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 특유의 맛깔나는 복수 이야기 모음집

별도 없는 한밤에 ㅣ 밀리언셀러 클럽 142
스티븐 킹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9월

스티븐 킹은 전 세계적으로 무척 유명한 작가이다. 일상 생활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을 극적으로 표현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들의 호기심을 이끌어나가는데 거의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너무 유명한 작가의 작품은 개인적으로 잘 안보는 편인데, 그 이유는 유명한 작가라고 해서 많은 기대를 했다가 실망을 하는 경우가 가끔 있었기 때문이다. 전혀 기대를 하지 않고 봤다가 너무나도 재미있어서 책을 다 읽은 후에도 그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 책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사실 이 작품의 경우는 후자에 속하는데, 꽤나 두툼한 두께의 책이 부담스럽기도 했고 감흥없는 표지 때문에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즈음에는 비슷한 이야기를 더 읽고 싶어서 무척 아쉬웠던 작품이기도 하다. 역시 스티븐 킹!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무척 재미있었다.

이 책에는 총 4개의 중단편 소설이 실려있다. 모두 하나같이 죽음을 소재로 다루고 있고, 그 방식이나 동기는 모두 다르다. 하지만 작품 전체적으로 풍겨져 나오는 분위기는 비슷해서 스티븐 킹의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여지없이 그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보통 내공을 가지고는 유사한 주제라고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뒷골이 서늘할 정도로 사람의 심리를 묘사할 수 없을텐데, 섬세한 심리 묘사와 구성, 예상을 뒤엎는 전개가 어우러져서 한 번 책을 손에 잡으면 끝까지 놓기 어려울 정도로 흡입력이 강한 작품이 만들어졌다. 사실 모든 작품들이 재미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재미있다고 여겨진 작품은 '1922' 이다. 여러 사건이 뒤엉키면서 나중에는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상상인지 헷갈릴정도로 치밀한 구성이 돋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작품들이 재미없는 것은 전혀 아니다. 허구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정말 가능할 정도로 현실감있는 이야기들이라, 늦은 밤까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졸린 눈을 비비며 열심히 읽었다. 

사실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현실의 복잡한 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서이다. 정말 잘 쓰여진 소설을 읽고 있으면 마치 내가 그 소설 안에 들어가 있는 것 같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정말 끔찍한 일들을 겪었다. 그런데 그 일이 막상 닥쳤을 때, 생각보다 담담하게 대처한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일 수도 있다. 세상은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이목도 생각하면서 살아야하니 말이다. 밑도 끝도 없는 절망속에서도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때로는 너무나 잔인하다. 인간의 본성이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누구보다 경쾌한 스파이 소설

폴리팩스 부인 미션 이스탄불 ㅣ 스토리콜렉터 38
도로시 길먼 지음, 송섬별 옮김 / 북로드 / 2015년 12월

이렇게 경쾌한 스파이 소설도 있다니! 오랜만에 재미있는 책을 만났다. 사실 폴리팩스 부인 시리즈의 1권은 아직 못 읽어봤고, 2권인 이 책부터 읽게 되었는데 앞의 내용을 몰라도 전혀 지장없이 책을 읽을 수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소설책의 분위기는 주인공의 성격에 따라 정해지게 되는데, 폴리팩스 부인은 나이가 많아도 건강은 문제없고, 굉장히 낙천적인 성격이라 보는 사람마다 그 사랑스러움에 흠뻑 빠지게 된다. 덕분에 아무리 심각한 상황이 닥쳐도 폴리팩스 부인은 어떻게은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없는 믿음마저 생겨버렸다. 

이번에 폴리팩스 부인은 갑자기 터키 이스탄불로 떠나야 한다는 지령을 받게 된다. 전화를 받은지 30분만에 짐을 싸서 훌쩍 떠난 터키는 발걸음을 옮기는 데마다 위험에 빠진다. 어쩜 이렇게 다이나믹한 나라인지 신기할 정도이다. 터키말을 하나도 몰라도 우연히 만나는 사람마다 친절하게 잘 도와줘서 어려운 고비를 잘 넘길 수 있었다. 터키에 이렇게 스파이가 많은 줄은 이 소설에서 처음 알았다. 물론 망명을 하려는 스파이가 들어왔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이제 구시대적인 유물이라고 생각되었던 스파이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대의 이야기는 은근히 재미있다. 

폴리팩스 부인 시리즈는 출간될 당시에 상당한 인기를 끌어서 여러 편의 시리즈가 나왔다고 한다. 아마 이번에 번역을 한 이 책 이후에도 계속 동명의 시리즈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사실 처음에 이 책을 보았을 때는 과연 얼마나 재미있을까 싶었는데, 일단 이 책을 손에 잡고 나니 손에서 책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평소에 스파이 소설이나 가벼운 류의 이야기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분명히 좋아할 것이라 확신한다.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읽기에 전혀 부담이 없는 책이다. 머리를 식힐 겸 읽을만한 책을 찾고 있는 독자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초강력 바이러스가 생존자들에게 남긴 후유증

마법사의 제자들 ㅣ 밀리언셀러 클럽 140
이노우에 유메히토 지음, 김아영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7월

처음에 이 책을 보았을 때, SF 환타지 소설인 줄 알았다. 그런데 책 뒤에 있는 간단한 줄거리만 읽어봐도 도무지 그런 내용이 아니다. 도대체 이게 어찌된 일인지 너무 궁금해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흥미진진한 소재와 구성으로 책을 읽는 내내 지루하다는 느낌이 절대 들지 않았다. 우리 생활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도 있는 가상의 현실에다가 상상과 현실을 마구 뒤섞어 놓아서 과연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상상인지 짐작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 책에서 말하는 '마법사의 제자들'은 무시무시한 바이러스를 이겨내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의미한다. 처음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단 4명인데, 그 중 한 명은 계속 깨어나질 않으니 3명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당할 듯 싶다. 정말 우연한 만남으로 치사율 100%에 가까운 바이러스가 노출되어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굉장히 전염성도 빨라서 거의 감염되는 즉시 죽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래도 환자가 발생하자마자 병원측의 신속한 대처로 일본 전역으로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발병했던 메르스와 비슷한 상황이다. 이 바이러스도 호흡기를 통해서 전염이 되는데, 평소에 허약했던 사람이면 죽음에도 이를 수 있는 바이러스가 지금까지도 방역당국이 주시하고 있는 바이러스 중의 하나이다.

여기서 가장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부분은 끔찍한 바이러스를 이겨내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가지게 된 초인적인 능력이다. 사람이나 물건의 과거를 보게 되거나, 생각만으로 물건을 자유자재로 변형시킬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몸에 빙의될 수도 있고, 자신의 몸에 대한 공격이 발생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방어하는 능력까지 갖춘 무적의 인간이 되어버렸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신기한 능력이지만, 작가는 이 능력에 대한 축복보다 부정적인 면에 대해서 더 부각시킨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사람들이 고민하는 점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서술한다. 이런 일련의 서술들을 보면서 남다른 힘을 갖는다는 일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여기서 나오는 '제자들'은 자신이 원해서 그 힘을 갖게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제목에 다소 억지성이 있다고 여겨지기도 하는데, 적어도 이 소설의 재미만큼은 확실히 보장할 수 있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가 더해져서 더더욱 시의적절한 소설이 되어버렸다. 초강력 슈퍼 울트라 바이러스로 인해서 전 세계의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다는 설정은 그저 상상으로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쩌면 정말 현실이 될 수도 있다. 하나의 변종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그 상상력의 끝을 만나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크리스티 타운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그리고 제인 마플이 죽었다
수잔 캔들 지음, 이문희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08년 2월

개인적으로 추리소설에 나오는 탐정 중, 미스 마플을 매우 좋아한다. 안락의자에 앉아서 평범하기 그지 없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에 빗대어 정말 풀기 어려운 사건들을 척척 풀어내곤 한다. 물론 노부인이라는 신체적인 약점도 적절하게 활용하는 점도 멋지다. 그래서 제인 마플이 나오는 현대 소설이라고 하길래 무척 기대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제인 마플과 현대의 제인 마플은 어떻게 다르게 나올지도 무척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책은 예전의 제인 마플과는 거의 상관없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오히려 예전의 애거서 크리스티의 모습이 더 많이 나온다. 과거과 현대가 교차하며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별로 상관없어 보이는 시작이었지만, 나중에 결말을 보고나니 이래서 비슷한 점이 있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현대 추리소설물답게 이 책에서도 여지없이 사건이 등장한다. 그것도 범인을 종잡을 수 없는 의문의 살인사건이다. 그리고 이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엉뚱한 여주인공도 등장한다. 도대체 이 여자는 무엇을 믿고 이렇게 무모하게 덤비는지 잘 이해는 안 가지만, 일단 이 소설의 주인공이니 그녀의 행적을 따라갈 수 밖에 없다. 여기저기를 종횡무진하는 덕분에 다양한 사람들의 비밀을 많이 알게 된다. 나중에 알고 보면 이런 비밀들이 모두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된다. 그러기 때문에 연결고리가 없어보이는 사실들도 이왕이면 머릿속에 잘 넣어두는 편이 좋다. 

추리소설을 좋아해서 모인 사람들이 사는 곳, 크리스티 타운에서 소설을 닮은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왠지 당연해보인다. 당연히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비극인데도 말이다. 알고보면 별 트릭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사건은 오리무중에 빠진다. 모든 사건을 알고보면 별 것 아니지만, 사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가장 단순한 것에 있다. 특별히 매력적인 캐릭터도 없고, 단순히 애거서 크리스티를 모티브로 한 소설이라는 점이 가장 큰 메리트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다소 심심하지만, 그나마 통통튀는 여주인공의 매력이 이 소설을 읽는 재미를 살려준다. 애거서 크리스티를 지독하게 좋아하는 독자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작품이다. 

평범한 이웃이 바로 범인이다

미스터 메르세데스 ㅣ 빌 호지스 3부작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7월

이 소설의 도입부는 상당히 충격적이다. 그저 일자리를 구하러 갔던 사람들일 뿐인데, 그렇게 아무 생각없이 죽여버리다니. 전형적인 사이코 살인마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역시 스티븐 킹이니까 이런 정도의 살인사건이 나오나보다. 워낙 유명한 작가이다보니, 책을 읽기 전부터 과연 어떤 내용으로 독자를 놀라게할지 궁금했었다. 책을 읽으면서 상당히 긴박감이 넘치는 구성으로 독자의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평소에 추리소설이나 스릴러를 즐겨읽는 독자였다면 이 책은 안성맞춤이다. 책 광고카피에는 스티븐 킹의 첫 탐정 추리소설이라고 하는데, 사실 처음부터 범인의 심리도 함께 묘사를 하기 때문에 독자가 깜짝 놀랄만한 반전이나 극적인 결말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재미있다고 하는 이유는, 범인의 놀랄만한 사이코적 기질,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을 예측하기 힘든 사건의 전개가 아닐까 싶다. 

이 책에서 탐정의 역할로 등장하는 인물은 '호지스'라는 전직 퇴임 경찰이다. 정년이 되어 퇴직한 인물들이 그러하듯이, 그도 퇴임식을 하고 나서 무료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냥 가만히 두면 자살을 할 수도 있는 그런 상태의 그에게 어느날 의무의 발신인으로부터 편지가 왔다. 나름대로 치밀한 각본을 가지고 미결 사건의 범인이 쓴 편지였는데, 범인이 생각한 것보다 주인공은 상당히 노련한 경찰이었다. 미결 사건의 사건 경과를 현직 경찰을 통해 알아보고, 자신 나름대로의 논리를 가지고 범인에게 대응한다. 범인의 예상을 뛰어넘는 대응은 미친 살인마를 지켜보는 독자에게 통쾌함을 안겨준다. 

호지스는 셜록 홈즈처럼 멋진 외모를 가지지도 못했고,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인상이지만 오랫동안 사람들을 만나고 대응해온 덕분에 인간적인 매력을 충분히 가졌다. 그래서 피해자의 가족들도 처음에는 낯설어했지만 나중에는 그에게 은근히 의지를 하게 된다. 범인을 함께 찾아나가는 구성도 재미있지만, 서로 다른 두 장소에 있는 탐정과 범인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꽤 흥미롭다. 색다른 구성을 가진 추리소설 덕분에 무더운 여름 날씨에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열심히 소설을 읽었다. 휴가 때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은근히 고민될 때, 중독성이 강한 이 책을 선택하는 것도 충분히 현명한 방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