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완서 선생이 인하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초청으로 인하대에서 강연을 합니다. 최근 여든이 가까운 연세이심에도 불구하고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시며, 『친절한 복희씨』를 출간하신 것과 아울러, 인하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가을 학술제를 맞아 박완서 선생을 초청해 좋은 말씀을 전해듣는 조촐한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과에서 주최하는 행사라 그렇게 크게 마련하지는 못하지만, 관심 있으신 인천 알라딘 지기님들께서는 부담없이 오셔서 박완서 선생의 강연을 들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강연은

2007년 11월 13일 화요일 오후 6시부터 진행되며

장소는 인하대학교 5호관 소강당입니다. 강연 후에 간단한의 질의응답과 사인을 받으실 수 있는 기회도 있을 것 같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함께 하시면 참 좋겠네요.ㅎㅎㅎ

강연 장소 및 약도, 인하대 교내 안내는 인하대 홈페이지(www.inha.ac.kr)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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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7-11-10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일저녁 6시 인천은, 제게는 좀 잔인한 스케줄이긴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못갔을테니, 이렇게 아예 갈 수 없는 시간인 쪽이 더 친절해보이기도 해요 ^^ 행사준비하느라 정신 없으시겠어요 좋은 사람들로 가득한 시간 되길~

멜기세덱 2007-11-11 00:33   좋아요 0 | URL
준비는 대부분 학생들이 하죠. 그리고 특별히 준비할 것도 없구요. 인천이 아니시면 평일 저녁 6시에 오시기는 힘드시죠...ㅎㅎ 바쁘신가봐요. 죄송스럽네요...ㅎㅎㅎ

라주미힌 2007-11-10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천 사람이지만... ㅠㅠ;;;

멜기세덱 2007-11-11 00:33   좋아요 0 | URL
아, 맞다 인천 사람이셨지....ㅋㅋㅋ

프레이야 2007-11-10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잉.. 너무 멀어요.

멜기세덱 2007-11-11 00:34   좋아요 0 | URL
아아.. 너무 멀군요.

무스탕 2007-11-10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정말 가보고 싶어요... ☆.☆

멜기세덱 2007-11-11 00:35   좋아요 0 | URL
ㅎㅎㅎ 제가 보고 싶은 거죠? ㅎㅎㅎ

2007-11-12 1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웽스북스 2007-11-14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이었네요, 강연회는 좋았나요? ^^

멜기세덱 2007-11-14 01:17   좋아요 0 | URL
아...너무 좋았어요....ㅎㅎㅎ 오늘부로 박완서 선생님 팬이 될 거 같아요...ㅎㅎ 너무 멋지시고 아름다우시고 재밌으셔요. 마치 곱게 늙은 소녀같다고 할까.
 

   
  오늘은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일즉이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아래 거리언마는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
바람 센 오늘은 더욱 너 그리워
긴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旗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디메 꽃같이 숨었느뇨.
 
   

어느 20대의 「그리움」이다. 이 그리움의 주인공은 청마 유치환이었지만, 또한 오늘 내 20대 끝자락의 그리움이기도 하다. 바람이 부는 날, 마음은 산란해지고, 거리에는 수많은 이들이 거닐지마는, 내 그 그리운 얼굴은 없으니,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旗빨」)은 공중에 깃발처럼 달릴 수 밖에.

내게 이 그리움은 공허한 그리움이다. 그 그리운 얼굴 조차 없는 그리움. 정말 "너는 어디메 꽃같이 숨"어 있는 것이냐? 꽃이 아니어도 좋으니, 한갓 잡초여도 좋으니……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물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이는 40대의 「그리움」이다. 유치환, 그의 그리움은 20여년의 세월이 지나 "인고(忍苦)와도 같은 사모에 차라리 목숨을 내맡겨 놓"(『구름에 그린다』, 경남, 2007.)고 있다. 파도야! 어쩌자고 이 가을날 이 가슴이 한없이 출렁이고 술렁이느냐. 어쩌란 말이냐. 어쩌자고 나는, 이 중년의 그리움 담은 한탄에 더 절감하는 것이냐. 어쩌자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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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징가 계보학 창비시선 254
권혁웅 지음 / 창비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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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징가 계보학』? 무슨 시집 제목이 이래? 내가 이 시집을 처음 보게 된 것이 언제, 어디서인지 모르겠다. 2005년 9월에 출간되었으니, 한 몇 달은 전에 있었던 일이었을 게다. 아마도 어느 서점의 시집 코너에서 스쳐가는 눈길을 이 독특한 제목의 시집에 멈췄던 것이 분명하지 싶다. 그렇게 눈길로 담아두고 오래 묵히다가 최근에야 이 시집을 사 읽었다. 그 첫 만남 즈음에는 독특은 했었어도 선뜩 시집에 손길주기 어려운 사정이 있었던 것이지 모르겠다.

  이 책을 주문하여 받아보는 즉시, 표제시 「마징가 계보학」을 펼쳐 보았다. 제1부 두 번째 수록된 시였다. 전문을 옮기자니 너무 길다. 그래서 옮기지 않기로 했다. 여기에는 마징가 Z, 그레이트 마징가, 짱가, 그랜다이저 등장한다. 그런데 이 마징가를 비롯한 그의 후예들은 전날의 그 마징가 들이 아니었다. 마징가 Z, 그 “기운 센 천하장사”는 “우리 옆집에 사”는 술고래였다. 고철을 모아 파는 이 마징가는 밤만 되면 술 먹고 아내를 그 굳센 팔로 두들긴다. 이보다 더 대단한 마징가, 그레이트 마징가는 마징가Z의 그 지겨운 소란을 “오방떡 기계”로 무마시킨다. 이 “오방떡을 만들어 파는 사내” 그레이트 마징가의 마누라는 아마도 짱가를 찾아 “마침내 집을 나와 먼 산을 넘어 날아갔다”. 마지막 그랜다이저 부분은 다음과 같다.


여자는 날아서 어디로 갔을까? 내가 아는 4대 명산은 낙산, 성북산, 개운산 그리고 미아리 고개, 그 너머가 외계였다 수많은 버스가 UFO 군단처럼 고개를 넘어왔다가 고개를 넘어갔다 사내에게 역마(驛馬)가 있었다면 여자에게는 도화(桃花)가 있었다 말 타고 찾아간 계곡, 복숭아꽃 시냇물에 떠내려오니…… 그들이 거기서 세월과 계란을 잊은 채…… 초록빛 자연과 푸른 하늘과…… 내내 행복하기를 바란다

 

  

  이 부분의 소제목이 ‘4. 그랜다이저’다. 왜 그랜다이저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무언가 숨어있기는 하겠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님을 이미 눈치 챘을 것이다. 이 마징가Z부터 그랜다이저까지의 계보들은 우리가 어린 시절 보았던 만화 영웅 로봇들의 그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술 먹고 마누라는 패는 사내, 그 사내의 소란을 못마땅하게 여겨 때려눕힌 사내, 그 사내를 두고 도망간 아내, 그리고 그 사내들과 아내들이 저 우주 너머 외계에서 그랜다이저가 만들어준 그런 행복한 공간에서 거했으면 하는 인간사다.

  

  사뭇 재미있는 형식의 시도다. 만화 주인공을 끌어다가 이런 인물들을 표현하고 있는 그 자체로 처음에는 웃음을 짓게 한다. 그러나 읽어가면서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게 한다. 그래서일까? 독특한 제목이 준 호기심뿐이었다면 이 시를 나는 시라고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시의 주인공들이 사는 배경을 조금만 노력하면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어느 달동네에서 살아가는 저소득층의 서민들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삶은 그대로의 현실이지만, 그들은 어쩌면 마징가나 그랜다이저가 그런 것처럼 만화 속에서나 가능한 그런 비현실적인 모습들이다. 이런 비현실적 인물들이 전 시대, 혹은 현 시대에도 여전히 현실로서 살아가고 있다. 비현실성과 현실성의 만남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보았다. 웃음과 애잔함의 교차, 쓴웃음으로 마감되는 이 시는 결국은 모순으로 점철될 수밖에 없다.


내 속에 내가 너무 많다고 노래했던 시인과 촌장은 한 사람이다 나도 그랬다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동네방네 내 이름을 부르며 귀가할 때마다 나는 출가한 붓다였고, 샴쌍둥이처럼 그녀의 몸에 세들어 살고 싶을 때마다 나는 늑대인간이었으며, 출근하기 싫어 장판에 들러붙을 때마다 나는 그레고르 잠자였다 지금도 이 글을 쓰는 나는…… 이라고 쓰는 나는……    -「모순」부분

 

  

  이 시에는 아수라 백작과 헐크, 육백만 불의 사나이가 등장한다. 그들은 모순을 내재한 인물들이다. 양성구유의 아수라 백작, 괴물로 변하는 데이빗 배너 박사, “제 안에 제 것 아닌 걸 데리고 사는” 스티브 오스틴 대령. 모순을 내재한 이 인물들로부터 “좌익과 우익을”, “안팎의 경계”를 배우고, “초당 9.8미터를 더한 속도로 옥상에서 뛰어내린 아이들”이 생겨났다. 좌우, 안팎은 그 사이에 모순을 내재한다. 이 모순은 뛰어내려서는 안 될 옥사에서 뛰어내림으로써 작게는 다리에 부러지는 것에서부터, 크게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상처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위의 인용한 부분은 화자 개인의 내면에서 꿈틀대는 여러 모습들이 각각의 상황에서 각각의 모습으로 튀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그리 별난 일은 아니다. 누구나 그러할 테니까. 결국 현실이란 것은 모순으로 가득한 것이다.

  이 시집의 저자 권혁웅의 기법은 하나의 모순어법이다. 패러독스라고도 한다. 「마징가 계보학」이나 「모순」에 등장하는 만화나 공상 영화 속 주인공이든, 그에 비견되는 현실 속 인물들이든 모두가 이 모순으로 형상된 인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마징가로 대표되는 시인의 인물 군들은 비현실성을 대표하면서도 강력한 현실성으로 모든 시에서 표현된다. 때론 희극적으로 때론 애잔하게, 어쩌면 비극적으로 말이다. 그랜다이저가 만드는 세상, 곧 저 외계의 행복한 공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곧, 시의 화자가 살았고, 살아가고 있는 공간은 현실 그 자체이고, 그 안에서의 모순된 현실은 다분히 비현실적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현실인식이 이 시집 전체를 아우르고 있는 것이다.

  시 「드라큘라」에서 “지금 서울엔 마늘 시세가 똥값이다 십자가는 동네마다 있다 그리고 나는 아파트에 산다//그분들처럼 이 동네 사람들도 밤이 되면 층층이, 나란히, 눕는다”는 언술은 그런 현실인식을 대표한다. 만화 같은 세상, 영화 같은 세상으로 시인을 현실을 파악하지만, 그것이 다만 만화나 영화처럼 허무맹랑한 것들로 읽혀지지 않는 이유는 시인이 살아오면서 보고 경험했던 현실 그자체가 그것들과 함께 모순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시를 읽어보자.


제가 다니던 삼선교회엔 유난히 숙이 많았죠

은숙(恩淑)이, 애숙(愛淑)이, 양숙(良淑)이, 현숙(賢淑)이, 경숙(京淑)이, 남숙(南淑)이, 난숙(蘭淑)이, 미숙(美淑)이, 정숙(貞淑)이……

그야말로 쑥밭이었죠 제일 믿음이 좋았던 애는 은숙이,

애숙이는 잠시 나를 사랑했고

양숙이와 현숙이는 정말로 현모양처가 되었죠

경숙이는 지금도 서울에 살지만, 남숙이는

먼 데로 이사 갔답니다

난숙이는 정초했고 미숙이는 예뻤는데

지금도 제일 기억나는 애는 정숙이에요

어렸을 때 귤껍질 넣은

뜨거운 주전자 물을 뒤집어썼지만

한 올의 흐트러짐도 없던 아이,

그러던 어느 성탄절에 성극을 하다가

두건과 함께 가발이 홀랑 벗겨진

울지도 않고 끝까지 마리아 역할을 하고는

그 길로 교회를 떠난 아이, 지금도 어디선가

단정한 자세로 앉아

거지꼴을 한 동방박사들을 기다리는 거나 아닌지요

  -「쑥대머리」전문

 

  

  말하자면 정숙이 에피소드라고 할까? 처음엔 고종석의 『바리에떼』에서 진주타령을 보는 듯도 했지만, 중간이후부터는 다분히 꽁트스러운 반전이 있다. 제목 자체에 농축되어 있듯이, 이 시는 정숙이라는 아이의 대머리 굴욕사건이라고 하면 딱인 셈이다. 그래서 이 시의 제목이 ‘쑥대머리’란 사실을 깨달았을 때 한참을 웃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 정숙이란 아이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겉모습과 대머리로 대표되는 내면의 모습 사이의 모순을 깊이 간직한 인물로 그려진다. 정숙(貞淑)이란 이름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의미 그래도 항상 “한 올의 흐트러짐도 없던” 정말 정숙(貞淑)한 아이였다. 그러나 그 아이는 대머리였다. 모순을 간직한 채 살아온 아이는 그 모순이 발현된 순간 ‘그 길로’ 상처를 안고 떠나야만 했던 것이다. 이 모순된 현실 속에 화자 자신이건, 또는 “기운 센 천하장사” 마징가건, 그리고 정숙이건, 누구도 빠져나올 수도 없고, 누구도 이것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권혁웅 시에서의 말하기 방식은 간혹 하이개그를 구사하기도 한다. 쌍팔년도 개그라고 욕먹기 십상인 이 개그는 “나중에 사과해서/과수원을 해도 좋았을 친구”처럼 구사된다. 「쑥대머리」도 이런 식에 포함될 듯싶다. 이런 하이개그식 어법은 읽는 이로 하여금 조소를 머금게 한다. 그러면서 하나의 아이러니를 형성하는데, 이런 반어적 어법 또한 현실세계의 모순을 보다 극명히 드러내주는 데에 기여한다. 아내를 두들겨 패는 “기운 센 천하장사” 마징가도 그레이트 마징가에게 두드려 맞듯이, 그 그레이트 마징가의 아내는 또 어딘가로 집을 떠나듯이, 이들은 아무리 보다 마징가도 아니고 그랜다이저도 아니다. 이 얼마나 반어적인가? 아이러니는 모순의 또 다른 표현임에 다름 아니다.

  결국 이런 식이다. 가지각색의 만화 영웅들이 등장하고, 때론 에로배우도 등장한다. 야구선수 박철순도 등장하고 원더우먼과 용가리, 킹기도라 등등 각양각색의 비현실성의 대표들이 현실성과 합체되면서 변주되고, 그러면서 시인의 지난날의 경험들과 보고 들음과 어우러져 지극한 현실성을 획득한다. 이 속에는 모순과 아이러니로 꽉 들어차 있어 우리를 웃게도 했다가 씁쓸하게도 하고, 때론 울게도 할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하나의 거대한 패러디의 집합처럼도 보인다. 백석의 시를 비롯해서 팝송에서도 구절구절들을 따오는 시의 작법들도 제법 많다. 그러니까 어느 곳 어디에서도 모순을 발견되고, 세상은 모순으로 가득한 것이다. 마징가는 우리 시대 모순을 대표하는 존재의 시원인 것이다.

  황현산은 해설에서 “『마징가 계보학』은 필경 이 시집의 저자였을 화자가 서울의 가난한 동네에서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을 보내면서 목도하고 살아낸 비참하고 절망적인 삶을 아이러니와 패러독스와 유머의 그물로 엮어낸 모욕과 굴종과 폭력의 족보”라면서 이름하여 이것을 ‘기억의 계보학’이라 칭한다. 분명 그럴 수도 있겠다. 황현산은 덧붙인다, “유쾌하고 비통하고” 그래서 “아름답다”고. 절대적으로 맞는 말이다. 그런데 시인은 이 ‘기억의 계보학’이란 표현에 맘 상했던가보다. 시집 말미의 시인의 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주름―사람들의 동선(動線)이 그어놓은―을 잔뜩 품은 어떤 장소에 관해서, 끊임없이 현재로 소환되는 사람들에 관해서, 겹으로 된 삶에 관해서 말하고 싶었다. 내가 기억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시인의 말에 동의한다. 각개 군상들의 ‘주름’과 ‘겹으로 된 삶’의 그 지극한 속성에 대해서, 모순에 대해서 시인은 말하고 있다. 어찌 그것을 아련한 기억의 저편의 소소한 이야기들로 치부할 수 있겠는가. 아무튼 이 시집은 그럼에도 재미있게 읽힌다. 이 시집을 읽는 내내 웃는다고 하더라도 그 웃음 공허함만을 남겨주는 단순무식 개그는 아니기에, 시집을 덮고나서 운다고 하더라도 그리 겸연쩍은 일은 아닐 것이다. 시집에 경기(驚氣) 있으신 분들까지도 일독을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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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 2007-11-08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집에 경기 있는 제 흥미까지 끄는 독후감이었습니다, 멜기님. 혹시 정가 만원짜리 책 팔면 작가,출판사,중간상인,최종소매상이 얼만큼씩 이익을 얻는지 대충이라도 아세요?

멜기세덱 2007-11-08 22:02   좋아요 0 | URL
재밌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ㅎㅎ
제가, 출판계통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요, 근데, 저자 인세의 경우 얼핏 잘 나가는 작가 정도가 10%를 받는다고 들은 것 같아요.
나머지는 잘 모르겠지만 추측은 가능할거 같아요. 최근 할인율을 10%로 제한하고 있는 걸 볼때 최종소매상의 경우 10%이상 마진을 주지 않을까요?
 
나무를 심은 사람
장 지오노 지음, 마이클 매커디 판화, 김경온 옮김 / 두레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2005년 쯤으로 기억한다. 대학 강의 시간에 교수님께서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을 소개하셨다. 그 강의는 <한문교육>이라는 전공 과목이었다. 전공이 국어교육이지만 한자와 한문도 국어의 일부일 수 있다는 취지의 교과과정이었을 것이다. 이 강의는 딱딱한 한자 한문 강의가 아니다. 감명 깊은 옛 문장들을 간추려 엮고, 그것을 통해 한자와 한문, 나아가 교양과 감성까지를 기르도록하는 강의 내용으로 짜여져 있다. 그런 의미에서일까 매 수업시간마다 좋은 책들을 추천해지셨는데, 그 중 하나가 이 책 『나무를 심은 사람』이다.

오늘은 교내 우체국에 일을보러 갔다가 근처 구내서점에 들렀다. 진열된 책들을 돌아보다가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잊고 지냈던 옛 친구를 만난 느낌이랄까, 반가운 마음에 이 책을 집어들고 서점에서 나왔다. 생각보다는 얄팍하고 겉보기에 내용도 빈약해보였다. 한 번 훑어보니 한 2~30분이면 충분히 읽을 수 있을 듯 싶었다. 일을 보고 사무실에 들어와 내쳐 이 책을 펴들고 읽어내려갔다. 빠르게 읽히면서 손쉽게 넘어갔다. 정말 30분도 안되어서 다 읽게 되었다. 시집만큼 작은 책에 글자수도 보통책보다는 적게 된 이 책은 한장에 고작 11줄 정도밖에는 안 된다. 그렇게 70쪽이 이 소설의 다다. 책에는 편집자와 역자의 글이 수록되어 140여 쪽 분량이지만, 그것마저 읽기는 1시간도 남는다.

황폐한 마을, 그 마을도 이전에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람나는 냄새를 풍기며 어울려 지내던 곳이었을 것이지만, 지금은 황량해진 아무도 거하지 않는 비루한 곳일 뿐이다. 산이며 언덕이며 나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곳에는 바람만이 싸늘하게 불어온다. 장 지오노는 자신의 경험담을 녹여 소설로 풀어내고 있다. 장 지오노가 분명해보이는 화자는 이 지역을 여행하게 된다. 그러다 엘제아르 부피에란 사람을 만나게 된다. 이 사람을 이 지역에 살면서 매일같이 황량한 들판과 언덕과 산에 나무를 심었다. 3년에 걸쳐 쉬임없이  나무를 심어 모두 10만 그루를 심었지만 자라는 것은 2만 그루에 지나지 않고 그마저도 끝내 곧은 나무로 성장하기까지는 1만그루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엘제아르 부피에는 "나무가 없기 때문에 이곳의 땅이 죽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고, "이런 상태를 바꾸어 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그는 끊임없이 나무를 심었다. 결국 그 땅은 변화해갔다. 황폐하던 마을에 싹이 돋고 나무가 자라고 "물이 다시 나타나"고 "버드나무와 갈대가, 풀밭과 기름진 땅이, 꽃들이" 살아났다. 그리고 이 땅은 이제 "삶의 이유"를 획득하게 된 것이다.

이런 아주 짧은 내용의 짧은 글이지만, 그 울림은 너무 크다. 장 지오노는 이 글에서 엘제아르 부피에를 한 고귀한 성자와 같은 경지로 생각하는 듯도 하다.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좀 달리 생각해 보게 된다. 황폐한 사막같은 곳에서 묵묵히 나무를 심은 부피에란 사람은 성자도 아니고 대단한 사람도 아니라고 말이다. 장 지오노는 이 소설에서 이 마을이 왜 황폐해졌는지 그 이유에 대해 살짝 언질을 준다. "견디기 어려운 날씨 속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한 채 서로 밀치며 이기심만 키워 갈 뿐이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그곳을 벗어나기를 바라면서 부질없는 욕심만 키워 가고 있었다." 바로 그것이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놓고 경쟁"하고 "선한 일을 놓고, 악한 일을 놓고, 그리고 선과 악이 뒤섞인 것들을 놓고 서루 다투었"던 것에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 속에서 부피에 같은 사람은 이상한 사람, 즉 광인이거나 혹은 성자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부피에는 정상적 시각의 눈으로 보았을 때, 지극히 정상적인 일을 했던 것은 아닐까? 미친 것은 다만 세상일 뿐이다.

이 글을 통해 환경의 문제를 새삼 돌아보고 위기의식을 가지는 것 또한 무척 중요한 일이지만, 보다 근원적으로는 서로 다투고 경쟁하며 이기적이 되어가는 사회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한다. 엘제아르 부피에는 묵묵히 나무를 심어갔다. 그것은 황폐한 사회에 희망을 심는 일이었던 것이다. "이런 상태를 바꾸어 보기로 결심"한 후 그것을 묵묵히 실천했던 부피에는 결국 "사람이라고는 단 세 명만이 살고 있었"던 마을을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런 부피에에 대해 장 지오노는 친구의 목소리를 빌려 이렇게 말한다. "그는 행복해질 수 있는 멋진 방법을 찾은 사람"이라고.

이 글이 환경 문제에 직면에 우리에게 던져주는 큰 문제의식도 있지만, 나는 내 입장에서 조금 다른 울림을 얻었다. 이 황폐한 사회를 바꾸는 방법, 이 사회에 희망을 심는 방법이 무엇일까? 이 사회에서 엘제아르 부피에의 역할을 감당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보다 근원적인 방법을 찾아야하지 않을까 고민했다. 그러다 이 책에 대해 처음 알게된 지난 강의의 교재를 찾아보았다. 메모를 해두었던 곳을 살펴보니 이 부분의 문장은 이런 것이었다. "一年之計, 莫如樹穀, 十年之計, 莫如樹木, 終身之計, 莫如樹人." 즉, "한 해의 계책은 곡식을 심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고, 십 년의 계책은 나무를 심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고, 평생의 계책은 사람을 기르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란 유명한 문장이다.

아 이거다. 나는 사람을 심는 엘제아르 부피에가 되는 것이다. 나무를 심은 엘제아르 부피에가 결국에는 온 마을에 희망을 꽃피웠던 것처럼, 나는 이 땅에 사람을 심고 기르는 것이다. 그렇게 엘제아르 부피에 같은 사람들을 길러낸다면 이 땅은 희망찬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묵묵히 나무를 심은 부피에처럼 묵묵히 이 땅의 미래를 길러내는 사람이 되기위해 나의 능력과 심성을 닦아 나가야겠다. 사람을 심는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내가 이 책에서 얻은 목표이다. 너무 거창한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앞으로 30년을 더 산다면, 이 땅에 복되고 희망찬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이 땅은 바다보다도 넓고 깊게 행복에 겨워 살 것이다. 엘제아르 부피에의 담담한 포부처럼 내 포부도 담담하게 거창하다.(이 소설은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졌다. 인터넷에 많이 돌고 있으니 찾아보시면 또한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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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7-11-07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대학 때 선생님의 권유로 본 작품이에요- 저는 애니메이션으로 봤었죠, 애니메이션도 짧지만 울림이 깊었고요~

멜기세덱 2007-11-07 20:25   좋아요 0 | URL
저도 책을 읽고 애니메이션을 찾아봤는데, 또 색다른 맛이 있더군요. 요즘 애들 취향은 아닌것도 같지만...ㅎㅎ

Jade 2007-11-07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멜기님 꼭 12월에 시험 합격하셔서 제대로 된 사람을 기르셔요 ㅎㅎ

멜기세덱 2007-11-07 20:25   좋아요 0 | URL
내년 12월을 기대해 주세요....ㅎㅎ;;

딸기 2007-11-07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지요, 이 책! 애니메이션도 정말 좋았어요.
이 책 읽은 뒤로 장 지오노 좋아져서 막 사다 읽고 그랬는데...
벌써 그것도 오래전 일이네요. 십년도 더 지난...
울나라에서 아주 잠시, 붐...은 아니었고, ^^;;
장지오노 탄생 100주년인가 해가지고 여러권 나온 적 있었거든요.
저는 지붕위의 기병도 좋았고, 또... 암튼 다 좋았는데
'폴란드의 풍차'는 넘 다른 느낌이어서 놀랐었어요. 그것도 함 보세요.
애니메이션도 마음에 들어서 프레데릭 바크(캐나다 감독) 작품 구해다 보고 그랬어요.

그런데 멜기세덱님 언제 선생님 되시나요. 꼭 좋은 선생님 되세요! ^^

멜기세덱 2007-11-07 20:27   좋아요 0 | URL
딸기님께서 그렇게 부추기시면 어떡해요...ㅋㅋ
장 지오노에 대한 관심까지 확 높이는 책이에요...ㅎㅎ
 
희망의 인문학 - 클레멘트 코스 기적을 만들다
얼 쇼리스 지음, 이병곤.고병헌.임정아 옮김 / 이매진 / 2006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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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인문학(人文學)이 어떻게 조우(遭遇)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이 둘의 조화는 둘 중 어느 하나가 끝장나야 가능했다. 이를테면, 지지리 가난한 어느 시골집 장남이 고학(苦學) 끝에 출세하여 교수가 된다거나, 학문을 한답시고 공부만 하다가 지지리 가난에 어쩔 수 없이 인문학을 끝장내고 굶어죽는 경우다. 그러니까 모 아니면 도다. 전자의 가능성은 말하자면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경우의 수와 비슷하다. 또한 그것이 가난을 극복하고 인문학을 꽃피운 것이냐 물으면 고개를 갸웃 할 수밖에는 없다. 옛날식 드라마 줄거리가 생각나는 것은 비단 나 뿐은 아닐 것이다. 온 가족은 뼈가 닳도록 고생하면서도 장남 하나 출세시키기에 여념이 없고, 그렇게 출세하여 장남은 뽀대나게 살아도 그 나머지 가족은 여전히 가난에 시달리는, 비극적 가족사의 줄거리는 이 가난과 인문학(비단 인문학 뿐만은 아니지만)의 접점에서 줄곧 일어나는 상황이다. 결국 가난과 인문학이 정답게 손잡는 경우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방금 뱉은 말을 주워 담아야겠다. 가난과 인문학이 정답게 손잡은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고 말이다. 이름하여 '희망의 인문학'이라고 해야겠다. 그간 극소수의 가난한 이들에게 인문학은 희망일 수도 있었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야망의 인문학' 쯤 되려나? 이 야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순간에 가난과 인문학은 정답게 손을 잡는다. 그렇다면 '어떻게'라는 질문이 다시 제기되기 마련이다. 어떻게 가난과 인문학이 정겹게 손을 잡을 수 있을까?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말이다. 나 같은 범인(凡人)으로서는 불가능해 보이기만 한다.

맹자 왈 공자 왈 하는 이 지지리 가난뱅이가 어떻게 이 세상에서 버틸 수 있겠는가 말이다. 소크라테스의 대화술로 중무장한 가난뱅이라도 이 험한 세대에서 최소한의 커뮤니케이션을 획득하리라고 보기 어렵다. 시(詩)를 쓴다고 골방에 처박혀 원고지를 구겨 온 방구석에 널브러트린 가난뱅이가, 소설을 쓰는 청승맞은 가난뱅이가, 그림을 그린다고, 음악을 한답시고 나대는 가난뱅이가, 어찌 밥 먹고 살아갈 수 있겠는가 말이다. 흔히 글쟁이 하겠다면 굶어죽기 십상이라고들 했다. 예술한답시면 또 그 꼴 날 거라고도 했다. 말하자면 인문학으로 먹고 살기 어렵다는 사실은 고금의 진리였다. 이 인문학이야 그 옛날 양반들이 하던 것이었으니, 농사 지어 하루 먹고 하루 사는 이들에게 맹자 왈 공자 왈을 논하는 것은 한가한 노릇이기보다 반역에 가까운 것 아니겠는가. 인문학 그것은 굶어죽는 지름길이었다. 가난한 이들에게는.

어떻게 인문학이 가난한 이들과 만날 수 있을까? 이 의문에 앞서 '왜'라는 의문사를 먼저 붙여야 하겠다. 왜 인문학이 가난한 이들과 만나야 하는가를 풀어야, 그 다음 '어떻게'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왜? 굶어 죽겠다고? 왜? 죽을 때 죽더라도 고고하게 죽으려고? 가난해도 폼 나게 살다가 폼 나게 죽으려고? 이 또한 나는 한낱 범인에 지나지 않기에 대답을 찾을 길 없다.

왜 인문학이 가난한 이들과 만나야 하고, 어떻게 그 둘이 조우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의 해답을 공자님도 소크라테스도 말해주지 않은 듯하다. 아마 그들의 시대에는 이 질문이 불필요한 질문이었을 게다. 그들이 처한 상황은 우리와는 무척이나 달랐으니 말이다. 그러나 오늘의 시대에 이 질문은 절실해졌다. 가난한 이들도 그들의 가난을 끝장낼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자유는 있으되 그 자유를 맘대로 누릴 수 있는 자유는 없다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그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자유를 던져두는 것, 그것을 무엇으로 가능케 할 것인가? 얼 쇼리스가 말한다, "희망의 인문학"이 있다고.

얼 쇼리스는 인문학이 가난을 극복할 수 있게 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왜 인문학이 가난한 이들에게 필요한가? 나는 길지만, 얼 쇼리스의 그 명쾌한 답변을 옮겨야만 하겠다.

   
 

  여러분들은 이제껏 속아왔어요. 부자들은 인문학을 배웁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인문학을 배우지 못했잖아요? 인문학은 세상과 잘 지내기 위해서, 제대로 생각할 수 있기 위해서, 그리고 외부의 어떤 '무력적인 힘'이 여러분에게 영향을 끼쳐올 때 무조건 반응하기보다는 심사숙고해서 잘 대체해나갈 수 있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공부입니다. 저는 인문학이 우리가 '정치적'이 되기 위한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정치적'이라고 말할 때는 단지 선거에서 투표하는 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보다는 좀 더 넓은 의미를 갖고 있는데요, 아테네의 정치가였던 페리클레스는 '정치'를 '자족에서부터 이웃, 더 나아가 지역과 국가 차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함께 하는 활동'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부자들은 바로 이런 넓은 의미로 정치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협상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잘 살기 위해, 또 힘을 얻기 위해 정치를 이용합니다. 부자는 착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못됐다는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회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데 필요한 효과적인 방법을 더 잘 알고 있는 이들이 바로 부자들이라는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상류층이나 중산층들은 모두 인문학을 공부했을까요? 결코 그랬을 리가 없겠지요. 하지만 그들 중에는 분명히 인문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어느 정도는 있었고, 그런 공부가 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더 잘 살 수 있도록, 삶을 더 즐길 수 있도록 인문학이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인문학이 여러분을 부자로 만들어줄까요? 분명히 그럴 것입니다. 단, 돈을 많이 벌게 해준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삶이 훨씬 풍요로워진다는 의미에서의 진정한 부자로 말입니다.

  부자들은 사립학교나 비싼 학비를 내는 대학교에서 인문학을 배웁니다. 그것이 모든 단계에서의 정치적 삶을 배우는 한 방법인 셈이지요. 저는 우리 사회에서 가진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정말로 차이가 있다면 바로 이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사람에게서, 그리고 사람들이 소유한 것들에게서 나오는 진정한 힘, 합법적인 힘을 갖고자 한다면 반드시 정치를 이해해야 합니다. 인문학이 도와줄 것입니다.

-얼 쇼리스,『희망의 인문학』, 217~8쪽.

 
   

내가 이 긴 문장을 인용하면서, 수십 타의 자판을 두드리는 수고를 하면서도 한 치의 망설임도 가지지 않았음을 강조해야 하겠다. 그 말은 어느 줄의 몇 문장은 빼놓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렇게 옮겨 놓고는 밑줄이라도 긋고, 굵은 글씨로 돋보이게 할 문장을 골라보려 했지만 그마저도 포기했다. 어느 것 하나 뺄 수도 없고, 또한 무엇 하나 더하고 덜함 없이 구구절절 중요한 문장이라고 판단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이 문장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얘기다. 자 여러분들도 다시 한 번 제대로 읽어보시라. 길다고 해서 대강 훑고 온 이들에게 드리는 말씀이다. 내 리뷰는 제쳐놓고 이 인용문만이라도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읽어보시라 이 말씀이다.

얼 쇼리스는 말한다. 니들은 속았다고. 우리를 이 지지리 가난 속에 얽매어 놓는 이 세상의 간악함(나는 얼 쇼리스가 어떤 '무력적인 힘'이라고 한 것을 간악함이라고 표현한 것이다.)의 해법이 인문학에 있음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인문학은 가난한 자들에게는 지지리 궁상이었다. 얼 쇼리스는 다시 말한다. 세상의 이 간악함에서 벗어나는 길은 우리가 정치적이 되어야 하는 것 뿐이라고. 그래서 무식하게 이판사판으로 나갈 것이 아니라 좀 더 똑똑해지고 교묘해 져서 이 간악함을 물리쳐야 한다고 말이다. 그것은 이판사판 공사판이 아니라 "진정한 힘, 합법적인 힘"으로 이 간악에 맞서는 최선의 방법이다. 정치, 그것을 알 때에 얻어지는 이 힘을, 인문학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문학을 이 가난한 자들이 왜 배워야 하는지를 말하는 얼 쇼리스의 이 네 문단의 강변을 통해 나는 무릎을 치며 탄복해야만 했다. 어떤가? 그럴듯하지 않은가? 똑똑하지 못한 가난뱅이는 지지리 궁상을 가난으로 떨어야 했다. 어쩌다가는 패악으로 치닫고 말이다. 우리 20년대의 신경향파 문학이 보여주는 대강의 줄거리가 그렇듯이 불 지르고 살인과 약탈로 결말지어지듯 말이다. 제도 외적으로 가난이 치를 떨 때, 그것은 제도권이라고 하는 세상의 간악에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깨갱댈 수밖에는 없다. 그러니 이제는 인문학으로 똑똑해져서 이 무력적인 힘을 한번 비웃어주고 그것을 가지고 놀면서 가난을 극복해 보라고 얼 쇼리스는 말한다. 가난한 자들이여 인문학을 배워라.

그러나 '어떻게'가 남는다.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해도 그 맹자 왈 공자 왈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저 좋은 거라니 좋은 것이려니 하는 정도는 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것도 나 밥먹여 주지 않으니, 그걸 해서 무엇 하겠냐는 것을 절감한다. 그러나 해야 된다고 얼 쇼리스는 말한다. 그래 해야 된다고 하자. 그럼, 한 시라도 손 놓아서는 밥 먹지 못하거늘, 언제 그 지리한 인문학 노릇을 하겠는가? 바로 '어떻게'가 남는 지점이다. 어떻게 인문학과 이 지지리 궁상 가난이 만날 수 있겠는가?

이 문제는 책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해결될 수 없는 곳에 놓여있다. 말하자면 '돈'이 걸린다는 얘기다. 선생도 필요하고, 장소도 필요하다. 그래서 얼 쇼리스는 다만 보여주기만 한다. 그는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면서 지원을 받아내고 협조를 구한다. 하나씩 하나씩 시작해가면서 각계의 호응을 얻어낸다. 다분히 성공적이다. 얼 쇼리스라는 한 사람에 의해서 파생된 이 인문학 프로젝트는 대단히 성공적으로 해를 거듭해가면서 그 효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얼 쇼리스라는 몇몇의 지성인들을 통해 가능했다는 점은 문제다. 그렇다면 이 '어떻게'의 해법을 찾기는 불가능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내가 얻은 결론이다. 얼 쇼리스가 보여주고 있듯이, 그것이 사회 일각에서 작은 불빛으로 빛나고 있다면 그것을 사회적으로 큰 불이 되게 하는 방법, 곧 이 사회가 가난한 이들이 인문학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 지원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 사회는 '무력적인 힘'으로 지배되고 있지 않은가? (아 이런,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구만!) 가난한 이들이 80%가 넘으니,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은 어찌 보면 어렵지 않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것은 가난한 이들이 정치적이 되었을 때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렇다면 그것은 인문학을 가난한 자들이 배워야 가능하고, 또, 또, 또. 자 결론은 다시 얼 쇼리스에게로 돌아가야 하겠다. 얼 쇼리스라는 사람이, 그리고 이 가난을 끝장내는 유일한 길이 인문학을 배워야 함을 자각한 이 땅의 가난한 이들이, 하나씩 둘씩 나타난다면 그래서 조금 늦고 힘들다고 하더라도, 한 줄기 희망은 점차 큰 줄기의 불기둥으로 변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여간 어려운 문제다.

가난한 자들이 정치적이 돼야 하고, 정치적이 되기 위해서는 인문학을 통하는 길이 최선임을 얼 쇼리스가 말해주고 있지만, 얼 쇼리스처럼, 그리고 그와 동조하는 지성인들이 몸소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 한 또한 그것은 공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 책 『희망의 인문학』이 우리 가난한 자들과 가난하지 않은 지성인들에게 읽혀야 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일단 우리 사회에 얼 쇼리스는 등장한 것처럼 보인다. 이 책의 번역자들인 <광명시 평생학습원>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들은 이미 얼 쇼리스처럼 이 인문학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이미 작은 불빛을 밝혀 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장작도 얹어 놓고, 가끔은 기름도 들이붓고, 그 인문학 불길에 이 가난한 몸 또한 던져 태우면서, 그렇게 그렇게 차츰 큰 불줄기 만들어 가면, 되는 것 아닐까? 이 책이 이 간악한 세상에서 금서가 되지 않는 한, 또한 금서가 된다고 하더라도, 읽어야 하고, 읽혀야 한다. 『희망의 인문학』으로 우리 다시 한 번 불온해 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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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7-11-06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브리핑에서 제목을 보는 순간 희망의 인문학이겠구나,했어요- 요즘 신이내렸나 ㅋㅋ 이 책을 만났을 때의 두근거림이라니! ㅎㅎ 성공회대학교에서 운영하는 성프란시스 인문학교나 관악인문대학, 수원인문대학, 제주희망대학 등도 있답니다- 예스24에 여기에 책을 지원하는 모임이 있는데, 알라딘에도 리뷰를 종종 올리시는 '인식의힘' 님께서 운영하고 계신답니다.

멜기세덱 2007-11-06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인식의 힘님....내 그 분이 그럴 줄 알았아요....ㅎㅎ
좋은 일을 좋은 분들께서 하시네요...ㅎㅎ(에고 부끄~~)
알라딘에서도 그런 일을 하면 참 좋을텐데.....ㅎㅎㅎ

물만두 2007-12-11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멜기세덱 2007-12-12 01:11   좋아요 0 | URL
헉!! 감사합니다^^

마늘빵 2007-12-11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멜기세덱님 사고 치셨군요!!! 우와와. 대형사고 쳤습니다!

멜기세덱 2007-12-12 01:11   좋아요 0 | URL
이런 일도 다 있군요. 다 아프님 덕분이에요...ㅎㅎ

아영엄마 2007-12-11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멜기세덱님~ 일등 하신 거 축하드립니다~~. 대박 터트리고 올해 마무리 하시는군요~. ^^

웽스북스 2007-12-11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멜기세덱님 정말 축하드려요!!!! 내년 책값은 걱정 없으시겠어요 아 부러워라~

멜기세덱 2007-12-12 01:1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근데 앞으로 한 3달은 걱정 없겠네요.ㅎㅎ

웽스북스 2007-12-12 13:12   좋아요 0 | URL
아이쿠, 제가 너무 과소평가 했었나보네요- 이 자기중심적 사고 ㅋㅋ

이매지 2007-12-12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악! 멜기님이 1등 하셨네요 !!
놀라서 낼롬 달려왔어요~
축하드려요 >ㅁ<
부럽부럽부럽 ㅎ

멜기세덱 2007-12-12 01:13   좋아요 0 | URL
아이고! 감사합니다. 저도 이게 웬일인지 모르겠네요.ㅎㅎ

라주미힌 2007-12-12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헉.... (기절) ㅎㅎㅎ

멜기세덱 2007-12-12 21:34   좋아요 0 | URL
(가슴을 잡고 흔들며, 따귀를 때려보기도 하고, 눈꺼풀을 뒤집어까보기도 하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찬물을 얼굴을 확 끼얹고나서야 정신을 차리는 듯한 라주미힌님을 보며)

주미니형.....괜찮으세요? ㅎㅎㅎㅎ

코코죠 2007-12-12 0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그리고 원하시는 다른 일도 분명 이루어질 것이에요. 이건 좋은 일이 일어날 조짐이로군요^ ^

멜기세덱 2007-12-12 21:33   좋아요 0 | URL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없을 것 같아요....
ㅋㅋ
바라지도 못하구요...ㅎㅎ

뽀송이 2007-12-12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멋지게 한 해 마무리 하시는 것 같아 부럽습니다.^^

멜기세덱 2007-12-12 21:3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아직 올해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좀더 기대를 해 봐야죠...ㅎㅎ
난 아직 배고푸당...ㅋㅋ

다락방 2007-12-12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부러워서 달려왔어요!! 축하합니다 :)

멜기세덱 2007-12-12 21:34   좋아요 0 | URL
ㅎㅎㅎ 너무 늦게 오셨쎄요...ㅎㅎ
감사합니다...ㅎㅎ 모든게 다 다락방님 덕분이에요...?ㅎㅎㅎ

순오기 2007-12-13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축하합니다!
이런 건 메인에 대문짝만하게 달아 놔야 하지 않을까요?
축하부터 올리고 일등 리뷰도 찬찬히 잘 읽었습니다! ^^
댓글은 주렁주렁... 추천은 짠돌이? ㅎㅎㅎ

로쟈 2007-12-13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무스탕 2007-12-13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한 건 크게 하실줄 알았습니다. 하하하~

chika 2007-12-13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축하드립니다!! 멜기세덱님께성 원하시던 즐찾배가운동은 저절로 되겄슴다! ㅋ

프레이야 2007-12-13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해요~~~ 세덱님^^

dalpan 2007-12-13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여세를 몰아~

리치보이 2007-12-14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마노아 2007-12-14 0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당선 사실을 지금 알았어요. 멜기세덱님 축하드려요! 이건 진짜 너무 부러운 일이잖아요^^

드팀전 2007-12-14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해요

miony 2007-12-14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축하드립니다.^^

라로 2007-12-16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모낫!!!!축하해요!!!!이제 애인만 생기면 되겠네!!!!요!!!!ㅎㅎㅎㅎ

가시장미 2007-12-16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축하드려요. ^^ 아.. 어떻게하면 저런 리뷰를 쓸 수 있을까요?
저도 여러모로 반성을 해보아야 할 것 같네요.
아잇! 갑자기 제 서재에서 지우고 싶은 리뷰가 막 생각나네요.
대충써서 올린 리뷰들 있잖아요 ㅋㅋ
앞으로는 썼다 지웠다, 고민하고 고민하면서 리뷰를 써야 할 것 같네요.
멜기님께 중요한 것을 배웁니다. :)

이름없는꽃들 2007-12-18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책을 꼭 사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중은 현명하다고들 말하지만, 더욱 현명해지고 지혜로워지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절망을 많이 느끼는 요즘 저부터 시작해 주위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인문학을 함께 공부해 나가는 작업을 해야겠어요.

시비돌이 2007-12-22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당분간 책 값 걱정안하시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