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랑하고 살자는 말
정영욱 지음 / arte(아르테)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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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영감의 원천을 묻는 누군가에게 나는 아름다운 사물이나 형상을 보고 그것보다 아름다웠던 사람을 떠올린다고 했다.

누가 보면 멍때리는 줄 아는 때에도 펜을 놓지 않고 그때를 떠올리며 머릿속으로 글을 적는다고.

그랬더니 "그럼, 그 사람이 작가님의 뮤즈인가요?" 묻는다.

나는 답한다.

"아뇨, 그때 사랑인 줄 몰랐던 내가 더 선명합니다. 아마도 그게 뮤즈입니다."


싸이월드 감성보다는 조금 더 깊이 있는 글이라 할 수 있겠다.

지금 인연에 대한 기대, 앞으로 마주할 새로운 인연에 대한 기대, 그 모든 것을 전하고 있으니 편하게 읽으면 될 것 같다.


저자, 정영욱은 주식회사 부크럼의 대표이며 부크럼 출판사와 이외의 문화 사업을 운영 중이다.

대표작으로 『참 애썼다 그것으로 되었다』 『편지할게요』 『나를 사랑하는 연습』이 있으며 40만 부가량의 판매량을 기록하여 스테디셀러 에세이 작가의 입지를 다졌다.




Ⅰ 영원한 나의 뮤즈에게


그런 사람이 있다

감히 청춘이라 부를 수 있는,

찬란했던 젊음을 상징하는


그는 나에게 그런 의미의 사람이었다


그와의 시간을 회고해보면

철이 없었고 미련했고 미숙했으며

때에 맞게 아름답고 애틋했다


「매일매일」

매일매일. "매일매일." 그것은 곧, 언제나가 아닌 언제든을 뜻한다. 언제나 그러는 것이 아닌, 언제든 그럴 수 있는 것. 그러니 매일매일 보고 싶어, 언제나 사랑해, 이 말은 곧 언제든 보고 싶고 언제든 사랑할 수 있다는 뜻일 게다. 어릴 때야 매일매일과 언제나를 '호흡 없이 그러는 것'이라 소망했지만, 이제는 안다. 그것은 곧, 그러한 의미를 넘어서 '언제든 그럴 수 있는 개념'이라는 것을.


「너를 영원해」

서로의 부재가 익숙해질 때쯤에도 지금 이 감정이 꼭 영원했으면 싶어. 그런 의미에서의 영원으로 너를 영원하고 지금을 영원해. 영원. 꼭 영원할 것 같은 단어잖아. 너는 안 그래?


「가로등」

저게 켜져서 밤이 된 거 같은 기분 때문에 외려 세상이 더 어둡게 느껴진달까. 대충 느끼기엔 분명 밝은데 마음은 그럴수록 더 어둡다 느낀다 말했다. 그 존재가 존재의 가치를 발하지 못하는 것이 가로등뿐일까. 더해서 말을 뱉었다.

밝아졌다는 것만으로 곧 어두워질 것은 반증하는 것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사람 마음이 그렇다.


그는 내가 아주 특별하다 했고,

나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언젠가 자신을 아주 아프게 할 거라는 걸 안다고, 덧붙였다


「완벽해지면 내가 생각한 완벽함과는 다른 게 되니까요」

한때 생각했습니다. "좀 망치면 어떻다고… 마저 그려주질 않는지…." 그 그림, 내 방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었습니다. 매일 보니 정말 이게 딱 내 얼굴 같아요. 그의 실력으로 이 이상을 그렸다면, 정말이지 내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서툰 우리이지 않겠습니까. 어떤 것들은 그렇습니다. 부족한 줄 알았지만 그게 완벽이었고, 완벽하다 생각했지만 두고 보니 엉망이었던 것들. 미완이다 싶었지만 수작이었고, 완성했다 싶었지만 습작이었던 것들.


이 이야기가 꼭 그림 이야기만은 아니겠습니다.




Ⅱ 바다는 우리의 이름을 기억이나 할까


그와의 마지막은 담백한 이별이었다

말이 담백함이지 퍽퍽함에 가까웠다

깔끔해 보이고 싶었을까

잘 지내길 바란다는 말에,

너도 잘 살길 바란다고,

응원한다고 답했다

붙잡지 않았다

속은 너덜너덜했고

마음은 너무 아파서 눈물도 나지 않았다


「슬픔은 밟아야 하는 감정」

"슬픔을 딛고 일어서다"

딛고 일어서다니

밟고 일어서야지

딛고 일어선다면 꼭 도움이라도 된 거 같아

난 그게 싫더라


「사랑을 한다고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외롭다 해서 무조건 사랑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듯

사랑을 한다고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외로움과 사랑 사이엔 일방통행인 것이 전혀 없다는 것

뒤늦게 알아버렸다


「사람은 자신의 세계를 넓혀준 사람을 잊지 못한다」

지독하게 기억한다는 것은 그렇다.

그때의 시간을, 사람을 잊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세상을 맛보았던 그 값진 경험을 놓지 못하는 것이다.


꽤나 유명한 말이다.

"사람은 자신의 세계를 넓혀준 사람을 잊지 못한다."

잊지 않고 살아가야 할 문장이다.


「당신이라는 단어에 갑자기 머물렀어요. 항상 머물렀지만 그 순간 특히나 머물렀어요.」

'너'는 너무 가볍고 '그대'는 구시대적인 느낌이 들어요. '그 애'는 너무 앳된 단어 같고, '그 사람'은 사이가 너무 먼 기분이라서요.

아주 마땅하죠. 당신이라는 말. 평소에는 잘 쓰지도 않는 그 단어가 글에는 왜 그렇게나 자주 등장하는지. 당신을 만나며 당신이라는 지칭 단 한 번도 쓴 적이 없지만, 내 책에선 당신이 자주 당신으로 묘사됩니다. 당신. 당신. 언제는 글을 쓰는데 당신이라는 지칭으로 당신에 대해 적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그러다 멈칫 '당신' 두 글자에서 모든 이야기가 주저합니다.


「아름답기도 안타깝기도」

다만 떠난 이의 행복을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을 때

그때 우리는 성장했음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당신을 사랑해요." 이 말은

진행형이건 과거형이건 곧 성장일 것이다


아름답기도 안타깝기도, 사랑은 그러한 것이다




Ⅲ 다음 생에는 너로 태어나 나를 사랑해야지


때는 날이 추워지는 10월이었다

무턱대고 내 인생에 들어온

분에 넘치는 사람이 있었다


기억하기론

오늘의 운세는 악운이었는데…

하며 걱정을 했다


「~겠습니다」

'~요'와 '~니다'를 섞어 쓰고요, 그 끝은 '~겠습니다' 이게 내 문체라며 그가 말해줍니다. 나는 모르고 적어왔는데, 그걸 알아주다니요. 그는 나조차도 몰랐던 나를 발견해줍니다. 어쩜 이런 세세한 알아줌 하나하나가 전부, 과분한 애정으로 향하고 있단 뜻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을 처음 본 순간 원래부터 나에겐 선이었어요」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겐 악이기도 하고 선이기도 한 게 사람이잖아. 그러면서 악은 상처를 입히고 선은 누군갈 껴안겠죠. 우리의 생은 그렇게 발전해나가는 거 아닐까. 피를 나눈 것도 아닌 사람들끼리 원래부터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뭉치고, 뒤엉키며 삶의 이질적인 간극이 점점 좁혀지겠죠. 원래부터 그 누가 좋은 사람이었건, 나쁜 사람이었건, 내 사람이건, 내 사람이 아니건 단지 당장 누군가를 선이라 생각하는 마음이 모여 단단한 관계가, 사랑이 만들어지겠죠. 당신과 나는 서로에게 선일까 악일까. 원래 좋은 사람이었건 나쁜 사람이었건을 떠나서 말예요. 원래부터 악한 사람이라도, 지금은 나에게 원래부터 선이었다 믿고 걸을게요. 신이 실제론 없더라도 있다 믿어서 이륙한 지금 현대의 문명처럼. 당신이 가진 원래의 악도 지금 내겐 마치 선인 것처럼. 이제 내 생의 악역은 당신 아닌 사람들로 충분하죠.


「이미 알아버렸다는 영원한 멀어짐」

…… 하필 지금 알아버려서 다신 모르는 척 지내야 하는 경험은 켜켜이 쌓여왔다.

누군가를 알게 된다는 건 영원한 멀어짐일 수도 있다는 말인 것 같아서,

이미 이어져버린 누군가와의 관계는 섬뜩하기까지 했다.

이어짐을 직감했어도, 멀어짐이 더 익숙할 때가 있었다.




전작인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를 꽤 인상깊게 읽었던지라 신간알리미가 뜨자마자 관심있게 볼 수 밖에 없었다.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는 늘 따스한 응원을 전해 온 정영욱 작가가 다시 한번 독자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하는 힐링 에세이이다.

당신의 말에 동감합니다,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 ▶ https://blog.naver.com/shn2213/222815699223


난 사랑에 있어서, 참 서툴었던 것 같다.

이미 끝났다면 뒤돌아보지 않는다는 주의지만 적어도 두 번의 사랑은 계속해서 뒤돌아보려고 했던 것 같다.

영원한 약속이 아닌 이상 만남이 있으면 결국 헤어짐이 있는 것이니, "연인과의 이별이 그 순간은 힘들지 몰라도 결국은 잘 털어내는 게 나야, 그러니깐 괜찮아."라고 했지만, 겉으론 내색하지 않아도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했을 때는 꽤 힘들었었다.

어렸기에 미숙하기도 했고 서로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기도 했고 나에게 주는 사랑이 이내 과도한 집착으로 보이기도 했고.

20대, 혼자였던 적이 짧았고 누군가와 함께 했었구나...!

그간 나의 연애담을 풀자면 마냥 짧지만은 않은 것 같다.

추억이 방울방울 떠오르긴 하지만 크게 물거품처럼 이내 기억이 희미해지니, 나는 사람과의 인연에 있어서 꽤나 단호한 편인가보다.

INFJ라서 그런 걸까...?


그간의 인연들과 헤어지는 그 순간, 끝끝내 서로의 결정에 대해 존중하며 담백하지 않지만 담백하게 헤어져서 그런지 미안한 감정 따위는 없는데 유일하게 첫사랑에게는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지금에서야 이렇게 털어놓지만, 남들이 보기에도 친구 그 이상으로 가깝게 지냈지만 나는 우리가 사귀는 줄 몰랐었다.

그가 나에게 고백을 했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렇게 어느새 사귀는 사이가 되어버렸는데 그에게는 털어놓지 않았지만 여러 일들이 닥치게 되었고 점점 거리를 두었던 것 같다.

너무 어려서 무서웠나 보다. 다가가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어 더더욱 눈을 돌리려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만 애달프고 힘들어하는 건가 싶었는데 그 또한 정말 힘들어한다고 전해 들으니 누군가에게 미안한 감정이 그렇게까지 크게 든 게 처음이었다.

시간이 훌쩍 지나, 용기 내어 오해를 풀고 싶어 물어보고자 했지만 그것이야말로 더 상처를 주는 게 아닌가 싶어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었다.

아마 그는 모를 것이다. 나의 첫사랑은 당신이라는 것을.


글을 쓸 때 있어서 여러 경험을 해봐야만 글에서 진득한 감정을 묻게 할 수 있다고 하던데, 그 말이 꼭 맞다.

연애도, 진심 어린 사랑도 많이 해봐야 하는 것이.

20대 때의 사랑이 꼭 휴지조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여러 감정을 토대로 많은 대화를 해보았고 많은 경험을 해보았으니, 이것 또한 나의 성장 중 밑거름이 되었을 테니깐.

지금 그리고 앞으로의 관계에도 이로운 영향을 주는 것 또한 분명할 테니깐.


며칠 전에 한 댓글을 받고선 책 몇 권을 추천해드렸었다.

주변에 책 읽는 사람들을 많이 봐서 그런지 크게 체감하지 못했는데, 갈수록 종이책을 만지는 사람들이 급감하고 있다고 한다.

종이책만이 가지고 있는 향과 질감,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켜켜이 쌓여지는 생각은 오로지 종이책을 통해 누릴 수 있는 특권과도 같은데…….

누구나 감성 어린 글을 쓸 순 있지만, 글마다 느껴지는 깊이감은 제각각이다.

즉, 심도 있는 글을 쓴 이들은 대부분 책을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10분도 안 되는 영상도 길게 느껴져 1분도 안 되는 쇼츠, 릴스 등에는 아주아주 짤막한 줄거리와 결말만이 담겨져 있다.

도중에 나의 생각을 곁들일 수 있는 느긋한 시간조차 허용되지 않는다면 결국 사고하지 못하게 되버리지 않을까.



무언가 알려주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부족한 사람이라, 나도 이랬었다고 미련했던 마음을 적어 본다.

단지 그뿐. 난 이렇지만 기필코 살아간다고.

그러니 당신도 꼭 살아내었음 한다고. _저자 정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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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11-08 07: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을 잘쓰러면 정말 경험이 중요한거 같아요. 전 경험이 부족해서 그런지 책을 통해 간접경험하는게 재미있더라구요 ㅋ

하나님은 INFJ 시군요. 이 성격이 단호한가 봅니다. 저는 ENFJ 이던데 그래서 우유부단합니다 ㅋ

하나의책장 2022-12-16 21:29   좋아요 1 | URL
오! 새파랑님은 ENFJ시군요^^
전 I는 확실한데 J는 아닌 것 같아서 두번이나 해봤는데 또 INFJ로 나오더라고요ㅎㅎ
성향같은 거 크게 따지지는 않는데 MBTI 각각 특성들을 보면 대체적으로 또 맞더라고요. 신기방기🤔
 
여우와 나 - 한없이 다정한 야생에 관하여
캐서린 레이븐 지음, 노승영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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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같은 시간에 오두막을 찾아오는 손님이 있었으니, 그 주인공은 바로 여우다.

그런 여우에게 그녀는 『어린 왕자』를 읽어주기 시작했고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은 그녀를 자연은 힘껏 안아주었다.


저자가 레인저로 일하며 야생의 세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당시, 그녀에겐 후진도 안 되는 낡은 자동차 한 대, 그리고 기본적인 캠핑 장비가 전부였다.

책은 로키 산맥 자락의 인적 없는 땅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홀로 살던 그녀가 야생 여우의 정기적인 방문을 받으며 시작된다. 오두막 근처 여우 계곡에 가면 그녀가 진창에서 회전초를 뽑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저자, 캐서린 레이븐은 1959년생으로 미국의 몬태나 대학교에서 동물학 및 식물학을 공부했고, 몬태나 주립대학교에서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글레이셔, 레이니어산, 노스캐스케이즈, 보이어저스,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레인저로 활동했으며 〈아메리칸사이언티스트〉, 〈저널오브아메리칸멘사〉, 〈몬태나매거진〉에 자연사 에세이를 기고했다.




Ⅰ 만남


3년 전, 땅 하나를 사들인 '나'는 토지를 조성하고 오두막을 건축하게 된다.

경치를 망가뜨리는 건축물이 거의 없어 꼭 엘프가 나올 것만 같은 온전한 무지개를 볼 수 있어 그 자리에서 항상 기다린다.

'나'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바로 여우다.

언덕을 정탐하다 어느샌가 거리가 좁혀지더니, 여우는 이내 좋아하는 바위의 그늘에서 쿨쿨 자고선 오후 햇볕이 쨍쨍할 때쯤 그 열기에 눈을 뜬다.


생선 뼈처럼 길고 가는 풀씨가 털에 달라붙고 가죽을 파고들었다. 그는 작은 장미 덤불 앞에 멈춰 가시에 대고 몸을 빗질하듯 비볐다. …… 선인장, 채찍 같은 바람, 생선 뼈 씨앗은 최적의 여건은 아니었다. 알팔파밭의 여우들은 푸른 들판에서 입을 벌리고 선잠이 든 채 길 잃은 생쥐가 낮고 부드러운 풀밭을 무심코 가로지르며 날 잡아드슈 하길 기다릴 것이다. 그런 게 최적의 여건이었다. 멍청한 생쥐가 우글거리는 사냥터를 장악하는 것이 유일한 인생 목표인 여우에게는 그럴 만도 했다.


일정한 거리를 둔 채, 나와 여우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Ⅱ 어린왕자


일정한 간격을 두고선 앉은 나와 여우.

나는 여우에게 「어린 왕자」를 읽어주기 시작한다.

"앙투안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란다."


여러 달 동안 여우와 마주하며 편안한 단계에 이른 나와 여우.

오랫동안 물음표와도 같았던 나의 삶, 이곳을 떠나기로 마음 먹고나니 문득 여우가 생각났다.

어린왕자를 읽어줄 때는 나름의 규칙이 있었다.

나는 여우에게 책을 읽어주고 말을 건낸 후 15초간 한참을 쳐다보는 패턴을 반복하게 된다.

쳐다보는 그 타이밍이 여유가 말할 차례라는 것을 의미했다.


상자에 갇혀있지 않은 여우와 한참 책을 읽다 제나에게 연락이 왔다.

야생동물 수업의 내용을 알려달라는 전화였다.

1년에 10주정도 취업자로 만들어주는 수업이었다.

이번에는 32명의 학생들이 수업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만 50km나 떨어져 있어 승낙할 경우 여우와는 떨어져야 한다.

여우와 또다른 규칙이 있었으니, 바로 함께하는 시간의 끝은 언제나 그가 정하는 것이었다.

그가 먼저 돌아서는 것이 바로 시간의 끝이었다.

이튿날, 여느때처럼 여우를 기다렸다.

열닷새 내리 함께 책 읽는 기념비적인 순간이기에 기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축하한담?

어떻게 축하할지 한참을 고민하다 나는 여우를 떠나보내기로 마음먹게 된다.

우연을 인연으로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읍내로 내려가 장을 보다가 저도 모르게 체육관 안으로 들어갔었다.

공원 관리소에서 함께 일했던 과학자 빌이 역기를 들고 있었는데 그때 내가 말을 꺼낸다.

여우가 어쩌면, 자신을 찾아오는 지도 모르겠다고.

"당신이 인격화를 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죠."라는 말과 함께 윙크로 답한 빌에게 괜스레 굴욕감만 느끼고선 나는 체육관을 나오게 된다.

그렇다. 앞서 말했듯이 내가 우연을 인연으로 착각한 것이 아닐까?


사회가 인간과 야생(즉, 상자에 갇히지 않은)동물 사이에 깊은 협곡을 파두었음을 간파하는 데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다. 감히 협곡을 뛰어넘으려 들 만큼 무모하지 않은 사람들의 눈에 그 협곡은 너무 넓고 깊어 보인다. '왕따'가 되기로 마음먹었다면, 크리스토퍼 로빈 스타일의 반바지와 보비 삭스 차림으로 대학 강의실에 나타나는 정도는 되어야 인격화에 명함을 내밀 수 있다. 곰돌이 푸만 당신과 놀아줄 테니까.


그 후, 나는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여우와의 관계를 비밀로 부칠 수는 없다고.

또한 여우와의 관계를 해명할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도.




미국에서 잠시 머물렀을 때, 순록을 기르는 집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거의 방목해서 키우다시피 하다 보니 눈밭을 뛰는 순록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에이트 빌로우가 절로 연상될 정도였으니, 그 모든 장면이 어린 나에게는 매우 신선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교감… 감정을 교류한다.

외할머니 집에 있는 멍멍이들은 일 년에 두어 번 정도 볼 수밖에 없었고, 집에서는 애완동물도 키우지 않았으니 동물과의 교감이 어떤 느낌인지 알 턱이 없었다.

그러던 내게 기회가 다가온다.

미국에서 두어 달 정도 머물 때 함께했던 고양이, 그 후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 일 년 정도 우리 집에 매일매일 출석체크했던 길고양이들 덕분에 동물과의 교감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미국이었다. 하루를 보내고 침대에 누워 미드를 보고 있으니 고양이가 쭐래쭐래 다가와 침대 위로 폴짝 뛰어 오르더니 내 곁으로 다가오는 게 아니겠는가.

눈을 맞추고 웃어주니 슬금슬금 내 품으로 다가와 등과 엉덩이를 내 가슴쪽에, 머리를 내 턱쪽에 붙이고선 가만히 쳐다보는 그 순간은 난생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기에 잊을 수가 없다.

두둥실 구름 위에 안착해 레몬 하나를 베어 문 느낌이랄까.

벅참과 설렘이 동시에 느껴졌는데, 사실 이 감정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당시 쓴 일기에도 그 감정을 표현할 수 없다고 썼을 정도였으니깐.)

누구에게나 곁을 내주지도 않을 뿐더러 낯선 사람이 집으로 오면 일단 숨어서 절대 안 나오는데, 내 옆에 찰싹 붙어있는 고양이를 보더니 고모는 말하셨다.

"오래 머물다 갈 사람을 느끼나보다."

지난 주, 샵에 다녀왔을 때도 샵에서 키우는 강아지와 '교감'을 나누었었다.

애완동물이지만 내가 주인이 아닌데도 충분히 교감을 느끼게 해준 동물들에게 신기하면서도 참 고맙다.

저자는 아마 그 시간이 더 벅차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다.

무려 야생동물이라니! 야생 여우라니!


지금은 인간이 야생 동물들의 영역에 발을 들인 곳이 많아 서식지가 부족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서식지가 부족해지니 야생 동물 개체수 또한 자연스레 줄어들었고 멸종위기에 놓이기까지 했다.

분명 동떨어져 있지만 그럼에도 공생해야 하는 관계이다.

이렇게 해석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여우에게 어린왕자를 읽어줄 때 규칙을 세워놓고선 이를 지켰었다.

결국 넓게 바라본다면 우리 또한 정해진 규칙에 있어서 꼭 약속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오히려 저자에게 위로와 격려를 주었던 야생이었다.


어린 수사슴과 어른 암사슴은 무리로부터 적잖이 떨어져 있다.

그가 나를 쳐다보며 너무 꾸물거리자 암사슴이 안절부절 못한다. 그녀는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개울을 건너는 무리에 합류하려고 떠난다. 그는 5미터 떨어진 곳에서 여전히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따금 암사슴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180도 돌려 작은 잿빛 수사슴을 돌아본다. 그는 아직도 풀을 먹지 못했지만, 통통하고 다부진 몸을 보니 나의 근심은 가라앉는다. 어디서든 먹이를 찾아낼 것이다. 지금은, 내가 유리 덧문 뒤에 서 있는 동안 그가 바라는 것은 나를 바라보는 것뿐이다. 내가 얼굴 앞에서 오른손을 흔들어 나도 그를 보고 있음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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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이 지음, 최인애 옮김 / 미디어숲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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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사랑, 인생, 외로움 그리고 진심에 대한 속삭임을 풀어낸 에세이다.

300만 부 베스트셀러 작가의 2만 개의 찬사를 받은 화제작으로 마음 편하게, 가볍게 읽을 수 있다.


저자, 후이는 1983년생 물병자리로 중국방송대학(University of China) 졸업 후 출판, 광고, 미디어, 음악 등 여러 분야에 몸담았다. 현재 공푸전옌 영화사 부사장을 맡고 있으며 글과 가사를 쓴다. 30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2014년, 2015년 연속 베스트셀러 대상을 받아 ‘인터넷 시대 신여성 대변인’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흔들리며 꿈꾸는 일을 업으로 삼고 산다. 예민한 편이고, 여름과 여행을 좋아한다. 제일 좋아하는 일은 듣고 또 듣기. 과거에 침잠된 일들을 기억하고 기록해서 ‘이야기 속에 인생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한다. ‘손에 든 펜만 있다면 그 어떤 일도 단지 하나의 인생 경험이 된다’는 말을 믿는다.




Ⅰ 사랑에 대한 속삭임


살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시기에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진짜 인연을 만난다.

그러니 떠나간 옛사람이 아니라, 다가올 그 사람을 위해 지금의 나는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저자가 말하길, 품위 있는 사람과의 결혼은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했다.

저자가 대학 시절에 겪던 일이었다.

호감을 느낀 남자 선배가 있었고 그 선배와 둘이서 과 모임을 기획하게 되는 일이 생겼다.

저자는 동기들에게 연락하는 일을 맡았고 선배는 음식점을 예약하게 된다.

동기들에게 전화를 거는 도중 선배가 여러 번 전화를 거는 것 같아 저자는 단체 예약이 안 되냐고 물었다.

그러자 선배는 이렇게 답했다.

"아냐, 전부 예약했어. 그냥 여러 곳 잡아 둔 거야. 예약하는 데 돈 드는 것도 아니고 뭐 어때. 애들 모이면 어디로 갈지 물어보고 그리로 가자."


자영업자들은 하루하루 생존의 법칙을 가지고 산다. 매일이 생존싸움이다.

그런데 단체 예약을 해놓고선 당일 혹은 바로 전날에 취소전화를 받게 되면 어떻게 될까?

예약금 한 푼 받지 않고 그럼에도 예약을 받아주는 곳은 암묵적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약속을 했으니 바로 올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그 믿음을 저버리면서 양심의 가책 하나 느끼지 않는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인 걸까?


'하나를 보면 열은 안다.'라는 말이 있다. 타인을 이렇게 대하는 사람은 친구도, 애인도, 동료도, 심지어 가족도 이런 식으로 대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이라면 아무리 대단한 인재라 한들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어느 날, 친구의 주선으로 저자는 소개팅을 하게 된다.

멀끔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남자가 등장했고 소개팅을 순조롭기만 했다.

모든 이야기에 호응을 해 신이 났던건지 남자는 갑자기 전자담배를 꺼내 피우기 시작했다.

잠시 후 아르바이트생이 실내는 금연구역이니 나가서 피워달라고 정중히 부탁하게 되었는데 갑자기 남자가 아르바이트생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니코틴 없는, 피해 안 주는 전자 담배라며 버럭하는 남자를 보며 저자는 할 말을 잃게 된다.

곧이어 주문한 케이크와 커피가 나왔는데 남자는 또 한번 아르바이트생에게 화를 내게 된다.

케이크에 벌레가 붙어있다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정말로 케이크에 날파리 한 마리가 붙어있었다고 한다.

아르바이트생은 연신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며 곧 새 케이크를 드리겠다고 했지만 남자는 씩씩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이미 입맛이 떨어졌는데 새 케이크가 다 무슨 소용이야? 필요없으니까 이 케이크, 네가 먹어 치워."

저자는 말도 안 되는 요구에 크게 당황했고 안 되겠다 싶어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게 된다.

"괜찮아요, 무슨 바퀴벌레가 나온 것도 아니고, 접시에 날파리 붙은 걸 못 봤을 수도 있죠. 그냥 바꿔 주세요."

그러자 남자는 더더욱 아르바이트생에게 손가락질하며 자신이 돈이 없는 줄 아냐며 공짜 디저트는 필요없다고 소리를 질렀다.

보다 못한 저자는 자신의 찻값을 남자에게 던져 버리고 자리를 박차고 나와 주선한 친구에게 앞으로는 그 사람 이름조차 꺼내지도 말라고 경고했다.


힘없는 아르바이트생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머리를 조아렸지만 그건 그 남자한테 중요치 않았다.

자신의 기분이 우선인 사람이었으니깐.

돈이 아무리 많아도 절로 품위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공부를 많이 해도 지식이 풍부해도 심지어 가정교육을 잘 받았어도 반드시 품위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약한 사람에게 강하게, 강한 사람에게 약하게 보이는 사람은 거르는 것이 좋다.

평생을 작은 마을에 살았어도 점잖고 예의 바르며 남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세계 각지를 돌아다녔어도 공공장소에서 금연할 줄 모르고 침 뱉는 사람보다 훨씬 품위 있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품위는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구분선이다,.

품위 있는 사람은 반성할 줄 알고, 예의를 지킬 줄 알며, 쉽게 흥분하지 않고, 자기 고집에 매몰되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든 적절하게 행동하고, 늘 여유 있고 넉넉하며, 마음은 선의와 타인에 대한 존중으로 가득하다.


저자는 조언한다, 결혼은 꼭 품위 있는 사람과 해야 한다고.

사랑은 포기해도 품위는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결혼이라는 중차대한 결심을 하려면 단순히 감정만으로는 부족하다.

내가 상대에 대해 확신하는 것 이상으로 나 역시 결혼하기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상대에게 증명해 보이고 확신과 안정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사랑은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마음과 마음이 맞닿아 어우러지는 것이다.

미처 겪어 보지도, 해 보지도 않아서 낯설고 어색한 그 사랑들이 이 세상에 있다.

그것도 가장 올바른 방식으로 우리 곁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Ⅱ 있는 그대로에 대한 속삭임


실패해도 괜찮고, 참패해도 괜찮고, 연달아 패배해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의 발견이다.


한때 저자는 북쪽 지방의 작은 마을에 머물며 혼자 사시는 할머니와 친구가 된 적이 있었다.

남편과 아들을 일찍이 잃고 홀로 손녀를 키우시는 일흔의 할머니였다.

며느리가 일찍 재혼하고 연락이 끊기에 되면서 갓난쟁이였던 손녀의 기저귀를 갈며 애지중지 키웠다고 한다.

그런 손녀가 유명한 사범대에 합격했다고 하니 경사 중의 경사였다.

할머니가 말하길, 특히 옆집 아주머니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돈을 빌려주는 것 뿐만 아니라 먹을 거리가 있으면 종종 나눠주었다고 하니 마을이 십시일반 조금씩 도와줬기에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 있듯이, 이제 손녀가 졸업하고 취직하면 할머니도 지내기 수월해지겠다면 자신의 생각을 할머니께 전하자 할머니는 저자께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물론 많은 사람이 도와준 건 맞지, 하지만 나 역시 평생 도움받은 걸 기억하고 감사하며 보답할 거여. 그리고 결국 나를 가장 많이 도운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여, 바로 나 자신이여."

"다른 사람이 나를 도와주는 건 정분이고, 내가 나를 돕는 건 본분이여."

할머니는 손녀에게 인터넷 방송하는 법을 배워 농작물 등을 온라인으로 팔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차곡차곡 모아 손녀에게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만약 내가 나를 대단하게 여기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 법이여. 다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니께 힘도 합치고 도와줄 생각도 하지. 만약 내가 싹수 노란 게으름뱅이라면 누가 신경이나 쓰겄어?"

"늙었다고 죽을 대까지 얌전히 앉아있으라는 법 있는가? 지금까지는 손녀를 위해 살았으니, 이제부터 나를 위해 살아야지."


우리는 끊임없이 일상생활에서 승패를 겪는다.

옷, 가방 등 물질적인 것부터 자세, 태도, 언행을 포함하여 성적, 재산 등 남이 나보다 나으면 자신도 모르게 '졌다'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부러우면 부러운 것이지, 이로 인해 속상해하거나 좌절에 빠지면 절대 안 된다.

오히려 이런 고수를 만났다고 생각하며 싱글벙글해야 한다.

즉, 패배의 가치와 묘미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성장이라는 주제에서 보면 승패는 절대 중요하지 않다.

실패와 패배로 인해 완벽해 보이던 나의 작은 세계가 깨어질 때, 우리는 껍질 밖의 더 크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게 된다.

그러니 졌다고 비탄에 빠지지 말고 오히려 기뻐하라.


잊지 말자.

언제나 나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또 그 사랑만큼 내가 나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을.


저자가 성인이 되고 나서 버팀목 같았던 아버지가 쓰러지게 된다.

시기를 놓치지 않아 건강은 회복했지만 거동이 불편해 지팡이를 계속 써야 하는 신세가 된다.

이번 겨울, 저자는 본가에 다녀오게 되는데 집 앞 골목 빙판길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나이 먹고 넘어진 게 괜스레 쑥쓰러운 마음에 볼멘 소리를 내니 저자의 아버지께서는 허허 하고 웃으시며 연고를 가지러 가셨다고 한다.

다음 날, 낮잠을 자고 일어나보니 아버지께서 안 계시지 않는가.

혹여나 산책하시다가 넘어진 게 아닐까 싶어 부리나케 달려나갔는데 느릿느릿 저 멀리 골목 어귀에서 집으로 오고 계셨다.

걷는 모양이 조금 이상한 것 같아 살펴보고 있는데 언제 나오셨는지 옆집 아저씨가 나와 말을 꺼냈다.

"네 아빠, 오늘 새벽부터 저러고 있다. 사람들이 그만하면 됐다고 해도 듣질 않고 혼자 끙끙대면서 지팡이로 얼음판에 꾹꾹 구멍을 내놓더라. 아마 누가 미끄러져 넘어질까 걱정돼서 그러는 모양이야."

저자는 두 손으로 눈두덩이를 꼭 누르다 아빠를 크게 부르자 그녀의 아버지는 코끝까지 빨개진 얼굴로 반갑게 미소지어주었다고 한다.


평생 잃고 싶지 않은 단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주저 없이 이 사랑을 고를 것이다.

나는 주저 없이 이 사랑을 고를 것이다.

늘 더 주지 못해 미안해 하는 그들이지만 사실은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아니, 그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이제는 내가 그들에게 주고 싶다. 충분히, 아주 많이.

그리고 그들이 좀 더 오래도록 받아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란다.




Ⅲ 진심을 대하는 것에 대한 속삭임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흘린 땀과 눈물의 대가를 받을 권리가 있으며, 저마다 마음에 정한 합리적인 값이 있다.

그만큼 줄 수 있으면 주고 못 주겠다면 갈라서면 그만이다.

그러나 때로는 그 이상을, 기쁜 마음으로 더 주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한때 휴양지에 머물며 글을 썼던 저자는 마음에 쏙 드는 카페를 발견해 조금 멀긴 하지만 삼륜 택시를 이용해 그 카페에 출근하다시피 하게 된다.

정가제가 아닌 흥정으로 정해지는 탓에 기사마다 요금이 살짝 달랐다.

최하 1500원 정도로 갈 수 있지만 어떤 기사는 1600원, 1700원을 부르기도 했다.

기사가 바가지만 씌우지 않으면 저자는 웬만하면 부르는 대로 주긴 했지만 더 많이 주지는 않았다고 한다.

크리스마스날, 그 날도 역시나 삼륜택시를 이용했는데 목적지를 듣자마자 기사는 이렇게 말한다.

"1,500원! 1,500원이면 충분히 갑니다."

목적지에 다다르자 저자는 2,000원을 내밀며 잔돈은 주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며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덧붙이니 기사는 기쁨과 놀라움이 섞인 미소를 띄웠다고 한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때로는 그보다 더 주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기쁜 마음으로 왜 그런 것일까?

그들을 인정해서?

응원하는 차원에서?

아니, 진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상대가 보여 준 진심에 진심으로 응답하고 싶은 것뿐이다.


일부 사람은 타인의 불행에 필요 이상의 호기심과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저열한 관음증 때문일까, 아니면 그만큼 인생이 무료하기 때문일까?


저자는 먼 친척 오빠 내외의 소식을 듣게 된다.

얼마 전, 첫 아이를 낳았는데 항문폐쇄증 진단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가장 가슴 아픈 사람은 부모일테니 연락조차 부담스러울 것 같아 저자는 입을 닫았지만 일부 친척은 걱정을 빙자한 호기심을 숨김없이 드러냈고 모이기만 하면 아픈 아기를 화제에 올렸다.

심지어 친척 아주머니가 찾아와 엄마와 함께 아픈 아기 이야기를 꺼내자 일부러 싫은 티를 내며 저자는 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고 한다.

친척 아주머니가 가고 나서 너무 실례한 거 아니냐고 엄마가 저자에게 따져 묻자 뒷말 쑥덕거리는 게 더 실례라고 하니 그녀의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다들 걱정돼서 그러는 거잖니.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을까, 다들 궁리하느라 그러는 거야."

그러자 저자는 답했다.

"지금처럼 힘들 땐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 주는 게 도와주는 거예요. 괜히 이것저것 묻고 들쑤시면서 더 심란하게 만들지 말고, 본인들이 문제해결에 집중할 수 있게 내버려 두는 게 훨씬 낫다고요."

이후 아기가 인공항문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제야 저자는 오빠에게 전화를 걸어 허락을 받은 후 아기를 보러 갔다고 한다.

가서도 수술에 대해서는 일절 묻지 않고 그저 아기의 건강과 축복을 바란다며 선물만 전달해주니 오빠 내외는 내내 편안해했다고 한다.


도와줄 수 있으면 돕고, 도와줄 수 없으면 그 자리를 떠나라.

남의 힘든 모습을 구경거리로 삼거나 더 번거롭게 만들지 마라.

다른 사람의 하늘이 무너질 때 받쳐 줄 수 없다면, 그저 눈 감고 못 본 척하는 게 도와주는 것이다.

생과 사는 하늘의 뜻에 달렸고, 나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으니 때로는 관심을 끄는 것이 맞다.

나를 위해, 그리고 상대를 위해.




좋은 사람을 단번에 만나는 것도 행운이겠지만 모두에게 그 행운이 오는 것은 아니기에 많이 만나보고 헤어지는 것도 다 경험이 된다는 것도 맞는 말인 것 같다.

그런데 요즘 스토킹 범죄가 갈수록 악랄해지며 결별한 커플 혹은 부부간의 다툼이 살해로까지 이어지는 기사들을 많이 접하고 있다.

이렇다보니 '무서워서 누구 만나겠나?'하는 말이 자연스레 이어지는 것이다.

그간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여러 사랑을 해봤지만 지금은 나도 모르게 소개팅은 꺼려진다.

그래서인지 【품위와 결혼하다】는 유독 공감될 수밖에 없었다.


애서가로 살다보니, 간혹 그런 말을 듣기도 한다.

당연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는데 왜 읽는 거야?

사실, 답은 간단하다.

어떤 분야이건 당연하게 이루어지는 내용일수록 놓지 말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기에 때로는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고 넘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당연하게 예상되는 책을 끊임없이 읽어줘야 하는 것이다.


계속되는 실패에 좌절하는 순간에 놓여질 때, 어느 순간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아, 또 실패했네. 당연한건가?

나 자신이 상대방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놓여질 때, 어느 순간 우리는 순응하게 되는 것이다.

아, 또 그러네. 그래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되는 건가?

이러한 모든 순간들을 당연시하게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당연하지만 당연한 이야기를 읽어야 하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고 존중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법부터 타인과 어울리면서 필요한 나눔과 배려 그리고 삶의 지혜를 책에서 엿볼 수 있다.

(저자가 중국인이다보니 에피소드가 조금 과하게 흘러가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지혜는 크게 변함이 없다.)


발아래 진창 때문에 걷기 힘들어도,

그 덕에 늪으로 미끄러지지 않을 수 있음을,

어둠이 잠시 눈앞을 가린다 해도,

그 덕에 희미한 빛을 발견할 수 있음을,

낭떠러지 끝에서 손을 놓아 버린 사람이,

어디선가 밧줄을 찾아들고 나타나 나를 구해줄 것임을,

우리는 믿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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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공부 - 느끼고 깨닫고 경험하며 얻어낸 진한 삶의 가치들
양순자 지음, 박용인 그림 / 가디언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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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저자가 오랜 기간 동안 서울 구치소에서 교화위원으로 사형수들을 상담해 주었다.

그런 그녀가 암을 통해 죽음과 마주하게 되면서 지난 시절 동안 느꼈던 삶의 가치와 삶의 자세에 한 자, 한 자 써 내려간 이야기이다.

자신을 진정 사랑하고 주변 사람들과 기꺼이 나누며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어른으로서 행복하게 사는 것임을 일깨워준다.


저자, 양순자는 서울구치소 교화위원으로 30년간 사형수들을 상담해왔다. 영암군청 사회복지과 상담실장으로 일했으며, 법무부 교정대상(박애상), 국무총리 인권옹호상, 법무부 장관상 등을 수상했다. 또한 안양교도소 정신교육 강사 군부대 강사 활동을 하면서 양순자심리상담소를 운영했다.

‘남을 돕는 일에는 계산하지 말고, 누군가 넘어지면 빨리 일으켜줘야 한다’가 신조인 그녀는 누군가가 SOS를 치면 언제든 달려가는 열혈 상담가였다.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탔을 때 그녀 옆자리에 앉기만 해도 그녀의 긍정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만다. 그래서 그녀를 한 번이라도 만난 사람들은 사는 게 우울하거나 위로받고 싶을 때 가장 먼저 그녀를 떠올 린다. 그녀는 2010년 대장암 판정을 받았지만 두 번의 수술 후 항암치료를 포기하고 행복할 때도 슬플 때도 암세포와 함께한다는 생각으로 살다가 2014년 7월, 향년 73세로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Ⅰ 어른으로 살아보기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듯이, 삶과 죽음도 마찬가지다.


"한참은 힘들 겁니다."

의사가 조심스레 저자에게 말을 꺼냈다.

피할 수 없는, 준비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말이었다.

저자는 이미 암을 받아들인 상태였기에 수술을 하지 않고 안에 있는 암과 함께 가겠다고, 그렇게 담담하게 의사에게 말했다.

30여 년 동안 집행장으로 향하는 사형수들을 본 저자는 그들을 이렇게 기억했다.

죽을 때조차도 마음 편히 가지 못하고 말이 많았다고.

지금은 사형 집행이 이루어지지 않아 나 또한 알지 못했는데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렇다.

사형수들은 집행날을 알지 못해 갑자기 문을 열고 여러 사람이 들이닥치면 그 때 짐작했다고 한다.

담담하게 따라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 자리에 주저앉아 오물을 쏟고 일어서지 못하기도 하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통곡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저자는 말한다.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 열심히 산 사람은 죽음에 의연할 뿐만 아니라 이별도 잘한다고.

뒤돌아보고 멈칫거리는 것은 결국 최선을 다하지 못해 미련이 남아서라고.

저자인 양순자 선생님은 암과 함께 사셨고 2014년 7월 세상과 작별하셨다고 한다.

선생님의 말대로 하루하루가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여기며 산다면 분명 이별도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별이 명확하지 않은 사람은 결국 불량품이라고 하셨으니깐.


30여 년 전, 현저동 101번지에 위치했던 서대문 형무소.

봉사하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들어갈 수 없으며 종교단체를 통해서 심사를 받아야만 했다.

구치소에 종교위원을 두는 이유는 교도소 직원들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일, 사형수와의 상담때문이었다.

사형선고를 받고 나면 정신적으로 급격히 불안해져 사형수 대부분이 악몽에 시달린다고 한다.

이렇다보니 사고를 치기도 하고 자해를 하기도 하니 직원들이 항상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종교위원은 정해진 날에 찾아가 사형수를 면담하며 위로하는 시간을 가지는데, 이런 시간이 2년에서 3년정도라고 한다.

그 중 저자의 마음에 걸렸던 사형수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사형수 한씨는 딸만 일곱으로 형편이 워낙 어렵다보니 딸들을 식모로 보내 생활을 근근히 해나가던 농부였다.

당시 50만원 빚 독촉에 시달리고 있던 중, 잠실에서 식모살이를 하고 있는 딸에게 찾아가 그 집 주인에게 50만원만 빌려달라고 간청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큰 돈을 덥석 빌려줄 일은 없었다.

그렇게 매몰차게 거절당하고 다시 돌아가려는 순간 화장대에 놓인 보석 하나가 한씨의 눈에 들어오게 된다.

홀린듯이 보석을 집어들고 가려는 순간, 이를 본 주인과 실랑이가 일어나자 한씨는 도망치듯 그 집에서 빠져나왔다고 한다.

단순 강도인데, 그렇다면 한씨는 왜 사형수가 된 것일까?

실랑이를 벌이고 난 뒤, 주인이 넘어지면서 장롱에 머리를 부딪혀 죽고 만 것이었다.

한씨는 신문을 통해 사망소식을 접하고선 자수를 하기로 마음먹게 되었고 경찰서로 향하기 전 사찰로 먼저 가 기도를 하던 중에 죽은 주인의 시어머니를 절 앞에서 만나게 된다.

한씨는 그 시어머니에게 자수하러 간다고 말을 꺼냈고 그렇게 주인의 시어머니와 함께 경찰서로 향하게 된다.

그런데 죽은 주인의 시어머니가 법정에서 뜬금없이 자신이 잡아왔다고 증언을 한 것이 아니겠는가.

변호해 줄 변호사도 없는 한씨는 결국 사형선고를 받게 된 것이다.

증거와 증인만이 법정에서 효력을 발생시킬 수 있었으니 50대 젊은 남자가 늙은 할머니에게 붙잡혀 왔겠냐는 호소도 법정에서 먹히질 않았다.

저자는 끊임없이 궁금했다고 한다.

죽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던 노인은 왜 끝까지 내가 잡아 왔다고 거짓 증언을 했던 것일까? 무슨 이유였을까?

가난 때문에 딸 일곱과 떨어져 살아야 했던 사람.

빚 50만 원에 끝없이 몸부림치다 마지막에 강도로 돌변해버린 사람.

살인을 하진 않았지만 사형을 선고받은 사람.

가난 때문에 죗값을 더 치르고 간 사람.

변호해줄 변호사 한 사람없이 홀로 간 사람.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사형 집행 전 위암으로 한씨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때 아닌 철에 수박이 먹고 싶다고 해서 수박도 먹고 수의를 입고 간 유일한 사형수였다고 한다.

아끼던 선배의 물음에 저자는 이렇게 답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선배님, 그들의 삶이 불행했으니 마지막 가는 길에 착한 사람이 곁에 있어 주면 조그만 위로가 되지 않을까요? 조금 더 가진 자, 조금 더 행복하게 산 사람이 불행한 사람에게 밝혀주는 작은 촛불만큼의 배려라고 생각해주세요."




Ⅱ 사람부자가, 결국 옹골진 부자다


돈이 많으면 돈 부자, 친구가 많으면 친구 부자라고 한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정작 쓰지 못하는 사람도 많은데 하물며 친구가 많다 해도 결정적인 순간에 아무 의미 없을 때도 있다.

저자는 말한다.

결정적인 순간에 나에게 도움이 되는 친구가 진정한 '진짜 친구'라고.


미국 청교도 시절, 한 사형수의 사형 집행이 이루어지는 날이었다.

집행관이 사형수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없는지 묻게 된다.

사형수는 홀로 계신 어머니를 단 한 번만이라도 뵙고 싶다는 부탁을 하였지만 집행관 입장에서 이해는 해도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이었다.

그 때, 오랜 고향 친구가 사형대 앞으로 나와 친구가 어머니를 잠시 뵙고 있을 동안 자신이 사형대에 올라와 있겠다고 한다.

그렇게 사형대에 친구가 대신 오르게 되고 사형수는 어머니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러 길을 나선다.

한참이 지나 사형을 집행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는데 사형수 옷자락도 보이질 않았다.

그러자 집행관은 불쌍한 눈빛으로 사형수 친구에게 말했다.

"이젠 네가 친구 대신 갈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없느냐?"

그러자 친구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내 친구는 분명 올 것입니다. 무슨 사연이 있어서 늦는 것일뿐입니다. 내가 죽은 뒤에 친구가 도착하면 꼭 이 말을 전해주십시오. 친구를 조금도 원망하지 않고 갔다고 말입니다."

그 때, 만신창이가 된 사형수가 드라마틱하게 눈앞에 나타나게 된다.

어떻게 된 것일까?

어머니와 인사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 갑작스럽게 내리는 소나기에 외나무다리를 건너다 떠내려 가게 되었고 그 길을 헤엄쳐 오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던 것이었다.


한때는 친구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발 넓게 지내는 게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던 어느 날, 크게 상처받는 일이 생겼었다.

유난히 남들을 시기하고 질투하던 그 아이가 내 뒷담화를 하고 다니던 것이었다.

뒷담화했던 그 아이에게도 실망했지만 침묵하고 방관한 아이들에게도 조금은 실망했었다.

그 아이가 그 자리에서 그 아이들에게 뒷담화를 했다면 결국 말을 보태지 않았어도 동의하며 들었단 뜻이다.

그렇다면 거기서 끝낼 일이지, 굳이 나에게 와서 그 아이가 네 뒷담화를 하고 다닌다고 일일이 얘기해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착하게 살면 좋은 쪽으로 흘러가는 줄 알았는데, 그저 내가 잘하면 그만인 줄 알았는데 결국 그 사람의 인성은 바꿀 수 없는 노릇이다.

그 때, 내게 뒷담화하던 이야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이야기하며 주동자인 그 아이를 뒷담화하자는 식으로 말하는 그들을 보며 그간의 쌓인 정이 한순간에 무너졌었다.

남을 비하하고 뒷담화하면서 괜한 감정 소모를 하는 것 자체가 내게는 너무나도 지치는 일이기 때문에 애초에 할 생각도 없고 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굳이 똑같이 비하하고 뒷담화하며 고립시킬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 나는 그들과는 멀어지는 것을 택했었다, 과감하게.

생각해보면 너무 잘했던 행동이었다.

이후 들었던 이야기로는 곁에 남았던 친구들마저 다 떨어졌을 뿐더러 그들도 서로서로 연락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사건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상처받는 일이 연속으로 터지면서 사람을 대하는 것 자체가 내겐 너무 힘들어 사람 자체를 마주하고 싶지 않은 순간까지 오게 되었었다.

그 때, 선생님께 조언을 받아 연락처 목록을 과감하게 정리하기에 이르렀었다.

'진정하게'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제외하곤 다 정리해보니, 굳이 내가 연락하지 않아도 될 사람들과 이렇게나 많이 연락했었구나 싶었다.

그렇게 남은 친구들은 자주 보지 못해도 어제 본 것 같고 말하지 않아도 이해해주며 무엇보다 서로간의 믿음이 있다.

이렇듯 좋은 친구는 우선 믿음이 있어야 한다.

나 또한 그들에게 가식 없이 진정한 마음을 줄 수 있는 그런 친구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Ⅲ 마무리가 깔끔하면 머물다간 자리도 아름답다


30년 동안 교도소만 다니다보니 칠십이 넘었던 시기에 저자가 갈 수 있는 곳은 노인정밖에 없었다.

어느 날은, 오피스텔 관리소장이 통장을 해볼 생각이 없냐고 묻게 되었고 며칠을 고민하다 승낙하게 된다.

이력서에서 수상 목록을 쓰려고 보니 당최 기억이 나질 않아 서울구치소로 연락해 물어보았다고 한다.

굵직굵직한 상을 많이 받았음에도 저자가 상을 버렸던 이유는 무엇일까?

성격상 상을 진열하는 것 자체가 짐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은연중에 '오만'이라는 병에 걸릴까봐 상장의 의미를 밀어냈었다고 한다.

소신있었던, 저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인간은 물론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은 정해진 수명이 있다.

"인명은 재천이다."

즉, 사람 목숨은 하늘에 달려있으므로 우리가 생명을 쥐고 흔들 순 없다.

세계적인 부호였던 록펠러는 99년을 잘 먹고 잘 살았는데 위암 판정을 받게 되자 1년만 더 살게 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자신의 재산 중 절반을 나누어주겠다고 전세계적으로 홍보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는 99살에 죽고만다.

죽음 앞에서 돈도 권력도 아무 의미 없는 것이다.

심지어 건강해도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이 오기도 하니 우리의 수명은 하늘만이 알 뿐이다.


칠십 평생 아파본 적 없던 저자는 오복을 다 누리고 살았기에 겁날 것이 없었고 암이라는 터널을 두 번이나 벗어나면서 까칠했던 성격이 많이 원만해졌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에 20구씩 5년 동안 2만 여 구의 시체를 돌봐온 상담자가 찾아오게 된다.

수의를 입혀 보내는 일을 했기에 숨을 거둔 시신의 모습을 매일 볼 수 밖에 없는데, 대부분 평안한 모습으로 죽었을 거라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평안하게, 평안하지 못하게 가는 얼굴은 확연히 드러나며 성숙하지 못하고 죽은 시체는 모습 자체가 다르다고 한다.

저자는 그 날의 일을 생각하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이 든다고 그냥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무엇보다 나이 먹어서 나잇값 못하는 것처럼 추한 것도 없다는 것.

암병동에 입원하면서 긍정적으로 암을 안고 가는 사람과 의사와 병원을 잘못 선택했다며 골 난 사람은 얼굴 색깔부터 달랐다고 저자는 덧붙였다.

아프고 나서도 성장하기는커녕 신세 탓, 환경 탓만 하는 사람도 참 많다는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야."




(자살을 제외하고) 사람은 병으로 혹은 사고로 혹은 사람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저자의 말처럼 인명은 재천인지라 죽음의 날짜를 예측할 순 없다.

몇 주 전 대학병원에 다녀왔었는데, 갈 때마다 느끼지만 아픈 사람이 참 많다는 것이다.

또한, 요새 크나큰 사고 소식이 끊임없이 들리고 있는데 어제는 화성 제약회사 공장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나 인명피해가 있었다.

갑작스런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는 것,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저자, 양순자 선생님은 암 투병을 하시다가 2014년 7월 눈을 감으셨다.

죽음을 앞두고서 이별 연습을 했던 저자는 매우 의연하고도 담담했었다고 한다.


갑작스레 세상을 등진다 해도 이상할 것도 없다.

그렇기에 하루하루를 더 소중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삶, 주변 사람들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삶, 적어도 후회는 남지 않는 오늘을 사는 것이 진짜 어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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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린 왕자 - 내 안의 찬란한 빛, 내면아이를 만나다
정여울 지음 / CRETA(크레타)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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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어린왕자」와 【정여울】작가님의 조합이라니!

「어린왕자」를 통해 성인자아가 마주한 내면아이의 순간순간을 【정여울】작가님과 함께하다 보면 절로 느끼게 될 것이다.


타인 앞에서 용감해지기 위해서,

내 꿈 앞에서 순수해지기 위해서,

내면아이를 되찾아야겠다고.


저자, 정여울은 매일 글 쓰는 사람, 쉬지 않고 꿈꾸는 사람으로 자신의 상처를 솔직하고 담담하게 드러내며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작가이다.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학위를 받은 후 인문학, 심리학, 글쓰기에 대한 강연으로 전국의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우리가 간절한 마음으로 붙잡지 않으면 자칫 스쳐 지나가버릴 모든 감정과 기억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문학과 여행과 심리학을 통해 내 아픔을 치유한 만큼, 타인의 아픔을 따스하게 어루만지는 글을 쓰고 싶다. 한때는 상처 입은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타인에게 용기를 주는 치유자가 되고 싶다. 인문학, 글쓰기, 심리학에 대해 강의하며 ‘읽기와 듣기, 말하기와 글쓰기’로 소통한다. 세상 속 지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글을, 한없이 넓고도 깊은 글을 쓰고자 한다.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정한 틀에 매이기보다 스스로가 주제가 되어 더욱 자유롭고 창조적인 글쓰기를 하고 싶은 목마름으로 네이버 오디오클립 [월간 정여울]을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독자와 소란하지 않게, 좀 더 천천히, 아날로그적으로 소통하기를 바란다. KBS 제1라디오 [백은하의 영화관, 정여울의 도서관]을 진행하고 있으며, [김성완의 시사夜]의 게스트로 출연하고 있다.




★ 내 안의 어린 왕자, 첫 만남


열네 살, 중학교 1학년 어느 겨울날. 나는 춥고 어두운 골방 안에 난로를 켜놓고 그 불빛에 의지해 《어린 왕자》를 읽다가 갑자기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열네 살 아이가 무에 그리 서러운 일이 많았는지, 거의 통곡에 가까운 울음을 오래오래 토해냈다. 내 안에 그토록 많은 눈물이 고여있는지, 그날 처음 알았다. 하지만 오랫동안 그 눈물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나의 사랑스러운 어린 왕자가 영원히 지구를 떠나는 장면이 너무 슬퍼서였을 거라고 짐작했지만, 그런 설명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느낌이었다.


성인이 되고 심리학을 공부하게 되면서 내면아이라는 개념을 알게 된 저자는 성인자아가 내면아이에게 말을 걸어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선 어른의 언어로 스스로에게 질문했다고 한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내면아이가 성인자아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넌 한 번도 나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았지? 넌 어른이 되어 바삐 살아갈느라 하루하루 힘들었겠지. 하지만 난 네가 쳐놓은 마음의 쇠창살 속에 갇혀서 항상 너에게 구조신호를 보내고 있었어. 오랫동안 누군가 자신을 구해주기를 간절히 기다려 온 램프의 요정 지니처럼. 마치 너무 오래 기다렸다는 듯이, 사막에 불시착한 조종사에게 대뜸 양을 그려달라는 어린 왕자처럼. 이제0야 너와 이야기할 수 있게 되어서 기뻐. 난 할 말이 너무 많은데,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거든."


그렇게 성인자아는 내면아이에게 조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고 내면아이 또한 성인자아를 루나로 부르기 시작했다.

기쁨 그리고 달밤의 사람, 달밤에 어울리는 사람.

내면아이는 단순히 덜 자라고 덜 교육받았고 모자라고 가르침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언젠가 되찾아야 할 내 안의 소중한 잠재력이며 어린 왕자처럼 해맑고 여리면서도 당차고 사랑스러운 내 안의 가장 환한 빛인 것이다.


어른이 되면 더 이상 내 안의 어린 왕자를 이해하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어른이 되면 내 안의 어린 왕자, 내 안의 그토록 아름다운 내면아이와 끝내 작별할까봐 미치도록 두려웠던 것이다.



★ 마지막으로, 행복했던 때


조이 어른인 네가 나보다 더 나약하고 불쌍하니까 그렇지. 넌 네가 원하는 것을 다 가졌는데도 항상 불행하잖아. 루나 넌 참 이상해. 멀쩡한 자신을 매일 할퀴고 있어.

루나 그런가? 내가 원하는 것을 다 가졌나? 난 결점투성이인데.

조이 넌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잖아. 그리고 네 곁에는 널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잖아. 그것 말고 뭘 더 바라는 거야?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 그런 걸로 널 만족시킬 수 있어?

루나 그렇게 많은 걸 바라진 않아. 물론 예전에는 나도 바랐어. 더 좋은 집, 더 많은 통장 잔고, 더 뛰어난 무언가를 항상 바랐어. 하지만 요즘은 좀 더 소박한 꿈을 꿔. 더 많은 걸 바랄수록 삶이 너무 피곤해진다는 것을 알았거든. 요즘 나의 소원은 이거야. 조이 너처럼 발강지고 싶어. 내 안에 너처럼 환하고 해맑은 존재가 있다는 게 아주 큰 힘이 돼. 너와 이야기를 하면 이상하게 힘이 나.


어린 왕자가 있었다는 증거는  그는 멋있었고, 잘 웃었고, 양을 원했었다. 그것이 어린 왕자가 있었다는 증거이다.

이렇게 말한다면 분명 어린애로 취급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살고 있던 별은 소행성 B621이라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순간, 어른들은 금세 인정할테니깐.

저자는 말한다. 성인자아가 내면아이를 껴안아 준다면 반드시 치유되고 성장할 것이라고.



★ 아픈 기억과의 대면


조이 열한 살 때. 네가 학교에서 왕따 당했을 때, 넌 그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다 털어놓지 않았어. 철저히 숨기던 옛날보다는 그래도 많이 털어놓았지만, 너는 완전히 너의 상처를 드러내지는 않았어.

루나 아, 역시 그거였구나. 네가 펑펑 운 걸 보고, 그날 때문이 아닐가, 역시 그날이구나, 조금은 짐작했어, 조이. 미안하구나. 네가 아직도 그 시절의 상처 때문에 울고 있는지는 몰랐어. 난 이제는 정말로 괜찮아졌다고 믿고 있었거든. 사실은 하루가 아니었잖아. 초등학교 4학년 거의 1년 동안, 너는 왕따를 당했지.

조이 그 하루에서 시작되었지. 그 하루를 꺼내면 너의 열한 살 전체가 먹구름으로 가득하게 되니까. 넌 그 하루를 꺼내보기가 그토록 두려웠던 거야.


새로운 사람과 연을 쌓아가다 보면 그런 말을 간혹 듣곤 한다.

참 밝고 따뜻한 가정에서 자란 것 같다고.

이에 대해 긍정적인 대답을 줄 순 없지만 크게 반문하지도 않았다.

그 순간에도 나는 '나'가 아닌 '남'에게 초점을 맞추었었으니깐.


어른이 되고나서 받은 상처도 물론 크지만 어린아이였을 때 받은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과거의 일은 과거일 뿐,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전혀 틀린 말이다.

결국 상흔이 남는다.

아무 일 없이 탄탄대로의 삶을 살았을 거라 여기지만, 어렸을 때부터 안 힘들었던 적을 꼽는 게 더 쉬울 것 같다.

집안 환경은 물론 학창시절도 마냥 꽃같은 생활이라 생각하겠지만, 위기는 매번 닥쳐왔다.

지금까지도 유지하고 있는 좋은 인연이 가득한 삶이었으면 참 좋았겠지만, 앞으로도 절대 생각하고 싶지 않은 복병의 인물들이 내 인생에 끊임없이 등장해 나를 괴롭혀왔다.

남에게 조그마한 피해 하나 준 것도 없이 살아왔어도, 나만 착해도 소용없는 것이 인생이다.

예쁨받는 것이 보기 싫어서, 잘 사는 게 보기 싫어서… 그런 이유로 괴롭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세상이 참 미웠다.


아직은 자세하게 말할 엄두도 나질 않고 용기도 없지만, 트라우마로 인해 오랜 기간 상담도 받아왔다.

몇 군데 다니는 병원 중 하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다니던 곳이라 의사선생님은 나의 성장과정을 지켜봐주신 분들 중 한 분이다.

속으로 삭히고 홀로 감내하면서 몸까지 병 들어가는 나를 보던 선생님이 한 분을 소개시켜주셨고 그렇게 나는 매번 외면해왔던 순간순간을 되뇌어 볼 수 있었다.

모두가 지켜보는 것도 아니고, 한정된 사람들만 들려 보는 이 블로그라는 공간에 언젠가 아픔을 몽땅 털어내는 글을 쓰는 순간이 곧 나의 내면아이를 치유하는 그 순간이지 않을까 싶다.


당신의 삶에서 가장 아팠던 기억들, 그중에서도 유독 더 아픈 기억이 있다면, 그것이 당신의 핵심 트라우마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핵심 트라우마와 대면하고, 조금씩 친밀해지고, 그리하여 마침내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로도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나 자신과 만날 수 있습니다.



★ 사랑받지 못한 우리 모두의 내면아이에게


조이 루나, 나는 선명하게 기억하지만 너는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이 아직도 많아. 어른이 되면 많은 것들을 잊어버리게 되잖아, 특히 너무 괴로운 상처일수록 어른들은 그저 묻어두려고만 하더라. 거꾸로 너는 잘 알고 있지만 나는 모르는 세상의 진실도 너무 많아. 그러니 우리 더 자주, 더 오래 만나서 이야기하자.

루나 그래, 조이. 네가 항상 나를 반가워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어. 우리는 함께할 때 더 강해지는 느낌이야. 어떤 어른들은 내면 아이와 몇 번 이야기를 나눠보고, 아, 이제야 내 상처를 깨달았다, 이렇게 느낀 다음에는 다시 내면아이와 작별하기도 해. 그러면 그토록 어렵게 이루어진 내면아이와의 만남이 일시적인 것으로 끝나버려. 내면아이는 평생 우리가 데리고 다녀야 할 아주 소중한 친구인데 말이야.

……

조이 루나 너는 이 세상에 하나뿐인 달빛이야. 70억이 넘는 인구가 느끼는 달빛이 모두 저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게서 태어나서 그 모든 세상 여행을 다 마치고 돌아와 마침내 나를 마지막 안식처로 삼을, 슬프지만 아름다운 운명의 조종사는 이 세상에 너 하나뿐이야. 네가 뭔가 원대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나를 다시 떠난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끝까지 기다릴 거야. 조이라는 아이는 루나의 달빛을 받아야만 비로소 완전히 환하게 빛나는 별이니까. 너의 품에 안겨야만 나는 이 슬픔의 사막에서 비로소 찬란한 오아시스를 찾을 수 있으니까.


웃을 줄 아는 별을 갖게 되는 그날을 위해...★





"아이들만이 자기들이 무얼 찾고 있는지 알고 있어." 어린 왕자가 말했다.

"아이들은 누더기 인형을 위해 기꺼이 시간을 쏟아붓잖아. 그래서 그 인형이 아주 중요하게 되어버리는거야. 누가 빼앗아 가기라도 하면 엉엉 울잖아."

"아이들은 참 운이 좋아." 철도 관리인이 말했다.


끊임없이 목적지를 향해 떠나지만 찾고 있는 무언가에 대한 확신은 없다는 것이 어른들의 현실이다.

그래서 대부분 자신의 현 상황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아이들은 멀리 있는 것에서 행복과 만족을 찾기보다는 아주 가까이 있는 곳에서 충분히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그렇다면 저자의 말처럼 아이들이야말로 길들인다는것의 의미를 어른들보다 더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린 왕자는 수천 송이 장미꽃을 보고나니 정성껏 돌본 장미가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여우를 통해 길들인다는 것의 의미를 알게 된다.

길들이다의 의미를 알았기에 과거의 상처로부터 벗어나 그 장미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게 된 것이다.


J내과는 열 살 즈음부터 다녔으니 선생님은 나의 성장과정을 지켜봐 주신 분 중 한 분이다.

인사 혹은 어디가 아파서 왔는지 묻는 여느 환자들에게 하는 말과는 달리 선생님이 내게 하시는 말은 따로 있다.

"괜찮니?" ……

오늘은 어디가 아파서 왔냐는 물음으로 시작하지 않고 항상 마음부터 확인해주신다.

여느 때처럼 내색하지 않으려 했었는데 어느 날은 조심스레 얘기를 꺼내며 친한 분을 소개해주셨고 그렇게 내 마음을 살펴볼 수 있게 되었었다.

스스로 버티기에는 매우 힘들어보였다고 나중에 말씀해주셨었는데, 그것이 나를 진정으로 돌보게 된 시작이었으니 아직 나는 멀었다.

생각해보면 사람들에게 상처받았어도 결국 내 마음의 상처를 확인해주는 것 또한 사람들이다.

부정해도, 모른 척 해도 내면아이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을 알기에 특히나 공감하며 읽었던 것 같다.


「어린왕자」 한국판은 물론 영문과 불어로 된 원서도 읽었었고 「어린왕자」로 나온 에디션이란 에디션은 몽땅 하나의 책장에 꽂혀져 있다.

또한, 매년 YES24나 알라딘에서 한 해의 기록을 키워드로 보여주곤 하는데 그 때마다 꼭 보이는 키워드가 있으니 바로 【정여울】이다. 작가님의 책 중 두어권 빼고는 전부 읽었을 정도이니깐.

이렇게나 사랑하는 「어린왕자」와 정여울 작가님의 조합이라니!

안 읽어볼 수가 없다.

매년 크리스마스와 연말에 좋은 책들을 발견할 때면 한 책당 서너 권씩 사다가 두고선 선물하곤 하는데 『나의 어린 왕자』도 낙점이다.


내면아이에게 말을 거는 것은 잃어버린 어린 시절 속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것입니다. 희미해진 부분을 선명하게 만들어서 ‘내가 되찾아야 할 나’를 보다 명확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됩니다. 내면아이의 상처가 선명하게 깨어나는 순간, 그때 돌보지 못했던 나의 소중한 부분도 함께 깨어나는 것입니다. 그림자와 만나는 것을 너무 두려워하지는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림자의 층을 뚫고 들어가면 반드시 내 안의 가장 환한 빛과도 만날 수 있습니다. 상처 때문에 나의 잠재력을 발전시키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너는 이것밖에 못 하니’, ‘저 아이는 저렇게 잘하는데’라는 어른들의 비난을 들으면서 급격하게 소심한 성격으로 바뀌었던 순간들이 기억났습니다. 저도 표현하고 싶은 마음, 재능, 꿈이 많았는데, 그것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어른이 되어버렸어요. 다행히도 글쓰기라는 탈출구가 있었기에, 제 안의 잠재력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누구에게나 표현의 탈출구가 필요합니다. 그 표현의 탈출구를 열어주기 위해, 내면아이와의 대화가 필요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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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9-21 21: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하나님 서재 테이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쒼!ㅎㅎ 산꼭대기 서리가 내릴 정도로 새벽온도가 급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건강 잘 챙기세요 ^^

하나의책장 2022-10-07 23:27   좋아요 1 | URL
제가 한 일주일을 밖에 나가질 않다가 저녁산책을 오랜만에 나갔었는데 급! 추워졌더라고요😶‍🌫
추워진 건 둘째치고 크리스마스가 성큼 다가온 느낌이었어요^^
아직 10월인데 크리스마스 트리를 꺼낼까 말까 생각중이에요ㅎㅎ

mini74 2022-09-22 11: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내면의 아이 ㅠㅠ 저는 라임오렌지나무에서 뽀르뚜카 아저씨는 상상의 인물이란 해석 읽으며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ㅠㅠ

하나의책장 2022-10-07 23:36   좋아요 1 | URL
오오 미니님! 저도요😭
제제가 뽀르뚜까를 잃었을 때 슬펐던 것처럼 저도 많이 울었어요ㅠㅠ
그 책을 처음 읽고나서 느꼈던 것이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이었거든요.
어렸을 때 읽었었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 중 하나예요!

scott 2022-10-07 14: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나님 이달상 추카!

하나님의 10월의 책탑 ! 궁금 합니다 ^^

하나의책장 2022-10-07 23:39   좋아요 0 | URL
감사해요, scott님❤
사실, 매달 책탑은 빠지지 않고 찍고 있는데 정작 업로드를 못 하고 있어요ㅠ
매번 올리려고 해도 시기를 놓쳐서… 너무 느지막히 올리는 것 같아 쓰다가 지운 적도 몇 번인지 모르겠어요ㅎㅎ

이하라 2022-10-07 14: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나님 이달의 당선 축하합니다.^^

하나의책장 2022-10-07 23:39   좋아요 2 | URL
하라님! 감사합니다❣

thkang1001 2022-10-07 15: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나의책장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2022-12-16 2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2-10-07 16: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나님 당선 축하합니다~! 10월에는 안아프시고 즐겁게 독서하시길 바라겠습니다~!!

2022-12-16 2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ni74 2022-10-07 21: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진도 잘 찍고 글도 잘쓰시는 하나님 축하드립니다 *^^*

2022-12-16 2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22-10-07 22: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2022-12-16 2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