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엄마가 미워진다 - 상처받은 줄 모르고 어른이 된 나를 위한 심리학
배재현 지음 / 갈매나무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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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다르게 바라볼 수는 있다.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이 지금까지 발목을 붙잡고 있는가?

큰 충격과 아픔이어서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는데, 정작 사소한 일상생활이었다고 생각하며 그 때의 상처가 된 사건들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지금의 어른들이 많다.

저자는 상처받은 줄 모르고 어른이 된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저자, 배재현은 임상심리전문가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임상심리학을 전공했고 현재 서울 EMDR 트라우마센터 부센터장이다.

2005년부터 트라우마의 주된 치료법인 EMDR을 통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어린 시절 반복적인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이들을 치료해 왔으며 정신 건강 전문가들의 EMDR 교육에 앞장서고 있다.




부모님의 사랑으로 태어난 것이 바로 '우리'다.

생명으로 만들어진 그 순간부터 태어나고 보호받아야 할 시기까지는, 부모님이 세상의 전부다.

세상의 전부가 되어줄 것이라는 부모님을 믿고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된다.

즉, 우리에게 가까운 존재는 부모이다.

하지만 모든 부모가 세상의 전부가 되어주진 않는다.


예전부터 아동 학대와 관련된 사례는 많았고 사회적 관심도 높긴 했으나 작년에 발생한 정인이 사건으로 인해 모두가 더 큰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정인이 사건과 같은 입양부모에게, 천안 계모 아동학대 사망사건과 같은 계부 혹은 계모에게 그리고 친모, 친부에 의해 학대당하거나 방치되어 사망하게 된 사건들은 잠잠하다가도 끊임없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학대받은 아이들이 있는가하면 알게 모르게 정서적 학대를 받은 아이들도 굉장히 많다.

정서적 학대를 가하는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있어서 부모들이 가까운 존재이기에, 오히려 모든 것을 이해시키고 받아들이기를 종용한다.

보이는 신체적 학대와는 달리 정서적 학대는 보이지 않는 학대와도 같다.



Ⅰ 어린 시절 상처는 그냥 괜찮아지지 않는다


내담자들과 상담 중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면 하나같이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제가 이상하고 유별난 거 같아요. 다 제 잘못이죠.'

그저 자신이 부족하고 못났다고 자책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한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크고 작은 일들을 겪으며 성장하는 것이 '사람'인데, 이제 걸음마 뗀 아이들에게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겠는가.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특히, 부모님께 듣는 말로 인해 스몰 트라우마가 생길 수도 있는데 이는 성인이 되어서까지도 영향을 준다.

한번 자리잡은 트라우마는 시간과 상황이 변한다해도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외모 때문에 가족에게 반복해서 놀림 받은 경험, 여행 중 엄마를 잃어버렸다가 찾았는데 정작 엄마는 왜 딴청을 피웠냐고 혼내서 서러웠던 경험, 아끼던 반려견의 갑작스러운 죽음, 준비물을 안 가져가서 친구들 앞에서 선생님에게 맞고 창피당한 경험 등 일상 생활에서 겪었을 법한 일들이 개개인에 따라 지금까지 감당하기 버거운 상처로 남아있을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물론 사소한 일상생활일 수 있다.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데 누군가는 왜 상처가 되느냐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수 있겠다. 당시, 위로와 공감을 충분히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은영 박사님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봐도 알 수 있는 것이 첫번째 솔루션의 대부분이 공감 능력 결핍 등을 원인으로 들며 부모의 행동부터 고치는 것을 조언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정신과 의사 앨리스 밀러가 말하길, "몸은 의식과 보조를 맞추지 못한다. 그러므로 질병이라는 언어를 통해 말을 건네는 것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 자신의 진정한 감정이 부인되고 억압되었다는 사실을 간파하지 못한 사람은 내 몸의 언어를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라고 했다.

스스로 기억에서 지워버렸다해도, 몸은 기억할 수 있다.

난 유난히 소리에 민감하다. 평소 집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넋 놓고 편하게 있지는 않는다. 항상 집중한다.

트라우마와 스몰 트라우마, 이 두 가지를 다 겪어봤다.

몇 몇 사건들이 있었는데 크게 한 가지씩만 꼽자면, 중학교 때 차가 뒤에서 치는 바람에 맥없이 슝 날라간 적이 있었다. 그 때 이후로 뒤에서 다가오는 오토바이, 차 소리에 굉장히 예민하다. (트라우마)

어린 시절, 아빠께서는 유난히 내 공부에 집착하셨는데 수학경시대회라도 있는 날에는 감시 아닌 감시를 하셨었다.

그 때마다 밤에 공부하고 있는지 잠자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방문을 벌컥벌컥 열었었는데, 그것이 내게는 스몰 트라우마가 되어버려 지금까지도 문소리에 놀란다. (스몰트라우마)

싫은 기억들은 점점 마음 저편에 묻어간다고 하는데 나도 가끔씩 나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잊어버릴 때가 있다.

그런데 기억할 수밖에 없는 것이 몸이 기억을 한다. 몸이 기억해, 어느 한 켠에 숨겨두었던 그 기억을 끄집어낸다.

즉, 어린 시절 상처는 그냥 괜찮아지지 않는 것이다.


'불안하고 편안한 적이 없으며, 내 감정 또한 잘 모르겠다.'라는 사람들을 보면 실제 자신의 감정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정확히 말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움만 느낀다.

내면을 잘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 상태를 잘 파악할 수 있다고 하니, 즉, 자신의 감정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혼란스럽고 불안한 사람들은 통제력을 쉽게 잃을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부정은 끊임없이 부정을 낳아 긍정 회로로 돌리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통제력을 잃은 사람들이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찰 때 결국은 위험한 생각에까지 이른다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을 자각할 수 없는 데에는 여러 원인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어린 시절 부모와의 정서적 공감을 받지 못해서이다.

정서적 공감을 충분히 받지 못한 사람은 결국 유대감이 부족한 사람으로 성장해 어떻게 그 감정을 다스려야 할지 몰라 그저 피하기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저자는 어린 시절 부모는 아이의 감정을 외면하고 무심히 지나쳤을지 모르지만, 어른이 된 나는 그 감정을 알아차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감정의 신호인 내 몸의 언어를 스스로 이해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공포에 갇힌 과거의 어린아이가 안심하고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정서적 학대는 우리 사회에도 나쁜 바이러스처럼 만연해 있어 아이들의 정신 건강을 심각하게 파괴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 심각성을 잘 모른다.

아이에게 밥을 주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것처럼, 내 마음을 알아주고 공감해 주는 누군가와 정서적 연결감이 없으면 그건 사실 인간답게 성장하는 것을 방해하는 치명적인 요소가 된다.



Ⅱ 상처받은 줄 모르고 어른이 되었다


우리는 크게 세번의 애착을 경험하게 된다.

첫번째는 태어나서 엄마와의 관계에서 맺고 두번째는 이성과의 친밀한 관계에서 맺게 된다.

세번째는 부모가 되어 자녀와의 관계에서 애착을 경험하게 된다.


모든 부모는 아빠, 엄마의 자리가 처음이다

나의 부모님도 아빠, 엄마라는 직책이 처음인지라 당연히 서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허나 부모의 위치에 서게 되었다면 꼭 아이를 위해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

육아책을 보는 것도 좋지만 책 볼 시간이 없다면 육아와 관련된 프로그램이라도 보면서 '성장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시간이 없다면, 잠깐이라도 휴대폰 만질 시간에 오은영 박사님의 프로그램을 챙겨보는 것도 좋다. 그 자체로도 공부라 생각한다.

남자도 아빠가 처음이고 여자도 엄마가 처음이다.

하지만 아이는 부모님을 믿고 세상에 태어난 것이니 아이가 온전히 성장할 때까지 외면하거나 방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학교, 학원을 다니면서 알아서 크겠거니 생각하곤 훗날 '나는 널 이렇게 가르치지 않았는데...', '얘 교육을 어떻게 시킨거야...'와 같은 말을 한다는 것은 분명 모순일테니깐 말이다.



Ⅲ 내 부모를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본다


나도 알고 전문가도 아는데 왜 부모님은 몰랐을까?

부모를 원망하거나 모든 것을 부모 탓으로 돌려선 안 된다. 또 부모를 반드시 용서하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어린 시절의 나와 부모를, 지금 어른이 된 내가 다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포유동물이다. 포유류를 보면 모성애가 남다른데, 자녀 양육을 할 때 '감정의 뇌'라 불리는 변연계가 주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사랑의 호르몬이라 부르는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이 뇌의 화학물질을 분비해 부모가 자녀를 사랑의 마음으로 보살피게 한다.

즉, 자녀를 온전하고 건강하게 키워내는 데에는 뇌의 정서적 부분이 훨씬 더 많이 작동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좋은 부모의 조건은 바로 이렇다. 자신의 마음 상태를 잘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할 줄 모르는 부모는 본의 아니게 언제든 자녀에게 상처를 주고 정서적 학대를 준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Ⅳ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다르게 바라볼 수는 있다


여기서 트라우마 치료에 효과적인 치료법인 EMDR이 나온다.

EMDR Eye Moment Desensitization Reprocessing이란, 안구운동 민감소실 재처리를 의미하며 좌우 양측으로 눈을 움직이는 안구운동이 고통스러운 기억에 대한 민감도를 감소시키는 치료법이다.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없애지는 못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복잡하게 얽혀있어 풀리지 않는 과거 기억들을 안구운동으로 풀어내, 보다 현실적이고 회복될 수 있는 기억의 망으로 연결되도록 촉진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저자의 실질적인 조언들이 담겨있다.




☞ 조금씩, 털어놓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말로 하자니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는 않아 글로 대체하는 것도 좋다고 조언해주셨다.

그래서 가상의 인물을 덧대어 감정 표현을 마음껏 해놓은 소설, 그간 겪었던 사건들과 함께 무너져내렸던 감정 그리고 이를 극복했던 마음가짐을 담은 에세이를 꾸준히 작성하고 있다.

그렇다. 나도 가족과 관련해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이 문제로 상담도 많이 받았는데, 실제 당시 느꼈던 감정부터 시작해 실질적인 조언해주시는 것까지 책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 놀라긴 했다.

장녀인 나는 유난히 첫째로서의 책임감이 매우 컸는데, 상담 결과 나와 부모님의 위치가 바뀌었다며 솔루션 중 하나가 조금은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라는 것이다.


학교에서 혹은 학원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크고 작게 상처받는 일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을 돌려 사건이 일어날 수 없도록 하지 않는 이상, 과거의 기억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어른이 되고 난 지금, 가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 중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라. 문제점 중 일부는 알게 모르게 어린 시절에 겪었던 사건들이 원인이었을 수도 있으니깐.


이미 성인이 되었고 성인이 된 이 시점에 누구에게 위로받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 것이다.

심각하게 얽혀있는 것이 아니라면 책으로도 충분히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허나 심각하게 얽혀있는 이들에게는 필요한 것이 바로 '사람'이다.

트라우마로 자리잡게 된 원인을 분명하게 파악하고 치유해야만, 정서적으로 '건강한' 나로 살 수 있다.


어른이 되었고 어린 시절의 '나'는 이미 지났다. 그런데 왜 굳이 원인을 생각해보고 개선해야 하는 거죠?

언젠가 '나'도 부모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좋은 부모의 조건은 자신의 마음을 잘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허나 자신의 감정도 통제할 줄 모른 상태에서 부모가 되어버리면 또 나는 나의 부모처럼 행동하게 되는 것이고 아이는 지금의 나가 될 것이다.

부모가 될 계획이 없다해도 앞으로 살아갈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앞으로 부모가 될, 이제 막 부모가 된 그리고 어린 시절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모두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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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 헤이그 지음, 노진선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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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힘이 들 때면, 글을 쓴다.


그 날, 힘든 일과 맞딱드릴때면 곧장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펼친다.

그리곤 가상의 인물을 만든 후에 나의 감정을 고스란히 대입시켜 글을 써내려간다.

지금으로선 끝이 없는, 종착지가 보이지 않는 글이 덧대어지고, 또 덧대어져 어느새 페이지 수가 많이 늘어났다.

대부분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첫인상을 이렇게 평가받는다. - 빈틈없이 깔끔한 겉모습에 고생이라는 것을 모르고 산 것 같다.-

깔끔하고 완벽한 모습이 그 이유이니 물론 마냥 나쁘진 않다. 하지만 고생을 모르고 살았다는 것은 너무나 큰 억측이다. 먹음직스러운 크림빵 속에 슈크림인지, 말차인지, 팥인지 알 수 없듯이 속을 갈라보지 않는 이상 아무도 알지 못한다.

어린 시절부터 '평범한 일상'의 나날을 동경했고 지금도 동경하고 있다. 어쩌면, 지금도 나의 삶의 목표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한들, 나만 잘한다고 해서 잘 풀리는 것은 아니다.

집이건, 학교이건, 사회이건, 그 구성원들간에 어느 정도 합이 맞아야 '좋은' 쪽으로 나아갈 수 있는데, 나의 바람과는 달리 삐그덕거린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사람과의 관계에서 많은 상처를 받았었다.

인간관계 또한 양면성이 있다. 즉, 관계를 맺는 사람들 중 이로운(利) 사람들이 있는가 반면에 해로운(害) 사람들도 있다.

특히, 해로운 사람들은 물론 이로운 사람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에게까지도 상처를 입을 때면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끔씩 생각해본다.

"(그 전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되뇌인다.

"'내가 강경한 태도를 취하는 등 말 혹은 행동을 달리했으면 이렇게까지 상처받지 않았겠지?', '만약 그 전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어떻게든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라고 되뇌인다.


'성장'의 단계를 넘어갈 수 있는 길을 몇 갈래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후회'이다.

인생은 후회의 연속이다.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 인간의 삶이기에, 후회할 일을 매번 겪는다.

이 때, 그 일에 대해 반성하고 시정하는 사람들만이 '성장'의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다만, 넘어가는 과정자체가 매우 단순할 수도 있고 복잡할 수도 있다.

특히 섬세하게 살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바로 우리 감정인데, 그 과정 속에서 일부는 감정의 늪에 빠진 깊이에 따라 극도의 우울과 불안을 느끼게 된다.



죽음에 대해, 자살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혹시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불치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다고 한다.

물론 육체적인 고통의 정도로도 판단할 수 있겠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죽음의 순간이 마음으로도 느껴진다고 한다.

사람의 죽음은 자연사, 병사, 사고사, 아사로 나눌 수 있는데 이에 더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자살이다.

책 속에서, 주인공 노라는 '자살'을 결심하게 되는데 질문을 살짝 바꿔 물어보고 싶다.

혹시 '자살'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이 부분에 대해 선뜻 '아니오'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아니오'라고 대답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을 것이다.

자살과 관련된 기사를 보면 의견이 나뉜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리고 '도망친거네...'.

마르탱 모네스티에의 「자살」과 앤디 라일리의 「자살토끼」를 읽어보거나 들어본 적이 있는가? 두 책 모두 자살을 다룬 책이다.

「자살」같은 경우 어린 나이에 호기심으로 열어봤다가 적잖은 충격을 받고선 곧장 책장을 덮었었는데 지금도 왜 도서관에 그 책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이후 대학생이 되어 심리학 공부를 하면서 다시금 펼치게 되었는데, 자살의 정의, 이유, 종류, 사회대책까지 자세하게 다루고 있으며 실제 상황이 담긴 사진과 함께 첨부되어 있어 지금껏 가장 무섭게 느껴졌던 책을 꼽으라하면 바로 이 책이다.

앤디 라일리의 「자살토끼」는 토끼가 다양한 방법으로 자살한 모습을 그림으로 나타낸,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이다.


뜬금없이 두 책을 언급한 이유는 바로 이렇다.

자살의 원인은 매우 다양하지만, 난 우울함을 원인으로 둔 자살에 대해 말해보겠다.

우울증은 단순히 우울하다는 감정과는 다르다.

감정의 파도에 갇혀 헤엄치려 해도 계속 그 자리다. 그래서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누군가 손을 내밀어주지 않는 이상 절대로 헤어나올 수 없는 것이 우울증이며, 오히려 발버둥칠수록 더 깊게 가라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책에도 나오듯이, 그들이 굳이 자살을 택하는 이유는 바로 이렇다. 편해지고 싶어서다.

그래서 죽음의 문턱에 다다르려고 하는 그 순간, 극도의 공포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차가운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 선택의 순간에 꼭 본인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것이 있다. 본인이 선택한 그 결정에 대해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느냐이다.

분명 그 선택을 하자고 마음먹기에 앞서 우울감이 온 몸을 평정했다는 것인데, 되돌아가자면 나 자신이 우울한 원인을 분명하게 알고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인생에서 매순간 결정의 기로에 놓여있을 때, 한 가지 선택지만 주어진 것이 아니다. 분명 두 가지 이상의 선택지가 주어진다. 

본인이 결정한 선택지에 따라 가지치기 하듯이 끊임없이 갈라진다.

이는 앞으로도 계속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며 우리가 이전에 밟아왔던 그 과정(선택받았던, 선택받지 못했던 선택지)에도 분명한 영향을 미친다.

이 말은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최대수혜자이자 최대피해자가 된다는 뜻이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가 소설이라 하더라도, 어쩌면 인생은 더 소설같기에 '후회와 죽음', '희망과 미래'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대해 생각의 폭이 넓혀질 것이라 확신한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The Midnight Library


낡은 소파에 앉은 한 소녀가 다른 사람들의 행복한 삶을 들여다본다.

노라 시드, 그녀는 죽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기를 내심 바랐던 그녀에게 누군가 찾아온다.

키가 크고 마른, 다정해보이는 남자는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듯한 눈빛으로 노라를 바라보았다.

내심 외로웠던 노라는 혹시나하는 마음에 반가운 마음이 들어 괜스레 말을 걸었다.

노라의 쓸데없는 질문에도 답변하면서도 그의 얼굴은 굉장히 심각해보였다.

그의 안색이 둘의 침묵을 이끌었고 애쉬는 힘겹게 노라의 반려묘 이야기를 꺼내게 된다.

"고양이를 기른다고 하셨죠?"

"네. 반려묘가 있어요."

"그 고양이 이름이 기억나네요. 볼테르. 갈색 얼룩무늬였죠?"

그리곤 애쉬는 덧붙였다.

"유감이지만 볼츠가 죽은 것 같습니다."

괴로움과 슬픔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노라는 볼츠(볼테르, 노라만의 애칭)에게 향했다.

동정과 절망을 동시에 느끼는 한편, 아이러니하게도 미동없는 평화로운 표정에 약간의 질투와 같은 감정이 흘러나왔다.


자살을 결심한 시간들이 다가온다.

노라는 와인을 마시며 그간의 '부여받고 싶어하던 직책'들에 대해 나열하며 생각해본다.

수영 선수. 뮤지션. 철학가. 배우자. 여행가. 빙하학자. 행복하고 사랑받는 사람. - 노라는 그 어느 것도 이루지 못했다.

심지어 고양이 주인도, 피아노 레슨 선생님도, 대화가 가능한 인간으로도.

11시 22분, 다른 것 생각할 겨를 없이 노라에겐 딱 한 가지만 떠올랐다.

죽기에 딱 좋은 때였다.


사방에 안개가 깔려 있는,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 곳에 노라가 있었다.

00:00:00, 손목에 찬 시계는 자정을 가리키고 있었다.

진한 고서의 냄새가 가득한 이곳은 도서관이었다.

그리고 족히 예순은 되어보이는 녹색 스웨터를 입은 사서가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엘름 부인."

그렇다. 단박에 노라가 알아본 그녀는, 옛날 그녀가 다녔던 학교의 도서관 사서였다.

남자 기숙학교 교사였던 아빠의 사망 소식을 전해준 것이 엘름 부인이었다.

그 때, 엘름 부인은 노라에게 이런 말을 했다.

"다 잘될 거야, 노라. 괜찮을 거야."

아직은 사후 세계가 아니지만 곧 죽음의 문턱과 가까워지는 노라에게 엘름부인은 말한다.

"자정의 도서관이 존재하는 동안 넌 죽음으로부터 보호받을 거다. 이제 어떻게 살고 싶은지 결정해야 해."


움직이는 서가의 선반을 보며 엘름부인은 이제 시작할 때가 되었다며 삶과 선택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영향이 고스란히 묻어난 책들에 대해 소개한다.

다른 책과 달리 회색 표지의 책 한 권을 노라에게 건네는 엘름부인은 노라에게 말한다.

이 도서관에 있는 책들은 모두 노라 자신의 삶인데, 유일하게 지금 노라가 든 책만 그녀가 한 글자도 쓰지 않고서 쓴 책이며 모든 문제의 근원과 해답이 담겨 있는 책이라고 덧붙인다.

"이게 무슨 책인데요?"

"《후회의 책》이야."

나이순으로 정리되어 있는 《후회의 책》은 0부터 시작해서 35장까지 있었고 각각의 장이 더 길어졌으며 그 해에 해당하는 후회만 적혀있지를 않았다.

"후회는 시간 순서를 무시하지. 마구 떠다닌단다. 이 목록은 배열 순서가 늘 바뀌어."

생각해보니 그랬다. 예컨대,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에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은 게 후회돼라던지, 어릴 때 더 많이 놀지 못한 게 후회돼라던지, 결혼하지 않은 게 후회돼라던지, 케임브리지에서 철학 석사 과정을 공부하지 않은 게 후회돼라던지.

그렇게 마구 떠다니는 후회들을 보며 노라는 지난 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모든 것이 그저 부당하게만 느껴지는 노라를 보며 엘름 부인은 말한다.

"…… 이 자정의 도서관은 유령의 도서관이 아니니까. 여긴 죽은 자들의 도서관이 아니야. 가능성의 도서관이지. 그리고 죽음은 가능성의 반대고. ……"

그리곤 엘름부인은 노라에게 책 하나를 건넨다.

전나무색에 보드라운 질감을 가진 표지 위에는 《나의 인생》이란 제목이 큼지막하게 써 있었다.

이번에는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까?

노라는 빈 페이지를 보곤 다음 페이지로 빠르게 넘겨보았다. 그리고 시작되었다.


엘름 부인에게 받은 《나의 인생》을 통해 노라는 지난 날로 돌아가 그녀가 평소 원했던 모습의 삶 '수영 선수. 뮤지션. 철학가. 배우자. 여행가. 빙하학자. 행복하고 사랑받는 사람.' 등으로 살아보게 된다.

노라는 드디어 진정 자신이 원했던 삶을 살아볼 수 있게 되었다. 과연 노라는 그녀가 원했던 삶에 대해 만족할 수 있었을까?


전하고픈 책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뒷이야기는 직접 읽어봤으면 좋겠다, 꼭.

기대 이상으로 더 큰 깨달음을 줄테니깐.



내겐 눈물이었다


"이 책들은 네가 살았을 수도 있는 모든 삶으로 들어가는 입구야."


책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내게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는 '눈물'이었다.

(다들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 눈물에는 온도가 다르다.

책이나 영화를 볼 때 흐르는 눈물은 식어버린 티처럼 차가운데 어딘지 모를, 깊은 마음 한 구석에서 끌어져 흘러 내린 눈물의 온도는 평소와는 달리 뜨겁다.

특히 그것이 나의 마음을 뒤흔들만큼 개인적인 상황과 맞물린다면 그 온도는 더 높다.

내 볼을 타고 흐르는 조금은,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책 위로 뚝뚝 떨어졌는데, 책 속 상황과는 다르긴 해도 마음에서 우러난 감정은 비슷해서인지도 모르겠다.



드디어 놓게 된, 후회의 조각


잠시, 책 속의 에피소드 하나를 꺼내보겠다.

자정에서 1분이 지난 시각, 살아있을거란 잠깐의 희망을 걸었던 볼테르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고 차가웠다.

볼테르와 함께 하는 삶을 원하는 노라에게 엘름 부인은 볼테르가 사고사가 아닌 자연사임을 알려준다.

시간을 잠시 바꿨던 엘름 부인의 장난에 노라는 화가 났지만 엘름 부인은 노라에게 큰 깨달음을 준다.

"네가 바뀌었잖니."

"무슨 말이죠?"

"넌 이제 자신이 형편없는 고양이 주인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넌 볼테르를 최고로 잘 보살폈어. …… 고양이는 안단다. 자신이 죽을 때가 다가왔다는 걸 알지. 볼테르는 죽을 때가 다가왔다는 걸 알고 밖으로 나간 거야."

고양이를 키운 적은 없는데, 일 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밥과 잠자리를 챙겨준 길고양이가 있다.

길고양이들이 여기저기 다닐 때면, 우리집 옥상을 지나곤 한다.

그러다 옥상계단에서 한 마리와 눈이 마주치게 된다.

희한하게 피하지 않고 빤히 쳐다보기에, 계단을 내려와 마당으로 향하니 고양이도 옥상 계단에서 내려와 마당으로 향했다.

그것이 첫 만남이었다.

사실, 여느 길고양이처럼 한순간의 만남으로 끝날 줄 알았다.

큰 대문 안에 마당이 있고 집이 있는 형태인데, 단독주택이지만 집이 두 채가 붙어있는 형식이라 큰 집, 작은 집을 왔다갔다한다.

작은 집에 내 방이 있는데 큰 집으로 가려고 잠깐 현관이라도 나올 때면 어디서 '냥'하고 누군가 부른다. 그게 일주일동안 이어졌다.

그렇다고 흔히들 말하는 '간택'의 순간은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절반의 간택이랄까.

절대로 집에 들어오는 법이 없으며 밥은 마당 한 켠, 지정된 곳에서 먹으며 항상 나와 노는 곳은 옥외마루이다.

그렇게 '호떡이'는 나와 일 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했다. 중간에 친구 세 명도 데려와 반 년을 함께 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은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며칠이 지나도 그림자 하나 나타나질 않아 이제는 정말 다른 동네로 갔나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둠이 내려앉은 저녁에 '냥' 소리가 들려 후다닥 마당으로 향했었다.

반가운 마음에 특식을 꺼내 밥그릇에 덜어놓았는데 먹지도 않고 그저 나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왜 안 먹어? 그동안 어디 있었어?"

평소같으면 '냥' 하고 맞받아쳐주는데, 그 날은 대답도 하질 않았다.

그러다 물을 좀 마시는가 싶더니 갑자기 기침을 하곤 쏜살같이 옥상 계단으로 올라갔다.

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없기에, 고양이가 기침하는 것은 난생 처음보았다.

어디 아픈건가 싶어 옥상으로 향하려고 하는데, 평소와는 다른 목소리인 걸걸한 목소리로 '냥'을 한번 외치고선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순식간에 호떡이는 옥상으로 올라가버렸다.

나도 모르게 옥상으로 발걸음을 옮겼지만 그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 한 달, 두 달... 일 년이 흘렀었다. 벌써 호떡이와의 마지막 눈맞춤이 5년이나 흘렀다.

반려묘를 키우는 지인이 고양이는 죽음의 순간을 스스로 직감하는데 너에게 그간 고마워 마지막 인사하러 온 것 같다고 얘기해줬었는데, (지금도 쓰면서 눈물이 흐르는데) 당시에 느껴보지 못한 반려동물과의 이별의 아픔에 많이 힘들었었다.

호떡이는 길고양이인지라, 쓰다듬는 것을 좋아하긴 해도 잡거나 안는 것은 싫어했다. 모션이라도 취할려고 하면 도망가버리고 사나흘은 삐져서 마당으로 내려오지도 않았다.

마루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슬며시 옆으로 다가와 본인이 스스로 기대는 것까지만, 딱 거기까지만이 우리만의 스킨십이었다.

호떡이와의 마지막 눈맞춤과 '냥'은 절대 잊을 수가 없다.

호떡이를 위해 밥도 챙겨주고 호떡이가 쉬는 곳에 조그마한 집까지 만들어주는 등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했으니 후회하지 말란 지인의 위로에 마음을 많이 추스릴 수 있었다.

'난 볼테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어'라는 후회가 책장에서 서서리 사라지듯, 노라와 볼테르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 또한 마음 한 켠에 남아있던 후회의 조각을 버릴 수 있게 되었다.



고백 그리고 내 손을 따뜻하게 맞잡아주는 내 사람들


어렸을 때부터 폭풍우같은 삶을 살다보니 시간으로 다져진 인생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져왔다.

세상에 좋은 사람도 있지만 나쁜 사람도 있듯이, 내 곁에 해가 되는 사람도 많았다.

"하나에게는, 유난히 네 감정을 흔들만큼 안 좋은 사람들이 많은 게 사실이야."

오죽했으면 상담받았던 교수님께서도 안타까움을 드러낼 정도였으니깐.

가치관과 생각이 달라져 요즘은 아무렇지 않게 오픈한다고 하지만, 나는 가급적 아픈 것에 대해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이 내 약점일 될 것 같아 눈 감았는데, 그 때 교수님의 말을 듣고 생각의 전환을 가질 수 있었다.

"당연히 핑계가 아닌 이유가 있는 것인데, 사람들은 말하지 않으면 몰라. 말해줘야 알지, 말해주지 않으면 몰라. 그리고 오히려 최대피해자는 네 자신이 될 수 있어."

그런데 참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현재 내가 짊어지고 있는 병들 중 하나가 바로 공황장애이다.

대학생 때부터 그 기미가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애써 괜찮은 척하며 지내오다 결국엔 죽을 것 같은 고통에 병원으로 향했고, 그 때 공황장애 판정을 받았다.

특정 공간들이 옥죄어왔다. 헐떡거리는 숨막힘, 고른 호흡이 되질 않아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다.

지금은 공황장애라고 하면 많이들 아는 병이기에 오픈하는 것이 쉬워보이지만, 이를 오픈하기가 참 힘든 것이 대부분 이렇게 말할 것이 보였다. - 마인트컨트롤이 중요하다. 네 자신을 스스로 잘 다스려야 한다. 강해져라. 약해지지 말아라.

마인드컨트롤이 중요한다는 것부터 나 스스로 잘 다스려야 한다는 것까지 잘 알고 있으나, 말이 쉽지 그렇게 마음을 먹으려고 노력해도 병이 단숨에 고쳐지지는 않는다.

오픈하고 나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내뱉은 말에 상처받을 것 같았다.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한 통의 전화가 왔었다. 무심코 받았던 그 전화는 다름아닌 오래전에 알고 지내던 친구였다.

지금은 길 가다 지나가면 한번에 못 알아볼 것 같은 마음이 들 정도로 그 친구 얼굴 본 게 그만큼 오래되었다.

전화를 통해 그간의 이야기를 짤막하게 하며 안부를 물었는데 이야기 도중에 무심코 한 그의 말들이 귓가에 울렸다. -"안면장애가 있거나 대인기피증이 있는 게 아니잖아?",  "정신적인 아픔들은 다 마음이 약한 게 문제야. 그래도 넌 그렇지 않잖아." 등등.

물론 농담섞인 말들이니 듣고 넘기면 되지만 농담섞인 말이어도 그가 했던 여러 말들이 귓가에 맴돌았다.

이렇듯 아픈 것에 대해 털어놓으면 강인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치부해버리지 않을까 싶어 꺼리는 것도 이유가 있다.

의사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이 있다.

"강인했기에 그 많은 일들을 겪어도 지금까지 잘 버틴 것이다. 그 말은 넌 절대 약한 사람이 아니다."

단단하고 강인한 마음을 가졌기에 잘 버텼었는데, 아무리 철옹성같은 단단함이어도 계속된 충격에 의해 결국은 약해지기 마련이라며 그래서 잠시 약해진 것 뿐이라고 말해주셨다.

물론 글이긴해도, 이렇게 하나 털어놓는 것도 굉장히 용기를 낸거다.

벌써 몇 년째더라. 약물치료를 병행하며 지금도 치료받고 있으니 꼭 나을 것이다.

이 책이 내게 크게 와닿았던 부분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부분이다.

엘름 부인이 노라에게 "다 잘될 거야, 노라. 괜찮을 거야."라고 언급한 부분이 있는데, 이전 게시물에서 종종 언급했던 은사님이 내게 해주신 말과 똑같았다.

난 모든 것을 홀로 짊어지는 성격인지라, 온전하게 모든 것을 털어놔본 적은 아직도 없다. 엄마, 교수님, 은사님 그리고 외국으로 언제든 떠나자는 친구만이 내가 얼마나 아픈지 알고 있다.

그 때, 내가 그들에게 들었던 말들 중에 똑같은 말이 하나 있다. "괜찮아. 다 잘될 거야."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세상은 홀로 살아갈 순 없다는 것이다. 내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이들에게 손을 뻗으면 분명 그들은 뻗은 손을 따뜻하게 맞잡아줄 것이다.

다만 꼭 그 대상이 분명해야 한다. 누구든 아무에게나 도움을 청해선 안 된다. 잘 들어주는지, 진중하고 무거운지, 신뢰가 깊은지 등등 신중하게 생각해보고선 털어놓는 것이 좋다.



괜찮아요, 괜찮을 거예요


노라가 자살을 택하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인지 그녀의 절망적인 과거를 숫자로 표현해보겠다. 죽기로 결심한 시간을 기준으로.

27시간 전, 사랑하는 반려묘 볼츠가 길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9시간 30분 전, 12년 11개월 동안 몸 담았던 악기점에서 해고를 당했다.

9시간 전, 약혼자 댄을 떠올렸다. 참고로, 결혼을 2일 남겨둔 채 노라가 댄에게 문자로 파혼을 통보했다.

4시간 전, SNS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그녀의 SNS는 댓글도 0, 팔로워 요청도 0, 친구 요청도 0이라는 것을.

노라가 《나의 인생》을 펼치기 전, 잠시 책장에 기대어 이 수치들을 생각하며 노라가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원인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선 《나의 인생》에서 펼쳐진 노라가 원했던 삶으로 함께 시간여행을 하게 되었다.


노라의 후회섞인 문구들이 나의 평소 후회섞인 문구들과 접점을 이루니, 덩달아 노라의 감정에 이입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인생은 더 소설같다고 하는데, 나의 삶 또한 어쩌면 더 소설같아서 잘 풀 수 있을지는 아직도 미지수이다.

앞으로 이에 대한 결정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 순간이 내일이 될 수도 있고, 한 달 후가 될 수도 있고, 일 년 후가 될 수도 있다.

인생에 있어서 참 야속한 게 있다면, 어쩔 수 없는 환경에 의해서,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바꿀 수 없는 것들이 분명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일들을 겪으며 깨우친 것은 그것 또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 순간에는 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다. 단지, 받아들이는 것밖에는.


살면서 힘들고 지친 나날이 계속되면 우리가 한가지 간과하게 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우리의 삶이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한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이기에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기에 현재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며 잘 가꿔나가는 것만이 확실하고 분명한, 유일한 해답이다.

주인공 노라도 결국은 자신이 원하는 삶이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지금의 삶으로 다시 시작하게 된다.


남들은 내가 참 열심히 산다고 하는데, 내가 봐도 열심히 사는 건 아니다.

단지, 최선을 다할 뿐이다. 항상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만 '후회'는 없을 테니깐.

후회없이 사는 이유는 단 하나다. 후회가 없어야, 떳떳하게 가슴 펴고 말할 수 있으니깐. 그래야 뒷말이 나오지 않을테니깐.


한 번밖에 주어진 인생, 그저 묵묵하게 나름의 최선을 다해 후회없이 만들어보자.

지금의 삶이 초라해 보이는 삶이면, 지금의 삶에서 열심히 살아 초라함에서 벗어나면 된다.

지금의 삶이 목표가 없는 삶이면, 지금의 삶에서부터 작은 목표 하나라도 세워 열심히 살아 점점 키우면 된다.


우울한 마음이 든다면, 혹은 그 마음을 넘어 우울증에 걸렸다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괜찮아, 정말 괜찮아. (종교는 없지만) 오롯이 너만을 위해 기도할게."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조언을 덧붙이자면 이렇다.

먼저, 정신건강의학과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불편한 마음을 가질 필요도 없다. 대부분의 병원은 무조건 예약제로 진행되며 현재 병명에 맞게 치료방향을 정해주니깐.

잘못된 관념으로 흔히들 알고있는 정신과로 이미지나 분위기를 치부해버리곤 하는데 말그대로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병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여기서 꼭 알아야 할 점이 있는데 무조건 '약'으로 해결하는 병원은 추천하고 싶지 않다.

정신건강의학과에 가게 되면 발생하는 상담/치료 비용등이 굉장히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긴 하다.

경제적인 부담 혹은 단순히 가는 것이 내키지 않는다면, '털어놓는 것'을 추천한다.

그 대상이 사람일 경우에는 들어주는 자세가 남다르고 남을 생각하는, 믿을 만한 사람이어야 한다.

나 또한 그런 대상이 있고 내가 그 대상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 대상이 되어줄 때가 많은 나는 남을 위해주고 경청하는 자세를 지니고 있으며 입이 무겁고 신뢰감이 높은 사람이다.

(예전같으면 오글거려 절대 쓰지 못할 말인데 지금은 내 성격을 강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그 대상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메니에르 증상이 조금이라도 호전되면 예전에 언급했던 고민상담에 대해 빠르게 추진해보겠다.

조금은 예민한 감정을 가진 분들은 사람이라는 대상 자체가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꼭 털어놓는 상대가 사람일 필요는 없다.

매일 덮고 자는 이불 혹은 배게여도 좋고 손때 묻은 인형 혹은 피아노 그리고 책이어도 좋다.

이 때, 인형, 피아노, 책 등과 같은 물건은 꼭 내 손때가 타는 것이 좋다.

이불이나 배게도 단순히 추천한 것이 아니다. 매일 덮고 잔다는 건 자신을 보호해주는 느낌 내지 안정감까지 줄 수 있기 때문에 그 대상을 정한 것이다.

꼭 자기계발서를 읽을 필요는 없다. 인문/철학서도 어렵게 느껴진다면 이 또한 피해야 한다.

삶의 깨달음을 주는 책이 가장 좋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와 같은 소설부터 여행, 인문 에세이까지 읽다보면 와닿는 느낌이 다른 책이 한 권쯤은 있을 것이다.


우울하고 불안한 나날이긴 해도 찾지 못해서일 뿐,

나를 위한 사람이,

나를 위한 인생이,

나를 위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마냥 처져있으면 계속 처질 뿐, 달라지는 것은 없다.

지금을 받아들이고, 일단 지금을 살아가면 된다.

나 또한 어쩔 수 없이 처해진 상황에 대해 받아들이며, 현재의 삶을 일궈나가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 현재의 삶에 순응하며 살지는말고 현재의 삶을 일궈나가며 살아가자!


난 덧대고 덧댄 글들을 빠르게 한 권의 책으로 묶고 싶다.

그렇게 한 권의 책이 되는 순간, 난 이렇게 외치지 않을까?

"드디어,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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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8-01 00: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하나님의 리뷰는 특별하게 다가 옵니다. 코로나가 장기간 이어지니(언제 종식될지 모르는) 점점 진공 속에 갇힌 세상에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희망을 품어 야 겠죠 하나님 8월 건강하게 ^ㅅ^

하나의책장 2021-08-14 02:24   좋아요 1 | URL
세자리에서 네자리로 바뀌었고, 아직도 천명대이니 정말 심각하죠ㅠ 언제쯤 코로나가 잠잠해질 수 있는건지ㅠ scott님도 항상 조심하셔요❣

새파랑 2021-08-01 07: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글도 그렇고 사진도 장인의 느낌이 들어요^^

하나의책장 2021-08-14 02:25   좋아요 1 | URL
앗, 장인이라니ㅎ 과찬이셔요👉👈 새파랑님,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홍한별 옮김 / 민음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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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로봇은 많은 일을 할 수 있지만 그들이 할 수 없는 단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인간과의 진정한 접촉을 경험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로봇에게 있어서 감정 공유는 불가한 것일까.

분명 둘로 나뉠 테다, 감정이 없는, 그저 입력한 데이터에 따라 움직이는 로봇 혹은 그를 초월해 인간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로봇으로.

『클라라와 태양』을 읽고나면 인간과 인공지능 로봇, 그 둘이 공유하는 감정을 진짜, 가짜로 구분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저자, 가즈오 이시구로는 1954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나 1960년 해양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영국으로 이주해 켄트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이스트앵글리아 대학에서 문예 창작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을 배경으로 전후의 상처와 현재를 절묘하게 엮어 낸 첫 소설 『창백한 언덕 풍경』(1982)으로 위니프레드 홀트비 기념상을 받았다.

일본인 예술가의 회고담을 그린 『부유하는 세상의 예술가』(1986)로 휘트브레드 상과 이탈리아 스칸노 상을 받고, 부커 상 후보에 올랐다.




"인간의 역사를 통틀어 무수한 사람들이 죽음을 불사하고 얻고자 했던 것. 무수한 사람들이 목숨을 걸 만큼 너무나도 소중한 것, 그것이 자유지요."


문득 책을 읽고나면 자연스레 영화 한 편이 떠오를 것이다.

바로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Bicentennial Man 바이센테니얼 맨」이다.

로봇 앤드류는 가사 로봇으로서 주인님 리처드와 그의 아내를 모신다.

때때로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기계답지 않은 이상한 질문들을 던져 때론 가족들을 곤란하게, 때론 웃음짓게 만드는 등 점차 그의 요상스런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이는 앤드류가 '감정'을 느끼게 되었음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이후 로봇 제조회사에서 그를 불량품으로 간주하고 연구용으로 분해하기 위해 리처드에게 끊임없이 반환을 요구하지만, 리처드는 오히려 앤드류를 보호할 뿐만 아니라 계좌를 만들어 앤드류가 작품을 팔아 얻는 수익을 적립할 수 있게 해준다.

한편, 앤드류는 작은 아가씨에게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게 되었는데 리처드의 죽음으로 인해 앤드류는 잠시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것이 긴 여행이 될 줄은 모르고.

그렇게 길고 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지만 작은 아가씨는 어느새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그녀를 쏙 빼닮은 손녀 포샤를 만나자마자 다시금 '사랑'에 빠져 앤드류는 수술대에 오르게 된다. 지금의 모습이 아닌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기 위해.

"기계로서 영원히 사느니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죽고 싶습니다."



인공지능 로봇에게 마음이 있고, 그 마음이 인간을 위해 움직인다면?


창백한 얼굴, 마른 몸 그리고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미묘하게 다른 걸음걸이, 그것이 클라라가 처음 마주한 조시의 모습이었다.

몸이 아픈 조시는 일상 속 평범함을 누리지 못하는 한 소년이다. 그러다 에이에프로 불리는 인공지능 로봇인 클라라를 만나게 된다.

클라라는 다른 로봇들과 달리 에너지원을 태양광 에너지로 사용한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관찰력 뿐만 아니라 공감능력까지 뛰어나 다들 클라라를 조금은 특별하게 생각한다.


"가끔, 이런 특별한 순간에 사람은 행복과 아픔을 동시에 느껴. 클라라, 이 모든 걸 주의 깊게 관찰하다니 장하다."

매니저가 가고 난 다음에 로사가 말했다. "정말 이상하다. 도대체 무슨 뜻으로 한 말일까?"

"별 얘기 아니야 로사. 바깥세상 이야기를 한 거였어."

어떻게보면 입력값에 움직이는 깡통에 불과하지만 클라라는 인간이 느끼는 감정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한편, 조시의 집으로 가게 된 클라라는 인간이 느끼는 감정선에 반응할 수 있기에 모든 것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다.

로봇이 눈치를 본다고 할까나. 가정부 멜라니아에게도, 조시의 엄마에게도.

그렇게 클라라와 조시가 함께 하는 일상이 지속된다.


순탄하게 흐르는 일상은 그렇게 시간을 거슬러 강물 흐르듯이 흐른다.

즉, 약했던 조시의 몸이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그런 조시의 모습을 보며 클라라는 자신이 햇빛으로 에너지를 충당하는 것처럼 조시에게도 '햇빛'을 주고 싶어한다.

거지 아저씨에게 그랬던 것처럼 조시에게도 해의 자양분은 효과적이었다.

조시는 햇빛을 통해 튼튼해졌고 이내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라게 된다.

클라라와 조시, 그 둘은 앞으로도 함께 할 수 있을까?



클라라, 조시, 릭 그리고 태양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조시에게 가족보다 클라라가 더 특별했을지도 모른다고.

물론 클라라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일부를 포기하면서까지 조시를 지켜내려고 했으니깐.

앞서, 내가 클라라를 깡통으로 비유했는데 감정이 없는 빈껍데기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일반적인 로봇에 빗대어 사용한 단어였다.

허나 클라라는 어쩌면 인간보다 더 세심하고 배려있었을지도 모른다.

감정을 어루만지는 클라라의 모습과는 달리, 후반부로 넘어갈수록 인간들의 비인간적인 행동을 보고 있으면, 어쩌면 그 일부 인간들이야말로 감정 없는 깡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야기의 끝무렵에 클라라와 릭의 대화가 나온다.

"기억나니, 클라라." 릭이 물었다. "오전 내내 날씨가 정말 이상하다가 조시 방에 햇빛이 똑바로 들어온 날?"

"그럼요. 그날 일은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

"요새도 가끔생각해. 꼭 조시가 그때부터 좋아진 것처럼 보였어. 착각일 수도 있지만. 그런데 돌아보며 마치 그랬던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

"무슨 얘기 하는지 알겠어. 그날, 두 번째로 헛간에 갔던 날 네가 한 말 기억나. 가기 전에 엄청 진지해져서는 우리 사랑이 진짜냐고 물었지. 나하고 조시가. 그리고 내가 진짜라고 대답했던 것 같아. 진짜고 영원하다고. 그래서 그것 때문에 걱정하는 거지."

……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궁금해요."

"그러니까 내 말은, 조시와 내가 각자 세상에 나가서 서로 안 만나고 산다 해도 어떤 부분은,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늘 같이 있을 거라는 거야. 조시는 어떨지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세상에 나가면 항상 꼭 조시 같은 누구를 찾으려고 할거야. 그러니까 절대로 속임수가 아니었어. 거기에서 네가 누구랑 거래를 했는지는 몰겠지만 그 사람들도 내 마음속, 조시 마음속을 들여다본다면 네가 속이려고 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겠지."

책을 읽을 때, 클라라와 조시뿐만 아니라 릭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초점을 맞추며 읽어보는 것이 좋다.

(스포일러가 될까 생략하겠지만) 초반부터 등장하는 릭이라는 인물이 무언가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어쩌면, 클라라는 온전히 릭의 입장에서 이해해보려고 했던 게 아닐까.

각 인물들이 보이는 그 사랑 또한 어쩌면 같은 맥락이지 않았을까.


사람보다 더 사람같은 AI의 등장으로 모두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게 요즘인데, 즉, 로봇과 함께하는 일상이 먼 얘기는 아닐 것이다.

좋다, 나쁘다로 단정지을 순 없다. 편해질 순 있겠지만 그로 인해 손해보는 것은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니깐 말이다.

일전에 썼던 리뷰를 참고하자면, 로봇과 함께한다는 것의 일차원적인 현실적인 문제는 바로 이런 것이다.

로봇과 일자리 전쟁, 『로봇 시대 일자리의 미래』 ▶ https://blog.naver.com/shn2213/222396914512 ]

영화 「아이 로봇」을 보면 각 개인마다 로봇과 함께하는 일상을 보여준다.

무거운 짐을 대신 들어주고 집안일을 도와주고 나아가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까지 말이다.

잠시 영화 속 이야기를 빌리자면, 주인공은 한 사건으로 인해 로봇을 싫어한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 주인공이 탔던 차와 옆차가 함께 강물로 빠지게 된다.

지나가던 로봇이 소생가능성을 빠르게 판단하여 주인공을 구하려는 찰나, 주인공은 옆차에 타고 있는 소녀를 구하라고 외쳤지만 이미 판단이 내려진 로봇은 주인공만 억지로 끌고 올라오게 된다.

주인공에게 로봇은 값으로 결과를 내려 판단하는 깡통에 불과했다.

그러다 메인 컴퓨터의 '각성'으로 인해 국방력까지 지배되며 로봇은 이내 인간들을 지배하려고까지 한다.

현실적으로 부딪힐 수 있는 문제들이 고스란히 잘 드러나 책과 비교하기에도 좋다.

아무튼, 극중 주인공은 감정을 공유하는 로봇, 써니의 등장으로 로봇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된다.

클라라가 조시에게 보여주는 행동처럼, 영화에서 보는 써니의 모습은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클라라와 태양』을 읽고나면 로봇이 우리(인간)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에 대해 초점이 맞춰진 것 같이 생각하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고나면, 결국은 감정, 도덕성 등 인간의 내면을 다시금 바라볼 수 있게끔 한 책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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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8-06 15: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하나님 이달의 당선작 추카 합니다!!

클라라가 8월의 빛나는 태양을 선물로 주쉼 ^ㅅ^

하나의책장 2021-08-14 09:32   좋아요 1 | URL
오, 정말요!ㅎ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1-08-06 16: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하나의책장 2021-08-14 09:32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1-08-06 16: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리뷰와 사진의 달인이신 하나님 축하드려요 🎉

하나의책장 2021-08-14 09:34   좋아요 2 | URL
매번 크게 칭찬해주시는 새파랑님ㅎㅎ 새파랑님 따라가려면 멀었지요😳

초딩 2021-08-06 18: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하나의 책장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하나의책장 2021-08-14 09:3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초딩님도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서니데이 2021-08-06 18:5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하나의책장 2021-08-14 09:35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ㅎ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1-08-14 08: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인간이 많은 도구를 만들었지만, 그 도구들이 인간의 삶을 위협한다는 인식은 거의 없었던 반면, ‘생각을 하는 도구‘에 대해서는 경계심이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생각 = 인간‘이라는 우리의 상식이 도전받는 요즘, ‘인간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진지하게 답을 생각해야 할 때라 여겨집니다. 하나의 책장님의 <클라라와 태양> 리뷰를 읽다 보니, 이 책 또한 성찰의 한 길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하나의책장 2021-08-14 09:51   좋아요 2 | URL
제가 생각했던 것들이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정리되다니!ㅎ 겨울호랑이님께 제가 배울 게 많네요😊 맞습니다. 사실 책에서 다루는 주제를 포함해 이미 우리의 상식에 도전받는 경우가  많죠. 이미 그 경계선을 넘은 경우, 우리는 매번 상식 밖의 결과들을 마주하게 되고요. 이미 이전부터 그 물음에 대해 우리가 생각해봤어야 했는데 간과한 부분도 없지 않았나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제라도 겨울호랑이님 말처럼 인간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 꼭 생각해봐야 할 때인 것 같아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되면 안 되니깐요.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 종말론적 환경주의는 어떻게 지구를 망치는가
마이클 셸런버거 지음, 노정태 옮김 / 부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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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책과 마주하기 전까지, 평소 알고 있는 상식들이 환경을 보호할 수 있는 한 걸음, 한 걸음이라 생각했다.

허나 책을 펼쳐들고 나서 무심코 간과했던 부분들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기상이변으로 전세계가 숨죽여있는 지금, SOS를 보내고 있는 지구를 위해 '나'가,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해야할 지 깊게 생각해봐야 할 때이다.


저자, 마이클 셸런버거는 환경 연구와 정책 단체 '환경진보'의 설립자 겸 대표다. 환경 연구소 브레이크스루연구소의 공동 설립자 겸 대표로 MIT의 퓨처 오브 뉴클리어 에너지 태스크 포스의 고문을 역임했다.

"환경 휴머니즘 운동의 대제사장"으로 불리는 세계적인 환경, 에너지, 안전 전문가로 2008년 《타임》의 '환경 영웅들'에 선정되고 '그린북어워드'를 수상했다.

30년 넘게 기후, 환경, 사회 정의 운동가로 활동하면서 1990년대에 캘리포니아의 미국삼나무 원시림 살리기 운동과 나이키의 아시아 공장 환경 개선 운동을 펼쳐 성공시켰다.

2000년대에는 청정 에너지 전환 운동인 '뉴 아폴로 프로젝트'를 주도해 대규모 공공 투자를 이끌어 내고, 오늘날 전 세계적 화두인 ‘그린 뉴딜’ 정책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일조했다.

2019년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의 차기 보고서 전문 검토자로 초빙되었으며, 2020년에는 미국 하원 과학우주기술위원회에 출석해 기후 변화에 관해 증언했으며 미국, 일본, 타이완, 한국, 필리핀, 오스트레일리아, 영국, 네덜란드, 벨기에 등 전 세계 정책 결정자들에게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우리나라같지가 않다


봄, 여름, 가을, 겨울 - 4계절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우리나라는 각 계절을 통해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것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나라가 우리나라같지가 않다.

평소같으면 벌써 왔어야 할 장마가 왔다간 지도 모르겠고 기록적인 폭염만 지속되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폭염 경보 문자가 올 정도이니, 이는 목숨을 위협할 정도의 폭염이나 다름없다.

또한 동남아에서나 볼 수 있는 국지성 호우가 우리나라에서 산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비단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현재, 서유럽 지역은 홍수와 산불이 끊이지 않고 있다.

수도꼭지를 콸 콸 틀어놓은 것 마냥, 벨기에와 영국 등은 집중 호우로 인해 거리에는 자동차가 둥둥 떠다니고 산사태가 크게 일어났으며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은 대형 산불이 일어나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심지어 중국에서는 대규모의 모래폭풍이 발생했다고 하니 우리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칠까 겁이 난다.

이렇듯, 이례적인 기상이변을 두고 전세계에서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

"지금 지구가 많이 아프다! 환경을 지켜야 한다!"



플라스틱 탓은 이제 그만하자


"플라스틱 빨대 타령만 하다가는 진짜 해결해야 할 문제를 놓친다."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면서 외식 대신 포장, 배달량이 늘자 플라스틱 사용량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었고 그 심각성이 대두되자 모두가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여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하기 시작했다.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모두가 동참하기 시작했다.

일반 봉투를 종이 봉투로 바꾸는 등 친환경적인 요소로 하나하나씩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허나 이것은 일차원적인 생각에 불과했다. 우리가 간과한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예컨대, 스타벅스에서 환경보호 동참을 이유로 플라스틱빨대 대신 종이빨대로 전면교체하게 된다.

당연히 우리 또한 이를 환경보호의 일환으로 생각했는데, 저자는 대기 오염 관점에서 꼭 좋은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플라스틱빨대 대신에 종이빨대로, 비닐봉투 대신에 종이봉투로 바꾸는 것은 일차원적으로 보면 환경보호의 일환으로 생각될 수 있으나, 종이봉투 생산 시에는 비닐봉투보다 탄소 배출량이 더 많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종이봉투를 제대로 사용하려면 평균 44회 이상은 재사용해야 하는데 우리는 많아야 서너번 사용하고 버리게 된다.

즉, 지구 환경에서 문제시되는 것이 탄소 배출량인데, 이것만 봐도 꼭 종이봉투가 이롭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덧붙여, 재생 가능한 재료로 만들어지는 바이오 플라스틱도 지구 환경에 많은 도움을 준다고 확답할 순 없다.

화석 연료 기반 플라스틱보다 빠르게 생분해된다 해도 재사용이 어렵고 재활용 과정이 생각보다 매우 까다롭기 때문이다.

예로서, 사탕수수 바이오 플라스틱은 분해과정에서 플라스틱보다 더 많은 메탄올을 배출하고 더 많은 대기오염 물질을 발생시킨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지구 환경보호에 대해 겉핥기식으로만 알고 있는 것일까?



당신이 안다고 믿는 환경주의는 과연 옳은 것인가


간과한 부분들도 있긴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할 수 있는 작은 부분부터 실천하고 있는 지금은,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최선이기 때문이다.



힘 있는 자들이 가장 좋은 해결책에 반대한다


부제만 봐도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의외로 이렇게 생각하는 이들도 더러 있다.

지구가 멸망하게 생겼는데, 모두가 한마음으로 환경보호에 동참하면 되는 것 아닌가?

조금 양보할 부분은 양보하는 게 뭐가 그리 어려운 것인가?


2015년 12월, 지구 온도가 더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온실가스 배출량을 단계적으로 감축하자는 취지의 파리기후변화협약이 채택되었다.

당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주도로 체결되었었는데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자마자 탈퇴했었다. 현재는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즉시 복귀하였다.

자신의 부와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권력층에 속한 이들은 무슨 짓이든 한다.

환경 보호의 가장 좋은 해결책은 그들에게 '득'이 될 것이 없기에 당연히 반대할 수밖에 없다.

영화 「해피피트」만 봐도 그렇다.

(짤막하게 나오는 부분이지만) 주인공 멈블에게 위치추적기를 달아 사람들은 펭귄 무리를 발견하게 되었고 펭귄들은 '춤'으로 메시지를 전한다.

배고프다고, 물고기가 없다고, 우리 좀 도와달라고.

펭귄들의 춤사위를 영상으로 본 사람들은 이를 신기해하면서도 펭귄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인다.

무리가 나뉜다. 펭귄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 그렇게 된다면 실업율이 급증하게 될 거라는 목소리, 두 목소리는 첨예하게 대립하게 된다.

비슷한 맥락으로, 미국의 총기 소유 또한 예시로 들 수 있겠다.

총기 소유가 자유로운 미국에서는 끊임없이 들리는 것이 바로 총기 사고이다.

어른뿐만 아니라 아이까지 ,희생되니 새로운 정권이 출범될때면 한번씩 총기소유에 대해 말이 나온다.

그렇게 말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은 총기를 소유하지 못하게 하거나 제한하는 법안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왜일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힘 있는 자들'이 자신의 권력과 부를 지키기 위해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새로운 한 주를 맞이하기 전, 전주부터 어떤 책을 읽을 지 계획을 세워놓는다.

각 서점에서 오는 인문레터, 이벤트성 메일들도 거의 챙겨보는 편인데, 마침 환경과 관련된 논문 한 편을 읽고선 더 깊게 파헤치고 싶어 관련 다큐를 찾아보고 있었던 중에 우연히 부제를 보고선 홀린듯이 구입해 곧장 읽게 되었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기상이변을 우리가 모르쇠로 일관하게 되면 이는 분명 '후회'로 남게 될 것이다.

이전부터 남극과 북극의 빙하들이 녹기 시작했고 이제는 얼음보단 물 찾는 게 쉬울 정도로 심각해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사람이 원인인데, 펭귄과 북극곰은 자신의 거처마저 위협받고 있는 셈이다.

혹시 이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지구가 스스로 구름을 만들고 있다!"

온난화 현상이 지속되자, 지구가 이를 스스로 막아보기 위해 구름을 만드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구는 지구가 품고있는 생명체를 지키기 위해 이렇듯 노력하는데 우리가 이래서야 되겠는가.

지구가 차츰 병이 들어가면서 보이는 병세에 우리는 나중 일이라 생각하며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모두가 환경에 관심은 기울인다 할지라도 환경보호에 대해 크게 신경쓰고 있지 않다.

지금이 아닌 후대에 나타날 것이라 생각하며 말이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환경이변은 결코 넘어갈 일이 아니다.

이례적인 기후변화를 보며, 부끄럽지만 이제서야 환경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는데 논문과 책을 읽고 관련 다큐를 보며 많이 반성했다. 너무 눈 감고 있었던 게 아닌가싶어 많이 부끄러웠다.

책을 통해 환경과 관련되어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 좀 더 뚜렷하게 시각이 트여진 느낌이다.


간과한 부분들도 있긴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할 수 있는 작은 부분부터 실천하고 있는 지금은,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최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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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떠난 뒤 맑음 - 하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7월
평점 :
절판





『하나, 책과 마주하다』


온몸에서 솟구치는 기쁨이 그대로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레이나는 말했다. 둘만의 여행이란 조금 '굉장한 일'이다. 그렇지 않을까.

"우리, 어디든 갈 수 있는 거지?"


저자, 에쿠니 가오리는 청아한 문체와 세련된 감성 화법으로 사랑받는 작가이다. 1989년 『409 래드클리프』로 페미나상을 수상했고, 동화부터 소설, 에세이까지 폭넓은 집필 활동을 해나가면서 참신한 감각과 세련미를 겸비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지도를 봐, 그 애들이 어디에 있었는지 알고 싶어서, 엽서가 도착할 때마다 말야. 처음엔 아무튼 돌아와 주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있지, 좀 더 멀리까지 가렴, 하는 마음이 들어 버려서, 나 스스로도 깜짝 놀랐어."


누구든 한 번쯤을 일탈을 꿈꾼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일탈은 나쁜 방향으로 빠진다기보단 '집'이란 익숙한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라 생각해주면 되겠다.)

스스로 생각해봐도, 나는 참 재미없게 살아왔다.

반복되는 루틴 속에서의 생활이 당연하다 생각했는데, 아마 환경때문에 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마음 속에는 항상 품었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여기서 당장 떠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너무 순응하는 삶만 살아오다 보니 '나'를 위한 선택이 어느새 '남'을 위한 선택이 되어버려 주체성이 사라지고 있음을 대학생이 되고난 후에야 깨달았으니깐.


외출 혹은 여행의 일탈에도 분명 '용기'가 필요하다.

'그거, 그냥 떠나면 되는 거 아니야?'

'그냥, 갔다오면 되잖아?'

말이 쉬울 뿐, 여러 요건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느새 용기가 필수조건이 되어버린다.

그 용기를 가지고 여행이란 일탈을 택한 이들이 있으니 바로 『집 떠난 뒤 맑음』 속 레이나와 이츠카가 되겠다.


뉴욕에서 살고 있는 14살의 레이나와 17살의 이츠카는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은 채 편지 한 통만 달랑 남겨놓고 미국을 보는 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대학생도 아니고 아직 미성년자인 아이 둘이서 말이다.


이츠카짱이랑 여행을 떠납니다. 가출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전화도 하고 편지도 쓸게요.

여행이 끝나면 돌아올 거예요. 러브 Love. 레이나.


앞서, 편지 한 통을 남기고 떠났던 레이나와 이츠카!

그러던 아이들에게 위기가 닥쳤다.

"No."

"No?"

여행지의 '믿음'이었던 카드가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아이들이 걱정되어 부모들은 결국 그들이 쓰는 카드를 정지시키고 만 것이었다.


위기에도 결국 구원의 손길은 있는 것일까?

여행하던 중에 아이들이 패터슨 부인이라는 사람을 도와준 때가 있었는데 패터슨 부인의 손녀인 헤일리가 그들에게 도움을 준다.

그렇게 헤일리의 도움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이츠카는 아르바이트를 통해 독립성을 키워나가는 모습을 보인다.



사실 여기서 또 주목해야 할 것이 부모님들의 태도이다.

레이나의 아빠는 순탄했던 일상에 금이 간 것마냥 불같이 화를 내는데, 이 때 레이나의 엄마가 아빠의 태도를 보며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반면에, 이츠카의 부모님은 레이나의 부모님과는 달랐다.

아이들이 돌아와서도 레이나의 부모님은 '레이나의 여행'을 탓하며 투닥거리는데, 그들의 갈등은 레이나에게 있는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부분에서 부모의 양육태도가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도 우리는 엿볼 수 있다.

아이들의 에피소드 속에서 나 또한 많은 것을 느꼈지만 특히나 부모님의 양육태도 또한 나에게 크게 와닿았던 것 같다.

엄마는 나를 전적으로 지지하고 이해해주는 편인데 아빠가 그렇지 못해서, 엄마와는 관계형성이 잘 되어있지만 아빠와는 점점 멀어져가는 기분이다.


나도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잠시 공부하러 갔다온 적이 있다.

인천공항 톨게이트에 들어간 순간부터 LA를 경유하고 Salt Lake City까지는 온전히 '나' 혼자였다.

거의 한 나절을 홀로 해결해야 했는데 그 과정 속에서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다. 레이나와 이츠카처럼.

아마 나홀로 여행 계획을 세우게 되면 레이나와 이츠카와 같은 경험을 하지 않을까?

미국을 '보는' 여행을 계획하여 많은 에피소드를 쌓았던 레이나와 이츠카지만, 오히려 내가 그들 덕분에 간접적으로나마 미국으로 여행다녀온 기분이 드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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