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만나는 북유럽 동화

저자 페테르 크리스텐 아스비에른센

현대지성

2025-04-18

소설 > 세계 소설 > 북유럽소설

소설 > 테마문학 > 어른들을 위한 동화




이야기 속에는 언제나 한 사람의 외로움이 숨어 있다.




■ 책 속 밑줄


왕자는 나무 주위에 자라난 풀숲에 몸을 숨기고 새가 나타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잠시 후 정원에는 마치 수백만 마리의 새가 노래를 부르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불-불 새가 나타난 것이지요! 새는 자신의 새장에 내려앉더니 조심스럽게 주위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러고는 슬픔에 잠긴 목소리로 물었지요.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잠들었군요. '불-불 새야, 너도 자야지?'라고 말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나요?"

왕자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바라는 게 그것뿐이라면 못 들어줄 이유가 전혀 없지!'

그는 곧바로 말했습니다.

"불-불 새야, 너도 자거라!"

그 순간 불-불 새가 날개를 펼쳐 왕자를 쳤고 왕자는 그 자리에서 자작나무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내가 들어가지 말라고 한 방만 제외하면 집 안 어디든 마음대로 돌아다녀도 된단다"

양어머니는 그렇게 말하고 떠났습니다. 그러나 소녀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양어머니가 들어가지 말라고 한 방들 가운데 하나를 살짝 열어보았습니다. 그러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별이 날아가버렸습니다.

한편 집에 돌아온 양어머니는 별이 없어진 것을 알고 몹시 화를 냈습니다.

"내가 그 방에 들어가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거늘. 이제 나는 너와 살 수 없다. 널 이 집에서 쫓아내야겠어!"

"죄송해요, 어머니. 다신 그러지 않을게요. 쫓아내지만 말아주세요."

양어머니는 엉엉 울며 비는 소녀를 보고 마음이 약해졌습니다. 결국 소녀를 쫓아내지 못하고 얼마 뒤 또다른 여행을 떠났지요.



"이 정도면 사람들에게 내놓아도 되겠어요. 그런데 소금에 절인 쇠고기와 감자를 조금만 넣으면 아무리 까다로운 식성을 가진 신사라도 맛있게 먹을 텐데 말이죠. 하지만 뭐, 없는 걸 굳이 신경 써서 뭐하겠어요?"

할머니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쇠고기와 감자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나그네가 죽 젓는 모습을 지켜보았지요.

"와, 이 정도면 최상급의 죽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겠어요."

"놀랍구먼! 못으로 끓인 죽이 그렇게 훌륭하다니!"

나그네는 정말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쯤에서 한 입 떠먹을 만도 한데 그는 또다시 중얼거렸습니다.

"만약 보리와 우유를 조금 넣을 수 있다면 왕에게 진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왕이 저녁마다 드시는 게 바로 이거거든요. 제가 예전에 왕의 요리사 밑에서 일한 적이 있어서 잘 알아요."



작고 낡은 오두막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거기엔 늘 숲이 있고 불빛이 있고 기다림이 있다.


늑대가 아니어도, 마녀가 아니어도 사람은 누구나 어둠 속에서 길을 잃는다.

그리고 동화는 그 어둠을 건너는 이야기이다.


용이 나타났을 때 누군가는 도망쳤고 누군가는 싸웠으며 누군가는 이해하려 했다.

이야기는 언제나 선택에 따라 방향을 바꾼다.



■ 끌림의 이유


『드디어 만나는 북유럽 동화』는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동화의 문을 조용히 그러나 전혀 다른 결로 열어주는 책입니다.

노르웨이 민담을 수집한 페테르 크리스텐 아스비에른센과 욘 모르겐투르드의 기록은 환상과 현실, 상상과 교훈 사이에 놓인 북유럽 정서의 깊이와 어둠, 따뜻함을 함께 품고 있습니다.

32편의 북유럽 동화는 또 하나의 동화의 얼굴을 띄고 있었는데, 깨끗하지만 어둡고 잔인하지만 따뜻한 이야기들이 새롭게 느껴지며 삶의 이면을 서늘하게 비춰주었습니다.



■ 간밤의 단상


Do you want to build a snowman?


북유럽 여행지와 관련된 책을 읽으면 특색 있는 캐릭터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무민, 산타 그리고 겨울왕국까지!

소복소복 눈이 가득 쌓인 환상적인 이야기의 본고장, 북유럽!

그곳의 동화들은 어른들도 아이처럼 변하게 하는 이야기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드디어 만나는 북유럽 동화』를 읽고 나니 동화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상처 입은 어른들을 위한 것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읽는 동안 여러 문장이 조용히 제 마음에 내려앉았고 그 문장들은 오랫동안 침묵해 있던 감정들을 살며시 건드렸습니다.

무엇보다 각양각색하고 각박한 세상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삶의 진실을 마주하게 해주었습니다.


책 속에는 낭만보다 현실, 마법보다 상실이 더 많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끝내 희망이라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고된 현실을 무조건적으로 포장하지 않고 어둠을 인정한 뒤 빛을 기다리는 이야기들은 서늘하지만 단단한 결을 지니고 있어 읽는 이의 마음을 조용히 정화시키는 힘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의 원작을 처음 알았을 때, 나름의 충격이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책을 읽는 동안 자연스레 『흑설공주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어둠을 피해 달아나는 공주가 아니라 그 어둠 속에서 끝내 자기 이야기를 완성하는 존재로 다시 읽히는 동화들을요.

『드디어 만나는 북유럽 동화』는 그런 새로운 해석의 또다른 출발점이 되어 주었습니다.



■ 건넴의 대상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동화를 낯설게 다시 만나고 싶은 분

삶의 어둠을 인정하면서도 따뜻한 결말을 원하는 분

북유럽 특유의 서늘함과 정서를 책으로 경험하고 싶은 분




이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문장이나 순간이 있다면 공감(♥)과 댓글로 나눠주세요.

당신의 감상이 더해지면 이 공간은 조금 더 깊고 따뜻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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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의 책 DIGEST

6월 첫째 주, 책이라는 거울 앞에서 나를 다시 들여다보는 시간




이번 주는 유난히 내 삶의 방향에 대해 자주 생각했습니다.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옳은지 혹은 타인의 기대에 의해 어긋나 있는 건 아닌지에 대해서요.

책은 언제나 정답을 주진 않지만 우리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을 조용히 전해줍니다.


오늘은 현충일입니다.

현충일을 앞두었었던 한 주 동안,

국가와 나, 인간과 사회, 사유와 기억에 대한 질문들을 책을 통해 천천히 마주한 시간이었습니다.





■ 이번 주 〈간밤에 읽은 책〉 돌아보기


월요일 | 『수레바퀴 아래서』 – 헤르만 헤세

지나치게 무거운 어른의 기준에 짓눌린 아이의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성장이라는 이름 아래 무너져간 순수함을 묵직하게 그려냅니다.

자기 삶을 살지 못했던 모든 한스를 위한 문장이 유독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화요일 |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무히카』 – 미겔 앙헬 캄포도니코

무히카는 가난했지만 결코 결핍되지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철학은 화려한 연설이 아니라 조용한 일상 속 실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정치보다 삶이 먼저였던 무히카 대통령.

새로 선출된 대한민국 이재명 대통령도 항상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수요일 | 『니체 인생수업』 – 프리드리히 니체

니체 철학은 삶을 해석하려 하지 말고 살아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니체는 여전히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너는 지금 너답게 살고 있는가?"




목요일 | 『파리가 사랑한 카페』 – 최내경

공간이 말이 되는 순간들, 책을 통해 파리의 카페들을 따라 걷다 보면 책 속 카페 자리들이 떠오릅니다.

책보다 풍경이, 여행보다 기억이 더 따뜻하게 다가왔습니다.




금요일 | 『태백산맥』 – 조정래

현충일을 맞아 꺼내든 책, 『태백산맥』!

이념보다 앞서 있었던 사람들의 비극을 이 소설은 깊고 묵직하게 기억하게 만듭니다.

전쟁은 국가의 이름으로 일어났지만 그 안에서 무너진 건 결국 사람의 삶이었습니다.





■ 이번 주 〈모든도서리뷰〉 돌아보기


화요일 | 『총, 균, 쇠』 – 재레드 다이아몬드

문명의 격차는 인종이나 문화가 아닌 환경과 자원이 만들어냈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거대한 시야로 인류의 역사와 오늘을 다시 묻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목요일 | 『국가란 무엇인가』 – 유시민

정치는 멀게 느껴져도 국가는 우리 삶의 가장 가까운 프레임입니다.

이 책은 시민으로서, 한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으로서의 책임과 질문을 따뜻하고 단단하게 전해줍니다.





■ 이번 주 〈함께읽는시집〉 돌아보기


수요일 | 『내가 나의 감옥이다』 – 유안진


스스로를 가두고 있었던 감정의 벽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시였습니다.

겹겹이 쌓인 피로, 타인의 시선에 갇혀 살아온 나날들이시인의 언어를 통해 천천히 흐려졌습니다.




이번 주, 당신의 마음을 붙잡은 문장은 무엇이었나요?

책은 언제나 삶의 곁에 머물며 말을 겁니다.

다음 주에도, 한 줄의 문장이 따뜻한 하루의 등불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독서 여정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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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고통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역사를 직시하지 않는 사람은, 다시 그 역사를 반복하게 된다.




■ 책 속 밑줄


정하섭은 두 손으로 얼굴을 꼭 눌러 감싸며 신음처럼 긴 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밤새껏 걸어 여기까지 와 있지 않느냐고 스스로를 일깨우고 있었다. 그때 구원처럼 들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암호는 백두산, 한라산, 복창하시오." "백두산, 한라산." 지난밤 위원장에게 하달받은 암호가 정하섭의 가슴에 안도의 따스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암호는 곧 생명이었다. 암호의 누설은 조직의 동맥을 끊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자신에게 독립공작을 부여하고 암호까지 하달했다는 것은 당성을 의심하기는커녕 당성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가 하는 좋은 반증이었던 것이다.



스무 살 나이가 가까워질 임시부터였으니까 아들의 열 받친 행동거지는 일정(日政) 때부터 시작되어 이미 10년이 가까워 있었다. 일본인 지주한테 대항해서 소작쟁의를 벌이면서 아들은 가도가도 목마르고 허기진 소작농군의 길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일반 소작쟁의도 삭신 녹아내릴 매타작에 콩밥신세가 확연한 죄로 정해진 세상에서, 일본인 지주를 상대로 한 소작쟁의가 어떤 결과를 부를지는 너무나 빤한 노릇이었다. 그것은 맨주먹으로 닛뽄도 휘두르는 순사한테 덤벼드는 것이나 진배없었고,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드는 성미 급한 나방이나 다를 바 없었다. 피걸레가 되어 내던져진 아들을 업고 집으로 돌아오며 판석 영감은 제 살이 찢겨나가는 아픔에 떨며 울었고, 차라리 죽지 못하고 살아 있는 목숨의 구차함이 비통해서 울었다. 축 늘어진 아들을 수십 번 추슬러 업어가며 판석 영감은 피물림하듯 대대로 이어진 소작농의 비애와 운명을 씹었다. 대를 물리는 가난이라는 것처럼 무서운 죄가 없었고, 견디기 어려운 벌이 없었다. 아들은 그 죄를 타고나서 이제 철든 나이가 되면서 그 벌을 받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었다.



여순사건 이후, 산은 피로 물들었다.

이념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총을 들었던 사람들.

그 총 끝에 가족이 있었고 친구가 있었고 자신조차 알지 못했던 증오가 있었다.


인민군의 빨간 완장을 찬 이도, 토벌대의 푸른 군복을 입은 이도 사실은 같은 마을, 같은 논밭을 일구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겨누었고 무엇이 옳은가보다 누가 살아남는가가 중요해졌다.

그게, 전쟁이었다.



■ 끌림의 이유


『태백산맥』은 단지 한 편의 소설이 아닙니다.

이 소설은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 전후까지의 이념의 충돌 속 민중의 삶과 죽음, 그 분단의 근원과 인간의 비극을 가감 없이 담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거대한 증언입니다.

조정래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묻습니다.

"누가 죄인인가?"

"진짜 죽어야 했던 건 누구였는가?"

그 질문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우리는 과연 그 시절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요?



■ 간밤의 단상


현충일을 앞두고 『태백산맥』을 꺼내 들었습니다.

양이 워낙 방대하다 보니 「아리랑」과 함께 숙원 사업처럼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오랜만에 펼친 『태백산맥』은 역시나 책장을 넘길 수록 마음 깊숙한 곳에서 뜨거운 감정이 솟구쳐 올라왔습니다.


우리는 국가를 위해 싸운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하지만 국가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을 우리는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요?

『태백산맥』은 그 질문을 날카롭고도 절실하게 던지는 소설입니다.

이 책은 어느 한쪽을 미화하지는 않습니다.

이념이 갈라놓은 것은 단지 진영이 아니라 사람의 삶이고 관계이며 사랑과 믿음이었습니다.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의 내면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전쟁이 그저 총과 칼의 싸움이 아니라 한 인간이 삶 전체를 걸고 겪어야 했던 모멸과 절망 그리고 믿음의 붕괴였다는 것을 절절히 마주하게 됩니다.


1948년 여순사건부터 6·25전쟁이 끝난 1953년까지, 『태백산맥』은 한반도 분단의 가장 거센 파도를 온몸으로 겪어낸 그 시절을 시간적 배경으로 삼습니다.

해방과 동시에 분단을 맞이한 민족의 운명 그리고 진영의 이름으로 찢겨나간 삶들, 그 비극의 중심에서 저자는 질문을 멈추지 않습니다.

"누가 옳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사람을 이토록 잔인하게 만들었는가?"라고.

이 책은 문학이 기록을 넘어 기억이 되어야 한다는 사명을 온전히 품고 있습니다.

비판도 많았지만, 그만큼 『태백산맥』은 이념의 금기를 정면으로 마주한 용기 있는 책이었고 그 결과 한국문학사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오른 작품이기도 합니다.


역사는 잊지 않기 위한 싸움이며 문학은 그 싸움을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이어가는 도구라는 사실을 이 책은 다시 일깨워줍니다.

오늘, 저는 그 조용한 문장을 따라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아봅니다.

기억하는 사람만이 진짜 내일을 쓸 수 있으니까요.



■ 건넴의 대상


현충일, 조용히 기억이라는 방식으로 애도를 전하고 싶은 분

한국전쟁과 분단을 개인의 이야기로 만나보고 싶은 분

역사를 교과서가 아닌 삶의 언어로 느끼고 싶은 분




이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문장이나 순간이 있다면 공감(♥)과 댓글로 나눠주세요.

당신의 감상이 더해지면 이 공간은 조금 더 깊고 따뜻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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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란 무엇인가 - 2017 개정신판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7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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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정보


국가란 무엇인가

저자 유시민

돌베개

2017-01-23

인문학 > 교양 인문학

사회과학 > 사회사상






■ 책 소개


『국가란 무엇인가』는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지금의 언어로 다시 던진 책입니다.

저자는 플라톤에서 홉스, 루소, 막스 베버, 한나 아렌트에 이르기까지 고전 정치사상을 바탕으로 국가와 시민의 관계를 되묻습니다.

특히 대한민국이라는 구체적인 정치적 맥락 속에서 좋은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합니다.

단순히 정치철학 입문서가 아닌, 시민의 자리에 선 한 사람의 고백과 사유가 담긴 책입니다.



■ 문장으로 건네는 사유


이 책은 단순히 '국가란 무엇인가'를 묻는 게 아니라 '우리는 어떤 국가를 꿈꿀 수 있는가'를 되묻습니다.



'용산참사'가 언제 적 일이었는지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큰 사건이 너무 자주 터지는 나라에서 살다보니 기억하기가 쉽지 않다. 그 참사가 벌어진 날은 2009년 1월 20일이었으며, 시작은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의 빈 건물에 철거민 서른두 명이 들어간 1월 19일 새벽이었다.


4구역 상가 세입자와 철거민단체 간부 서른두 명은 남일당 옥상에 망루를 세우고 인화물질을 반입해 화염병을 만들었다.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던 와중에 불이 났고, 농성자 다섯 명과 경찰특공대원 한 명이 그 불에 목숨을 잃었다. 경찰은 살아남은 농성자를 모두 체포했고, 법원은 전원에게 유죄판결과 징역형을 선고했다.


돈을 향한 욕망, 빼앗긴 권리를 찾으려는 몸부림, 로보콥을 연상시킨 경찰특공대의 복장, 타오르는 불길과 무너지는 망루, 소음을 내뿜는 경찰 헬리콥터, 비명을 지르며 죽어간 사람들을 실시간으로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 참극의 한가운데 '국가'가 있었다. 이 사건은 평범한 시민들이 잘 생각하지 않았던 질문을 던져주었다. 도대체 국가는 무엇인가? 삶의 터전을 빼앗긴 상가 세입자들은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도 국가가 들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마지막 수단으로 남일당 빌딩 농성을 선택했다.



자유주의자와 진보주의자들은 국가주의를 싫어한다. 그런데 국가주의자들이 애국심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들과 뒤섞이지 않으려면 애국심을 거론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나는 투쟁을 선동하는 ‘불법유인물’ 제작 임무를 맡은 조그만 모임에 속해 있었는데, 유인물에 ‘민중들이여’ 대신 ‘애국시민 여러분’이라는 표현을 썼다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윗선’의 심각한 비판을 들었다. ‘애국시민’은 극우 보수주의자들의 수사라는 것이 비판의 요지였다.



자유주의 국가론과 목적론적 국가론은 결합할 수 있으며, 그 결합을 통해 각자의 결점을 제거하고 서로를 보완해줄 수 있다. 나는 진보정치세력에게 필요한 국가론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하며, 이 국가론에 바탕을 두고 형성되는 국가에 ‘미덕국가 또는 ‘선행국가’라는 이름을 붙일 수도 있다고 본다.



나는 자유가 매우 아름답고 소중하다고 확신하지만 그것이 국가주의자와 진보주의자들이 중시하는 다른 가치들보다 우위에 있다거나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다른 가치들을 희생해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유를 절대적 가치로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자유의 가치를 폄하하거나 경멸하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나는 분명 자유주의자이다. 나는 이 모든 가치들이 하나의 사회 안에서 똑같이 존중받으면서 공존해야 하며,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나는 자유를 원하는 것과 똑같이 간절하게 정의를 소망한다. 그래서 자유주의 국가론이라는 땅을 딛고 정의를 실현하는 국가를 바라보며 나아간다. 이것이 내가 스스로를 진보자유주의자라고 말하는 의미이다.



베버의 책임윤리를 칸트의 도덕법, 베른슈타인의 개량주의와 묶어보면 ‘연합정치’를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된다. 국가의 도덕적 이상이 정의를 수립하는 것이라고 볼 경우, 진보주의와 자유주의는 연합할 수 있고 필요하면 언제든 연합해야 한다. 특히 국가주의 국가론을 따르는 시민들이 항속적으로 이념형 보수정당을 지지하고, 자유주의 정당과 진보정당 가운데 어느 쪽도 혼자 힘으로 보수정당을 능가하지 못하는 우리 상황에서는, 연합하지 않고서는 보수주의 정당을 이길 방법이 없다.



왜냐하면 국가는 곧,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국가란, '내가 어떤 사회에서 살아가고 싶은가'를 결정하는 삶의 프레임이자 조건입니다.





■ 책 속 메시지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면서도 동시에 그 자유를 지키는 존재입니다.

정치는 갈등의 조정 기술이며 국가는 그 갈등을 수렴하는 그릇입니다.

좋은 국가는 단지 효율이 아닌 정의와 존엄을 담보하는 공동체입니다.


이 책은 이론이 아닌 삶과 권력, 법과 정의, 권리와 책임이 얽힌 생생한 구조를 보여줍니다.

즉, 국가는 추상명사가 아니라 우리 삶을 실질적으로 규정하는 가장 현실적인 개념입니다.



■ 하나의 감상


『국가란 무엇인가』는 정치철학의 굵직한 담론들을 어렵지 않은 언어로 풀어낸 책이었습니다.

플라톤의 목적론적 국가론, 홉스의 국가주의 국가론, 로크와 밀의 자유주의 국가론, 그리고 마르크스의 도구적 국가론까지, 복잡한 이론들을 저자는 명료하고 체계적으로 짚어줍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정치는 정치인의 것이 아니라 시민의 몫이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정치는 거대한 담론이기 이전에, 내가 어떤 사회를 꿈꾸고 어떤 방향으로 살아가고 싶은지를 끊임없이 묻는 일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또한, 우리가 정치학을 알아야만 저자의 말처럼 정부를 비판하고 대통령을 평가할 수 있는 시민이 될 수 있음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된 시점에서 이 책은 더욱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결국, "당신은 누구와 어떤 공동체에서 어떤 가치를 품으며 살아가고 싶은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저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어집니다.

▶ 약자가 보호받고, 말이 통하는 정치를 행하는 나라

▶ 청년이 꿈을 말할 수 있고, 그 꿈을 밀어주는 사회

▶ 아이를 안전하게 키울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누구도 혼자가 아닌 나라

▶ 나이 들수록 외롭지 않고, 오히려 삶의 경험이 존중받는 사회


『국가란 무엇인가』는 단지 한 권의 철학 책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과 이어진 질문의 시작점이었습니다.

정치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자리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그리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지금의 나부터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조용히 일깨워준 책이었습니다.



■ 건넴의 대상


국가와 정치에 대해 사유해보고 싶은 분

정치철학을 현실의 언어로 만나고 싶은 분

좋은 시민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분




이 책을 읽고 기억에 남는 문장이나 통찰이 있다면 공감(♥)과 댓글로 나눠주세요.

당신의 감상이 더해지면 이 공간은 조금 더 깊고 따뜻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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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가 사랑한 카페

저자 최내경

BOOKERS(북커스)

2024-07-10

에세이 > 여행에세이

여행 > 유럽여행 > 프랑스여행




파리의 카페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이 흘러간 풍경이다.



■ 책 속 밑줄


커피 향이 익숙해질 무렵, 그 카페는 나에게도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오페라 극장을 설계한 샤를 가르니에 작품답게 대리석으로 장식된 화려하고 웅장한 카페 드 라 페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빅토르 위고와 에밀 졸라, 기 드 모파상, 헤밍웨이, 차이콥스키, 오스카 와일드 등이 이곳을 찾았고 그들 작품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로통드는 여러 화가들과 문인들의 작업터이자 만남의 장소였지만, 특히 모딜리아니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았다. 천장과 바닥, 내부가 모두 붉은 조명으로 꾸며져서 환상적인 느낌이 드는 이곳에서 모딜리아니 작품과 그의 삶을 떠올리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고요함과 함께 마력 같은 아름다움을 지닌 이곳은 고흐뿐 아니라 많은 화가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고흐가 37년이라는 짧은 생의 마지막 70여 일을 머물며 72점의 작품을 남겼던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있는 고흐의 집은 그의 고독과 삶을 잘 느낄 수 있는 장소이다.



웅장한 기둥과 높은 아치 천장, 그리고 붉은색과 황금색의 우아하고 세련된 장식으로 이곳에 머무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올리비에 가녜르와 이브 타랄롱이 디자인한 폭신한 의자와 금빛 목재로 꾸며진 아늑하고도 고급스런 분위기는 루브르궁을 지금의 이곳으로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책방을 둘러보고 이곳 카페에 앉아 있노라면 2019년 화재로 큰 슬픔을 줬던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 드 파리》의 배경이 된 노트르담 대성당과 센 강에 즐비한 서점들이 보인다. 파리의 낭만과 문학, 작가와 책 이야기, 연인들의 사랑 등을 생각하며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카페에서 달콤하고 나른한 한때를 보낼 수 있었다.



■ 끌림의 이유


『파리가 사랑한 카페』는 카페라는 공간을 통해 사람들의 풍경, 일상의 감정, 파리의 시간을 엿볼 수 있는 책으로 커피 한 잔으로 연결된 사람들의 조용한 드라마가 담겨 있습니다.

저자는 파리에 거주하며 직접 마주한 50여 곳의 카페들의 색깔, 그 안에 머무는 사람들의 태도 그리고 그날의 빛까지 함께 기록하였습니다.

파리라는 도시가 특별한 것은 그곳의 건축도 명소도 아닌 그 장소에 머무는 사람들 때문이라는 것을 이 책은 천천히 말해줍니다.



■ 간밤의 단상


문득 대학생 때 과외 수업 전 짧은 여유를 틈타 방앗간처럼 들르곤 했던 작은 카페가 떠올랐습니다.

늘 앉던 창가 근처 자리, 다이어리와 펜 그리고 그 위에 흘러가던 사소한 생각들.

그곳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그 시절의 하루를 잠시 붙들어주던 조용한 안식처였던 것 같습니다.

『파리가 사랑한 카페』를 읽는 일은 단지 파리를 여행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그곳 사람들의 하루를 들여다보고 그들이 시간을 대하는 방식에 조용히 귀 기울이는 일이었습니다.


지금은 한 자리에 오래 머무는 삶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책은 더욱 따뜻하게 다가왔습니다.

카페라는 공간이 단순한 휴식처를 넘어 기억을 품고 시간을 끌어안는 장소로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공간이 말을 걸고 시간이 향기로 남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파리가 사랑한 카페』는 바로 그런 순간들을 잔잔히 담아낸 기록이었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한 자리에 머무른다는 것, 그 자체가 어쩌면 우리가 잊고 지낸 가장 소중한 삶의 풍경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건넴의 대상


여행보다 머무름을 사랑하는 분

도시의 얼굴보다 도시의 온기를 느끼고 싶은 분

파리에 가본 적은 없어도 그 감성을 알고 싶은 분




이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문장이나 순간이 있다면 공감(♥)과 댓글로 나눠주세요.

당신의 감상이 더해지면 이 공간은 조금 더 깊고 따뜻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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