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진의 시대유감

저자 정영진

21세기북스

2025-01-15

인문학 > 인문 에세이





'왜'라는 질문은 왜 중요할까.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인간과 동물을 나누는 기준이 있다면 나는 그것이 '왜'라는 질문을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언어나 도구의 사용도 중요하겠지만 단순한 언어, 복잡하지 않은 도구는 일부 동물도 사용한다. 또 우리의 먼 조상인 유인원들도 당연히 언어와 도구를 사용했을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고 쉼 없이 달려왔다. 그럼에도 앞선 누군가가 늘 있었기에 여기까지 오는 데 크게 문제는 없었다. 이것만 해도 대단한 성과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이제는 왜라는 질문을 해도 될 때가 됐는데 오히려 그 질문이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왜를 묻지 않던 기성세대들의 관성, 그리고 그들이 지금의 세대를 결핍 없이 길러낸 결과다.



우리의 삶은 죽음이라는 하나의 매듭으로 완성되는데, 이 매듭을 잘 묶으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으니 늘 마음 한 켠이 공허하고 허전한 것이다.

……

지금부터라도 사람이든 사물이든 추억이든 진짜 소중한 것에 관심을 갖고, 괜찮은 인생의 매듭을 짓기 위해 노력하면 어떨까. 어렵지 않다. 늘 죽음이 내 주변에 있고, 언제든 날 찾아올 수 있으며, 그게 그렇게 두려운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면 된다. 그럼 소중한 것은 저절로 눈에 보이고, 소중하지 않았던 것은 눈 밖에 날 것이다. 그러니 우리 죽음을 기억하자.



개인의 만족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일에 확신이 없다면 한번 테스트 해봐도 좋다. 3년 전, 5년 전에 비해 자신을 설명하는 말이 길어졌는지 아니면 짧아졌는지 말이다. 만약 더 짧아졌다면 어느 정도는 제대로 가고 있는 셈이다. 반대로 점점 설명이 길어지고 구차해진다면 지금의 방향이 잘 맞지 않다고 판단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죽어라 공부해서 의사가 되고, 함께 공부하던 여자친구와 결혼한 사람이 있었다. 그의 집안은 여유롭지는 않아서 둘은 휴일도 없이 일한 끝에 대출을 받아 강남에 꽤 큰 아파트를 마련했다. 한강이 보이는 큰 아파트에 들어간 부부는 근사한 음악을 틀고 테라스에서 커피 한잔을 마실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대출금을 갚기 위해 둘은 또 죽어라 돈을 벌었다. 출산 계획도 나중으로 미루고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휴대폰을 두고 나와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때 청소를 해주시는 분이 아침 청소를 마치고 자신의 아파트 테라스 티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한잔하며 여유를 즐기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한강을 바라보면서.



책임감 있는 어른이라면, 특히 세상에 존재하는 이런 차이를 몸으로 겪은 어른이라면 다음 세대에게 이야기해줘야 한다. 세상에는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어마어마한 불평등이 있고 이를 극복하는 것은 웬만한 노력으로는 쉽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그 격차를 역전시키기 위해서는 벌어진 차이보다 훨씬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설령 그렇게 죽을 힘을 다하더라도 극복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그것이 세상이라는 것을 말이다.



한글은 다른 언어를 표현하기에는 태생적 약점이 있지만, 그래도 완성도나 표현력에 있어서는 결코 어느 문자에도 뒤지지 않는다. …… 늘 그렇지만 지나친 자랑 뒤에는 자신도 모르는 열등감이 숨어 있기 마련이다. 우리의 소중한 자산인 한글과 한국어를 아무런 열등감 없이 있는 그대로 사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상 참 잔인하고 삭막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세상이 그렇지 않았으면 우리는 존재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지금의 인류는 매일 생사의 갈림길이 지배하는 초원에서 희박한 가능성을 뚫고 살아남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진 전쟁과 그에 못지않게 잔인한 기아, 질병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만약 먹고살 만했다면 우리는 지금 인류가 아니라 판다나 코알라 혹은 나무늘보가 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인류가 욕심이 많아 죽을 둥 살 둥 사는 게 아니라, 죽을 둥 살 둥 경쟁에서 살아남은 존재들이 인류가 된 것이다.



시대유감: 비상계엄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벌인 행동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이상했다. 70~80년대도 아닌 2024년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대통령이 군인들을 동원해 국회를 장악하려 했고, 몇몇 헌법기관에 침투해 무언가를 획책하려 했다. 심지어 주요 정치인과 공직자, 그리고 영향력 있는 언론인마저 체포와 구금을 시도했다.

……

왜? 도대체 왜 이 나라의 최고 권력자는 그런 극단적인 방법으로 무언가를 하려 했던 것일까.

……

이런 결과는 어리석은 선택을 한 국민들에게서 비롯되었고, 국민들은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또 어리석은 선택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가를 분명 치를 것이다. 외신의 평가처럼 할부로 조금씩 갚아나갈지, IMF 때처럼 큰일을 겪고 꽤 오랫동안 뼈에 새기게 될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우리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책임을 지기 싫어도 질 수밖에 없다. 그때 애먼 사람이나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집단의 선택일지라도 개인의 책임이 축소되지 않음을 우리 모두 뼈저리게 느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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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저자 태수

페이지2(page2)

2024-11-04

에세이 > 한국에세이





다정함은 체력에서 나온다. 달달한 사랑이나 찐한 우정도 결국 다 건강해야만 가능했다.

…… 어쩌면 그래서 혼자가 좋다는 사람이 갈수록 많아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혼자만 될 수 있으면 이 모든 귀찮음과 짜증, 쓸모없는 대화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까. 그러나 알다시피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멈춤과 지속, 둘 중 무엇이 더 맞는 일인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오래된 유행어처럼 그때그때 다르겠지.

그래도 노곤한 퇴근길에 이 글을 볼 당신과, 열심히 공부하다 잠시 이 책을 편 당신에게 이 질문만은 돌려주고 싶다.


"요새 잠은 잘 자나요?"

"밥은 체하지 않고 잘 먹어요?"



그냥 지금처럼 살아라. 그렇게 살되 어떤 감정조차 책임질 수 없을 만큼 힘든 날, 마음속이 온통 타인의 감정으로 가득해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그런 날. 부러 나밖에 없는 공간으로 도망가자. 그 조용한 공간에서 자신에게도 이렇게 말할 기회를 주자.

"나 안 괜찮아."



"삶에서 도망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넌 모르지. 앉을 자리가 없는 역에서 매일 출근하는 것과 간신히 생긴 자리를 할머니에게 양보해드리는 것. 상사가 튀긴 끈적한 침도 매일 새것처럼 세수하고 털고 일어나 게으름 피우지 않고 모니터를 켜고, 안전화를 신고 가게 문을 여는 그 삶이 사실 얼마나 굉장한 인생인지 넌 모를 거야. 인생의 의미를 잃어도, 누군가의 성공에 까무룩 자존감이 무너져도 꿋꿋이 일어나 제자리로 향하는 너를 응원해. 도망치지 않는 것도 능력이야. 빌어먹을 인생에 정직하게 부딪히는 너도, 충분히 대단한 사람이야."



절망이 넘치는 시대, 우린 좀 더 운의 힘을 믿어야 한다. 최선의 선택을 하고 최선의 노력을 해도 원하지 않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당연한 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실패는 온전히 당신의 것이 아니다. 최선을 다한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네 탓이 아니야”라는 말을 좀 더 넉넉하게 건넬 줄도 알아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핑곗거리가 아닌, 삶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기 위해.



세상에는 오답을 너무 잘 알기에 정답에 가까워질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매일같이 불행하고 실패하고 슬프고 우울하기에 반대로 어떻게 살아야 그러지 않을 수 있는지를 잘 아는 사람들 말이다. 나는 그게 부정이 가진 힘이라고 믿는다. 부정으로도 긍정을 쌓을 수 있다. 오답을 너무 잘 알면 오히려 정답을 잘 찾아낼 수 있듯.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나는 죽고 싶다 말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그저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을 뿐. 부정으로 똘똘 뭉친 내 마음을 부술 긍정을 찾아내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을 뿐이다. 이른바 합리적 긍정을 말이다. 부정으로도 긍정을 만들 수 있다. 불행하기에 행복이 무엇인지 더 잘 설명할 수 있다. 그러니 나는 이제 스스로를 이렇게 설명하고 싶다. "나는 부정적인 게 아니야. 합리적으로 긍정적인 사람이지."



요즘은 기록적인 실패를 해도 그냥 내가 웃게 둔다. 불행에 적정 기간 따윈 두지 않고 행복이 새 나올 틈도 기껏 메우지 않는다. 이따금 "네가 지금 이럴 때야?"라는 불호령이 떨어지기도 하지만, 뭐 어쩌라고. 실패해서 짜증 나 죽겠는데 웃지도 말라고? 나는 그저 다음 인생을 살 준비가 됐을 뿐이다. 실패는 슬프지만 오늘로 끝낼 것이다. 그게 내가 웃음으로 불행에게 보내는 신호다.

나는 이제 웃으며 다음을 살 것이다.

나는 오늘은 실패했지만, 내일은 웃으며 다시 시작할 것이다.



사람에겐 때때로 말 없는 위로가 필요하다. 몇 마디 따끔한 말로 구성된 무정한 위로보다 너의 상처를 이해하고 있다는 깊은 끄덕임과, 진심으로 네 말에 공감하고 있다는 눈 마주침이 우리에겐 훨씬 더 절실할 때가 있다. 아니, 많다. 나는 이제 내 사람들을 그렇게 위로해주고 싶다. "살아"라는 무책임한 한마디가 아니라, 살아볼 만한 하루를 같이 만들어보고 싶다.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짜릿함보다는 안도감에, 특별함보단 일상적임에 더 가깝다. 아무 탈 없이 일할 수 있어서, 아픈 곳 없이 가족과 통화할 수 있어서, 희망은 없어도 절망도 없이 내일을 또 살아갈 수 있어서 행복할 수 있는 게 지금의 내 삶이다. 누군가는 그토록 조용한 인생에서도 행복을 발견할 수 있냐고 묻겠지만, 물론. 조용함은 웃을 일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울 일이 없는 상태니까. 기쁜 일이 없는 하루가 아니라 나쁜 일이 없는 하루니까.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간 이 조용한 하루들은 우리 인생의 공백이 아닌, 여백이니까.



마음이 지옥 같은 날, 모든 게 실패한 것 같은 날일수록 보다 공들여 웃고 감사하고 인사하자. 나를 위해서.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 그 작은 태도가 어떤 말보다 강력한 신호가 되어줄 테니. 오늘 나는 실패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너지지 않았다. 나는 오늘 다시 시작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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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의 사랑

저자 한강

문학과지성사

2018-11-09

초판출간 1995년

소설 > 한국소설

해외 문학상 > 노벨문학상





여수, 그 앞바다의 녹슨 철선들은 지금도 상처 입은 목소리로 울부짖어대고 있을 것이다. 여수만(灣)의 서늘한 해류는 멍든 속살 같은 푸릇푸릇한 섬들과 몸 섞으며 굽이돌고 있을 것이다. 저무는 선착장마다 주황빛 알전구들이 밝혀질 것이다.

부두 가건물 사이로 검붉은 노을이 불타오를 것이다. 찝찔한 바닷바람은 격렬하게 우산을 까뒤집고 여자들의 치마를, 머리카락을 허공으로 솟구치게 할 것이다.



손목시계는 얼추 오후 네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열차가 종착역인 여수에 닿으려면 앞으로도 두 시간 가까이 철로를 달려야 했다.



해질녘에 밀려 나가는 썰물처럼 환청은 천천히 귓가에서 잦아들었다. 자취방 유리창 가득 늦가을 오전의 다사로운 햇살이 내리비치고 있었다. 장판 바닥에 엎디었던 몸을 굼벵이처럼 모로 누이며 나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명치 끝이 찢기듯이 아파왔다. 적요한 햇빛 속으로 무수한 먼지 입자들이 흩날리고 있었다. 아름답구나, 하고 나는 문득 생각했다. 먼지는 진눈깨비 같았다. 먼 하늘로부터 춤추며 내려와 따뜻한 바닷 물결 위로 흐느끼듯 스미는 진눈깨비……, 여수의 진눈깨비였다.



이렇게 고요해질 통증인 것을, 지난밤에는, 또 수없이 반복되었던 그 밤들에는 이런 순간을 믿지 못했었다. 마치 밤이 깊을 때마다 새벽을 믿지 못하듯이, 겨울이 올 때마다 봄을 의심하듯이 나는 어리석은 절망감에 사로잡히곤 했던 것이다.

전철은 어두운 터널을 달리고 있었다. 검은 유리창에 반사되어 음화처럼 어른거리는 낯선 얼굴들을 바라다보며 나는 갈 곳을 잃은 사람처럼 망연히 서 있었다.



자혼은 내 고향이 여수라는 것을 알자 우울한 얼굴에 환희에 찬 경련이 일어날 만큼 반가움을 표시했었다. 그녀는 틈만 나면 나와 함께 여수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싶어 했다.

난 그곳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곳에 대한 얘기도 마찬가지예요.



여수향의 밤 불빛을 봤어요? 돌산대교를 걸어서 건너본 적 있어요? 돌산도 죽포 바닷가의 눈부신 하늘을 봤어요? 오동도에 가봤어요? 오동도의 동백나무들은 언제나 나무껍질 위로 뚝뚝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 같아요……



……여수가, 여수가 울고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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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미술관

저자 이창용

웨일북

2024-04-05

예술 > 미술 > 미술 이야기





미술사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는 빈센트 반 고흐는 '태양의 화가' 또는 '해바라기의 화가'라고 불릴 만큼 해바라기를 자주 그려왔습니다. 해바라기 정물화만 열한 점 이상 그렸으니 분명 반 고흐에게 이 꽃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는데요. 그중에서도 가장 큰 사랑을 받는 작품들은 아를 시절에 그렸던 그림입니다.

……

아를의 지평선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해바라기들은 아침 해가 떠오르면 오직 태양만을 바라봅니다. 이런 맹목적인 사랑을 보이는 해바라기도 화병에 꽂혀 더 이상 태양을 바라볼 수 없게 되면 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아 금방 시들어버리기 일쑤죠.

오직 태양만을 바라보며 그와 멀어지면 금세 시들어버리는 해바라기처럼, 오직 그림 하나만 바라보고 그것마저 할 수 없게 된다면 삶의 의미마저 사라지는 반 고흐였기에 어쩌면 해바라기에서 자기 자신을 투영했을지도 모릅니다.



19세기 인상주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이처럼 여성과 잘 어울리는 사조가 또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여성들의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모습들이 작품에 많이 담겼기 때문이죠. 어느 때보다도 여류 화가들의 활약이 커서 미술사에서는 처음으로 여류 화가가 그린 작품들이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인상주의 화풍을 따르고 인상주의 전람회에 직접 참여한 여류 화가만 보더라도 드가의 친구이자 프랑스로 귀화한 미국인 메리 카사트, 동판 화가인 펠릭스 브라크몽의 아내인 마리 브라크몽 그리고 흔히 에두아르 마네의 뮤즈이자 제비꽃 여인이라 불리는 베르트 모리조 등이 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는 고작 9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화가로 활동하며 2천여 점이 넘는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채색화만 보더라도 900여 점에 달합니다. 이는 거의 3일에 한 점씩 그려야 하는 수준이니 반 고흐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렸을지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미술사를 살펴보면 반 고흐보다 더 많은 작품을 남긴 화가들도 있지만 작업 시간을 두고 보았을 때 그보다 '절박'하게 그림을 그렸던 화가를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반 고흐를 천재라고 부르기보다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화가, 누구보다 성공을 갈망했던 화가라고 보는 것이 더 옳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려왔음에도 살아생전에 반 고흐가 팔아본 작품이라고는 단 한 점뿐이었죠. 프랑스 도시 아를에서 작품 활동을 하던 시절에 그렸던 <아를의 붉은 포도밭>이라는 작품입니다.



밀레는 프랑스 노르망디의 그레빌이라는 작은 시골 마을 출신입니다. 화목했지만 여유롭지만은 않았던 농부의 집안에서 8남매 중 장손으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농사를 짓는 삶을 살아갔죠. 밀레에게 농부라는 직업은 자신의 아버지고 가족이며 자기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훗날 그가 농부들의 일상을 화폭에 담아내게 되었던 것 또한 당연했던 일인지도 모릅니다.



한 여인이 싱그러운 풀과 꽃들에 둘러쌓인 채 노래를 부르며 누워 있는 이 작품은 레드벨벳의 뮤직비디오와 다양한 영화 그리고 패션 잡지와 화보 촬영까지 끊임없이 예술가들과 작가들이 영감을 받고 오마주하는 작품입니다.

그런데 마냥 아름다워 보이기만 하는 이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잔혹하리만큼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

오필리아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에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입니다.

……

보통 이런 역사화들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을 강조하며 풍경은 그저 배경으로 전락해 장식처럼 치부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을 직접 감상하다 보면, 슬픔에 잠겨 죽어서는 오필리아의 감정보다는 오히려 주변 풍경에 더 많은 힘이 실려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손은 그 사람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좋은 도구이기에 작가들은 때때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의 손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곤 하는데요. 그래서 저는 언제부턴가 작품을 감상할 때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의 손을 먼저 보는 버릇이 생겼을 만큼 손에 큰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리고 저에게 가장 큰 울림을 주었던 손이 바로 폴 들라로슈의 〈레이디 제인 그레이의 처형〉에 등장하는 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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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무한

저자 채사장

웨일북

2024-12-24

인문학 > 교양 인문학





가끔은 궁금하다. 우리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나는 혼란스럽고 주저앉고 싶은데, 어떻게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하지 않고 자신이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처럼 바쁘게 걸음을 옮길 수가 있는 걸까? 모두가 삶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이다. 환상에 빠진 자가 현실을 보지 못하듯, 현실에 빠진 자는 의문을 품지 않는다.



유물론과 과학이 정신적인 요소를 완벽히 배제함으로써 얻은 것은 무모순성이다. 모든 신념이 제한적인 영역에서만 언제나 무모순적일 수 있듯, 경험의 의미를 제한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유물론과 과학은 물질의 울타리 안에서 완벽히 무모순적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대중으로 하여금 유물론과 과학이 하나의 이념이 아니라 세계 전체를 설명하는 객관적인 진리라고 상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실상은 세계를 축소했다고 할 수 있다. 무모순성의 영광은 정신과 관련된 모든 가치를 세상 밖으로 쫓아냄으로써 얻게 된 반쪽짜리 승리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얻게 된 승리는 오늘날의 학계와 대중의 유물론 편향 패러다임으로 작동하고 있다.



수많은 정보가 쏟아지는데도 무언가 부족하다. 더 많은 콘텐츠를 욕망하게 되고 그것을 향유하지만 부족함은 채워지지 않는다. 채워지지 않는 이 갈증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미디어의 형식에 따라 담아낼 수 있는 콘텐츠의 내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짧은 길이의 미디어는 당연하게도 긴 길이의 콘텐츠를 담아낼 수 없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소비자가 극도로 많은 양의 콘텐츠를 접하게 되지만 동시에 극히 제한된 콘텐츠만을 소비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머릿속을 정돈하려 마음먹었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생각의 반복을 끊어내는 일이다.



마음이 어지럽고 스스로 자극에 취약하다 느끼는 것은 실제로 당신이 취약해서가 아니다. 세상이 어떻게든 당신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극단적으로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혜가 없는 사람들은 이러한 자극에 쉽게 휘둘리고 이리저리 끌려다닌다. 반면 지혜가 있는 사람들은 그 자극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정확히 꿰뚫어보고 그것과 적절한 거리를 두려 한다.



바다를 보라. 행복, 분노, 질투, 혼란, 우울, 쾌락, 즐거움. 이 모든 감정의 파도는 바다의 표면에서 일어나고 사라진다. 하지만 이 모든 파도의 바탕이 되는 깊은 마음의 심해, 텅 비어 있음은 파도치지 않고 흐르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가 깊게 침묵한 이유는 이 움직이지 않는 심해에 닿기 위해서다. 이제 이곳에 이르렀고 이곳이 어떤 모습인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고요와 평온이다. 사람들은 고요와 평온도 감정의 하나일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고요와 평온은 인간적 감정에서 비롯된 무엇이 아니라 마음의 본질적 상태다. 이것은 바탕이자 배경으로, 모든 인간적 감정은 여기에서 일어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인간이라는 종은 인간을 가장 좋아하고 인간을 가장 미워한다. 인간의 마음은 인간으로 가득하다. 당신이 종일 들여다보는 스마트폰을 한걸음 떨어져서 보라. 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나? 당신은 종일 이 사람의 얼굴과 저 사람의 얼굴, 이 사람의 신체와 저 사람의 신체를 들여다보며 좋아하고 미워한다. 당신은 종일 인간의 말과 글을 들여다보며 좋아하고 미워한다. 당신은 종일 인간의 사물을 들여다보며 좋아하고 미워한다. 당신의 의식 세계는 인간으로 가득하다. 당신은 인간이었고 인간이며 인간으로 돌아올 것이다.



꿈이 환영인 것처럼 현실도 환영이라는 진실이 우리를 반드시 무기력과 허무로 이끄는 것은 아니다. 같은 깨달음에도 어떤 이는 이 순간이 환영이라는 진실을 긍정적인 삶의 태도에 연결한다. 꽃이 지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꽃병에 꽂아두듯, 그는 환영처럼 사라질 현실을 사랑하겠다고 다짐한다. 현실이 환영이고 유한하다는 것은 존재론적 사실이지만, 그것을 무기력으로 연결할지 혹은 긍정적으로 수용할지는 주관적 해석이다. 삶을 허무로 평가하고자 하는 사람은 삶이 유한하다 해도, 삶이 영원하다 해도 그것이 가치 없고 무의미하다 평가할 것이다. 삶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자 하는 사람은 삶이 유한하다 해도, 삶이 영원하다 해도 그것이 가치 있고 의미 있다 평가할 것이다. 현실이 환영임을 직시한다는 것은 그저 삶에 너무 빠져들지 않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시야가 좁고 지혜가 부족한 사람일수록 극단적인 평가에 익숙하다. 그들은 좋아 보이면 긍정하고 나빠 보이면 부정한다. 매력적이면 끌어당기고 혐오하면 밀어낸다. 눈에 보이면 있다고 생각하고 보이지 않으면 없다고 생각한다. 존재는 실재라고 생각하고 부재는 무라고 생각한다. 이들이 이렇게 쉽게 판단해버리는 이유는 이들의 사유가 거칠어서다. 하지만 세계의 실상은 언제나 섬세하다. 세상을 섬세하게 다루기 위해서는 충분한 지혜가 요구된다. 미각이 섬세하지 않은 사람일수록 달고 짠 맛에만 끌리듯, 지혜가 섬세하지 않으면 극단적 사유에 쉽게 이끌린다.



말과 판단은 언제나 어리석음과 연결되어 있다. 왜냐하면 말의 본질은 세계를 분절하는 것이고 판단은 언제나 좋고 나쁨의 이분법적 분할이기 때문이다. 실제 세계는 분절되어 있지 않고 이분법적으로 나뉘지 않는다. 그래서 세계의 실상을 보는 사람은 말을 줄이고 판단을 멈춘다. 우리가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지혜로워지는 방법은 말과 판단을 멀리하는 것이다.



물질은 중독적이기에 당신이 그것을 너무 적게 가질수록, 또는 너무 많이 가질수록 그것을 더 사랑하게 됨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물질이 필요한가? 그것은 자신이 잘 알고 있다. 샤워를 할 때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찬물과 더운물을 미세하게 조절하여 자신에게 가장 편안한 온도를 맞추듯, 자신의 몸과 마음이 가장 편안한 정도의 물질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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