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과 오바마 - 전설이 된 두 남자의 유쾌하고 감동적인 정치 로맨스
스티븐 리빙스턴 지음, 조영학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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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

그리고 그의 조력자이자 부통령, 조 바이든.


미국에 있을 때, 인종차별을 느껴본 적이 전혀 없을 정도로 백인이건, 흑인이건 도움을 청했던 모든 사람들이 내게 굉장한 친절과 호의를 보여줘 그런 낌새를 느낄 새가 없었다.

그러나 요새 미국 경찰들이 필요 이상의 총구를 겨누며 흑인들이 사망하는 사건까지 지금도 발생하고 있어 인종차별 문제가 미국 내에서는 매우 심각할 정도이다.

이렇듯 인종차별이 강한 미국임에도 버락 오바마가 '최초의 흑인' 대통령까지 되었으니 그가 가지고 있는 타이틀은 정말이지 굉장한 것이다.

당시,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모두가 부통령으로는 힐러리 클린턴을 지목하겠지 싶었다.

허나 그의 선택은 바로 조 바이든이었다. 그리고 그의 선택은 매우 옳았으며 둘은 8년간 미국을 훌륭히 이끌어가게 된다.


버락과 조는 대통령, 부통령 사이라는 정치적 관계를 넘어 인간적으로도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줘 둘의 브로맨스는 미국 정계의 전설로 남았다고 한다.

아마, 지금의 트럼프 정치로 인해 더 그리운 것일지도 모른다.

(트럼프가 당시 대통령으로 선정되었을 때, 권력있는 자들을 제외하곤 모두가 울부짖었으니깐.)

개인적으로, 조 바이든이라는 인물이 궁금하여 이 책을 펼치게 되었다.

이전에 버락 오바마와 미셸 오바마 그리고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책은 읽어봤는데 조 바이든에 대한 책을 나와있지를 않아 이전에 타임지에서 읽은 것이 전부였기에 항상 아쉬움이 남았었다.

그러나 이 책이 그 아쉬움을 전부 해결해주었다.


조 바이든은 미국에서 30년 이상을 상원의원으로 활동해온 인물이었다.

특히, 조는 상원과 상원의원들을 무척이나 소중하게 여겼으며 무엇보다 초선의원들이 상원의 체계, 전통을 존중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어떤 주제든 거침없이 밀고가는 것이 그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그는 또한 '감성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의 이력을 따라 쭉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가 단번에 생각날 것이다. 바로 헌신이다.

"난 언제나 상원의 분신으로 남을 것입니다. '아버지'라는 명칭을 제외하면, '부통령'을 비롯해 미국 '상원의원'보다 더 자랑스러운 직함은 없습니다."


지금의 정치판은 물어뜯고 헐뜯는 것이 당연시되어 참 한심하기 그지없다.

물론,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이미 나라의 수장임은 분명한데 모든 정치인들은 국민들을 위해 일하기는 커녕 제 밥그릇 챙기고 헐뜯는 것에만 여념하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정치인들이 밤낮 가리지 않고 힘써 일하는 나라의 국민들은 살기가 편하다고 하는데 어째 우리나라는 그 정반대이다.

국민들은 밤낮 가리지 않고 일하기 바쁜데 정치인들은 그저 배부르고 등 따뜻하니 단순히 권력 쥐자고 정치인이 된 건가 싶다.

그들이야말로 이 책을 읽고 버락 오바마와 조 바이든의 관계에 대해 공부 좀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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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4-19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 K-방역을 둘러싼 빛과 그림자
안종주 지음 / 동아엠앤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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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당연했던 게 당연한 게 아닌 게 되어버렸다.

코로나, 그 끝은 과연 언제일까.

며칠 전, 병원에 갔다왔었다.

평소같으면 바로 들어가는 게 당연했지만 지금은 미리 작성한 문진표가 기록된 QR코드를 제출하고 발열여부를 체크한 뒤에 이상이 없으면 그제야 출입이 가능해진다.

이제는 열이 나면 병원도 함부로 출입할 수 없다. 심지어 수술을 앞두고 열이 나면 코로나 검사 시행 후에 음성으로 판정이 나야 수술을 진행할 수 있다고 한다.

병원에서도 몸이 약하니 가급적 외출은 자제하는 게 좋다라고 말하니 내리쬐는 햇살을 받고 선선한 바람을 맞는 게 당연했던 것이 지금은 당연한 것이 아닌 게 되어버렸고 되려 '콕' 박혀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진 것이 사실이다.

모든 당연했던 것들이 이제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이 되어버린 게 지금의 현실이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현재 학계에서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를 박쥐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고있다.

대부분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수많은 바이러스가 뒤섞여 제 몸에 저장하고 다니는 것이 바로 박쥐이다.

우한시의 화난수산시장 뱀, 족제비, 천산갑 등 꿈틀거리는 이름모를 동물들을 판다고 한다.

정력에 좋은 음식을 찾은 이들이 시장에서 천산갑을 찾았고 그 요리를 담당한 요리사에게 수만 마리의 바이러스가 묻었다고 한다.

이후, 요리사에게 기치뫄 발열 증상이 나타났고 이후 함께 대화하고 식사했던 시장 상인들에게까지 호흡 곤란 증상까지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후, 우한 시민들이 비슷한 증상을 보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한 달도 안 되어 우한은 봉쇄되었다.

지금의 코로나바이러스는 포유류와 조류에서 질병을 일으키는 RNA바이러스로 알려져 있는데, 닭에게는 상부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는 반면에 소와 돼지에는 설사를 일으킨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가벼운 감기 증상을 일으키거나 심하면 사스, 메르스와 같은 중증 호흡기 질환을 일으킨다.

당시 우리를 비롯하여 전세계에서도 단순히 중국 특정 지역에서 발생한 풍토병 정도라 생각했었는데 이 바이러스가 전세계를 뒤흔들만큼 강력하다는 것을 크게 인지하지 못했었다.

여기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점은 중국 정부의 태도이다.

2019년 12월 30일, 중국 정부는 세계보건기구 중국 지부에 우한시에서 원인 불명의 폐렴 환자가 집단적으로 발생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당시 중국 우한시에서 후베이성을 거쳐 중앙 정부에 보고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렸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분명한 것은 중국은 자신들의 치부 밝히기를 꺼려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중국은 중국 내에서 발병한 병이었지만 우리는 아니다식으로 안이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전, 사스 발병 때도 내부 고발로 들통이 났던 전적이 있는 중국이었다.

코로나19가 나타났을 때, 우한 중심병원 안과 의사인 리원량이 우한시 화난수산물도매시장에서 7건의 사스코로나바이러스 증상이 확인되었다고 의대 동기생의 위챗 그룹에 올렸었다.

당시 확실한 인과관계가 없기에 리원량은 사스코로나바이러스가고 명칭했는데 당시 우한 경찰은 리원량을 소환하여 주의를 주었다.

허나, 그의 말은 맞았다. 코로나가 맞았고 그는 코로나에 걸린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 최전선에서 활동하였다.

그러나, 2월의 어느 날 그는 서른네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코로나19에 걸려 결국 사망하고 만다.


전염병, 두려움과 불안을 몰고오다.

올해 초부터 난리도 난리가 아니었다.

바이러스로 인한 공포, 불안 그리고 두려움으로 인해 사람들은 저마다 패닉에 빠졌고 이는 마스크 대란으로까지 이어졌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 마침 마스크가 떨어졌었다. 기관지가 약한 탓에 평소 미세먼지때문에 매번 마스크를 한 박스에 백개씩 들어있으니 서너박스를 미리 사다놓고 사용하였는데 그 때는 2+1 구성으로 6000원대에 구매할 수 있었다.

이후, 코로나19가 한국으로 넘어온 후 마스크 대란이 이어졌고 천 원 단위였던 마스크가 만 원 단위를 호가하게 되었다.

병이라는 것이 당연하게도 공포, 불안, 두려움을 몰고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공포와 불안에 기대기보다는 과학과 이성에 기대야 한다.


K-방역, 그 위엄은 전세계에서 증명되었다.

우리나라의 철저하고도 신속한 방역 시스템은 전세계에서 귀감이 될 정도였다.


코로나19가 발생한 뒤 협조를 잘해주는 확진자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확진자들도 많아 그 후자에 의해 집단 감염이 발생하게 되었다.

지금도 나는 걸리지 않을거라는 안이한 태도로 인해 집단 감염이 종종 나타나고 있다.

우리가 지금 최선으로 해야 할 행동들은 우리 스스로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괜찮을 거란 생각에, 답답하단 생각에, 귀찮다는 생각에 지키지 않고 있다면 미래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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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님 저 먼저 은퇴하겠습니다 - 직장은 없어도 직업은 많다
전규석 지음 / 담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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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해보지도 않고 후회하지 말라. 해보고 후회하기에도 인생은 짧다.

가뜩이나 불황인 시대에 코로나까지 강타하여 취업준비생들이 대거 늘었다고 한다. 공무원 시험은 물론 자격증 시험도 미뤄지니 기업 채용 또한 잠잠할 수밖에 없다.

특히, 코로나 여파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직장을 그만두거나 월급 삭감을 당한 이들까지도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이렇듯 경제적으로 참 암울한 시기이다.

그러나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 이 어둠 또한 잘 버틴다면 곧 빛을 볼 것이다.

(바람이지만) 내년에 코로나가 완전히 잠식된다면 다시금 모두가 새로이 직업전선에 뛰어들 것이다.

그 때, 생각해서 읽기에 좋은 책이다.


대기업 입사라는 것이 말그대로 하늘의 별따기이다.

필기는 물론 인성검사와 구술면접까지 봐야하며 면접같은 경우는 1차, 2차로 나뉘기도 한다.

덧붙여, 자격증까지 충분히 받쳐줘야 대기업 입사에 문을 두들길 수 있다.

그렇게 힘들게 문을 두들겨 대기업 입사에 성공한 저자는 젊은 나이에 은퇴 아닌 은퇴를 하고 R-FIRE족으로 살게 된다.

R-FIRE족, 처음엔 이게 무슨 의미인가 싶었다. 쉽게 말하자면 기존의 FIRE족이 아닌 합리적인 소득과 소비를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개념의 R-FIRE족이라 할 수 있겠다.

20대의 저자의 목표는 오로지 '대기업 합격'이었다.

그리고 동기들보다 늦은 감이 있긴해도 서른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하여 꿈의 대기업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허나 시간이 갈수록 마음 한 켠의 미련과 갈망으로 인해 매우 혼란스러워했고 그런 혼란스러움 속에 저자를 지지해준 이는 다름아닌 아내였다.

"퇴사하면 뭐 먹고 살지?"

"설마 산 입에 거미줄 치겠어요?"

그렇게 저자는 아내의 굳은 지지 속에 과감하게 '퇴사'를 결정하게 된다.

그가 완벽한 준비없이 결정한 퇴사였지만 책을 쭉 읽다보니 느낀 것은 저자 나름의 계획이 있었기에, 머릿속에 이미 그려놨기에 지금의 위치에 설 수 있었던 게 아닌가싶다.

물론, 가까이 있는 사람의 지지 또한 포함이다.


이렇게 말해서 좀 그렇긴 하지만 나는 젊으 때 해보고 싶은 도전과 새로운 갈망에 대한 시도를 해보고 그것이 실패하더라도 나이 들어서 좀 고생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그게 나에게는 더 행복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젊어서 고생하고 노후에 편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것 또한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틀리다.'의 문제는 아니다. 그냥 사람의 가치관이 다르고 살아가는 방향이 다를 뿐이다. 나는 선택했다. 단 하루라도 젊을 때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또 다른 것을 시도해보기로.


그렇다면 대기업 직장인의 삶을 놓은 저자의 직업은 무엇일까?

저자는 유튜브 1인 크리에이터이자 골프 티칭프로, 프리랜서 강사, 소득과 기부가 공존하는 회사의 대표이자 작가이다.

문득, 이렇게 설명하고나니 자연스레 김 수영 작가가 떠올랐다.

대학교 때부터 무조건적으로 '열심히' 사는 것이 전부라 생각해 좀 더 많은 것을 경험하지 못했을 뿐더러 여유롭지도 못해 '아, 나도 OO이자 OO, OO, OO가 되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었었다.

덧붙여, 나를 수식하는 것이 물론 명사겠지만 동사로 수식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였었다.

저자를 지칭하는 단어들을 보니 무언가 내 마음에 다시금 불이 지펴지는 순간이 왔었던 것 같다.

코로나가 이유는 아니지만 몸이 많이 약해져서 (완전 백수라 할 순 없지만) 올해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중에 근래는 몸이 정말 안 좋았다.

계획표대로 움직이질 못했다. 일과 공부는 물론이고 매일같이 하던 책도 드문드문 읽고 피아노도, 가야금도 몰두하며 두세 시간 연주했던 것이 잠깐인 것으로 만족했을 정도였다.

어쩌면, 몸이 회복되는대로 내년에는 이직준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절차겠지만 아마 나는 직장인의 삶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 같다.

계획해놓은 것이 분명하고 무엇보다 저자의 이야기와 같은 책이나 주변 사람들의 지지가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퇴사 이후 가장 큰 이점을 '여유'로 꼽았다.

이전에 아는 언니가 진정한 여유를 즐긴다면 어떠한 힘든 일이 있어도 쉽게 넘길 수 있는 능력치가 생긴다고 말해준 적이 있었는데 나는 다니던 직장을 퇴사하고서도 간간히 일했던지라 아직 '여유'의 참된 의미를 깨닫지는 못했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퇴사 이후의 삶을 찬찬히 읽다보면 한편으론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마침 당분간 절대 휴식이 필요한지라 모든 것은 쉬엄쉬엄 여유를 가지며 즐겨보려 한다. 물론 어느정도 계획성있게 말이다.


책을 읽다보면 분명 '아, 나도 퇴사하고 싶다.', '나도 퇴사할까?'라는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물론, 퇴사 이후의 삶에 대해서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있다면 말리지는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저자가 퇴사한 점에 초점을 맞추면 안 된다. 저자는 퇴사 이후에 어느정도의 계획 내지 목표를 세워뒀기에 찬찬히 그 과정을 겪을 수 있었고 지금의 이치에 설 수 있게 된 것이다.

얽매이기보다는 본인이 기획하고 결정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게 바로 저자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라 할 수 있겠다.

고로, 오늘 하루도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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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 책 읽어드립니다, 김구 선생의 독립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김구 지음 / 스타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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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망국의 설움을 면하려거든, 자유와 행복을 누리려거든, 정력과 인력과 물력을 광복군에게 바쳐

강노말세(强弩末勢)인 원수 일본을 타도하고 조국의 광복을 완성하자.

선생님 심부름을 하다 교무실에서 국사 선생님과 잠깐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 때, 내가 '역사는 참 재미있어요!'라고 말했는데 선생님께서 한 말이 아직도,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다들 그렇게 좋아하고, 관심가졌으면 좋겠는데... 아마 가면 갈수록 역사에 대한 관심은 물론 그 중요성도 점점 잊혀져 갈지도 몰라. 그렇게 안 되었으면 참 좋겠다.'

국사 선생님을 떠올리면 이상하게 그 말밖에 생각나질 않는다.

그리고 지금, 국사 선생님의 우려대로 역사가 점점 희미해지는 것 같아 참 마음이 아프다.

물론, 나 때도 그랬지만 내신만 잘 나오면 된다는 생각에 교과서에 나온 한 줄, 두 줄로 요약된 주요 내용이 배운 게 전부였다. 이후 나의 역사는 '책'을 통해 채워졌으니깐.

요즘의 아이들은 역사에 대해 잘 모를 뿐더러 그 중요성에 대해서도 당연히 알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역사와 관련된 예능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이로 충족되지는 못한다.

조심스럽지만, 정부 또한 역사의 중요성에 대해 너무 간과하고 있지 않나 싶다.

거쳐온 과정이기에, 그만큼 굉장히 중요한 것이 '역사'이다. 오죽하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국민의 역사 인식을 높이기 위해 정부 또한 많은 노력을 해야 함이 분명하다.


간간히 유튜브에서 꼭 챙겨보는 것이 있으니 바로 【유 퀴즈 온 더 블럭】이다.

다 보진 못하고 중요 인물들이 나오는 것만 쏙 쏙 골라서 보는 편인데, 이전에 나온 광복절 특집편은 모두가 꼭 봤으면 좋겠다.

그 중 한도원 애국지사의 딸인 한순옥 여사가 나와 백범 김구와의 일화를 들려주셨다.

당시, 백범 김구는 일본인들의 눈을 피해 동포들의 집을 이곳저곳 다니며 몸을 숨기셨는데 특히 한순옥 여사에게 그 애정이 깊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조부모 손에 자라 아버지 없는 자식이라 놀림받으며 자라왔지만 이후 독립운동하신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자부심으로 평생을 살아오셨다고 한다.

또한 이봉창 의사의 폭탄 의거에도 힘을 쓰셨는데, 백범 김구가 도시락 폭탄을 만들어 유모차로 옮기라고 전해주셨는데 그 유모차에 탄 아이가 바로 한순옥 여사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한순옥 여사님이 김구 선생님께 한 말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선생님 어떠세요? 천국에 가셨는데, 많이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저도 열심히 살게요. 늘 열심히 살아서 좋은 사람 되겠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말그대로 곧은, 참어른이신 것 같아 나 또한 그렇게 살고 살아야겠다고.)


백범일지는 백범 김구의 자서전으로 크게 상권, 하권 그리고 나의 소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권은 김구의 어린 시절과 첫 투옥과 탈옥을 겪었던 청년 시절이 담겨있으며 하권은 삼일운동과 상해 임시정부부터 광복의 순간까지가 담겨있다.


어린 시절의 김구는 과연 어땠을까.

어느 날, 할아버지께서 서울에서 샀던 갓을 밤에 내어 쓰고 새 사돈을 대하였는데 이를 양반들에게 들켜 갈기갈기 찢기고 이후 갓을 못 쓰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린 김구는 분해하였다.

결국은 글공부를 잘 하여 과거에 급제하는 것만이 억울한 일은 없겠구나 싶어 글공부를 배워야겠다 결심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글공부를 배우게 된 가장 큰 동기였다.

이후 청년 시절의 김구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앞으로) 어떻게든 나아가는' 성격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특히, 『백범일지』에서도 하권에 집중하며 읽었었는데 참, 그 때 그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지니 얼마나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지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이덕주, 유진식에게 왜놈 총독의 암살을 명하며 본국으로 보냈고 유상근, 최홍식에게 왜놈의 관동군 사령관 본장번의 암살을 명하며 만주로 보내려는 그 때 김구에게 누군가 찾아온다. 바로 윤봉길이다.

"선생님, 제가 상해에 온 이유는 큰일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공장에서 나와 채소장사를 하고 있는 이유도 그런 기회를 찾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젠 중일전쟁도 끝났으니 제가 죽을 자리를 구하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찾아왔습니다. 아마도 선생님에게는 동경사건과 같은 계획이 또 있으리라 믿고 있습니다. 부디 그런 계획에 제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영광을 주십시오."

가슴이 울렁거릴 정도의 뜨거운 애국심에 감복한 김구는 윤봉길에게 큰 거사를 맡기게 된다.

상해 일일신문에 이런 포고문이 실리게 된다.

[4월 29일 천장절 축하식을 거행함, 장소-홍구공원, 축하식에 참석하는 사람은 도시락과 물병 하나, 그리고 일장기를 소지할 것.]

토굴 속에서 폭발 시험을 끝낸 후, 김구와 윤봉길은 서로의 시계를 주고받았다.

이후 지하에서 만나자는 마지막 말을 남겼고 오후 신문 호외가 나온다.

[홍구공원 일인의 천장절 경축 대상臺上에 대량의 폭탄 폭발! 일인 걸민단장 가와하시 즉사, 시라카와 대장, 시케미츠 대사, 노무라 중장 등 문무대관 다수 중상.]



아직은 우리가 힘이 약하여 외세의 지배를 면치 못하고 있지만 세계 대세에 의하여 나라의 독립은 머지않아 꼭 실현되리라 믿어마지 않으며, 대한 남아로서 할 일을 하고 미련 없어 떠나가오. _윤봉길

이후 홍구공원 사건의 연루자를 잡기 위해 왜놈들이 무고한 조선인들을 물고 늘어지자 김구는 결단하여 통신사에게 발표하기에 이르른다.

[나 백범 김구는 일찍이 황해도 안악 땅에서 맨손으로 왜구 쓰지다 대위를 때려 죽여 일단이나마 민 황후의 원수를 갚았다. 이번에도 나 김구가 애국단원 이봉창과 윤봉길을 시켜 일황 저격 사건과 상해 홍구사건을 일으켰다. 그러므로 주모자는 나 백범 김구일 뿐 다른 한국 기관이나 한국인이 관련된 사실은 없다.]


윤봉길 의사 외에도 오롯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도 마다하지 않는 독립운동가분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으니깐.

네 소원이 뭐냐고 물으면 김구는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라고 대답할 것이라고 한다.

네 다음 소원이 뭐냐고 물으면 김구는 "우리나라의 독립이오."라고 대답할 것이라고 한다.

네 그 다음 소원이 뭐냐고 물으면 김구는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오."라고 대답할 것이라고 한다.

자연재해, 인재 등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20년은 참 다사다난한 해이다.

그런 힘든 해이기에 모두가 힘을 합쳐도 모자란데 서로 물고 뜯는 소식들을 보고 듣다보면 오롯이 독립을 위해,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기 위해 희생하셨던 분들이 참 한탄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정부 그리고 정치인들이 제대로, 힘써 일하기만 해준다면 국민들은 그만큼 살기 편해지는데 요즘 정치인들은 사실 권력에 눈이 멀어 일하기는커녕 제 욕심만 챙기니 가면 갈수록 국민들이 더 살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국민들은 물론, 나라를 대표하여 일하는 정치인들과 정부 관계자들이 특히, 근현대사에 대해 많이 공부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느꼈으면 좋겠다.


김구 선생님은 말하셨다.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자신만큼 그 이상의 애국심을 갖는다면 독립을 이룰 수 있다고.

오랜만에 『백범일지』를 재독하며 김구 선생님의 신념에 대해 다시금 느낄 수 있었고 '자유'없던 암울했던 그 시대, 독립이란 꿈을 품고 목숨을 걸며 독립운동을 펼치신 독립운동가분들께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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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세다 유치원에서의 1년 - 함께여서 행복했던 내 아이의 어린 시절
조혜연 지음 / 세나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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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가끔은, 저 먼 타국에서 마음껏 공부하고 싶은 생각을 했었다.

이 순간 발을 내딛고 있는 이곳보다 더 넓은 곳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었다.

초등학교에서 처음 배웠던 영어가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가 아닌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 자체에 큰 흥미를 느껴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엄마에게 조르고 졸라 잠깐이나마 영어 학습지를 할 수 있었다.

그 때는 새로운 것에 대한 배움이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깨달았던 것 같다.

더 알고 싶고, 더 배우고 싶은 마음에 영단어책을 놓지 않았고 TV에서 나오는 CSI 시리즈나 외국영화에 푹 빠져 자연스레 TV는 케이블 채널로 돌리기 일쑤였다.

가끔은, 저 먼 타국에서 마음껏 공부하고 싶은 생각을 했었다.

이 순간 발을 내딛고 있는 이곳보다 더 넓은 곳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었다.

잠깐이었지만 미국에서 한 달 조금 넘게 지낼 수 있게 되었고 한 달 못 되게 한 아카데미에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더듬더듬거렸지만, 천천히 선생님과 대화하며 공부를 하였고 당시 한 달 딱 되려고하니 말문이 터지려고 했었다.

안타깝게도 개학때문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해서 어쩔 수 없었지만 문득 들었던 생각이 미국에서 최소 두달만 지내면 자연스레 말문은 터지겠구나 싶었다.

그러다 『런던에서 보낸 여름방학』을 읽게 되었다. (지금은 코로나때문에 상상할 수조차 없어 아쉽지만) 엄마와 딸의 런던 생활기는 언젠가 타국에서 잠시라도 지내보고 싶은 내 마음을 달래주었다.


평소 여행과 관련된 책을 즐겨읽는 편인데 특히 여행에세이를 많이 보는 편이다.

책장에 꽂혀진 여행책들을 보면, 오롯이 여행지만 나온 책들이 1/5이라면 여행에세이가 그 나머지인 셈이다.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도 얽혀있지만 꼭 가보고 싶은 나라 중 하나가 바로 일본이다.

히사이시 조의 음악에만 관심을 가졌을 뿐 그 외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랬던 내가 일드를 보기 시작했고 심지어 일어까지 천천히 배워가고 있으니 이는 친한 친구의 영향이 큰 것 같다. 그 친구 덕에 일본의 문화에 대해 관심도가 많이 높아졌다.

그렇게 친구 덕에 일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 낯설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평소 온라인 서점에서 오는 신간 메일을 보거나 앱에 들어가 신간들을 쭉 살펴보며 책을 주문하곤 하는데 우연히 【와세다 유치원…】이 눈에 들어왔다.

대학교 때, 와세다 대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은지라 꽤나 익숙해 나도 모르게 클릭하게 되었다. (아, 그리고 알게 되었다. 이건 여행 에세이구나!)


규모가 큰 로펌에 소속된 변호사들은 1-2년 정도 해외로 유학을 가게 된다. 일종의 관례인 셈인데 저자의 남편 또한 한 로펌에 소속된 변호사였다.

대부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것이 일반적이기에 저자 또한 그렇게 생각했지만 저자 남편의 선택은 바로 일본이었다.

그렇게 남편의 유학을 계기로 저자와 자녀들은 2년 못 되게 일본에서 머물게 된다.

1년 6개월 동안의 생활 속에 잊지 못할 기억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자는 단번에 와세다 유치원에서의 1년이라고 답하고 싶다고한다.

너무도 힘들었지만, 너무도 기억하고 싶은 추억, 그 와세다 유치원에서의 1년의 기록이 책 한 권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유치원이 구립과 시립으로 나뉜다.

저자는 구청에서 정보를 쉽게 얻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원비도 저렴하기에 아이들을 구립 유치원으로 보내기로 결정하게 된다.

모든 아이들이 그렇듯이 새로운 환경을 접하게 되면 두려움과 무서움이 따라와 자연스레 거부 반응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데 저자의 우려와는 달리 첫 날 아이들은 환한 표정으로 유치원에서 나오게 된다.

그리고 1년 내내 언어 스트레스가 약간 있었을지 몰라도 유치원을 안 간다며 떼를 쓴 적은 없었다고 한다.

마성의 유치원이라고도 불리우는 와세다 유치원은 아담하지만 7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고 있었으며 아이들이 사람 대 사람의 관계뿐만 아니라 '자연'과도 친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행사들이 일년 내내 가득했고 모든 프로그램들은 놀이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1년의 기록들이 고스란히 녹아있어 에피소들이 가득한데 그 중 한 에피소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저자의 둘째 아들이 집에서 놀던 장난감을 유치원에 들고 가게 되었고 선생님이 집에 갈 때 돌려주겠다며 장난감을 압수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둘째가 생전 부리지도 않은 떼를 부리고 너무 울어대 프로그램이 진행되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아빠에게 한참 혼이 난 아이는 제 감정을 제대로 추스리지도 못할 정도였다.

다음 날, 저자가 선생님과 면담을 하는 과정에서 선생님께 아이가 심하게 떼를 쓰면 집에서도 엄하게 대할 때는 엄하게 대하니 단호하게 대해도 된다고 전했다.

그러나 선생님의 답변은 매우 뜻밖이었다.

"어머님, 죄송하지만 저는 그렇게는 할 수가 없습니다. 은우가 그런 행동을 보인 데에는 분명 은우만의 이유가 있을 겁니다. 저는 아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아이의 이야기를 너무나 들어보고 싶은데 언어가 통하지 않아 그럴 수가 없어서 그게 아이에게 진심으로 미안할 뿐입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제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아이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것뿐입니다.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이런 상황에서 아이에게 절대 무조건 엄하게 대할 수는 없습니다."

'무엇'이 아닌 '왜'에 초점을 맞춘 선생님의 답변에 저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가끔씩, 어린이집 교사들이 아이를 학대하였다는 뉴스를 볼 때면, 그 포악한 행동에 분노가 치밀어오르고 상처받은 아이를 생각하면 그렇게 마음이 아프다.

가해자인 어린이집 교사들은 대부분 '말을 안 들어서.', '밥을 안 먹어서.', '잠을 안 자서.' 등의 이유를 내밀곤 한다.

그렇다면 저자의 둘째는 이후 어떤 행동을 보였을까?

가끔씩 떼를 쓰곤 했지만 그 때마다 선생님은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신뢰를 쌓아갔다.

점점 일본어 실력이 늘며 자신의 이야기를 선생님께 전달할 수 있게되자 아이는 울거나 떼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저자의 둘째같은 경우는 모국어도 아닌 일본어를 구사해야 했기에 더 답답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성인과는 다르게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제대로 발달되어 있지 않아 울고 떼를 쓸 때는 일단 귀 기울여 주는 것이 중요하다.

신생아를 생각해보라. 갓 태어난 아기는 말을 할 수 없으니 우는 것으로 자신의 말을 전달하지 않는가.


예전에 누군가 그런 말을 내게 한 적이 있었다.

'그런 책(여행 에세이)은 끊임없이 보네.'

여행 에세이는 일반적인 에세이와는 다르게 더 넓고, 더 색다른 공간에서 느낀 경험을 기록한 것이기에 읽고나면 그 느끼는 바가 매우 깊다.

물론, 그 여행지의 이야기는 덤이긴 하지만 나는 새로운 공간에서 느꼈던 그들의 경험을 간접적으로나마 책을 통해 느껴보고 싶어 매달 여행 에세이는 꼭 읽는 것이다.

『와세다 유치원에서의 1년』에서도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으니 만족스러운 여행이자 만족스러운 독서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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