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마음을 닮아간다




공간을 바라볼 때면, 지금 제 마음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책상 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계획을 적어둔 다이어리들, 작성 중인 소설 원고, 펜통에서 출장 나온 수십 자루의 볼펜, 그리고 한 장의 메모.

《 내일은 책상정리의 날! 흐트러진 마음도 함께 정리하자! 》

남들이 보면 이게 뭐가 지저분하냐고 할지 모르지만 사용한 물건은 곧바로 제자리에 두는 습관이 몸에 밴 저에겐 충분히 어수선해 보입니다.

무엇보다 이런 풍경은 제 마음 안이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과 미뤄둔 고민으로 가득하다는 신호처럼 느껴집니다.

마치 하루의 피로와 불안이 그대로 남은 것처럼 공간은 감정을 고스란히 비추는 창처럼 다가옵니다.


창문을 열어 바람을 들이고 책상 위를 닦기 시작하면 그동안 눈에 띄지 않던 자국들과 작은 흠결들이 하나씩 드러납니다.

불필요한 것들을 치우고 자리를 정돈하면 그 빈 공간이 마음속의 그늘까지 따뜻하게 정리되는 기분이 듭니다.

공간을 정리하는 일이 내 마음의 균형을 다시 맞추는 일이라는 걸 느껴본 사람이라면 분명 공감할 거예요.

어떤 날은 마음이 너무 무거워 청소조차 벅차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땐 사람들은 마음이 먼저 편해야 정리도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험도 분명히 있습니다.

공간을 먼저 정리하면 마음이 그걸 따라오기도 하니까요.


며칠 전, 집에 돌아와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저에게 책장 아래 쓰러져 있는 책들이 묘한 불안감을 일으켰습니다.

처분하려고 모아둔 책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일 나도 이렇게 무너질까?

그런 생각이 들던 순간, 불안이 방 안 가득 번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작은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청소기를 돌리고 책들을 분류해 책장 옆에 낮게, 가지런히 쌓아두었습니다.

조금씩 공간이 정돈된 풍경으로 바뀌었고 그때 문득 그 공간이 먼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마음속의 불안이 한 겹 벗겨졌고 눈앞의 무질서가 정리되자 마음 안의 혼란도 조용히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공간은 그렇습니다.

마음을 닮습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서로 맞닿아 있고 보이는 것을 바꾸면 보이지 않는 것들도 따라 움직입니다.

그 변화는 작고 사소해 보이지만 결국 일상의 전체 분위기를 바꿔놓습니다.

지금 마음이 복잡하다면 거창한 해답을 찾기보다 곁의 공간부터 살펴보는 건 어떨까요?

내 옆에 있는 물건이 정말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불안을 가리기 위해 던져둔 무언가인지.

공간을 다듬는 일은 결국 내 마음 한 켠을 다시 어루만지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그 섬세한 정돈이 삶 전체를 조용히, 부드럽게 만드는 힘이 되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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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 공주 - 그림 형제의 기묘한 이야기

저자 그림 형제

인디고(글담)

2010-09-25

원제 : Schneewittchen (1812년)

소설 > 독일소설




순진함은 때로 가장 큰 위험에 노출되는 조건이 된다.




■ 책 속 밑줄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여왕님, 당신은 아름답지만 백설 공주가 더 예쁩니다."


사과는 교묘하게도 붉은 쪽에만 독이 들어 있었습니다.

백설 공주는 한입을 베어 물자마자 죽은 듯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왕비는 표독스러운 눈길로 백설 공주를 노려보더니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습니다.

"눈처럼 희고 피처럼 붉고 흑단처럼 까만 백설 공주야! 이번엔 난쟁이들도 널 살려내진 못할 게다!"



공주는 개구리를 집어 들고는 벽에다 있는 힘껏 내던졌습니다.

"이젠 푹 쉴 수 있을 거다. 이 징글징글한 개구리야!

하지만 개구리가 바닥에 떨어진 순간! 개구리는 아름다운 왕자로 변했습니다.

왕자는 못된 마녀의 마법에 걸려 개구리가 되었고 공주만이 왕자의 비극적인 운명을 되돌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며, 날이 밝으면 자신의 왕국으로 공주를 데려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 끌림의 이유


이 책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백설 공주』와는 다릅니다.

더 어둡고 더 현실적이며 더 인간적인 이야기입니다.

순진함과 욕망, 질투와 권력, 죽음과 생명 사이를 오가는 상징들이 어린 시절과는 전혀 다른 깊이로 다가왔습니다.

특히 독사과나 거울 같은 장치들이 한 인간의 욕망, 자격지심, 불안정한 자아를 상징하는 도구로 읽히며 동화라는 장르가 지닌 힘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 간밤의 단상


주말에 책장 정리를 하다 눈에 띈 몇 권을 꺼내어 이번 주에 다시 읽는 중입니다.

『백설 공주』가 뜬금없긴 하지만 읽은 지 꽤 된 것 같아 오랜만에 펼쳐보았습니다.

참고로 제가 오늘 리뷰하고자 하는 『백설 공주』는 흔히들 아는 착한 동화가 아닙니다.

그림 형제의 원본에 충실한 책으로 15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동화 「신데렐라」 후반부에서 신데렐라의 언니들은 유리 구두를 신기 위해 억지로 발을 집어넣으려 하지만 결국 들어가질 않아 포기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 원작에서 언니들은 유리 구두를 어떻게든 신기 위해 발뒤꿈치를 자르고 피를 흘린답니다. (후덜덜)

또한 새에게 눈을 쪼여 장님이 되면서 제대로 된 인과응보의 결말을 맞이하게 되죠.

그림 형제는 이것도 동화의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하여 이를 미화시키기보다는 인간의 욕망이 드러나 있는 잔인한 부분은 남겨두었습니다.


어릴 적엔 왕비가 왜 이렇게 나빴을까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읽은 『백설 공주』는 훨씬 복잡하고 슬프고 무서운 이야기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왕비는 단지 못된 존재가 아니라 사라져 가는 권위와 시들어가는 아름다움을 극단적으로 붙잡으려 했던 한 인간의 초상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백설 공주 역시 더 이상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말없이 당하고 당했지만 결국 살아남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 끝내 살아남는다는 서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지금은 알 것만 같습니다.

무고함이 살아남는 방식은 언제나 순진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끝까지 존재하는 사실을요.



■ 건넴의 대상


우리가 아는 동화 속 숨겨진 이면이 궁금한 분

동화를 통해 인간의 본성에 질문을 던지고 싶은 분

순진함과 악의 경계에 대해 사유하고 싶은 분




이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문장이나 순간이 있다면 공감(♥)과 댓글로 나눠주세요.

당신의 감상이 더해지면 이 공간은 조금 더 깊고 따뜻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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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투스

저자 도리스 메르틴

다산초당

2023-03-24

원제 : Habitus

인문학 > 교양 인문학




결국 우리는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된다.




■ 책 속 밑줄


【심리자본】

늘 같은 곳에 머물지 마라

회복탄력성의 중요성

긴장을 드러내지 말고 불평하지 마라

야심이 가능성을 만든다

관대함이 품위와 부를 끌어당긴다

높은 목표는 안전한 환경에서 만들어진다

올바른 품성이 성공을 유지시킨다

죽은 후에도 성공은 남아야 한다


【문화자본】

가장 갖기 어려운 자본

지위가 취향을 결정한다

프라다와 샤넬 대신 유기농과 자전거

프랑스어, 피아노, 축구 vs 그리스어, 바이올린, 골프

격식과 무례함

세계를 집으로, 지역을 고향으로

소탈해 보이는 기술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되, 뿌리를 인정하라


【지식자본】

좋은 교육의 중요성

생각보다 더 중요한 졸업장

지식이 능력이 될 때까지

나는 무엇에 심장이 뛰는가

폭넓은 관심이 시야를 넓힌다

창의성은 신의 선물이 아니다

남들이 모르는 정보에 접근하라

모든 차원에서 지식을 확장하라


【경제자본】

모두가 '아직 부족하다'

아무튼, 돈이 없으면 불행하다

돈을 다루는 방식이 품격을 결정한다

돈은 명품가방이 아닌 자유를 선사한다

백만장자처럼 생각하라

이웃집 부자는 고급 SUV를 타지 않는다

다른 6가지 자본을 얻기 위한 소비

지원을 받되, 지원에 의존하지 말 것

위로 도약하려면 우선 자립부터 해야 한다


【신체자본】

인생은 외모가 출중한 사람에게 유리한 게임

적당히 느슨하게 혹은 빈틈없이 단정하게

과시와 지위 상징은 필요 없다

자연스러운 주름의 미덕

진정한 보스는 마라톤을 즐긴다

당신의 신체를 가장 소중한 자본으로 대하라


【언어자본】

내가 쓰는 언어가 내 지위를 드러낸다

무엇을, 어디까지,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말하지 말고 보여라

구체적으로, 호의적으로, 해결 지향적으로

내용은 명료하게, 목소리는 정중하게

우두머리와의 스몰토크

언어적 공간 확보

나와 타인의 가치를 동시에 높여라


【사회자본】

타고난 출신을 받아들일 것

주변 사람이 당신을 완성한다

무리에 자연스럽게 소속되는 기술

패거리와 한통속 혹은 동맹과 커뮤니티

연락처 개수보다 중요한 것

뒤에서 밀어주는 손, 멘토

영향력을 원하면 눈에 띄어라

권력, 지위, 가시성: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

위로 도약하려면 관계를 만들어라



성격은 변하지 않지만, 아비투스는 바뀔 수 있다. 우리는 익숙한 감정 반응이나 행동 패턴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자존감은 자신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진정한 변화는 엄청난 결심보다, 미세한 의식의 방향 전환에서 시작된다. 아비투스는 그렇게 우리의 무의식적 삶을 천천히 바꿔간다.



■ 끌림의 이유


아비투스라는 단어는 낯설지만 동시에 익숙합니다.

저자는 이를 단순한 습관이 아닌 몸에 밴 태도, 감정의 반응 방식, 무의식의 움직임까지 포함한 삶의 구조로 풀어냅니다.


그동안 왜 그런 반응을 보였던 것일까?

왜 같은 상황 속, 같은 감정에 반복해서 갇히는 것일까?

그 모든 질문 앞에 이 책은 조용하고도 깊은 길잡이가 되어줍니다.



■ 간밤의 단상


아비투스란 세상을 사는 방식과 태도를 의미합니다.

인생 설계부터 사고 및 생활방식, 말투, 사회적 지위, 성숙한 삶 등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지요.


문득 "나는 어떤 패턴에 갇혀 있는 사람일까?"하고 제게 되물어 보았습니다.

솔직히 겉으로 괜찮아 보여도 사소한 일에도 쉽게 상처받고 자책하는 저를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아비투스』는 바꿔야 할 나를 지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응과 그 감정도 결국 네 자신이다라고 다정하게 끌어안으며 그 속에서 천천히 벗어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합니다.


아비투스는 사회적 지위의 결과이자 표현이기에 우리의 사회적 지위가 자연스레 드러나게 됩니다.

모든 인간은 공평한 조건 하에 태어나지 않습니다.

각자 다른 조건을 가지고 삶을 시작하기에 성공에 유리한 아비투스를 많게 혹은 적게 익히게 되죠.

상류층의 아비투스가 더 많은 명성을 얻게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모든 것이 돈으로만 결정되지 않습니다.

의미있는 삶, 영향력 등 다른 조건들이 돈만큼, 그 이상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에 우리는 이를 눈여겨보는 것이 좋습니다.


아비투스는 단순한 습관의 교정이 아닙니다.

나를 이해하고 나와 화해하고 나를 더 진심으로 대하는 태도입니다.

어쩌면 삶은 우리가 반응하는 방식만 바꿔도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 건넴의 대상


겉으론 괜찮아 보여도 속이 복잡한 성향을 가진 분

자신을 반복적으로 탓하며 지쳐 있는 분

자기 자신을 천천히 이해하고 싶은 분




이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문장이나 순간이 있다면 공감(♥)과 댓글로 나눠주세요.

당신의 감상이 더해지면 이 공간은 조금 더 깊고 따뜻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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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지금 어떤 역경을 마주하고 있더라도 이 점만은 꼭 기억하길 바란다. 삶이라는 캔버스는 매일 우리가 겪는 경험과 행동, 반응과 감정으로 채워지며, 그 붓을 움직이는 것은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ㅡ 오프라 윈프리,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




■ 하나의 사유


이 문장을 읽고 나서 마음 어딘가에 조용히 내려앉는 따뜻한 다짐 하나가 생겼습니다.

'내 삶을 그리는 건, 결국 나다.'


우리는 종종 현실의 벽 앞에서 지치고 삶이 내 의지 바깥에서 결정되는 것처럼 느끼곤 합니다.

하지만 오프라 윈프리는 이 문장을 통해 우리가 매일의 선택으로 인생을 빚고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워줍니다.

감정 하나, 생각 하나, 행동 하나가 오늘의 나를 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다시 떠올리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불완전하고 지우고 싶은 날들이 있어도 우리는 매일 새 캔버스를 만납니다.

붓을 다시 드는 용기만 있다면 어떤 날도 나답게 덧칠할 수 있겠지요.

삶은 타인의 손이 아닌, 내 손 안의 붓으로 그려낸 나만의 작품입니다.

지금 내 삶이 어떤 색으로 칠해져 있든 붓을 쥔 나의 손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충분합니다.




오늘, 이 문장이 떠오르는 사람이 있나요?

그렇다면 그 사람에게 이 글을 조용히 건네주세요.

말 한 줄, 문장 하나가 누군가의 오늘을 다르게 만들 수 있으니까요.


다음 주엔 조금 더 따뜻하고 단단한 한 문장으로 다시 찾아올게요.

당신의 일요일에, 이 조용한 사유가 잔잔히 머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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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저자 메리 앤 섀퍼, 애니 배로스

이덴슬리벨

2025-06-16

원제 : The Guernsey Literary and Potato Peel Pie Society (2008년)

소설 > 영미소설




책을 읽고 누군가와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삶을 함께 살아내는 일이다.




■ 책 속 밑줄


그래서 제가 독서를 좋아하는 거예요. 책 속의 작은 것 하나가 관심을 끌고, 그 작은 것이 다른 책으로 이어지고, 거기서 발견한 또 하나의 단편으로 다시 새로운 책을 찾는 거죠. 실로 기하급수적인 진행이랄까요. 여기엔 가시적인 한계도 없고, 순수한 즐거움 외에는 다른 목적도 없어요. 책 표지에 피처럼 보이는 붉은 얼룩은 핏자국이 맞아요. 종이칼을 다루다가 그만 방심했어요. 동봉한 엽서의 찰스 램 초상화는 그의 친구인 윌리엄 해즐릿(1778~1830. 영국의 평론가 겸 수필가)이 그린 거예요.



어릴 때 저는 말수가 적은 편이었습니다. 말을 심하게 더듬었거든요. 게다가 파티 같은 데도 별로 참석한 적이 없었습니다. 진실을 말씀드리자면, 저를 파티에 초대한 사람은 모저리 부인이 처음이었습니다. 돼지구이를 맛볼 생각에 그 초대에 응했습니다만 실은 고깃덩이를 몇 조각 얻어 집에서 혼자 먹을 작정이었습니다. 그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바로 그 파티가 건지섬의 감자껍질파이 문학회 첫 모임인 셈이었으니까요. 당시엔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늦은 밤이면 엘리자베스는 저에게 건지섬과 북클럽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저에겐 마치 천국같이 들렸습니다. 잠자리에 누우면 불결한 냄새와 병균이 떠다니는 눅눅한 공기 속에서 숨을 쉬어야 했지만, 엘리자베스가 이야기를 할 때면 깨끗하고 상쾌한 바닷바람과 뜨거운 태양 아래 익어가는 과일 향기를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제 기억으로는 라벤스부뤼크에서 햇빛이 비친 날은 단 하루도 없었습니다. 여러분의 문학회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도 아주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돼지구이 이야기를 들을 때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습니다. 하지만 웃지 않았지요. 막사에서 웃으면 처벌을 받기 때문입니다.



나는 도시를 관찰해야겠다고 생각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레미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있었지만 얼마나 슬퍼 보이던지. 그때 갑자기, 나는 깨달았다! 드디어 알아낸 것이다! 도시는 레미가 떠나기를 원치 않는다. 그녀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까 봐 두려운 것이다. 그는 레미를 사랑하지만 천성이 수줍은 탓에 고백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도시와 다르다. 내가 레미에게 도시의 마음을 전하면 된다. 레미는 프랑스 여자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 것이다. 레미는 자기도 도시에게 호감이 있다는 걸 알릴 것이다. 그러면 둘이 결혼할 수 있고, 그녀는 파리로 떠나 살 필요가 없다. 나에게 상상력이 없다는 것이, 그렇기 때문에 사물을 명확히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편지는 사람을 가깝게 만들어줍니다.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말을 주고받을 수는 없지만 우리는 한 문장 한 문장 속에 마음을 담을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고통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서로를 어떻게 지켜낼 수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책이 우리를 살렸어요. 정말이에요.



인간이 잃지 말아야 할 단 하나의 태도, 그것은 상상력입니다. 상상은 우리가 삶을 견디게 합니다.



■ 끌림의 이유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건지라는 섬을 몰랐습니다.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 점령 하에 있었던 영국 해협의 작은 섬, 건지.

그 고립의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책을 읽고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을 지켜냅니다.

전쟁의 폐허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지만 그 속에 담긴 것은 오히려 사람, 관계, 기억, 회복, 책이 주는 온기입니다.

특이하다면 그 모든 정서가 편지라는 형식을 통해 섬세하게 이어집니다.



■ 간밤의 단상


전쟁은 끝났지만 상처는 아직 마음 곳곳에 남아 있는 시기, 그 속에서 주고받는 편지 한 통, 한 통이 조용히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저는 편지 쓰기를 참 좋아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자주 편지를 쓰면서 편지의 참맛을 알게 되어 지금까지도 가까운 사람에게 마음을 담은 글을 써 내려갑니다.

그렇다보니 예쁜 편지지나 엽서가 있으면 꼭 소장하곤 합니다.

엽서를 모으고 있는 큰 바인더는 벌써 두 개나 채워졌고 각종 편지지는 물론 스티커, 실링왁스들까지 각각 큰 박스에 한가득씩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받은 편지는 오래된 빈티지 박스에 고이 모아두고 있지요.

제가 이토록 진심인 이유는, 편지에는 언제나 나 자신이 있고 상대방이 있고 아직 닿지 못한 진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의 사람들은 모두 제각각의 상처를 품고 있습니다.

그러나 책과 편지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기억하고 조용히 회복해 나갑니다.

그들의 유쾌한 태도는 무거운 현실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사람을 다시 믿게 해주는 어떤 희망처럼 느껴졌습니다.


제가 시간이 부족해 올리진 못하지만 하루에 최소 2권의 책을 올리고 있습니다.

6월을 지난 현 시점 벌써 380여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올해 책으로 스트레스를 풀다 보니 일년치의 책을 반년만에 읽게 되었는데, 어쨌든 누군가와 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건 참 소중한 삶의 일부입니다.

가장 힘든 시기, 책은 우리를 살릴 수 있습니다.



■ 건넴의 대상


전쟁의 잔상 속에서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함을 보고 싶은 분

책이 사람을 살린다는 믿음을 확인하고 싶은 분

편지라는 형식 안에서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싶은 분




이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문장이나 순간이 있다면 공감(♥)과 댓글로 나눠주세요.

당신의 감상이 더해지면 이 공간은 조금 더 깊고 따뜻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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