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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평점 :

■ 책 정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 룰루 밀러
곰출판
2021-12-17
원제 : Why Fish Don't Exist
에세이 > 자연에세이
과학 > 기초과학
과학 > 생명과학 > 생물학

■ 책 소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학 다큐멘터리 같은 제목 속에 깊은 자기 탐색의 서사를 품고 있는 비범한 에세이입니다.
저널리스트인 룰루 밀러는 어린 시절부터 느껴온 무력감, 상실, 존재에 대한 혼란을 19세기 생물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따라가며 풀어냅니다.
표면적으로는 분류학과 과학사의 이야기이지만, 그 속에는 혼돈을 분류하려는 인간의 욕망 그리고 그 욕망의 균열을 받아들이는 한 여성의 치열한 사유가 담겨 있습니다.
물고기라는 분류가 해체될 때,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한 가지를 더 깨닫습니다.
이름 붙이는 것이 늘 진실을 말해주는 건 아니라는 것!
오히려 이름 바깥에서 우리는 더 넓은 삶을 발견하게 됩니다.
■ 문장으로 건네는 사유
'혼돈'만이 우리의 유일한 지배자라고 아버지는 내게 알려주었다. 혼돈이라는 막무가내인 힘의 거대한 소용돌이, 그것이야말로 우연히 우리를 만든 것이자 언제라도 우리를 파괴할 힘이라고 말이다.
이 세계에는 실재인 것들이 존재한다. 우리가 이름을 붙여주지 않아도 실재인 것들이. 어떤 분류학자가 어떤 물고기 위로 걸어가다가 그 물고기를 집어 들고 "물고기"라고 부른다고 해서 그 물고기가 신경이나 쓰겠는가. 이름이 있든 없든 물고기는 여전히 물고기인데….
그는 물고기의 뼈와 내부기관에서 실마리를 찾고 있었다. 어느 생물이 어느 생물을 낳았는지에 관한 실마리, 생명이 흘러가는 방향에 관한 실마리, 인간을 만드는 데 필요한 실험에 관한 실마리, 그리고 어쩌면 사람들을 개선하기 위한 비결에 관한 실마리를.
우리는 세상이 기본적으로 냉담한 곳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성공은 보장되지 않고, 수십만 명을 상대로 경쟁해야 하며, 자연 앞에서 무방비 상태이고, 우리가 사랑한 모든 것이 결국에는 파괴될 것임을 알면서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작은 거짓말 하나가 그 날카로운 모서리를 둥글게 깎아낼 수도 있고, 인생의 시련 속에서 계속 밀고 나아가도록 도와줄 수도 있으며, 그 시련 속에서 가끔 우리는 우연한 승리를 거두기도 한다.
인간의 지력으로 도저히 다 이해할 수 없는 생태의 복잡성에 대한 이러한 조심스러움과 겸손함, 공경하는 마음은 사실 대단히 오래된 것이다. 이는 때로 "민들레 원칙"이라고도 불리는 철학적 개념이다. 민들레는 어떤 상황에서는 추려내야 할 잡초로 여겨지지만, 다른 상황에서는 경작해야 하는 가치 있는 약초로 여겨지기도 한다.
내가 물고기를 포기했을 때 나는, 마침내, 내가 줄곧 찾고 있었던 것을 얻었다. 나는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약속을 얻었다. 내가 그 좋은 것들을 누릴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다. 내가 얻으려 노력했기 때문이 아니다. 파괴와 상실과 마찬가지로 좋은 것들 역시 혼돈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이면인 삶. 부패의 이면인 성장. 그 좋은 것들, 그 선물들,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황량함을 노려보게 해주고, 그것을 더 명료히 보게 해준 요령을 절대 놓치지 않을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매 순간, 인정하는 것이다.
■ 책 속 메시지
저자는 혼란스러운 세계를 견디는 방식으 과학과 이해를 선택했던 조던을 따라가지만 그 끝에서 마주한 것은 진실이 아니라 신념의 위험이었습니다.
정리되고 명명되는 세계는 편안하지만 그 안에서 놓쳐버리는 다양성과 경계 너머의 존재들이 있었죠.
그것이 결국 삶을 얼마나 협소하게 만들었는가를 이 책은 조용히 드러냅니다.
저자는 그 깨달음을 통해 자신 역시 더는 정리된 삶을 욕망하지 않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새로운 방식이라고 얘기합니다.
■ 하나의 감상
읽는 내내 무언가가 허물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분류하고 정의하는 일이 때로는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를 처음으로 정면에서 마주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과학의 이름으로 감정과 세계를 정리하려던 자신의 오랜 습관을 멈추고 혼돈을 있는 그대로 살아내는 연습으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그 과정이야말로 진짜 성장의 기록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책에서는 자기 확신에 사로잡힌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모름의 용기를 이야기합니다.
정의할 수 없는 존재로서의 나 그리고 그 안에서 조금씩 회복되는 관계와 믿음.
책장을 덮으며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졌습니다.
"나는 아직 분류되지 않은 채로 괜찮습니다."
■ 건넴의 대상
정답보다 질문이 필요한 분
혼돈과 회복의 사이에 서 있는 분
과학과 인문을 넘나드는 깊이 있는 서사를 찾는 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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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감상이 더해지면, 이 공간은 조금 더 깊고 따뜻해질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