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가는 미술관



'자주'라고 표현하기보단 '종종'이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단골 미술관이라 하기에도 무리가 있다;)

어떤 전시회가 열리느냐에 따라서 다르긴한데 한가람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은 자주 가는 편이긴하다.

특히,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회의 7-80%는 다 보는 편이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은 예전에 자주 가긴 했었는데 이전에 비해 지금은 잘 안 가게 되는 것 같다.

대림 미술관과 디뮤지엄은 서너번 밖에 가보질 않아서 고민했는데 빈칸보단 나을 것 같아 끝 순위에 넣어보았다.


미술관 나들이가 재미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진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분들에게 팁을 좀 드리자면.

첫번째, 관심이 생기는, 재미있을 것 같은 전시회를 택하라.

전공자가 아닌 이상, 전시회에 대한 흥미가 없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지루할 수밖에 없으니 (전시회에서 다루는) 주제에 대해 관심이 있거나, 흥미가 있으면 관람하기를 추천한다.

두번째, 도슨트를 활용하라.

전시회에 가기 전, 난 항상 도슨트의 시간을 체크하곤 한다.

그냥 보았을 때와 알고 보았을 때의 차이가 분명하게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도슨트가 말해주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나면, 작품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이해도 또한 높아진다.

그 속에서 자연스레 예술의 범위를 넘어 역사 공부까지 되니 막상 도슨트의 설명을 듣고나면 그 흥미도가 더 올라갈 수도 있다.

그렇게 관람을 마치고 나면 전시회의 굿즈들이 '날 사고싶지 않니?'하는 눈빛으로 유혹을 한다.

나같은 경우는 다른 것에는 관심 없고 오롯이 '엽서'와 '마그넷'만 소장한다.

가장 인상깊게 남았던 작품 세 점 정도가 담긴 마그넷과 엽서를 구입해 소장하곤 하는데 이후 상자에서 가끔씩 꺼내보면 당시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작품은 감상하고 싶은데 미술관 가는 것은 귀찮다하는 분들에게는 역시나 책을 추천한다.

요새는 다양한 주제, 작가를 토대로 만들어진 국내서적도 굉장히 많아 골라 읽는 재미가 있다.

덧붙여, 특정 작가의 작품들은 외서를 추천한다. 솔직히 두껍고 무겁긴한데 그만큼 볼거리가 넘쳐나 시간가는 줄 모르고 감상하게 된다. (PINTEREST를 활용하는 것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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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에세이
허지웅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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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방송을 통해 '허지웅'이란 사람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의 책을 읽게 되었다.

이후 방송을 통해 그가 아프다는 것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 병을 이겨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새롭게 출간된 작가 '허지웅'의 책을 또 읽게 되었다.

저자의 전작인 『나의 친애하는 적』, 『버티는 삶에 관하여』는 출간되자마자 읽었었고, 이후 『버티는 삶에 관하여』가 리커버 나무 에디션으로 나왔을 때도 구입해 소장하고 있다.

덤덤하지만 읽다보면 콕 콕 박히는 글들이 가득한데, 아마 그래서 그의 글을 좋아했나보다.

총 3부로 이루어진 『살고 싶다는 농담』은 투병 이후 자신의 변화된 감정과 생각들부터 故 김영애 배우분과 같은 실존인물과 영화 속 인물들의 이야기까지 그의 솔직한 생각을 글에서 엿볼 수 있다.


어느 날,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거실에서 가족들이 TV를 보고있었다.

나도 모르게 TV로 시선이 향했는데 「나혼자산다」에서 허지웅 편이 나오고 있었다.

보자마자 '많이 좋아졌구나.'와 동시에 '많이 아팠었구나.'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저자가 쓴 제목에 대해 이런 생각이 든다.

『살고 싶다는 농담』, 농담이 아니다. '나 (허지웅은) 살고 싶다.', 아니, '나 (허지웅은) 살 거야!'라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당시 악성림프종 진단을 받고선 항암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은 뒷전이고 자신의 병명을 SNS에 올리며 잘 이겨내겠다고 다짐하는 글을 올렸다고 한다.

허나 그런 생각은 그 때뿐이었다. 이후 모르핀도 소용없는 극심한 고통에 포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너무 오래되어 생각이 잘 안 나는데 예전에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본 내용이다.

한 아이가 암 진단을 받고선 병원에서 항암중이었는데 밤새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아이가 부모에게 그런 말을 한다. 가고 싶다고, 본인을 제발 보내 달라고.

그걸 보는 나도 마음이 찢어지게 아팠는데 지켜보는 부모 마음은 얼마나 무너졌을까. 얼마나 아팠으면 아이가 본인 입으로 그런 말을 했을지, 지금 생각해도 그저 숙연해진다.

예전에 몸이 아파 응급실에 갔다가 우연히 한 환자를 본 적이 있었는데 (솔직히 기억에서 꺼내고 싶진 않아 중략한다.) 많이 아픈 환자였다.

그 당시, 내게는 꽤 큰 충격으로 다가왔는지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_'아, 아프다는 말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구나.'

아픔이라는 것이 어찌되었든 본인에게만 적용되는 고통이기에 홀로 감내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일 것이다.

그러나 그 때 본인이 거부한다 할지라도 가장 필요한 것은 '기댈 수 있는 존재'이다.

아무리 삶은 혼자 개척해 나가는 삶이라지만 사람은 '혼자' 살 수는 없다. 그리고 몸과 마음이 아프면 '누군가의 품'이 절실해진다.

당시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저자는 그 누구에게 기대지도 않고 홀로 싸웠다고 한다. 아픔과 외로움 모든 것을 감내하며 말이다.

항암치료를 받던 도중에 한 간호사에게 '털모자'를 선물받았는데 그 때는 병원에서 다 주는 것이라 생각한 것도 있었고 이런 저런 이유로 제대로 고맙단 인사도 못했다고 하던데 그것이 참 후회된다고 저자는 덧붙인다.

그는 그렇게 말한다.


털모자를 생각하면 어김없이 창피하다. 나는 왜 제때에 제대로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는가.

…… 그 털모자를 준비한 마음이 얼마나 드물고 귀한 것인지에 관해 나는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죽음이라는 결론에만 몰두해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거대한 결론 앞에 다른 것들은 한없이 사소한 소음으로 전락하고 만다.


즉, 결론에 사로잡히면 중요한 것들이 자연스레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작 소중한 것들을 사소하게 생각해서도  안 되고 하찮게 보아서도 안 된다.

이와 같은 생각이 결국 삶을 망치기 때문이다.


입원부터 퇴원까지 눕는 것이 병원 생활이기에 느껴지는 것은 천장과 바닥이 전부였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말한다.


만약 당신이 살기로 결정한다면, 천장과 바닥 사이의 삶을 감당하고 살아내기로 결정한다면, 더 이상 천장에 맺힌 피해의식과 바닥에 깔린 현실이 전과 같은 무게로 당신을 짓누르거나 얼굴을 짓이기지 않을 거라고 약속할 수 있다.

…… 그 밤은 여지껏 많은 사람들을 삼켜왔다. 그러나 살기로 결정한 사람을 그 밤은 결코 집어삼킬 수 없다. 이건 나와 여러분 사이의 약속이다. 그러니까, 살아라.


노들섬을 지날 때면 항상 지나치며 보는 것이 한강대교에 새겨진 문구이다.

몸이 아프면 어떻게든 나으려고 한다는데 마음이 아프면 보이지 않기에 어떻게든 나으려고 하기는 커녕 방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게 방치된 마음은 결국 한계점에 이르면 자제력 또한 떨어지기 마련인데 그들이 이 문구를 읽으면 잘못된 마음이 과연 돌아설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몸도 아프면 자연스레 마음도 아프기 마련이다.

마음이 아픈 이들에게 필요한 치료제는 아마 '털어놓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털어놓지 못해 쌓이게 되고 그 쌓인 마음이 결국 터져 버려 아픈 것이기에 털어놓는 것만이 답인 것이다.

즉, 그들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번 용기내어 '털어놓는' 것만이 해결로 향해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그 첫 번째가 될 것이다.


다들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한다. 어느 누가 '불행', '절망', '슬픔'을 바라겠는가.

나 빼고 모두가 행복한 것 같다는 생각은 결코 잘못된 생각이다.

그만큼 (나를 포함한) 우리네 삶은 남들처럼 비범하고 남들의 삶은 (나를 포함한) 우리만큼 초라하다.

나에게 닥친 불행의 인과관계를 되짚어봐도 그 또한 고통이고 슬픔이다. 망했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말한다.


네가 생각하고 있는 그것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벌어질 일이 벌어진 거다. 그러니까 괜찮다.

찾을 수 없는 원인을 찾아가며 무언가를 탓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에 수습하고, 감당하고, 다음 일을 하자.

그러면 다음에 불행과 마주했을 때 조금은 더 수월하게 수습하고, 감당하고, 다음 일을 할 수 있다.


그럴 때가 있다.

평소처럼 일어나고, 평소처럼 생활하고, 평소처럼 밥을 먹고, 평소처럼 잠을 자고.

그렇게 평소처럼 생활하다 어느 날, 문득 나의 삶에 대한 회의감이 들 때가 있다. 혹은 (어떠한 일로 인해) 내게 닥친 불행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결국 그런 감정과 생각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는데 스스로 '탁' 잘라내지 않는 이상 하염없이 길어질 뿐이다.

그럴 땐, 생각을 멈추는 방법밖에 없다. 그리고 (믿을 수 있는) 그 혹은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 달라고 용기를 내보자. 사람이라는 대상이 힘들다면 책이라도 말이다.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도, 당신도, 우리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꼭.


'함께 버티어 나가자'라는 말을 좋아한다.

삶이란 버티어 내는 것 외에는 도무지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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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속 모든 행위는 그 사람의 감각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즉, '좋은 감각'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따로 학습하지는 않는다.

일과 생활 모두 내몰리는 느낌이 든다면 그 때, 우리는 꼭 재정비를 해야 한다.

지니고 있는 감각들을 마주하고 한 걸음, 한 걸음씩 내딛으며 '나만의 감각'을 쌓아야 한다.

그렇게 나 스스로를 믿고 나아가면 어느새 나만의 감각이 만들어질 것이다.


붓을 잡기 전 붓펜을 먼저 쥐어보았는데 붓펜 또한 오랜만인지라

정자로 써야 할 글씨가 참 어색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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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2 0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18 2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산의 역사
자크 엘리제 르클뤼 지음, 정진국 옮김 / 파람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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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일전에 청계산에 갔다온 적이 있다. 생각해보니 그렇게 등산해본 것이 어렸을 때 해보고선 처음인지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숲속길 산책은 해봤어도 제대로 된 등산은 처음이나 다름없어 중턱도 못 가 숨 고르기 바빴다.

등산이 이렇게 어지럽고 숨 쉬기 힘든 운동이었던가 싶을 정도로 너무 힘들었는데 그래도 끝까지 올라가겠다는 끈기 하나로 정상에 올랐다.

그 순간, 온몸을 간지럽히듯 살랑살랑 불어오던 바람부터 잘했다고 쓰다듬듯 뜨겁지 않게 비춰주는 햇살에 힘들었던 순간, 순간들이 눈 녹듯 녹아내렸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딱 적당한 날씨였다.

산 중턱에 오르기까지는 심장이 아플 정도로 힘들었는데 중턱을 넘어서 정상에 오를 때까지는 오히려 편안하진 않지만 편안했고 덜 힘들었었다.

등산보다 하산이 가장 무서웠다라는 생각이 크게 박혀 있었는데 어렸을 때 무서운 경험을 했었나 싶었는데 어린 시절에 끌고 왔던 그 감정은 역시나였다.

산의 가파름이 얼마나 무서운지 등산스틱이 없었다면 난 아마 기어내려왔을지도 모른다.

한편으론, 터벅터벅 아무렇지 않게 등산하고, 하산하신 분들을 보며 참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자연의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는, 산.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것들을 내려갈 때는 눈에 한가득 담았다.

포슬포슬한 흙에 뿌리를 내려 하늘까지 곧게 솓은 울창한 나무들, 그 가운데 활짝 핀 꽃들 속에 달콤한 꿀 찾으러 달려온 새하얀 나비.

절대 떨어질 것 같지 않는 바위들이 얼크렁설크렁 모인 가운데 바깥 쪽으로 졸졸졸 흘러내리던 계곡 그리고 바위 옆 나무를 타고 쪼르르 올라가던 청솔모.

키다리 아저씨마냥 키 큰 나무 속에서 느꼈던 맑은 공기, 시원한 바람 그리고 따스한 햇살까지.

수식어 없이, 꾸밈 없이, 말그대로, 참 좋았다.


스위스 산골짜기에서 망명 생활을 하며 산을 온 몸으로 느낀 저자가 펴낸 『산의 역사』는 산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산의 기원을 시작으로 산마루와 골짜기, 바위와 결정, 화석, 무너지는 봉우리, 흙더미와 돌더미와 같은 산의 생성 그리고 산에서 느낄수 있는 구름, 안개와 뇌우, 눈과 같은 기후의 변화.

산사태, 빙하, 빙퇴석과 급류를 엿볼 수 있는 산의 변화 그리고 숲과 풀밭에서의 산짐승.

인간들의 산을 향한 숭배 그리고 올림포스 산과 신, 수호신에 대한 이야기가 책 한 권에 전부 담겨 있다.


특정 분야에 대한 역사를 찾아 읽고 있는 중인데 우연하게 눈에 띈 책이 바로 『산의 역사』였다.

처음엔 산과 관련된 이야기라 하면 역시 지리에서 배웠을 때 빼곤 접해본 적이 없어 살짝 딱딱하게 읽히겠구나 싶었는데 문득 읽으면서 '지리가 이렇게 재미있었던가?'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었다.

물론, 인문서에 가깝긴 하지만 읽다보면 단순히 지리학자의 관점에서 풀어냈다고 하기에는 딱딱한 면이 크지 않아 지리학자의 관점이 아닌 산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한 사람의 에세이를 읽는 기분도 들었다.


산에 들어오자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바위와 숲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세상 덕에 나는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과거를 잊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 새로운 감정이 싹텄다. 산 자체를 좋아하게 된 것이다. 그늘 속에서도 햇빛을 받아들이는 차분하고 늠름한 모습이 좋았다. 푸른빛을 띤 채 빙하를 두르고 있는 그 튼튼한 어깨가 좋았다. 풀밭과 숲과 맨땅이 줄줄이 이어지는 기슭도 좋았다. 멀리 내뻗은 거목의 뿌리처럼, 작은 골짜기마다 개울과 풀밭, 호수와 들판이 힘차게 펼쳐지니 좋았다. 나는 산에 완전히 반해 버렸다. 바위에 붙은 누렇거나 푸른 이끼와 잔디 한복판에서 반짝이는 작은 돌멩이까지도 사랑스러웠다.


연이은 장마로 인해 집에서 혹은 실내에서 휴가를 보내야 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럴 때, 책을 펼치는 게 어떨까.

솔직히 책을 읽고 서평을 남길 때면 무거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가급적 안 하는 편인데 이번 장마로 인해 너무 많은 이들이 피해를 입었고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이들도 있었다.

하염없이 내리는 비에 결국 산사태까지 일어나 안타까운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였는데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들었다.

세상 모든 것에는 '균형'이 있는 법인데 이를 인위적으로 무너뜨리는 행위를 하다보면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저 지금으로선 사람도, 동물도, 모든 생명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고 더 이상 큰 피해가 나지않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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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마다, 월마다 기록하는 책탑


매일 스스로에게 응원과 격려의 말을 건네며 되뇌인다.

착하다, 지적이다, 예쁘다, 선하다, 야무지다, 멋지다, 똑똑하다, 사랑스럽다, 귀엽다, 배려심있다…….

그렇게 되뇌이다 보면 어느새 그런 사람에 더 가까워지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 선생님과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다 '말의 힘'에 대해 깨우쳤던 것 같다.

(내 입으로 말하기 뭣하지만) 난 언제나 조용하고 착한 아이였고 지금도 달라진 게 전혀 없다.

딱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면 당시 단점 하나를 고쳤다는 점인데, 바로 나 자신을 과소평가한다는 점이었다.

당시, 선생님께서 그런 말을 해주셨다.

나 자신을 과소평가하게 되면 그 영향으로 인해 자존감이 낮아질 수 있다고.

그렇게 나도 모르게 자존감이 낮아지면 앞으로 나 스스로에게 꼬리에 꼬리를 물며 악영향이 될 수 있다고.

그리곤 그런 말을 해주셨다.

"네가 생각한 것보다 그 이상으로 넌 착하고 예쁘고 똑똑하단다."

'선생님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그렇게 생각하면 돼. 그거면 돼.'

"매일같이 너 스스로에게 속삭이렴."

'세상에 있는 예쁜 말들을.'


매일 바쁜 일상에 치이다보면 당시 선생님이 해주셨던 귀중한 말을 잊곤 한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또 과소평가하곤 하는데 그럴 때면 항상 선생님이 해주셨던 말을 되뇌인다.


그렇게 나는 매일같이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세상에 존재하는 예쁜 말들을 가득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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