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저자 메리 앤 섀퍼, 애니 배로스
이덴슬리벨
2025-06-16
원제 : The Guernsey Literary and Potato Peel Pie Society (2008년)
소설 > 영미소설
책을 읽고 누군가와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삶을 함께 살아내는 일이다.
■ 책 속 밑줄
그래서 제가 독서를 좋아하는 거예요. 책 속의 작은 것 하나가 관심을 끌고, 그 작은 것이 다른 책으로 이어지고, 거기서 발견한 또 하나의 단편으로 다시 새로운 책을 찾는 거죠. 실로 기하급수적인 진행이랄까요. 여기엔 가시적인 한계도 없고, 순수한 즐거움 외에는 다른 목적도 없어요. 책 표지에 피처럼 보이는 붉은 얼룩은 핏자국이 맞아요. 종이칼을 다루다가 그만 방심했어요. 동봉한 엽서의 찰스 램 초상화는 그의 친구인 윌리엄 해즐릿(1778~1830. 영국의 평론가 겸 수필가)이 그린 거예요.
어릴 때 저는 말수가 적은 편이었습니다. 말을 심하게 더듬었거든요. 게다가 파티 같은 데도 별로 참석한 적이 없었습니다. 진실을 말씀드리자면, 저를 파티에 초대한 사람은 모저리 부인이 처음이었습니다. 돼지구이를 맛볼 생각에 그 초대에 응했습니다만 실은 고깃덩이를 몇 조각 얻어 집에서 혼자 먹을 작정이었습니다. 그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바로 그 파티가 건지섬의 감자껍질파이 문학회 첫 모임인 셈이었으니까요. 당시엔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늦은 밤이면 엘리자베스는 저에게 건지섬과 북클럽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저에겐 마치 천국같이 들렸습니다. 잠자리에 누우면 불결한 냄새와 병균이 떠다니는 눅눅한 공기 속에서 숨을 쉬어야 했지만, 엘리자베스가 이야기를 할 때면 깨끗하고 상쾌한 바닷바람과 뜨거운 태양 아래 익어가는 과일 향기를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제 기억으로는 라벤스부뤼크에서 햇빛이 비친 날은 단 하루도 없었습니다. 여러분의 문학회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도 아주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돼지구이 이야기를 들을 때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습니다. 하지만 웃지 않았지요. 막사에서 웃으면 처벌을 받기 때문입니다.
나는 도시를 관찰해야겠다고 생각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레미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있었지만 얼마나 슬퍼 보이던지. 그때 갑자기, 나는 깨달았다! 드디어 알아낸 것이다! 도시는 레미가 떠나기를 원치 않는다. 그녀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까 봐 두려운 것이다. 그는 레미를 사랑하지만 천성이 수줍은 탓에 고백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도시와 다르다. 내가 레미에게 도시의 마음을 전하면 된다. 레미는 프랑스 여자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 것이다. 레미는 자기도 도시에게 호감이 있다는 걸 알릴 것이다. 그러면 둘이 결혼할 수 있고, 그녀는 파리로 떠나 살 필요가 없다. 나에게 상상력이 없다는 것이, 그렇기 때문에 사물을 명확히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편지는 사람을 가깝게 만들어줍니다.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말을 주고받을 수는 없지만 우리는 한 문장 한 문장 속에 마음을 담을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고통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서로를 어떻게 지켜낼 수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책이 우리를 살렸어요. 정말이에요.
인간이 잃지 말아야 할 단 하나의 태도, 그것은 상상력입니다. 상상은 우리가 삶을 견디게 합니다.
■ 끌림의 이유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건지라는 섬을 몰랐습니다.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 점령 하에 있었던 영국 해협의 작은 섬, 건지.
그 고립의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책을 읽고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을 지켜냅니다.
전쟁의 폐허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지만 그 속에 담긴 것은 오히려 사람, 관계, 기억, 회복, 책이 주는 온기입니다.
특이하다면 그 모든 정서가 편지라는 형식을 통해 섬세하게 이어집니다.
■ 간밤의 단상
전쟁은 끝났지만 상처는 아직 마음 곳곳에 남아 있는 시기, 그 속에서 주고받는 편지 한 통, 한 통이 조용히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저는 편지 쓰기를 참 좋아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자주 편지를 쓰면서 편지의 참맛을 알게 되어 지금까지도 가까운 사람에게 마음을 담은 글을 써 내려갑니다.
그렇다보니 예쁜 편지지나 엽서가 있으면 꼭 소장하곤 합니다.
엽서를 모으고 있는 큰 바인더는 벌써 두 개나 채워졌고 각종 편지지는 물론 스티커, 실링왁스들까지 각각 큰 박스에 한가득씩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받은 편지는 오래된 빈티지 박스에 고이 모아두고 있지요.
제가 이토록 진심인 이유는, 편지에는 언제나 나 자신이 있고 상대방이 있고 아직 닿지 못한 진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의 사람들은 모두 제각각의 상처를 품고 있습니다.
그러나 책과 편지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기억하고 조용히 회복해 나갑니다.
그들의 유쾌한 태도는 무거운 현실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사람을 다시 믿게 해주는 어떤 희망처럼 느껴졌습니다.
제가 시간이 부족해 올리진 못하지만 하루에 최소 2권의 책을 올리고 있습니다.
6월을 지난 현 시점 벌써 380여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올해 책으로 스트레스를 풀다 보니 일년치의 책을 반년만에 읽게 되었는데, 어쨌든 누군가와 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건 참 소중한 삶의 일부입니다.
가장 힘든 시기, 책은 우리를 살릴 수 있습니다.
■ 건넴의 대상
전쟁의 잔상 속에서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함을 보고 싶은 분
책이 사람을 살린다는 믿음을 확인하고 싶은 분
편지라는 형식 안에서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싶은 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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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감상이 더해지면 이 공간은 조금 더 깊고 따뜻해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