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고기

저자 조창인

산지

2024-02-20

소설 > 한국소설




아비는 자식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었다. 단 하나, 너를 낳아주었다는 것만이 자랑이었다.




■ 책 속 밑줄


아빠는 멍텅구리입니다.

나는 지금 멍텅구리 아빠를 보고 있답니다.

창밖에는 비가 옵니다. 부슬부슬, 비는 아침부터 내렸지요. 지금은 저녁이고요.

아빠는 소아병동 뒤뜰 나무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의자는 푹 젖어 있을 겁니다. 아빠도 의자만큼 푹 젖어 있겠고요.

아빠에겐 우산이 없습니다. 우산이야 구내매점에서 살 수 있을텐데, 왜 저러고 있을까요. 비는 또 왜 그치지 않는지요.



난 백혈병에 걸렸습니다. 아빠는 무슨 병인지 말해주지 않았어요. 단 한번도. 앞으로도 그럴 게 뻔해요. 우리 병실에는 온통 백혈병과, 백혈병 사촌인 재활불량성빈혈 환자들만 있어요. 알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된답니다. 백혈병이 얼마나 끔찍한 병인지도요. 나는 키가 작은 편예요. 백혈병에 걸린 2년 동안 다른 애들은 쑥쑥 자랐지만 나는 그대로랍니다. 백혈병이 내 키를 나무 기둥에 쾅쾅 못 박아둔 거죠. 또 백혈병은 심술쟁이 고양이 톰 같아요. 나는 새앙쥐 제리 꼴이고요. 아무리 도망쳐도 끈질기게 쫓아오는 고양이 톰처럼 나를 못살게 굴지요.



그 모든 것이 착각이었을까. 한순간의 신기루, 꺼져가는 촛불의 마지막 휘황찬란한 발광, 혹은 운명의 심판자가 던져준 값싼 위로나 최후의 동정이었을까. 아버지의 과도한 욕망이 빚은 참혹한 결과였을까.

그는 벽에 등을 기댄 채 서서 굳게 잠긴 중환자실 철문을 노려보고 또 노려보았다. 다시는 찾지 않겠노라 다짐했던 병원에, 그것도 응급실을 거쳐 중환자실에 아이를 입원시킨 직후였다. 병원을 벗어난 지 꼭 36일 만이었다. 고작 거기까지였다.



입안에 가득 침이 고입니다. 꼴깍꼴깍, 침을 삼키고 아빠의 말을 기다립니다. 이번만큼은 아빠도 화를 낼 줄 알았어요. 엄마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예요. 아빠는 멍한 눈으로 날 바라볼 뿐이에요. 아휴, 내 입에서 저절로 한숨이 새어나옵니다.

내가 아픈 게 왜 아빠 탓이죠? 답답해요. 아빠는 마치 자신의 잘못인 것처럼 가만히 있으면 어쩌자는 건지 도대체 모르겠어요.



산다는 것은 고통과 직면하는 일이기도 하다. 안다. 알고 있다. 그렇다고 고통이 무리지어 올 것까지는 없다. 기어코 맞닥뜨려야 할 고통이라면 차례라도 지켜야 옳다. 죽음이 고통의 끝이라면, 적어도 어느 하나는 해결되어야 마땅하다. 죽음은 진작 손을 내밀면 잡힐 듯 가까이 있었다. 아이가 투병을 시작한 이래 줄곧 그러했다. 아이의 위태로운 행보에 동행할 수밖에 없는 삶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희망이 아이를 감싸고 있다. 아이는 희망의 이름으로 소생하는 중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그는 살아야 할 분명한 이유와 마주한 셈이다. 그러나, 아이와 무관하게 죽을 거란다. 아이가 자신을 남겨두고 홀로 가버릴까 늘 서럽고 무서웠다. 이젠 아이를 남겨두고 그 혼자 가야 한단다.



내가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은 아빠뿐이고, 아빠가 사랑하는 사람도 나뿐이죠.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언제까지나 함께 있어야 한다고 말한 건 바로 아빠예요. 그렇게 중요한 걸 왜 까먹은 걸까요. 내가 없어지면 아빠는 어떻게 될까요. 아빠 말대로 속이 시원할까요. 자꾸만 가시고기가 생각납니다. 새끼가시고기들이 떠난 뒤 돌 틈에 머리를 박고 죽어가는 아빠가시고기 말예요. 내가 없어지면 아빠는 슬프고 또 슬퍼서, 정말로 아빠가시고기처럼 될지도 몰라요. 만일 내가 엄마를 따라 가게 된대도 아빠가 쪼금만 슬퍼했으면 좋겠어요. 우린 언젠가 다시 만날 테니까요.



아들아, 그 동안 네가 이렇게 아팠구나. 아빠는 몰랐다. 네가 아프다면 아픈 줄만 알았지, 그 고통의 깊이가 어디까지인지 알지 못했다. 아들아, 네가 이다지도 크나큰 고통 속에서 그 허다한 날들을 보냈구나. 아들아, 가녀린 몸으로 그 높은 고통의 산들을 어떻게, 무슨 수로 다 넘어왔니. 아들아, 미안하다. 아빠는 미처 몰랐다. 아프면 그냥 대신 하고픈 마음이었는데, 그 마음조차 네가 겪었을 고통 앞에서는 한없이 초라한 것이었구나.



■ 끌림의 이유


백혈병에 걸린 아들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살아가는 아버지는 이름, 자존심도 심지어 목숨까지도 조용히 내려놓습니다.

『가시고기』는 슬픔을 말하지 않고 사랑으로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말로 감정을 설득하지 않고 부성애라는 존재 자체만으로 독자들의 가슴을 울리게 합니다.

눈물샘을 자극하는 감동적인 이야기, 그 중심에는 슬픔보다 훨씬 더 깊은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한 질문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 간밤의 단상


부모의 사랑이라는 말을 글로 옮기려 할 때면 마음이 자꾸 머뭇거리게 됩니다.

그건 너무 많이 들은 말이면서도 막상 꺼내려 하면 쉽게 닿지 않는 감정이니까요.


『가시고기』는 제게 세 번이나 다른 시선으로 다가온 책입니다.

마냥 여리기만 했던 10대였을 때, 혼란스럽고 불안정했던 20대였을 때 그리고 삶의 무게를 체감하는 30대가 된 지금.

같은 이야기인데도 시간이 흐를수록 아버지의 뒷모습이 다르게 보입니다.

사랑이란 감정이 아니라 움직임이라는 것을 이 책은 말 없이 보여줍니다.

무언가를 주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끝내 말하지 못하는 마음은 가시고기라는 비유보다 더 깊고 고요하게 다가옵니다.

이름 없이 사라졌지만, 끝내 아들의 이름만을 마음속으로 불렀던 그 장면은 아버지라는 존재가 얼마나 묵묵한 희생으로 이루어졌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어쩌면 『가시고기』는 단순히 감동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세상에 수없이 존재하는 이름 모를 사랑, 기록되지 않은 헌신, 침묵 속의 존재감을 기리는 책인지도 모릅니다.


책장의 마지막을 덮고 나면, 우리는 자연스레 누군가의 얼굴을 오래도록 떠올릴 것입니다.

아마 그건, 사랑을 말하지 못해 더욱 간절했던 어떤 이름이지 않을까요.



■ 건넴의 대상


감동적인 부성애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고 싶은 분

부모와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싶은 분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내려놓은 적 있는 분




이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문장이나 순간이 있다면 공감(♥)과 댓글로 나눠주세요.

당신의 감상이 더해지면 이 공간은 조금 더 깊고 따뜻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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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무성해지는 것들 _다섯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에 대하여



어떤 감정은 설명하기보다 오래 바라보아야 이해됩니다.

특히 좋아한다는 감정이 그렇습니다.

처음엔 뜨겁고 곧 익숙해지다 어느 순간 잊힌 듯 조용히 남지요.


책을 그렇게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활자를 따라가는 재미였고 조금 지나니 문장 하나에 눈물이 고이고 이제는 책이 있어야 내가 나다워집니다.


무언가를 오래도록 좋아하는 사람은 세상의 흔들림에 쉽게 부서지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내면의 방이 있으니까요.


너무 쉽게 식어버리는 요즘, 저는 좋아하는 일을 오래 좋아하고 싶습니다.

지루하더라도 반복되더라도, 그 안에 제 진심만 담겨 있다면 그 자체로 충분하니까요.




🌸

최종본은 브런치 《조용히 무성해지는 것들》에서 확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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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름, 완주

저자 김금희

무제

2025-05-08

소설 > 한국소설




그럼 서로 마주보고만 있으면 되겠네. 그러라고 여름이 있는 거네.




■ 책 속 밑줄


손열매가 처음으로 성대모사 한 사람은 스탠리 입키스였다. 그는 짐 캐리가 연기한 영화 「마스크」의 주인공으로 고대의 나무 가면을 쓰면 평소와 전혀 다른 존재로 변한다. 히어로라면 히어로의 일종으로 분류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포장하기에 두꺼운 초록 버터크림의 그 얼굴은 토네이도처럼 무질서를 몰고 와 현실을 엉망으로 만든다. 우리가 알던 세계는 전혀 다른 것이 된다. 그러니까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진실된 것.



평면의 존재를 입체적으로 오려 내는 영혼의 가위질처럼, 진흙 덩어리를 인간으로 만들었다는 신의 숨결처럼, 보글보글 끓어올라 장독대 안을 푹 익히는 유산균처럼 손열매는 자기 안의 무언가를 '발생'시키기 시작했다. 그간 한 번도 경험 못 한 고도의 집중력이라 코끝까지 시큰해졌고 하늘 끝까지 날아오를 듯했다.



보령에서 올라와 오랫동안, 대학을 졸업하면, 서른이 되면, 경력이 차면, 듬직한 안정으로 나아가리라 믿었지만 이상하게 삶은 매번 흔들렸다. 마치 우는 사람의 어깨처럼.



열매는 자괴감이 들었다. 호흡을 더 고르자 드디어 생각마저 날아갔다. 버글거리던 것들이 사라지고 서 있다는 느낌만 남았다. 옆에는 과잉 흑담즙으로 고생하는 우울한 어저귀와 슬픔이라는 단어만 들으면 맹렬히 저항하는 문제 학생이 서 있고 봄은 그냥 봄일 뿐이다. 그런 그들을 감싸며 마치 눈보라처럼 수양버들 씨앗이 날았다.



함께 수미 얼굴을 보고 있던 열매는 얼마 전 동창들이 야유하듯 전한 말을 근황 소식으로 바꾸어 들려주었다. 여의도에서 본 사람이 있는 걸 보면 어디 직장을 구했는지도 모르겠다고. 순간 얼굴에 안도의 빛이 흘러갔지만 수미 엄마는 표정을 감췄다. 기쁨이나 즐거움, 안도와 낙관 같은 것 대신 신산함, 피로감, 불안, 불편, 침묵이 더 안전하게 느껴지는 사람처럼 재빨리.



느린 템포의 음악이 흐른다. 고독과 상실, 순수의 근원에 대한 염원, 무력감과 나약함 속에서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호혜적 사랑, 그 시절 신해철의 음악에는 그런 여린 신념들이 들어 있었다.



뭔가를 기다리는 간절함이 마음을 차게 쓸고 갔다. 뭔가 다른 것, 완평을 찾아간 그 봄처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진실된 것. 완주 나무도 없고 숲의 친교도 느껴지지 않는 이 도시에도 가끔은 그런 기적이 일어나도 되지 않을까.



외로움, 후회, 책임감, 소진, 그리고 다시 살아가는 일.

모두가 여름 속에서 말없이 자신의 계절을 통과한다.



■ 끌림의 이유


『첫 여름, 완주』는 상처를 드러내지도 감정을 과장하지도 않습니다.

무너짐과 회복을 말없이 함께 있는 시간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풍경과 사람들을 통해 보여줍니다.

완주라는 장소는 삶의 속도를 바꾸는 장치이며 등장인물들의 모든 감정은 말보다 시선과 조용함 속에서 드러납니다.


듣는 소설이라는 형식이 만들어낸 독특함 덕분에 이야기는 더 따뜻하고 느긋하게 진행되며 말보단 리듬으로 우리를 위로해주는 소설입니다.

『첫 여름, 완주』는 잠시 멈추었지만 결국 끝까지 걸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결국 모든 사람에겐 각자의 여름이 필요하다는 것을, 즉 함께 있으되 침묵이 가능한 관계가 얼마나 따뜻한지 잘 보여줍니다.



■ 간밤의 단상


누군가와 아무 말 없이 시간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자 커다란 위로인 거 같습니다.

우린 종종 서로 이야기를 나누어야만 치유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가만히 곁에 있어주는 침묵에서 더 큰 온기를 느끼기도 합니다.

읽는 내내, 묵인이 아닌 수용이란 감정이 자주 떠올랐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마음, 서로를 급하게 이해하려 하지 않는 관계 그리고 내 속도를 기다려주는 사람들.

그런 여름을, 그런 완주를 누군가 내게도 건네줄 수 있을까?

아니,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 질문이 머릿속에서 맴맴 돌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감정은 사실 조용한 회복입니다.

폭발하거나 울부짖는 대신, 그저 스스로와 타인의 말 없는 연대를 통해 다시 일어서는 일이 제겐 꼭 맞다고 할까요.

『첫 여름, 완주』는 그런 회복의 과정을 마을이라는 작은 세계 속에 담아냈습니다.

누구도 정답을 말하지 않고 누구도 구원자가 되지 않지만, 모두가 서로의 마음 옆에 조용히 앉아 있는 방식만으로도 위로가 되죠.

살다 보면 말하고 싶지 않은 날이 있는데 그럴 땐 슬픈 이야기조차 꺼려집니다.

이 책은 아무 말 없이 따스한 햇빛이 비춰주는 테이블에 앉아 그저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로가 되는 시간과도 같은, 여름날의 속삭임처럼 느껴졌습니다.

무언가를 극복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조금 멈춘 채 숨만 쉬어도 괜찮다고.

말보다 조용한 사람이 세상을 완주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고요한 소설 속에서 저는 제 삶의 불시착을 잠시 안아주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 건넴의 대상


조용히 마음을 회복하고 싶은 분

말 없이 있어주는 관계에 위로를 받는 분

김금희 작가 특유의 정서적 호흡을 좋아하는 분




이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문장이나 순간이 있다면 공감(♥)과 댓글로 나눠주세요.

당신의 감상이 더해지면 이 공간은 조금 더 깊고 따뜻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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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추얼은 그런 어둠의 순간, 또는 어둠의 세월에서 우리를 이끌어내는 빛이 될 수 있다. 통과의례는 우리를 변화시킨다. 다른 누구 또는 다른 무엇이 되고자 하는 우리 내면의 근본적이고 영속적인 욕구가 충족될 수 있게 해준다. 스스로에게 그리고 세상에, 우리가 진정 어떤 사람인지를 각인시킬 수 있게 해준다.


– 『어떻게 이 삶을 사랑할 것인가』, 마이클 노턴






■ 하나의 사유


리추얼은 단순히 반복되는 습관이 아닙니다.

삶이 무너지는 듯한 순간, 마음 어딘가에서 길을 잃을 때 리추얼은 그것을 붙드는 작은 닻이 됩니다.

마이클 노턴은 말합니다, 리추얼은 삶의 어둠을 통과하는 하나의 빛이며 우리를 다시 나답게 회복시키는 의식이라고.


가끔 우리는 매일 똑같은 하루를 살아가는 것 같아 지치곤 합니다.

하지만 눈 떠서 커피를 내리고 책 한 장을 펼치고 저녁 무렵 일기를 쓰는 그 작은 반복들이 우리를 다시 나로 되돌려줍니다.

그건 하루의 형식을 만드는 일이자 삶의 방향을 세우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소한 행동들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죠.

"나는 지금 누구로 살아가고 있는가?"


삶은 크고 거창한 계기로만 변하지 않습니다.

매일 나를 붙잡는 리추얼 하나가 어쩌면 우리 삶 전체를 조금씩 바꾸고 있어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도 조그마한 리추얼 하나씩 꼭 만들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문장을 떠올리게 되는 사람이 있나요?

그렇다면 그 사람에게 이 글을 조용히 건네주세요.

문장 하나가 누군가의 오늘을 다르게 만들 수 있으니까요.

다음 주엔 조금 더 따뜻하고 단단한 한 문장으로 다시 찾아올게요.

당신의 일요일에 이 조용한 사유가 잔잔히 머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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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저자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민음사

1999-03-20

원제 :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 (1774년)

소설 > 독일소설

고전 > 서양고전문학 > 서양근대문학




그녀는 나의 모든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전부가 아니었다.




■ 책 속 밑줄


훌쩍 떠나온 것이 나는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친구여! 인간의 마음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 내가 그렇게도 사랑하고, 헤어지길 섭섭해했던 자네 곁은 떠나와서 이렇게 기쁨을 느끼고 있다니! 그래도 자네는 이런 나를 용서해 주리라 믿어. 그 밖의 사람과 나의 교제 관계는 마치 나 같은 인간의 마음을 괴롭히려고 운명이 일부러 마련해 놓은 것이 아닐까? 하지만 가련한 레오노레만은 정말 안됐어! 그러나 나의 책임을 아니지.



내 마음은 이상할 정도로 명량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다. 그것은 말하자면 내가 요즈음 마음속 가득히 느끼고 있는 감미로운 봄날 아침의 분위기 같다.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 마련된 듯한 이 고장에서 나는 지금 홀로 삶을 즐기고 있다. 친구여, 나는 정말로 행복하다. 내가 조용하고 아늑한 감정에 잠겨 있기 때문에 내 예술은 손해를 보고 있지만 말이야. 나는 지금 그림을 전혀 그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내가 훌륭한 화가였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



아아, 이런 것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은, 한여름의 고달픈 여행을 마친 다음 차가운 우물물의 상쾌함을 맛본 적이 없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내 마음을 허물어뜨리는 것은, 대자연 속에 숨겨져 있는 그 침식의 힘, 그것이다. 바로 그 힘이 만들어낸 것은 그 사람의 이웃과 그 사람 자신을 파괴하고 만다. 그것을 생각하며, 하늘과 땅과, 그리고 그곳에서 작용하는 온갖 힘에 둘러싸여, 나는 불안스레 비틀거리는 것이다. 나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영원히 집어삼키고, 영원히 되새김질하는 괴물 뿐이다.



언젠가 더운 여름날에 로테와 산책하다가 쉰적이 있었던 버드나무 그늘을 구슬피 내려다보았지만, 지금 그곳 역시 물에 잠겨 버드나무조차 거의 알아볼 수가 없었다. 빌헴름, 그녀의 목장, 그녀의 수렵 별장을 둘러싼 일대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우리의 정자는 지금쯤 격류에 휩쓸려 얼마나 형편없이 되었을까 하고 말이다.



나는 그녀를 두 팔로 껴안고 가슴에다 꼭 품은 채, 사랑을 속삭이는 그녀의 입술에다 한없이 뜨거운 키스를 퍼부었다. 나의 눈은 그녀의 황홀한 눈동자 속에서 떠돌고 있었다. 신이여, 지금도 저 불타는 기쁨을 마음속 깊이 가득한 그리움으로 되살려 생각하고 행복감에 잠긴다면, 과연 나는 벌을 받아야 할 죄를 짓는 것입니까? 로테! 로테, 나는 이제 마지막에 다다른 것 같다! 나의 생각은 혼란스러워지고 벌써 일주일 전부터 사고력을 잃었다. 나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이고, 어딜 가도 기분이 좋지 못하고 그래서 어디에 있어도 아무 상관이 없다.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으니, 떠나버리는 것이 좋을 듯싶다.



나는 그녀가 행복하길 바랐다. 그런데 그 행복 속에 내가 포함되지 않음을 알았을 때, 나는 무너졌다.



사랑은 나를 구원하지 않았다. 다만, 나를 완전히 무너뜨렸을 뿐.



■ 끌림의 이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단순한 비극적 연애담이 아닙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빠진 한 청년이 사랑 앞에서 무너져 한 인간의 모든 내면이 낱낱이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베르테르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속에서 사랑의 시작과 혼란, 집착, 자멸로 향하는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냅니다.

특히 주인공 베르테르라는 인물을 통해 사랑을 아름답게 표현하기보단 사랑이 사람을 얼마나 망가뜨릴 수 있는지, 얼마나 외롭게 만들 수 있는지를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그의 감정은 섬세하고도 폭발적이며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끝내 길을 잃게 됩니다.


고등학생 때 읽었을 때와 성인이 되어 다시 읽었을 때 느낌이 달랐습니다.

이는 독자들이 지금 느끼고 있는 사랑의 감정의 크기와 깊이에 따라 색다르게 느껴질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 간밤의 단상


누구나 한 번쯤,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누군가를 향해 온 마음을 기울였던 적이 있지 않나요.

베르테르의 사랑은 절박하고 순수하지만 동시에 아프고 무모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비극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펼쳐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사랑이라는 감정에 존재 전체를 내어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녀의 존재 안에서만 자신이 존재한다고 믿었고 그녀의 부재는 곧 삶의 붕괴를 의미했습니다.


"나는 당신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어요."


그는 그렇게 말했고 그렇게 살아냈으며, 결국 그렇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베르테르는 사랑을 통해 자신을 잃어갑니다.

그의 고통은 단순히 짝사랑의 비극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자기 자신의 존재마저 부정하게 되죠.

어쩌면 베르테르의 진짜 비극은 사랑이 아니라 그 자신을 바라보지 못했다는 데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랑은 때때로 우리를 성장시키지, 때로는 우리를 철저히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무너짐 끝에서 우리는 비로소 깨닫게 되죠.

사랑은 완성이 아니라 인정임을.

상대가 아닌 나 자신을 지키는 것이 진짜 사랑임을.


다시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 마음도 계절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계절의 사랑을 하고 계시나요?



■ 건넴의 대상


사랑 앞에서 스스로를 잃어본 적 있는 분

감정의 깊이를 문장으로 마주하고 싶은 분

고전을 통해 감정의 본질을 되짚어보고 싶은 분




이 책을 읽고 떠오른 감정이나 순간이 있다면 공감(♥)과 댓글로 나눠주세요.

당신의 감상이 더해지면 이 공간은 더 깊고 더 따뜻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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