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의 눈으로 보면 녹색지구가 펼쳐진다 - 지구환경의 미래를 묻는 우리를 위한 화학 수업 내 멋대로 읽고 십대 7
원정현 지음 / 지상의책(갈매나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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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정보


화학의 눈으로 보면 녹색지구가 펼쳐진다

저자 원정현

지상의책(갈매나무)

2023-01-13

과학 > 화학 > 일반화학

사회과학 > 생태문제 > 환경문제






■ 책 소개


이 책은 화학이라는 렌즈로 지구를 바라보는 이야기입니다.

일회용품, 미세먼지, 기후변화, 플라스틱 쓰레기, 바이오 연료까지, 익숙하지만 때로는 모호하게 여겨졌던 환경 이슈들의 본질을 화학의 언어로 정확하고 쉽게 풀어낸 책입니다.

화학은 무언가를 만드는 기술이자 동시에 세상의 문제를 바꾸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복잡한 공식이나 실험실 이야기 대신, 일상 속 사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과학이 어떻게 지구와 연결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렇기에 이 책은 화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도 지구의 미래에 관심이 있는 누구라도 충분히 곁에 둘 수 있는 과학 에세이입니다.



■ 문장으로 건네는 사유


우리는 문제를 만들었고 이제 그 해결에도 참여해야 합니다.



단위체 또는 모노머는 중합반응이 일어나면 폴리머(polymer)로 바뀌게 됩니다. ‘모노’는 하나라는 뜻이고 ‘폴리’는 많다는 뜻이죠? 그러니 중합반응을 통해 에틸렌은 폴리에틸렌이라는 폴리머가 되고, 프로필렌은 폴리프로필렌이라는 폴리머가 되는 거죠. 단위체들을 많이 이어 붙였으니까 중합반응으로 얻은 물질은 분자량도 엄청나게 커질 거에요. 한마디로 플라스틱은 단위체가 수천, 수만 개 반복되어 만들어진 고분자 화합물이라고 할 수 있어요. 플라스틱이 잘 분해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분자량이 매우 큰 고분자 화합물이기 때문입니다.



이산화탄소 증가량의 나머지 3분의 1은 토양 속에 저장되었던 토양유기탄소가 빠져나가면서 발생한 것입니다. 토양유기탄소의 감소는 토양 속에 머물던 토양유기탄소가 이산화탄소로 전환된 후 대기 중으로 방출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 원인은 삼림 벌채나 농경지 확대 등에서 찾을 수 있어요.



생태계의 순환고리, 즉 원을 닫아서 지구 시스템을 평셩 상태로 유지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물론 우리가 매일 하는 플라스틱 수거와 재활용도 순환고리를 회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플라스틱을 합성하는 속도가 플라스틱이 분해되는 속도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므로, 재활용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 어려워요. 이산화탄소가 고정되는 속도보다 배출되는 속도가 더 빠르면 탄소는 순환하기 어렵습니다.


목표를 지구 시스템의 물질 순환 회복으로 설정하면, 그 다음 단계로 해야 할 일은 쉽게 찾을 수 있어요. ‘어떻게 하면 효율적인 화학물질을 만들 수 있을까?’에서 ‘어떻게 하면 효율적이면서도 지구에 피해를 주지 않는 화학물질을 만들 수 있을까?’로 질문을 바꾸고, 화학물질을 생산·소비·폐기하는 과정을 지구 시스템과 생태계 순환의 원칙에 맞게 재조정하면 되니까요. 기술을 개발하는 첫 단계부터 친환경 목표에 부합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나아가는 거죠.



■ 책 속 메시지


"우리는 문제를 만들었고, 이제 그 해결에도 참여해야 합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화학으로 시작되었고 결국 그 해답 역시 화학의 ‘변화 가능성’ 안에 담겨 있다고.

그는 기술의 진보가 환경을 파괴한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화학은 그 과정에서 반성과 전환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말합니다.

즉, 화학은 단지 성분을 나누는 학문이 아니라 지속가능성을 설계하는 언어라는 것입니다.

지속가능한 삶이 과연 어떤 원소들로 이루어져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 곧 우리의 소비, 선택, 습관, 태도를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 하나의 감상


읽는 내내 과학이 이렇게 시적일 수 있구나 싶은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복잡하고 낯선 공식으로만 여겨졌던 화학은 이 책을 통해 마치 살아 있는 감각과 사유의 도구처럼 느껴졌습니다.

화학은 단지 실험실의 학문이 아니라 우리가 숨 쉬는 공기와 마시는 물, 입는 옷, 켜는 전기까지, 삶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에 스며든 언어라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이 책이 불안이나 죄책감을 자극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해를 통해 실천을 이끌어낸다는 점이었습니다.

우리는 플라스틱 용기를 고를 때, 비닐을 버릴 때, 전기를 켤 때조차 매번 아주 작은 선택 하나로 지구의 미래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의 배경에는 분명한 화학적 맥락과 인식의 전환이 자리하고 있었죠.


녹색지구는 어떤 거대한 기술의 성취나 막연한 환경 담론이 아닙니다.

그 시작은 오늘 내가 선택한 화학적 물질 한 조각의 이야기에서 출발합니다.

『화학의 눈으로 보면 녹색지구가 펼쳐진다』는 그 조용한 시작이 얼마나 의미 있는 변화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과학의 언어로, 따뜻한 시선으로 보여주는 책이었습니다.


▼ 손에 잡혀 재독하였는데 이전 리뷰도 알차게 작성하였으니 참고해 주세요.

https://blog.naver.com/hanainbook/222994323027



■ 건넴의 대상


과학을 더 인간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사람

환경 문제에 더 깊이 다가가고 싶은 독자

나 하나쯤이 아닌 나부터의 삶을 살고 싶은 사람

화학을 공부하는 학생 또는 비전공자에게도 좋은 입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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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감상이 더해지면 이 공간은 조금 더 깊고 따뜻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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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먼슬리 클래식) | 먼슬리 클래식 3

저자 조지 오웰

문학동네

2025-03-10

원제 : Nineteen Eighty-Four

소설 > 영미소설




우리가 언어를 빼앗길 때, 생각도 함께 빼앗긴다.




■ 책 속 밑줄


4월, 맑고 쌀쌀한 날이었다. 시계들의 종이 열세 번 울리고 있었다. 윈스턴 스미스는 차가운 바람을 피해 턱을 가슴에 처박고 승리 맨션의 유리문으로 재빨리 들어갔다. 막을 새도 없이 모래 바람이 그 뒤를 따라 들이닥쳤다.



윈스턴의 등 뒤에 있는 텔레스크린에서는 아직도 무쇠 생산과 제9차 3개년 계획의 초과 달성에 대해 지껄이고 있었다.

텔레스크린은 수신과 송신이 동시에 가능하다. 이 기계는 숨죽인 속삭임을 넘어서는 모든 소리를 낱낱이 포착한다. 더욱이 윈스턴이 이 금속관의 감시 범위 안에 있는 한 소리는 물론이고 행동까지 감지된다. 물론 언제 감시를 받고 있는지 알 수는 없다.



1984년 4월 4일

그는 몸을 뒤로 젖히고 앉았다. 무력감이 그를 사정없이 짓눌렀다. 우선 올해가 1984년이 맞는지 어떤지 알 수 없었다. 나이가 서른아홉 살인 것만은 거의 확실했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



생각범죄는 죽음보다 무서운 형벌이다. 누군가에게 당신의 내면이 완전히 투명하게 들여다보인다면 당신은 어떤 방식으로라도 자유롭지 않다.



자유란, 둘 더하기 둘은 넷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다. 그것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나머지는 무너진다.



"자네는 신어를 만든 목적이 사고의 폭을 좁히는 데 있다는 걸 모르나? 결국 우리는 사상죄를 범하는 일이 문자 그대로 아예 불가능하게 만들 거라고. 사상을 표현할 단어가 없을 테니 말일세. 앞으로 필요한 모든 개념은 정확하게 한 단어로 표현될 거야. 뜻이 엄격하게 제한되고 다른 부수적인 뜻은 제거되어 잊히게 될 거네."



■ 끌림의 이유


조지 오웰의 『1984』는 단순한 미래 디스토피아 소설이 아닙니다.

권력, 감시, 언어, 진실이라는 주제로 생각의 자유가 통제된 사회의 풍경을 치밀하게 보여줍니다.

주인공 윈스턴은 감시와 검열 그리고 진실이 조작된 체제 속에서 끊임없이 자기 의심과 저항 사이를 오갑니다.

'이것이 진짜 현실인가?'를 묻는 그의 시선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집니다.



■ 간밤의 단상


며칠 전 SKT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그에 대한 대응은 무료 유심 교체였지만 실질적 책임은 모두 이용자 몫이었습니다.

저 역시 검찰청을 사칭한 전화를 두 번이나 받은 적이 있을 만큼 개인 정보가 얼마나 손쉽게 유출되고 있는지 체감하고 있습니다.

그 사건 이후 『1984』를 다시 읽으면서 '나는 지금 진짜 자유로운가?'라는 질문이 선명히 떠올랐습니다.

보이지 않는 감시 속에서 어떤 말은 삼켜지고 어떤 감정은 감춰지고, 기억조차도 누군가의 기준 아래에 통제된다면 그건 과연 진짜 나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들었습니다.


『1984』는 단순한 디스토피아 소설이 아니라 통제의 사회에서 인간다움을 끝까지 지켜내려는 사람들의 절박한 기록입니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트루먼 쇼》나 《매트릭스》 같은 영화들이 떠오르지만 이 책은 한층 더 내밀하고 고통스럽게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지금, 진실하게 생각하고 있는가?"

세상의 침묵이 두꺼워질수록 우리는 그 침묵 안에서 더욱 정확한 언어를 찾아야 합니다.

그 어떤 시대든 2 더하기 2는 4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인간다움의 시작 아닐까요.



■ 건넴의 대상


진실과 언어의 경계에 대해 고민해본 분

자유와 감시에 대한 시대적 질문을 품고 있는 분

디스토피아 소설을 좋아하지만 그 너머를 보고 싶은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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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시인의 시 「너에게 묻는다」, 이 한 줄의 시가 오늘의 나를 붙들었습니다.

오늘은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를 함께 읽으려 합니다.






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해설 및 주제 분석


이 시는 단 세 줄이지만 독자에게 강렬한 질문을 던집니다.

짧은 호흡 속에 삶의 태도, 인간관계, 존재의 가치를 날카롭게 담고 있죠.


첫 구절인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는 우리 사회가 가치 없어 보이는 것들에 쉽게 판단을 내리는 방식을 비판하며 시작합니다.

연탄은 스스로를 태워 다른 이를 따뜻하게 데우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다 쓰이고 나면 그저 더럽고 쓸모없는 것처럼 버려지죠.

이 연탄은 곧, 누군가에게 헌신한 사람들, 조용히 견디며 살아온 이들의 은유일 수 있습니다.

즉, "연탄재"는 타인을 위해 자신을 불태운 존재, 혹은 과거의 나 자신일 수도 있습니다.

다 타버리고 난 후 남겨진 흔적이지만, 그 속엔 분명 한때 뜨겁게 불탔던 시간이 있으니 그 흔적조차 하찮게 여기지 말라고 하는 뜻입니다.


이 시의 본질은 책망이 아니라 자기성찰입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무심히 차버릴 수 있는 것들 속에 담긴 존엄과 기억의 무게를 상기시키며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는 질문을 통해 독자 각자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삶의 본질을 압축해낸 가장 짧고 가장 강한 울림의 시 중 하나로 한 사람의 태도와 삶의 무게에 대한 철학적인 물음을 남깁니다.



■ 하나의 감상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였을까?

그의 삶을 데워주는 작은 온기로 남은 적이 있었을까?

나는 진심을 다해 살아왔는가?


저는 오늘 이 시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한 번 쓰이고 나면 잊히는 마음들, 어쩌면 그 연탄재 속에 있는 마음을 너무 쉽게 걷어차고 살지는 않았는지.

누구에게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바쁘고 지친 하루 속에서, 누군가를 위해 뜨거운 사람이 되어본 적이 있었는지 돌아보았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자신이 연탄처럼 사라진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방을 따뜻하게 했던 불씨였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삶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이 시를 통해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 뜨거운 사람으로 남고 싶으신가요?

누군가의 추위에 작은 온기를 전해줄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충분합니다.




이 시가 떠오르는 사람이 있나요?

그렇다면 그 사람에게 이 글을 공유해주세요.

오늘, 당신은 누군가의 마음을 데워주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다음엔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함께 읽어보려 합니다.

당신이 지켜온 믿음과 고요한 다짐을 함께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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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열정 (먼슬리 클래식) | 먼슬리 클래식 1

저자 아니 에르노

문학동네

2025-01-10

원제 : Passion Simple

소설 > 프랑스소설




사랑이란, 결국 말해지지 않는 감정의 무게로 기억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 책 속 밑줄


우리가 지금까지 몇 번이나 사랑을 나누었는지 헤아려보았다. 사랑을 할 때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우리 관계에 보태어진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동시에 쾌락의 행위와 몸짓이 더해지는 만큼 확실히 우리는 서로 조금씩 멀어져가고 있었다. 우리는 욕망이라는 자산을 서서히 탕진하고 있었다. 육체적인 강렬함 속에서 얻은 것은 시간의 질서 속에 사라져갔다.



우리 관계에서 그런 시간적인 개념은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는 그저 존재 혹은 부재만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언제나'와 '어느 날' 사이에서 끊임없이 동요하면서 열정의 기호들을 모으고 있었다. 그 기호들을 한데 모으면 나의 열정을 좀더 사실적으로 그려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을 열거하거나 묘사하는 방식으로 쓰인 글에는 모순도 혼돈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글은 순간순간 겪은 것들을 음미하는 방식이 아니라, 어떤 일을 겪고 나서 그것들을 돌이켜보며 남들이 나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방식인 것이다.



그 사람의 전화만 기다리며 고통을 겪는 일이 너무 끔찍해서그와 헤어지기를 원했던 적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럴 때면 나는 그 사람과 헤어지는 순간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아무것도기대하지 않으며 사는 나날들이 되풀이되겠지. 나는 결국 어떤대가를 치르더라도, 그사람에게 다른 여자, 아니 여러 여자가있다고 하더라도(그의 곁에 있는 여자가 한 명일 경우 내 고통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 사람과의 만남을 계속하기로 했다. 모든 것이 사라지리라는 걸 예감하면서도, 지금이 오히려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을 만나지 못한 날에는 기다림으로 시간을 보내고 만나고 돌아온 날에는 다시 그날의 순간들을 되새기며 시간을 채운다.



그 사람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고 지금은 그 모든 일들이 다른 여자가 겪은 일인 것처럼 생소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사람 덕분에 나는 남들과 나를 구분시켜주는 어떤 한계 가까이에, 어쩌면 그 한계를 뛰어넘는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나는 내 온몸으로 남들과는 다르게 시간을 헤아리며 살았다. 나는 한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 얼마만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숭고하고 치명적이기까지 한 욕망, 위엄 따위는 없는 부재, 다른 사람들이 그랬다면 무분별하다고 생각했을 신념과 행동,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스스럼없이 행했다.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세상과 더욱 굳게 맺어주었다.



나는 나 자신을 던지지 않고는 사랑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매번 그렇게 자신을 던지고 난 뒤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어떤 기억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작아지지 않고 오히려 내 삶 전체를 가만히 감싸 안는다.



■ 끌림의 이유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가 한 남자와의 불균형한 사랑에 몰두했던 짧지만 깊은 시간을 기록한 고백형 독백 소설입니다.

그녀는 이 책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미화하지도 변명하지도 않습니다.

욕망, 집착, 부끄러움, 무력감, 그 모든 감정의 결을 단정하고 담백한 문장으로 써 내려갑니다.

감정에 휩쓸리되, 감정에 함몰되지 않는 이 시선이 읽는 내내 조용한 침잠처럼 다가옵니다.

너무 많은 말이 아니라 정확한 말 한 줄로 사랑을 건네는 방식이 이 책의 가장 큰 힘입니다.



■ 간밤의 단상


사랑은 왜 항상 한쪽이 더 깊이 무너질까요.

그리고 그 무너짐은 이토록 오랫동안 마음을 떠나지 않을까요.

『단순한 열정』은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했던 단 한 사람의 감정, 그 모든 소용돌이를 담담히 기록한 고백이었습니다.

사랑 앞에서 얼마나 초라해지고 기대하고 기다리는지, 읽는 내내 서늘하고도 먹먹한 마음으로 페이지를 넘겼습니다.


사랑을 한다는 건 결국 누군가의 중심에 나를 던지는 일입니다.

그 중심에서 밀려나는 순간, 사랑은 비로소 고통이 되지요.

그러나 그 감정조차도 숨기지 않고 기록할 수 있다는 사실, 그것이 이 책의 진짜 힘이었습니다.


책을 덮고 나서 오래도록 떠오른 생각이 있었습니다.

사랑이 끝나도 그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남겨진 감정들이 나를 다시 쓰고 결국엔 한 사람의 서사가 된다는 것이지요.


단순한 열정이라는 말은 어쩌면 역설이라 생각됩니다.

가장 단순한 감정이 사실은 가장 복잡하고 가장 격렬했던 감정이라는 것, 그 사실을 새벽의 고요 속에서 오래도록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건넴의 대상


관계의 불균형을 견뎌본 적 있는 분

누군가를 기다려 본 적 있는 분

사랑 앞에서 부끄러웠던 기억을 가진 분




이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문장이나 순간이 있다면 공감(♥)과 댓글로 나눠주세요.

당신의 감상이 더해지면 이 공간은 조금 더 깊고 따뜻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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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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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정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 룰루 밀러

곰출판

2021-12-17

원제 : Why Fish Don't Exist

에세이 > 자연에세이

과학 > 기초과학

과학 > 생명과학 > 생물학






■ 책 소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학 다큐멘터리 같은 제목 속에 깊은 자기 탐색의 서사를 품고 있는 비범한 에세이입니다.

저널리스트인 룰루 밀러는 어린 시절부터 느껴온 무력감, 상실, 존재에 대한 혼란을 19세기 생물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따라가며 풀어냅니다.

표면적으로는 분류학과 과학사의 이야기이지만, 그 속에는 혼돈을 분류하려는 인간의 욕망 그리고 그 욕망의 균열을 받아들이는 한 여성의 치열한 사유가 담겨 있습니다.


물고기라는 분류가 해체될 때,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한 가지를 더 깨닫습니다.

이름 붙이는 것이 늘 진실을 말해주는 건 아니라는 것!

오히려 이름 바깥에서 우리는 더 넓은 삶을 발견하게 됩니다.



■ 문장으로 건네는 사유


'혼돈'만이 우리의 유일한 지배자라고 아버지는 내게 알려주었다. 혼돈이라는 막무가내인 힘의 거대한 소용돌이, 그것이야말로 우연히 우리를 만든 것이자 언제라도 우리를 파괴할 힘이라고 말이다.



이 세계에는 실재인 것들이 존재한다. 우리가 이름을 붙여주지 않아도 실재인 것들이. 어떤 분류학자가 어떤 물고기 위로 걸어가다가 그 물고기를 집어 들고 "물고기"라고 부른다고 해서 그 물고기가 신경이나 쓰겠는가. 이름이 있든 없든 물고기는 여전히 물고기인데….



그는 물고기의 뼈와 내부기관에서 실마리를 찾고 있었다. 어느 생물이 어느 생물을 낳았는지에 관한 실마리, 생명이 흘러가는 방향에 관한 실마리, 인간을 만드는 데 필요한 실험에 관한 실마리, 그리고 어쩌면 사람들을 개선하기 위한 비결에 관한 실마리를.



우리는 세상이 기본적으로 냉담한 곳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성공은 보장되지 않고, 수십만 명을 상대로 경쟁해야 하며, 자연 앞에서 무방비 상태이고, 우리가 사랑한 모든 것이 결국에는 파괴될 것임을 알면서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작은 거짓말 하나가 그 날카로운 모서리를 둥글게 깎아낼 수도 있고, 인생의 시련 속에서 계속 밀고 나아가도록 도와줄 수도 있으며, 그 시련 속에서 가끔 우리는 우연한 승리를 거두기도 한다.



인간의 지력으로 도저히 다 이해할 수 없는 생태의 복잡성에 대한 이러한 조심스러움과 겸손함, 공경하는 마음은 사실 대단히 오래된 것이다. 이는 때로 "민들레 원칙"이라고도 불리는 철학적 개념이다. 민들레는 어떤 상황에서는 추려내야 할 잡초로 여겨지지만, 다른 상황에서는 경작해야 하는 가치 있는 약초로 여겨지기도 한다.



내가 물고기를 포기했을 때 나는, 마침내, 내가 줄곧 찾고 있었던 것을 얻었다. 나는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약속을 얻었다. 내가 그 좋은 것들을 누릴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다. 내가 얻으려 노력했기 때문이 아니다. 파괴와 상실과 마찬가지로 좋은 것들 역시 혼돈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이면인 삶. 부패의 이면인 성장. 그 좋은 것들, 그 선물들,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황량함을 노려보게 해주고, 그것을 더 명료히 보게 해준 요령을 절대 놓치지 않을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매 순간, 인정하는 것이다.



■ 책 속 메시지


저자는 혼란스러운 세계를 견디는 방식으 과학과 이해를 선택했던 조던을 따라가지만 그 끝에서 마주한 것은 진실이 아니라 신념의 위험이었습니다.

정리되고 명명되는 세계는 편안하지만 그 안에서 놓쳐버리는 다양성과 경계 너머의 존재들이 있었죠.

그것이 결국 삶을 얼마나 협소하게 만들었는가를 이 책은 조용히 드러냅니다.

저자는 그 깨달음을 통해 자신 역시 더는 정리된 삶을 욕망하지 않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새로운 방식이라고 얘기합니다.



■ 하나의 감상


읽는 내내 무언가가 허물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분류하고 정의하는 일이 때로는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를 처음으로 정면에서 마주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과학의 이름으로 감정과 세계를 정리하려던 자신의 오랜 습관을 멈추고 혼돈을 있는 그대로 살아내는 연습으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그 과정이야말로 진짜 성장의 기록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책에서는 자기 확신에 사로잡힌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모름의 용기를 이야기합니다.

정의할 수 없는 존재로서의 나 그리고 그 안에서 조금씩 회복되는 관계와 믿음.

책장을 덮으며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졌습니다.

"나는 아직 분류되지 않은 채로 괜찮습니다."



■ 건넴의 대상


정답보다 질문이 필요한 분

혼돈과 회복의 사이에 서 있는 분

과학과 인문을 넘나드는 깊이 있는 서사를 찾는 분




이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문장이나 순간이 있다면 공감(♥)과 댓글로 나눠주세요.

당신의 감상이 더해지면, 이 공간은 조금 더 깊고 따뜻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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