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팬지 폴리틱스 - 권력 투쟁의 동물적 기원
프란스 드 발 지음, 장대익.황상익 옮김 / 바다출판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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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사회 못지않게 복잡다단한 관계 역학을 보여주는 침팬지 사회. 존경, 복종, 배신, 모반, 포섭, 배후 조종, 편들기, 이이제이, 동맹, 연합, 관용, 아첨, 견제, 고자질, 기만, 보복, 거래, 화해, 타협 등등- 인간과 마찬가지로 침팬지도 공동체 사회 내부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정치적 판도 변화를 예의 주시하며 쉴 새 없이 다양한 정치 전략을 구사하지 않으면 자기 입지를 유지할 수가 없다. 침팬지 사회의 정치 드라마가 인간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은 데다가 너무나 노골적이기 때문에 이 책은 마치 침팬지 연구를 통해 작성한 인간 사회 보고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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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 리들리의 본성과 양육 - 인간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매트 리들리 지음, 김한영 옮김, 이인식 해설 / 김영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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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에는 찰스 다윈, 프랜시스 골턴, 윌리엄 제임스, 위고 드브리스(유전법칙 발견), 콘라드 로렌츠(각인 개념)를 위시한 본성의 권위자들이 있고, 그 반대편에는 이반 파블로프(조건반사), 존 브로더스 왓슨(파블로브의 이론을 행동주의로 이끌어냄), 에밀 크레펠린(정신의학의 기초를 다짐), 지그문트 프로이트(형성기 경험의 중요성), 에밀 뒤르켐(사회학의 개척자), 프란츠 보아스(문화가 인간의 본성을 만든다), 장 피아제(모방과 학습이론)로 대표되는 양육의 권위자들이 있다. 이 책은 이들을 중심으로 백 년 넘게 지속되어온 본성 대 양육 논쟁의 역사를 파헤치면서 양자의 절충과 화해를 모색하고 있다.

 

저자는 행동주의자들의 편협성에 대한 비판 못지않게 본성 환원주의나 유전자 결정론 또한 경계하면서, 본성과 양육의 긴밀하고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강조하고, 또 말미에선 본성과 순환적 인과관계를 이루며 조화롭게 양립하는 인간의 자유의지에도 주목하지만, 이 모든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고찰에도 불구하고 역시 저자의 입장은 환경보다는 본성 쪽에 더 조심스럽게 방점이 찍혀있는 것 같다. 한글 제목은 '본성과 양육'이지만 원제가 'nature via nurture'인 걸 봐도 그렇고.

 

빈곤과 폭력 등에 극단적으로 노출되어있는 조건에서는 인간의 성장에 있어서 열악한 환경이 매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양육(환경)은 비타민C와 같아서 적당하기만 하면 약간 더 많고 적은 것은 장기적으로 눈에 띄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354)라는 언급이나, 연령이 증가할수록 유전자의 영향이 높게 나오고 환경의 영향이 낮게 나온다는 사실(137), “정직한 가정의 아이가 정직한 가정으로 입양되면 후에 범법 행위를 할 확률은 13.5퍼센트이고, 만약 입양 가정에 범죄자가 포함된 경우 그 확률은 14.7퍼센트로 조금 높아지며, 범죄자 부모로부터 정직한 가정으로 입양되는 경우는 20퍼센트로 껑충 뛰고, 양부모와 친부모가 모두 범죄자인 경우는 24.5퍼센트로 급증한다”(353)는, 덴마크에서 대규모로 실시된 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본성과 양육이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을 극복하려는 저자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바로 이 대목이다. "유전자 자체는 작고 무자비한 결정인자로, 완전히 예측 가능한 유전 정보를 들려준다. 그러나 그것의 프로모터들이 외부의 명령에 반응하면서 켜지고 꺼지는 방식 때문에 유전자는 결코 틀에 박힌 행동을 하지 않는다. 대신 유전자는 환경으로부터 정보를 추출하는 장치다. 우리의 뇌에서 유전자들이 발현되는 패턴은 몸 밖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반응하면서 일분일초마다 변한다. 따라서 유전자는 경험의 메커니즘이다."(346) "유전자는 살아있는 동안 활동하고, 서로를 스위치처럼 켜고 끄며, 환경에 반응한다. 유전자는 자궁 속에서 신체와 뇌의 구조를 지시하지만, 환경과 반응하면서 자신이 만든 것을 거의 동시에 해체하거나 재구성한다. 유전자는 행동의 원인이자 결과인 것이다."(22) 

 

다양한 연구 사례들을 소개하면서 저자는 '양육을 통해 본성이 강화됨'을 역설하고 있다. 내가 속한 이 사회는 최근에는 '수저론'이 등장할 정도로 부의 계급화가 공고해져가는 추세이고, 경제적 격차에 따른 양육 환경이 본성의 발현을 제약할 여지는 그만큼 커지고 있다. 양육 환경에 있어서 조금이라도 미진하거나 결핍된 요소가 있으면 그것이 곧 본성의 발현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준다고 하니, 부모는 아이가 고유한 본성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도록 최적의 환경을 적극적으로 조성해 줄 필요가 있겠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부모 된 자의 가장 막중한 도리이자 의무일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곧 태어날 아기에게 욕심만큼 질좋은 양육환경을 제공해주지 못하는 내 비루한 경제력이 벌써부터 마음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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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혁명의 구조 - 출간기념50주년 제4판 까치글방 170
토머스 S.쿤 지음, 김명자.홍성욱 옮김 / 까치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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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2 정상과학에로의 길

어느 일정한 시기에 특정 과학자 공동체에게 모범이 되는 문제와 풀이를 제공하는, 그러한 실천의 토대를 제공하는 성취, 다시 말해 특정 시기에 보편적으로 인식된 과학적 성취, 우리는 이것을 패러다임이라고 부른다. 패러다임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①경쟁하는 과학 활동의 양식으로부터 끈질긴 옹호자 집단을 떼어내어 유인할 만큼 놀랄 만하다. ②재편된 연구자 집단에게 온갖 종류의 문제들을 해결하도록 남겨놓을 만큼 충분히 융통성이 있다.

 

과학 발전의 초창기에는 대개 사실의 무작위적인 수집과 장황한 나열 속에서 자연에 관한 상이한 견해들 간의 부단한 경쟁만이 이어진다. 그러다 이윽고 한 과학 분야가 패러다임을 이끌어내고 그것이 허용하는 보다 비전적인 연구 형태를 획득하게 되는데, 이는 그 분야의 발전에서 성숙의 징조이다. 하나의 패러다임으로부터 혁명을 거쳐서 다른 패러다임으로 연속적으로 이행하는 것은 성숙한 과학에서의 통상적인 발달 양상이다.

 

3 정상과학의 성격

패러다임은 새롭거나 보다 엄격한 조건 아래에서 더욱 명료화되고 특성화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패러다임의 완결성을 높이기 위해 정상과학은 어떤 마무리 작업들을 수행하는가. 패러다임에 근거한 정상과학의 연구 양상은?

 

*사실 수집, 즉 사실적 과학탐구에 있어서:

① 패러다임이 특히 흥미롭다고 제시하는 사실들에 대한 지식을 확장시킨다. 패러다임이 주목하는 요소들을 좀 더 정확하고 광범위하게 알아내고자 하는 시도들.

② 사실들과 패러다임의 예측 사이에 일치 정도를 증진시킨다. 사실과 이론의 일치를 증명하려는 여러 시도들. 이론을 증명하려는 설계. 이론을 증명해줄 수 있는 사실들의 발견.

③ 패러다임 자체를 더욱 명료화시킨다. 가령, 물리적 상수를 결정한다든지 정량적인 법칙을 만든다든지 보다 세련되고 정교한 패러다임을 산출하기 위해 여러가지 실험을 고안하고 그 결과를 패러다임을 적용해 해석한다.

 

*이론적 문제들에 있어서:

이론을 이용해서 고유의 가치가 있는 사실적 정보를 예측한다. 패러다임의 새로운 응용을 제시하기 위해 또는 이미 이루어졌던 응용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수행하는 작업들. 응용에 요구되는 수학을 전개시키기도 한다.

 

결론: ①의미있는 사실의 결정, ②사실과 이론과의 일치, ③이론의 명료화 등은 실험과학과 이론과학 양쪽에서 정상과학 문헌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정상과학이 수행하는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은 패러다임이 제공하는, 미리 만들어진, 상당히 고정된 개념상자 속으로 자연을 밀어넣는 시도라고 볼 수도 있다.

 

4 퍼즐 풀이로서의 정상과학

앞서 보았듯이 정상과학은 개념적이거나 현상적으로 예기치 못한 중요한 새로운 발견을 얻어내는 것을 거의 목표로 하지 않는다. 정상연구 문제가 열정을 기울이는 것은 이미 예측한 지점을 새로운 방법으로 성취하는 일이다. 이는 마치 수학적 퍼즐 풀이와도 같다. 패러다임은 과학자 공동체로 하여금 퍼즐을 완성하기 위한 문제들에 선택적으로 집중하도록 유도한다. 즉 페러다임은 어떤 문제들에 대해서는 무가치하게 여기거나 무관심하게 만들고 어떤 문제들에 대해서는 반대로 과도하게 집중하도록 만든다. 포커싱할 주제 선정. 문제설정 방향을 지시.

 

패러다임은 특정 시기 특정 과학자 공동체의 세계관, 우주관, 자연관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형이상학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또한 패러다임은 방법론적 측면에서 관찰 결과를 어떻게 설명하고 어떻게 개념화할 것인가에 관한 스타일을 제시한다. 진리규명의 양식을 제시.

 

5 패러다임의 우선성

같은 패러다임의 영향력 아래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정상과학 연구들은 마치 우리가 낱말을 익히고 사용하는 이치와 같다. 관념적이고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모델, 어떤 관념 체계가 확고히 서 있어야 그러한 관념틀 안에서 비로소 인식되고 개념화되고 분류되는 것. 이런 점에서 패러다임은 일군의 연구 규칙보다도 더 우선적이며, 더 구속력 있고 더 완전하다. 패러다임이 규칙을 초월하는 영향력을 가진다는 것은 곧 패러다임이 공유된 규칙과 가정에 우선하는 지위를 차지한다는 것이며, 추상화된 규칙들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모형을 제공함으로써 연구를 인도한다는 뜻이다. 발견될 수 있는 규칙들의 개입이 없이도 정상과학을 결정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규칙에 대한 패러다임의 우선성을 보여주는 몇 가지 증거들: ①특정한 정상과학 전통을 주도해온 규칙들을 찾아내는 것이 지극히 힘들다. ②구체적인 응용과 참여를 통해 각종 과학 법칙과 이론을 터득하게 하는 과학 교육의 특성. ③규칙은 대개 패러다임이 안전하게 지탱되는 동안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가 패러다임이 위기에 봉착할 때에 비로소 첨예한 논쟁의 화두가 된다. ④동일한 연구영역에서 출발한 사람들이라도 전공의 세분화 과정에서 상당히 차이가 나는 패러다임을 얻을 수 있다. 패러다임은 유연하고 대치가 가능하며 공존하기도 한다. 엄격하고 획일적이고 경직된 어떤 것이 아니다.

 

6 변칙현상 그리고 과학적 발견의 출현

발견은 변칙현상의 지각, 즉 자연이 패러다임이 낳은 예상들을 어떤 식으로든 위배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는 변칙현상의 영역에 대한 다소 확장된 탐험으로 이어지며, 그 변칙현상이 더 이상현상이 아니도록, 납득하고 예측할 수 있도록 패러다임 이론을 조정하는 경우에 발견은 비로소 발견으로서의 의미를 갖게 된다. 발견이 이와 같이 패러다임의 변화를 포함한다는 것은 한편으로 새로운 과학적 발견의 출현이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전문가 사회가 전통적인 실험과정을 재평가하고, 오랫동안 익숙했던 실체에 대한 개념을 바꾸고, 이 과정에서 자신들이 세계를 다루기 위해 사용하던 이론의 연결망을 개편시키는 와중에 과학적 발견은 일어난다. 기존에 포착할 수 없었던 것들이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 비로소 포착되기 시작하는 것.

 

수용된 패러다임을 기반으로 발전하는 정상과학은 점점 더 정교하고 심오해지며, 패러다임이 정확해지고 영향력이 커질수록 정상과학은 변칙현상에 대한 예민한 지표를 제공하게 된다. 정상과학이 사실이나 이론의 새로움을 겨냥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억압하는 경향마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상과학의 전통적인 탐구방식 자체가 정상과학 자체의 변화를 야기한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7 위기 그리고 과학 이론의 출현
정상과학 범주 안에서의 과학적 발견이 야기하는 것보다 통상적으로 훨씬 더 큰 대폭적인 변동이 있다. 이는 새로운 이론의 창안으로부터 비롯된다. 새로운 이론의 출현은 대체로 기존의 체계의 불안정함이 현저해지고 위기가 고조되는 선행시기(기존의 이론의 모호성이 점증되고 기존 이론에 대한 여러 가지 수정안이 등장)를 거치게 된다. 몇 가지 역사적 사례를 돌이켜보면, 새로운 이론은 위기에 대한 직접적 반응으로서 정상적 문제 풀이 활동에서 현저한 실패를 겪은 후에야 비로소 출현하는 것으로 보인다. 왜 새로운 이론의 창안은 위기가 고조되는 지극히 특수한 경우에만 ‘비로소’ 출현할까. 다른 생산 활동과 마찬가지로 과학에서도 도구를 새로 만드는 일 자체가 일종의 사치이기 때문이다. 위기의 중요성은 도구를 바꾸어야 할 적기에 도달했음을 가리키는 지표가 된다.

 

8 위기에 대한 반응
위기가 새로운 이론의 출현에 필수적인 선행조건이라면, 과학자들은 위기의 존재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는가. 그들은 그들을 위기로 몰고 간 기존의 패러다임을 곧바로 폐기하지는 않는다. 어떤 과학이론이라도 한 번 패러다임의 지위에 등극하게 되면 그 지위를 찬탈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다른 후보이론이 나타나지 않는 한 버려지지는 않는다. 변칙현상이나 반증사례가 나타나더라도 그것들은 기껏해야 위기 형성을 조장하거나 무르익은 위기를 심화시킬 따름이다.

 

하나의 패러다임을 거부하는 결단은 언제나 그와 동시에 다른 것을 수용하는 결단이 된다.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지 않은 채로 하나의 패러다임을 파기하는 것은 과학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다. 기존의 패러다임을 파기하고 또 다른 패러다임으로 넘어가는 그 결정을 이끌어가는 판단은 패러다임과 자연의 비교 그리고 패러다임끼리의 비교라는 두 가지를 포함한다.

 

어떤 패러다임도 자연의 모든 문제들을 완벽하게 풀지는 못한다. 퍼즐은 결코 완벽하게 맞춰지지 않는다. 항상 패러다임을 위협하는 변칙과 반증 사례가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얻지 못하는 것은 과학자의 탓일 뿐 과학 이론의 흠은 되지 않으며, 그러한 변칙들이 반드시 과학자들로 하여금 심각한 회의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아니다. 대개의 변칙들은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막연한 인식만을 남긴 채 간과되거나 유보된다. 만일 하나의 변칙 현상이 위기를 유발한다면, 그것은 보통 단순한 변칙 이상의 것이라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특정한 변칙현상을 집중적으로 탐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드는가? 이 질문에는 딱히 일반성을 가지는 해답이 없는 것 같다.

 

여러 가지 이유로 특정 변칙현상이 집중적으로 탐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시사적인 주제로서 수면에 떠오르게 되면, 즉 하나의 변칙현상이 많은 과학자들에게 정상과학의 또 다른 퍼즐 이상의 것으로 보이게 되면, 비로소 비정상과학으로의 이행은 시작된다. 변칙현상을 규명하기 위해 기존의 이론에 대한 (하나같이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한) 갖가지 임시방편적 수정안이 등장하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정상과학의 규칙들은 점증적으로 모호해진다. 모든 위기는 이렇게 하나의 패러다임이 모호해지면서, 그리고 그에 따라 정상과학의 규칙들이 해이해지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모든 위기는 세 가지 방식 가운데 하나로 종결된다.

 

첫째, 정상과학이 궁극적으로 위기를 발생시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지는 경우. 즉 기존의 패러다임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경우. 둘째, 기존의 패러다임으로도, 새로운 급진적 접근으로도, 문제가 안 풀리는 경우. 이 경우, 문제 풀이는 미래 세대의 몫으로 유보된다. 마지막으로 패러다임의 새로운 후보가 출현하고 그것의 수용을 놓고 잇따른 투쟁이 전개됨에 따라서 위기가 종말을 거두는 경우. 위기가 종말을 거두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이행이 일어나는 그러한 변화는 누적적 과정과는 거리가 멀 것이다. 이는 오히려 새로운 기반에 근거해서 그 분야를 다시 세우는 것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일반화조차도 변화시키는 재건 사업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게슈탈트 전환과도 비슷하다.

 

패러다임의 붕괴에 대한 최초의 인식과 새로운 패러다임의 출현과의 사이에는 상당한 시간차가 벌어진다. 이 혼돈의 시기에 수행되는 연구가 비정상연구다. 이론의 영역에서 뚜렷하게 근본적인 변칙현상에 부딪치게 되면, 과학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선적으로는 기존의 정상과학의 규칙들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무작위적인 연구와 실험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추론적 가설들을 내세우려고 애쓸 것이다. 비정상연구는 또 다른 다양한 후속 연구와 발견들은 수반하게 되며, 이러한 과정 속에서 패러다임 전환에 필요한 데이터는 늘어난다. 또한 비정상연구는 과학자들로 하여금 당대의 연구 전통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적 분석을 유도하기도 한다. 경쟁적인 명료화의 남발, 무엇이든 해보려는 의지, 명백한 불만의 표현, 철학에의 의존과 기본요소에 대한 논쟁, 이 모든 것들은 정상연구로부터 비정상연구로 옮아가는 증세들이다.

 

9 과학혁명의 성격과 필연성
위기의 시절에 다발적으로 출현하여 경쟁하는 패러다임들은 타협과 절충을 통한 양립이 불가능하다. 양립 불가능한 것들 중에서 오로지 하나의 선택만이 가능한데, 이 선택은 정상과학 내의 논리적인 평가 과정에 의해서 결정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패러다임이 패러다임 선택에 관한 논쟁에 끼어들게 되면, 패러다임의 역할은 필연적으로 순환성을 띠게 된다. 그룹마다 제각기 그 패러다임을 옹호하는 논증에 그 고유의 패러다임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순환논증은 명쾌한 논리적 규명이 아니라 그저 설득의 방편일 뿐이며, 결국 하나의 이론이 패러다임의 지위를 획득한다는 것은 그에 대한 해당 집단의 동의와 수용이 얼마나 이루어졌는지가 관건이라고 하겠다.

 

과학혁명의 성격은 패러다임 간 양립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누적적 축적 또한 불가능하다. 새로운 이론은 자연현상과 기존 이론과의 관계 속에서 변칙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 요청되는 것인데, 성공적인 새 이론은 그 이전의 이론에서 유도된 예측과는 다른 예측을 내놓아야만 한다. 결국, 두 이론은 논리적으로 양립 불가능할 수밖에 없고, 동화 과정에서 후속 이론이 기존의 이론을 대체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과학사를 봐도 새로운 이론이 자연에 관한 믿음에 비연속적인 변화를 일으키지 않고 나타나는 경우를 목도하기는 매우 어렵다.

 

과학혁명이 일어난다는 것은 기존의 정상과학을 가능하게 했던 기본적인 구조적 요소들, 즉 과학자들의 우주가 구성되는 그런 요소들의 근본적인 변화를 말한다. 이미 확립된 친숙한 개념들이 의미하는 바가 대대적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개념적 변환은 다른 어떤 것 못지않게 이전에 확립된 패러다임을 결정적으로 파괴한다. 그리고 이러한 파괴를 과학에서의 혁명적 재배치의 원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뉴턴에서 아인슈타인 역학으로의 변환은 사물이나 개념을 추가적으로 도입하지 않았고, 바로 이런 이유에서 이 변환은 과학자들이 세계를 보는 데에 사용하는 개념적 네트워크가 변화한 것이 과학혁명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혁명적 재배치 끝에 새로운 패러다임의 승인이 이루어지고 나면, 필연적으로 이에 상응하여 과학의 범주 자체가 재정의된다. 옛날 문제들은 더러 다른 과학 분야로 이관되거나 또는 완전히 비과학적인 것이라고 선언된다.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거나 또는 사소해 보였던 여러 문제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과 더불어 유의미한 과학적 성취의 원형이 될 수도 있다. 참된 과학적 해답을 구별 지는 기준이 바뀌는 일도 흔하다. 이와 같이 과학혁명으로부터 출현하는 정상과학의 전통은 앞서 간 것과는 양립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종종 실제로 공약 불가능한 것이다.

 

패러다임은 과학자들에게 지도뿐만 아니라 지도를 만드는 데에 필수적인 방향까지 제시한다. 패러다임을 익히면서 과학자는 이론과 방법과 기준을 보통 한데 뒤엉킨 혼합체로 모두 획득하게 된다. 그러므로 패러다임이 변화하게 되면, 통상적으로 문제와 제안된 풀이 등 양쪽의 정당성을 결정짓는 기준에서도 상당한 변동이 일어나게 된다. 이런 점 때문에 서로 겨루는 패러다임들 중에 어떤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한지 그 우위를 가린다는 게 애당초 어불성설인 것.

 

10 세계관의 변화로서의 혁명
혁명 기간 동안 과학자들은 이전에 연구했던 곳에서 친숙한 도구를 이용해서 관측하면서 새롭고 색다른 것을 보게 된다. 지각작용에 선행하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과학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연구 활동의 세계를 다르게 보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패러다임의 변화가 곧 세계관이 변화인 것이다. 혁명 이전에 오리였던 것이 혁명 이후에는 토끼로 둔갑하는 이러한 시각적 전환은 개인에게는 돌발적이고 비구조적이고 직관적인 사건이며, 과학자들 세계에서는 비가역적이고도 점진적인 변화이다.

 

과학적 세계관이 바뀌면 기존의 기기와 기존의 용어 그리고 낡은 실험 조작을 통해서도 이미 알려진 바와는 전혀 다른 자연의 새로운 규칙성을 발견하게 되지만 그러한 관찰 결과를 취합, 해석하여 구축한 새로운 이론이 과학자들에게 쉽게 수용되지는 않는다. 과학자 집단 전체의 세계관이 어느 정도 전환된 후에야 그것을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이게 되고 수용하게 된다. 새로운 이론이 선택될 때, 그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관의 변화 때문에 선택되는 것이다.

 

11 혁명의 비가시성
왜 이전에는 과학혁명을 보기가 어려웠는가. 왜 과학사는 직선적이고 누적적인 것처럼 보이는가. 과학 하면 떠오르는, 권위 있는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교과서 및 교과서를 모델로 한 과학 서적들이 그동안 과학혁명의 존재와 의미를 체계적으로 위장시켜왔기 때문이다. 이런 책들은 모두 과학혁명이 완성된 후 안정화된 ‘결과’들만을 기록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당대 정상과학의 기반을 드러낸다. 교과서는 정상과학의 영속을 위한 교육적 수단이기는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교과서들은 과학혁명을 거칠 때마다 과학사에 대한 편집과 각색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며 이렇게 새롭게 쓰인 교과서들은 필연적으로 그것들을 생산했던 혁명의 역할 뿐만 아니라 혁명의 존재 자체까지도 가려버리고 만다.

 

12 혁명의 완결
과학혁명의 시기에는 기존의 패러다임과 새로운 패러다임이 경합한다. 공약불가능성이라는 패러다임의 성격상 각 이론의 정합성에 대한 논리적 입증은 불가능하다. 이론끼리의 경합과 자연선택만이 존재할 뿐이다. 생물들 사이에서 자연선택이 이루어지듯이 과학사에서도 역시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서 존재하는 실제적 대안들 중에서 가장 적합한 것이 선택된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이행은 공약불가능한 것들 사이의 이행이기 때문에 논리나 가치중립적 경험에 의해서 추동되어서 단계적으로 진행되는 성격의 것이 아니며, 이행은 차라리 ‘개종’의 경험이다. 그렇다면 어떤 요인들이 과학자들로 하여금 개종을 하도록 만드는 것일까. 우선적인 요인은 옛 패러다임을 위기로 이끌고 간 문제들을 새로운 패러다임이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보여주는 월등한 미적 호소력 또한 중요하다. 옛 이론에 비해 새로운 이론은 미적으로 세련되고 적합해 보인다. 아직 구체적 근거가 미비함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이론이 갖는 심미적 우월성은 과학자들로 하여금 그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갖게 한다.

 

13 혁명을 통한 진보

왜 유독 과학 분야에서만 진보가 그토록 현저한 특징이 되는가. 일단은 의미론적으로 과학이라는 용어 자체가 ‘확실한 방식으로 진보가 일어나는 분야’에만 국한되어 쓰이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 더 구체적인 상황을 살펴보면, 원래 정상과학 기간에는 연구의 성격상 진보적 특징이 또렷한 게 사실이다. 더구나 사회로부터 고립된 채 전문가 집단 내에서만 폐쇄적으로 심화되어가는 과학이라는 학문 자체의 성격, 학습자가 기존의 패러다임을 철저히 체화해 나감으로써 과학이라는 학문에 입문하게 되는 특유의 교육 방식 등등과 맞물려 정상과학 안에서의 퍼즐 풀이는 필연적으로 더더욱 진보로 비추어질 수밖에 없다. 설령 정상과학이 위기에 몰리고 과학혁명이 일어나더라도 승리를 거둔 새로운 이론의 주창자들은 자기들이 이겼으니까 자기네들이야말로 당연히 과학적 진보의 결과라고 믿게 되고, 이는 과학사의 왜곡으로 이어진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과학의 진보를 당연시 여겨오고 있다. 과학을 ‘자연에 의해서 미리 설정된 어떤 목표를 향해서 부단히 다가가는 활동’으로 간주하는 것에 매우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논의를 바탕으로 새로운 제안을 해본다면 어떨까. 즉, 과학을 생물학적 진화의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다시 말해 과학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들로부터의 진화’로 여긴다면? 그리하여 과학도 마치 생물체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원시적인 태초로부터 출발하여 어떤 목표도 향하지 않고 꾸준히 진행되어온 과정의 산물’로 본다면? 이런 제안이 타당하다면, 더 이상 과학의 진보는 절대적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직선적인 경로가 아니다. 세상에 대한 덜 적절한 관념, 덜 적절한 상호작용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바로 진보의 새로운 개념이 될 것이다.

 

후기

①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에 대한 보충 설명: 이 책의 많은 부분에서 ‘패러다임’이라는 용어가 두 가지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다.
*사회학적인 측면에서의 패러다임: 어떤 주어진 과학자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믿음, 가치, 테크닉 등을 망라한 총체적 집합.
*집단 공약의 집합체로서의 패러다임: 정상과학의 남은 퍼즐을 푸는 기초가 되는, 명시적인 규칙을 대신하는, 공유된 예제들에 암묵적으로 내포된 지식의 요소. 범례를 통해 추상화되는 앎의 양식, 범례로부터 획득하게 되는, '기호적 일반화'가 가능한 어떤 인식. 언어학에 비유하면, 구제적인 단어 습득과 일상 회화를 통해 익히게 되는 추상적인 언어 체계.

 

② 과학자 공동체의 성격: 과학 지식의 생산자이자 승인자로서 묘사되는 기본 단위. 패러다임이란 그런 집단의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그 무엇을 말한다. 하나의 과학자 공동체는 유사한 교육과 전문적인 지도를 받고 동일한 기술적 문헌을 흡수한다. 집단 내 의사소통은 완전하고 전문적 판단은 잘 일치한다. 반면 상이한 공동체끼리의 소통은 쉽지 않다. 과학자 공동체가 특정 연구 주제를 공유하는 건 아님. (각각 상이한 패러다임에 속한 두 무리의 과학자 공동체가 하나의 특정 연구 주제에 동시에 몰두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똑같은 것을 보고도 두 무리는 각각 다르게 인식한다.) 과학자 공동체는 주제를 공유하는 게 아니라, 믿음, 가치체계, 테크닉, ~의 법칙, ~의 공식, ~의 방정식과 같은 일종의 과학언어를 공유하는 것.

 

③ '위기'에 대한 보충 설명: 위기가 혁명의 절대적 전제조건은 아님. 위기는 단지 통상적인 서막에 불과하며, 위기라는 게 원래는 정상과학의 경직성을 완화하는 자체 교정 메커니즘이기도 함. 그리고 위기가 꼭 공동체의 연구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만도 아님. 새로운 기기라든가 새로운 법칙의 등장이 위기를 낳기도 함.

 

④ 과학의 기초를 논리와 법칙보다는 분석할 수 없는 개인의 직관에서 찾으려 함으로써 과학을 주관적이고 비합리적인 활동으로 만들었다는 비판에 대해: 패러다임이 직관적인 것이라면, 그것은 개인의 직관이 아니라 성공적인 집단 구성원들 사이에서 시험을 거쳐 공유된 체계적인 직관이다. 그리고 그런 직관이 분석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⑤ 양립불가능한 두 이론 사이의 선택의 문제: 공약불가능한 관점을 가진 사람끼리는 서로 다른 언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간주되고 그들 사이의 의사소통 문제는 번역의 문제로 분석될 수 있다.

 

⑥ <과학혁명의 구조>가 그리고 있는 과학의 모습이 지나치게 상대주의적이라는 비난에 대해: 진화론적 관점으로 과학을 보면, 과학의 발전은 생물학적 발전과 마찬가지로 일방향적이고 비가역적인 과정이며, 나중의 과학 이론들은 이전의 이론들보다 진화론적으로 우수하다. 그 까닭은, 나중의 이론이 자연의 진리값에 보다 근접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이전의 이론들보다 ‘퍼즐을 발견하고 해결하는 데 있어서 더 나은 도구’이기 때문이다. (인식의 유용성에 있어서 더 우월하다는 것. 인식의 유용성을 가늠하는 기준은: 정량적 예측의 정확성, 난해한 주제와 일상적 주제 사이의 균형, 해결된 여러 문제들의 수, 단순성, 얼마나 넓은 범위에 적용할 수 있는가, 다른 전공 분야와 양립 가능한가 등등) 이런 맥락에서 나는 과학적 진보를 확신한다. 이는 결코 상대주의자의 입장이 아니다.

 

⑦ 이 책에서 나는 과학의 발전을 단절화되고 비누적적인 전통의 연속으로 묘사했는데, 사실 이런 단절화된 역사 구분의 방식은 문학사, 정치발전사, 음악사, 미술사 등 인간의 여러 활동의 역사에서 이미 적용되어온 바 있다. 나는 흔히들 단선적이고 누적적인 방식으로 발달한다고 생각해왔던 과학이라는 분야에 그러한 개념을 새롭게 도입해봤을 뿐이다.

 

*

 

과학이 과학 자신을 객관적이고 초월론적 시각에서 살펴본다는 점에서, 즉 학문 자체의 자기분석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언뜻 이 책은 푸코의 지적 탐사 여정의 과학 버전 같기도 하다. 쿤이 푸코의 영향을 받은 것일까 푸코가 쿤의 영향을 받은 것일까. 아니면 특별한 교류 없이 푸코나 쿤이나 그저 60년대 탈근대적 흐름 속에서 출현한 일군의 새로운 지적 현상들인가. 쿤이 절대적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직선적 경로로서의 과학의 진보를 부정했다고 해서 그를 상대주의의 선각자로 칭송하는 것(41쪽)은 성급해 보인다. 이 책 후기에서 쿤이 직접 자신은 상대주의자가 아니라고 해명한 걸 보면 그 역시 그러한 칭송을 결코 달가워하지 않을 것 같다.

 

쿤은 이론이 진리에 얼마나 근접하는가 하는, 이론의 존재론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일단 괄호를 치고, 단지 이론이 얼마나 인식론적으로 유용한지를 기준으로 과학의 진보를 긍정한다. 그는 자연의 진리를 어떤 차원에서 어떤 시각으로 규명할 것인가 하는 문제 즉 프레임의 문제에 집중할 뿐이다. 하지만 진리 규명의 프레임에 대한 고찰 자체가 이미 형이상학적인 어떤 진리의 존재를 암묵적으로 상정하고 있는 셈이 아닐까. 이는 곧 과학이라고 하는 지극히 ‘근대’스러운 학문의 존재론적 조건이기도 할 것이다. 반면에 푸코는 좀 더 급진적이다. 진리 자체를 창안되고 고안된 어떤 것으로, 유기적이고 변형 가능한 구성물로 여긴다는 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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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 아래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조은하 옮김 / 애니북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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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안도 카즈마와 마스다 미리의 우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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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 보급판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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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두께가 목침만한 이유가 있었다. 인류 탐험의 역사, 천문학, 점성술, 현대물리학, 신화, 생물학, 진화론, 그리스 과학철학 등 방대한 주제를 넘나들며 썰을 푼다. 우주 과학에 관한 무수한 채널을 열어주기 때문에 생명과 우주에 관심 많은 과학 꿈나무가 읽으면 이 책을 든든한 발판으로 삼을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나로서는 올해가 가기 전에 인구에 회자되는 고전 한 권을 아무거나 하나라도 독파해보자는 취지로 펼쳐든 책이었는데 맙소사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수면유도서적이었다. <읽다보면 잠들고 깨어나면 뒤로 돌아가서 다시 읽고 읽다보면 또 잠들고>의 무한 반복. 나야말로 혼이 비정상인가. 아니면 이거슨 설마 타임 루프? 난 지금 타임루프에 갇힌 건가? 과연 고전의 위력이란. 온 우주의 기운이 모여들어 신비현상을 체험해보게 되는 상서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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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정 2020-01-08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후기가 재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