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반짝이는 계절

저자 장류진

오리지널스

2025-02-19

에세이 > 여행에세이

여행 > 유럽여행 > 북유럽여행





2023년 7월 13일 오후 5시, 나는 새로 장만한 새하얀 캐리어를 끌고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인천공항 출국장에 들어서고 있었다.



내가 핀란드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두 편이나 쓴 이유는, 당연히 핀란드를 무척이나 좋아하기 때문이다. 아니, 그저 좋아한다는 말로는 조금 부족하다. 내게 있어 핀란드는 '완벽한 휴양지'라고 말해보고 싶다.

현실의 어려운 문제들로 지쳐 있을 때. 몸과 마음에 여유가 없을 때. 잔뜩 풀 죽어 있을 때. 누군가 내게 주어진 시간 외에 덤으로 일주일의 여가시간을 선물해주겠다고 한다면, 아무런 조건이나 제약 없이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비행기 티켓을 끊어주겠다고 한다면, 나는 분명 핀란드에 가겠다고 대답할 것이다. 다소 의아한 대답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휴양지'와 '핀란드'는 서로 잘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니까.



뾰족한 침엽수 위로 소복이 쌓인 새하얀 눈, 대낮에도 해가 뜨지 않는 하늘, 어슴푸레한 달빛만 은은하게 빛나는 극야의 풍경, 설산을 달리는 순록과 두툼하고 빨간 털모자를 쓴 산타 할아버지, 순백의 설원과 가파른 슬로프 위를 누비는 스키어들 같은 추운 북쪽 나라의 감각이 핀란드를 대표하는 이미지이고, 사실 그마저도 일상에서는 잘 떠올릴 일이 없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핀란드는 존재감이 미미한 나라다.



떨림의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한 편으로는 설레서, 또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어서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내년에 난생 처음으로 외국에 나가 살게 될지도 모르는데, 심지어 전 세계가 후보인데 그중 어느 대륙으로 갈지조차 짐작도 못한 채로 '배정확인' 버튼을 누르는 순간, 거의 랜덤으로 정해지는 상황인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영화 <카모메 식당>에서 주인공 미도리는 일본에서 핀란드에 갑자기 오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심적으로 힘든 일이 생겨 어디로든 떠나고 싶어졌고, 세계지도를 무작정 펼치고 손가락을 아무렇게나 짚었더니 그게 핀란드였다고 말이다.



함께 여행하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들을 끝도 없이 나열할 수 있었던 예진이와의 여행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가 하고 싶어 하고, 하기로 다짐했던 그 수많은 것들을 과연 다 하고 올 수 있을까? 우리가 오래도록 그리워했던 것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딱 열흘이었다.



얼마나 '소유'한 상태로 태어났는지에는 관계없이 이 세상에 나온 순간, 누구나 '기본'적인 것들은 '기본적으로'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 나는 이 '박스'들 역시 누구나 자연을 마땅히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만인의 권리’와 맥락을 같이 하는 것 같다고 이 숲길을 오르내릴 때마다 어렴풋이 생각했다. 뒤이어 이 숲을 나도 반년이나마 누릴 권리가 있다는 사실에 공연한 행복을 느끼곤 했다. 그건 마치 손바닥 위로 떨어지는 눈송이 같은 행복이었다. 살갗에 닿아 금방 녹아내릴 테지만 내려오는 동안만큼은 너무나 아름답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잡고 싶어지는 그런 눈송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무형의 작은 공동체가 어느 대륙이든, 어느 나라든, 마치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 비밀 요원들처럼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도서관’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기지 삼아 ‘헤쳐 모여’ 하고 있는 것 같아 괜히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어찌 됐든 나는 이 작지만 사라지지 않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갈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다시 한번 기쁘게 받아들였다.



오랜 친구는 마치 기억의 외장하드 같다. 분명 내게 일어났던 일이지만 자주 꺼내지 않아 그곳에 있었는지도 잊은 일들을 친구의 입에서 들을 때, 왜인지 부끄러우면서도 든든하다. 내가 잊어도 예진이가 알고 있겠구나. 나의 일부분을 이 친구가 지켜주고 있겠구나.



우리는 뒤돌아 우리가 걸어온 눈밭 위 발자국들을 바라보았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았고, 아마도 그래서 호수를 건너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지금이 아니면 바로 여기 이곳에, 이 드넓은 지구 위에서도 바로 이 특정한 위치에 존재할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저곳은 녹아버리고 말 거라는 사실을. 그래서 지금만이 이곳에 이렇게 발을 디디고 서 있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는 사실을.



그때 그 돗자리에 누워 잠들기 전, 그 시절의 나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내 인생의 가장 빛나고 좋은 시절, 내 인생의 황금기가 끝나가고 있다고. 앞으로는, 이토록 소소하지만 행복하고 여유로운 삶을 기대할 수는 없을 거라고. 나는 그때의 내게 말하고 싶어졌다. 네 인생의 황금기는 지금이 아니야. 훨씬 더 좋은 날이 많이 펼쳐질 거야. 15년 뒤에는 네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게 반짝이는 장면들을 품은 어른이 되어 있을 거야.



여행지로서의 도시를 친구에 비유한다면, 파리, 런던, 뉴욕은 누구나 좋아해 마지않는 친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봐도 화려하고, 아름답고, 오로지 자신만이 뿜어낼 수 있는 고유한 분위기까지 가지고 있어 매력적인 친구. 늘 주변에 친구들이 넘쳐나고, 나 역시 자꾸 힐끔힐끔 올려다보게 되는 그런 친구. 하지만 동시에 저 친구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지 자꾸만 신경 쓰고 의식하게 만드는 친구. 과연 그 친구는 나를 ‘친구’라고 생각해줄지, 문득 의심 들게 만드는 친구. 나를 긴장하게 만드는 친구. 헬싱키는 그와 반대로 긴장을 풀게 만들어주는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매력적이지만 누구에게나 그 매력이 다 알려지지는 않은 친구. 다만 소리 없이 내 곁에 있어주는 친구. 그렇게 옆에서 가만가만 오래오래 들여다보면 비로소 반짝이는 친구. 내가 이 친구에게 어떻게 보일지 신경 써본 적 없는 친구. 친구라는 걸 의심하게 만들지 않는 친구. 언제 만나도 편하게, 자연스럽게 서로를 대하게 되는 그런 친구. 손을 뻗으면 닿는 곳에 항상 있어줄 거라는 안정감과 신뢰를 주는, 그야말로 ‘진정한 내 친구’ 같은 느낌을 주는 도시가, 내게는 바로 헬싱키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밝히는 내 소설 쓰기의 비밀 하나. 이른바 '조금씩 나가는 상상' 방법론이다. 평소의 나는 MBTI 'N형'답게 쓸데없거나, 쓸데없어 보이는 상상을 많이 하는 편인데 때로는 이런 무의식적이고 습관적인 상상으로부터 소설의 발상을 얻기도 한다. 이 대화에서 다른 대답을 했다면, 이 상황에서 다른 사람이 들어와 참여한다면, 상황이 어떻게 다르게 흘러갔을까? 그렇다면 그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그 사람의 마음의 모양은 어떻게 생겼을까? 어떻게 변해갈까? 엄청나게 참신한 설정이나 대단한 세계관이 아니라 현실의 상황에서 아주 조금, 딱 한 발짝 나아가는 상상을 하는 것이다. 그 한 발짝, 한 발짝이 계속 모이면 처음 발상과는 아주 멀어지게 되고 또 달라지게 된다.



나는 ‘그때 참 행복했었지’ 하고 내 행복에 과거라는 꼬리표를 붙이지 않는다. ‘이러면 행복해질 거야’ 하고 내 행복에 뒤돌아 등을 보이지도 않는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충만한 행복을 느끼지만 타인에게 내보이지 않는다. 우리 가족이 행복하다는 말을 들은 누군가가 갑자기 적대감을 비치며 화내는 걸 보는 게 속상하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여기 이렇게 적어본다. 알바 알토의 집 처마 밑에서 똑…… 똑…… 똑……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내가 느꼈던 행복에 대해서. 짧은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 내가 선택한 사랑하는 나의 가족이 있다는 사실에 느꼈던 벅찬 온기와 무한한 신뢰에 대해서.



아이러니하게도 '자연스러움'은 '자연'이 아니야. ‘자연’은 그냥 놔두면 되잖아. 거기 이미 존재하니까. 하지만 ‘자연스러움’은 다른 얘기지. ‘자연스러운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뾰족한 고민이 필요하겠지. 건물 전체가 곡선으로 구부러져 정원을 감싸는 형태의 알토 오피스는 무척 자연스럽고 아름다웠지만, 그런 형태의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벽돌 하나부터 딱 원하는 각도로 구부러진 형태로 만들어야 하는 거잖아. 그 생각이 ‘리얼한 소설’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으로 이어지더라 ‘리얼’은 그냥 현실 자체잖아. 그냥 어디에나 존재할 뿐인. 하지만 ‘리얼함’은 다른 일이잖아. ‘리얼한 소설’ 그리고 ‘리얼한 문장’을 위해 인물을, 설정을, 대사를, 심지어는 단어 하나의 글자 수나 조사를…… 수많은 요소들을 수도 없이 갈아 끼우고 그만큼 셀 수 없이 많은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또 돌려야 하잖아. 스르륵, 거침없이 읽히는 문장을 쓸 때는 그렇게 스르륵, 쓸 수가 없으니까. 맨질맨질한 표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거친 원재료에 수없이 사포질을 해야 하듯이. 나 같은 애송이를 알토처럼 위대한 예술가에 비할 건 아니지만, 그래도 오늘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내가 만들어낸 이야기, 독자분들이 재밌게 읽어주신 그 이야기는 나 자신조차 마음에 안 들어 하는 내 성격이 해낸 일이겠지. 그러니 그걸 내세우진 못할망정 최소한 미워하지는 말자. 사람의 성격은 그 성격의 주인이 최대한 더 나은 방식으로 생존하게끔 발달한 거겠지. 마치 자연의 섭리처럼. 그래서 나도 내 성격을 더는 미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해보려고.



엄청난 ‘비밀’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버린 기분. 언젠가 몇 번의 눈이 녹고 난 뒤, 어떤 이유로든 핀란드를 다시 방문한다면, 그래서 헬싱키에 그리고 이곳에 다시 오게 된다면, 그때는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묻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내가 이곳에 입장하면 이곳의 와이파이가 내 휴대폰과 자연스레 연결될 것이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곳과 내가 소리 없이 연결될 것이다. 착, 붙을 것이다. 너무나 닮고 또 다른, 사랑하는 친구와 함께 즐긴 열흘간의 차분한 휴식이 따스하고 청량하게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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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로 다시 읽는 자본주의 세계사

저자 이동민

갈매나무

2025-01-10

경제경영 > 경제학

역사 > 세계사

역사 > 경제사





자본주의란 도대체 무엇일까? 사전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사유재산제도와 경쟁을 전제로 하는 시장경제 원리에 토대하며, 재화의 생산 및 교환을 통한 자본의 축적과 재축적이 지속해서 일어나는 경제 사조나 체제 또는 이와 관련된 문화 등을 의미한다.

자본주의 그리고 그 바탕이라고 할 수 있는 사유재산제도와 시장경제의 역사는 생각보다 짧다. 물론 유사 이래 인류에게 돈과 재화가 중요하지 않았던 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인류가 진기한 재화를 구하고 큰돈을 벌기 위해 무역을 시작했던 때는 신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자본주의가 인류 역사와 함께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의 탄생은 15~16세기 오스만제국의 팽창과 이에 따른 실크로드 무역로의 봉쇄와 관계가 깊다. 자본을 투자해 더 큰 이윤을 남기는 것이 자본주의의 본질적 메커니즘이니 무역은 당연히 자본주의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을 수밖에 없는데, 무역로 봉쇄가 자본주의 발달로 이어졌다니 어찌 보면 크나큰 역설이다. 유럽의 서쪽 끄트머리에 있던 포르투갈과 에스파냐는 육로를 통하는 대륙 동쪽의 무역로가 오스만제국에 가로막히자 서쪽 대양으로 이어지는 신항로를 개척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에스파냐는 식민지 삼은 아메리카대륙에서 막대한 양의 은이 발굴된 덕분에 16세기 세계 해상무역 네트워크의 중심 역할을 했다.

자본주의 기축통화의 시초라 할 만하다.



대서양을 최초로 횡단한 인물은 누구일까? 흔히 에스파냐에서 이사벨 1세의 지원을 받아 대서양을 건너 1492년에 산살바도르에 도착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를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1000년 무렵 그린란드에서 대서양을 건너 캐나다 뉴펀들랜드에 상륙한 탐험가 레이프 에이릭손이다.

하지만 뉴펀들랜드에 뿌리내리지도, 대서양 횡단을 역사의 변화로 끌어내지도 못했던 에이릭손과 달리 콜럼버스의 대서양 횡단은 인류 문명사의 극적인 전환점이었다.



에스파냐는 포르투갈과 다른 항로를 찾아야 했다. 그때 마침 대서양을 서쪽으로 가로질러 항해하면 인도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한 콜럼버스가 나타났고 이사벨 1세는 그를 후원하기로 한다. 당시에는 그의 주장이 허튼소리로 치부되었는데, 에스파냐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보니 '속는 셈 치고' 콜럼버스를 후원했다고 할 수 있다.



에스파냐는 아메리카대륙에서 가져온 은으로 은화 ‘페소 데 오초Peso de Ocho’를 주조했고, 이 은화는 대항해시대 기축통화로 자리매김했다. 이미 세계 각지에서 은과 은화가 화폐로 중요하게 쓰이던 차에 아메리카대륙에서 고품질의 은이 어마어마할 정도로 생산되었고, 그것이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무역선을 따라 전 세계에 유통되면서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화폐교환 수단으로 자리 잡은 덕분이었다.



네덜란드가 가장 적극적 · 공격적으로 청어잡이와 가공산업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네덜란드의 청어 어획량과 청어 가공품 생산량은 유럽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그 덕분에 큰돈을 벌게 된 네덜란드는 유럽 변방의 간척지에서 부강한 산업 중심지로 거듭난다. 훗날 해양 대국으로 도약하는 데 밑거름이 되는 조선술과 항해술에 관한 지식 역시 이때 축적되었다.



산업혁명은 산업생산성 능력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리면서 인류에게 전에 없는 물질적 풍요를 선사했다. 그뿐 아니라 규모의 경제와 시장을 실현해 본격적인 근현대 자본주의 산업자본주의가 태동할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산업자본주의는 이전의 상업자본주의와 달리 확실한 자본주의, 즉 ‘고전’자본주의로 분명한 지위를 획득한다. 그러니 영국의 산업혁명은 인류사의 대전환점인 동시에 온전한 자본주의를 가져온 자본주의의 대전환점이기도 하다.



프랑스대혁명이 남긴 성과는 민주주의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혁명에서 말한 자유와 평등의 가치는 절대왕정과 특권층이 독점하던 자본과 경제의 자유와 평등도 함께 의미했다. 그 결과 상공업자들이 신분에 따른 불이익이나 사유재산 침탈에 시달리지 않으며 활동을 보장받을 길, 농민들이 귀족 지주들에 사실상 예속되다시피 한 소작농 신세에서 자영농으로 독립할 길이 열렸다.



제1차 세계대전과 두 차례의 혁명, 그리고 내전까지 겪은 소련의 경제는 큰 폭으로 후퇴했다. 경제체제는 자본주의가 아닌, 공산주의식 계획경제로 노선을 지향했다. 서유럽과 달리 전제적 성격이 다분했던 황실과 강력한 특권을 누리는 귀족층이 주도한 위로부터의 ‘반쪽짜리’ 자본주의 혁명이 이루어졌던 러시아에서, 제대로 된 시민계급의 성장과 온전한 자유시장경제의 발달이라는 경험 없이 일어난 공산혁명의 결과였다.



1919년에는 베니토 무솔리니가 이탈리아를 세계 최초의 파시즘 국가로 만들어 버렸다. 이탈리아 역시 독일처럼 수백 년 이상 분열을 이어오다 19세기 후반에 통일을 이룩하고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후발주자로 대두한 터였다. 이탈리아는 독일과 달리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었지만, 전후 처리 과정에서 영국 · 프랑스 등으로부터 배제되었다. 유럽 제국주의 열강, 자본주의 선진국 간에도 존재했던 지리적 차별성은 상대적으로 후발 주자였고 오랫동안 분열을 이어온 탓에 통일과 부국강병에 대한 열망도 강했을 뿐만 아니라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큰 손해까지 본 나라에 극단적 사상이 발흥할 밑거름을 뿌린 격이었다.



미시시피강, 미주리강, 오하이오강 등 대평원을 흐르는 유량이 풍부한 대하천은 농업용수 공급원은 물론 미국 각지를 잇는 교통로로 기능했다. 철도와 도로교통이 본격화하기 전에 이미 이들 하천은 새롭게 편입된 루이지애나를 기존 영토와 효과적으로 연결해 주었다. 또한 물자의 효율적인 운송이 가능해지면서 오대호 연안의 철강업과 석탄산업이 크게 발전했으며, 훗날 미국이 병합할 서쪽 땅과의 지리적 연결고리까지 만들어 주었다. 아울러 루이지애나 식민지의 중심지였던 항구도시 뉴올리언스는 무역 발달에 큰 도움을 주며 미국이 자본주의 강국으로 대두할 잠재력을 더한층 증대시켰다.



중국은 오랫동안 근현대적 자본주의경제 체제와 거리를 두다가 공산당 일당독재 체제에서 자본주의, 그중에서도 신국제분업 체제로 편입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본주의 세계의 지리적 질서가 변하던 흐름에 발맞춰 세계의 공장으로 거듭나는 동시에 공산당 일당독재가 금융과 기업마저 공고히 지배하는 중국 스케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상한 자본주의국가가 되어버렸다.



신국제분업의 글로벌 가치사슬 속에서 베트남은 세계의 공장 입지를 점하며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하지만 저렴한 인건비에 치중한 경제성장은 신자유주의와 신국제분업이라는 불평등한 자본주의 경제질서 속에서 베트남 경제는 물론 사회와 자연환경의 지속가능성조차 위협하고 있다. 자본 축적과 기술 혁신이 부재한 가운데 저임금 노동력 위주로만 이루어진 경제성장에는 뚜렷한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들을 개선하지 못한다면 베트남은 캄보디아 같은 주변 후진국에 발목 잡히며 ‘먹고살 수는 있는 나라’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게 될 위험성이 크다.



한국식 신자유주의를 오직 IMF의 산물이라 치부해서는 곤란하다. 그 기저에는 ‘한강의 기적’이라 은유되는 1960~1980년대 초고속 압축 경제성장기에 대대적인 토목건설 사업이 행해지면서 태동한 토건주의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즉 국토와 자연환경을 착취에 가깝게 이용하고 개발하는 토목건설 사업을 중심으로 국정과 경제정책이 이루어지는 경제체제가 오늘날 한국 사회를 갉아먹는 여러 경제적 · 사회적 문제의 근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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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갈 날들을 위한 괴테의 시

저자 김종원

퍼스트펭귄

2025-01-17

자기계발 > 성공학

에세이 > 한국에세이





당신의 젊은 나날을 온전히 활용하고

배워야 할 때를 놓치지 마세요.

그리하여 늦기 전에 좀 더 똑똑해져야 합니다.


운명을 결정하는 커다란 저울은

평형을 이루는 일이 거의 없으므로

당신은 그 위에 서든가

아니면 내려가야 합니다.


당신은 이겨서 지배하거나

아니면 복종하면서 빼앗겨야 해요.

승리의 환희를 즐기고 싶은가요.


아니면 패배의 고통을 견디고 싶은가요.

당신은 망치로 살면서 호령하거나

망치의 받침대로 살며 희생해야 합니다.


「코프타의 노래」



모든 삶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젊은 나날이 주어진 이유도 따로 있죠. 하지만 그 삶을 멋지게 활용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복종하며 활용당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태도만 바꾸면 삶이 바뀔 수 있습니다.



무언가 하나를 선택하고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이 주는 행복을 즐길 수 있다는 괴테의 조언이 참 아름답습니다. 책 한 권을 수백 번 반복해서 읽고, 하나의 루틴을 10년 넘게 유지하는 사람을 보면 저절로 이런 말이 나옵니다.

"너는 지루하지도 않니? 그 지루한 걸 반복하다니 대단하다."

하지만 그건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겁니다. 이걸 자각해야 삶의 변화를 꿈꿀 수 있습니다. "그거 지루해서 어떻게 하냐?"라는 말은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이기 때문이죠.

…… 괴테의 말처럼 이게 핵심입니다. 누군가 같은 일을 반복해서 해냈다면 그는 그 반복을 지루하게 느끼지 않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의 질문은 하나의 세계입니다.

질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은 반드시 가장 근사한 답을 줍니다.

세상에 지루한 일은 없습니다.

질문 없는 삶만 있을 뿐이죠.



최고의 인격자는 스스로를 돕는 사람입니다. 자신도 하지 못하는 것들을 남들에게 강요하고 지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해내며 성장하는 사람을 인격자라고 정의한 것이죠. 멋진 희망이나 목표가 있다면 그렇게 스스로 증명해야 아름답습니다.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된다는 건

어제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증거입니다.

나는 나를 돕는 사람입니다.

최고의 인격은 스스로 나아져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범이 되는 것에 있습니다.



지금 주어진 순간을 즐기세요.

익숙한 것을 빠르게 해낼 생각은 접고

이 순간이 내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그때그때 맞는 것들을 붙잡아

내면에 차곡차곡 쌓으세요.

그럼 즐기며 성장하게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질투입니다. 타인의 고통을 위로하며 안아주는 건 비교적 쉬운 일이지만 잘 아는 지인의 성공과 성장은 쉽게 축하해 주기가 무척 힘듭니다. 질투 때문이죠. 괴테는 바로 그 질투로 인해 일어나는 무서운 결과를 완벽하게 표현했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요?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을 다시 정립해야 합니다. 보통은 인간관계를 ‘계속해서 넓히는 것’이라 여깁니다. 하지만 사실 인간관계는 넓히는 게 아니라 반대로 ‘좁히는 것’입니다.



스치는 바람의 이름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별의 이름도 마찬가지죠. 사람도 그렇습니다.

다 알 수도 없고, 다 제어할 수도 없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떠들어도 내가 듣지 않으면 저절로 없어집니다.



결국 방향은 같습니다. 누군가를 바꾸려는 생각, 누군가의 기대를 이루어줘야 한다는 강박은 다 버려야 한다는 말이죠. 타인의 기대를 부담으로 느끼지 않으려면 그냥 모두 다 털어내고, 부담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기대만 허락해야 합니다. --- 나는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사는 게 아닙니다. 나는 내 삶의 목표가 말하는 기대에 응답하기 위해 살고 있을 뿐입니다.



세상에 말로만 이루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시작해야 결과를 만날 수 있고 실패든 성공이든 결과를 만나야 자신의 실력과 노력의 가치를 알 수 있습니다. 뭐든 하세요. 하는 사람이 가장 강합니다.



'고통의 바람을 스치면 곧 쾌락의 바람이 다가오고, 쾌락의 바람을 스치면 곧 고통의 바람이 찾아온다.'

괴테가 강조한 것처럼 고통과 쾌락은 서로 순서를 바꾸며 우리를 찾아옵니다. 가볍지 않은 인간으로 살아가고 싶다면, 작은 고통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아야 합니다. 아프다는 건 곧 기쁨의 순간이 찾아온다는 기분 좋은 신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자기 자신에게 더욱 집중해야 합니다.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을 사랑하다 보면 곧 기쁨의 순간이 찾아올 테니까요.



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불의(不義)를 발견하는 건 매우 쉬운 일입니다. 누구나 그저 남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으면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금방 알 수 있죠. 눈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본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발견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꼭 찾겠다는 의지를 가져야만 해낼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이 공간에서 바로 여러분이 먼저 생각을 시작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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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의 심리학

저자 오성주

북하우스

2025-03-05

인문학 > 교양 심리학

예술 > 대중문화의 이해 > 미학





예술에 대한 객관적 이해가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고, 이것이 예술을 이해하는 유일한 길도 아니다. 왜냐하면 예술은 매우 주관적인 경험이며, 예술의 역사는 과학의 역사처럼 논리적인 단계를 거친 진보라기보다는 작가와 그를 둘러싼 환경이 우발적으로 만들어낸 창발 현상들의 나열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예술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는 예술가가 아닌 감상자들이 예술을 이해하는 데 많은 통찰을 줄 수 있고, 예술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고 믿어진다.



그림 감상에 대해서 살펴보기 전에 우리가 눈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과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림 감상은 실세계를 볼 때 쓰는 눈을 빌려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실세계에서 보기의 목적은 대체로 눈에 맺힌 이미지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올바른 동작을 취하는 데 있다. 가령 길을 걷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면 다가가 반갑게 인사하고, 모퉁이를 돌다가 만나는 자동차는 재빨리 피한다. 대상이 무엇이고 얼마나 멀리 있는지, 움직이고 있다면 얼마나 빠른지를 탐지하고, 그 대상이 혹시 위험한 것은 아닌지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는지 등 기억을 되살려 예측해야 한다. 대상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데에는 형태, 색 크기, 깊이, 움직임 등 다양한 정보들이 동원되지만, 형태가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다른 정보들을 부차적이다.



우리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눈으로 많은 학습을 한다. 대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대상까지의 거리에 따라 눈에 상이 얼마나 크게 맺히는지에 대해서, 어떤 물체가 빠르게 움직이는지에 대해서, 조명에 따라 대상의 표면 밝기와 색이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대해서, 물체의 물리적 성질에 대해서, 어떤 얼굴이 기분 좋은 상태인지에 대해서 배운다. 그뿐만 아니라 주의를 활용하는 방식을 배운다.



미술의 역사는 프랑스와 스페인의 동굴 벽화를 근거로 적어도 기원전 3만 년 전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긴 시간 동안 미술은 발전을 거듭했다. 미술의 발전은 연필, 붓, 물감, 종이, 캔버스와 같은 재료의 발전, 원근법과 명암법 같은 그림 기법의 발전, 예술가들의 혁신적 사고, 미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 증가, 예술과 종교·정치·사상 등의 상호 작용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이다.



실세계는 물리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이다. 예를 들어 모든 물체는 중력의 영향을 받아 땅에 붙어 있다. 또한 실세계는 시각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관찰자로부터 물체가 멀어질수록 눈에는 작게 맺히고, 앞에 있는 물체는 뒤에 있는 물체를 가린다. 그런데 그림 세계는 이런 물리 법칙과 시각 법칙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공간이다. 20세기 들어 화가들은 시각적 속성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물체들의 거리, 크기, 색, 형태, 방향, 위치 등을 자유롭게 해체했다. 이에 따라 그림들은 점점 알아보기 어렵게 변했다.



그림을 처음 마주했을 때 머릿속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나는 첫인상은 어떤 내용일까? 심리학자들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연구 참여자들에게 그림을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보여주고 소감을 물었다. 그림을 보여준 시간은 0.1초부터 수초까지 다양했다. 흥미롭게도 0.1초만 그림을 보고서도 사람들은 상당히 많은 특징을 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한국의 옛 그림에서도 점묘법을 찾아볼 수 있다. 겸재 정선은 금강산을 그리면서 점을 찍어 숲의 농도를 달리했다. 그림에서 산 능선은 진한 점을 찍고 그 사이에서는 점진적으로 점을 줄여나갔다. 또한 왼쪽 작은 산은 훨씬 밝은 점들로 숲의 무성함을 표현하여 원근감을 높이고 있다. 점으로 숲의 농도와 깊이를 표현한 기법은 그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데, 그의 실험 정신이 얼마나 투철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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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지향성 - 성공한 사람들이 지키는 12가지 원칙
존 R. 마일스 지음, 임지연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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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지향성

저자 존 R. 마일스

오픈도어북스

2025-02-14

자기계발 > 성공 > 성공학





- 성공을 이끄는 최고의 전략

- 명사들의 마인드셋을 넘어 성장의 원리까지 총망라한 책





우리는 살면서 스스로를 한계 짓곤 합니다.

더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부적 요인 등의 이유를 들며 망설이곤 하죠.

그렇다면 외부적 요인이 나 자신을 한계 짓는 원인인  것일까요?

혹시 나의 가능성을 나 스스로 가둬버린 것은 아닐까요?

오늘은 이러한 고정관념을 깨고 성장하는 삶을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는 책 한 권을 소개할까 합니다.



마음속으로 가장 원대한 인생 목표 한두 가지를 떠올려 봅니다.

그런 다음 언젠가 현실로 이룰 수 있는 순간을 생각해보며 마음 한편에 자리잡고 있는 꿈이나 갈망, 지향성, 목표를 생각합니다.

다 생각해보셨나요?

그럼 아래 질문에 대한 답을 해보세요.



- 그 꿈의 실현을 가로막는 가장 큰 두려움은 무엇인가?

- 자신의 꿈을 추구하는 사람이 드문 이유는 무엇인가

- 우리는 왜 진정으로 열망하는 목표를 향한 노력을 주저하는가?

- 직업과 상관없이 많은 사람이 현실에 안주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목표를 지향하는 삶에 수반되는 끊임없는 노력을 행하기보단 현실에 빠르게 안주하곤 합니다.

안정된 삶의 루트를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는 것이지요.

저 또한 이것이 당연하다 생각할 정도로 갇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기쁨의 반대가 불행이 아니었습니다.

기쁨의 반대는 지향성이 부재한 삶이며, 이는 만성적인 절망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결국 무의미함은 곧 허무주의와 연결되니, 즉 삶의 모든 영역에서 목적과 의미가 서서히 결여됨을 의미합니다.


만약 당신이 성공하고 싶다면, 목표 달성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보다 거대한 비전과 연결시켜야만 합니다.

단순한 성과가 아닌 삶 전체를 아우르는 성장의 과정 속에서 성공을 바라봐야 하죠.

우리도 성장 지향성이 이끄는 삶을 살 자격이 있습니다.

지향성이 리더의 관심 밖이 아닙니다.

오히려 리더는 자신의 일에 집요하게 매달립니다.

즉, 이러한 유형의 사람은 해결하려는 문제에 더더욱 신경을 씁니다.


책에서도 강조하듯이, 지향성을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스티브 잡스, 오프라 윈프리와 같은 유명인이 되어야 할 필요도 없고 무엇보다 지향성의 참된 의미는 아니니깐요.

다만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내일의 성장을 추구하며 자유를 키워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성공의 로드맵을 활용해보면 됩니다.





"무관심은 성장의 적이다"


우리는 스크린에서 빛을 발하는 기업가, 스포츠 스타 등의 인물들을 찬양하며 성공을 꿈꿉니다.

하지만 그들과 우리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저 다른 일을 할 용기를 발휘했을 뿐, 목표를 찾고 성장을 추구하며 각자의 비전을 현실로 이루었으니깐요.

그들도 우리와 같이 성장지향성으로 가득 찬 삶을 갈망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실패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또다른 성장의 여정에 발을 내딛기도 합니다.

즉, 일터가 아닌 일터 밖의 영역에서도 성장 지향성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관점의 변화는 다른 삶을 설계하는 힘을 불어넣어 주는데, 이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습니다.

인생의 모든 면에서 목표를 탐색하겠다는 생각만 자리 잡게 되면 목적의식과 의미 있는 영향력으로 가득한 삶을 계속해서 누릴 수 있는 것이지요.



- 다르게 행동하는 힘

- 생각을 실현하는 목적의식

- 미지를 헤치는 과감함

- 무리에서 벗어나라

- 행동을 만드는 동기

- '멘탈 게임'에서 승리하라



성공을 위한 목표 설정은 명확해야 하며 단순히 개인의 성취를 넘어 공동체와의 연결 속에서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목표를 세우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실패는 필연적이지만 그 실패 속에서도 분명 배울 점은 존재합니다.





성공은 타인의 기준이 아닌 나만의 가치와 의미를 담아야 합니다.

사회적 기준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죠.

이렇듯 성장지향적인 사고방식은 우리의 삶을 크게 변화시켜줍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의 나는 완성형이 아니라 성장하는 과정 속에 있다는 믿음입니다.

실패가 끝이 아닌 배움의 기회가 될 수 있고, 한계라고 느꼈던 순간이 오히려 도약의 발판이 될 수 있습니다.

성장지향성은 단순히 개인의 발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직과 사회 전체에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성장하는 팀과 기업, 성장하는 인간관계는 결국 '더 나은 나' 나아가, '더 나은 우리'를 만들어 주죠.

즉, 성장지향적인 태도는 개인의 성공뿐 아니라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발전에도 필수 요소인 것입니다.


근래 새로운 환경에서의 시작을 위해 새로운 것을 배우는 중인데 마음이 혼돈의 카오스 그 자체입니다.

스트레스 지수가 극에 달하니 몸도 계속 아팠는데 역시 복잡한 생각을 정리해 주는 데에는 책만 한 게 없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제 삶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어떤 태도로 살아가고 있을까?

혹시 정체되어 있는 건 아닐까?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그리고 더 넓은 세상을 만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사실 책에는 해답이 없습니다.

다만 스스로 답을 찾아 나아갈 수 있도록 용기를 주었지요.

성장은 끝이 없는 길입니다. 그 길을 묵묵하게 걷는 것이 나다운 삶이기도 합니다.


책에서는 다양한 사례와 연구를 통해 성공과 성장을 위한 실천적 태도를 제시하며, 단순한 목표 달성이 아니라 장기적인 성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지금보다 더 나아지고 싶은 사람들에게, 현재의 나에 머물러 있지 않고 더 성장하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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