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동기담집 - 아름답고 기이하고 슬픈 옛이야기 스무 편
고이즈미 야쿠모 지음, 김영배 옮김 / 허클베리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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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동 기담 집》

 


 

작가 ‘고이즈미 야쿠모’는 1850년 그리스의 섬에서 아일랜드 군의관 아버지와 그리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여러 힘든 일을 거쳐 19살에 미국으로 이주한다. 이후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저널리스트로 문 필력을 인정받아 다양한 곳을 이주하며 왕성한 취재 집필활동을 한다. 뉴올리언즈 시절 접한 일본 문화의 영향을 받아 그의 나이 40이 되던 해 일본 땅을 밟게 되고 1896 도쿄대학 문학부 영문학 강사가 된다. 그해 ‘고이즈미 세츠’와 결혼하고 일본에 귀화한다. _작가소개 요약_

 

《골동 기담 집》은 이처럼 굉장히 독특한 이력을 가진 작가의 굉장히 독특한 책이다. ‘골동’은 골통품의 그 골동이다. ‘골동품’ 은 희소가치가 있거나 유서 깊은 오래된 기물 또는 서화 등을 말하는 것으로 이 책에 담긴 다양한 스무 편의 이야기가 바로 오래된, 굳이 알려고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혹은 이를 보는 눈이 있어야만 보이는 그런 이야기들의 묶음이다.

 

앞서 작가의 이력을 굳이 요약하여 적은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보는 눈’ 이 다른 이야기라는 것. 이 책은 일본에서 전해지는 오래된 이야기이긴 하지만 서양인의 눈으로 본 일본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같은 동양인이 보는 옛 이야기와 사뭇 다른 느낌을 주고 있고. 이야기를 전하는 작가도 굳이 그것을 감추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이야기들은 다른 느낌을 풍기고 있다.

 

그가 이 책을 집필한 것도 1902년 아주 오래된 시간이지만 여기에 담긴 이야기는 훨씬 더 먼 이야기이다. 그리고 주목할 것은 ‘기담’만 담긴 것이 아니라 작가가 관찰한 그 시대 일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1부 ‘오래된 이야기’에서는 우리가 ‘기담’이라 할 만한 조금은 으스스한 이야기들이 2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이야기’에선 앞서 말한 그 시대 일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2부는 기담이라 말하기 보단 수필에 가까워 보인다. 일본의 문화를 보며 사색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죽음, 꿈, 저승 혹은 귀뚜라미 잡이를 통해 본 일본의 문화 등의 이야기들.

 

사실 책 제목 중 ‘기담’ 이란 말에만 기대를 한다면 이 책은 그리 만족스러운 책은 아니다. 그 앞 단어 ‘골동’에 방점을 찍는다면 이 책은 다양한 즐거움을 줄 수 있다. 앞서 말한 대로 이 책은 ‘보는 눈’이 중요하다. ‘어떻게 볼 것인가’ 작가는 서양인의 눈으로 일본을 보았고 다양한 장소에서 겪은 다양한 경험과 그 과정 속에서 얻게 되었을 그 넘치는 호기심과 열정으로 일본 속에서 느낀 일본을 적으로 것으로 보인다. 내게 이 책은 그랬다.

 

이야기를 따라가기도 하고 그의 생각과 시각을 따라가기도 하고 뒷장 주석을 번갈아 읽으며 오래된 일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기대와는 조금 다른 책이었지만 나름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던 매력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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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곡
윤재성 지음 / 새움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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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곡》

 


 

강원도를 다 집어삼켜 버릴 것 같았던 화마가 휩쓸고 간지 며칠 지나지 않았다. 불은 순식간에 모든 것을 집어삼켜 버렸다. 그나마 인명피해는 크지 않았다고 불행 중 다행이라고 위로하기엔 돌아갈 곳을 잃어버린 사람들과 급하게 피신하느라 미처 챙기지 못한 동물들, 그리고 그보다 더 황폐해진 사람들의 마음은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

 

소설 《화곡》은 며칠 간 한국 사회를 불안에 떨게 했던 강원도 산불 화재를 보고 나서인지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소설 속 주인공은 가난했지만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형과 오빠를 살뜰히 챙기며 공부하는 여동생을 가족으로 둔 남을 구하려다 아르바이트 장소에 늦게 가서 해고 경찰을 꿈꾸는 오지랖이 넓은 청년이었다. 그 일을 당하기 전까지.

 

눈이 많이 오던 날 밤 늦게 집에 들어가던 주인공은 자신의 집 담벼락 앞에서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항공점퍼를 입은 수상한 남자가 뭔가 끈끈한 액체를 뿌리고 있다가 주인공 얼굴에다 뿌린 뒤 이상하게도 입으로 불을 내 뿜었고, 그 불에 주인공의 몸에 옮겨 붙어 얼굴과 몸이 녹아내리고 만다. 그리고 그 불은 자신의 집도 집어 삼켰다.

 

며칠 뒤 병실에서 깨어난 주인공은 인생이 망가졌음을 깨닫게 된다. 불 때문에 자신의 몸도 망가졌지만 여동생은 사망, 원래 사이가 좋지 않았던 형과도 인연이 끊겨 버린 것이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힘든 상황에서도 경찰에게 자신이 목격한 범인의 인상착의를 얘기했지만 경찰은 그의 말을 믿지 않고 화재로 인한 정신적 장애로 몰아가 버린다.

 

그 후 그는 사라진 범인을 찾기 위해 불만 쫓아 다녔고 일상도 무너진다. 흉측하게 변해버린 주인공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그를 괴물 취급하는 와중에도 그는 자신을 괴롭히는 불을 끄고 동생의 원수를 갚기 위해 소방관이 되고자 하지만 번번이 면접에서 떨어지고 결국 그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사회에서 스스로 격리시킨다. 그는 결국 노숙자로 전락하고 만다.

 

그런 그 앞에 나타난 사회부기자. 그녀는 그의 삶을 취재해 특종을 잡고자 한다. 그러던 중 다시 시작된 화재사건. 그런데 이 화재사건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닌 것 같다. 모종의 세력에 의해 철저히 계획된 냄새가 진동한다. 냉소적인 주인공과 이 일에 목이 달린 기자는 여러 건의 화재사건을 쫓으면서 서서히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둘 사이에 돈독한 팀워크가 형성된다. 경찰은 주인공을 화재사건의 범인으로 지목해 시시각각 간격을 좁혀오고 기자는 범인을 은닉해 주는 것이 아닌지 의심을 받는다.

 

이런 답답한 상황에서 주인공의 눈앞에 드디어 과거의 범인이 등장한다. 그는 자신을 쫓는 경찰을 피해 범인은 잡을 수 있을까. 그 과정에서 기자와의 관계는 어떻게 발전될까. 계획된 화재사건의 배후는 누구이며 범인은 왜 이런 짓을 벌이고 있는 걸까.

 

소설은 독자의 바로 눈앞에 주인공의 고통을 생생하게 펼쳐 놓는다. 그의 밤을 괴롭히는 꿈과 온 몸을 태워버릴 듯 되살아오는 통증과 죄책감은 너무나 생생해서 눈앞에서 살아 일렁이는 것 같고 덩달아 책장은 순식간에 넘어간다. 불을 주제로 한 소설은 오랜만이다. 사회적 약자로써 겪은 주인공의 고통은 그 불처럼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더욱 절절했고 그래서 기자와의 팀워크는 더욱 따뜻하게 느껴졌다. 소재와 구조 진행, 캐릭터까지 너무나 매력적인 소설이다.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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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강남
주원규 지음 / 네오픽션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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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강남》



 

정말 이토록 시의 적절한 작품이 있을까. 이 작품을 읽고 얼마 되지 않아 소설의 현실판 ‘버닝 썬’ 사건이 언론에 도배되었다. 이 사실 하나 만으로도 이 작품은 읽을 만하다. 아니, 이 작품은 그저 그런 추악한 현실의 아주 작은 한 부분일 것이다. ‘버닝 썬’을 시작으로 고구마 줄기를 캐듯이 하나하나 수면위로 드러나는 사건은 소설의 끔찍함은 사뿐히 넘어서고 있으니까.

 

2019년 3월 현재, 김학의 로 대변되는 현실은 이 소설이 그저 상상력이 아님을, 고 장자연 씨의 사건도 모두가 《메이드 인 강남》의 현실 판이다. 그리고 수많은 죽음, 자살로 위장된 것으로 많은 이들이 추측하는 수많은 죽음들도 아마도 그럴 것이다.

 

186페이지의 짧은 분량이라 소설은 1~2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다. 낭자한 피와 분명 어디엔가 있을 법한 등장인물, 미스터리, 긴장감 그리고 차마 입으로 형언하기 어려운 엽기적인 행각들. 이 소설의 전부이자 더 큰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원동력이다.

 

사건이 터지자 주인공에게 연락이 온다. 그 누구보다도 빨리 주인공은 사건 현장에 도착한다. 남녀가 얽혀 선혈이 낭자한 벌거벗은 시체들. 그는 이 사건을 어떤 식으로 처리할지 조금의 망설임도 없다. 범인이 누군지. 왜 이런 짓을 저질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의뢰인의 의지와 이에 따른 ‘각본’이 중요할 뿐.

 

“다섯이 여자고 나머지 다섯은 고객이야. 여자애들을 술집 애들이니까 던지기 하고, 남자들만 개별처리 하면 돼.”


문제는 시체들 사이에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힙합 뮤지션 ‘몽키’가 끼어 있었다는 것. 이 인물이 소설을 이끌어 가는 중요한 요소다. 이를 이행하는 주인공인 설계자 ‘민규’는 강남구 중심가에 위치한 로펌의 수석 변호사 이지만 그가 하는 일은 물론 여느 변호사의 일과는 다르다.

 

한편, 도박 빚에 목숨이 위태로워진 경찰 ‘재명’은 정보원에게 은밀히 이 사건에 대해 전해 듣고 본능적으로 돌파구가 되리라는 것을 직감한다. 그리고 재명이 이 사건에 불쑥 끼어들면서 쉽게 끝날 것 같았던 사건은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여러 인물들의 욕망과 기괴한 탐욕과 형용하기 어려운 그들만의 법칙이 지배하는, ‘강남’으로 대변되는 세상은 소시민이 살아가는 대한민국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그들의 치부를 알고 그들이 욕구를 충족하는데 모든 수고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 그런 사실들을 알고도 눈감아 주는 고위층 인사들까지 모두가 ‘강남’이라는 연극 무대를 연기하는 등장인물들이다.

 

이제 개, 돼지라 불리는 사람들도 안다. 많이 알면 다치고 아는 것을 밖으로 발설하면 ‘자살 당한다’는 것을. 그럼에도 용기 있는 이가 있는 것 같다, 아직은. 앞서 언급한 현실판 《메이드 인 강남》 사건들은 해결이 될까. 아님 어떻게 될까. 그것이 너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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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 - 남자 없는 출생
앤젤라 채드윅 지음, 이수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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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 남자 없는 출생》

 


 

새로운 기술이 이 세상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지 상상하는 일은 꽤나 즐거운 일이다. 지금 세상에는 없는 기술, 혹은 어떤 정책을 앞에 두고 사회적 협의를 이끌어 내는 것은 상당한 시일을 거쳐 갈등과 반목을 가져온다. 2019년 3월 현재 우리나라만 해도 국회의원 연동형 비례대표, 공수 처 설치 등으로 나라가 들끓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런 별것 아닌 이슈에도 정치적인 대립으로 난리가 나는 마당에 아예 ‘아이를 낳는데 남자가 필요 없다’는 이슈가 던져지면 어떨까? 이건 동성 간 혼인 합법화보다도 더 엄청난 이슈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여성이나 흑인이 시민으로 인정받기까지도 따지고 보면 몇 십 년 안 된 문명, 게다가 우리나라 호주제가 폐지되고 엄마 성을 따라 쓸 수 있게 된 지도 얼마나 되었는가. 지금은 혼인에 따라오는 불평등한 가족 내 호칭 문제도 합의를 못 이루는 상황인데.

 

소설《XX: 남자 없는 출생》은 발칙하게도 이런 이슈를 직구로 던지고 있다. 나름 교양이 있다는 사람들도 동 성 연애를 치료를 해야 하는 병으로 본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정서가 팽배해 있는 이 사회에 말이다. 일단 과학적인 부분은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나 같은 문과생은 이해하기도 어렵고. 중요한 것은 이런 기술이 개발 되었다는 ‘가정’이다. 이런 가정 아래 요동칠 우리 사회의 단면, 안 그래도 사회적 약자일 게 뻔 한 ‘여여’ 커플이 이런 기술을 받아들이겠다, 기꺼이 실험대상이 되겠다 그 결심을 실행하는 순간 이 사회에 몰아칠 ‘혼돈의 카오스’ 그 자체다!

 

두 명의 주인공 ‘줄스’와 ‘로지’ 는 레즈비언 커플이다. ‘줄스’ 는 엄마가 일찍 돌아가시고 알코올에 의존하는 무능한 아버지 밑에서 가난하게 자란 어두운 성향의 사람이며 ‘로지’는 중산층 가정에서 비교적 별 어려움 없이 곱게 자라 구김살이 없는 밝은 사람이다. 별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둘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함께 살기 시작했다. 이 둘이 함께 산지 1년 남짓 되었을 때 ‘동반자 제도’가 시행되었다.

 

레즈비언 커플이 아이를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둘 중 한명이 정자를 기증받아 낳거나 입양을 해야 한다. 이 소설은 ‘난자 대 난자 수정’을 통해 남, 여 커플처럼 둘 만의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기술이 개발되었다고 가정한다. 단 Y염색체가 없어 태어나는 아이는 모두 여자아이다. 가까스로 법안이 통과되어 임상시험에 참여한 둘은 이 기술의 반대파의 극심한 괴롭힘에 맞서 위기를 맞고 흔들리는 가족을 지켜 내려는 주인공들의 고군분투를 담고 있다.

 

워낙 예민한 일이라 실험에 참가한 이들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려 했지만 주인공의 정보가 유출되고 이 둘은 순식간에 온 사회적 관심의 중심에 서고 만다. 정치인은 보수적인 시각에서 이 이슈를 이용하고 언론은 역시 자극적인 방식으로 이 이슈를 다루기 시작한다. 혐오와 폭력, 주인공들을 따라다니는 파파라치, 개인의 권리는 아랑곳 하지 않는 언론으로 인해 이 둘의 삶은 너무나 피폐해지고 실험을 주도하는 의사는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게 된다.

 

이런 과격한 대립의 틈바구니에서 둘의 사이는 점점 멀어지는 듯하고 함께 임신한 다른 커플의 아이는 사산되어 주인공들은 극심한 혼란에 빠지며, 심지어 생각지도 못한 문제에 직면하고 만다. 이 둘의 관계는 어떻게 되고 뱃속의 아이는 지켜낼 수 있을까. 이 둘과 아이는 과연 온전한 가족이 될 수 있을까.

 

소설은 주인공들이 겪는 사회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주인공들의 내적 갈등 또한 비중 있게 그려내어 결혼과 가족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각기 다른 사회 경제적 위치, 동성 커플, 결혼제도, 가족의 정의, 언론의 역할, 정치적인 대립 등 다양한 시각으로 우리가 겪고 있고 앞으로 겪게 될 지도 모르는 일들을 긴장감 있게 그리고 있다.

 

독특한 소재, 매력적인 주인공, 특별할 것 같지만 결국 다르지 않은 인간들의 관계 등 이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 많다. 한국사회에 어떤 반향을 불러올까 벌써부터 궁금하다. 편협한 시각으로 ‘페미’라며 거품 물 사람들이 벌써부터 눈에 그려지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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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 - 내 기억이 찾아가는 시간
하창수 지음 / 연금술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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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 내 기억이 찾아가는 시간》

 


 

우리가 궁금해 하는 것 중 가장 궁금한 것, 절대 알 수 없는 것 하나는 바로 ‘죽음’이다. 그리고 또 하나 ‘시간’. 이 둘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어쩌면 먼 미래에서는 알 게 될 지도 모른다. 《미로: 내 기억이 찾아가는 시간》는 바로 이 둘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의 배경은 현재와 가까운 미래다. 시점은 2041년, 강국 중국이 급격한 사막화 때문에 그 힘이 약해지고 세계는 미국과 EU가 중심이 되어 ‘새로운 질서’로 재편되었다. 한국과 북한도 상호 경제개방이 시행되면서 실질적인 통일을 이루었다. 그리고 소설 속 주 무대인 강원 원산에는 첨단통신업체와 우주 산업체를 거느린 다국적 기업 ‘슈퍼퓨처’사가 들어서고 서울은 무엇이든 가능한 ‘자유특별시’가 되어있다.

 

주인공 ‘미로’는 슈퍼퓨처 산하의 ‘스피릿 필드’에서 일하는 25살 엔지니어다. 그가 4살 때는 어머니가 11살 때는 아버지 20살 때는 여자 친구가 차례로 죽음을 맞았다. 그는 아버지와 여자 친구를 특히 그리워하고 외로움에 빠져 고독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과학자로 엄마를 잃은 아들을 위해 잠자리에서 직접 지어낸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는데 이 이야기를 필명 ‘닥터 클린워스’란 이름으로 출판까지 하게 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후 그의 소설 속 소재 ‘스피릿 필드’ ‘모픽 필드’, ‘사이킥 필드’에 감명 받은 대학교수와 함께 실제 연구를 하게 되고 슈퍼퓨처 사의 회장에 의해 이와 관련된 우주산업에 거액의 투자까지 이끌어내게 된다. 그러던 차 아버지는 그가 11살이 되던 해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소설은 미래의 모습을 매우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지구는 통합 연합 정부 즉 새로운 질서의 영향 하에 놓이고 정보도 통제 된다. 과거의 정보들은 아카이브 DB위성에 보관되어 특수한 경로를 통해서만 열람이 가능하다. ‘혼성모방’ 프로그램이 개발되어 기존의 소설을 모방한 새로운 소설이 만들어져 인기를 얻기도 하고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예스터데이 샵’이나 소설 속 가장 강력한 소재로 ADM(After Death Machine) 즉 죽은 사람의 영혼과 만날 수 있는 기술도 개발된다. 단 부작용이 너무 커서 상용화되기는 힘들지만.

 

주인공은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또 다시 아카이브DB에 접속했다가 14년 전에 아버지로부터 자신에게 온 메일을 받게 된다. 그 메일은 바로 아버지의 유작 소설인 ‘Space Without Space 우주 없는 우주'였다. 때마침 ’모픽 필드‘에 막대한 예산을 소비하던 슈퍼퓨쳐 사에서 부작용 때문에 상용화가 금지 되었던 ADM으로 투자 방향을 선회하려는 움직임을 보며 그 소설 속 이야기가 현실로 벌어지는 놀라움을 목격한 주인공은 ADM을 통해 아버지의 영혼과 조우하려 서울로 향한다.

 

소설은 이런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스릴러’ 보다는 앞 서 언급한 이야기의 기저를 이루는 철학 즉 시간과 죽음, 신 등의 요소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실은 소설 속 소재들이 너무나 흥미로웠고 내심 그가 위험한 기기를 통해 아버지와의 영혼과 조우해 모종의 음모를 파헤치고 아버지 죽음의 비밀을 풀게 되는 긴박감 넘치는 스릴러를 기대했지만 소설은 기대와는 다소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인디언의 시간관은 서양의 것과는 다르다. 일직선을 달리는 서양의 시간은 죽음이 끝이지만 원으로 생각하는 인디언의 시간은 시작도 끝도 없다. 이 소설은 이런 시간과 죽음, 기억에 대한 철학적 인식이 담겨있다. 실은 내가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작품명인 ‘미로’에 빠진 것처럼 모든 의문은 머릿속에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과학과 철학적 소재가 어려웠음이 분명한데도 가독성은 너무 좋았고 끝까지 흥미롭게 책장을 넘겼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잊지 못해 고뇌하는 주인공, 모든 걸 ‘기억’ 하게 되어 괴로워하는 주인공, 모호한 엔딩장면, 14년을 지나온 메일과 죽은 여자 친구에게서 걸려온 전화가 모두 계획된 음모일지도 모른다는 암시 그러나 명확하지 않은 결말 등 이 소설은 너무나 모호해서 진짜 미로에 빠진 것 같았다. 그러나 재미있다. 확실한 것은.

 

굳이 따지면 이 소설은 동양적인 혹은 인디언의 시간관 혹은 철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신’에 대한 다소 발칙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도 하고, 발달인 것 같지만 실은 ‘변화’뿐일지 모르는 과학의 발전, 자유롭고 편해진 것 같지만 모든 걸 통제당하는 미래사회, 발견과 발명, 개발이 인류를 위한 것임에도 자본을 위한 것이 아닐 때는 결국 파기 되고야 마는 불의. 뉴 사이언스 혹은 디스토피아 그 어느 쯤에 위치한 ‘미로’ 같은 작품일 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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