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크맨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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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크맨》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본다. 다시 돌아가고픈 시절을 떠올려 보라면 나는 주저 없이 시골 살던 유년 시절, 막 사춘기가 시작되기 전이었던 때를 떠올리지만 그 마냥 찬란하고 아무 걱정 없던 시절도 지금 생각해 보면 무섭고, 암울하고, 누구에게도 말 못할 비밀을 간직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초크맨》같은 스릴러의 소재로 써도 무방할 정도의. 누구에게도 말 못할.

 

《초크맨》이 그런 소설이다. 어린아이라고 해서 그저 순진하고 착하고 솔직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 아이들이 만든 무리가 역시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너무나 ‘순진한’ 생각이다. 생각해보라. 자신이 그러했던 시절을. 소설은 주인공이 막 사춘기에 접어들던 12살 1986년과 30년이 흐른 후인 2016년 현재의 시점을 교차해서 보여주며 《초크맨》살인사건의 미스터리를 풀어놓고 있다.

 

주인공 무리들은 어린 시절 누구나 그렇듯 모여 놀고, 장난치고 자신들만의 아지트를 가지고 자신들만의 의사소통 방식을 만들며 일상을 공유한다. 그들이 보는 어른들의 세계는 이해하기 어려운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제 막 이성에 눈을 떠 달리 보이기 시작한 여자 친구의 몸에 난 멍을 보고 그녀의 부모와 연결시키기 어렵고 친구의 형이 자신에게 어떠한 끔찍한 행동을 해도 겁이 나서 부모님께 말씀 드릴 수도 없다. 자신의 의도치 않은 작은 행동이 어떤 결말을 가져올 지 눈앞의 일도 유추하지 못한다.

 

그런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고 직장을 가지고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린다. 그리고 그들이 낳은 아이들은 또 그들이 어렸을 때처럼 사고하고 성장한다. 그러나 어른도 마찬가지다 어린아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도 아이였던 적이 있었으면서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 지독한 아이러니라니!

 

주인공과 그 무리들은 평화로운 동네에 사는 친구들이다. 그들은 분필로 막대인간을 그려 자신들만의 암호를 만들어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장난을 치곤했다. 친구들 각자 자기만의 색이 있었고 암호체계가 있는.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의 분필장난으로 놀이터에 모이게 된 친구들은 분필로 그려진 암호를 따라가다 목이 없는 한 소녀의 시신을 발견하게 된다. 마을은 발칵 뒤집혔고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은 자살하겨 결국 사건은 종결된다.

 

그리고 현재. 주인공 앞에 그간 연락하지 않고 살던 그 무리의 친구 하나가 자신을 찾아와 과거 살인 사건인 ‘초크맨’에 대해 언급한다. 그런데 그 친구가 근처 강에 빠져 사망한 사건이 벌어지고 때마침 자신과 다른 친구들에게도 분필과 초크맨이 그려진 편지가 배달 된 것을 알게 되자 주인공은 기억 깊이 넣어 두었던 30년 전의 사건을 해결해야 함을 알게 된다. 30년 전 그들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리고 30년이 지난 지금에 초크맨의 망령이 다시 나타난 건 대체 무슨 이유일까.

 

처음 이 소설을 접했을 때 난 분필로 그린 막대 인간이 시그니쳐인 연쇄살인마를 상상했고 진범이 잡히지 않았거나 원조 초크맨을 흉내 내는 새로운 범인이 있지 않을 까 생각했다. 그러나 소설은 이와는 전혀 상관없이 전개되어 굉장히 놀라웠고 우연과 필연이 얽히고설켜 30년을 잇는 거대한 이야기가 완성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저 평화롭고 목가적으로 보이는 마을. 자녀들에겐 늘 완벽해 보이는 부모, 그저 순진하고 철없는 아이들의 장난과 놀이에 실은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면? 그들 모두 자신들만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면? 진실을 밝히는 것은 언제나 용기와 이와 비례되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주인공은 어떻게 비밀을 밝히고 진실을 찾게 될까? 그들은 모두 자유로워지게 될까?

 

《초크맨》은 결말을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소설은 아니다. 적당한 서스펜스가 끝까지 유지되고 하나하나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은 매우 흥미롭다.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순간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그리고 주인공이 과거의 진실을 찾아갈 때 독자 또한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게 될지 모른다. 작가의 인간의 깊은 내면을 제대로 들여다 볼 줄 아는 사람이다.

 

소설은 미스터리 스릴러 이지만 어찌 보면 주인공의 성장 소설이기도 하다. 미스터리, 추리, 스릴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매우 흡족할 만할 소설이고 다양한 면을 발견할 수 있는 멋진 작품이다. 이 작품이 작가의 첫 작품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이미 완성되어 있다는 다음 작품도 너무나 기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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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피림
황선혁 지음 / 북랩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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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피림》

 


 

예전에 ‘다카노 가즈아키’의 《제노사이드》를 읽으면서 신인류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했던 적이 있다. 어떻게, 어떤 식으로 나타나게 될지, 나타난다면 그들 종족이 현재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와 이 지구에서 함께 살아갈지 아님 대 학살을 벌이게 될지 여러 궁금증이 생겼었다. 이 소설의 놀라운 점은 새로운 인류의 출연과 이에 맞서 는 현생 인류의 대응을 보여주는 것 만 아니라 먹이 사슬의 맨 꼭대기에서 지구의 주인으로 군림하던 인류의 처지가 역전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데 있었다.

 

소설《네피림》에선 또 다른 인류의 출연을 보여준다. ‘네피림’은 성경에 나오는 종족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인간 여성과 사랑해 낳은 자손들이라고 하는데, 하나님이 이 이종교배를 보고 세상이 죄악으로 물들었노라 판단하여 ‘노아의 홍수’를 일으켰다고 한다. 소설은 이 구절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작가의 말-

 

소설 속 ‘네피림’은 과학자의 열정에서 창조되었다. ‘창조 되었다’ 기 보단 ‘계량 되었다’ 고 해야 할까? 선천적으로 장애가 있어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일본의 ‘아이코’는 다른 동물에게서 유전자를 따와 발달된 기관만을 가져와서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인류, 초 인류를 만들고자 한다. 그러나 윤리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학회와 대학에서도 쫓겨나게 되자 은밀한 제안을 받고 모든 윤리에서 자유로운 북한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생명과학자 ‘지섭’은 세 번의 유산 끝에 자살해버린 아내를 되살리기 위해 ‘인간복제’와 이를 위한 ‘인공자궁’ 연구에 몰두한다. 그러나 역시 생명윤리단체와 기독교 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거의 완성단계에 있던 연구가 중단된다. 그리고 은밀한 제안으로 그 또한 북한으로 가게 된다.

 

소설 속에서 북한은 모든 윤리와 규제에서 자유롭게 그려진다. 그 곳에서 북한 당국의 은밀하고 전폭적인 지원 아래 아이코가 온갖 생물로부터 특화된 유전자를 모두 배합한 인간의 배아를 지섭의 ‘인공자궁’에서 배양시켜 성체로 만드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북한은 이 즈음에 그들을 북한으로 데려온 진짜 목적을 밝힌다. 이름 하여 ‘네피림’ 프로젝트! 북한은 1,000개가 넘는 인공자궁을 이용해 유전자를 조작한 신인류 ‘네피림’을 대거 양산하여 혁명을 일으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혁명’이란 과연 무엇일까? 신인류의 보호아래 모두가 평등해 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지만 이를 위해서 세계 전쟁은 불가피해 보인다. 원하는 걸 얻기 위해 희생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그 희생을 딛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었던가. 주인공들이 만들어 낸 새로운 생명, 중국과 미국이 개발한 인공지능 등은 소설을 조금 풍성하게 만들어 주며 결말을 유도한다.

 

소설은 SF 소설이긴 하지만 전문적이지 않고 성경에서 따온 소재는 독특하지만 존재에 대한 깊은 고민은 잘 드러나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작가의 첫 소설이라 그런지 배경지식이 부족하여 보이고 사전에 철저한 준비가 없었다는 것이 소설에 고스란히 드러나 또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북한을 스테레오 타입으로 그린 것도 아쉬움의 한 부분이다. 다만 소재나 아이디어가 좋았다는 것은 장점으로 이런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잘 살릴 수 있도록 많은 공부와 경험, 철학적인 성찰과 노력을 해 나가 훗날 멋진 작품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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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문자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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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문자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는 의심하지 않는 작가 중 한명이다. 몇 십년간 워낙 다작을 하다 보니 기대에 조금 못 미치는 작품도 있긴 했지만 대체적으로 평균이상의 작품을 내 놓는 훌륭한 작가라 생각한다. 또 그의 작품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지 않고 등장하는 캐릭터와 범죄는 나름의 이유가 있으며 범인을 무작정 욕하게만 할 수 없는 설정, 시대가 원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 많은 독자들에게 꾸준히 사랑 받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책 소개를 보니《11문자 살인사건》은 작가의 초기작으로 1987년에 발표되었고, 데뷔한지 2년 만에 내 놓은 5번째 장편이라 한다. 2년 만에 장편을 5편이나! 정말 대단하다. 한국에 소개된 그의 작품은 거의 다 읽었는데 아직도 소개될 작품이 남았다는 게 여전히 신기할 뿐이다.

 

《11문자 살인사건》은 형사가 사건 해결을 하지 않는다. 범죄를 해결하는 인물은 살해당한 희생자의 연인이자 여성 추리소설가다. 경찰과 도움을 주고받거나 협업하지 않고 홀로 사건을 조사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정통 추리소설’이다.

 

추리 소설답게 소설을 시작하기 전에 등장인물 소개가 있고, ‘무인도로부터 살의를 담아’ 라는 희생자들이 받은 편지의 11글자를 주요 소재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주인공의 연인은 아직 만난 지 2달 밖에 안 된 프리랜서 작가다. 마지막 데이트를 할 때 누군가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것 같다는 언질을 했는데 실제로 뒤통수를 가격하는 방식으로 살해 되어 바닷가에 버려진 채 발견 되었다.

 

주인공은 연인의 죽음에 석연찮은 점이 있어 그의 유품으로 받은 스케쥴 표를 따라 마지막 행적을 좇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녀가 받기로 한 그의 자료들 속에 무언가가 없어지고 자신의 집을 훔쳐보는 등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 조금씩 불안을 느낀다. 게다가 조사를 해나가며 조금씩 범죄의 윤곽이 잡히는 듯 하는 찰라 또 다른 사람이 살해되기 시작한다.

 

사건은 서서히 좁혀지기 시작하는데 희생자 모두 과거 요트를 타고 Y섬으로 갔다가 해상 사고를 당한 사람들과 연관이 있다는 게 밝혀진다. 그리고 다시 모인 그 사건의 인물들. 그때처럼 다시 요트를 타고 그 사건의 여정대로 항해에 나선다. Y섬에 도착한 그들. 그날 밤, 놀랍게도 그들 중 한명이 또 살해된다! 모두 알리바이는 확실한데 과연 범인은 누구이고 이런 살인을 벌이는 범인은 누구일까?

 

소설은 주인공이 차근차근 사건을 조사해가며 일어나는 일들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고 추리소설답게 트릭이 등장하고 범인이 누구일지 추리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가 있다. Y섬의 숙소는 이대로 폐쇄된 장소다. 이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으로 인해 실체가 밝혀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잔인하지 않고 주인공과 함께 사건의 전말을 알아가는 추리소설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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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먼저 죽인다
손선영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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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먼저 죽인다》

 


 

손선영 작가는 소설《판》으로 알게 된 작가다. 국정원, CIA, 소진사 등 첩보원들이 등장하여 일본 침몰이라는 소재로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거대한 스케일의 소설. 그의 소설을 이번 여름에 만나게 되어 얼마나 반가웠는지. 내게 ‘손선영’은 조금 거친 느낌의 작가이다. 문체는 예쁘게 다듬거나 친절하지 않고 소설의 전개 또한 거침없이 내달리는 야생마 같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역시 이번 소설도 이런 장점이 유감없이 발휘되었고.

 

《내가 먼저 죽인다》는 은행과 은행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과거 상고나 대학을 나와 입행을 하는 관행을 깨고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일반고를 나와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구걸하다시피 입행을 하게 된 주인공 ‘손창환’, 그는 은행이란 조직 안에서 아무런 연고도 기본적인 지식도 없어 자신에게만 과중하게 주어지는 업무에다 인맥으로 맺어진 관계들 속에 외로이 함몰되어 가며 힘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던 그에겐 대학을 나와 자신보다 진급이 빠르고 중상모략과 이간질을 구사해가며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박상준’이란 상사가 있다. 그는 주인공을 하인처럼 부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각종 중상모략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게 하여 괴롭힌다. 주인공은 그와 관련된 비위와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내부자가 되어 부정과 비리를 밝히지만 오히려 누명을 쓰고 감옥에 까지 가게 된다.

 

그리고 20년 후. 주인공은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이일 저일 전전하다 이제 겨우 택시 운전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데 그 택시에 씹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원수 ‘박상준’ 이 탄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그는 자신과 다르게 너무나 좋아 보인다. 주인공은 그에 대한 증오심에 사로잡혀 일도 하지 않고 주변을 맴돌며 그에 대한 모든 것을 파악하던다 결국 그를 죽이려 마음을 먹는다. 그런 때에 그의 딸 ‘엠제이’가 그의 택시에 올라타며 소설은 또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다.

 

엠제이는 무슨 이유에선지 자신을 납치한 흉내를 내고 성공하면 받은 돈을 나눠 가지자고 제안한다. 주인공은 엠제이를 믿지 않지만 어쩌다 보니 그녀의 납치범이 되어있다. 한편 나부대대한 얼굴을 남자가 킬러 여러 명을 고용하며 몇 년의 시간이 걸릴지 모를 모종의 일을 꾸민다. 그리고 엠제이를 통해 알게 된 박성준 가족에 대한 비밀. 겹겹의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될까.

 

소설은 하루 동안 주인공의 동선을 좇고 엠제이와 경찰, 어쩌면 엠제이 뒤에 있을 지도 모르는 박상준과 두뇌 게임을 벌이며 쫓고 쫓기는 추격을 시작한다. 20년 전 주인공이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일련의 이야기와 현재의 추격전을 교차시켜 서술하며 모호한 이야기는 점점 뚜렷한 형체를 띠기 시작한다. 나부대대한 얼굴의 중연남자의 실체, 그가 고용한 킬러들의 역할, 엠제이의 목적. 그리고 그 혼란 속에서 이 모든 것들을 파악하고, 자신이 하려는 일을 눈치 챈 박상준이 자신을 죽이기 전에 먼저 박상준을 죽이려는 주인공. 과연 주인공은 혼란의 틈바구니에서 자신의 목적을 이룰 수 있을까.

 

내가 작가를 거칠다고 말하는 이유가 있다. 분명 결말이 이렇지 않아도 됐을 텐데. 더 친절한 결말을 지을 수 있었을 텐데, 그랬다면 소시민인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무언가 통쾌한 맛을 느낄 수도 있었을 텐데 작가는 역시 자신만의 결말을 짓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있던 내게 이는 조금의 안타까움이었다. 그러나 현실이기도 하고.

 

잘 모르는 은행과 행원들의 이야기 자체가 너무 재미있었고 새로운 형태의 복수와 범죄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 작가의 아이디어와 필력에 감탄했다. 안타깝지만 이시대의 소시민인 주인공의 이야기는 설득력이 있었고 좇고 좇기는 추격전과 속도감 넘치는 전개는 작가의 매력을 유감없이 나타낸다. 올 여름 꼭 추천하고픈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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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워줄게 미드나잇 스릴러
클레어 맥킨토시 지음, 박지선 옮김 / 나무의철학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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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워줄게》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 작가 ‘클레어 맥킨토시’ 《너를 놓아줄게》《나는 너를 본다》이후 3번째 작품이다. 12년 동안 영국 경찰로 재직한 경험을 살려 현실적이고 독특한 소재의 작품을 써온 작가는 이번에도 역시 일을 낸 듯 보인다. ‘불면을 준비하라’는 출판사의 자신감 넘치는 카피는 역시 거짓말이 아니었고 더위와 싸우고, 뒷장을 넘겨보고 싶은 충동과 싸우며 책장을 넘기다 결국 이틀 밤을 새다시피 했다. 결국 피곤은 나의 몫이 되었고.

 

전작들도 다 읽은 참이라 이번 작품도 기대가 컸고 역시 뒤통수를 후려치는 반전은 기대이상의 쾌감을 가져다주었지만 마지막의 반전은 또 한 번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총 3부 72장, 565페이지의 방대한 분량으로 이루어진 소설은 주인공 ‘애나’, 30년 동안 범죄수사과에서 일하다 퇴직 후 민간인 신분으로 대민 상담을 하고 있는 ‘머리, 그리고 애나의 엄마, 혹은 아빠의 이야기를 교차해서 들려주고 있다.

 

주인공 애나는 엄마, 아빠 모두 바다 절벽에서 몸을 던져 자살한 충격으로 굉장한 고통에 사로잡혀 있다. 아빠가 자살 한 뒤 6개월 후에 엄마가 똑 같은 방식으로 자살을 해서 애나는 더욱 화가 나고 고통스럽다. 아빠를 잃어 그 고통이 어떤지 누구보다 더 잘 아는 엄마의 자살은 애나를 더 큰 고통에 빠지게 한 것이다.

 

다행히 그녀는 이 고통을 이기려 상담을 받았던 ‘마크’와 사랑에 빠져 딸 ‘엘라’를 얻었고 현재는 그와 함께 살고 있다. 결혼은 하지 않은 채로. 마크는 다행히 그녀를 사랑하며 좋은 아빠이기도 하고 그녀와 결혼하여 가족이 싶어 한다. 그리고 엄마의 대녀이자 그녀에겐 언니 같은 ‘로라’와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 가족 회사를 함께 꾸리던 삼촌이 그녀에게 힘이 되어 주는 존재로 등장한다.

 

그리고 독특하게도 사건을 해결하는 건 현직 경찰이 아니라 전직 경찰이고 현재는 민간인 신분인 ‘머리’다. 그에게는 ‘경계선성격장애’를 앓고 있는 아내 ‘세라’가 있는데 정말로 헌신적으로 아내를 돌보며 사랑한다. 그리고 언제 자살해서 자신을 떠나려 할지 모르는 그녀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다. 소설은 애나의 가족과 머리의 가족 이야기를 거의 비등한 무게로 다루고 있으며 이미 은퇴한 경찰이지만 그의 녹슬지 않는 수사 능력과 현직 경찰일 때와 다른 ‘넘쳐나는 시간’으로 사건을 해결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늘 불안하고 언제 자기 자신을 해하려 할지 모르는 세라는 사건을 보는 독특한 시각으로 머리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하고 함께 수사를 하려 다른 지방에 가기도 하는 등 중요한 인물로 등장한다.

 

이야기는 단 한 문장으로 촉발 된다. 익명의 사람에게 서 온 조잡한 카드 속 ‘자살일까? 다시 생각해봐’ 란 단 한 문장. 엄마의 기일 아침에 배달 된 그 카드는 애나의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고야 만다. 그렇다. 엄마가 자신에게 그런 고통을 줄 사람이 아니다. 애나는 엄마가 자살한 것이 아니라 ‘살해’당했다고 믿는다. 그녀는 이 카드를 들고 자신의 촉을 믿지 않는 마크와 함께 경찰서에 가 머리를 만나게 된다. 그는 그녀의 말에 어떤 판단도 하지 않고 혹시 미심쩍은 부분이 없는지 천천히 조사를 시작한다.

 

조사를 시작한 머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두 사람의 자살이 너무나 이상하다. 사람의 죽음이 이렇게 깔끔한 것일 수 없다는 머리의 생각은 과거 수사 파일을 열어보고 두 사람의 행적을 조사하면서 서서히 현실화되는 것 같다. 그리고 애나의 현관 앞에 누군가 칼로 난도질 한 토끼를 두고 2층 딸 엘라의 방에 경찰에 찾아가지 말라는 쪽지를 묶은 벽돌을 던지자 미지근하게 반응하던 마크도 적극적으로 사건에 관심을 보이고 머리 또한 조사에 박차를 가한다.

 

그러던 그녀 앞에 누군가 나타난다! 머리와 애나는 부모의 자살을 살인이라 생각하지만 2부에서 작가는 독자의 뒤통수를 가격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속력을 내고 엄마의 행적을 좇던 애나는 부모님과 함께 지낸 과거 속에 막연히 흐르던 불안함을 떠올린다. 집안에 많던 술병, 자신이 오면 싸움을 멈추던 부모님! 그녀는 자신이 생각하던 모습과 실제 가족의 모습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부모님의 사망으로 엄청난 부자가 된 애나. 혹시 돈 때문일까? 부모님의 죽음의 진실을 무엇일까?

 

작가는 사람의 심리를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이다. 인간의 내면과 그런 인간들이 만들어 내는 관계의 내밀함까지.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가진 선입견에 한번 놀랐고 이로써 만들어진 ‘반전’에 또 한 번 놀랐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독자들을 놀려먹은 한 작가의 노련함, 그 촘촘한 이야기에 또 한 번 놀랐다. 결말은 어떤가! 결말 몇 페이지는 끔찍한 진실이 드러나 씁쓸함만 남은 이 소설을 달달한 로맨스 소설로 바꾸어 버렸다.

 

숫기 없는 남자와 경계성 성격장애를 앓고 있는 여자의 만남. 그 아름다운 모습이 이 소설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용기 있고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간 커플과 단 한 번의 용기를 내지 못해 인생을 불행에 몰아넣은 한 커플. 그저 흘러가는 대로 자신의 인생을 내버려 두지 않고 자신의 선택으로 자신의 당당히 길을 걸어갈 그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는 찬사 같았다. 머리와 세라 커플에게 그리고 굳이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키우며 자신의 길을 걸어갈 애나와 마크 커플을 응원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낸 작가에게 너무나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다시 생각하니 더 대단한 소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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