'의 표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국제음성기호로는 90여 개 소리밖에 못 적는데 우리 字母音을 활용하면 120여 개의 발음과 억양과 聲까지 적을 수 있다니 분명히 자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한글'과 '韓國語(우리말)'를 혼동해서는 안 될 일이다. '알파벳'을 '英語'로, '한자'를 '中國語'로, '가나(假名)'를 '日本語'로 혼동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도 우리 학교의 그 학자만이 아니라, 평소에는 물론 한글날 무렵이면 "한글의 危機", "영어를 잘하려면 한글부터 잘해야" 이런 말들이 신문과 방송에 반드시 등장해 매년 필자의 귀를 괴롭게 한다. 하도 괴로워 최근에는 아예 이 문제를 논문으로 썼다. 그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 고등학생, 국어 교사, 국문과 강사와 교수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해 보니 정말 심각하였다. '한글'은 '우리 글자(문자)라고 남북한 國語辭典에서 분명하게 規定하고 있는데도 學生의 58%, 敎師 29%, 敎授 및 講師의 24%가 '한글'의 개념을 '우리말'로까지 認識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에 더욱 용기를 얻고 개탄하는 마음으로 '한글을  한국어의 의미로까지 쓰는 것은 誤用'이란 주장을 담아 이 논문을 어느 학회에 투고했더니만 審査委員 중의 한 사람이 '揭載不可' 판정을 내렸다. 그 이유가 내게는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誤用이 아니다. 文脈에 따라 한글을 한국어로 쓸 수 있다. 따라서 게재 불가"라는 것이었다. 국문과 교수(국어학자) 중에서도 이 두 어휘를 혼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게 해주어 놀랍기만 하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왜 국어학자까지 '한글'과 '한국어'를 같은 말로 쓰는 세상이 되었을까? 그 原因으로 몇 가지를 생각할 수 있겠는데, 가장 源泉的인 것은 '訓民正音', '正音' 같은 원래의 漢字語 명칭을 그대로 쓰거나 '國字', '韓字' 같은 명칭을 썼더라면 괜찮았을 텐데, '한글'이라는 새 명칭을 만들어 내면서부터 문제가 생겼다고 본다. '글'과 '글자'는 엄연히 다른 것인데, '한글'이라 하여 글자의 이름에 '글'이란 말을 붙여 무리하게 造語하다 보니 이상하게 된 것이다. '한글學會'라는 기관명도 이 문제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朝鮮語學會'가 光復 이후 改名할 때 마땅히 '韓國語學會'라고 했어야 자연스러웠을 텐데, 왜 그랬는지는 몰라도 '한글학회'라 하면서 잘못되었다. '한글학회'라고 기관명을 고쳤다면 '한글(훈민정음)' 연구에만 주력했어야 하지만, 이름은 그렇게 바꾸고 우리말(한국어) 연구와 보급에 주력해 오다보니, 言衆의 뇌리에 不知不識間에 '한글=한국어(우리말)'라는 인식이 계속하여 심어지고 확산되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이제부터라도 각급 학교 '國語' 과목 첫 시간에 이 문제부터 확실하게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국어(한국어)와 한글'이 어떤 관계인지, 이 지극히 基本的인 문제부터 정확하게 알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제발 한글날마다 내 귀를 자극하는 誤用 표현들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李福揆 (西京大 敎授)/ <語文生活> 통권 제119호, 2007.10, 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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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 2007-10-09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생 58%, 교사 29%, 교수 및 강사 24%. 틀린 이들이 정말 많네요.

순오기 2007-10-09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정확하게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군요~~~ 특히 가르치는 분들이!

2007-10-10 1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멜기세덱 2007-10-10 22:06   좋아요 0 | URL
어디....가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