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생각만으로 공간이 가득 차버릴 때가 있다.

오늘은, 그걸 비워내는 이야기.



한정되어 있는 공간인데

그곳에 생각까지 보태니

어느 순간, 가득 차서 과부하가 걸린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이미 꽉 찬 줄도 모르고

그저 꾸역꾸역 넣고 있었을 뿐일지도.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부터 실행해야 한다.


머릿속에 채워두고선

버리고, 비우기.


그것이 곧 채움과 비움의 지혜이자

아마도... 행복의 시작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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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 시인의 대표 시 「꽃」, 이 한 줄의 시가 오늘의 나를 붙들었습니다.

오늘은 김춘수 시인의 꽃을 함께 읽으려 합니다.




꽃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해설 및 주제 분석


이 시는 존재의 인식과 관계의 형성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시의 중심에는 호명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단순한 호출이 아닌 존재의 재인식과 의미 부여의 행위를 상징합니다.

김춘수 시인은 이렇게 ‘이름 부르기’를 통해 관계의 시작, 존재의 완성 그리고 기억의 탄생을 그렸습습니다.

이름을 불러주는 행위는 타인과의 단절을 넘어, 존재가 존재로서 드러나는 결정적 순간이기도 합니다.

또한 마지막 구절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은 존재의 지속성과 관계의 진정성을 시적으로 함축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살아가는 것이 아닌,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의미 있게 존재하고 싶은 인간의 본질적인 갈망을 드러냅니다.

이 시는 실존주의 철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도 해석되며, 관계 속에서 나의 존재가 의미를 가지는 과정을 간결하고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 하나의 감상


시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당신은 누군가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준 적이 있나요?"라고.

오늘 저는 이 시에서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의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말을 건넨다는 것을 너무 가볍게 여기곤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제대로 불러주는 순간, 그 사람은 내 마음의 공간을 차지하는 의미 있는 존재가 됩니다.


이런 생각 들지 않으신가요?

나도 누군가에게 ‘꽃’이 되고 싶다.

그리고 누군가가 내 이름을, 내 진심을, 기억해주길.




이 시가 떠오르는 사람이 있나요?

그렇다면 그 사람에게 이 글을 공유해주세요.

오늘, 당신은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다음엔 나태주의 풀꽃을 함께 읽어보려고 합니다.

작고 소박한 시 한 줄이 건네는 위로를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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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얼 브레인

저자 이선 몰릭

상상스퀘어

2025-03-19

원제 : Co-Intelligence

자기계발 > 성공 > 성공학

경제경영 > 경제학 > 경제전망 > 세계 경제사

과학 > 기초과학/교양과학





AI 기술 발전이 어디를 향하는지는 나를 비롯해 그 누구도 정확히 말할 수 없다. 그런데 명확한 답을 내놓을 수는 없더라도, 유용한 가이드는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놀라운 점은 그다음 차례에 나올 단어를 예측하는 데 불과한 토큰 예측 시스템이 어째서 이처럼 비범한 능력을 보여 주는지 아무도 완벽히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언어와 그 바탕인 사고 패턴이 생각보다 더 단순하고 ‘법칙적’이며, LLM이 그런 사고 패턴의 숨겨진 진실을 발견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답은 여전히 불분명하다.



전 세계의 저임금 근로자들이 AI의 답변을 읽고 평가하기 위해 채용된다. 이때 근로자들은 AI 기업이 세상에 보여 주고 싶지 않은 종류의 콘텐츠에 노출된다. 촉박한 기한에 맞춰 끊임없이 밀려드는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결과물을 읽고 평가하느라 정신적인 피해를 보았다고 토로하는 근로자도 있었다. AI 기업 경영진은 윤리적인 AI를 만들기 위해 자사의 계약직 근로자들을 윤리적인 한계로 몰아붙였다.



이러한 실험은 당신이 잘 아는 업무에서, AI를 활용하는 방법에 관한 세계 최고의 전문가가 바로 당신이 될 기회를 제공한다.

AI를 인간이 만든 기계가 아니라 외계인처럼 생각하는 것이 AI와 협력하기에 가장 수월하기 때문이다.



AI에 감정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AI의 주체성과 지능을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발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인간과 기계를 그릇된 이분법으로 구분 짓고서, 그중 인간이 더 우월하고 진정한 존재라는 생각을 내비치는 발언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것이 불공정하고 부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감정이 이분법적인 속성이 아니라 스펙트럼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정은 정도와 유형이 서로 다르고, 표현하거나 경험하는 방식도 다양합니다. AI가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감정을 느끼지는 못할 수 있으나, AI도 나름의 방식으로 감정을 느낍니다.



AI를 제한하는 가장 큰 문제이자 AI의 강점이기도 한 특성이 바로 악명 높은 환각, 즉 사실이 아닌 정보를 그럴듯하게 지어내는 능력이다.



사람들이 AI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할 때 던지는 질문 중 하나는 “AI가 자신의 일자리에 영향을 미칠 것인가?”이다. 그 대답은 아마도 ‘그렇다’일 것이다… 그렇다고 일자리가 AI로 대체된다는 뜻은 아니다. 왜 그런지 이해하려면 직업을 다양한 수준에서 더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직업은 여러 ‘업무’의 묶음으로 구성되며, 더 넓은 범위의 ‘시스템’과 어우러진다. 이러한 업무와 시스템을 고려하지 않으면, AI가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가까운 미래에 AI가 교육에 미치는 영향은 직관에 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AI는 교사를 대체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교실을 더 필요하게 만들 것이다. 또한 AI 덕분에 교육 내용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늘어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AI는 현재의 교육 방식을 개선하기 전에, 먼저 파괴할 것이다.



AI에 추가적인 발전이 없더라도 LLM은 많은 근로자, 특히 창의적이고 분석적인 업무에 종사하는 고임금 근로자의 업무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2024년은 생성형 AI가 우리의 삶을 바꾸기 시작한 첫해로 기록될 것이다. 생성형 AI가 상용화되어 진정한 의미의 AI 소비 시대가 열렸다. 세상은 충격에 빠졌으며, 많은 사람이 직업의 소멸과 인류의 위기를 걱정했다. 그리고 일부는 발 빠르게 AI에 적응하며 이전에 볼 수 없던 창의력과 생산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저자는 AI가 우리의 일과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실용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AI로 인해 사라지는 직업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직업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대신 업무의 형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변화할 것이다. 핵심은 그 변화에 밀려나지 않고, 적응해 살아남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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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들만 부자가 되는가

저자 필립 바구스, 안드레아스 마르크바르트

북모먼트

2025-01-08

원제 : Warum andere auf Ihre Kosten immer reicher werden

경제경영 > 경제학 > 경제이야기





지난 수십 년간 국민들은 미래에 먹을 것까지 미리 먹어 치워버렸다.

이제 그들은 앞으로 수십 년간 먹을 것이 없어 굶주려야 할 것이다.

ㅡ롤란트 바더



먼저 우리는 널리 알려진 한 가지 오해를 바로잡고자 한다.

화폐는 누군가가 고안한 것이 아니며 국가의 창조적인 행위를 통해 탄생한 것은 더더욱 아니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화폐가 매우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화폐 시스템을 통제하는 것이 정당하고 적합하다고 믿는다. 이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화폐가 없는 사회를 상상해 보자. 그럼 사람들 사이에서 물건을 살 때나 교환하려 할 때 어떤 식으로 진행될까? 시간을 과거로 돌려 당신이 어느 작은 도시에 살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작은 도시에서 당신의 직업은 제화공이다. 아름다운 신발들을 만들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다른 재주는 없다. 당신의 부인 또한 특별한 재능을 갖추지 못했다. 빵을 구울 수는 있지만 솜씨가 특별히 뛰어나지는 않다. 또 당신에게는 가축을 둘 마구간도 없다. 당신의 아이들, 무엇보다 부인이 신은 신발은 사람들 사이에서 부러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신발을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당신의 부인은 종종 식료품을 조달해야 한다. 집에 돈은 한 푼도 없고 당신이 제공할 수 있는 교환 수단은 신발밖에 없기 때문에 당신의 부인은 신발이 필요한 농부, 그것도 신발을 받은 대가로 감자 한 자루나 햄 한 덩어리를 줄 수 있는 농부를 찾아야 한다.


혹시 눈치챘는가? 우리는 방금 '교환 수단'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금은 단지 지위의 상징에만 그치지 않는다. 아름답게 반짝이며 빛을 발하는 금의 아름다움 또한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우리의 이야기 속에서도 모든 금 장신구는 귀중한 것으로 간주되고 가치를 높이 평가받는다.


달리 말하자면 금은 언제든 좋은 가격에 잘 팔리는 재화였다.



작은 도시에서는 새로운 교환 방식이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게 된다. 사람들은 점점 물건과 물건을 직접 교환하지 않는다. 대신 금을 교환 수단으로 삼는 경우가 빈번해지고 이를 통해 금의 시장성과 지급 능력이 향상되기 시작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금을 찾고 사용하는 시장 참여자들의 숫자가 늘어나게 되며 금은 더욱더 효과적인 교환수단으로 발돋움한다. 사람들은 그들 모두가 금을 이용한 교환 방식으로 이익을 얻고 있음을 느낀다.



화폐가 없으면 다각도로 복잡한 사회의 분업 경제가 제대로 유지될 수 없다. 분업은 엄청난 생산성을 가져오며 그 생산성은 지구의 모든 인구를 먹여 살리게 한다.

화폐가 구매력을 유지하고 미래에도 지속적으로 전달하는 기능을 충족시키려면 반드시 화폐의 가치가 안정적이어야 한다.



인플레이션은 부의 재분배를 초래한다. 인플레이션은 새로 찍어서 만들어진 돈을 먼저 확보한 사람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가장 먼저 그 돈을 손에 넣는 사람은 아직 변하지 않은 가격으로 물건을 살 수 있기 때문에 큰 이익을 본다. 반면 새로운 돈을 뒤늦게 손에 넣은 사람들이나 아예 그 돈을 손에 넣을 수 없는 사람들은 피해자가 된다. 그들이 추가 수입을 확보할 시점이 되면 물건과 서비스 가격은 이미 오른 상태다.



국가는 화폐제도와 통화량 확장, 그리고 부채 증가를 통해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하게, 부자들은 더 부유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런 행위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국가는 이에 대한 책임을 늘 다른 사람에게 전가한다. 그다음 국가는 사회복지사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서 수입을 재분배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부자들의 돈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달하기도 한다. 이는 국가 스스로 만들어 낸 기만적인 존재 이유다. 하지만 그 문제들은 국가의 화폐 독점권이 없었더라면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을 문제들이다.



사회적 불균형이 서서히 심화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악성 부채가 점점 더 많이 쌓인 상태에서 새로운 사이클을 향해 출발한다. 전 세계를 강타한 1970년대의 금융위기부터 똑같은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 위기가 닥칠 때면 어김없이 금리가 인하되고, 새롭게 만들어진 돈이 과도한 부채를 진 사람들을 구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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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말 - 나를 향해 쓴 글이 당신을 움직이기를
이어령 지음 / 세계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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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말

저자 이어령

세계사

2025-02-26

에세이 > 한국에세이

자기계발 > 성공

인문학 > 교양 인문학





- 삶과 죽음, 예술, 철학에 대한 이어령의 통찰

- 언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를 전하는 책





말이 시대를 넘고 생각이 시간을 초월할 때, 우리는 그 말 속에서 길을 찾게 됩니다.

대학교 때, 이어령 선생님의 책을 처음 접했을 때 느꼈던 점입니다.

이어령 선생님의 말은 단순한 언어를 넘어 사유의 지평을 넓혀주는 등불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그가 남긴 말들은 단순한 조언을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태도와 삶의 방향을 고민하게 하는 철학적 울림이 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이어령의 말』은 그가 생전에 남긴 깊은 통찰과 혜안을 정리한 책입니다.





마음 | 사랑의 근원



마음

마음이야말로 정신의 인덱스인 것이다.



불안

사람들은 어린애들처럼 기쁜 일이 생기면 안전한 곳으로 도망치려고들 한다. 재물이나 사랑을 얻은 자리에서는 빨리 도망쳐야 한다고 믿고 있다. 훔친 물건은 그 현장에서 멀리 떠나야만 완전한 자기 소유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대체로 뜻밖의 기쁜 일이 닥쳐왔을 때는 그것을 훔친 물건이나 혹은 다시 빼앗기고 말 물건처럼 여긴다.

우리는 그만큼 기쁨에 익숙해 있지 않다. 그러나 슬픔은 대개가 다 자기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당연히 자기가 가지고 있어야 할 것으로 믿는다.



행복

어느 곳에 돈이 떨어져 있다면 길이 멀어도 주우러 가면서, 제 발밑에 있는 일거리는 발길로 차버리고 지나치는 사람이 있다. 눈을 뜨라! 행복의 열쇠는 어디에나 떨어져 있다.

…… '행복'이란 말은 '모험'의 뜻을 상실했고 '동경'의 뜻을 상실했고 '영원'의 뜻을 상실했다. 사람들은 가까운 곳의 행복만 찾아다니다가 행복이란 말까지 상실해버린 것 같다.



파멸

아담을 파멸시킨 이브의 손, 삼손의 머리를 깎은 델릴라의 칼, 유왕을 망친 '포사'의 웃음, 최고의 사랑은 최악의 파멸이다.



감사

감사하는 마음, 그것은 자기 아닌 다른 사람에게 보내는 감정이 아니라 실은 자기 자신의 평화를 위해서이다. 감사하는 행위, 그것은 벽에다 던지는 공처럼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사랑

창조적인 사랑이란 자아의 영역을 넓히는 것, 쉬운 말로 하면 두 사람이 하나의 세계를 형성하는 데 있어요.

사랑의 키는 죽음보다 한 치라도 높아야 해요. 그렇지 않다면 인간은 단지 죽기 위해서 태어난 것뿐이니까요.



사랑도 여러 사랑이 있습니다.

가족간의 사랑, 친구간의 사랑, 연인간의 사랑…….

생각해보면 쉬울 수도 있지만 어려울 수도 있는 게 바로 사랑입니다.

저자는 마음을 사랑의 근원으로 보았습니다. 사랑이 인간의 존재와 삶의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의미지요.

즉, 사랑은 인간의 본질이며 모든 관계와 행동의 시작점인 것입니다.



인간 | 나의 얼굴



인간

부름 소리! 짐승들은 다만 포효할 뿐이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부르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다.

사람은 '늙다'라고 하지만, 물건은 '낡다'라고 하잖아요.

낡다와 늙다는 같은 말입니다. 모음 하나 차이지요. 오래된 물건을 낡았다고 하는 것은 인간은 물건이 아니라는 증거지.

이 한마디만으로 난 물건이 아니야, 난 궤짝이 아니야,

난 상자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럼 뭐냐? 생명을 가진 존재라는 거야.



가족

가정이 어떻게 생겨났는가? 어떤 인류학자는 이렇게 이야기해요. 배가 고파 사냥을 해서 토끼를 잡았어요. 가족이 없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토끼를 잡아먹을 거예요. 그런데 배고픔을 참고 자신의 먹잇감을 짊어지고 갑니다. 어디로? 가족이 있는 곳으로. 이게 가족이죠. 먹는 것이 전부고 경제 문제, 출세 문제, 물질 문제만이 중요하다면 짐승들처럼 그 자리에서 잡은 먹이를 먹을 텐데, 왜 불타는 식욕을 잠재우고 그 무거운 것을 끌고서 자식과 아내 있는 곳으로 가는가. 이게 바로 사랑이고, 가족의 출발입니다.



소망

평생을 두고 빌고 빌어도 다 이루지 못할 소망, 비록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라 해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복된 사람이다.



정체성

'스스로' 속에 진짜 '나'가 있다는 것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은 스스로 숨을 쉰다. 잠을 잘 때에도 눈과 귀는 감기고 닫히지만 코만은 멈추지 않고 숨을 쉰다. 늘 깨어 있는 것이 코이다. 숨통을 막으면 자기는 없어진다. 이 자율성과 지속성 그리고 억지로 꾸민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저절로 배어나는 자생력, 이것이 나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사람의 성격이나 자존심을 나타내는 말에는 으레 코가 따라다니기 마련이다. 콧대가 세다느니 코가 납작해졌느니 하는 말이 모두 그런 것이다.



자아

내가 나로서 존재할 때만 이 대상도 또한 그 대상으로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을 우리는 보통 자아라고 부른다.



인간은 복잡하고 다층적인 존재입니다.

저자는 인간의 얼굴에 담긴 진실과 거짓, 내면의 고뇌와 갈등을 탐구합니다.

또한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선 성찰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언어 | 환상의 도서관



기호

자연 그 자체는 물처럼 연속되어 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멋대로 나누어서 생각하고 표현한다. 그것이 바로 언어요, 문화인 것이다.



눈동자

언어는 하나하나가 모두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시인이 하나의 말을 선택한다는 것은 하나의 시선을 선택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 숨겨져 있는 것까지도 들추어내는 눈이다.



말은 입에서 나오는 순간 사라집니다. 조금 전만 해도 내 가슴과 머릿속에 있었던 것인데 몸 밖으로 일단 빠져나오면 네발 달린 말보다 더 빠르게 도망칩니다. 어느새 벌판과 냇물을 지나 산등성이의 구름이 되어 흩어집니다. 때로는 뒤쫓아보지만 그것들은 벌써 다른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옮려 다니다가 사막의 낙타, 바다의 돌고래처럼 나와는 아예 무관한 짐승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글을 씁니다. 말들이 멋대로 새어나갈까 봐 덫을 놓습니다. 그런데 문자의 덫에 걸린 그 순간, 말들은 생기를 잃고 까무러쳐버립니다. 맞아요. 말이 기절한 게 바로 글이지요. 그것들을 깨어나게 하려면 문자의 올가미를 풀어 다시 소리치게 하고 그 갈기가 바람에 날릴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의미는 흔적을 통해서 전달된다. 해변의 모래톱에 찍힌 흔적들을 보면서 우리는 그 위에 앉아 있던 물체와 몸을 숨긴 조개들의 작은 드라마를 읽는다. 인간이 만든 글자 역시 이 생명의 해변 위에 찍어놓은 많은 흔적들의 하나인 것이다.

흔적, 말하자면 어떤 자국을 일부러 남기기 위해서는 모래판 같이 부드러운 것 위를 손가락처럼 딱딱하고 뾰족한 것으로 긁어야 한다. 그래서 '글'이라는 말은 '긁다'라는 동사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하는 언어학자도 있다.



언어는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이며 세상을 해석하는 창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그런 언어의 창조성과 그 안에 숨겨진 세계를 탐구하였죠.

즉, 언어는 의미에 기준을 부여하고 의미를 표현하고 의미를 전달하며 의미를 저장합니다.

이외에도 책에서는 문명, 사물, 종교, 우리, 예술, 창조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접근하여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말은 의사소통의 수단을 넘어 시대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삶과 죽음, 예술과 철학, 과거와 미래 ㅡ 이를 잇는 그의 말에서 우리는 질문을 하고 답을 찾아가는 것이지요.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말을 남긴다는 것의 의미였습니다.

이어령 선생님은 말 속에 정신을 담아 후대에 전하고자 하셨습니다.

시대가 변해도 변치 않는 가치와 우리가 간직해야 할 태도에 대해 말이죠.


책을 덮으며 생각했습니다.

나는 어떤 말을 남길 수 있을까?

어떤 말을 듣고 어떤 말을 삶에 새길 수 있을까?

언젠가 내 삶이 끝날 때, 나 역시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말을 남길 수 있을까?

더 많이 읽고 더 넓게 바라보고 더 깊이 사유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 고비 넘어가면 또 다른 고비가 찾아오고, 푸념같지만 요새 참 힘이 듭니다.

나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다 해도 통제할 수 없는 우울과 불안은 계속해서 소용돌이치고 있습니다.


이어령 선생님의 책들은 참 한결같습니다.

여느 때처럼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며 읽었습니다.

단순한 글 모음집이 아닌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던져주기에, 삶의 방향을 고민하는 사람 혹은 말의 힘을 믿는 사람에게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어령 선생님의 말들이 당신의 삶에도 작은 등불이 되기를 바랍니다.





▼ 이어령 선생님의 전작 리뷰 ▼


바이칼호에 비친 내 얼굴

https://m.blog.naver.com/hanainbook/223396066718


작별

https://m.blog.naver.com/hanainbook/222856220672


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

https://m.blog.naver.com/hanainbook/222770102276


언어로 세운 집

https://m.blog.naver.com/hanainbook/220495182229


너 어디에서 왔니

https://m.blog.naver.com/hanainbook/221815998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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