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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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저자 존 윌리엄스

알에이치코리아(RHK)

2015-01-02

원제 : Stoner (1965년)

소설 > 영미소설

소설 > 미국문학





■ 책 소개


『스토너』는 미국 중서부의 한 대학에서 문학 교수로서 평생을 보낸 한 남자의 삶을 그려내었으며 잔잔하지만 강한 울림이 있는 작품입니다.

참고로 출간 당시 주목받지 못했다가 나중에 빛을 발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소설 속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는 농장에서 태어나 대학을 통해 문학을 만나게 됩니다.

이후 교수가 된 후 결혼하고 자식도 가지며, 몇 번의 실패와 몇 번의 고독을 겪은 채 조용히 세상을 떠나는 이야기입니다.

평범하고 단순한 인생이지만, 그렇기에 더 깊은 여운이 남게되는 작품입니다.



■ 문장으로 건네는 사유


윌리엄 스토너는 1910년, 열아홉의 나이로 미주리 대학에 입학했다. 8년 뒤, 제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그는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의 강사가 되오 19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강단에 섰다. 그는 조교수 이상 올라가지 못했으며,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 중에 그를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동료들이 그를 추모하는 뜻에서 중세 문헌을 대학 도서관에 기증했다. 이 문헌은 지금도 희귀서적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명판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영문과 교수 윌리엄 스토너를 추모하는 뜻에서 그의 동료들이 미주리 대학 도서관에 기증."

가끔 어떤 학생이 이 이름을 우연히 발견하고 윌리엄 스토너가 누구인지 무심히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만, 그 이상 호기심을 충족시키려고 애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스토너의 동료들은 그가 살아 있을 때도 그를 특별히 높이 평가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의 이름을 잘 입에 올리지 않는다. 노장교수들에게 스토너의 이름은 그들을 기다리는 종말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고, 젊은 교수들에게는 과거에 대해 아무것도 일깨워주지 않고 동질감을 느낄 구석도 전혀 없는 단순한 이름에 불과할 뿐이다.



그는 대학 공부도 농장 일을 도울 때처럼 즐거움도 괴로움도 없이 철저하게, 양심적으로 했다. 1학년 말에 그의 평균성적은 B학점에 조금 미치지 못하는 정도였다. 그는 점수가 더 낮지 않은 것을 기뻐했을 뿐, 점수가 더 높지 않은 것을 걱정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전에는 알지 못하던 것을 배웠음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의 점수가 그에게 의미하는 것은 2학년 때에도 1학년 때처럼 해낼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에 불과했다.



"내 생각에 자네는 교육자가 되기에 적함한 사람이 아닐세. 재능과 학식보다 편견이 앞서는 사람이라면 절대 안 되지. 내게 그럴 힘이 있다면 십중팔구 자네를 해고했을 걸세. 하지만 우리 둘 다 알다시피 내게는 그럴 힘이 없지. 우리는…… 자네는 종신교수 제도의 보호를 받고 있네. 나도 그건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어. 그렇다고 내가 위선을 떨 필요는 없네. 난 이제 무슨 일에서든 자네와 얽히는 건 사양일세. 절대로, 그렇지 않은 척 가식을 떨지도 않을 거야."

스토너는 한동안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알겠네, 홀리.” 그는 피곤한 목소리로 말하고 나서 몸을 돌리려고 했다.



"그는 삶을 사랑했다, 그리고 삶이 그를 사랑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인생이 반드시 드라마틱해야만 의미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정받지 못하고 말없이 견뎌내어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사는 것이 결국 내 삶에 최선을 다한 것이니깐요.

우리의 하루하루는 어쩌면 기승전결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하루들이 모여 하나의 삶이 되는 것처럼 사소하고 평범한 존재의 존엄함 또한 꼭 깨우쳐야 합니다.





■ 책 속 메시지


책에서는 성공이나 명예가 삶의 본질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주인공 스토너는 문학을 사랑했고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했지만 무심한 결혼 생활을 보내야 했고 결국 사랑은 멀어졌으며 동료와는 갈등도 빚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문학과 학생 그리고 진실에 대한 충실함으로 자신의 존재를 지켜나가죠.

즉, 이 책은 성공이 아닌 진실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스토너』는 우리에게 나답게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묻게 만드는 소설입니다.



■ 하나의 감상


책을 읽고나면 문득 이런 물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스토너가 실패한 인물인가?

그러나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은 패배가 아닌 그에 대한 존경심이었습니다.


대학에서도, 집에서도 불안하기만 했던 그의 위치는 꼭 우리네 삶과 닮아있었습니다.

누가 정한 것도 아니지만, 세상은 쉽게 성공한 삶과 실패한 삶으로 나눕니다.

스토너는 자신이 선택한 일을 사랑했고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도 그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평범하고 조용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내면은 그 누구보다 치열했으니깐요.

이 정도면 괜찮은 삶이었지!

이렇게 읊조린 스토너의 고백은 어쩌면 우리가 바라는 인생의 진짜 모습 아닐까요.



■ 건넴의 대상


조용하지만 단단한 인생을 살고 싶은 이에게

문학의 위로를 믿는 모든 독자에게

인생의 의미를 고민 중인 30-40대에게




이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문장이나 순간이 있다면,

공감(♥)과 댓글로 나눠주세요.

당신의 감상이 더해지면, 이 공간은 조금 더 깊고 따뜻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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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노의 가르침 (블랙 에디션)

저자 세이노(SayNo)

데이원

2023-03-02

자기계발 > 성공 > 성공학




정말 중요한 건, 나를 믿고 스스로 선택하며 책임지는 삶이야.




■ 책 속 밑줄


시간이 남는다고? 크로노스가 많다는 뜻이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배워 나가라. 우선은 지금 하는 일과 관련된 것들부터 마스터하라. 그렇게 할 때 그 시간은 '돈이 되는 시간'이 될 수 있다. 일과 관련된 책들은 솔직히 재미는 없다. 하지만 재미가 충만한 책들만을 읽는다면 그 시간은 카이로스가 될 수는 있지만 돈이 되기는 어렵다. 재미없어 보이는 지식들을 위하여 '돈이 되는 시간'을 먼저 투자하는 사람만이 크로노스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행복은 우리가 소유한 것들과 비례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반례하는 것도 아니다. 내 경험에 비추어 말한다면, 행복은 우리가 소유한 것들의 유형의 것이건 무형의 것이건 상관없이 그 양과 질이 증가하는 과정이 계속될 때 얻어진다.



토마스 제퍼슨은 "행복의 추구는 양도할 수 없는 권리"라고 했다. 그 권리를 누리려면 스스로의 변화를 먼저 주도하라. 남이 하면 따라 하고 남이 좋다면 따라서 좋다고 박수 치는 그런 삶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 뿌듯하여질 수 있는 주체적 삶을 찾아라.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삶은 이미 생명이 죽은 삶이다.



인생은 의외로 단순하다.

성실하게 살고, 꾸준히 배우며, 남 탓하지 않는 것. 그 간단한 원칙을 지키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이 실패하는 것이다.



네가 인생에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은, 남을 위해 사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별볼일 없어'라는 마음은 네가 진짜 하고 싶은 일 앞에서도 너를 작아지게 만든다. 스스로를 믿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기회는 누군가가 만들어주는 게 아니다. 너 자신이 만들어야 하고, 그걸 잡는 것도 너의 몫이다."



■ 끌림의 이유


그 어떤 수식도 없이 삶의 본질을 찌르는 문장들이 가득해 매년 상반기에 한 번씩 꼭 읽고 있습니다.

단호한 문장들이 때로는 따끔하게, 때로는 다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죠.

나답게 살아야 한다는 다짐을 다시금 세우게 하는 자기계발서 중 하나입니다.



■ 간밤의 단상


워낙 유명하신 분이라 알 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고 하는데, 저는 비교적 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친한 오빠가 어느 날 조용히 글 하나를 보내주었고 그때 처음 세이노의 카페를 알게 되었습니다.

무료로 배포된 PDF 자료를 읽으며 이건 반드시 책으로도 정독해야겠다고 느꼈었습니다.

기교를 부리지 않고 진심으로 써 내려간 문장들은 당장의 정답을 주기보다는 스스로 사고하는 힘을 길러줍니다.

이 책은 왜 살아야 하는지를 묻기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성찰하게 하죠.


생각해보면 자기계발서를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유를 살펴보면 화려한 성공담만 가득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죠.

결국 우리가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은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도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작고 단단한 용기의 말인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세이노의 가르침』을 찾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속도에 떠밀리지 않고 나의 기준으로 단단히 살아내는 법을 아시나요?

모두가 빠르게 달리는 지금, 이 책은 조용히 멈춰 서서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당신답게 살고 있나요?



■ 건넴의 대상


삶이 흔들릴 때 중심을 다잡고 싶은 사람

자기계발보다 자기이해가 필요한 사람

단단하고 담백한 문장에 위로받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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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인의 대표 시 「풀꽃」, 이 한 줄의 시가 오늘의 나를 붙들었습니다.

오늘은 나태주 시인의 「풀꽃」을 함께 읽으려 합니다.




풀꽃 –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해설 및 주제 분석


「풀꽃」은 나태주 시인의 대표작으로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처럼 자연스레 외운 시 중 하나입니다.

짧지만 울림이 깊은 시로 관찰과 존중의 윤리를 시적 언어로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작고 소박하게 피어나는 풀꽃이지만, 오랫동안 들여다볼 때 비로소 그 고유한 아름다움이 드러난다는 사실이 잘 드러나있습니다.

이는 인간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누군가의 진면목은 쉽게 드러나지 않지만 세심한 시선과 지속적인 관심이 쌓여야 비로소 그 사람의 모습을 알게 되죠.

마지막 줄인 [너도 그렇다]는 우리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구절 중 하나입니다.

상대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일 수도 있죠. 이는 곧 위로이자 존중의 방식입니다.



■ 하나의 감상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흘려보냅니다.

감정도, 사람도 그리고 그 순간도.


하지만 시를 찬찬히 읽다보면 자연스레 깨닫게 됩니다.

아, 조금만 더 자세히, 조금만 더 오래 바라보았을 걸.

그랬다면 모든 것들이 더 예쁘고 더 사랑스러워질 수 있었을텐데.


오랜만에 친구와 만나 짧았지만 오랜 시간동안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친구의 진심어린 시선과 배려 그리고 사랑이 느껴져 계속해서 떠올랐습니다.

저는 오늘 이 시를 읽고 스쳐가는 사람들 속에서 저조차 몰랐던 애틋한 마음 하나를 건졌습니다.

어쩌면 지금 내 곁에 있는 그 사람, 그리고 거울 속의 나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시가 떠오르는 사람이 있나요?

그렇다면 그 사람에게 이 글을 공유해주세요.

오늘, 당신은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풀꽃과 결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다음엔 정호승의 「수선화에게」를 함께 읽어보려고 합니다.

작고 소박한 시 한 줄이 건네는 위로를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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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저자 이민진

인플루엔셜(주)

2023-12-20

원제 : Pachinko (2017년)

소설 > 영미소설

소설 > 미국문학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 책 속 밑줄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이 땅에 사는 다른 이들은 이렇게 분별 있는 부모를 둘 정도로 운이 좋지는 않았다. 적에게 약탈당하거나 큰 재해를 입은 나라에서 늘 그렇듯이 노인이나 과부, 고아 같은 약자는 식민지가 된 반도에서 더없이 절박한 형편이었다. 한 명이라도 더 먹일 수 있다면, 보리밥 한 그릇에 하루 종일 일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 천지였다.



세상에서 훈이만큼 딸을 소중히 여기는 아버지도 드물었다. 훈이는 자식을 웃게 하는 것이 삶의 목표인 사람 같았다.

선자가 열세 살이 되던 해 겨울에 훈이가 결핵으로 조용히 죽었다. 양진과 선자는 장례를 치르면서 슬픔을 가누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젊은 과부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평소처럼 일을 시작했다.



"어딜 가든 사람들은 썩었어. 형편없는 사람들이지. 아주 나쁜 사람들을 보고 싶어? 평범한 사람을 상상 이상으로 성공시켜놓으면 돼. 뭐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을 때 그 사람의 본모습이 드러나는 법이거든."

선자는 한수가 이야기할 때 고개를 끄덕이면서, 한수의 말을 다 기억하고 한수의 모습을 모두 간직하고자 했다. 한수가 하려는 말은 무엇이든 이해하려고 애썼다. 선자는 어렸을 때 모으던 바닷가 유리 조각과 장밋빛 돌멩이처럼 한수의 이야기를 아주 소중히 여겼다. 한수가 선자의 손을 잡고 잊을 수 없는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기에 선자는 한수의 모든 말이 놀라웠다.



"팔 쌀이 마이 없십니더." 조 씨가 거듭 말했다.

"신부랑 신랑 저녁밥 해줄 정도만 있으면 됩니더. 집 떠나기 전에 흰쌀밥 맛이라도 보라꼬예." 양진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자 쌀집 주인이 눈길을 돌렸다.

딸들을 먼 곳에서, 조선인들을 가축 취급하는 나라에서 살게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피붙이를 그 개자식들에게 뺏긴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양진은 지폐를 세서 탁자 위 주판 옆 나무 쟁반에 올려놓았다.

"있으면 작은 걸로 한 봉지 담아주이소. 둘이 배부르게 먹이고 싶십니더. 남으면 백설기 해줄라꼬예."

양진은 돈 쟁반을 조 씨 쪽으로 밀었다. 그래도 조 씨가 안 된다고 하면, 부산에 있는 쌀집을 다 돌아다닐 작정이었다. 혼인날 딸에게 저녁밥으로 꼭 흰쌀밥을 먹이고 싶었다.



고국에서조차 가난했던 선자, 그녀는 낯선 땅 일본에서 평생을 살아가게 된다.

믿음과 수치, 굴욕과 자존, 그리고 가족.



부산과 오사카의 삶을 비교하면 생판 다른 생처럼 느껴졌다. 20년 동안이나 돌아가지 못했지만, 그들의 작은 바위섬 영도는 선자의 기억 속에서 더할 나위 없이 생생하고 환하게 남아 있었다. 이삭이 천국을 설명하려고 했을 때, 선자가 마음속으로 그린 천국의 모습은 고향이었다. 투명하고 빛나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고향 땅의 달과 별에 대한 기억도 이곳의 차가운 달과 별하고는 사뭇 다른 것 같았다. 고국의 상황이 나쁘다고 사람들이 아무리 불평해도, 선자는 유리처럼 반짝거리는 초록빛 바다 옆에 아버지가 아주 잘 관리한 밝고 튼튼한 집, 수박과 상추와 호박을 내주던 풍성한 텃밭, 맛난 것들이 떨어지는 법이 없었던 시장에 대한 추억만이 떠올랐다. 그곳에서 살 때는 그곳을 충분히 사랑하지 못했다.



"잘 들어, 이 친구야, 네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이 나라는 달라지지 않아. 나 같은 조선인들은 여길 떠날 수도 없지. 우리가 어디로 가겠어? 고국으로 돌아간 조선인들도 다를 바 없어. 서울에서는 나 같은 사람을 일본 놈이라고 불러. 일본에서는 내가 얼마나 돈을 많이 벌든, 얼마나 좋은 사람이든 더러운 조선인일 뿐이야. 도대체 어떡하라는 거야? 북한으로 돌아간 사람들은 죄다 굶어 죽거나 공포에 떨고 있다고."

모자수가 담배를 찾아 주머니를 두드렸다.

"인간은 끔찍해. 맥주나 마셔."



왜 에쓰코네 가족은 파친코 사업을 그리 안 좋게 생각할까? 외판원이었던 에쓰코의 아버지는 형편이 안 되는 외로운 주부들에게 비싼 생명보험을 들게 했고, 모자수는 성인 남녀들이 돈을 따려고 핀볼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그들은 모두 가능성과 두려움, 외로움을 이용해 돈을 벌었다. 매일 아침, 모자수와 직원들은 당첨 결과를 조작하려고 기계를 살짝 손봐서 돈을 따는 사람은 적고 잃는 사람은 많게 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자신이 행운아일 거라는 희망을 품고 게임을 계속했다. 어떻게 성공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겠는가. 에쓰코는 이 중요한 면에서 실패했다. 아이들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이길지 모른다는 터무니없는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믿어보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파친코는 바보 같은 게임이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았다.



선자는 평생 다른 여자들에게 여자는 고생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여자는 어릴 때도 고생하고 아내가 돼서도 고생하고 엄마가 돼서도 고생하다가 고통스럽게 죽었다. 고생이라는 말에 신물이 났다. 고생 말고 다른 것은 없을까? 선자는 노아에게 더 나은 삶을 주려고 고생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자신이 물을 마시듯 들이마시던 수치를 참아야 한다고 아들에게 가르쳤어야 했을까? 결국 노아는 자신의 출생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앞으로 고생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한 일일까?



파친코는 결코 공정한 게임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안에도 삶이 있었고, 생존이 있었다.



■ 끌림의 이유


개인의 삶과 가족사를 통해 거대한 현실을 그려낸 대서사시입니다.

읽는 내내 떠올랐던 단어는 바로 삶의 무게였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감당해야 했던 비극과 현실, 그 안에서 묵묵히 살아낸 이들의 이야기가 가슴을 파고듭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 간밤의 단상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책에서는 역사적 억압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현실을 반영하는 동시에 삶을 이어나가려는 의지가 여실히 드러납니다.

삶은 불공정하고 선택의 여지는 여전히 제한적이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살아갑니다.

선자의 삶을 따라가며 내가 받은 것과 누리고 있는 것의 무게를 체감하였고 그 누구의 생도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파친코』는 우리가 선택할 수 없었던 역사와 그 안에서 자신의 몫을 다하려 한 사람들의 용기와 인내를 조명합니다.

즉, 기억이고 존재의 증명이며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입니다.



■ 건넴의 대상


깊은 서사와 묵직한 감동을 원하는 사람

가족, 정체성, 역사에 대해 사유하고 싶은 사람

시대의 그늘 아래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위로받고 싶은 사람




이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문장이나 순간이 있다면, 공감(♥)과 댓글로 나눠주세요.

당신의 감상이 더해지면, 이 공간은 조금 더 깊고 따뜻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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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5-04-23 1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파친코, 무척 좋은 작품이란 말을 들었어요. 저는 전자책으로 갖고 있어요.

하나의책장 2025-05-03 18:18   좋아요 0 | URL
출간 당시에 수량 체크를 잘못 해서 4권이 한번에 온 적이 있었어요.
그때 책을 워낙 많이 시켜서 몰랐는데.. 덕분에 친구들에게 선물로 준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
 
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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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정보


소년이 온다

저자 한강

창비

2014-05-19

소설 > 한국소설

해외 문학상 > 노벨문학상





■ 책 소개


1980년 5월 광주.

한 소년의 죽음과 그를 기억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따라가며 한국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시간을 정면으로 마주한 소설입니다.

단순한 역사소설이 아니라, 폭력 이후의 생과 죄책, 기억과 애도의 문제를 파고드는 이 소설은 고통을 바라보는 윤리적 태도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주인공 ‘동호’는 계엄군의 폭력으로 숨진 친구의 시신을 지키기 위해 도청으로 들어갑니다.

이후 그의 죽음은 주변 인물들의 삶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각각의 시점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잊지 말아야 할 진실을 우리 앞에 놓습니다.





■ 문장으로 건네는 사유


비가 올 것 같아.

너는 소리 내어 중얼거린다.

정말 비가 쏟아지면 어떡하지.

너는 눈을 가늘게 뜨고 도청 앞 은행나무들을 지켜본다. 흔들리는 가지 사이로 불쑥 바람의 형상이 드러나기라도 할 것처럼. 공기 틈에 숨어 있던 빗방울들이 일제히 튕겨져나와, 투명한 보석들같이 허공에 떠서 반짝이기라도 할 것처럼.



마이크를 쥔 젊은 여자의 카랑카랑한 음성이 분수대 앞 스피커에서 울려온다. 네가 걸터앉은 상무관 출입계단에서는 분수대가 보이지 않는다. 멀리서나마 추도식을 보려면 건물 오른편으로 돌아나가야 한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고 너는 여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여러분, 적십자병원에 안치되었던, 사랑하는 우리 시민들이 지금 이곳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너무 많은 피를 흘리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그 피를 그냥 덮으란 말입니까. 먼저 가신 혼들이 눈을 뜨고 우릴 지켜보고 있습니다.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네가 죽은 뒤, 나는 살아가는 게 두려웠다. 살아 있다는 게 죄스럽고, 숨 쉬는 일조차 너에게 미안했다.



죽은 자보다 산 자가 더 오래 괴로워하는 이 문장은, 부채처럼 가슴에 남은 죄의식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애도하지 못한 슬픔과 마주하지 못한 진실 그리고 남겨진 자의 시간이 때로는 삶보다 더 아플 수 있다는 것을 조용히 속삭입니다.





■ 책 속 메시지


『소년이 온다』는 과거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묻는 작품입니다.

폭력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그 폭력을 외면하거나 잊으려 했던 우리 모두가 이 이야기의 일부임을 상기시킵니다.

저자는 우리가 어떻게 고통을 바라볼 것인지 또한 죽음 이후에도 우리가 지켜야 할 인간의 존엄은 무엇인가에 대해 묻습니다.



■ 하나의 감상


문장 하나하나가 비탄으로 젖어 있지만 그것이 감정에 함몰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절제된 언어는 더욱 큰 울림이 되어 제 가슴 깊은 곳을 조용히 두드렸습니다.


광주사태를 실제 겪었던 아빠는 어린 시절부터 저희에게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랬기에 지난 윤석열 계엄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칼을 들고 휘두르려 했지만 다친 사람이 없었다고 해서 죄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어떤 논리에도 맞지 않습니다.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다큐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참상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날 광주에서 스러져간 이름 없는 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인지 읽는 내내 숨이 막히고 문장을 넘기는 것이 두려울 정도였지만, 그 고통을 함께 견디는 일이 곧 기억의 윤리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끝내 말하지 못한 이들을 위한 진혼곡이자 현 시대의 양심에 던지는 물음입니다.


잊지 않고 끝까지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 건넴의 대상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문학으로 느끼고 싶은 분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알고 싶은 청년 세대

한강의 문장을 통해 진실과 마주하고 싶은 사람


고통과 애도, 기억의 윤리에 대해 사유하고 싶은 독자라면 꼭 읽어보길 추천합니다.




이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문장이나 순간이 있다면,

공감(♥)과 댓글로 나눠주세요.

당신의 감상이 더해지면, 이 공간은 조금 더 깊고 따뜻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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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5-04-23 1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년이 온다, 를 읽었는데 작별하지 않는다, 를 또 어떻게 읽나 하고 있어요. 읽는 것만으로도 독자로서 힘든데 당사자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하나의책장 2025-05-03 18:47   좋아요 1 | URL
그래서 저도 한 권 읽을 때마다 후유증이 너무 커서 연달아 읽지는 못했었어요ㅠ
재독할 때도 큰마음 먹고 읽어야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