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팔레트 명화의 색
알 구리 지음, 이유민 옮김, 박남 감수 / EJONG(이종문화사)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화가의 팔레트 명화의 색

저자 알 구리

EJONG(이종문화사)

2015-08-03

예술/대중문화 > 미술





-고전부터 현대까지, 색채의 발전과 표현 방식에 대해

-화가들이 색을 통해 관객과 교감하려는 노력과 연구를 다룬 책





미술은 제겐 동경의 분야입니다.

그래서인지 단순히 감상하는 것을 넘어 작품 속에 담긴 색채와 화가의 의도에 대해 깊이 탐구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제가 아끼는 책 중 하나인 『화가의 팔레트 명화의 색』을 오랜만에 펼친 김에 다시 한 번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색채의 역사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의 색채 역사를 간략하면서도 핵심적으로 서술되어 있어 미술 입문자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 암기로 끝냈던 미술 지식이 이제는 배우고 싶어서 스스로 탐구하게 되니 책 속의 내용이 더욱 흥미롭고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특히 색조 회화, 점묘법, 현대적 심리 표현과 같은 색 표현 방식의 발전 과정을 정리한 부분이 매우 유익했습니다.



화가와 색채의 대화


화가들에게 있어 색은 단순히 물감을 칠하는 작업을 넘어선 도전입니다.

그림 속의 '파란색 의자'를 묘사한다고 할 때, 화가들은 단순히 '파란색'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한 부족함을 알고 있기에 이들은 보는 이들이 느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실제의 색을 표현하기 위해 연구를 거듭합니다.

프탈로 블루나 여름 하늘빛과 같은 세밀한 표현을 통해 관람자의 기억과 감각을 자극하는 것입니다.

이반 올브라이트와 같은 화가들의 사례를 통해 색채가 지닌 심리적, 영적인 힘에 대해 탐구합니다.

특히 그는 잔상의 개념을 활용하여 색채의 여운이 우리의 지각과 무의식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며 자신의 작업에 반영하였죠.

단순히 색을 쓰는 것이 아니라, 색 자체가 작품의 일부가 되는 예술적 접근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팔레트와 물감의 역사


현대에 우리는 수십 가지의 색을 쉽게 구매하고 혼합할 수 있지만 과거 화가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팔레트의 표면부터 물감의 혼합까지 모든 것이 섬세하게 연구되었죠.

그래서 과거 팔레트는 단순히 물감을 섞는 도구가 아닌 화가의 의도를 표현하는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하였습니다.

책에서는 이러한 물감의 역사와 사용법을 자세히 설명하며 색을 체계화하는 미학적 접근법도 소개합니다.





감각과 기억을 자극시키기 위해 화가들이 그간 색에 대해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하고 연구했을까요?

미술의 기술적 측면과 철학적 깊이를 모두 아울러 색채의 본질을 탐구하고 이를 통해 작품의 개성을 만들어가는 화가들의 여정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어 경외심이 절로 듭니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색을 통해 자신의 그림을 보는 이들과 교감하려는 화가들의 의도를 알게 되니 그림을 바라보는 제 시각도 조금은 달라졌었습니다.

고전부터 현대에 이르는 서양 회화 작품들을 통해 색의 역사와 사용법을 세세하게 조명하고 있는 『화가의 팔레트 명화의 색』.ᐟ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 또는 색채의 세계를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은 단순히 읽을거리를 넘어 새로운 영감을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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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나가 처음 만나는 법

저자 장영인

북하우스

2025-01-24

사회과학 > 법과 생활 > 생활법률





회사에서 남모르게 상사의 괴롭힘을 받고 있던 A씨는 고민에 빠졌다.

회사에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하고 싶지만, 주변에 사람이 없을 때만 괴롭히는 탓에 아무도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지 못하는 데다, 상사가 높은 실적으로 인정받고 있고 동료들과 관계도 워낙 좋아서 아무도 자기 말을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던 중 A씨는 인터넷에서 명찰처럼 생긴 녹음기를 발견하고 구매 버튼을 누른다.


직장인으로서 회사에서 부당한 일을 겪고 있다면,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좋을까? 상대방과 직접 부딪혀서 대화를 나누거나, 오해를 푸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회사에서는 그렇게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안에서는 항상 갈등이 발생하고, 직장에서 생긴 문제들은 대부분 복잡하다.


비밀 녹음을 처벌하는 근거는 통신비밀보호법이다. 그런데 통신비밀보호법은 '도청'하는 것을 처벌한다. 즉 내가 들을 수 있는 대화가 아닌데도 녹음기 등의 장치를 사용해서 다른 사람의 대화를 엿듣는 것을 처벌하는 것이다. 이러한 통신비밀보호법의 규정에 따르면 남의 대화가 아닌 내가 하는 대화는 상대방에게 말하지 않고 몰래 녹음하더라도 처벌 대상이 아니다.



C씨는 여느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근무하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오래 다닌 직장인이라 동료들과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이 할 정도로 가깝다. 하지만 그런 C씨가 동료들에게 절대 비밀로 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퇴근 직후 다른 직장으로 다시 출근한다는 사실이다. 동료 중 아무도 투잡을 하지 않고, 왠지 회사에 투잡 사실이 알려지면 회사 일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여겨져 인사고과를 불리하게 받을 것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C씨는 내심 비밀로 해야 한다는 현실에 억울한 기분도 들었다. C씨가 하는 일은 집 근처 호프집에서 서너 시간 정도 서빙을 하는 것이 전부다. 회사와 동종 업체도 아니고, 근무 시간도 짧다. 얼마 전 결혼한 뒤 경제적인 책임감을 크게 느끼게 되어 젊을 때 많이 일해서 돈을 모으자는 생각으로 하게 된 것인데, 단지 열심히 사는 것인데도 회사 눈치를 봐야 하는 현실이 서럽게 느껴졌다.


최근 쿠팡 등 이커머스 플랫폼은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고객이 플랫폼에서 판매하는 제품을 홍보해주고, 그 홍보를 통해 실제로 매출이 발생하면 거래액의 일부를 수익으로 나누어주는 파트너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이런 파트너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여 부수입을 얻는 사례도 많다. 이 중 어떤 종류가 되었든 본업이 아닌 활동을 통해 수익을 얻는다면 그것이 바로 투잡이다. 투잡의 범위는 생각보다 아주 넓다.


실제로 많은 근로자는 투잡이 금지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많은 회사가 취업규칙이나 근로계약서에 투잡 금지 조항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겸직금지 또는 겸업금지 조항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겸직금지 조항은 불법인 걸까? 이에 대해서는 명확한 판례가 있다. 판례에 따르면, 퇴근 이후 시간은 사생활의 범주이기 때문에 그 시간에도 다른 일을 하지 못하도록 전면적·포괄적으로 겸직을 금지하면 이는 근로자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어서 부당하다. 다만 근로자의 겸직 활동이 무제한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회사 업무에 지장을 주거나 기업 질서에 해를 끼친다면 그 범위에서는 제한할 수 있다.



서울에서 자취를 하는 J씨는 살고 있던 집의 전세 계약 만료를 앞두고 걱정이 많다. 최근에 다른 지역으로 취업하게 되어 직장 근처로 이사해야 하는데, 집주인이 보증금을 마련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 아닌가. 전셋값이 많이 떨어져 그렇다는 것이다. 불안해진 J씨는 보증금을 돌려받을 방법을 찾고자 변호사를 찾아가 상담했다. 그러던 중 주택에 다른 담보까지 설정되어 있어서 경매에 넘기더라도 받을 돈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우선 적어도 상대방의 인적사항(이름, 연락처, 주소 등)을 알아야 하고, 다음으로 그가 가진 재산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특히 돈과 관련된 모든 법적 분쟁에서는 후자가 핵심이다.

많은 사람은 돈 받을 사람이 재판에서 이기기만 하면 모든 일이 해결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재판에서 이겼다 해도 실제로 내 주머니에 바로 돈이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돈을 빌린 사람의 통장에 있는 돈이나 그 사람이 가진 부동산 등 재산을 찾아서 강제로 가져오는 절차, 즉 '집행'이라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내가 아무리 돈을 빌려준 내역이 있고, 심지어 재판에서 이겼다고 해도 상대방 이름으로 된 재산이 없거나 그것을 찾지 못하면 영영 돈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전세 세입자나 임차인은 아주 유리하다. 위의 두 가지 정보를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부터 모두 확보하기 때문이다. 개인 간 그 어떤 금전 거래보다 안전하게 거래할 수 있는 계약인 셈이다.


아주 쉽고 간단한데 의외로 확인하지 않는 정보가 있다. 바로 집주인이 실제로 집주인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모든 부동산의 실제 소유자 정보는 등기사항전부증명서를 열람하면 확인할 수 있다.



내년 결혼을 앞두고 결혼 준비가 한창인 A씨. 그런데 친구인 B씨가 당부하듯이 "혼인신고는 최대한 늦게 해! 알지?"하는 것이 아닌가? 결혼과 혼인신고를 따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 A씨가 놀라면서 "왜 혼인신고를 미뤄야 하느냐?"고 묻자, B씨가 말하길, "연애 중엔 마냥 좋지? 결혼하면 서로 편해지고, 생활 습관 차이도 커서 엄청 싸워. 확 없었던 일로 물러버리고 싶은 날이 얼마나 많은데? 혼인신고만 안 했으면 그냥 헤어지면 되니까 얼마나 편해" 하는 것이 아닌가. 그날 이후 고민이 깊어진 A씨는 변호사를 찾았다.


이렇게 우리 법은 일단 성립된 혼인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아주 강하다. 결혼식을 올린 뒤에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위장 미혼'이 바람직하다고 할 순 없겠지만, 결혼을 고려하면서 혼인신고의 무게감을 제대로 알고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은 중요하다. 혼인신고의 효과는 한마디로 '강력한 결합'을 만들어주는 것인데, 이것은 나와 배우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나의 원가족과 앞으로 생길 수 있는 자녀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국가가 가족에게 제공하는 제도적 혜택을 누리는 유일한 방법은 혼인신고를 하는 것이다. 가족이 되면 재산을 가족 단위로 유지할 수 있게 되고, 생계도 보호받는다.


결혼을 앞둔 사람들 사이에서 혼인신고를 하면 결혼을 무르기 어려우니 살아보고 나서 혼인신고를 하라는 말이 돌곤 한다. 혼인신고를 하면 서로에게 애써 노력하지 않아 긴장감이 사라진다거나, 결혼 전에는 몰랐던 단점들을 발견해도 쉽게 헤어지기 힘들기 때문에 결혼 이력을 남기지 않고 조용히 헤어질 방법으로 혼인신고를 늦추려는 것 같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혼인신고를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것은 아니다. 혼인신고가 불러오는 효과는 막연히 헤어지기 어려워진다는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인정하는 가족이 되어 국가의 제도권에 들어갈 때, 실제로 내 삶에 어떤 변화가 오는지 알아보고 현명한 선택을 하자.



K씨는 벌써 5년째 로펌에서 디자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디자이너다. 손 그림부터 웹디자인, 편집디자인까지, 디자인이 필요한 모든 업무를 할 수 있는 능력자로 통한다. 그런 K씨의 최대 걱정은 바로 생성형 AI의 등장이다. 인공지능에 필요한 디자인을 간단히 설명하기만 하면 몇 초 만에 결과물이 완성되는 것을 보고 K씨와 동료들은 적잖이 놀랐다. 심지어 웬만한 주니어 디자이너의 작업물보다 완성도가 높은 것이 아닌가? 그러나 K씨에게 인공지능은 장애가 아닌 기회였다. 그는 이내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한 표정으로, 'AI를 이용하면 더 많은 디자인을 더 빨리 생산해낼 수 있겠는데?!'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아직 한가지 고민이 남았다. AI가 디자인한 결과물을 그대로 이용해서 업무에 이용해도 저작권 등에 문제가 없는 걸까?


생성형 인공지능 Generative AI이 등장한 일은 여전히 중요한 화두이다.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이란 대규모 데이터를 기반으로 딥러닝 기술을 활용하여 콘텐츠를 생성해내는 기술이다. 텍스트만이 아니라 이미지 제작도 가능하다. 사용자가 텍스트로 프롬프트(생성형 인공지능에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는지 자연어로 설명하는 행위)만 입력하면, 그 즉시 어울리는 이미지는 만들어주는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이를 적용한 프레젠테이션 파일이나, 웹사이트까지도 만들어준다.


놀라운 점은 지금까지 어떤 기술도 대체할 수 없었던, 인간의 고유한 영역이라고 여겨져온 창의성의 영역마저도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생각의 꼬리를 물며 아이디어를 확장해가는 방식의 작업도 가능하고, 아이디어를 시각화하는 것도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수초 안에 완성한다.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한 창작 활동 영역은 그림, 글쓰기, 작곡, 프로그래밍 등 분야를 가리지 않으며, 그 수준도 날로 정교해지고 있다. 비전문가도 AI 툴을 활용하여 수준급의 예술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문제는 창작물은 저작권법에 따른 규율을 받는다는 점이다. 인공지능이 창작의 영역까지 진입하면서 관련 법적 쟁점도 날로 화두가 되고 있다. 과연 인공지능으로 만든 창작물은 저작권법의 적용을 받는 대상인가? 인공지능이 인간의 창작물을 활용하여 스스로 학습한 뒤 만들어낸 결과물은 어떠한가? 인공지능 기술이 워낙 최근에 등장한 기술이라 아직 법과 제도가 정비되지 않았고, 법적으로 판단받은 사례도 충분히 쌓이지 않았다.


인간이 개입하지 않고 인공지능만으로 제작한 콘텐츠에 저작권이 없다고 하더라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확실하지 않다. 인공지능이 콘텐츠를 생성하는 원리는 이미 존재하는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하고 이것을 토대로 콘텐츠를 생성해내는 것인데, 이 데이터에는 타인의 저작물이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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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팔레트 명화의 색
저자 알 구리
EJONG(이종문화사)
2015-08-03
예술/대중문화 > 미술





회화를 직면하였을 때 작가에게 주어진 가장 어려운 작업은 어떻게 해야 독자들이 경험하는 실제 색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묘사할 수 있는가이다. 화가들은 그림 속에 있는 의자는 파란색이라는 말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 머릿속에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파란색은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는 것과 다르고, 위에서 언급한 상상속의 의자와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그림과 실제로 본 것을 일치시키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기억 속에 있는 특정한 파란색에 대한 기억을 끌어내는 좀 더 정확하고 공감할 수 있는 언어가 필요하다. 의자가 프탈로 블루(phthalo blue)라고 말하는 게 좋을까, 아니면 어느 맑은 여름날 오후의 하늘색이라고 하는 게 좋을까(완전히 다른 두 파란색)? 언어는 보는 것을 표현하기 어려운 매체이다. 단어를 통해 색을 상기시킬수 있는 쉬운 해결책은 없다.

색의 신비로움과 불확실성을 작업의 근간으로 하고자 각자의 방식으로 노력한 두 예술가들이 있다. 첫 번째 작가 이반 올브라이트(lvan Albright, 1897-1983년)는 색이 지닌 영적인 힘과 심리적 영향력을 굳게 믿었다. 그는 지각이 색의 경험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반대로 그것이 관람자와 작품과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는데 그의 긴 작업생애를 바쳤다. 미술학교에서 졸업한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작가였던 그는 ˝시각. 청각 그리고 감각이 색의 측면을 [예술 작품에 있어서] 어느 정도까지 변화시키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올브라이트는 1920년대부터 자기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수많은 공책에 실험을 통해 발견한 것들과 철학적 의문사항들을 기록하고 그 페이지를 팔레트의 테스트 견본으로 사용하였다. 올브라이트가 가장 매료된 현상은 잔상이었다. 그는 종종 단색을 응시하고나서 흰색의 종이를 바라보는 실험을 통해 망막에 여전히 남아 지각되는 색채적 반향 혹은 잔여 이미지의 색을 식별하는데 시간을보내곤 하였다.
이반 올브라이트는 말빈(Malvin)이라는 일란성 쌍둥이 형제가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말빈은 이반의 그늘에 가려 알려지지 않은 인물로 심리적으로는 개연성이 없는 스타일의 작업을 하였다. 여기서 색과 또 하나의 색인 보색은 그의 전기적 삶, 공예의 전통에서 가족의 역할 및 차이를 지각하는데 있어서 색의 역할을 재현하고 암시하는 은유적 자화상이 되었다. 올브라이트는 잔상이 항상 그들 스스로를 겹치고 있고 무의식적으로 세상에 대한 우리의 완전한 이해에 영향을 주는 것이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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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

저자 이인규, 한지민, 김지혜, 오지민, 이주란

북스고

2025-01-22

자기계발 > 리더십

자기계발 > 성공 > 성공학

경제경영 > 기업 경영 > 조직관리





리더십은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진화해 왔습니다. 과거에는 리더가 명령을 내리고 조직을 통제하는 전통적인 리더십 스타일이 중심을 이루었다면, 현재의 리더십은 유연성과 공감을 바탕으로 협력하며 변화에 적응하고 팀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방식으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 글로벌화 그리고 다양성과 포용성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면서 리더의 역할과 스타일도 변화하게 된 것이죠.



최근 학회와 기업 관리자 대상의 리더십 세미나에서는 공유 리더십, 참여적 리더십과 같은 협력 중심의 리더십 모델이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공유 리더십은 팀 내에서 특정 개인이 아닌 여러 구성원이 필요에 따라 리더 역할을 공유하는 형태를 의미합니다. 반면 참여적 리더십은 리더가 구성원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고, 의사 결정 과정에 구성원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도록 이끄는 방식을 강조하죠. 이러한 모델들은 권한을 분산하고 구성원의 적극적인 참여를 장려하여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도 조직이 유연성과 혁신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는 곧 구성원을 신뢰하며 조율하고 변화의 방향성을 제시하며 조직 내 협력 문화를 이끌어갈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는 뜻과 같습니다.



리더의 역할은 권한과 책임감이 동시에 주어지는, 매우 중요하고도 무거운 역할을 뜻합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지요.

"리더는 되고 싶다고 해서 누구나 될 수 있는 것도, 쉽게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리더십은 단순히 승진이 아니라 사람과 조직을 이끌어 가는 더 큰 책임과 도전을 받아들이는 과정입니다. 리더로서 마주하는 과제와 도전에 대해 누군가 정답을 제시해 주는 일은 없습니다. 리더십은 단순한 기술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다듬어지고,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스스로 깨닫고 성장해 가는 과정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조직의 성과와 운영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의사 결정 방식과 커뮤니케이션 방식입니다. 과거에는 리더가 중심이 되어 독점적으로 의사 결정을 내리고 명령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리더의 생각이 구성원의 생각이 되고 그 생각이 구성원의 행동으로 이어지는 구조였습니다.



반면 오늘날의 리더십에서는 참여형 의사 결정과 협력적 커뮤니케이션이 강조됩니다. 리더가 모든 결정을 독점하기보다는 구성원의 의견과 아이디어를 경청하고 반영하며 결정을 내리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접근법은 구성원의 자율성과 책임감을 강화하고, 더 창의적이고 효과적인 해결책을 도출할 수 있게 합니다.



기업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특히 기업의 리더는 자신뿐만 아니라 능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특히 기업의 리더는 자신뿐만 아니라 구성원이 자기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또한 리더는 변화에 대한 민감한 인식과 신속한 대응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시장의 흐름을 읽고 기술 발전과 고객의 요구에 맞춰 끊임없이 혁신을 이끌어가는 리더십만이 기업을 미래로 이끌고 지속적인 성장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과를 달성하기 위한 시작은 명확한 목표 설정에서 출발합니다. 또한 성과를 잘 만들어 낼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합니다.

마치 목적지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노선도와 교통 규칙처럼 말입니다.



리더십 전문가 존 맥스웰은 조직의 성과는 그 조직을 이끌어 가는 리더의 리더십 크기에 비례한다는 '뚜껑의 법칙'을 설명하며, 조직원이 아무리 훌륭하고 뛰어나다 하더라도 용기를 닫는 뚜껑이 너무 작으면 병목 현상처럼 막혀 개인이 가진 여량을 충분히 다 발휘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용기가 커지려면 그 뚜껑의 크기도 비례해서 함께 커져야 합니다. 리더십이 뛰어난 리더와 함께 일하면 자기 능력과 역량보다 더 많은 것을 해내고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며 더 열정적으로 일하게 됩니다.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이 존경받는 리더는 없습니다. 모든 리더는 시행착오를 통해 자신의 리더십을 다듬고 성장하며 진정한 리더로 거듭납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회복력입니다. 실패라고 느껴질지라도 어떻게 해석하고 무엇을 배울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리더십의 크기가 결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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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저자 한강

문학동네

2021-09-09

소설 > 한국소설





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내가 서 있는 벌판의 한쪽 끝은 아트막한 산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등성이에서부터 이편 아래쪽까지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이 심겨 있었다. 여러 연령대의 사람들처럼 조금씩 다른 키에, 철길 침목 정도의 굵기를 가진 나무들이었다. 하지만 침목처럼 곧지 않고 조금씩 기울거나 휘어 있어서, 마치 수천 명의 남녀들과 야윈 아이들이 어깨를 웅크린 채 눈을 맞고 있는 것 같았다.

묘지가 여기 있었나, 나는 생각했다.

이 나무들이 다 묘비인가.



봉분 아래의 뼈들을 휩쓸어아기 위해 밀려들어오던 그 시퍼런 바다가, 학살당한 사람들과 그후의 시간에 대한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고 그때 처음 생각했다. 다만 개인적인 예언이었는지도 모른다고. 물에 잠긴 무덤들과 침묵하는 묘비들로 이뤄진 그곳이, 앞으로 남겨질 내 삶을 당겨 말해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그러니까 바로 지금을.



생명이 얼마나 약한 것인지 그때 실감했다. 저 살과 장기와 뼈와 목숨 들이 얼마나 쉽게 부서지고 끊어져버릴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 단 한 번의 선택으로.

그렇게 죽음이 나를 비껴갔다. 충돌할 줄 알았던 소행성이 미세한 각도의 오차로 지구를 비껴 날아가듯이. 반성도, 주저도 없는 맹렬한 속력으로.



어떤 사람들은 떠날 때 자신이 가진 가장 예리한 칼을 꺼내든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가까웠기에 정확히 알고 있는, 상대의 가장 연한 부분을 베기 위해.

반쯤 넘어진 사람처럼 살고 싶지 않아, 당신처럼.

살고 싶어서 너를 떠나는 거야.

사는 것같이 살고 싶어서.



오랫동안 깊은 잠을 자지 못했으며 악몽과 생시가 불분명하게 뒤섞인 시기를 통과하고 있는 사람에게 믿기지 않는 장면이 포착될 때, 아마도 그의 첫번째 반응은 자신에 대한 의심일 것이다. 내가 정말 저것을 보고 있는가? 이 순간은 악몽의 일부가 아닌가? 나의 감각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



학살과 고문에 대해 쓰기로 마음먹었으면서, 언젠가 고통을 뿌리칠 수 있을 거라고, 모든 흔적들을 손쉽게 여읠 수 있을 거라고, 어떻게 나는 그토록 순진하게-뻔뻔스럽게-바라고 있었던 것일까?



처음부터 다시 써.

진짜 작별인사를, 제대로.

물잔에 빠뜨린 각설탕처럼 내 사적인 삶이 막 부스러지기 시작하던 지난해의 여름, 이후의 진짜 작별들이 아직 전조에 불과했던 시기에 '작별'이란 제목의 소설을 썼었다. 진눈깨비 속에 녹아서 사라지는 눈-여자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게 정말 마지막 인사일 순 없다.



우리의 모든 행위들은 목적을 가진다고, 애써 노력하는 모든 일들이 낱낱이 실패한다 해도 의미만은 남을 거라고 믿게 하는 침착한 힘이 그녀의 말씨와 몸짓에 배어 있었다.



눈은 거의 언제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 속력 때문일까, 아름다움 때문일까? 영원처럼 느린 속력으로 눈송이들이 허공에서 떨어질 때,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이 갑자기 뚜렷하게 구별된다. 어떤 사실들은 무섭도록 분명해진다.



이상하지, 눈은.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로 인선이 말했다.

어떻게 하늘에서 저런 게 내려오지.



이렇게 눈이 내리면 생각나. 내가 직접 본 것도 아닌데, 그 학교 운동장을 저녁까지 헤매 다녔다는 여자애가. 열일곱 살 먹은 언니가 어른인 줄 알고 그 소맷자락에, 눈을 뜨지도 감지도 못하고 그 팔에 매달려 걸었다는 열세 살 아이가.



인내와 체념, 슬픔과 불완전한 화해, 강인함과 쓸쓸함은 때로 비슷해 보인다. 어떤 사람의 얼굴과 몸짓에서 그 감정들을 구별하는 건 어렵다고, 어쩌면 당사자도 그것들을 정확히 분리해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눈처럼 가볍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눈에도 무게가 있다, 이 물방울만큼.

새처럼 가볍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그것들에게도 무게가 있다.



이상하다, 살아 있는 것과 닿았던 감각은. 불에 데었던 것도, 상처를 입은 것도 아닌데 살갗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전까지 내가 닿아보았던 어떤 생명체도 그들만큼 가볍지 않았다.



무엇을 생각하면 견딜 수 있나.

가슴에 활활 일어나는 불이 없다면.

기어이 돌아가 껴안을 네가 없다면.



모른다, 새들이 어떻게 잠들고 죽는지.

남은 빛이 사라질 때 목숨도 함께 끊어지는지.

전류 같은 생명이 새벽까지 남아 흐르기도 하는지.



내가 경험한 모든 것이 결정이 된다. 아무것도 더이상 아프지 않다. 정교한 형상을 펼친 눈송이들 같은 수백 수천의 순간들이 동시에 반짝인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지 모르겠다. 모든 고통과 기쁨, 사무치는 슬픔과 사랑이 서로에게 섞이지 않은 채 고스란히, 동시에 거대한 성운처럼 하나의 덩어리로 빛나고 있다.



잊지 않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 부드러움을 잊지 않겠다.



하지만 모든 게 끝난 건 아니야.

인선의 목소리가 그 열기 사이로 번졌다.

정말 헤어진 건 아니야, 아직은.



꿈이란 건 무서운 거야.

소리를 낮춰 나는 말한다.

아니, 수치스러운 거야. 자신도 모르게 모든 것을 폭로하니까.



하지만 확신할 수 있을까? 그런 지옥에서 살아난 뒤에도 우리가 상상하는 선택을 하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죽음이 이렇게 생생할 수 있나.

뺨에 닿은 눈이 이토록 차갑게 스밀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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