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의 삶

저자 김영하

복복서가

2023-04-19

에세이 > 한국 에세이




"살면서 단 한 번의 삶을 산다는 것을 잊지 말자."




■ 책 속 밑줄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삶은 리허설이 아니다. 리셋 버튼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다른 사람처럼 살아도, 그 인생은 결국 내 것이 된다. 그러니 나답게 살아야 한다.



인생은 일회용으로 주어진다. 그처럼 귀중한 것이 단 하나만 주어진다는 사실에서 오는 불쾌는 쉽게 처리하기 어렵다. 그래서 종교가 필요했을 것이다. 오래 살아남은 종교들은 이 불쾌를 어떻게든 완화해주는 여러 이야기를 제공했다. 이상적인 육체로 부활해 영원히 존재하는 삶을 약속한 종교도 있었고, 형태를 바꾸어 거듭하여 다시 태어나는 윤회라는 개념을 제시한 종교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지속될까? 인생이 일회용인 것도 힘든데, 그 인생은 애초에 공평치않게, 아니 최소한의 공평의 시늉조차 없이 주어졌다. 생이 그렇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었다. 문제는 그럼에도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날의 빈소는 마치 소설의 반전과도 같았다. 반전은 독자의 선입견과 자만심을 통렬히 일깨우면서 이야기 전체와 인물을 새롭게 보게 만드는 극적 장치로, 그날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던 엄마라는 인물에 대해 내가 별로 알고 있는 게 없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환대는 무뚝뚝하고, 어떤 적대는 상냥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게 환대였는지 적대였는지 누구나 알게 된다.



경험은 실패해도 남는다. 실패조차도 그 자체로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조각이다.



원래 나는 '인생 사용법'이라는 호기로운 제목으로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내가 인생에 대해서 자신 있게 할 말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저 내게 '단 한 번의 삶'이 주어졌다는 것뿐, 그리고 소로의 단언과는 달리, 많은 이들이 이 '단 한 번의 삶'을 무시무시할 정도로 치열하게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냥 그런 이야기들을 있는 그대로 적기로 했다. 일단 적어놓으면 그 안에서 눈이 밝은 이들은 무엇이든 찾아내리라. 그런 마음으로 써나갔다.



자신의 삶을 끝까지 책임지는 태도가 필요하다. 타인의 기대보다 중요한 건 나의 삶이다.



'단 한 번'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진지하게 만든다. 삶은 진지할수록 아름답다.



■ 끌림의 이유


단 한 번뿐인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김영하 작가는 질문하지 않습니다.

다만, 조용히 자신의 생각과 태도를 들려주죠.

『단 한 번의 삶』은 단 한 번뿐인 삶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에 대한 그의 인문적 탐색이 엿보이는 에세이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옳은지보다 어떻게 살아야 나다운가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또한 무언가를 꼭 잘하지 않아도, 그때의 정답을 알지 못해도 괜찮다는 위로를 건네죠.

그저 자기 삶에 충실한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줍니다.



■ 간밤의 단상


삶은 해석이다.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그 삶을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달려 있다.


사실 자주 듣지만 가장 어려운 말인, 나답게 산다는 것.

경쟁과 비교가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때로는 방향조차 잃은 채 살아가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몇몇 작가들의 책을 펼치곤 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김영하 작가입니다.

그의 문장은 혼돈 속에서 헤매고 있는 저를 조용히 멈춰 세우죠.

언제나 삶의 본질을 묻는 그는 『단 한 번의 삶』에서도 우리가 흔히 지나쳐버리는 질문을 마주하게 합니다.


단 한 번의 삶,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에게 정직할 것!

그 문장이 오늘 아침의 나를 다잡습니다.

인생의 의미를 묻기보단 하루를 살아내는 자세를 고민하는 우리에게 이 책은 좋은 동반자가 되어줄 것입니다.



■ 건넴의 대상


인생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싶은 사람

자기 삶의 방향을 다시 점검해보고 싶은 사람

나답게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은 사람

김영하 작가 특유의 문체를 좋아하는 사람


인생의 갈래길 앞에 선 이들에게 추천합니다.



■ 함께 건네고 싶은 책


『여행의 이유』 - 김영하 | 단 한 번의 삶과 맞닿아 있는 여정의 의미를 깨닫게 해줍니다.

『죽음에 관하여』 - 어니스트 베커 | 삶을 직시하기 위한 필수적 성찰을 엿볼 수 있습니다.

『불안』 - 알랭 드 보통 | 자아와 사회 사이에서 흔들리는 당신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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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의 심리학 - 예술 작품을 볼 때 머릿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오성주 지음 / 북하우스 / 2025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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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정보

감상의 심리학

저자 오성주

북하우스

2025-03-05

인문학 > 교양 심리학

예술 > 대중문화 > 미학





■ 책 소개


"어제 아침의 풍경, 기억나시나요?"


책 속에 등장하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오늘을 즐기기보단 오늘을 버텨보자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오늘의 나는 어제의 맑고 푸른 하늘, 이슬 맺힌 풀잎, 잎 사이를 스치는 바람 같은 사소한 아름다움은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놓치기도 합니다.

감상조차 사치처럼 느껴질 만큼 우리의 감정은 메말라 있기도 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꼭 필요한 책 한 권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책에서는 말합니다.

감상은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감상은 삶의 여유가 아니라, 삶을 더 깊게 살아내기 위한 태도라고.



■ 문장으로 건네는 사유


예술에 대한 객관적 이해가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고, 이것이 예술을 이해하는 유일한 길도 아니다. 왜냐하면 예술은 매우 주관적인 경험이며, 예술의 역사는 과학의 역사처럼 논리적인 단계를 거친 진보라기보다는 작가와 그를 둘러싼 환경이 우발적으로 만들어낸 창발 현상들의 나열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예술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는 예술가가 아닌 감상자들이 예술을 이해하는 데 많은 통찰을 줄 수 있고, 예술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고 믿어진다.



예술은 정답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술 앞에서 더 많은 질문을 품게 되며 해석의 여지를 통해 자신만의 의미를 만들어갑니다.

책에서는 객관적인 미술 이해도 중요하지만 감상의 진짜 무게는 감상자의 인식과 정서적 반응에 있다고 말합니다.

사람은 0.1초만 그림을 보더라도 여러 감정과 직관적 해석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만큼 감상은 무의식에 가까운 반응이며 동시에 기억과 감정의 교차점에서 피어나는 복합적인 행위인 셈이죠.



작가들은 삶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통찰에 의해 작품 스타일이 크게 변화하곤 한다. 그에 따라 똑같은 화가의 그림이어도 좀 더 세밀한 지식을 가지고 작품을 감상할 필요가 있다.

…… 감상자의 해석에 따라 다른 은유가 그림 속에서 건져진다. 그림 속에 인물이 아닌 나무, 바위, 산이 표현되어 있어도 그럴 수 있다. 거울은 자신의 얼굴을 비추지만, 그림은 자신의 마음을 비추는 것이다.



예술은 감상자의 해석으로 비로소 완성됩니다.

감상은 단지 눈으로 받아들이는 수동적 행위가 아닌 내 안의 기억과 감정이 그림과 맞닿는 심리적 창작인 것이지요.

그래서인지 그동안 놓쳐왔던 내 반응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되었습니다.

어느 장면 앞에서 이유 없이 눈물이 나거나 딱히 설명할 수는 없는 그마음의 움직임, 그 모든 것이 사실은 나의 역사와 연결된 감정의 결과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림 감상에는 머리만이 필요하다는 편견이 있다. 이는 감상이 순전히 뇌에서 일어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뇌는 순수하게 추상적인 생각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 즉, 뇌는 끊임없이 몸과 소통하고 있다. 뇌는 몸상태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기도 한다.



참 신기하죠?

머리로 분석하고 판단하는 것만이 감상의 전부가 아닙니다.

그림을 보는 순간의 나의 몸 상태, 그 순간의 기분 등 모든 신체적 경험들이 그림의 해석에 스며듭니다.


예컨대, 같은 그림을 아침에 봤을 때와 밤에 봤을 때의 감상은 달라집니다.

또한 마음이 무거울 때와 가벼울 때의 감상 또한 마찬가지죠.

이는 단지 기분의 차이가 아니라 감상이라는 사건이 뇌와 몸이 함께 만드는 총체적 반응이라는 증거입니다.



마티스 이후의 화가들은 그의 색채 실험을 한층 더 발전시켰다. 오늘날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많은 작품들은 형태와 색의 고유한 관계를 의도적으로 깨뜨리고 있으며, 이러한 파격이 단순히 정상적인 것을 넘어 "우월한 미술"로 인식되는 경향마저 있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 이는 "모두가 화려한 색으로 칠해진 그림을 언제나 좋아할까?"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진행된 미국의 한 연구는 흥미로운 결과를 제시했다. …… 풍경화의 경우, 컬러로 제시된 그림이 흑백으로 제시된 그림보다 더 아름답고 즐겁게 느껴졌으며, 선호도 역시 높았다. 그런데 인물화에서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얼굴 그림이 흑백으로 제시되었을 때가 컬러로 제시되었을 때보다 더 아름답고 즐겁게 평가되었으며, 선호도도 더 높았다.

(*연구에 참여한 사람들은 미술 감상 경험이 적은 일반 대학생들입니다. 일반화시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색이 없는 흑백사진이어도, 인물이 담긴 흑백사진을 한참 바라본 적이 있었습니다.

분명 색이 없는데 감정은 고스란히 표현되었기 때문이었죠.

사진에 숨겨진 감정이 슬픔인지 분노인지 알 수 없는 미묘함이 한참을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렇듯 감상은 나와 작품 세계 사이의 대화입니다.

때로는 색이 빠진 세계에서 더 풍부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 책 속 메시지


감상은 보는 행위, 그 이상입니다.

우리는 색, 장면, 분위기 앞에서 왠지 모르게 끌림을 느끼기도 하고 이유 없이 마음이 편안해지거나 불편해지기도 합니다.

이 책은 그러한 감정들을 억누르거나 지나치지 말고, 천천히 들여다보라고 조언합니다.


감상은 미적인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인식하는 태도이며 스스로를 이해하고 세계와 연결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매우 본질적인 인간의 활동입니다.



■ 하나의 감상


나는 왜 이 장면에 끌렸을까?


나이가 들면 사유 또한 깊어진다고 하죠.

요즘 따라 책을 읽을 때, 영화나 그림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어느 날, 무심코 보게 된 사진 한 장이 있었습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모나리자 작품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모든 사람들이 팔을 뻗는 사진이었습니다.

보통 전시회는 친구들과 함께 가지만, 그림을 감상하러 미술관에 갈 때는 거의 혼자 가곤 합니다.

도슨트 해설이 시작되기 전, 일찍이 가서 그림을 한참 감상하기 때문이죠.

그렇게 한참을 바라봅니다. 이후 제 개인적인 감상이 끝나고 나면 도슨트의 해설을 듣고 그날의 전시회 감상을 마치는 것이지요.


그림을 감상한다는 행위는 단지 시각적 아름다움을 즐기는 일이 아니라 그 앞에 선 감상자의 감정, 경험 등 자신의 해석이 개입됩니다.

즉, 매우 주관적이고 내면적인 사건이라는 통찰을 담고 있죠.

책은 감상이 더 이상 예술 작품을 분석하거나 비평하는 외부의 시선이 아닌, 그 순간의 감정과 해석을 통해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이라는 독보적인 시각을 제시합니다.

우리는 그림을 통해 무엇을 봤는가보다 왜 그렇게 보았는가를 질문하게 됩니다.

결국 이야기하는 것은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감상이란 살아 있는 나의 감정, 경험, 무의식의 흐름이 투사된 또 하나의 창작입니다.

그래서 책에서도 감상을 창조적 해석의 행위로 정의합니다.

작품을 마주한 순간, 우리는 이미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지요.

계속해서 끌리는 장면들이 내가 인식하지 못했던 갈망 혹은 회복되지 않은 감정들이 숨어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합니다.

이 책이 그런 저의 무의식적인 선택들에 의미를 부여하게 만들었습니다.

즉, 감상은 내게 있어서 결국 나를 알아가는 심리적 자화상 그리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삶이란 단지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라는 중요한 메시지를 되새겨 보게 만드는 책입니다.

무심코 지나쳤던 하늘, 바람, 스치는 표정 하나까지도 나만의 시선으로 되짚어 보세요.

그것이 곧 나 자신의 섬세한 자극이 될 것입니다.



■ 건넴의 대상


그림이나 미술을 어렵게 느끼는 일반 독자

일상의 감정에 자주 매말랐다고 느끼는 이들

예술 감상에 심리적 깊이를 더하고 싶은 분

자신을 돌아보고 싶은 ‘조용한 질문’을 품고 있는 사람


예술에 어려움을 느끼지만, 그 아름다움을 느껴보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은 훌륭한 안내서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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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저자 정지아

창비

2022-09-02

소설 > 한국소설

국내 문학상 > 만해문학상




아버지의 죽음이 알려준 건 그의 삶이 어떤 해방을 원해왔는지에 대한 진실이었다.




■ 책 속 밑줄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만우절은 아니었다. 만우절이라 한들 그런 장난이나 유머가 오가는 집안도 아니었다. 유머라니. 유머는 우리 집안에서 일종의 금기였다. 그렇다고 유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누가 봐도 유머일 수밖에 없고 유머여야 하는 순간에도 내 부모는 혁명을 목전에 둔 혁명가처럼 진지했고, 그게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어머니가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문자에 대한 아버지의 절대적인 확신은 흔들리지 않았다. 문자에 대한 확신으로 아버지는 『공산당 선언』을 읽었고 사회주의자가 되었을 테다.



아버지의 눈빛은, 누군가 사진으로 그 찰나는 포착했다면, 처형 직전의 독립운동가나 학살당한 동지의 시신을 목도한 혁명가라 해도 믿을 만큼 진지하다 못해 비장했다. 내가 풋, 웃음을 터뜨리려는 찰나, 어머니가 꽁무니를 내리고 조용히 방을 나갔다. 열일곱의 나는, 방물장수 하룻밤 재우는 일에 민중을 끌어들이는 아버지나 그 말에 냉큼 꼬리를 내리는, 꼬리를 내리다 못해 죄의식에 얼굴을 붉히는 어머니나, 그때 읽고 있던 까뮈의 『이방인』보다 더 낯설었다.



개 이름 같은 아리는 내 이름이다. 아버지가 활동했던 백아산의 아, 어머니가 활동했던 지리산의 리,를 딴 이름 덕분에 나는 숱한 홍역을 치렀다(사실 아버지가 주로 활동한 곳은 백아산보다는 백운산이었다. 그런데도 백아산의 아를 따온 것은 백운산의 백이나 운이 여자아이 이름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그러니까 제 아무리 남녀평등을 주장했다 한들 반봉건시대에 태어나 가부장제의 그늘을 아주 벗어나지는 못한 반봉건적 사유의 발로였던 것이다). 학교에서나 관공서에서나 고아리, 내 이름을 말하면 아유, 이름이 참 예쁘네, 얼굴도 참…… 하면서 나를 쳐다보았고 이내 말줄임표가 뒤따랐다.



"지사는 무신 지사. 헹제라도 많아서 핑계 김에 얼굴이나 볼라먼 모릴까 니 혼찬디 지사는 무신 지사."

아버지는 뼛속까지 유물론자였다. 부모가 여든 넘도록 장지 마련은 고사하고 영정사진 찍어둘 생각조차 못한 불효자식이었으나 아버지의 유지가 그러하였으니 따르면 될 터였다. 역시 유물론은 산뜻해서 좋다.



월남전에서 다리를 잃었다고 했으니 아마도 육십년대 후반이나 칠십년대 초반, 원래의 다리보다 더 오래 다리 노릇을 해온 때문인지 노인은 지팡이를 능숙하게 움직여 비틀거리지도 않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아따 조문은 무신…… 나랑 쐬주나 마시장게."

다리 불편한 노인네를 확 낚아챌 수도 없는 노릇, 황사장이 어쩌지도 못하고 졸졸 뒤를 따르며 다그쳤다.

"왜? 나는 베트콩 때려잡던 사램잉게 뽈갱이 조문하먼 안 된다는 것이여! 나가 고상욱이 때려잡았간디?"



환갑 넘은 빨갱이들이 자본주의 남한에서 무슨 혁명을 하겠다고 극복 운운하는 것인지,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블랙 코미디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자리를 떴다.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오직 담배를 태우기 위해 나는 동네 사람이 절대 다니지 않을 산중턱까지 올랐다. 담배 세대를 연달아 태우는 동안 바라본 우리 집은 성냥갑 같았다.



해방은 정치적 사건이 아니다.

개인의 삶에도, 마음에도, 각자의 해방일지가 있다.



■ 끌림의 이유


이 책은 죽음을 통해 삶을 들여다봅니다.

장례를 치르는 사흘 내내, 딸은 그간 몰랐던 아버지의 과거를 하나씩 마주하게 되죠.

해방운동, 수감 그리고 가부장제의 틀 속에서 말없이 버텨온 한 남자의 삶이 딸의 시선을 통해 복원됩니다.

읽을 수록 마음이 무겁고 아프지만, 문장 하나하나에 깊은 애정이 담겨 있습니다.



■ 간밤의 단상


사람은 살아 있을 때보다 떠난 뒤에 더 선명해질 때가 있습니다.

항상 무뚝뚝한 아버지에 대해 늘 질문을 던졌던 아리는 답을 구하진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가 살아온 시대라는 키를 통해 모든 질문을 풀 수 있었지요.

그 순간은 저도 괜스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그 침묵의 무게를 온전히 느끼게 해주는 이야기입니다.


죽음을 통해 삶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 남겨진 자는 비로소 살아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읽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해방을 꿈꾸며 살아가는 존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건넴의 대상


한국 근현대사에 관심 있는 독자

조용히 삶을 성찰하고 싶은 밤을 보내고 싶은 사람


덧붙여, 부모와의 관계를 되돌아보고 싶은 이들에게도 추천합니다.




이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문장이나 순간이 있다면, 공감(♥)과 댓글로 나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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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저자 히가시노 게이고

현대문학

2012-12-19

원제 : ナミヤ雜貨店の奇迹

소설 > 세계문학 > 일본문학

소설 > 테마문학 > 영화소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마음을, 어쩌면 이곳이라면 털어놓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 책 속 밑줄



그 폐가로 가자는 말을 처음 꺼낸 건 쇼타였다. 아주 괜찮은 헌 집이 있다고 했다.


그리 크지 않은 점포 겸 주택이었다. 살림채 쪽은 옛날식 목조 건물이고, 정면 폭이 삼사 미터쯤 되는 점포는 셔터 문이 닫혀 있었다. 셔터에는 우편함이 하나 붙어 있을 뿐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옆은 창고 겸 주차장으로 쓰인 것으로 보이는 허름한 건물이었다.



"아니, 몇 마디만 써 보내도 그쪽은 느낌이 크게 다를 거야. 내 얘기를 누가 들어주기만 해도 고마웠던 일, 자주 있었잖아?"



다만 한 가지, 당신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당신이 음악 외길을 걸어간 것은 절대로 쓸모없는 일이 되지는 않습니다. 당신의 노래에 구원을 받는 사람이 있어요. 그리고 당신이 만들어낸 음악은 틀림없이 오래오래 남습니다.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가 곤란하지만, 아무튼 틀림없는 얘기예요. 마지막까지 꼭 그걸 믿어주세요.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믿어야 합니다.



"설령 엉터리 같은 내용이라도 서른 통이나 이 궁리 저 궁리 해가며 편지를 써 보낼 때는 얼마나 힘이 들었겠냐. 그런 수고를 하고서도 답장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없어. 그래서 내가 답장을 써주려는 거야. 물론 착실히 답을 내려줘야지. 인간의 마음속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어떤 것이든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돼."



부디 내 말을 믿어보세요. 아무리 현실이 답답하더라도 내일은 오늘보다 멋진 날이 되리라, 하고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오늘 밤 처음으로 남에게 도움 되는 일을 했다는 실감이 들었어. 나 같은 게. 나 같은 바보가."



당신의 지도는 아직 백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목적지를 정하려고 해도 길이 어디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일 것입니다. 지도가 백지라면 난감해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누구라도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겠지요. 하지만 보는 방식을 달리해봅시다. 백지이기 때문에 어떤 지도라도 그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가능성은 무한히 펼쳐져 있습니다. 이것은 멋진 일입니다. 부디 스스로를 믿고 인생을 여한 없이 활활 피워보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 끌림의 이유


고민을 듣고 답장을 쓴다는 건 단순한 행위 같지만 그 안에는 깊은 진심과 책임이 담겨 있습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속 인물들이 주고 받는 말과 선택은 오늘을 사는 저에게도 조용한 울림을 남겼습니다.

누군가에게 건네는 말 한 마디가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는 믿음, 그것이 간밤의 나를 붙들었습니다.



■ 간밤의 단상


불 꺼진 골목의 낡은 잡화점이 있습니다.

오래전 문을 닫은 그곳에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하게 됩니다.

누군가의 간절한 고민을 담은 그 편지는 우연히 그곳에 머물고 있던 세 명의 청년들에게 전달됩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고민이 담긴 편지를 매개로 과거와 현재, 낯선 이들의 삶이 엮이는 이야기입니다.

특유의 따뜻하고 정제된 문장이 삶의 순간들을 감동으로 끌어안아 줍니다.


친구를 만나고 온 후, 이 책이 자연스레 떠올라 오랜만에 펼쳐보았습니다.

평소 속마음을 잘 털어놓으시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사리 말하지 못하는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죠.

그런 마음을 꺼내 누군가에게 조심스럽게 건넨다는 것, 그것 자체만으로도 큰 용기입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말의 무게와 진심을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줍니다.



■ 건넴의 대상


인연, 우연, 선택에 대해 사유하고 싶은 사람

짧은 이야기로 깊은 울림을 얻고 싶은 사람

감성적인 이야기로 위로받고 싶은 사람




함께 읽고 싶은 문장으로 하루를 시작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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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생각만으로 공간이 가득 차버릴 때가 있다.

오늘은, 그걸 비워내는 이야기.



한정되어 있는 공간인데

그곳에 생각까지 보태니

어느 순간, 가득 차서 과부하가 걸린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이미 꽉 찬 줄도 모르고

그저 꾸역꾸역 넣고 있었을 뿐일지도.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부터 실행해야 한다.


머릿속에 채워두고선

버리고, 비우기.


그것이 곧 채움과 비움의 지혜이자

아마도... 행복의 시작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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