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여름

저자 김신회

제철소

2020-05-29

에세이 > 한국에세이




여름은 결국 열 가지 풍경보다 한 가지 뜨거움으로 기억되는 시간이다.




■ 책 속 밑줄


좋아하는 게 하나 생기면 세계는 그 하나보다 더 넓어진다. 그저 덜 휘청거리며 살면 다행이라고 위로하면서 지내다 불현듯 어떤 것에 마음이 가면, 그때부터 일상에 밀도가 생긴다. 납작했던 하루가 포동포동 말랑말랑 입체감을 띤다. 초당옥수수 덕분에 여름을 향한 내 마음의 농도는 더 짙어졌다.



여름옷을 입을 때마다 몸에 대해 생각한다. 마음에 드는 옷 앞에서 살까 말까 망설이거나 사놓고도 못 입던 옷을 발견할 때 ‘입고 싶다’보다 ‘입어도 될까?’가 먼저 떠오른다. 옷은 예쁜데 내가 입어도 예쁠까. 팔뚝살에 탄력도 없고, 허벅지도 두껍고, 배까지 나왔잖아. 이런 식으로 내 몸을 검열하다 보면 그 옷은 나를 위한 옷이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나 같은 사람이 이런 옷을 입으면 다들 이상하게 쳐다볼 거야, 정작 입고도 불편할 거야…. 그렇게 입고 싶은 옷은 저 멀리 치워두고, 입어도 되는 옷만 고르게 된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여름마다 수영장 근처에 있는 중국집에서 정모를 하고 싶다. 여름이 되면 수영하고 싶지만 수영을 못 하고, 그러면서도 결코 수영을 배우지 않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모임 이름은 ‘수수수’. 일종의 자조 모임인데 언젠가는 수영할 수 있게끔 서로를 응원하는 모임이 아니라,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수영을 배우지 않게끔 서로의 발목을 잡는 모임이다.



좋아하는 계절을 닮은 사람과 좋아하는 계절을 함께 보낼 수 있다는 게 좋았다. 그동안 혼자로도 충분했던 여름의 순간들이 한 사람으로 인해 다른 색깔을 덧입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여름이 끝나는 것처럼 이 사랑도 끝이 날 거야. 난 다시 혼자가 되고 싶어 할 거야.



그동안 내가 식물에 쏟은 정성은 누군가에게 받고 싶은 관심이나 애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은퇴를 하거나 자식들을 집에서 떠나보낸 어르신들이 그렇게 매일 아기 돌보듯 식물을 가꾸는 걸까. 우리 아빠도 그러시는데. 세상을 살아가는 데 ‘나는 이 세상에 필요한 존재’라는 믿음은 꼭 필요하다.



그 시절 내가 그리워한 건 여름이 아니라 여름의 나였다. 여름만 되면 스스로를 마음에 들어 하는 나, 왠지 모르게 근사해 보이는 나, 온갖 고민과 불안 따위는 저 멀리 치워두고 그 계절만큼 반짝이고 생기 넘치는 나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마음이 겨울인 사람은 여름 나라에서도 겨울을 산다.



돈을 벌게 되고 나서부터 여름이 되면 집착하듯 여행을 떠났다. 홀쭉한 통장 잔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같은 건 문제 되지 않았다. 어렸을 때 하지 못한 경험을 지금이라도 스스로 선물하고 싶었다. ‘이제는 여행 가는 데 부모님은 필요 없어. 나는 어디든 갈 수 있어.’ 그런 생각을 하면서 뻔질나게 나 자신을 여행시켰다. 모든 시간이 즐거웠을 리 없다. 아등바등 무리해야 떠날 수 있는 여행이었으니까. 하지만 몸소 만든 시간을 통해 텅 비어 있던 내 안의 어떤 구멍을 채워나갔다.



지극히 사사로운 여름 이야기를 통해 말하고 싶은 건 별게 아니다. 여름을 즐기는 데 필요한 건 조건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 순수한 기대라는 것. 내 흑역사들이 여름을 진심으로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찬물을 끼얹게 될지 몰라도 이렇게 소심하게나마 여름을 아끼는 사람도 있다는 것. 근사한 추억 같은 거 없어도 여름을 사랑할 수 있다.



바닷물은 말보다 서늘하고, 피부에 닿는 햇살만큼이나 직설적이다.



■ 끌림의 이유


요즘 따라 하루하루 마음의 온도를 가늠하게 됩니다.

여름이 되면 늘 누군가 혹은 어떤 기억이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들어 잔잔한 물결을 만듭니다.

『아무튼, 여름』은 여름의 일상과 감정을 담백하고 섬세하게 포착한 글들입니다.

무심한 풍경, 소소한 행동 속에서도 작가 특유의 유머와 따뜻함이 묻어납니다.

읽다 보면 여름에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습함과 머리카락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의 감촉이 생생하게 다가와 계절이 주는 감각과 마음의 온도를 고스란히 전해줍니다.

책장을 덮고 나서도 한참을 여운 속에 기대게 되는 이유는 아마 제 마음이 여름에 물드는 순간들이 포착되어서 그런게 아닐까 싶습니다.



■ 간밤의 단상


김신회 작가의 전작인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를 좋아해서 선물도 여러 번 했던 제게 『아무튼, 여름』 또한 익숙하게 다가온 책이었습니다.

이른 새벽, 책장을 덮으려고 하니 방 안에 남은 여름의 기운이 문득 피부에 닿았습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여름날의 숨소리처럼 조용히 마음에 앉습니다.

곧 시작되는 장마, 긴 장마 끝에 다가올 뜨거운 한낮의 햇살 그리고 지난 여름의 기억들.

책을 읽고 나니 작고 따스한 여름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펼쳐보게 됩니다.


여름은 설렘과 불안이 공존하는 계절입니다.

햇살이 스며드는 오후와 그늘에 숨어 있는 무더위처럼 말이죠.

우리는 각자의 온도에 물들어 있고 긴 장마 끝에야 한여름의 태양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게 됩니다.

지금의 나와는 다른, 조금 더 따뜻해질 내일의 나를 떠올려 봅니다.



■ 건넴의 대상


소소한 일상이 담긴 감성어린 에세이를 마주하고 싶은 분

여름이 물씬 묻어난 책을 추천받고 싶은 분




이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문장이나 순간이 있다면 공감(♥)과 댓글로 나눠주세요.

당신의 감상이 더해지면 이 공간은 조금 더 깊고 따뜻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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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의 책 DIGEST

6월 셋째 주, 책이라는 거울 앞에서 나를 다시 들여다보는 시간




이번 주는 일상의 균열 속에서 나를 세우는 법'에 대해 많은 고민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작고 큰 질문이 책 속에서 끊임없이 떠올랐고 그 덕분에 다시금 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바쁜 일상 속, 고요한 질문을 던지게 하는 책들 덕분에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을 수 있었습니다.





■ 이번 주 〈간밤에 읽은 책〉 돌아보기


월요일 | 『아비투스』 - 도리스 메르틴

당신은 어떤 습관을 통해 지금을 지탱하고 있나요?

저자는 습관이 만들어내는 삶의 흔적에 주목합니다.

일상에서의 작은 습관들이 결국 삶의 방향을 만든다는 것이지요.

그 이야기에 제 자신을 조금씩 단단하게 세우고 있다는 확신이 들어 위로를 받기도 했습니다.




화요일 | 『백설 공주 – 기묘한 이야기』 - 그림 형제

단순한 동화라 생각했다면 오산입니다.

그림 형제의 원작은 어린이용이 아닌 욕망과 배신, 권력에 대한 묵직한 묘사로 가득합니다.

잔혹하게만 보이는 가족 간의 권력 다툼은 사실 현대인의 고립과 경쟁을 의미합니다.

그 욕망과 두려움을 마주하다 보니 이 동화는 곧 인간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창이었음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수요일 |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 박서영(무루)

비혼, 채식, 고양이 집사 그리고 그림책을 읽는 삶.

모두 흔치 않은 삶의 형태지만 저자는 그 속에서 자유로운 존재의 방식을 조용히 찾아냅니다.

그녀만의 궤도를 스스로 긋는 용기를 보고선 이상함이야말로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방식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목요일 | 『빨강 머리 앤』 - 루시 모드 몽고메리

세상에 없던 색을 선택하는 앤의 태도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특히 빨강 머리는 자신만의 색을 포기하지 않는 앤의 태도와 독립심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어른이 되어도, 앤은 여전히 배울 점이 많은 고전 캐릭터 중 하나입니다.




금요일 | 『돈키호테』 - 미겔 데 세르반떼스

당신의 삶에도 작은 이상이 있나요?

『돈키호테』는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당신이 무엇을 믿고 있는지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환상을 좇는 어리석음으로 인해 미쳐보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는 진지한 믿음의 힘이 담겨 있습니다.




■ 이번 주 〈모든 도서 리뷰〉 돌아보기


화요일 |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 메리 앤 섀퍼, 애니 배로스

편지 한 통, 책 한 권이 사람을 이어준다는 믿음이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

말과 문장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가장 오래된 회복의 도구입니다.

전쟁의 찢긴 상처 속에서도 함께 웃고 함께 운 그들의 이야기는 편지와 책이 줄 수 있는 회복의 힘을 생생히 보여줬습니다.




목요일 | 『사랑을 담아』 - 에이미 블룸

존엄은 고통이 아닌 사랑의 연장선이었습니다.

존엄사가 인간의 존엄과 사랑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는지 조용히 전하는 여정에 깊이 공감하였습니다.

회복이 불가한 불치의 경우, 자신의 마지막을 스스로 선택하는 행위는 결국 남은 이들에게도 사랑의 마지막을 담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 이번 주 〈함께 읽는 시집〉 돌아보기


수요일 | 『서시』 - 윤동주

윤동주의 다짐이 오늘 우리의 다짐으로도 들렸습니다.

죽는 날까지 부끄럽지 않기를, 모든 별과 생명에 대한 사랑을 품기를 노래합니다.

이 시는 자신을 지키고 타인을 사랑하려는 다짐이자 약속이기도 했습니다.




이번 주, 당신의 마음을 붙잡은 문장은 무엇이었나요?

책은 언제나 삶의 곁에 머물며 말을 겁니다.

다음 주에도, 한 줄의 문장이 따뜻한 하루의 등불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독서 여정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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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철학자

저자 우애령

하늘재

2023-11-15

에세이 > 한국에세이




행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내 일상 속 아주 작은 선택들 위에 쌓입니다.




■ 책 속 밑줄


우리 집 가장인 철학자가 어느 날 저녁 새끼 올 세 마리를 사 들고 들어왔다.

노란색과 검은색 털이 보스스하게 뒤섞인 채 눈도 잘 못 뜨는 오리 세 마리는, 검은 비닐 봉투에서 꺼내 놓자마자 있는 힘을 다해 이리저리 미끄러지고 넘어지며 달리기 시작했다. 오리들 관점에서 보자면 직립 보행하는 커다란 맹수의 소굴에 들어온 셈이니 이해할 만했다. 이제 자기들이 죽는지 사는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삶에 대해 그 정도의 최선을 보여 주는 태도는 나무랄 바가 없었다.



소비가 미덕인 이 사회에서 사람들이 지금처럼 많은 것을 소유하고 누린 적도 없지만,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외로워하며 미래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욕망이란 채워질수록 더 크고 강해져 실로 막강한 힘으로 우리의 삶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기 때문일 것이다.



철학자는 낡은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당진을, 사랑하는 여인의 앞뒤 고운 자태를 찍듯이 가기만 하면 다시 찍는다. 낡은 집을 그 앞에서 찍고 옆에서 찍고 앞산에 올라가서 찍고 뒷산에서 내려다보며 찍는다. 백일홍이 피었으니 찍고 벚꽃이 피었으니 찍고 자두꽃이 피었으니 찍는다. 눈이 오면 눈이 와서 찍고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찍는다.



철학은 머리가 아닌 손으로 삶 속에서 체득하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다면 직접 걸어보십시오.



■ 끌림의 이유


평범한 일상의 순간들을 철학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수업을 들은 것만 같았습니다.

바쁜 일상 속, 저자는 커피 한 잔을 음미하는 시간, 개들의 산책길에서 철학의 씨앗을 발견합니다.

무엇보다 철학자를 일상 속 인물로 형상화하였는데, 철학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에 닿아 있다는 섬세한 시각이 인상적이었습니다.



■ 간밤의 단상


이른 새벽, 책장을 덮고 나니 행복이라는 단어가 더는 추상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뭐랄까, 행복은 특별한 순간이 아닌 제 자신이 선택한 삶의 방식에서 시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제 무엇에 대해 감사했는지에 대한 질문이 저를 붙들었고 나만의 작은 선택이 하루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저자는 철학이란 결코 추상적이지 않으며 일상 속에서 실천하고 이해하고 삶을 더 깊게 만드는 태도라고 말합니다.

철학자는 남들과 조금 달라도 괜찮으며 그 다름이 오히려 삶을 풍성하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도시의 아파트와 시골의 농토를 오가며 보내는 소소한 일상이 철학의 언어와 만나 제게도 내 방식대로 살아가기의 용기를 북돋아주었습니다.

이른 아침, 원두를 갈아 내려마시는 아메리카노의 향조차 제게 질문을 던지듯 다가왔습니다.

저도 모르게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음미하게 되었고 그 질문은 제 하루에도 소소한 쉼과 깊이를 남겼습니다.



■ 건넴의 대상


일상의 순간 속에서 깨달음을 찾고 싶은 분

작은 선택 위에 나를 세우고 싶은 분

철학을 머리가 아닌 삶으로 체득해 보고 싶은 분




이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문장이나 순간이 있다면 공감(♥)과 댓글로 나눠주세요.

당신의 감상이 더해지면 이 공간은 조금 더 깊고 따뜻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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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살바도르 달리 에디션) 

저자 미겔 데 세르반떼스

문예출판사

2021-05-14

원제 : El Ingenioso Hidalgo Don Quijote de La Mancha (1605년)

소설 > 스페인/중남미소설

고전 > 서양고전문학 > 서양근대문학




그 누구도 멈춰 세우지 못할 우스꽝스럽고 위대한 질주가 여기 있다.




■ 책 속 밑줄


자네가 힘써야 할 것은 자네의 이야기책을 읽어가면서 우울한 독자는 웃고, 쾌활한 이는 더욱더 유쾌해지고, 단순한 이는 성내지 않고, 신중한 이는 그 독창성에 탄복하고, 점잖은 이는 업신여기지 못하고, 용의주도한 이는 그것을 읽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도록 하는 걸세.



아무튼 이제 우리 신사 양반의 정신은 완전히 이상해져서 이 세상의 어떤 미치광이도 시도하지 못했을 기이한 공상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는 자신의 명성을 높이고 나라에 봉사하기 위해서는 편력 기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모험을 찾아 무장하고 말에 올라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그가 읽은 편력 기사들의 수행을 본받아 잘못된 것을 죄다 고치면서 어떠한 위험 속에라도 몸을 던져 이를 극복함으로써 후세에 길이 남을 이름과 명예를 얻기로 결심했다.



자네는 나를 미쳤다고 비웃을지 모르지만, 내 마음속 진실은 나조차도 막을 수가 없네.



칭찬은 늘 덕행의 대가였으며 덕행을 베푼 이는 반드시 칭찬을 받지 않을 수 없지.

덕을 행하는 길은 좁디좁은 오솔길이며 악행의 길은 널찍하고 앞이 훤히 트인 대로라는 것도 알고 있네. 또 그 목적과 종말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 악덕으로 가는 길은 광활하고 앞이 훤히 트인 길이지만 죽음으로 끝나게 되고, 덕을 행하는 길은 비록 비좁고 힘들지만 삶으로 끝나게 되니, 끝나는 삶이 아니고 무한한 삶이란 거야.



신중함에서 나온 부드러움은 어떠한 신분이라도 피하기 어려운 그런 악의에 찬 험담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네. 산초, 자네의 혈통이 비천함을 자랑으로 생각하게나. 그리고 자네가 농사꾼 출신이라고 말하는 걸 부끄러워하지 말게나. 자네가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을 본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자네에게 창피를 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네. 오만한 죄인보다 덕망 높은 천인이 되는 것을 더 으스대게나. 낮은 집안에서 태어나 최고의 지위인 교황이나 황제 자리에 오른 사람도 부지기수라네.



공정이라는 것이 행해지거나 행해져야 할 때는 범죄자에게 법률의 준엄함을 지나치게 적용하려고 하지 말게나. 인정이 많은 재판관의 평판보다 준엄한 재판관의 평판이 더 나쁘게 소문이 나기 때문이네. 혹여나 재판에서 정의의 지팡이를 굽혀야 한다면, 그것은 선물의 무게가 아니라 자비심의 무게 때문이어야 한다네.



자유란 말일세, 산초,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귀중한 선물 중 하나라네. 대지 속에 파묻혀 있거나 바닷속에 은닉되어 있는 금은보화도 그 자유와는 필적할 수 없다네. 명예와 마찬가지로 자유를 위해서는 생명을 걸 수도 있고, 또 생명을 걸어야 한다네.



가장 큰 광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라네.



꿈을 꾸는 일은 부끄러운 게 아니야. 다만, 그 꿈을 향해 나아가지 않는 것이 진짜 수치일 뿐이지.



■ 끌림의 이유


『돈키호테』는 고전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다층적 세계를 품은 작품입니다.

말도 안 되는 환상에 사로잡힌 늙은 기사는 현실이라는 이름의 무력함에 맞서 싸우는 존재입니다.

그의 여행은 실패로 점철되지만 독자는 그 안에서 희망과 인간다움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특히 산초 판사와의 대화는 합리와 이상이 끊임없이 충돌하면서도 끝끝내 동행하는 관계의 힘을 보여줍니다.

이 둘의 여정은 각자의 믿음을 고수하면서도 서로를 존중하는 법을 배워가는 아주 독특한 인생 수업처럼 느껴집니다.



■ 간밤의 단상


어떤 책을 메인 이미지로 내세워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기본으로 출간된 책 외에 스페셜 에디션들을 소장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참고로 두 세트 모두 몇 년 전에 구매했던 책들입니다.)

열린책들에서 출간한 리커버 특별판 『돈키호테』는 푸른 색 표지 위에 금박이 되어 있고 책 두 권이 담겨진 박스까지 금색으로 되어 있어 고급스럽고 웅장한 맛이 있습니다.

문예출판사에서 출간한 『돈키호테』는 살바도르 달리 에디션으로 달리를 좋아하신다면 특별하게 느껴지실 겁니다.

『돈키호테』가 워낙 방대한 양을 자랑하다 보니 두 에디션 모두 2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러분께 꼭 권하고 싶은 고전 중 하나입니다. 꼭 읽어보세요.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스페인의 시골 지주인 알론소 키하노가 기사 소설에 빠져 스스로를 돈키호테라 믿으며 떠나는 기묘한 여정을 그린 소설입니다.

그는 낡은 갑옷을 걸치고 말 로시난테를 타고 하인 산초 판사를 데리고 세상의 부조리함에 맞선다고 믿으며 모험을 시작하죠.

모두가 그를 비웃고 미쳤다고 말하지만 그 속에는 오히려 순수한 정의감, 사랑, 열정이 담겨 있습니다.

결국 그는 현실과 환상 사이를 오가다 끝내 이성을 되찾고 조용히 생을 마주합니다.


어린 아이 때 읽었던 『돈키호테』는 그저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엉뚱한 기사 이야기로 기억되었지만, 어른이 되어 다시 읽은 『돈키호테』는 훨씬 더 깊고 낯선 감정이 밀려왔습니다.

그는 단순히 미친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차가운 현실에 단 한 사람이라도 맞서고자 한 진심의 화신처럼 느껴졌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의 말들은 유쾌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았고 그의 실패는 절망스럽지만 어딘지 모르게 고결했습니다.

사실 저는 스스로에게 '정신 차려야 해!'라는 말을 되뇌이며 채찍질하곤 하는데 돈키호테는 반대로 "지금 너는 무엇을 믿고 있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종종 스스로를 현명한 현실주의자라 여기며 살아가지만, 실상은 나답게 꿈꾸지도 못하며 살아가고 있고 웃을 용기조차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비현실적 이상과 우스꽝스러운 현실의 충돌 속에서 현실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여전히 유효하게 던지고 있습니다.



■ 건넴의 대상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방황하는 분

고전을 통해 현실을 새롭게 바라보고 싶은 분

꿈꾸는 용기를 내고 싶은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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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감상이 더해지면 이 공간은 조금 더 깊고 따뜻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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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20 15: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나의책장 2025-06-21 03:00   좋아요 0 | URL
예전에는 요리조리 분위기있게 찍어보려고 혼을 갈아넣어놨었는데.. 글 쓰는 것도 오래 걸리는데 사진찍는 것까지 신경쓰려니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몇 년 전부터 피아노 옆쪽에 남는 공간에다 책사진 찍는 배경을 아예 만들어놨었어요 ‘◡‘ 네, 백드롭 페인팅은 직접 그렸어요! 사부작사부작거리는 걸 좋아해서 생각날 때마다 잔뜩 그려놓고 있어요. 선물 다 보내고 지금은 딱 8점 있는데 핑크계열과 블루계열만 손에 잡혀서 번갈아가며 사용하게 되네요🩷🩵 생각난 김에 이번 주말에는 다른 색으로 칠해봐야겠어요☺️
 
사랑을 담아
에이미 블룸 지음, 신혜빈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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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담아

저자 에이미 블룸

문학동네

2023-07-10

에세이 > 외국에세이






■ 책 소개


사랑을 어떻게 발견하고 나누는지,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떤 회복과 용기를 주는지를 깊고 따뜻한 시선으로 담은 에세이입니다.

일상 속에서 흔히 지나치는 순간들을 사랑의 언어로 바꾸고 아주 작은 선택들이 우리 인생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섬세하게 기록하였습니다.

읽다 보면 자연스레 사랑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 문장으로 건네는 사유


나는 아무 이유 없이 삶을 중단하려는 게 아닙니다. 아직 나 자신으로 남아 있을 때 이 삶을 끝내고 싶을 뿐입니다. 인간으로서의 삶을 점점 더 잃어가기 전에.



지금 우리가 디그니타스를 찾아가지 않으면 아이들은 머지않아 그의 생이 다하는 날 슬픔과 안도를 동시에 느낄 테지만, 이 방식을 택하면 그저 슬퍼하기만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할아버지를 사랑 넘치고 재밌고 엉뚱하며 사탕을 잘 나눠주는 만만한 '하부지'로 기억하는 것이 브라이언과 내게는 몹시 중요하다. 아이들은 저마다 충분히 컸을 때 원한다면 이 책을, 그리고 할아버지가 각자에게 남긴 애정 담긴 작은 편지를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같이 이렇게 시작하는 편지를. 더 머물다 갈 수 있다면 좋겠구나. 아이들이 십대가 되면 우리의 거짓말에 화를 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괜찮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두 발로 설 수 있을 때 떠나고 싶어. 무릎 꿇고 살고 싶지는 않아."



"당신이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가장 큰 기적입니다."



우리는 죽음에 관해 좀처럼 얘기하지 않지만 죽음 없이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 책 속 메시지


사랑은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이 아닌 실천하는 연습입니다.

작은 말 한마디, 작은 친절 한 번이 결국 우리 삶을 변화시킬 수 있지요.

책을 읽고 나면 진짜 사랑의 본질은 나를 위한 사랑이 아닌 누군가의 곁에 따뜻하게 남는 마음의 자국임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외로움과 분리가 만연하는 시대에 사랑을 건네는 것은 삶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 하나의 감상


사랑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입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니 지난 날의 지나간 인연에게 감사와 위로를 전하는 작은 행동들이 행복의 실마리가 된다는 깨달음을 다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연인 뿐만 아니라 가족, 친구들에게도요.

사랑은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로도 누군가에게 충분하다는 위안과 자유가 마음 깊이 남았습니다.


존엄사는 인간의 생명권이 달려있기에 이해관계가 좁혀지지 않는 대표적인 문제 중 하나입니다.

치료 개선이 불가한, 회생 가능성이 없는 이들은 죽기 전까지 고통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삶뿐 아니라 죽음의 방식 또한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고통을 가진 분들에게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

앞서 말했지만 회복 가능성이 없는 질병, 극심한 고통 속에서 환자가 더 이상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을 경우 자율적인 선택을 보장하는 것이 존엄사의 핵심입니다.

사실 말기 환자나 신경퇴행성 질환 환자들은 신체적 고통뿐 아니라 심리적, 정서적 고통도 일반인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극심하다고 합니다.

즉, 존엄사는 통증을 최소화하고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이별을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품위 있는 죽음을 가능하게 하죠.

연명치료가 오히려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죄책감은 물론 경제적 고통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특히 존엄사는 가족이 마지막까지 함께 준비하고 작별할 수 있는 과정을 열어주기에 죽음 앞에서의 진짜 이별이 가능해지는 것이죠.

그저 모두가 아프지 말고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도 책장 정리중에 손에 잡혀 다시 읽어본 책입니다.

다시 읽어도 뭉클하고 눈물나는 감정은 언젠가 저 또한 이별을 겪어봐야 하는 인간이기 때문이겠죠.

막상 제 감상을 덧대고보니 지난번 리뷰와 비슷해 지난 포스팅을 첨부합니다.

잘 정리되어 있으니 참고해 주세요.

『사랑을 담아』 → https://blog.naver.com/hanainbook/223203191850



■ 건넴의 대상


외로움이나 상실감 속에서 사랑을 잃어버린 것만 같은 분

사랑이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 잊은 채 바쁘게만 살아가던 분

관계 속에서 작은 차이에 상처받고 돌아선 경험이 있는 분

진심 어린 말 한마디로 하루를 다정하게 열고 싶은 분




이 책을 읽고 마음이 따뜻해졌다면, 공감(♥)과 댓글로 함께 나눠주세요.

당신의 감상이 더해지면 이 공간은 작은 위로의 도서관이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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