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가 하와이로 된 것은 지극히 자의적으로 보였다. 단 한 톨의 흠결도 없이 완벽하게 세팅된 낙원! 그곳은 사실 지구 어디든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자본주의사회 인간들의 안식과 재충전을 위해 태평양 한가운데 조성된 이 섬이 너무나 완벽했으므로 눈물이 다 났다. 고백하자면 어떤, 열패감 같은 걸 느꼈던 것 같다. 이곳은 너무나 아름답구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기꺼이 개가 되고 싶도록, 개가 되어 한 몇 년 일하고 나서 다시 또 찾아오고 싶도록- 자연환경, 쇼핑, 오락, 스포츠, 휴양 모든 방면에 있어서 빈틈없이 아름답구나. 돈을 들고 온 자에게 이 섬은 천국을 열어주었다.

 

비현실의 현실화를 목도하고 거기서 어떤 숨막히는 절대성을 발견했을 때 평범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경이 앞에 무력하게 굴복하는 것 뿐. 지난 시절 독서를 통한 나름의 탈체제적 모색들(?)이 순진한 몽상이자 소박한 관념 찌끄러기에 불과했던 게 아닐까 진심으로 회의하게 만들 만큼 하와이는 무시무시하게 실제적이었다. 그 실제성이, 하와이를(내지는 하와이 같은 것을) 경험한 자로 하여금 기꺼이 자발적으로 개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리라. 이 섬은 너무도 고차원적인 방식으로, 다정하지만 엄격한 어머니처럼, 굴종을 가르치고 있었다. 야속해라. 이 아름다운 섬에는 선택지가 없구나. 하와이에서 석양을 옆에 두고 윤기가 잘잘 흐르는 스테이크를 써는데, 벅찼다. 여러가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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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13 19: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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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15 02: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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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고유의 정서나 기질 같은 게,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저마다의 내면에 조성되어 있는 전반적인 기후라고 해야 할까. 그런 건 정말이지 자연 환경과도 같아서 궂은 날씨에 맞서 보겠다고 아무리 의식적으로 자기를 절제하고 깜냥껏 단속해본들 완벽하게 극복할 수는 없는 영역인 듯하다. 맞춰 살아야 할 밖에. 이웃과 사회와 체제와도 그러해야 하듯이 자기 자신하고도 어떻게든 화해하며 살아갈 밖에. 숨쉬기도 힘든 고산지대에 문명을 건설하기도 하는 것이 악착같은 인간 아닌가. 날씨가 고약하다고 날씨 탓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날씨가 모질면 모진대로 그에 적절하게 부합하는 독자적인 개인의 문명을 일구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거스를 수 없는 내면의 날씨에 슬기롭게 순응하여 환경과 조화를 이루어나가는 방법을 잘 찾아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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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8 12: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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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8 15: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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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8 12: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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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8 16: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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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8 13: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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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8 16: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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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8 19: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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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8 19: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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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9 01: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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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9 12: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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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다. 슬픈 걸 슬프다고 말하는 순간 슬픔이 돌연 우스운 것으로 전락하고 마는 이런 사태에 대해 속수무책이면서도 어쩔 수 없이 슬프다. 슬픔은 꼭 이빨이 날카로운 미친개 같다. 내가 모퉁이를 돌거나 할 때 느닷없이 덤벼들어 나를 맹렬하게 물어뜯는다. 그러면 나는 언제나 무방비 상태에서 갈가리 찢겨나간다. 비명이 신음으로 잦아들 때까지 굴욕적으로 봉변을 당한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역시 또 우습고, 아마도 나는 일부러 내 슬픔을 욕보이고 싶었나 보다. 그리하여 내 사나운 슬픔이 온순하고 다루기 쉬운 종류로 길들여지길 바랬나 보다. 하지만 슬픔을 욕보이는 일은 또 다른 슬픔이 되고, 그래서 이제 나는 완전히 절망적으로 슬프고, 아무래도 이 거칠고 어설픈 조련은 이쯤에서 관두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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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벼락 밑에 한참을 앉아 어린 담쟁이들이랑 봄볕 쬐다 들어왔다. 바람 불어 머리칼이 이파리처럼 나부낄 때 봄철에 움트는 것들이 무슨 마음인지 알았다. 그것은 실컷 낮잠자다 깬 얼룩무늬 고양이의 마음이다! 그리고 또 알았다. 드디어 우리에게도 긴 계절이 졌다는 것을. 짐승 같던 계절이 다시 오지 않을 계절이 졌다는 것을. 애달프고 그리워할 것도 없이 누구의 잘못도 아니게 졌다는 것을. 그러나 시절은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쌓여가는 것이라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무늬가 되었더라. 암팡진 꽃씨처럼 흩어져 양지바른 곳에 뿌리 내리고 또 한 철을 그렇게 살아가겠더라. 봄이다. 거역할 수 없는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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