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 번역가 권남희 에세이집
권남희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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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유명한 일본 작가의 책을 좀 읽어봤다면 권남희 작가를 모를 리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 마스다 미리, 오가와 이토의 책 대부분이 권남희 작가의 번역을 거쳤으니깐.
내가 즐겨읽는 일본 소설의 대부분도 권남희 작가의 손이 거쳐진 번역서였다.
그런 그녀의 첫 에세이집이 나왔다고 하니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는 총 6장으로, 1장 하루키의 고민상담소, 2장 잡담입니다, 3장 남희 씨는 행복해요?, 4장 자식의 마음은 번역이 안 돼요, 5장 신문에 내가 나왔어, 6장 가끔은 세상을 즐깁니다로 이루어져 있으며 번역가로서의 일상 이야기와 권 남희로서의 일상 이야기가 묻어나 있다.

권남희 작가는 오롯이 번역일에만 몰두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하면서 늘 마감에 쫓기며 일했다고 한다.
어느 날은 '쓰는 공간'이라는 주제로 인터뷰가 들어왔다고 한다.
집 외에 어느 장소에서 주로 작업을 하는지에 대한 인터뷰인데 자신을 은둔형 외톨이라 생각할 정도로 집에만 있는 저자는 기자에게 딱히 대답해줄 말이 없었다고 한다.
집 앞 카페에서 작업한다고 둘러댈까도 했지만 양심상 거절했다고 한다.
저자는 순수하게 일을 하기 위해서 나간 적은 없다고 한다. 즉, 집 밖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집 안에 서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거실에 있는 책상이 전부라고 한다. (그 책상에서 모든 번역서가 나온 거구나!)
가끔씩 저자에게 이러한 인터뷰가 종종 들어오는데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고 덧붙인다.
믿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 참고로 내 작업 공간은 이렇다. 책상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주방, 오른쪽에는 거실, 앞에는 텔레비전, 옆에는 소파, 발밑에는 멍멍이, 주부미(主婦美)가 철철 넘쳐 난다. 이러니 따뜻한 번역이 절로 나오는 게 아닐까?(웃음)
그래서 나는 번역가라는 수식어보다 '번역하는 아줌마'라는 말이 더 좋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이목을 사로잡았던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고 와 자랑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 봉준호 감독의 옆에서 통역하던 통역가 샤론 최에게도 이목이 집중되었는데, 봉준호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말을 잘 전달했을 뿐더러 농담까지도 완벽하게 통역하여 극찬을 받았었다. 봉준호 감독도 그녀에게 언어의 아바타라고 칭할 만큼.
이렇듯 번역가나 통역가는 누군가의 말을 '잘', '제대로' 전달해야 하는데 단순하게 말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서 통역을 맡았던 샤론 최에게 모두가 집중했던 것이다.
국내에서 유명한 일본 소설의 대부분은 권남희 작가의 손을 거쳤다고 앞서 말했는데 그녀 또한 같은 이유로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말이 아닌 책이기에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고 혹여나 단어 선택을 잘못하게 되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바가 달라지기에 이런 부분 또한 주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였는지 갑자기 기억이 안 나는데) 아무튼 외국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오역이 발생해 논란이 있었었다.
이렇듯 단어 하나로 의미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기에 번역이든, 통역이든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때 처음 영어를 배우던 때가 생각난다.
그 때, '영어'라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게 너무 기대되고 가슴 벅차 가장 좋아하는 과목을 물으면 '영어'라고 먼저 대답할 정도로 영어를 너무 좋아했다.
얼마나 좋아했냐면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로는 충족되지도 않고 부족하다 느껴 엄마에게 부탁하여 영어학원이나 학습지를 배우면 안 되냐고 할 정도였다.
당시에는 집안 사정 때문에 길게 배우진 못했지만 1-2년 정도 영어 학습지를 배웠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내 생애 최고로 공부가 너무 재미있다고 느꼈을 정도였다.
중학교 때부터 미드나 영화를 보기 시작했고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가장 좋아하는 채널이었었다.
그 때, 품었던 꿈이 통역가, 번역가, 외교관이었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내신 위주의, 수능 위주의 공부만 하다보니 흥미도가 뚝 떨어지면서 그 꿈 또한 자연스레 사라졌던 것 같다.
권남희 작가의 에세이를 읽고나니, 나도 예전에는 권남희 작가와 같은 훌륭한 번역가가 되는 꿈을 품었는데 흐지부지 사라진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권남희 작가의 에세이를 읽고나니, 그녀가 낸 번역서는 왜 따뜻함이 묻어나는지 충분히 알 것 같았다.
권남희 작가의 에세이를 읽고나니, 내가 앉아있는 내 공간_한 벽면이 책으로 덮혀 있고 한 벽면에는 새하얀 피아노가 있고 한 벽면에는 책상이 있고, 피아노와 책상 위에는 꽃들이 있고_을 한 번 쭉 훑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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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Before You (Mass Market Paperback)
조조 모예스 / Penguin Group USA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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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u are pretty much the only thing that makes me want to get up in the morning."

🎬
"Will you stay?"
"For as long as you want me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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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boldly, Clark. Push yourself. Don't set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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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겨울
아들린 디외도네 지음, 박경리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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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와 부모님 그리고 동생이 사는 집에는 방이 하나 더 있다. 그러니깐 소녀 방, 동생 질의 방, 부모님 방 그리고 시체들의 방이 있다.
그 방에는 크고 작은 짐승들의 몸 여기저기를 볼 수 있다. 액자들이 걸려있는 벽에는 사냥총을 든 아버지가 자신감 넘치는 포즈를 취하며 죽은 동물들을 밝은 채 찍은 기념사진들이 쪼르륵 걸려있었다.
짐승들을 사냥하는 것을 삶의 전부라 생각한 소녀의 아버지는 TV와 위스키만이 사냥 외에 즐기는 삶의 열정이었고 그 외에는 없다.
이런 남자였기에, 소녀의 어머니는 항상 남편을 무서워했다. 이런 부모님을 보면 소녀는 커갈수록 자신과 동생을 어떻게 나을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까지 생길 정도였다.
소녀와 동생은 친구같은 존재였다. 네 살 터울인 남매는 보통 남매와는 달랐다. 보통 남매들이면 소리지르고 싸우기도 한다지만 소녀는 어머니의 너그러움을 본받아 동생 질을 무척이나 사랑했다.
젖니를 드러내고 웃는 질이 소녀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만들어 항상 인형을 만들어 주거나 우스운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질의 웃음이야말로 모든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사건이 터지게 된다.
아이들 모두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고 자리에서 떠났고 질과 소녀만이 남게 되었다. 아이스크림 할아버지는 질에게 바닐라 딸기 아이스크림을 건네주었다.
이제 소녀가 아이스크림을 받을 차례였다.

노인은 내 아이스크림 위에 예쁜 회오리 크림을 얹어주려고 몸을 숙였다. …… 손은 얼굴에 바짝 붙였고, 사이펀은 그의 뺨에 맞닿아 있었다. 크림 산이 정상에 다다른 바로 그 순간, 손가락이 막 힘을 빼려고 한 바로 그 순간, 노인이 몸을 일으키려고 한 바로 그 순간, 사이펀이 폭발했다. 펑. 나는 그 소리를 기억한다.
그렇다. 노인의 얼굴이 사이펀 속으로 들어가면서 반쪽이 사라지고 없어진 것이었다.
소녀는 비명을 질렀고 그 비명에 몰려온 사람들도 비명을 질렀다. 그렇게 아이스크림 할아버지는 죽게 되었다.
그 날 이후로, 질은 점점 달라졌다. 점점 아버지의 잔혹성을 닮아가게 되었고 순수했던, 친구같았던 예전의 질로 돌려놓고 싶었다.
또한, 오랫동안 사냥을 하지 못한 소녀의 아버지는 예민함이 극에 달했고 온갖 물건을 집어던지며 화를 쏟아낼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질은 낯선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어딘가에, 그 아이의 내면에, 내 동생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확신했다. 가끔은 그 애의 얼굴에서 희미한 빛과 어렴풋한 미소가, 눈에서 반짝이는 빛이 덧없이 떠올랐다 사라지곤 했다. 그러면 나는 그 애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과거로 돌아가서 우리 삶의 흐름을 바꾸는 일에 매달렸다. 학교로 돌아가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것이 행복했다.
소녀는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했다. 아이스크림 할아버지 사고 이전으로 시간을 돌려 모든 것을 돌려놓고 싶어했다.
소녀는 읊조린다. '얼굴이 날아가 버린 사람의 모습이 뇌리에 박히기 전의 삶은 훨씬 아름다웠다.'라고.

 

소녀의 소원은 동생인 질의 미소를 되찾는 것이었다.
솔직히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편치않았다. 뭐랄까,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까지도 마음 한 켠이 쓰리고 씁쓸했다고나 할까.

소설 속 소녀는 열다섯 살에 아이스크림 할아버지가 눈앞에서 사고를 당한 것을 목격했다.

어른들도 감당하지 못할 사건을 어린 아이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힘들고 끔찍한 상황에 부딪히면 아무리 성숙한 어른이어도 감당하지 못하는 일도 허다한데 어린 아이들은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정신적으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던 그 사고는 물론이고 평소 소녀의 아버지는 굉장히 난폭하였다.

대개 가정폭력이 난무하는 집안에서 자란 아이는 이를 보고 그대로 따라하며 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제로 대부분의 범죄자들이 유년 시절 같은 경험을 한 경우가 많다고 책에서 본 적이 있다.
부모에게 자식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지만 일부 부모는 그렇지 않는다. 종종 우리는 어린 자녀를 죽인 부모의 기사를 볼 수 있는데 인간으로서 그런 짓을 할 수 있나싶다. 그런 기사를 볼 때면 절로 깊은 한숨이 내쉬어진다.
아이에게 있어서 부모는 전부이다. 그 전부인 부모가 아무렇지 않게 상처주는 말을 내뱉거나 행동을 하게 되면 이는 결국 잊지 못하는, 평생의 상처이자 고통이 된다.

나쁜 의도가 아니어도 어린 시절에 내게 상처주었던 어른들의 말은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말 한 마디, 한 마디 내뱉을 때마다 신중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미성숙한 아이들에게는 더 조심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아이에게 있어서 부모는 전부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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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 여전히 널 사랑해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2
제니 한 지음, 이성옥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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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좋아하는 남자들에게 써내려간 연애편지.
그저 간직하며 품고만 있었는데 그들에게 편지가 발송된다, 하나도 빠짐없이.

한국계 미국인인 라라 진에게는 특별한 점이 있었다.
바로 그간 좋아했던 네 명의 남자들에게 연애편지를 썼다는 것이다.
주소까지 완벽하게 써놓은 편지지만 단순히 '간직하기용'으로 가지고 있었기에, 상대방에 대한 감정을 솔직하게 적어넣은 편지는 보내지지 않은 채 상자 속에 담아진다.
그런데 간직하기로만 한 편지가 편지봉투에 써져있는 주소로 몽땅 보내진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네 명의 남자 중 조시는 언니의 전 남친이었는데 언니를 너무 사랑하는 라라 진은 어떻게든 이 상황을 무마시키기 위해 네 명의 남자 중 피터와 손을 잡게 된다.
피터는 라라 진의 편지들이 과거에 쓴 편지라 그 때의 감정과 지금의 감정이 다르다는 사실과 이 편지 모두가 어처구니없이 모두 발송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마침 여자친구와 헤어진 피터는 전 여친의 질투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라라 진과 함께 계약연애를 하게 된다.
시작은 계약연애였지만 이후 서로에 대한 마음을 알게 된 피터와 라라 진은 앞글자가 빠진 진짜 '연애'를 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전권이었던 『내가 사랑했던 모 든남자들에게』의 줄거리이다.
이어진 2권인 『P. S. 여전히 널 사랑해』는 편지를 보냈던 네 명의 남자 중 한 남자의 등장으로 인해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 피터와도 단짝이었던 존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며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는데 라라 진이 편지를 보낸 남자 중 하나이기도 하다.
편지를 받았던 존이 라라 진에게 답장을 보내게 되고 그렇게 그들은 편지를 통해 자연스레 연락을 하게 된다.
그렇게 타임캡슐 개봉식을 하던 날, 그 둘은 재회하게 된다.
허나, 라라 진의 현 남자친구는 피터이다.
그 소식을 들은 존은 복잡한 감정을 내비추고 피터 또한 존을 탐탁치않아 한다.
한편, 피터의 전 여친이었던 제너비브는 이런 저런 이유를 핑계로 피터와의 만남을 가지고 라라 진은 그 둘의 만남이 그저 싫기만 했다.
라라 진은 피터에게 솔직한 제 심경을 밝혔지만 피터는 제너비브의 가정사를 이유로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한다.
그러던 어느 날, 라라 진은 피터와 제너비브가 안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고 결국 라라 진은 피터와 헤어지게 된다.
시작은 계약연애였고 우여곡절끝에 서로의 마음을 알고 진짜 연애를 시작하며 피터를 사랑했던 라라 진은 그와의 이별에 가슴아파한다.
라라 진과 피터의 이별 그리고 실연에 아파하는 라라 진에게 존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녀에게 제 마음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과연 피터는 라라 진에게 제너비브의 오해도 풀고 라라 진에게 성큼 다가오려는 존을 비켜 세울 수 있을까?
과연 라라 진은 다가오는 존의 손을 뿌리치고 다시 피터의 손을 잡을 수 있을까?

꽤 오랜 시간동안 자신에게 정신적으로도 의지해왔던 제너비브의 고민을 단숨에 거절할 순 없었을 것이다.
그 때, 피터가 라라 진에게 얼버무리지 않고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면 그들의 관계에 금이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어떤 관계에서도 신뢰가 가장 중요한 법인데 특히 사랑에서 신뢰감에 금이 간다면 이전처럼 돌아가기란 쉽지 않다.
진심 어린 사랑이라면, 진심 어린 관계라면 숨기려고만 하지 말고 드러내는 것도 '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것 같다.
사랑을 할 때, 우리는 마냥 행복할 수만은 없다.
서로 다른 남녀가 각기 자라온 환경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표현하는 것도 다르니 의도치 않게 서로에게 상처주는 일들도 종종 발생할 것이다.
이 때, 그 이후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상처받고, 상처주는 또한 삶의 일부라 할 수 있으니 상처를 주었을 때는 상처받은 이에게 용서를 구하고 상처를 받았을 때는 (상처준 이에게 용서를 받았다면) 상처준 이에게 용서를 받을 줄도 알아야 한다.
사랑을 넘어 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태도라 할 수 있으니깐.
또한, 이 책에 또다른 재미는 '아빠의 사랑 찾아주기 프로젝트'이다.
이혼한 옆집 아줌마와 아빠를 이어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커비(라라 진의 동생)의 모습을 보면 절로 웃음이 지어진다.
단순히 라라와 피터의 사랑 이야기로만 둘러싸이지 않고 가족애(愛) 또한 엿볼 수 있어서 지루할 틈이 없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문득 드는 생각은 이랬다.
이렇게 사랑스럽고 쫄깃쫄깃해지는 연애소설이 있다니! 읽는 내내, 주인공의 감정선에 따라 두근두근거리고 조마조마할 수밖에 없다.
1권은 넷플릭스를 먼저 보고 책을 먼저 봤지만, 2권은 넷플릭스로 영화를 먼저 보지 않고 책으로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넷플릭스에 나온 두번째 이야기의 후기에 따르면 아쉬운 장면들이 많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책으로 먼저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라라 진의 자신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 편지가 발송되지 않았더라면 피터와의 관계가 이렇게까지 발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처음 넷플릭스에서 이 영화를 접했을 때 다소 흠칫 놀랐었다.
어떤 사람은 내가 감정표현을 잘한다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내가 감정표현을 잘 못한다고 생각하는데, 내 생각은 딱 후자이다.
감정표현에 서투른 나는 매일 쓰는 일기에 드러내기도 하고 종종 편지를 쓰기도 한다.
내게는 큰 상자 하나가 있는데 그 상자에는 수십개의 편지지와 편지봉투, 엽서가 가득하게 들어있다.
소장용이 아닌 내가 쓰기 때문에 사다놓은 것인데 평소 친구들이나 지인들에게 편지를 자주 쓰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내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은데 그럴 용기가 없다면 편지지를 집어든다.
앞서 다소 흠칫 놀랐다는 이유는 나 또한 좋아하는 남자들에게 편지를 써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주소는 몰라 편지봉투에 주소는 쓰지 않았지만 문득 영화를 보고선 편지만 가득 들어있는 상자를 열어 확인해보았는데 내가 그 때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손발이 오그라들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거쳐간 지난 남자친구들에게도 사랑이 가득 담긴 연애편지를 자주 쓰곤 했었는데 앞으로 나타날 미래의 남자친구에게도 편지 한 통을 써봐야겠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써본 적이 없다면 지금 예쁜 편지지에 사랑 가득한 말을 담아 쓴 편지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해보는 건 어떨까?
말할 것도 없이, 분명 좋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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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 - 삶이 흔들릴 때마다 꼭 한 번 듣고 싶었던 말
박애희 지음 / 수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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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꼭 듣고 싶었던 말이 있나요, 『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 ♡



 


『하나, 책과 마주하다』

일명 벽돌책과 같은 묵직묵직한 책들도 재독하고 있는 반면에 조금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나 단편 소설들도 많이 읽고 있다.
자정에 다다른 깊은 밤이 되는 그 순간부터 한두 시간은 나의 야간독서가 시작된다.
며칠 전,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재독하고선 유튜브에서 TED 영상을 보았는데 피아노 위에 올려놓은 꽃을 한참 바라보며 문득 '삶'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인생을 드라마로 일컫는다면, 그 드라마의 주연은 당연히 나 자신인데 더 넓어진 영역에서 바라본다면 대부분 우리는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밀려나게 된다.
대개 드라마에서도 남녀 연기자가 주연을 맡고 나머지 수십 명의 연기자들은 조연에 맡는다.
그러기에 시청자들이 주목하고 빛나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 또한 주연의 몫이다.
그렇다면 나 자신을 알리기 위해서는 꼭 주연만을 고집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주연만큼, 아니, 주연보다 중요한 것이 조연이다.
조연이 있기에, 주연인 남녀 주인공을 더 빛나보이는 것이고 조연이 있기에,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러워지는 등 주연보다 더 많은 역할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원하는대로, 마음대로 잘 흘러갔으면 하고 항상 '주연'이고 싶은 마음을 품고 있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세상은 갈수록 호락호락하지 않아 어쩌면 우리를 더 힘들고 불안한 환경, 말그대로 구렁텅이 속에 떠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떠밀리고 떠밀려 밑바닥까지 갔어도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을만큼 스스로 강하고 굳건한 마음을 품고선 삶을 살아야 한다.

닿을 듯 하다 닿지 않고 피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피할 수 없고, 이러한 과정의 반복이 '삶'이다.
신이 아닌 인간이기에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즉, 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날 수밖에 없다.
오밤중에 읽어서 그런지 괜스레 마음이 몰캉몰캉해져 책을 읽다가 눈물이 났다.
누군가와 대면한 상태에서 위로받은 게 아니지만 책이라는 존재물이 마음을 알아줘서, 이해해줘서 그랬던 게 아닌가 싶다.

어느 날 찾아올 인생무상에 휩쓸려가지 않기 위해, 어른에겐 오롯이 나 자신만을 위한 하루가 필요하다. 새털구름 떠다니는 하늘을 가만히 누워서 바라볼 하루가, 어느새 져버린 낙엽 쌓인 길을 혼자 걷는 시간이, 가슴에 책을 올려놓고 한참을 빠져들다 까무룩 잠드는 시간이, 낯선 카페에 앉아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켜놓고 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남몰래 듣는 날이 필요하다. 마치 내가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잘 살려면 믿어야 한다.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이들한테 씩씩대는 대신, 타고난 것들이 없다며 신세 한탄을 하는 대신, 지금 바로 이 자리, 이 시간, 이 모든 것이 결국 ‘나’라는 사람을 만드는 토양이 되리라는 것을. 귀하지 않은 시간은 없고, 계속 가다 보면 언젠가 길이 보인다는 것을. 그걸 믿어야 우리는 다시 걸을 수 있다.
인생이 아무리 태클을 걸어도, 자꾸 구석 자리로 밀어내도, 자리에 드러눕는 대신 “나 살아 있다”고 한 번 더 고개를 들어야 한다. 저기 “나도 살아 있다”고 손 흔드는 동지를 보기 위해서. 우리의 손을 번쩍 잡아 “아니, 왜 아직 여기 있었느냐”며 이끌어줄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

몸이 힘들다고 짜증이 화로 변하는 순간, 내 맘 같지 않은 상황에 욱 하고 싶은 충동이 드는 순간,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순간에, 당신과 나는 언젠가 헤어진다는 것을, 누구에게나 마지막이 찾아온다는 것을, 그렇게 우리는 매일 어제의 우리와 이별하며 살다 결국 모두와 이별하게 될 존재라는 걸 떠올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더 넓은 마음으로, 더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를 마음껏 사랑하며 살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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