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촌놈이 아니고 진짜 촌놈이 부산엘 갔다. 택시를 탔는데 갈려는 곳이 설명하기 어려워서 내비게이션을 찍고 가자고 부탁했다. 연세 지긋해 보이는 기사분은 내비게이션을 잘 다루지 못했다. 우선 정차하면 목적지를 입력하기로 했다. 정차했는데 기사분 내비게이션은 워낙 구닥다리여서 목적지를 입력하는 것이 까다로웠다.

첫 번째 정차에서 목적지 입력에 실패했다. 두 번째 정차에서도 실패했다. 세 번째 정차에서도 실패했다. 운전 기사분은 비록 고물 내비게이션을 가졌지만 ‘끈기’도 가졌다. 포기를 모르신다. 보다 못한 내가 나섰는데 나는 기계치다. 나도 실패했다. 급기야 한 참 전부터 하고 싶었는데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내밷고 말았다. “기사님 좀 좋은 내비게이션을 장만하시지 그러셨어요” 

약속 시각은 다가오고 마음이 급해진 나는 내 휴대전화를 꺼내서 내비게이션을 검색했는데 목적지를 모두 입력하기도 전에 연관 검색어로 ‘여기 갈 거니?’라고 물어본다. 운전석 옆에 내 휴대전화를 두었다. 음성 안내를 듣고 운전하면 되겠거니 생각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기사분은 정차할 때마다 내 휴대전화 내비게이션을 내려다보았다. 아니다. 탐독하셨다. 음성안내를 듣고 운전하는 것이 익숙하시지 않으셨다. 

어쨌든 택시는 목적지를 향해서 꾸역꾸역 다가갔다. 기사분이 ‘휴대전화 내비게이션은 실시간 교통정보를 반영하는 거냐’고 물으셨다. 나는 실시간 교통정보를 반영하지 않는 내비게이션을 운용하는 기사분이 당황스러웠다. 본인이 평소 다니는 경로와 차이가 있는 모양이다. 내 휴대전화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을 따라가면서 기사분은 연달아 감탄하셨다. 

차가 꽉 막히는 다른 구간과는 달리 우리가 가는 구간은 뻥 뚫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정차할 때마다 내 휴대전화를 쓰다듬으면서 성능을 칭송하셨다. 아니다. 찬양하셨다. 잠시 뒤에 목적지라면서 내리란다. 요금을 계산하는데 마침 기사분 휴대전화가 울렸다. ‘내 사랑 마나님 하트 하트(원래는 도형이었는데 내가 그림으로 하트 표시를 입력할 줄 몰라 할 수 없이 텍스트로 입력했다)이라는 발신자 정보가 보였다. 내리긴 내렸는데 목적지는 신호등 있는 건널목을 건너야 하는 맞은편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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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8-02-11 0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작가님 고생 많으셨네요ㅠㅠ부산 가신 건 부럽습니다만^^;

박균호 2018-02-11 05:29   좋아요 0 | URL
아...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그렇게 고생은 아니었어요. 맞아요 부산은 참 매력적인 곳이에요.

2018-02-11 2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균호 2018-02-11 22:36   좋아요 0 | URL
아..네 반갑습니다. 원래 웃자고 쓴 이야기 입니다. ㅎㅎㅎㅎ
 

잡지를 읽자

독서의 주요 기능이 지식과 상식을 늘이기 위함이라면 잡지를 굳이 책과 구분할 이유가 없다. 잡지도 엄연히 책이다. 잡지를 오로지 시간죽이기용 인쇄물이라고 매도할 필요도 없다. 이 세상에는 유용하고 깊이 있고 지식이 풍부한 잡지가 차고 넘친다. 또 잡지는 책에 비해서 시간과 장소에 더 자유롭다. 

잠시 잠깐의 빈틈에 뭔가 읽을거리를 찾는다면 잡지만 한 매체도 찾기 힘들다. 최소한 매월 3가지 종류의 잡지는 꼭 읽어야 한다고 본다. 시사 잡지, 교양잡지, 취미잡지가 그것들인데 괜찮은 잡지 3종 이상만 꾸준히 봐도 꽤나 자랑할 만한 상식을 갖춘 사람이 된다. 


인디고

지난 2010년부터 나오기 시작한 ‘국제’인문학 잡지다. 국제적인 잡지답게 영미 권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에도 수출되는데 더욱 놀랍게도 우리가 저서로만 만나는 세계적인 석학들과 대담을 하고 그들의 글을 받아서 잡지를 만든다. 하워드 진, 놈 촘스키, 슬라보예 지젝과 같은 당대를 이끌어가는 사상적 원류인 석학들은 모두 인디고와 대담을 했고 그들의 말과 생각은 인디고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문예잡지

문예잡지가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는 잡지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창작과 비평>의 경우 북한의 3차 핵실험, 헌법의 품격, 재판관의 자격 따위의 시사성이 높은 주제를 다루기도 하고 박연수나 성석제 같은 동시대의 인기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선보이고 있다. (2113년 여름호)

<문학동네>, <현대문학>, <문학과 사회>등도 문예지로서 좋은 평가를 받는데 문예지마다 특정한 흥미 있는 주제를 정해서 문학 작품을 게재한다. 문학을 보는 눈이 넓어질 뿐만 아니라 사회를 바라보는 안목이 명확해지고 사려 깊어진다. 


녹색평론

군대를 제대하고 강의실에서 만난 김종철 교수님이 “내가 말이야, 잡지를 하나 만들었거든. 근데 다른 교수들이 어렵다고 해. 내가 보기엔 어려울 거 하나도 없는데 다들 어렵다고 해”라고 우리들에게 뭔가 불만 섞인 얼굴로 말씀하셨을 때 우리들 중 아무도 그 잡지가 20년 이상 장수하고 우리시대의 생태문화를 이끌어가는 어피니언 지도자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당시 김종철 교수님을 존경하던 우리 제자들이 보기에도 그 잡지는 시대에 뒤떨어지고 금방 폐간이 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잡지였다. 내가 기억하는 90년대 초중반은 부자의 아이콘이었던 ‘자가용’이 ‘현대인의 필수품’으로 전환되려는 찰나였고 내 집 마련 보다 자가용 마련이 더 우선이 최초의 시대였다. 그런 물질만능의 시대에 칼라사진도 없고, 광고도 없는 당시로서는 생소한 생태관련 잡지가 롱런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생태를 살리는 농업,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정책, 지역사회의 자생력을 높이는 사업, 사랑과 자발성의 교육, 녹색이 우선시 되는 과학 등의 주제뿐만 아니라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적인 주제도 <녹색평론>은 많이 다룬다.


The Economist 

The Economist 는 영국에서 발행되는 경제주간지라기 보다는 최고 수준의 글로벌 시사 주간지라고 해야 마땅하다. 잡지의 이름처럼 경제뉴스만을 다루지 않고 정치 문제, 문화적인 이슈 심지어 예술과 연예에 대한 뉴스도 많이 다룬다. The Economist 의 매력을 크게 2가지로 말한다면 깊이 있는 다양한 뉴스와 그 객관성을 꼽겠다. 이 잡지는 매회 150만부를 발행하는데 그 중의 절반은 영국이 아닌 해외의 몫이라고 한다. 그만큼 전 세계적으로 그 개관성과 공정함을 인정받는 주간지다. 영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이코노미스트가 영국영어로 쓰이기 때문에 낯선 면도 있겠지만 격조 있는 고급영어라는데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 


수학동아

초등 학교 때 구구단의 7단을 어려워할 때부터 애당초 숫자 쪽으로는 글렀다고 생각했다. 대학 전공을 영문학으로 선택한 후 숫자를 만나지 않아서 좋았다. 성인이 되고 내가 혹시 원래는 수학에 재능이 있는데 학생 때 너무 무관심해서 수학을 못했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수학의 정석>을 늦게야 펼쳐보았다. 역시 ‘집합’에서 더 이상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단순히 숫자의 학문이 아닌 사람의 냄새가 나는 수학책이라고 해서 <수학 문명을 지배하다>을 들어봤다. 역시 수학의 문외한으로선 읽기 어려웠다. 


<수학동아> 2013년 5월호의 Editor’s note를 읽고 그동안 내가 왜 수학을 잘 못했는지 알겠다. 지우개를 사러 문구점에 갔는데 맛있게 생긴 캐러멜이 있기에 입안에 넣었는데 알고 보니 그건 캐러멜이 아닌 캐러멜처럼 생긴 지우개 이었단다. 지우개를 누가 봐도 지우개처럼 보이게 만들지 않고 캐러멜처럼 보이게 만든 창의력이 그 지우개를 특별한 지우개로 만들었다. 수학의 본질(지우개)을 고스란히 전달하면서도 맛있는 음식처럼 보이는 수학 공부가 필요하다. 그러니까 나는 누가 봐도 쓰디 쓴 맛없는 수학책과 씨름해왔다. 이 잡지는 수학과는 담을 쌓고 지낸 필자에게 처음으로 수학이 재미있는 학문이며 실생활과 매우 밀접한 공부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개미의 움직임에서 페르마의 법칙을 배우고, 포인트 카드로 우수 고객을 예측하는 기업들의 비결은 수학의 통계분석법의 활용이라는 사실 등 을  볼 때 수학은 우리 실생활과 함께 호흡하는 학문이지 대학에 가기 위해 마지못해 공부하는 골치 아픈 장애물은 아니다.


독서평설

군대 제대 후 복학준비를 하면서 사촌동생의 방에서 이 잡지를 처음 봤다. 그때가 1991년 당시 고2인가 고3이었던 사촌동생은 그러니까 이 잡지가 창간되자마자 발 빠르게 구입을 했는데 그 안목이 대단했다. 당시 대입수험생의 대중문화로는 만화잡지 ‘보물섬’과 ‘드레곤 볼’이 압도적이었다. 그런 대단했던  ‘보물섬’이 요즘은 헌책방에서 추억의 골동품으로 분류되어 정가 이상의 가격으로 팔리고 있는 점을 고려해볼 때 <독서평설>의 생명력은 정말 감탄스럽다. 더구나 수명이 특히 짧은 국내잡지계에서 대중잡지가 아닌 학습용 잡지가 이렇게 긴 수명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독서평설>의 내용의 충실함은 인정한다. 당시 다소 촌스러운 디자인의 이 잡지를 몇 페이지 들쳐보고는 내용에 담긴 이 잡지의 혁신에 감탄했더랬다. 고등학교 교과서의 단 한 줄이나 한 문단에 주목해서 풍부한 배경자료와 원전을 제공하고 해설도 곁들인다. 논술과 심층면접에 여러모로 도움이 될 만한데 이 잡지의 가장 큰 장점은 다소 어렵더라도 곁에 두면서 어른이 되어서 다시 읽어도 되고, 또 어른들이 아이들과 함께 읽기에 참 좋다는 점이다.

필자의 경우 <꺼삐딴 리>를 비롯해서 많은 명작들을 이 잡지에서 처음 접하는 쾌거를 거뒀다. 


National Geographic

원래는 미국국립지리학회의 기관지이지만 일반인을 위한 교양지로 널리 사랑받는 잡지다. 오랫동안 두고 볼만 한 좋은 잡지다. 지리뿐만 아니라 지구에 관한 모든 흥미로운 사실을 멋진 사진과 함께 제공한다. 사실 이 잡지는 눈이 즐거워지는 잡지다. 2012년 12월호는 이 세상에서 제일 큰 나무를 소개하고 있는데 내지로 접혀 있다가 펼치면 70cm정도의 길이로 펴지는 나무 사진이 일품이다. 뒷면에는 그 나무속에 사는 야생동물을 그래픽으로 담았다. 그래서 이 잡지만큼은 절대로 버리지 못한다. 또 중고책 시장에서 이 잡지는 높은 시세를 자랑한다. 영어에 전혀 문외한이라도 지리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 잡지를 일단 펼치면 ‘와!’ 하는 감탄사를 절로 내지른다. 


씨네 21

고등학교 시절 읍내에 나가면 서점에서 사보던 영화 잡지 <스크린>을 아직 잊지 못한다. 누군가 <스크린>을 학교에 가지고 오기라도 하면 온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보고 심지어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의 사진을 오려가기도 해서 ‘버릴 것 하나 없는’ 소중한 잡지였다. 종이 잡지의 위력이나 역할이 인터넷 시대를 맞아서 많이 약화된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영화잡지로는 <씨네 21>만 겨우 살아남은 현실은 안타깝기만 하다. 필자가 고교 시절 열광했던 <스크린>에서 일하던 평론가 ‘장성일’이 제대로 된 영화 잡지를 만들겠다고 야심차게 투자자를 찾았지만 그런 잡지를 만드느니 차라리 은행에 예금하는 쪽이 낫겠다는 비아냥거림을 까지 들었다. 천신만고 끝에 ‘돈은 안 되지만, 좋은 일’이라는 논리로 ‘대선주조’회장의 투자를 받아 1995년에 시작한 잡지가 <키노>이었다. <씨네 21>도 같은 시기에 창간되었다. 그렇게 어렵게 시작한 키노가 100호를 채우지 못하고 99호에서 결국 폐간되었는데 우리나라 문화계의 척박함을 절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키노>는 폐간되지 십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독자들이 이 오래된 잡지를 소중히 보관하고 틈틈이 읽는다. 지나치게 현학적이었다는 비판이 상당했지만 그 현학적인 비평에 열광한 마니아의 충성도 대단했기 때문이다. <키노>는 할리우드 스타의 스캔들이나 사생활에 많은 몫을 할당한 기존의 영화잡지와는 달리 작가주의 영화잡지를 표방하면서 영화학과 교수들의 논문집에 비견되는 수준 높은 영화비평을 실었다. 결국 독자와 광고가 줄어드는 문제를 만났고 내외부적인 여러 문제 때문에 폐간되기에 이른다. <키노>를 만들었던 관계자나 독자 모두에게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키노>는 작가주의 비평에 기초한 심도 깊은 영화비평을, <씨네 21>은 대중성에 주안을 둔 편안하게 읽는 영화잡지로 서로를 보완해주는 관계로 양립한다면 독자들은 다양한 선택의 폭을 즐기고 각자의 취향에 맞는 문화생활을 즐기지 않을까? 


그나마도 <씨네 21>가 멀쩡히 정기적으로 발행되는 잡지인데 구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상황은 더욱 당황스럽다. 동네서점에서는 잘 팔지 않고 그렇다고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자니 배송료의 부담과 금방 품절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어찌됐든 우리 문화계가 좀 더 활성화되고 다양한 콘셉트의 영화잡지가 등장하기 전까지 일단은 <씨네 21>만큼은 잘 지키고 볼 일 이다. 


PAPER

흔히 20대 젊은 처자들이 좋아 할 만 한 감수성과 예쁜 디자인을 겸비한 잡지라는 말을 듣는다. 또 날이 갈수록 상업적으로 변해가지 않느냐는 비판도 한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PAPER>는 대중적인 주제를 다양하게 다루면서 진지함을 잃지 않고 잡지 특유의 시각적인 만족을 시켜주는 몇 안 되는 잡지중의 하나다. 2013년 7월호의 면면을 봐도 그렇다. 인터뷰 대상이 뮤지션, 시인, 밴드, 시인농부다. ‘서울 레코드 페어 집중 취재기’, ‘개털이어도 제대로 즐길 수 있다’등의 기사는 젊은이를 위한 감성과 문화적인 충족을 만족시켜주고, ‘진지진지 열매를 먹고 쓰는 소년 만화 분석’이라는 읽을거리는 여느 젊은 남녀를 대상으로 하는 잡지들이 흉내 내기 힘든 지성에 대한 요구를 감당한다. 그러면서도 예쁘다. 필자가 생각하는 좋은 잡지의 최우선 조건은 ‘과월호의 가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 달 만 지나도 재활용에 버려야 하는 잡지보다는 과월호가 되어도 가치나 실효성이 없어지지 않아서 오래 두고 읽어도 좋은 잡지가 좋은 잡지다. 이런 기준에 비추어 본다면 <PAPER>는 좋은 잡지임에 틀림없다. 이사를 갈 때 꼭 챙겨가야 할 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소장 가치’는 보유하고 있는 잡지다. 그래서 이 잡지는 유독 장기 구독자가 많고 부담 없는 선물로 친구나 지인들에게 권하기에 좋다.


월간 사진


필자를 포함해서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취미를 시작하면 먼저 장비를 최고로 갖추어야 하는 압박에 시달린다. 필자가 한때 미친 듯이 심취했던 테니스와 사진에 똑 같이 ‘장비병’이란 용어가 존재한다. 라켓과 사진장비를 최고로 갖추고 신제품이 나올 때 마다 마음이 끌리면서 정작 본연의 기술의 향상에는 덜 관심을 가지는 ‘장비병’ 말이다. 그러다 보니 테니스나 사진의 인터넷 커뮤니티마저 ‘사진 사이트’가 아닌 ‘장비 사이트’가 되기 십상이다. 사진을 취미로 하는 사람이 자기 스스로 생각하기에 지나치게 ‘장비’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 분류된다면 <월간 사진>을 권한다. 메이저 카메라 회사에서 신제품이 나올 때 마다 특집기사로 제품에 대한 정보로 잡지의 태반을 할애하지 않는다. 그리고 ‘기능위주의 사진 찍는 요령’에 관한 기사도 거의 없다. 다만 현대 사진의 흐름과 맥을 잘 집어주는 알찬 내용들로 지면의 대부분을 채운다. 탄성을 자아내는 풍경사진과 화려한 외모를 자랑하는 모델 사진도 거의 없다. 인터넷 사진커뮤니티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현대 작품사진을 대부분 게재하는데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는 전시회를 따로 가야만 보는 사진을 잡지를 통해 다양하게 감상한다. 좋은 사진집과 사전관련책의 소개와 사진전시회에 관한 많은 정보는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매력이다. 


Highlights For Children 

아이들의 영어공부를 위해서 영어잡지를 생각하고 있다면 <Highlights For Children>은 좋은 선택이다. 이 잡지가 미국에서 아이(kids)를 대상으로 하지만 막상 국내 독자가 읽을라치면 만만찮다. 우리나라 영어교재에서 잘 다루지 않는 미국의 실생활에서 많이 사용하는 쉽고 꼭 필요한 표현과 어휘지만 우리나라 사람에게 낯설다. 그래서 읽기에 쉽지는 않지만 일단 익혀두면 매우 요긴한 정보들이 가득하다. 아이들로 하여금 좀 더 창의적이게 하고, 좀 더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게 한다는 편집자들의 광고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아이들 스스로 생각하고 창의력을 키우는 많은 읽을거리와 생각거리가 많은 좋은 잡지이자 영어교재이다. 이런 종류의 잡지가 국내 영어학습자들에게 매우 효과적이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아이들이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한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영어공부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하는 영어로 하는 활동이 얼마나 효율적인지는 영어교육을 담당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vogue

순전히 독서가의 입장에서 패션잡지를 하나 봐야겠다면 <vogue>를 권하겠다. 솔직히 패션잡지에 대해 잘 모른다. 그리고 미용실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면 잘 들쳐보지도 않는다. 아무리 패션 트렌드를 익히는 목적이라고 해도 ‘사회 초년병에게 권하는 지갑’으로 120만 원짜리를 추천하는 기사를 보면 공감하기 힘들다. 그러나 적어도 독서가만큼은 매년 8월 달이 되면 <vogue>를 주목하자. 비록 남자라고 해도 말이다. <vogue>는 매년 8월에 특별부록으로 두툼한 ‘사진집’을 증정한다. 그것도 소프트커버가 아닌 제법 고급스러운 하드커버 <사진집>이다. 사진집은 소장가치가 높고 인테리어 효과(?)도 높아서 독서가들이 좋아하지만 가격이 비싼 탓에 섣불리 구매하지 못한다. 이러니 <vogue>의 사진집 부록은 정말 매력적이다. 게다가 사진집을 별도로 판매하지 않고 8월 달 호의 부록으로만 제작이 되니 자연스럽게 ‘한정판’인 셈이다. 본질에서 약간 벗어나지만 <vogue> 잡지 자체도 다른 패션잡지에 비해 패션에 약간 덜 치중하면서 여자들만의 대화의 소재가 되는 읽을거리가 많다는 점도 매력이다. 이 부록 사진집은 입소문이 나서 구하려는 사람이 많은 탓에 제법 비싼 값을 치러야 한다. 필자는<도시 그리고 여자>,  <the show>, <fashion pet>이 세 사진집을 소중히 간직한다. 


객석

최근 공연감상은 과거에 비해 그 애호가가 많아졌다. 아무래도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따라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까 싶다. 사람이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닌 즐기기 위해서 하는 행위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인간 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오페라, 뮤지컬, 연주회등의 클래식한 공연도 과거에 비해 그 수요가 많다. 공연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는 현상은 바람직하지만 기왕이면 그 공연에 대한 공부를 미리 한다면 더욱 그 공연을 즐기게 된다. 애초에 우리의 전통문화가 아니니 공부는 필수적이다. 공연문화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과 단행본을 통해서도 물론 얻는다. 그러나 단행본 책은 아무래도 담겨있는 정보가 한정되어 있다 보니 아쉬움이 많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도 좋지만 일부러 신경을 써서 일회성으로 정보를 검색해야하고 꾸준한 트렌드를 따라잡기 힘들다. 그래서 공연문화에 대한 정보는 ‘잡지 구독’이 더 좋다. <객석>이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일단 광고가 별로 없는 잡지라서 독자로서는 반길 만하다. 그리고 <객석>은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가령 지휘자를 인터뷰하면서 단원을 뽑을 때 뭘 중점적으로 뽑는지, 공연 때 연주할 곡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 또는 다음 음반은 언제 나오는지 등의 지극히 평범한 내용이 많다. 다양한 공연의 리뷰, 그리고 클래식의 역사뿐만 아니라 새 음반에 대한 소개 등 공연문화를 즐기는데 필요한 중요한 정보를 많이 담는다.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격주 간으로 발행하는 국내최고의 독서 및 출판 전문 잡지다. 잡지의 이름만 봐서는 독서와 책, 그리고 출판에 관한 잡지라고 생각하기 어렵지만 분야별로 각 전문가가 추천도서를 소개할 뿐 만 아니라 출판계와 관련된 이슈를 심도 깊게 분석한 다양한 읽을거리는 이 잡지의 자랑거리다. 독서분야에 있어서 기사의 다양함과 추천 도서의 수 그리고 객관성에 있어서 그 어떤 매체보다 우위에 선다. 특히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로 유명한  출판평론가 고 최성일의 아내 신순옥의 연재기사인 ‘남편의 서가’, 세계 전자책 시장의 동향을 빠짐없이 소개하는 교보문고 류영호 차장의 연재기사 ‘세계 전자책 시장 읽기’ 또한 독자들의 공감과 사랑을 받는 매력적인 콘텐츠다. 도서에 대한 정기적인 정보가 필요한데 여러 가지 이유로 일간 신문을 구독하기 어려운 독자들에게 좋은 대안이 되는 잡지라고 하겠다.  



학교도서관 저널

<기획회의>를 내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의 또 다른 잡지다. 학교 도서관의 관계자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 매우 유용하고 독서가들에게 뼈와 살이 되는 실용적인 정보가 많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잡지의 가장 큰 미덕은 도서관 관계자와 독서교육 전문가를 비롯한 현장에서 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이 잡지에 참여하고 있고 추천도서를 다른 외부의 영향력이 없이 오로지 교사와 독서교육의 전문가들이 직접 읽고 토론을 거쳐서 선정한다는 점이다. 소위 말해서 독자들이 접근하기 쉬운 서평들은 상당수가 출판사로부터 책을 증정 받아서 작성해서 객관성이 담보되기 힘들거나, 오로지 칭찬 일색인 주례사 서평인 경우가 많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 잡지의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이 잡지가 강조하는 ‘책 읽어주기’의 중요성에 깊이 동감하고 ‘책 읽어주기’가 부모로서 권장사항이 아닌 의무라는 일침에 혼자 책 읽기에 몰두한 부모로서 부끄럽다. 물론 학교에는 엄연히 ‘독서’라는 과목이 존재하지만 이 책만큼 실질적이고 유용한 독서교육에 대한 방법론과 자료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독서 공교육의 경쟁력 강화에 밑 바탕이 되는 잡지라고 보는데 ‘책을 보수하는 방법’을 상세히 알려주는 기사는 이 책이 얼마나 실용적인 정보가 가득한지 깨닫게 한다. 이런 잡지가 오래 살아남고 널리 읽혀야 우리 독서교육이 흔들리지 않는다. 


B

잡지 B 는 매월 전 세계에서 균형 잡힌 브랜드를 하나 씩 소개하는 특이한 콘텐츠를 자랑한다. 그리고 독자의 입장에서 광고가 전혀 없어서 반갑다. 물론 잡지의 콘텐츠보다는 오히려 광고를 더욱 눈여겨보는 독자도 있긴 하지만 광고가 전혀 없는 잡지는 대다수의 독자들에게는 매력적인 카드라고 본다. 매월 단 하나의 브랜드를 소개하다보니 그 브랜드의 생산품의 다양한 쓰임새와 실제 사용자의 사용 후기 및 현황을 빠짐없이 알게 된다. 단순히 유명브랜드라는 이유로 비싼 값을 지불했지만 막상 실제로 그 제품의 장점을 모두 살리고 활용하는 사용자는 많지 않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이 잡지는 제대로 된 물건을 사서, 제대로 사용하는 실용정신과 그 브랜드를 완전 해부하는 치밀함을 표방한다. 다수의 매체들과 심지어 제조업자조차도 자신의 제품에 대한 이미지와 감성을 자극하는 문구로 판매에만 열을 올리지 정작 그 제품을 제대로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일에는 미흡하다. 소비자교육도 주로 저렴하게 물건을 사는 일에 치중한 느낌이 드는데 구입한 물건을 제대로,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정보를 주는 일도 중요하다. 이 잡지가 소개한 브랜드의 면면을 살펴보면 문구브랜드로 유명한 LAMY, 선글라스 제조업체 RAY-BAN, 어른들이 더 열광하는 장난감 LEGO 그리고 부모들의 등골을 휘게 만들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는 고가 의류업체인 CANADA GOOSE, 미국의 국민 스포츠 용품 업체 인 WILSON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해서 폭 넓은 독자들의 관심을 끌 만 하다. 각 브랜드에 얽힌 유래나 역사도 흥미로운데 스포츠 용품 업체로만 알고 있던 WILSON이 사실은 모기업이 육류가공업체이며 가축을 도살하고 나서 부산물을 활용할 방법을 찾다가 테니스 라켓 줄이나 수술용 실을 생산하면서 스포츠 용품 회사로 거듭나는 뒷이야기는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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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올해 중학교 15살 난 여자 아이다. 아빠는 영어교사로 엄마는 국어 교사로 일하신다. 두 분은 모두 어문 계열을 전공한 공통점이 있지만 마치 국어와 수학이라는 반대되는 과목을 공부한 사람들처럼 서로의 특기가 확연히 다른 분야에서 각기 발휘된다. 아빠가 책을 좋아해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국어를 전공한 엄마의 책이라고 생각하는 책을 사서 읽었다는 점과, 엄마는 학창시절 영어공부를 좋아했고 잘하기를 간절히 원했다는 공집합만 제외하면 부모님은 묘하게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겹치지 않는 특기와 세상을 가진다. 


두 분의 다른 세상은 여행을 가보면 확연히 드러나는데 2년 전 싱가포르 여행이 딱 그랬다.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패키지가 아닌 자유여행으로 해외를 나갔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모든 여행 일정을 두 분의 역량을 모두 발휘해야하고 두 분의 진면목이 드러난 기회였던 셈이다. 

우선 비행기 티케팅과 호텔 예약은 엄마의 세상이다. 아빠는 비행기 표를 예약한 것도 모자라서 비행기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외국의 호텔을 예약한 엄마의 업적에 가슴 깊숙이 경의를 표했다. 아마도 당신이 하면 싱가포르에 도착은 했는데 호텔 예약은 다음 날에 예약이 되어 있는 황당한 실수를 할 것 만 같았으리라.


아빠는 인천 공항에서 필사적으로 나와 엄마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녔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였고 혹시나 우리가 당신을 떼어버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눈치였다. 심지어 혼자서는 화장실도 가지 않았고, 다른 장소였다면 혼자서 마구 이리저리 다닐 텐데 낯선 공항에서는 우리가 볼일을 마칠 때까지 가방을 들고 얌전히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는 심지어 중학생인 나를 본인보다 더 공항의 지리와 시스템에 정통하다고 여기는 게 확실하다. 엄마가 잠시 어딜 다녀왔는데 내 옆에 딱 붙어서 절대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나도 여자라서 육감이라는 것이 있는데 나를 보호한다는 아빠는 사실 나에게 의존하고 있음을 쉽게 알았다. 


아빠는 엄마와 내가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탈 때는 신발을 벗고 타야 한다고 주장하면 신발도 벗을 태세였다. 마침내 비행기를 탈 때 그는 입구에 비치된 신문을 여러 부 가져가도 되는지 안 되는지 확신을 못 한 나머지, 스튜어디스 언니의 눈치를 보는 것도 나는 쉽게 알아챘다. 그에게 난관은 또 남아 있었다. 끔찍한 고소공포증 환자인 아빠는 이륙을 할 때 눈을 꼼 감고 좌석의 팔걸이를 마치 자신의 목숨을 지켜줄 보루나 되는 것처럼 꽉 쥐고 놓아주지 않았다. 나지막한 산을 올라가는 케이블카에서 아빠가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이마를 받친 채 고개를 숙이는 것은 시대의 아픔을 고뇌하는 지식인의 모습이 아니고 지면에서 발이 떨어진 상태의 고통을 견디기 위한 몸부림이다. 비행기가 갑자기 난기류에 진입을 해서 흔들릴 때 그의 공포는 극에 달해 엄마의 손을 부둥켜 쥐고 마치 지구의 종말을 맞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의 고난이 시간이 끝나고 스튜어디스 언니가 입국서류를 나눠주었을 때 마침내 아빠의 세상이 도래했다. 아빠는 입국서류를 영어로 메꾸면서 온갖 유세를 부려서 엄마와 나는 짜증이 폭발할 지경이었지만 그나마 아빠가 죽을상을 짓다가 모처럼 살 만해 보이는 게 반가워서 참아주기로 했다. 아빠는 정말 모르는 모양이다. 엄마와 나는 아빠 없이 해외여행을 한 적이 있었고 우리도 그런 간단한 그 입국 서류 작성은 이미 작성해봤지만 아빠의 체면과 기를 살려주기 위해서 모른척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빠는 그간의 서러움을 한 번에 만회하려는 듯 기고만장해져서 ‘내가 아니었으면 어디 감히 너희들이’ 해외여행을 편안하게 할 수 있겠느냐며 뿌듯한 미소를 짓는다. 불과 몇 시간 전에 공항에서 길을 잃을까봐 13살 난 딸내미의 손을 놔주지 않던 기억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아빠는 꼼꼼하지 않고 나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가령 내가 짜게 먹지 말라고 주의를 몇 번 주었는데 지키지 않아서 마침내 내가 일일이 양념의 양을 그때그때 숟가락으로 얹어줘야 한다. 미리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조사를 하지 않았고 싱가포르에 도착을 했는데 아무도 불러주지 않고 달랑 우리 식구끼리 움직여야 한다는 무서운 현실을 뼈저리게 실감을 하고서야 이곳저곳 들릴 곳을 검색한다. 


검색과 임기응변은 단연코 아빠의 세상이다. 단 몇 분 만에 그는 그날의 여행지와 일정을 엄숙하게 발표를 했다. 아빠는 택시를, 엄마는 나의 현장체험을 위해서 지하철을 주장했는데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나는 당연히 엄마의 편을 들었다. 여자의 적은 여자가 아니다. 적어도 우리 집은 그렇다. 지하철의 이용은 엄마의 세상이다. 아빠로 말하자면 서울에서 지하철 티켓을 사지 못해서 30분간 고군분투를 한 분이다. 보증금 500원을 고려하지 않아서 생긴 불상사인데 아빠는 지하철을 타고 오라는 죄 없는 친구 분을 향해서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엄마는 능숙하게 싱가포르의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했다. 


아빠가 정한 일정은 나쁘지 않았다. 쇼핑과 볼거리를 적당히 배합했는데 그 와중에도 아빠의 보이지 않는 실수가 있었다. 예전에 아메리카 원주민 즉 인디언에 관심이 많았던 아빠는 싱가포르의 관광명소의 목록을 보다가 ‘리틀 인디아’를 발견했고 별생각 없이 ‘한 꼬마 두꼬마 세 꼬마 인디언’의 인디언을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어리고 귀여운 어린 인디언들이 재롱을 자랑하는 목가적인 풍경을 상상하고 우리를 그곳으로 이끈 그는 인디언이 아닌 인디아를 발견하곤 덥디 더운 날씨에 몸을 파르르 떨었다. 


차마, 내가 생각한 것은 이것이 아니다며 우리를 다시 데리고 나가기엔 너무 어이없는 실수라 그는 평생 카레를 한 번도 먹지 않았으면서 억지로 꾹 참고 인도의 거리를 거닐어야 했다. 마치 정말 인도의 거리를 보고 싶어서 온 것처럼 태연히 걸었지만 나는 아빠가 몸을 파르르 떨고, 구경거리에 대한 기대감이 넘치던 얼굴이 순식간에 초점이 풀린 눈과 축 늘어진 팔자주름이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을 보고 이미 아빠의 실수를 눈치 챘다. 


먹거리의 천국이라는 싱가포르에서 서양문학을 전공했다는 아빠가 먹은 것은 주로 ‘된장찌개’ ‘김치찌개’였다. 그나마 용기를 내서 먹어본 색다른 음식이라곤 ‘칠리 크랩’이 유일했다. 반면 그의 세상의 물건에는 심취를 해서, 라이카 카메라 매장 앞에서 여행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우리들을 그의 시선의 범위에서 풀어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호텔의 57층에 위치한 야외 옥상 수영장에서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풍경을 감상한다든지, 수영을 즐긴다든지, 선탠(이건 내가 봐도 불필요하다. 그는 모태 선탠이라는 축복을 받고 태어났다)을 즐기지 않았다. 아빠가 세계적인 그 수영장에서 몰두한 것은 남미계열의 연인이 잠깐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신기해하는 ‘카메라 방수 팩’의 놀라운 성능을 그들에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아빠는 괜한 호기심의 눈초리를 보냈다가 졸지에 붙잡혀서 20분간 카메라 방수 팩의 놀라운 성능에 대한 강의의 수강생이 된 그 불쌍한 커플을 본국에 돌아가자마자 주문을 하겠다는 맹세를 받고서야 풀어주었다. 


여행의 마지막 날에 하루 종일 걸어 다녀서 우리 가족은 모두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런데도 지하철역도 보이지 않고 택시역도 보이지 않는다. 싱가포르는 특이하게 택시도 지정된 장소에서만 탈 수 있는데 우리가 정류장을 알 리가 없다. 그때 아빠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우리를 인적이 많지 않은 도로로 데리고 가서 지나가는 택시를 향해서 손을 든다. 마치 한국에서 택시를 잡는 그 방식 그대로 말이다. 벌금의 나라에서 하는 아빠의 행동에 우리는 기함을 했지만 아빠를 나무랄 기운조차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한 택시가 우리 앞에 섰다. 우리는 택시 기사가 법규를 위반한 우리를 고발이라도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는데 놀랍게도 그 택시 기사는 한국의 택시 기사처럼 급하게 우리에게 택시에 타라는 수신호를 보내왔다. 아빠의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임기응변능력이 빛을 발한 순간이다. 자국의 교통법규를 위반하면서 손님을 태운 것에 성공한 기사의 성취감과 위기의 가족을 자신의 기지로 구해냈다는 아빠의 자부심은 서로의 만남이 무슨 전생의 인연이라도 이어진 것처럼 감격해하고 서로를 용기와 배려 심을 치하하기 바쁜 눈치다.


가장의 임기응변을 고마워해야 할지, 타박을 해야 할지를 고심할 기운조차 없어서 멍한 표정으로 뒷좌석에 앉아 있는 우리를 두고 그들은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열심히 뭔가에 대해서 대화를 즐겼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속 에서 대체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열심히 나누었냐고 아빠에게 물었더니 ‘싱가포르의 비밀경찰 제도와 위협받는 민주주의’, ‘교육을 통한 싱가포르 국민의 시민 의식 함양’에 대해서 토론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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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독자들은 베스트셀러를 궁금하지만 사고 싶지는 않은 책으로 생각한다. 이런 인식은 불과 몇 십 년 전의 상황과 비교할 때 격세지감을 느낀다.

아무래도 요즘과 비교해서 현격하게 정보 공유가 부족하고 뭔가에 반대하고 비판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못한 상황이었던 불과수 십 년 전만 해도 신문을 비롯한 언론에서 발표하는 베스트셀러는 다수의 독자들에 있어서 비판의식을 가지고 바라보기 힘든 독서의 가이드라인의 권력을 행사했다. 그래서 당시의 일반 독자에게 있어서 베스트셀러란 좋은 책’ ‘시간이 없어도 꼭 읽어야 할 책쯤으로 인식했다.

 

요즘 일반 독자들이 적어도 베스트셀러에 하지 않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고 매우 진보된 지식 소비자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최근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한 일부 출판사의 잘못된 관행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집중 조명되면서 오히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좋은 책을 펴내기 위한 대다수의 출판인들 까지 함께 묻어가는 상황이 안타깝기도 하다.

 

아울러 베스트셀러는 무조건 영악한 상술의 소산이자 대대적인 광고 덕택이라고 생각하는 과잉반응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우리가 그토록 경외하며 진정한 독서가가 되기 위해서 꼭 읽어야 할 많은 고전이 당대에는 베스트셀러였다는 엄연한 사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두 말하면 잔소리이지만 베스트셀러 목록은 출판 산업에 있어서 꼭 필요한 요소이다. 출판사의 입장에서는 어떤 책이 시장에서 성공적인 팔리는지 알게 되고, 독자입장에서도 어떤 책이 돈을 쓸 만 한 지를 알게 되고 다른 사람은 어떤 책을 선택했는지를 가늠하게 된다.

나쁜 베스트셀러는 잘 걸러내고 보석과도 같은 좋은 베스트셀러를 골라내는 안목을 기르는 능력이야말로 요즘 독서가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라고 확신한다.

 

결국 베스트셀러라고 함부로 무시할 필요는 없다.

좋은 베스트셀러는 진정한 독서가가 되기 위한 어쩔 수 없이 거쳐야할 통과의례인데 어찌 보면 독서하는 습관을 들이기 위한 필연적인 견습과정이기는 하다. 진정한 독서가가 되는 과정은 테니스의 고수가 되는 과정과 일맥상통하는 면을 발견한다. 일종의 배은망덕한 경우인데 테니스에 처음 입문하는 남자가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 가장 좋은 시합 파트너는 남자 고수가 아니고 숙련된 아주머니들이다. 남자 초보 테니스 입문자가 노련한 아주머니 테니스 고수와 게임을 하면 얻을 수 있는 장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숙련된 아주머니와 게임파트너를 하면 테니스 초보자에게 가장 중요한 안정된 랠리를 오래 한다.

 

아주머니들은 파워 보다는 안정되고 적당한 속도의 볼을 구사하므로 시합에서의 랠리를 연습하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한마디로 남자 고수에게서 배울 수 없는 게임을 하는 재미를 만끽한다. 남자고수와 게임을 하면 그야말로 꿔다 논 보리자루 신세가 되기 십상이며 어쩌다 실수라도 하면 고수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테니스에 대한 흥미를 일찌감치 접을 수 있는 상황이 온다.

테니스 초보자에게 너무 과하지 않은 적당한 훈련파트너가 필요하듯이 초보 독서가에게도 너무 어렵지 않으면서도 대중성을 가지고 있어서 책을 읽고 나서 다른 사람과 쉽게 공감을 나눌 수 있는 좋은 베스트셀러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가만히 보면 장비가 필요한 거의 모든 취미생활에는 소위 말해서 입문용또는 초보용장비가 따로 잘 구분한다. 예술분야도 그렇고 스포츠 분야도 그렇다. 일반적으로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초보라도 그 분야에 쉽게 적응하고 어느 정도 흉내는 낼 수 있는 목록이 어느 분야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반드시 출판사의 인위적인 손길에 의해서 만들어지거나 단순히 유명작가의 이름 값 덕택에 그 자리에 오른 것만은 아니다. 일례로 1992년에 이경훈이 쓴 <인맥 만들기>가 베스트셀러가 되었었는데 물론 다른 이유도 많았겠지만 이 책이 우리나라 독자들의 큰 호응을 받은 것은 인맥과 학맥으로 출세의 향방이 결정되는 우리사회의 부조리 속에서 그나마 책으로 나마 출세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던 인맥을 형성하고자 했던 당시 우리나라 독자들의 욕망의 정확한 표출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베스트셀러를 제외하면 많이 팔린 책은 그 당시 사회 구성원들의 정확한 자기표현 또는 욕망 또는 염원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당대 사회 구성원들의 욕망을 저급하다고 치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난쏘공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면서 18년간 무려 40만부가 팔린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산업화의 속도전에서 소외받고 희생을 강요당한 이들의 사회를 향한 외침의 소산이듯이.

 

제대로 된 베스트셀러는 당대 그 사회 구성원들의 상황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시금석이며 독서 목록으로 나쁘지 않다.

 

본인의 저서 <아주 특별한 독서>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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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는 무엇이며 왜 하는가?>

필사(筆寫)란 쉽게 말해서 주로 문장력 향상을 위해서 뛰어난 작가의 책을 옮겨 적는 일을 말한다. 필사가 과연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긴 하지만 긴 역사를 자랑하는 필사는 여전히 요즘도 많은 사람들이 진행 중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디지털 정보가 세상을 지배하는 요즘 오히려 더 아날로그 시대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필사를 더욱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신을 믿는 자에게는 신이 존재하듯이 필사의 위력을 믿는 독자에게는 분명 필사의 효과는 탁월하다. 소설가 신경숙의 경우 소설<외딴 방>의 소재가 되는 공장근로자로 일할 때, 멈춰선 컨베이어벨트에 앉아서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를 필사한 덕분에 고통스러운 시절을 참았고, 어른이 된 듯 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아마도 소설가 신경숙을 ‘필사’예찬론자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눈으로 보는 글과 한 글씨 한 글씨를 직접 손으로 옮겨적을때와는 분명 느낌이 다르다. 독서를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풍경을 구경하는 것이라면 필사는 걸으면서 주위의 풍경을 천천히 구경하는 것이다. 독서는 맛있는 요리를 눈으로 보고 군침을 흘리는 행위이지만, 필사는 그 음식을 한입 가득이 넣고 씹으면서 그 음식을 맛을 만끽하는 행위다.


아무래도 필사라고 하면 조정래의 일화를 빼놓지 못한다. 그는 10권으로 구성된 <태백산맥>을 아들과 며느리에게 필사하게 했는데 막대한 저작권료를 상속 받으려면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자식들에게 자신의 일생일대의 작품을 좀 더 자세히 읽히게 하기 위한 아버지의 깊은 자식사랑이다. 결론적으로 필사는 단기간에 문장력을 향상시키는 좋은 방법이라고 믿는다. 필사를 함으로써 자신이 필사하는 작가의 심경과 의도 심지어는 그가 소설을 이끌어나가는 방식을 배운다. 직접 그 작품의 저자가 되고 모든 전개에 있어서 저자의 생각과 자신이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를 느끼고 저자와 서로 상의해서 다음 구절을 결정하는 경험을 한다. 비행기 조정석에서 원저자의 조언을 받아가면서 자신이 직접 조정을 해보는 놀라운 행복을 느낀다.

필사는 독자로 하여금 책을 천천히 읽는 습관을 가지게 한다. 필사를 하면서 각 단어와 문장을 흘려보내지 않고 음미하고 자기 것으로 체득하게 된다. 필사는 주로 인문서보다는 소설을 비롯한 문학작품을 많이 한다. 소설을 필사함으로써 앞뒤의 문맥을 잘 파악함과 동시에 저자의 독특한 어휘사용방법과 구성을 온전히 자신의 피 와 살로 만든다. 마지막으로 필사의 효과는 악필교정에 있다. 필자가 책을 내고 주위분들게 증정을 할 기회가 많은데 필자의 악필 때문에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말하자면 컴퓨터가 없었다면 사회생활에 문제가 많을 만큼 악필인 필자는 자필 서명 본을 부탁받으면 전전긍긍하고 심혈을 기울려 서명을 하고 인사말을 적고나면 단 몇 십 초 만에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언젠가 관계기관에 들러서 인사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마침 책을 좋아하는 분이라 책을 선물했다. 그런데 당혹스럽게도 그 분은 책을 받자마자 표지나 내용은 전혀 관심이 없어보였고, 아주 노골적으로 책의 내지를 뒤적거리면서 필자의 서명과 인사말을 찾았다. 그분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더니 기왕에 줄 거면 그래도 저자의 서명정도는 해주어야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굳이 신언서판이라는 옛말을 끄집어내지 않더라도 글씨체는 그 사람의 성격에서 비롯된다. 글씨를 잘 쓰는 비결을 생각해보면 느리게 천천히 쓰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 필자는 그러지 못해서 악필이고 급한 성격은 글씨체와 상극임이 분명하다. 느리게 천천히 필사를 하다보면 글씨체는 자연스럽게 고쳐지고 마음을 다스릴 필요가 있을 때 좋은 수양법이다. 


<필사는 어떤 방법으로 하는가?>

첫째 필사는 자기가 좋아하는 책으로 해야 한다. 필사를 하려면 비교적 오랜 시간동안 끼고 다니면서 단어 하나하나를 되새겨야한다. 당연하겠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 책, 장르를 선택해서 해야지 취향에 맞지 않는 책으로 필사를 해서는 안 된다. 어떤 책이 필사하기에 좋은 지 묻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생각해 내야한다. 

둘째 어떤 책을 읽기도 전에 필사를 하면 안 된다. 필사는 항상 읽고 나서 좋았고 감동 깊고 닮고 싶은 작가의 책으로 해야 한다. 처음 읽는 책을 필사한다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그 책이 흥미진진하다면 필사를 하는 속도는 도저히 호기심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아마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필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든지 필사 자체를 포기하기가 쉽다. 더구나 필사를 하는 중간 그 책이 도저히 재미가 없고 공감이 안 된다면 어떻게 할 건가? 

셋째 필사는 빽빽이 숙제가 아니다. 학창시절 선생님이 빽빽이 숙제를 내서 아무 생각 없이 연습장을 까맣게 채운 기억이 다들 있다. 빽빽이는 연필과 연습장만 낭비할 뿐 아무 의미가 없다. 영혼과 생각이 함께 하지 않은 행동이 무슨 의미가 있기 어렵다. 필사는 헬스클럽에서 근육을 키우는 운동과 비슷하다. 아무리 무거운 역기를 든 다해도 운동에 온 신경을 집중하지 않고 다른 생각을 한다면 운동의 효과는 미약하며, 아무리 연필을 꾹꾹 눌러써가며 필사를 하더라도 문장과 낱말 그리고 글의 맥락을 마음속 깊이 음미 하지 않는다면 ‘손가락 운동’에 지나지 않는다. 애꿎은 손가락만 아프고 종이 낭비만 할 뿐이다. 

넷째 필사는 연필이나 펜으로 꾹꾹 눌러 쓰면서 해야지 컴퓨터 자판으로 해서는 안 된다. 요즘 하도 컴퓨터로 모든 일을 하는 버릇이 돼서 필사마저도 컴퓨터로 하면 안 되겠냐는 생각을 많이 한다. 컴퓨터로 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타이핑은 본래의 특성상 별 생각 없이 하기 쉽고 또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에 주의를 빼앗길 가능성이 많다. 필사를 하다보면 특별히 감명 깊다거나 중요한 부분은 아무래도 획 하나를 긋더라도 힘이 실리기 마련인데 키보드로는 자신의 온몸에서 나오는 기운을 싣기 어렵다. 다시 강조하지만 타자를 하면서 그 내용에 신경을 쓰기 어렵다. 

다섯째 번역서는 필사하기에 좋지 않다. 필자의 극본적인 목적이 저자의 어휘선택이나 표현법을 배우자는 취지인데 번역본은 원저자의 어휘선택도, 표현법도 아닌 번역가의 어휘선택과 표현법이다. 물론 훌륭한 번역가는 좋은 우리말 실력을 갖추고 있고 문장력 또한 대단하지만 결국 번역본을 필사한다면 그 번역가의 문체를 배우지 원저자의 숨결이 느껴지는 문장력을 배우지는 못한다. 

여섯째 필사는 꾸준히 오래 계속해야 한다. 필사가 단기적으로 문장력을 키우는 좋은 방법이기는 하나 단편소설 한 권 필사를 했다고 해서 당장 문장력이 좋아지게 만드는 마법사가 아니다. 운동을 해서 훌륭한 근육을 키우는데도 몇 달이 걸리는데 하물며 지적인 능력을 키우는데 한두 달로 효과를 기대하는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 

일곱 번째 필사를 한다면 필사노트이외에 따로 정리를 해야 한다. 필사를 하면서 발견한 기발한 표현이나 절묘한 어휘, 혹은 그 책에 대한 간단한 소감이나 줄 거리등을 기록하면 그 효과는 더 크다. 마치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이 약물에만 의존하기보다는 운동을 같이 해주는 게 더 좋듯이 필사도 정리노트를 작성하면 필사의 효과는 상상외로 커진다. 독서를 하지 않는 아이들이 가장 풀기 힘들어하는 영어 문제가 긴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는 과제이다. 긴 내용을 요약하고 자신의 어휘선택으로 자신의 목소리로 다시 적는 능력은 비단 시험을 대비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여러 가지 업무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여덟 번째 인내심이 부족한 사람은 시를 필사하자. 시는 문학의 다양한 장르 중에서 가장 난해하다. 왜냐하면 시인의 생각과 느낌이 가장 짧게 압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필사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강도 높은 훈련을 제공한다. 손 글씨를 오랫동안 쓸 여유가 없다든지 끈기가 없다면 하루에 한편이라도 시를 필사해보자. 일 년 동안에 무려 365개의 시를 적고 감상하며 시인의 심상을 느낄 수 있지 않는가?

아홉 번째 신문기사나 사설도 좋은 필사의 대상이다. 신문기사나 사설은 매우 논리 정연한 글이다. 글쓰기에 있어서 논리의 정연함이 매우 중요하다면 신문기사와 사설은 좋은 교재다. 신문논설의 경우 신문사에서 경험이 많고 그 신문사를 대표할 만한 글쓰기 역량을 갖춘 사람이  작성한다. 더구나 일반적으로 일분일초에 쫓겨서 작성하지도 않고 자신의 총역량이 결집된 글이라고 보면 맞다. 자신의 성향과 맞는 신문사를 선택한 후에 매일 정독하고 필사를 하면 논리가 정연한 글을 배우기 쉽고 또 논술을 앞둔 수험생들에게는 훌륭한 공부방법이다. 굳이 비싼 돈을 들여서 논술과외를 받기보다는 이 방법이 더 좋다. 


그러면 어떤 책을 필사하면 좋을까? 보통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는 책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정래’의 <태백산맥>, ‘박경리’의 < 토지>, ‘김승옥’의 <무진기행>, ‘김훈’의 <칼의 노래>와 <화장>,  ‘이청준’의 소설, ‘오정희’의 소설을 비롯해 ‘백석’의 시도 여기에 포함한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독자 개인별로 자신의 시대를 추억하는 스토리텔러의 역할을 하는 작가의 책이 좋다. 부모가 되고 나이가 들수록 자신들의 시대의 추억은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당하기 쉽다. 게다가 ‘촌스럽다’는 덤도 받아야한다. 그러나 문학의 세계에서는 자신의 시대의 이야기가 더 이상 구시대의 유물이 아닌 소중한 추억으로 되살아난다. 심신의학의 창시자 ‘디팍 초프라’는 그의 저서 <사람은 늙지 않는다> 에서 노인들에게 자신의 젊은 시절이 고스란히 현재의 상황처럼 꾸며진 환경 속에서 지내게 했더니 마음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능력까지도 젊은 시절의 수치로 되돌아간다는 놀라운 시험결과를 나타냈다. 그런 면에서 자신의 시대를 뛰어난 문장력으로 말하는 좋은 작가를 소유하는 일은 큰 복이다. 


<필사의 도구들>

연필

손 글씨로 필사를 할 때 필기구를 가장 먼저 고민하게 되는데 연필, 볼펜, 만년필사이에서 고민이 된다. 필자의 경우 연필을 선호한다. 존 업다이크는 세상에서 가장 겸손하고 조용한 무기가 바로 연필이라고 했다.  볼펜은 아무래도 볼(ball)로 된 심이 특성상 부드럽게 써지지만 종종 의도하지 않게 앞서서 써지는 부작용이 있다. 만년필은 아날로그 특유의 정취와 기품이 있지만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잉크가 번지는 악순환을 피하기 어렵다. 만년필로 하는 필사는 태생적으로 깔끔하고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에게 적합하다. 연필로 하면  언제든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쓰기가 가능하다. 혹시 연필로 쓴 글씨는 시간이 지나면서 지워지지 않느냐는 우려를 한다면 그야말로 쓸데없는 걱정이다. 필자가 1987년에 싸구려 샤프연필로 쓴 필기의 흔적은 지금까지도 너무나 생생히 잘 살아남았다. 연필은 국산도 품질이 좋아서 딱히 연필의 종류를 고민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연필로 호사를 누려보고 싶다면 <그라폰 NEW No.3 데스크 펜슬>이 아마 연필의 루비통이라고 할 만한 가격이니 참고하기 바란다. 자루당 가격이 무려 1만 3천 원 정도이고 고급 삼나무로 만들었다는데 필자는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았다.


 연필의 대명사 ‘파버 카스텔’을 제외하고 최근 새롭게 필자가 주목하는 연필은 <팔로미노 블랙윙 연필>인데 전설의 연필이라는 명성을 자랑한다. 전설의 명품 연필인 <블랙윙> 연필을 철저히 조사한 끝에 <팔로미노>라는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는 미국의 필기구 회사가 <블랙윙>을 재현한 연필이 <팔로미노 블랙윙 연필>이다. 향나무 소재의 이 연필은 고급스러움의 극치를 자랑하며 납작하게 생긴 지우개가 독특하다. 또 지우개를 분리하고 새것으로 교체하는 지우개교체방식이라는 신개념의 연필이기도 하다. 연필을 쓰다보면 지우개가 금방 다 닳아서 곤란한 경우가 있는데 이 연필은 그런 상황에 대비한다. 그러나 대체로 지우개의 품질은 낮다. 또한 무개중심이 지우개 쪽으로 치우쳐 있는데 사용자에 따라서 호불호가 갈린다. 그러나 한눈에 봐도 고급스럽고 또 필기감이 부드럽고 글씨 또한 진한편이라 필사에 좋다. 한 타스에 24,000원 가량이니 제법 비싸다. 


연필을 사용하고 구매할 때 주의할 점은 반드시 연필 캡을 함께 사야한다는 점이다. 연필의 생명은 심이고 심은 볼펜처럼 휴대하다가는 금방 부러진다. 연필사용자는 잘 안다. 한번 연필깎이로 깎을 때마다 연필이 얼마나 더 짧아지는지. 그래서 연필깎이 전용 칼을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불의의 사고로 연필심이 부러지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 연필 캡을 구매하면 좋다.

그리고 몽당연필을 활용하기 위해서 ‘연필깍지’ 즉 ‘펜슬 홀더’라는 물건을 구비해야 한다. 연필을 오래 많이 사용하는 사람에게 매우 유용하고 꼭 필요한 물건이다. 이런 물건들은 온라인 문구전문점이나 교보문고의 핫트랙스에서 구한다. 볼펜으로 필사를 하는 이에게는 <제트스트림 1.0>을 권한다. 부드러움과 진함의 극치를 자랑한다. 유이한 단점은 이 볼펜에 맛을 들이면 다른 볼펜을 사용하지 못하며, 잉크가 빨리 소진된다는 점뿐이다. 손 글씨를 어지간히 싫어하는 필자도 <제트스트림 1.0>이라면 뭔가 쓰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한다. 필사뿐만 아니라 필기량이 많은 모든 이에게 권한다. 답안지를 길게 작성해야 하는 고시생을 비롯한 학생에게도 정말 좋은 볼펜이다.


연필깎이

별로 중요한 물건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데 막상 없으면 매우 곤란한 물건이 있기 마련이다. 연필깎이가 딱 그런 물건인데 연필과 연필깎이는 실과 바늘의 관계이다. 기관차 모양의 ‘샤파’연필깎이를 흔히 많이 사용하는데 평균이상의 품질을 자랑한다. 게다가 가격도 저렴해서 권할 만하다. 조금 고급스러운 취향으로 간다면 <Carl angel-5>를 권한다. 묵직하고 견고해서 최상급 연필깎이라고 인정할 만하다. 조금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있어서 장식품으로도 사용가능한 연필깎이를 찾는다면 <Boston연필깎이>를 권한다. 미국은 OMR카드를 사용할 때 연필로 사용한다고 한다. 그리고 대학생들도 연필을 많이 사용하는데 미국의 강의실 벽에는 종종 <Boston연필깎이>가 설치되어 있다고. 다양한 굵기를 가진 모든 연필에 사용하기 위해서 구멍이 여러 개 있고 무엇보다 연필을 고정한 자국과 흠집을 남기지 않아 좋은 연필깎이다. 


메모장과 노트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글쓰기를 지망하는 모든 사람에게 메모장과 노트는 중요한 도구이다. 나의 첫 책 <오래된 새 책>을 집필할 때만 해도 노트를 사용하지 않았던 필자도 이 책을 집필하면서 메모장과 노트를 애용한다. 급기야 이제는 노트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글쓰기를 상상하기 어렵다. 어지간히 IT기기 마니아인 필자가 책상을 떠날 때 노트북 컴퓨터와 노트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 할 상황일 때는 어김없이 노트를 집어 든다. 노트는 가볍고 전원이 필요 없으며,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아이디어를 옮겨 적는데 편리하다. 반대로 노트북 컴퓨터는 그 반대의 불편함이 존재한다. 

‘주디 리버스’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입을 맞추고 포옹하는 순간에도 그의 목선과 등 근육을 기록하라고 했다. 기록이야 말로 작가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다. 따라서 마치 다람쥐가 겨울의 양식을 모아가듯이 순간적인 아이디어의 기록과 메모로 공책을 가득 채워나가야 한다.


필사를 하는 이의 노트는 가급적 하드커버가 좋다. 아무래도 오래 만지고 자두 들춰보니 튼튼해야한다. 필자는 <로디아 웹노트 라지>를 애용하는데 어디를 가거나 함께 한다. 이 노트는 필기하기에 매우 편한 재질, 부드럽지만 오래가는 인조 가죽 재질의 커버, 그리고 노트가 펼쳐지지 않게 고정하는 고무 밴드에 이르기까지 정말 사랑스러운 노트다. 다만 단편소설이상의 소설을 필사할 만큼의 분량이 되지 않다는 점이 큰 단점으로 작용한다. 적지 않은 나이에 처음으로 메모와 필기의 즐거움을 알게 해준 고마운 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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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06-28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사하기에 좋은 책으로 <책과 세계>도 추천합니다^^

박균호 2015-06-28 20:20   좋아요 1 | URL
오..고맙습니다.

ritamville 2016-03-04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리탐빌요가명상(Ritamville) >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리탐빌에서 이번 4월 20일 수요일에 워커힐 비스타 홀에서 힐링멘토 `디팍 초프라`를 모시고 강연을 열 예정입니다. 심신의학(Mind-body Medicine)의 선구자, 유명인사와 리더들 멘토 그리고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배출한 그는 지금 까지 어떻게 하면 더 풍요롭고 잠재의식을 더 끌어 올릴 수 있는지 얘기 해왔습니다.

특히, 그는 하나의 방법으로 명상을 권유 하고 있는데요. 세계 명상의 흐름은 이미 애플이나 구글처럼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직원들에게 명상을 권하고 명상을 하는 유명인사들은 수없이 많죠. 명상에 관심이 많으셨던 분들은 이번이 매우 좋은 기회가 될 것 입니다. 또한, 동양철학과 서양의학을 한데 아우른 그의 독창적인 건강론과 행복론은 전세계 수많은 정치, 경제, 문화지도자와 독자들을 매료시키고 아유로베다를 현대의학에 점목한 그의 심신의학의 창시자로 세계를 선두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이번에 한국을 찾아 쉴새 없이 돌아가는 우리 일상에 어떻게 하면 자신에게 더 집중 하고 자신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법에 대해 강연을 하러 오게 됩니다. 플로리다(2016/3/17)를 시작하여 서울, 뉴욕, 뉴저지, 테네시, 런던, 파리, 체코, 스위스, 호주 등의 순서로 세계순회강연 중인 디팍 초프라 박사는 본 강연에서 건강, 행복, 창조 등 각 분야의 통합열쇠인 해답을 제시하게 됩니다.


이런 좋은 기회를 블로거 분들에게 나누고자 합니다.



<2016 리탐빌 주최 – 슈퍼 소울 릴레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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