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의 잠 동시가 좋아요 10
신새별 지음 / 문학과문화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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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서른이 어른인 줄 알았다.

 

 어른이 된 나에게 동시는 유치하진 않아도 좋지도 않은, 어중간한 글귀의 모음일 줄 알았다.

 

 창문을 열어놓고 [발의 잠]의 첫 시 '발의 잠'을 읽었다.

 그의 까만 발이 잠을 자고 신발이 그 앞을 지킬 때 봄의 저녁이 내 옆에 가만히 앉았다. 나는 잠에서 시작해 잠으로 끝나는 [발의 잠]을 저녁에게 바쳤다.

 

 지쳐 쉬고 싶을 하늘이 열매를 내려다보며 맑은 표정을 짓는다. 고슴도치 내 마음이 자꾸 다른 이를 찌른다. 화석 의자 앞에서 민망한 내가 화석처럼 굳는다. 한 장 넘어갈 때마다 나는 점점 시인의 표정이 되고 시인의 마음이 되어가며 마지막 시까지 조용히 시인을 따라갔다. 물끄러미 쳐다보다 울기도 했다. 무턱대고 달려가며 '어디 한 번 읽어봐라' 내지르지 않고 물에 설탕을 타면 설탕물이 된다며 곁으로 다가온 읽는 이를 가만히 안아주는 시는 무척 힘이 세었다.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것을 아름답다고 이야기 하지 않는 시의 힘이었다. 아픈 것을 아프지 않다고 이야기 하지 않는 시의 힘이었다.

자랑하지 않았는데 부러웠고 생색내지 않았는데 고마웠다.

 

 고마운 시를 무척이나 오랜만에 만나서 나는 시집을 다 읽고도 몇 번을 더 읽었다. 

 잠이 시작되는 밤이었다. 고단한 손발이 쉬고 긴장이 독처럼 오른 근육이 풀어지는 밤이 와 있었다.

 

 나를 울린 동시를 책상에 꽂아두고 나는 쓰던 것을 다시 시작했다.

 쓰던 것은 여전했고 나도 여전한데 그 앞에 동시만 새로웠다.

 

 하루의 끝에 선물처럼 잠의 시간이 찾아오는 것처럼

어른이라고 착각하는 어른이들에게 가끔 선물처럼 시가 찾아온다.

그리고 나는 편안하게 잠을 잔다. 어둔 밤 끝내고 내려온 아침빛에 개운하게 일어나는 잠을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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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표적인 수필가 87인이 내 놓은 나의 대표작
김시헌 지음 / 수필과비평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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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한창 소설이 좋다가 조금 머리 크고 나서는 시가 좋았다.

 고작 몇년 사회생활 했다고 닳고 닳은 인간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에 지레 지쳐버린 요즘은 수필이 좋다.

 

 이야기는 어차피 허구, 시는 비유와 상징이 난무해 피곤하다고 느낄 때 수필을 폈다.

 

 이렇게 대단한 소설을 쓴 작가도 아궁이에 불 지피며 눈가를 훔치는 평범한 이구나

 이런 존경할만한 어른도 가끔은 어처구니 없는 것에 걱정하고 안달복달하며 그렇게 인생을 사는구나

 

글에는 쓰는 사람이 들어가야 진심이라고 하더라.

내 피와 살, 내 조각조각이 들어가 있지 않으면 글이 숨쉬지 않는다고.

 

나는 수필에 삶의 흔적을 담고 그 사유의 결실을 엮어 들려주는 작가들이 좋아졌다.

간결한 싯구보다 주저리주저리 넋두리도 늘어놓고 이판저판 벌려놓은 모양새가 좋다.

스펙타클한 사건과 사고, 아름답고 처절한 인물이 날개를 펼치는 화려한 이야기가 아니라 동네 시장에서 사과를 고르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라 더욱 싱그럽다.

 

 산책길 팔등을 간지럽히는 바람처럼 실체가 분명하면서도 아련한 이 느낌은 수필이어서 가능하지 않을까.

 

 내로라 하는 수필가들의 대표작을 담아낸 이 책을 나는 참 감사한 마음으로 읽었다.

 

 맹난자 선생님의 글이 유난히 좋았고 김수봉 선생님의 글에선 눈물이 났다.

 

글쓰기가 참 피곤하다고 느꼈던 어느날 저녁에 이 책을 읽고나선, 글쓰기는 이렇게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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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의 방 푸른도서관 41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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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나타났다. 소희를 버리고 갔던 엄마는 아름다운 얼굴과 날씬한 몸매에 명품을 걸치고 찾아왔다.

 

 발 뻗고 누울 자리가 있고 함께 밥을 모여 먹는 식구들이 있고 학교를 마치고 도와야 했던 부엌이며 집안일이 있던 소희는 그렇게 신데렐라가 되었다. 공부는 잘 하고 예쁘지만 부모님 없는 불쌍한 고아였던 소희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 - 물리적이든 정서적이든 - 이 많지 않았기에 처음부터 결핍에 무지했다.

 

 엄마에 대한 원망과 아픔도 그저 단지 지금 옆에 없기 때문에 오히려 덤덤했다.

 

 그런 소희에게 엄마가 나타났다. 그것은 소희가 몰랐던 세계, 부유하고 선망의 대상이 되는 세계이자 새로운 갈등이 내재되어 있는 세계의 출현이었다. 엄마는 그간 소희 스스로도 몰랐던 결핍과 그에 수반하는 욕망을 몰고 온 것이었다.

 

 부잣집에 성적 좋고 얼굴 예쁘고 성격 차분한 아이, 그렇게 엄친딸이 된 소희는 새로운 세계 속에서 스스로의 새로운 모습을 본다. 고아였던 과거가 밝혀지면 예전에는 당연하던 대우들을 다시 받게 될까 두려워 친구들에게 거짓말을 계속한다든지, 자신을 어렵게 대하는 엄마에게 때로 날카로운 말을 때로는 거짓말을 한다든지. 이전에는 없던 욕심이 소희 안에서 고개를 들면서 이런저런 갈등이 계속되지만 어쨌거나 이것은 결국 소희를 성장시키는 계기들이 되고 소희는 솔직하고 담백하게 자신의 자리를 다시 찾으며 이야기는 마무리 된다.

 

 소희가 겪는 내면적인 갈등과 성장을 그리기 위해 너무 집중한 탓인지 소희를 제외한 모든 인물들은 힘이 빠져 있다. 일어나는 사건이나 갈등 들이 소희가 컬러풀하고 그외는 모두 무채색인 느낌이다. 아버지의 폭력이라든가 리나의 갈등이라든가 엄마의 고뇌라든가 이런 것들이 그다지 개연성있게 전개되거나 해소되지 않고 그냥 흘러가버린다.

 

 그래서 참 아쉽다. 그리고 잘 모르겠다.

 

 소희가 이해되거나 안쓰럽다거나 공감간다거나 하다못해 그외 다른 인상이나 이야기의 잔상이 남아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다.

 

 엄마와의 유대 회복, 친구들과의 관계 형성(사회적 자아) 이 두 축을 조금 더 잘 벼렸다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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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탄생 - 근대 유럽을 만든 좌우익 혁명들
데이비드 파커 지음, 박윤덕 옮김 / 교양인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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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국가 기초, 사회 제도, 경제 제도, 조직 따위를 근본적으로 고치는 일. 이전의 관습이나 제도, 방식 따위를 단번에 깨뜨리고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급격하게 세우는 일이다. 비슷한 말로 혁신, 변혁, 개혁, 의거, 쿠데타 등이 있다.

 

1500년대 이후, 지구는 혁명의 도가니였다. 정치, 경제, 사회, 종교적인 관습이 점차로 무너지고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를 만들기 위해 투쟁해왔다. 투쟁은 새로운 인식으로부터 출발했다. ‘특별한 계층이나 집단 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권리가 있다. 이 권리는 타자가 부여하는 권리가 아닌 인간이 인간이기 때문에 갖는 본연의 권리이며 때문에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 신과 왕, 사제에게 그 신체 뿐 아니라 사상마저 귀속되어 왔던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인식은 그 자체로 혁명이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옛것이 부서져 사라지고 새것이 들어서자 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어느 순간부터 변화란 발전이며 진보이자 자유가 되었다. 사람들은 옛것을 부수기 위해 투쟁했고 투쟁은 혁명이 되었다.

 

그런데 이 ‘변화’의 대목에서 우리는 고약한 의문에 빠진다. 대체 개혁과 혁명은 무엇이 다른가? 반란과 혁명의 차이는 또 뭘까? 무엇이 혁명을 혁명으로 완성하는 걸까? 데이비드 파커를 포함한 12명의 저명한 사학 교수들은 이러한 의문에 답하기 위해 근대의 혁명사를 다룬 책을 펴냈다. [혁명의 탄생]은 지난 500년의 세계사(서양사) 속 혁명을 차례차례 살펴보며 혁명에 대한 보다 깊은 탐구와 고찰을 돕는다.

 

대학생들을 위한 혁명사 강의 교재로 만들어졌다는 이 책은 유럽과 미국 등 서양세계 속에서 나타난 혁명을 사례별로 설명한다. 각 장은 혁명의 원인, 과정, 결과를 기술하면서 사회, 정치적 맥락에서 살펴보거나 그 속에서의 이념의 역할 등 다양한 시각으로 혁명을 담아냈다. ‘혁명’ 자체에 대해 다룬 ‘1장, 혁명이란 무엇인가’에서 출발해 네덜란드, 미국, 프랑스 등을 거쳐 12장에서 소비에트 탈공산주의 혁명까지 다룬다. 그런데 이렇게 친절한 설명의 끝에 달려 있을 법한 결론 챕터는 등장하지 않는다. 핵심 논점들은 책에서 제시하되 결론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독자의 자유로운 고찰을 배려한 것이기도 하지만 혁명이란 그만큼 무엇이라 규정하거나 정의하기 힘든 논제라는 것을 말없이 보여주는 대목이다.

 

2000년대, 지구는 여전히 혁명 중이다. 혁명의 근원은 유럽, 주무대 역시 미국을 포함한 서양세계였으나 더 이상 혁명은 어느 지역만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우리 시대 혁명은 단순히 정치적이고 산업적인 것이 아닌 생활 저변의 개혁, 인식 자체의 혁신 역시 옛것을 깨뜨려 새것을 세우는 변화가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탄생한 현재의 대한민국도 일종의 혁명 중에 있는 나라 아닐까. 사상 최고의 투표율을 기록한 선거가 낳은 대통령이자 유신정권의 딸이라는 점에서, 대통령 스스로 개혁을 다짐했을 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대통령에게 다각도의 혁명을 청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 한국은 혁명의 불씨를 뜨겁게 품고 있다. 때문에 [혁명의 탄생]의 한국어판 머리말 ‘혁명은 언제 탄생하는가’의 내용은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민중의 사회적 요구들이 혁명 이데올로기의 중심을 차지하게 되면서 인류가 한층 더 평등한 사회를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때로 혁명은 실패하더라도 혁명의 사회적 성과들은 혁명 안에서보다 그 밖에서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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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가게 - 제13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53
이나영 지음, 윤정주 그림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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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마시멜로 하나를 먹지 않고 참고 기다리면 이따가는 두 개를 먹을 수 있어.’ 마시멜로 이야기로 유명해진 스탠포드의 마시멜로 이론은 ‘욕망의 인내(자기절제)는 성공의 토양이 된다’는 가설을 만들어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실험에 주목했고 미래의 성공을 위해 눈앞의 마시멜로를 참아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 당장의 괴로움을 견디면 분명 마시멜로 2개의 행복한 삶이 당연히 따라오는 것으로 철썩같이 믿고 만져보지도 못한 2배의 마시멜로를 기대하며 오늘을 꾹꾹 눌러 참는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모두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삶은 마시멜로 실험장이 아니다. 누구도 먼 미래에 주어질 2배의 마시멜로를 보장할 수 없다. 그리고 보다 더 근본적으로, 2배의 마시멜로를 소유하게 되면 반드시 행복할거라고 자신하는가?

 

 

 

 

 

“네가 진심으로 행복했던 때의 기억을 주면 된단다.”

“겨우 그거예요?”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무려 시간을 주면서 그 대가가 행복했던 기억이면 된다니... 할아버지의 말이 의심스러웠다

“그런데 행복한 기억이 물건도 아니고 어떻게 드리죠?”

“너는 생각만 하렴. 그러면 시계가 알아서 움직일 거란다.

어때? 시간을 사겠니? 너한테 나쁠 건 없을 것 같은데 말이다. 더구나 너는 시간이 필요하고 말이지.”

할아버지 눈이 초승달 모양이 되어 웃고 있었다.

그래, 어차피 내게 지난 기억 따위는 필요 없다. 엄마도 늘 말했다. 앞만 보고 달리는 거라고.

페이지 17

 

 

 

 

 

 

 [시간 가게]는 말 그대로 시간을 파는 가게와 거래하게 된 초등학생 윤아가 겪는 일을 그린 판타지 소설이다. 2배의 마시멜로를 쫓아 달리며 가혹한 현재쯤이야 견뎌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어른들의 판타지 그리고 그런 어른들이 심어준 꿈을 자기 것으로 여긴 채 이렇게 살면 잘 살게 될 것이라 생각하는 아이들의 판타지에 균열을 일으키는 소설이다.

 

 남다른 스펙, 억대 연봉과 수입차가 ‘성공’이 아니라는 말은 못하겠다. 요즘 같은 시대에 그것은 분명 성공한 삶이다. 그리고 그렇게 성공했을 때 쉽게 행복해질 수 있는 것도 사실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렇게 성공하기까지 우리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는가? 시간은 순간의 조합이고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의 총합이다. 미래란 현재가 차곡차곡 쌓여서 완성되는 세계이다. 지금이 행복하지 않은데 어떻게 미래가 행복할 수 있을까? 2배의 마시멜로를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참았는데 정작 마시멜로를 즐겨야 할 내가 그 미래에 없다면 지금의 인고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할머닌 아빠 기억해요?”

“그럼, 기억하제. 왜 아빠 보고 잡냐?”

나는 대답 대신에 할머니 쪽으로 몸을 돌렸다.

“눈에 뵈지 않는다고 볼 수 없는 게 아니제.

눈으로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고 내 몸이 기억을 하는디.. 가심은 말할 것도 없고.”

시간 가게의 할아버지도 할머니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다.

온전히 몸과 마음이 기억하는 행복이라고 말이다.

“할머닌, 행복이 뭐라고 생각해요?”

“이게 행복이제.”

할머니가 날 꽉 안았다.

페이지 144

 

 

 

 

 

 

  영민한 [시간 가게]는 이런 부분을 톡톡 건드리며 이야기를 펼친다. 영어고사 1등, 만점 시험지와 행복한 추억을 맞바꾸게 하며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만 외치고 끝나지 않는다. 더 팔 수 있는 추억이 없을 정도로 피폐해진 윤아가 거꾸로 자신의 시간을 팔아 자기 것이 아닌 추억을 사들이는 장면에 이르면 이야기 깊이 숨겨져 있던 작가의 진짜 목소리를 듣게 된다. 성공은 살 수 있지만 행복은 살 수 없다. 행복은 나와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만들어지고 그 관계가 낳은 순간들이 쌓여 나를 만든다. 나와 너는 맞닿아 있고 우리의 삶은 순간을 영위하는 시험장이 아니라 과거가 현재로 또 현재가 미래로 이어지는 강이다.

 

 

  우리는 보통 현재의 편안함과 즐거움을 마시멜로라 여기고 그런 것들을 외면하는 것이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버티는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마시멜로의 본질은 ‘욕망’이다. 거짓말을 해서라도 1등을 하고 싶은 욕망, 가족과의 단란한 시간을 버려서라도 출세를 해야 한다는 욕망, 부당한 방법을 써서라도 큰돈을 벌겠다는 욕망. 그렇게 되면 누구보다 행복해질 것이라는 욕망. 우리가 외면해야 하는 진짜 마시멜로란 이 욕망이다.

  [시간 가게]가 깊은 인상을 남기는 소중한 작품이 되는 것은 바로 이 욕망을 과감히 버리는 주인공 윤아가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마지막에 이르러 윤아는 더 이상 욕망에 휘둘리기를 거부하고 시간 가게를 벗어난다. 그리고 이제 보다 주체적이고 의식적으로 움직이겠다는 윤아의 다짐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욕망의 질서 아래 수동적으로 매여 있던 인물이 욕망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가 욕망의 파괴적인 본질을 깨닫고 스스로 그 틀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는 그 주체가 청소년이기 때문에 더욱 극적이고 그래서 어른들에게 더 속 깊은 메시지를 남긴다.

 

 

 

 

 

 

“근데 그 학교는 왜 들어가려는 거야?”

“...”

엄마가 하라는 대로 했을 뿐, 이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엄마와 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발이 퉁퉁 붓도록 일하고 고지서를 보며 한숨짓는 엄마에게 내가 유일하게 해 줄 수 있는 선물이었다.

“난 이제부터 좀 달라지려고. 숨 막혀서 죽을 거 같거든”

“어떻게?”

“아직 어떻게 할지 모르겠지만 지금 내 마음이 중요하지 않겠어? 노력하다 보면 달라지지 않을까 싶고. 너도 그랬으면 좋겠어.”

페이지 169

 

 

 

하지만 분명한 건, 행복이란 내가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말하고 싶은 것에 대해 생각해 봐야겠다.

그리고 시간을 내가 주인이 되어 써야 할 것이다.

‘윤아야, 너 지금 어떠니?’

앞으로 난 매 순간 이렇게 나 자신에게 물어볼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를 믿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대견하게 느껴졌다.

페이지 197

 

 

 

 

 

 

 

 슬로시티가 관광상품으로 떠오르고 심신힐링을 위한 템플스테이 예약은 꽉 찬다고 한다. 하지만 자살률은 높아만 가고 행복지수는 낮아져간다. 우리들은 과연 어디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여야 ‘이렇게는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고 깨달을 수 있을까? 밥상머리에 가족 간의 정든 대화가 돌아오고 돈이 성공의 기준에서 멀어지면 그때야 알게 될까? 그래도 분명한 것은 아직 우리들은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 완전히 잊어버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욕망을 위해 추억을 팔았지만 곧 우리가 삶에서 찾아야 할 진짜 중요한 것을 깨달은 윤아가 소설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어른들이 윤아처럼 결심하고 또 많은 아이들이 그런 어른들로부터 욕망이 아닌 진짜 삶을 위해 움직이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시간 가게]가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을 받고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는 것부터가 그 증거이자 그런 노력의 결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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