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풍경 - 글자에 아로새긴 스물일곱 가지 세상
유지원 지음 / 을유문화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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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정보


글자 풍경

저자 유지원

을유문화사

2019-01-30

인문학 > 교양 인문학





■ 책 소개


『글자 풍경』은 유럽과 아시아의 글자부터 한글까지, 전 세계의 글자들을 따라가는 여정으로 일상적으로 우리가 마주하는 글자를 인문학적 시선으로 들여다본 책입니다.

특히 글자가 탄생하고 변화해온 문화적, 지리적, 역사적 배경을 탐색할 수 있어 깊이 있는 사유를 이끌어냅니다.



■ 문장으로 건네는 사유


이탈리아구나. 아, 내가 이탈리아에 왔구나!

베네치아에 도착한 길에 평범한 연구소의 간판 하나와 마주쳤다. 탄성을 머금은 채 그대로 멈춰 서서 들여다봤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국경을 넘어 막 이탈리아에 도착한 직후였다. 내가 살던 독일의 일상에서는 보기 드문, 둥글고 밝고 비례가 우아한 글자들이었다. 그 글자들이 따뜻해 보이는 하얀 돌 위에 새겨진 채, 남쪽 나라의 화사한 태양 아래서 나른히 기지개를 펴며 몸을 늘이고 있었다. 여기, 이탈리아가 깃들어 있었다.



국경을 넘는 모든 경험 중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라고 꼽을 수 있는 것은 단연 알프스를 넘는 경험이었다. 독일에서 알프스를 넘어서 마침내 남쪽 나라 이탈리아의 풍광이 나타나는 순간은 언제나 감동적이다. 버스로, 자동차로, 기차로, 비행기로도 넘어 보았고, 오스트리아의 알프스로도, 스위스의 알프스로도 넘어 보았다. 그때마다 매번 눈부신 변화를 접했다. 알프스를 넘어가면 태양의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다. 나뭇잎의 반짝임이 달라지고, 바람의 성격이 달라지고, 올리브 나무의 회녹색을 닮은 듯 건물들의 재질과 색채감이 달라진다. 그렇게 사람들의 피부색과 생김새가 달라지고 기질이 달라지며, 언어가 달라진다. 그리고 글자가 달라진다.



글자를 다루는 것은 곧 정보를 쥐는 것이라, 글자는 권력과 결부되어 있었고, 동서의 역사를 통틀어 주로 남성들의 영역이었다. 그런데 글씨체의 역사에서 여성이 주도한 예외적인 두 문자 문화가 있었으니, 하나는 한글이고 다른 하나는 히라가나다. 궁체는 궁녀들이 궁에서 쓴 글씨체다. 한글 글씨체의 발달사는 조선 후기 이후 여인들이 주도해 왔다. 궁체의 종류는 크게 편지를 쓴 ‘서간체’와 소설을 필사한 ‘등서체’, 두 가지로 나뉜다.



오늘날 디지털과 오프셋 인쇄의 창백한 기술 환경 속에서 물성이 탈락되면서 이런 경향은 더 심해지고 있다. 물론 물성의 결여를 부정적으로만 보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재질 속에는 다른 층위의 비언어적인 정보들이 정교하게 담긴다는 사실 역시 주지하려는 것이다.



■ 책 속 메시지


글자는 언어를 담는 그릇일 뿐 아니라 인간의 삶과 풍토가 반영된 문화의 결정체입니다.

지역에 따라 글자의 생김새가 다르니 즉, 그 지역 사람들의 기질과 환경을 파악할 수 있게 되죠.


문자는 단지 과거의 유물이 아닙니다.

오늘도 문자는 살아 움직이며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고 있습니다.



■ 하나의 감상


책 정리를 하다 오랜만에 손에 잡힌 책 한 권을 문득 펼쳐 보았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와는 다르게 마음에 깊이 스며드는 감상이 있어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글자 풍경』은 단순한 문자의 배열을 넘어 그 문자가 태어난 땅의 공기와 빛, 사람들의 사고방식까지 담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익숙했던 글자들 속에 풍경이 존재한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다고 해야 할까요.

페이지를 넘길수록 마치 여행 책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도시가 활자처럼 느껴지고, 활자는 또 하나의 세계처럼 다가왔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로마자와 룬 문자 그리고 한글과 훈민정음의 역사적 흐름이었습니다.

하나의 문자가 어떤 경로로 발전해왔고 또 다른 문자와 어떻게 공존했는지를 읽으며, 마치 다른 문화와 대화를 나누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글의 아름다움은 말할 필요도 없지요.

한글은 그 자체로 위대한 발명이며, 우리가 자긍심을 가져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임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이 책은 글자라는 보편적인 소재를 통해 제가 살아가는 세계와 제 자신을 더 넓고 깊게 들여다보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책을 덮고난 후부터 거리의 간판, 오래된 표지판, 카페 메뉴판마저도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읽히는 글자가 아닌 그 너머의 역사와 문화, 감정이 함께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흔히 글자를 읽기 위해 바라보지만 이 책은 글자를 느끼기 위해 들여다보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 건넴의 대상


활자와 타이포그래피에 관심 있는 분

언어와 문화의 연결고리를 탐색하고 싶은 분

한글과 세계 문자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는 분




​이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문장이나 순간이 있다면 공감(♥)과 댓글로 나눠주세요.

당신의 감상이 더해지면, 이 공간은 조금 더 깊고 따뜻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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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저자 패트릭 브링리

웅진지식하우스

2023년 11월

에세이 > 외국에세이

에세이 > 예술에세이 > 미술에세이




나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내가 하는 일이었다.




■ 책 속 밑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지하층의 경비원 배치 사무실 앞에 빈 예술품 운송 상자들이 쌓여 있다. 1층의 무기와 갑옷 전시관 바로 아래에 있는 사무실이다. 놓여 있는 운송 상자들은 ㅎ여태와 크기가 제각각이어서 커다란 박스처럼 생긴 것도 있고, 캔버스처럼 폭은 넓고 두께가 얇은 것도 있다. 그러나 하나같이 위풍당당하고, 옅은 색의 가공하지 않은 원목으로 단단하게 만들어져서 희귀한 보물 혹은 이국적인 야수까지도 담아 운반할 만반의 준비를 갖춘 듯 보인다. 근무복을 입고 출근한 첫날, 이 견고하고 낭만적인 물건들 곁에 서서 앞으로 이곳에서 어떤 일들을 하게 될지 상상해본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 너무 강렬하게 사로잡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아침은 늘 쥐 죽은 듯 고요하다. 더욱이 미술관 문을 열기까지 30분 정도 남겨두고 근무 자리에 도착하는 날이면 말을 걸어 나를 속세로 끌어내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나와 렘브란트, 나와 보티첼리, 나와 실제로 거의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이라 믿어질 만큼 강렬한 환영들뿐이다. 메트의 옛 거장 전시관이 마을이라면 주민은 거의 9천 명에 달한다(몇 년이 흐른 후 전시실 하나하나를 섭렵하면서 모두 세어본 결과 정확히는 8496명이었다. 전시관을 크게 확장한 다음에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숫자가 되었지만 여기에는 배경에 나오는 아기 천사, 투우장의 관객, 개미 크기의 곤돌라 사공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어떻게 그런 것들까지 모두 셀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면 그건 나에게 얼마나 시간이 많았는지를 실감하지 못해서다). 주민들은 596점의 그림 속에 살고 있는데 우연히도 거의 그 숫자에 맞먹는 햇수 이전에 붓으로 창조된 사람들이다.



운 좋게 얻은 전도유망한 직장이 있는 마천루의 사무실로는 더 이상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세상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를 쓰고, 꾸역꾸역 긁고, 밀치고, 매달려야 하는 종류의 일은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누군가를 잃었다. 거기서 더 앞으로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전혀 움직이고 싶지가 않았다. (중략) 그러다 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나는 뉴욕의 훌륭한 미술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눈여겨봐왔다. 보이지 않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큐레이터들이 아니라 구석마다 경계를 늦추지 않고 서 있는 경비원들 말이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되면 어떨까?



진짜 중요한 것은 경계가 아니라 머무름이라는 사실을, 나는 경비원의 시간 속에서 배웠다.



월요일은 미술관의 정기 휴관일(책이 출간된 지금은 매주 수요일로 정기 휴관일이 변경되었다-옮긴이)이라 쿵쾅거리며 돌아다니는 관람객도 없어서 메트의 직원들이 각자의 은신처 밖으로 나온다. 메트는 2천 명 이상의 인력을 고용하고 있는데 오늘만큼은 많은 이들이 제 물을 만난 듯하다. 큐레이터들은 전시실 한복판에 서서 어느 유물을 어디에 놓아야 할지 토론한다. 기술자들은 누군가와 부딪힐 염려 없이 예술품이 실린 카트를 이리저리 밀고 다닌다. 인부들은 그들의 실력을 믿고 편안해 보이는 보존가들의 감독하에 로프와 도르래로 조각상을 어떻게 들어 올릴지 몇 시간씩 계획을 세운다. 도처에서 전기 기술자, 공기조화 기술자, 페인트공(세밀한 붓이 아닌 롤러를 사용하는)들이 몰고 다니는 전동 리프트의 삐, 삐, 삐 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몇몇 직원들은 손님을 한두 명씩 데려올 수 있는 특권을 활용하기 위해 휴일임에도 얼굴을 비춘다.



너무 많은 방문객들이 메트를 미술사 박물관이라고 생각하면서 예술에서 배우기보다는 예술을 배우려 한다. 또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는 모든 정답을 알고 있는 전문가들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일반인이 감히 작품을 파고들어 재량껏 의미를 찾아내는 자리가 아니라고 넘겨짚는다. 메트에서 시간을 보낼수록 나는 이곳의 주된 역할이 미술사 박물관이 아니라는 걸 더욱 확신하게 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관심 영역은 하늘 높이 솟았다가 지렁이가 기어다니는 지하 무덤까지 내려가고, 그 둘 사이의 세상에서 사는 것이란 어떤 느낌이고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거의 모든 측면과 맞닿아 있다. 그런 것에 관한 전문가는 있을 수 없다. 나는 우리가 예술이 무엇을 드러내는지 가까이에서 이해하려고 할 때 비로소 예술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고 믿는다.



미술관의 그림들은 늘 그 자리에 있지만, 나는 매일 다르게 그들을 지나쳤다.



■ 끌림의 이유


스무 살 이후로 시간이 무섭게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요즘은 조급함이란 감정까지 덧씌워져 하루하루가 더욱 빠르고 버겁게 흘러갑니다.

그래서 더욱 멈추어 머무는 시간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싶었습니다.


저자는 그림을 지키는 경비원입니다.

세계 최대 미술관 한복판에서 그 누구보다 많은 걸 스쳐 지나가야 하는 자리인데, 오히려 그 자리에서 멈추어 바라보는 삶을 배우게 되죠.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는 그 자리에서 깊게 경험했던 인간적인 울림과 그림이 주는 느린 호흡에 대해 전하고 있습니다.



■ 간밤의 단상


미술관은 그림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지만 그 그림 옆에 조용히 서 있는 사람 또한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졌습니다.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10년이라는 시간을 살아낸 저자는 거대한 예술 작품들 사이에서 나라는 존재의 리듬을 잃지 않았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서 있기만 하는 단순한 직업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는 매일 조금씩 다르게 그림을, 사람을, 시간을 그리고 스스로를 바라보았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문득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무엇을 이루었는지에 대해 하루를 평가하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그 시간을 살아냈는지가 아닐까 하고요.

눈에 띄지 않고 조용하지만 매일매일 묵묵히 쌓아올리는 시간들.

그것들이 결국 인생이라는 아름다운 풍경을 완성해 나간다는 것을, 새벽 공기처럼 맑게 깨달았습니다.


5월의 첫 날.

어떤 책을 소개할까 고민하다 작년에 읽었던 책을 다시금 꺼내들었습니다.

새 계절의 문턱에 선 지금, 이 책은 제게 말하는 듯했습니다.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아. 중요한 건, 그곳까지 어떤 리듬으로 나아가느냐야."


삶의 흐름이 조급해질수록 우리는 멈추어 머무는 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멈추어 선다는 것은 조용히 머문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멈춤이 아닌 깊어짐이란 사실을 꼭 전하고 싶었습니다.



■ 건넴의 대상


바쁜 일상 속, 잠시 멈추어 서 있는 시간을 선물하고 싶은 분

당신의 하루가 작품이라고 조용히 응원하고 싶은 분

자기만의 속도로 살아가고 싶은 모든 분




이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문장이나 순간이 있다면, 공감(♥)과 댓글로 나눠주세요.

당신의 감상이 더해지면, 이 공간은 조금 더 깊고 따뜻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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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의 대표 시 「수선화에게」, 이 한 줄의 시가 오늘의 나를 붙들었습니다.

오늘은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를 함께 읽으려 합니다.






수선화에게 –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 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 해설 및 주제 분석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더 이상 숨기거나 지워야 할 것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인간 존재의 핵심으로 정면 돌파하는 시입니다.

"울지 마라 /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의 반복은 단순한 위로를 넘어 외로움 속에서 인간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의미를 다시 바라보게 만듭니다.

시인은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는 일이나 눈길, 빗길을 걸어가는 모습처럼 일상의 작고 고요한 장면들 속에 외로움을 배치합니다.

그리고 그 외로움은 인간만의 것이 아님을, 갈대 숲의 도요새, 하느님의 눈물, 나뭇가지 위의 새들이 증명합니다.

이 모든 존재들이 외로움을 품고 있기에 우리는 그 감정으로부터 소외되지 않습니다.

그 어떤 고독도 우리를 이상한 존재로 만들지 않으며 오히려 외로움은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 하나의 감상


마치 오랜 시간 마음속 어두운 곳에 잠겨 있던 감정을 꺼내어 조용히 안아주는 시였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문학 선생님께서 유독 애정하셨던 시로 기억하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마주하니 그 시절에는 미처 닿지 않았던 위로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외로움을 피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조용히 받아들이는 것.

그것은 고통을 참아내며 살아가는 모두에게 주어진 일상이자 숙명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참고 견디는 시간들, 외롭지만 그래도 걷는 발걸음 속에 인간의 빛이 숨어 있습니다.


누군가 보지 않을 거라 믿었던 그 길 위에서, 이 시는 조용히 그렇게 속삭입니다.

당신이 느끼는 외로움이 결코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모두가 같은 이유로 숨을 쉬며 걸어가고 있음을 말이지요.




이 시가 떠오르는 사람이 있나요?

그렇다면 그 사람에게 이 글을 공유해주세요.

오늘, 당신은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다음엔 김용택 시인의 「그 여자네 집」을 함께 읽어보려고 합니다.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이 선사하는 감정의 깊이를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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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저자 김초엽

허블

2019-06-24

소설 > 과학소설(SF) > 한국 과학소설

소설 > 테마문학 > 영화소설




우리는 결국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끝없이 이야기하게 될 거예요.




■ 책 속 밑줄


소피,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이 편지가 네게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내가 떠났다는 소문이 퍼진 이후이겠지. 어른들이 많이 화가 났을까. 그동안 나처럼 성년이 되기 전에 마을을 뛰쳐나온 사람은 없었으니까. 괜찮다면 대신 이야기를 전해줄래? 여전히 그분들을 많이 사랑한다고, 하지만 내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야. 너도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궁금할 거야. 믿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 ‘시초지’로 가고 있어.



밤마다 떠오르는 다섯 개의 위성들은 이곳이 지구가 아님을 증명하듯 빛났다. 기록장치만이 희진에게 익숙한 지구식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었다. 마침내 그들을 만났을 때, 희진은 자신이 환각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있었다. 이족 보행을 하는, 팔다리를 가진 사람들. 누군가 드디어 희진을 구하러 온 걸까. 아니다. 그럴 리가 없었다. 이곳은 낯선 행성이다.



이름이 없는 행성. 그곳의 이름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은 오히려 그 신비한 세계에 몽환적인 상상을 덧대었다. 사람들은 그곳을 류드밀라의 행성이라고 불렀다. 행성의 실존과는 무관하게 그런 이름으로 합의된 어떤 세계가 있었다. 류드밀라가 기억하는, 류드밀라가 가보았던, 류드밀라가 창조한, 류드밀라가 일관적으로 그려내는 분명한 세계.



지금 이 순간, 내가 있는 이곳이 내가 선택한 우주라는 걸 믿고 싶었다.



사연을 아는 사람들은 내게 수십 년 동안 찾아와 위로의 말을 건넸다네. 그래도 당신들은 같은 우주 안에 있는 것이라고. 그 사실을 위안 삼으라고.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때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담긴 눈물이 아니라 단지 눈물 그 자체가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사람들은 기억을 잃어도 사랑은 남는다고 말한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서로에게 다가가기 위해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까.



■ 끌림의 이유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의 충격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데뷔작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이 책은 과학적 상상력 위에 인간 감정의 섬세한 결을 덧입힌 SF 문학이었습니다.

우주라는 거대한 배경 속에서도 이야기의 중심은 늘 관계와 이해 그리고 연결에 있었습니다.


총 7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지만 각각의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결은 마치 하나의 세계관처럼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습니다.

특히 표제작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거리, 시간, 존재, 기억이라는 과학적 개념을 감성적으로 풀어내며 사람 사이의 거리에 대해 사유하게 만듭니다.

SF 문학이 이렇게까지 감정에 가깝고 조용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니!

국내 SF문학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그 방향을 조용히 제시한 이정표 같은 책입니다.



■ 간밤의 단상


이 책을 읽고 난 후, 오래도록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습니다.

한 편의 단편이 우주의 이야기이자 곧 나의 이야기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SF 장르가 주는 낯선 거리감은 어느새 사라지고 잔잔한 감정의 여운만이 남았었습니다.


우리는 결국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끝없이 이야기하게 될 거예요.

이 한 문장이 유독 마음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이해는 단순한 지식의 교환이 아니라 끊임없는 시도와 이야기의 반복 속에서 가능해지는 것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처럼 잠들기 전에 꼭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눈을 감기 전, 한 편의 이야기를 통해 먼 우주를 떠돌다 보면 이 세상의 외로움이 조금은 덜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 모두는 닿고 싶은 마음을 품고 살아가니까요.



■ 건넴의 대상


SF 입문자 혹은 감성적인 과학 이야기를 원하는 분

이해와 공감이라는 말에 가슴이 찡해지는 분




우주보다 더 멀리 있는 건 어쩌면 서로의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이 책이 바로 그 마음 사이를 비추는 작은 별빛이 되어줄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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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3
B. 파스칼 지음, 이환 옮김 / 민음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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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정보


팡세

저자 블레즈 파스칼

민음사

2003-08-25

원제 : Pensees (1670년)

인문학 > 서양철학 > 프랑스철학

인문학 > 서양철학 > 근대철학





■ 책 소개


『팡세』는 인간 존재의 본질, 불완전함 그리고 신을 향한 갈구를 깊이있고 예리하게 사유한 유명한 고전입니다.

17세기 수학자이자 신학자였던 파스칼은 인간은 위대하면서도 비참한 존재라고 규정합니다.

그는 무신론과 허무주의를 경계하며 이성의 한계를 넘어서는 신앙의 필요성을 강조하죠.

덧붙여 『팡세』는 한 편의 체계적인 철학서는 아니고 파스칼이 죽기 전 미완성으로 남긴 단상들을 엮은 것입니다.



■ 문장으로 건네는 사유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가장 연약한 존재이지만 생각하는 한 그는 우주보다 위대하다.



우리의 모든 존엄은 사유 속에 있다. 사유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늘이나 땅에 의존하는 갈대보다도 덜한 존재일 뿐이다.



생각하는 갈대라는 비유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놀랍도록 간결하게 포착합니다.

약하지만 사유하는 존재로서의 인간, 이 인식은 우리를 겸허하게 하고, 동시에 우리의 존엄성을 일깨웁니다.



■ 책 속 메시지


『팡세』는 인간 이성의 위대함을 인정해도 그 한계를 명확하게 긋습니다.

이성만으로는 인간 존재의 모순과 고통을 설명할 수 없지만 결국 인간은 신에 의지함으로써만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파스칼은 말합니다.

또한 그는 인간의 불안, 공허, 무의미를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직시하며 그 끝에 서 있는 신앙의 가능성을 탐구합니다.



■ 하나의 감상


『팡세』를 읽는 시간은 나 자신을 향해, 인간을 향해 그리고 신을 향해 끝없이 질문을 던지는 여정이었습니다.

짧은 단상 하나하나가 꼭 망치로 가슴을 두드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오히려 완성되지 않았기에 더 많은 여백과 여운이 있었고 그 여백 속에서 저는 조심스럽게, 집요하게 사유할 수 있었습니다.


왜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나는 누구인가?


보기만 해도 원초적이고도 묵직한 질문이지만 『팡세』에서는 우리를 질문하는 상태 자체에 머무르게 합니다.

그 과정이 어쩌면 불편할 수 있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깊은 위로가 되었고 아직 풀어내지 못한 내 삶의 매듭들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시간처럼 느껴졌습니다.

인간은 위대하고 동시에 비참한 존재라는 파스칼의 통찰은 어쩌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진실입니다.

삶과 존재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품고 있지만 선뜻 답을 찾기보다 그 질문과 함께 오래 살아내야 한다는 것을 이번에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 건넴의 대상


철학, 신학, 인간학에 관심 있는 청년 세대

인간 존재의 본질을 깊이 사유하고 싶은 분

불완전성과 고통 속에서도 신앙이나 의미를 찾고 싶은 분

짧은 단상 속에서 깊은 사색을 즐기고 싶은 분


특히 '나는 누구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 있는 이라면 반드시 한 번은 만나야 할 책입니다.




이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문장이나 순간이 있다면 공감(♥)과 댓글로 나눠주세요.

당신의 감상이 더해지면, 이 공간은 조금 더 깊고 따뜻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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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5-04-30 1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하는 책 중 하나입니다. 책을 보니 반갑네요.

하나의책장 2025-05-03 17:33   좋아요 1 | URL
저도요^^! 좋은 구절들은 골라골라 글쓰기 노트에 담고 있는데 <팡세>는 어쩌다보니 전체를 필사하게 된 책 중 하나예요^^
요새 책 처분하느라 서재 정리중인데, 눈에 띄어 오랜만에 읽어봤더니 정말 좋았습니다 • 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