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처럼 꽉 물고 놓지 않으려는 마음을
게 발처럼 뚝뚝 끊어 버리고
마음 없이 살고 싶다
조용히, 방금 스쳐간 구름보다도 조용히
마음 비우고가 아니라
그냥 마음 없이 살고 싶다
저물녘, 마음속 흐르던 강물들 서로 얽혀
온 길 갈 길 잃고 헤맬 때
어떤 강물은 가슴 답답해 둔치에 기어 올랐다가
할 수 없이 흘러 내린다
그 흘러 내린 자리를
마음 사라진 자리로 삼고 싶다
내림 줄 쳐진 시간 본 적이 있는가?

................................................................................

그러고 보니 너무 오랜만에 시를 읽네.1주일 동안 맘이 바빳다..... 어제는 어떻게 일이 있다보니 모 대학의 야간 대학원 강의를 듣게 되었다.중간에 빠져 나갈 수도 없는 입장이었고 또 내용도 관심이 가는 분야여서 밤 10시가 되도록 죽치고 앉아 있었다.그러고보니 참 오랜만에 강의란걸 들은 셈이다.야간 대학원생들의 구성은 거의 중고등학교 사회과 선생님들이었다.강의 대용은 한국정치의 변화 뭐 이런것.한국정치 개혁과제에 대한 발제가 있었고 그 다음은 신자유주의와 국가에 대한 발제가 이어졌다.발제 후 교수님이 발제 내용에 문제제기를 했다.... 그런데 대학원생들의 답은 참으로 실망 실망스러웠다....내가 보기엔 그저 다 학위가 필요해서 앉아 있는 분들 같았다.... 이 사회과 선생님들의 시각이 거의 그대로 학생들에게 전해질 터임을 생각하니 참 ... 그분들이 무슨 대답을 했길래 라고 궁금해 할 수 도 있는데 거의 대답다운 대답이 없어서 별로 남길게 없다. 결국 수업 끝나고 교수실에서 차 한잔 하며 그냥 수업중에 들었던 내 생각을 교수와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 나오는 사회조합주의에 대한 의견.나는 산별노조  자체의 성립도 난망한데 독일류의 사회조합주의가 가능하겠냐는 것이었다.교수 역시 조합주의를 위해서는 각 주체별 합의에 의한 대표성이 필요한데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고 했다.하지만 결국 그 방향으로 가야지 않겠냐는 희망을 이야기했다.... 간만에 학교를 가니까 좋았다....공부해보고 싶은 마음도 마구 생겼지만.... ㅋㅋ 언젠가 아는 형님의 일화가 생각이 났다. 회사에는 관련학과를 다닌다고 뻥치고 어떻게 시간을 내어서 일반 대학원 연극학과에 들어갔다.한 학기를 나름대로 다녔는데 2학기에는 아예 휴학을 하고 그다음은 아예 다니지 않기로 했다.이유는 무지 간단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대학원 수업에 갔다.형은 나이가 당시에 40대 초반이었고 나머지 동료원생들은 대개가 20대 초중반이었다.형은 대학 졸업한지는 오래되었지만 꾸준한 독서로 바탕을 만들어왔다.그런데 대학원에가서 토론도 하고 뭐 이럴 거라 생각하고 갔는데. 한 학기동안 교수랑 자기랑 만 토론을 했다고 한다. 당연히 교수는 무지 좋아했겠지만....형은 대학원에 실망했다고 했다. ...자기가 발제하고도 그게 어떤 의미인지 다른 주제들과 어떤 연관을 갖는지도 모르는 학생들이 거의 태판인데 무슨 토론수업이 되겠는가.형이 보기엔 그 친구들은 자기가 맡은 챕터 요약하기에도 정신이 없어보였다고 한다.형은 무슨 학위가 필요해서 대학원을 간게 아니기 때문에 거기서 계속 있을 필요를 못느낀거다.비싼돈주고 말이다.

그냥 그 돈으로 책이나 사보기로 했단다.대학원 말고도 또 이야기를 나눌 사람들은 어디에든 있었으니말이다......

모든 대학원생들이 형의 케이스같지는 않을 것이다.그쪽 분야에 관심을 갖고 열심히 공부하는 원생들도 있다.하지만  반 이상은 그냥 저냥 소속이 필요해서 있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소속이 필요한 사람들의 공부가 얼마나 싶을 수 있는지는 회의적일 수 밖에 없다....대한민국의 학력은 계속 높아지는데 그게 그다지 미덥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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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6-05-24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이렇게 몰래 추천을 한방 눌러 주시는 분은 누굴까?
올드보이 버전으로....넌 누구냐?
Anyway 감사.....

드팀전 2006-05-25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켁.....당신이 보이지 않는 추천 한방의 주인공이요? 아니면 대학원생이야기요?
아저씨같은 대학원생들이 많으면 나도 대학원다니겠오.시간과 돈이 없긴하지만...
어디가나 공부하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으니....공부 안하는 대학원이라고 뭐라하는건 아님.

비로그인 2006-06-01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중에 시간이 생기면 어떻게 공부를 해야할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대학 다닐 때 학비 번다고 시간 버리고, 그 학비에 비해 넘 부족한(그닥 열심히도 안 했지만) 커리큘럼 들 땜에 허탈했던 기억들이 있어서... 대학원이 궁금하면서도 가기가 겁나더라구요. 글 퍼갑니다.
 
바보 만들기 - 왜 우리는 교육을 받을수록 멍청해지는가
존 테일러 개토 지음, 김기협 옮김 / 민들레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한민국은 교육의 아방궁이다.아이들의 교육과 관련된 것이라면 없는게 없을 정도다.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포항 제철소 화덕의 불꽃 처럼 활활 타오르는게 교육시장이다. 불황을 모른다.얼마나 활활 타오르는지 늦은 밤에도 각종 학원의 불은 70년대 섬유공장처럼 전등을 밝히고 있다.밤 10시쯤 학원가가 몰려있는 곳을 가본 적이 있으신가? 대로변은 주차장이다.학원의 승합차들이  뱀꼬리를 물고 늘어서 있다.학원가 주변의 네거리는 밤 10시나 11시에 도로 정체가 생긴다.우스개 소리가 아니다.학원에서 몰려나오는 파김치 같은 아이들을 봉고차는 하나 둘 검은 입 속으로 빨아들인다.신호쯤은 미래의 동량을 위해 비웃어 버리는 학원 봉고차... 봉고차는 반쯤 감긴 눈을 한 아이들을 아파트 앞에 하나씩 퇘퇘거리며 뱉어놓는다.그리고는 다음 목에 걸린 공부 못하는 돌을 뱉어낼 심산으로 휭하니 달려간다.

이 책 은 제목을 잘 뽑았다. <왜 우리는 교육을 받을수록 멍청해지는가...바보만들기>.저자 존 테일러 개토는 뉴욕에서 30년 가까이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의 교육제도가 아이들을 바보로 만들고 있는 주적이라고 선언한다.한나 아렌트는 말을 인용하면 조금 더 일반화 시킬 수 있다..."전체주의 교육의 목적은 신념을 키워 주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신념이라도 만들어 낼 능력을 박멸하는 데 있다"  존 테일러 개토 역시 의무교육제도에 바탕을 둔 현재의 공교육이 자유로운 생각과 판단을 처음부터 근절시키는데 목적이 있다고 말한다.아이들의 창의력을 앗아 가서 그 자리에 채우는 것은 무었일까? 여러가지 다른 말로 설명가능 하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정부의 생각','국가의 생각'이다.표준화된 교과 과정,표준화된 교과서,표준화된 교사 자격,표준화 된 시험제도...이러한 온갖 종류의 표준화는 기존 사회가 원하는 규격화된 인간형을 만들어 낸다.이렇게 규격화된 인간이 나오면 끌고 다니기 쉽다.하고픈 대로 해도 다 그런가 보다 한다.의문을 갖지 않는 인간형을 제조하기 때문에 현 사회 체제는 균열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그냥 가는 거다..쭈욱.

 저자는 미국적 공교유의 근원이 프러시아 교육제도에 있다고 밝힌다.(미국,일본이 악질적으로 이종교배된 대-한민국 교육은 울트라 슈퍼 프러시아적 교육이다).프러시아는 부국강병의 일환으로 중앙집권화된 교육제도를 추진한다.아이들을 명령에 순응하는 민족의 기계로 만들어야 열강의 쟁패에서 나아가 싸울수 있는 자원이 되는 것이다.이것이 의무교육이란 형태로 등장한다. 1819년 프러시아의 중앙집권화 학교가 만들어 내고자 했던 인간형은 아래와 같다. 명령에 복종하는 군인,고분고분한 광산 노동자,정부의 지침에 순종하는 공무원,기업이 요구하는 대로 일하는 사무원,중요한 문제에 대해 비슷하게 생각하는 시민들..이렇게 시작된 중앙집권화된 의무교육은 결국 스스로 생각하는 이성의 능력을 마비시켜 버렸다.

중앙집중화된 의무교육의 폐해에 대해서 아주 오랫동안 지적되어 왔다.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어렵다.왜냐고? 가장 큰 제약은 이데올로기적 장치로서 국가가 학교처럼 이용하기 좋은 기관을 내놓을리 만무하기 때문이다.둘째로 교육이 '국가독점 사업'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미국의 교육부는 국방부 다음으로 가장 큰 계약체결 기관이다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더 쉽게 말하면 국가의 교육독점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 이미 이 체제 속에 너무 많아서 손을 댈 수도 없다는 말이다.교육공무원,학교 선생,학교 교재상,급식업체,교과서 제작자...등등 만약 교육에 대해서 국가의 권력을 조금만 분산시켜도 이들의 이익은 처참하게 훼손된다.이들의 존재는 교육이 절대 국가독점에서 무너질 수 없는 경제적 필요조건이 된다.

저자가 말하는 교육변화는 가히 혁명적이다.가장 큰 핵심은 교육을 학교중심에서 가정중심으로 옮기자는 것이다.물론 가정이라는 것이 각 개인의 가정만을 뜻하지는 않는다.학교 이외의 모든 것이 가정으로 상징된다.학교를 제외한 다른 대안적 교육의 길은 너무나 다양하다는 말이다.이는 '교육의 자유시장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그러나 한가지 오해하지 말기를.여기서 말하는 '자유시장화'가 학원장들이 말하는 사교육의 자유시장화는 절대 아니다.그는 현재의 학교 교육이 진정한 교육과는 거리가 멀다는 전제를 두고 이야기를 전개한다.진정한 교육과도 먼 학교 공교육이 교육을 독점하고 거기서 배운 부모세대와 그리고 자녀세대의 의식까지 점령해버렸다는 것이 그의 현실인식이다.공교육의 교육독점말고도 다른 다양한 교육이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교육의 경쟁을 주장하는 것이다.그는 학교가 축소되어야 하지 확대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방과 후 학교 같은 것은 그의 주장에 따르면 아이들을 밤새도록 학교의 감시아래 두는 몹쓸 짓일 뿐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지역사회와 공동체적 연대 속에서의 교육이다.역사적으로 이러한 아이디어는 미국 건국 초기의 조합교회주의에서 출발한다.마을 주민들이 자율적 연대감에 바탕을 두고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이다.여기에는 마을의 모든 사람이 주체가 될 수 있다.아이들은 이 속에서 자신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바를 지향해 나아갈 수 있으며 지역사회의 다양한 삶의 층위에서 얻어진 지식과 노동의 경험 속에서 생긴 앎을 삶속에 투영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저자가 '교사자격제도' 폐지론자 임을 알아야한다.그는 자격증을 가진 교육전문가만이 교육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은 가장 큰 사기라는 것이다.진정한 교육은 학교라는 건물 안에서 정부가 정해준 교과서를 가지고 정부의 시험을 통과한 교사자격증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존 테일러 개토가 주장하는 '교육권을 학교에서 가정으로..'의 주장에.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대안교육 모델중  홈스쿨링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약 5000가구의 홈스쿨러가 있다.이들이 받는 가장 큰 오해는 '돈 많은 사람'이라는 것이다.물론 경제적 토대를 무시할 수 없다.하지만 하나씩 따져 보면 그것도 일종의 신화다. 일단 홈스쿨러들은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야겠다는 욕심이 없다.물론 홈스쿨러들도 종류가 있다.아이가 영재라 믿고 빨리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 홈스쿨링하는 부류,아이가 제도권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거나 학교폭력에 의해 어쩔수 없이 홈스쿨러가 되는 경우,마지막으로 아이와 부모의 신념에 의해서인 경우....처음 경우는 목적을 달성할 수는 있지만 진정한 대안교육으로서의 모습은 아니다.두번째 경우는 1-2년후 홈스쿨링에는 실패하는 경우가 많고 결국 대안학교를 찾는다고 한다.마지막이 그나마 성공가능성이 높은 경우다.이들의 부모들은 일단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치 않는다.' (나는 이 말 저 말 다 빼고 이게 가장 핵심이라고 생각한다.)대신 이 부모들은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다. 좋은 대학에 가길 원하지 않으니 무리하게 학원 대여섯개 보내는 사교육을 시킬 필요가 없다.그러니 돈이 무지하게 많이들거라는 생각도 조금은 왜곡된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어떤 이들은 '그거 다 부모 욕심 아니야'라고 한다. 딱 등가려운대 파리 앉아주는 질문이다. 대안교육이나 홈스쿨링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이들의 선택과 합의 이다.내가 개인적으로 학교교육이 질려서 대안학교나 홈스쿨링을 하고 싶어도 아이의 자발적 선택이 없으면 결국 실패한다.대부분 성공하는 대안 교육은 아이의 자발적 동의와 아이의 구체적 계획이 전제된다. 결국 부모의 욕심때문에 대안교육 한다는 주장은 대안교육의 주장은 맞지만 나는 좀 걱정되고 자신없어서 못 한다고 하는게 오히려 솔직하다...내지는 내 아들은 좋은 대학 나와서 이 땅에서 성공해야 한다..고 말하든가... 

TV나 신문에서 그런 대안교육 기사를 보다 옆에서 '그거 다 부모욕심 아니야'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렇게 말해라.

 "네가 아이들 학원 서너개 씩 보내는 것은 네가 그러고 싶어서 그러니 아니면 다른 비슷한 부모들도 그러니까 그러니?  내가 보기엔 다른 사람이 안하면 너도 그렇게 아이들 혹사시키면서 안할거 같은데..  그렇지? (그럼 대개 그렇다고 한다.)  ..결국 너는 다른 사람의 욕심에 맞추어서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구나. 그것보다는 저렇게 자기를 가장 사랑하는 부모의 욕심에 맞추는게 훨씬 나은 거 아니니. 내 아이를 다른 부모 욕심에 맞춰서 키우다니..."

<바보만들기>가 주장하는 교육 변화는 기존 교육의 틀을 전면 부정한다.제목에서 말하듯이 '교육이 바보나 만드는데 그곳에 왜 보내야 하는가...' 존 테일러 개토의 주장은 분명히 역사적,사회적으로 공교육이 담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함의를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다.하지만 그의 주장의 과격함 만큼이나 현실적합성에서 우려되는 부분도 많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의무교육제도의 이데올로기적 차원의 접근은 존 테일러 개토의 주장이 맞다.그 반면에 의무교육 실시가 상당히 빠른 시일 내에 국가의 문맹률을 비롯해서 국민의 교육수준을 높여준 공도 있다.(물론 교육수준이 높아졌다고 삶이 질이 좋아졌냐의 문제는 다르지만) 또한 그가 제시하는 공동체적 교육에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근대의 시스템은 마치 공기와도 같다.내가 살아 있는 곳은 근대 시스템이 미치치 않는 곳이 없다.그만큼 촘촘하고 강고하겨 얾혀있다는 것이다.이에 대한 대안의 모색이 이상하게 전근대적 출발을 두고 있는 것은 -이해는 가지만- '좋았던 옛날' 이란 신화에 기대는 듯하다.중국인들이 삶의 이상향을 미래가 아니라 과거 요순시대에서 찾듯 존 테일러 개토의 대안 역시 시민 자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미국 건국 초기에서 찾고 있다.아이디어의 설명을 위해서라면 이해가 가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그러나 이는 현저하게 사회적 문제에 있어서 역사적 현재성을 무시하고 접근하는 처사이다.물론 개인적 대안으로서의 자율공동체 교육이나 홈스쿨링 등에는 동의한다.나 역시 아주 심각하게 홈스쿨링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하지만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내가 홈스쿨링을 지지하는 것과 사회적 교육 시스템의 변화를 기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것이다.나 혼자 아이 잘 키우기 위해 홈스쿨링 할 수 있다.'나는 좀 달라.나의 모습을 보고 좀 변화들 하라구' 이것도 교육 변혁의 한 길이라고 믿으며 그만이다.그러나 내 생각은 좀 다르다.내가 대안학교를 찾고 홈스쿨링을 하는 것은 개인적 실천의 영역일 뿐이다.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훨씬 많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어떻게 현재의 왜곡된 교육횡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가에 생각이 이어져야 진정한 교육변혁의 출발이 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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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아무도 <미디어 오늘>에 대해 말씀 하지 않아서...생각난김에 쓴다.미디어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고착화시키는 이데올로기를 끊임없이 주입한다.교육만큼이나 국가(정부)가 생각하는 것을 주입시키는게 미디어다.몇 년 전부터 미디어에 대한 비판 프로그램이 생겼다.나름대로 훌륭한 시도들이 많았다.그러한 미디어 비판에 가장 앞장 섰던 것이 <미디어오늘>이다.원래는 언론노조의 노보에서 시작해서 어느덧 11년을 맞았다.예전에 공부할 때 정기구독했었는데......요즘은 인터넷으로도 볼 수 있다. www.mediatoday.co.kr

즐겨찾기에 추가하셔도 전혀 부끄럽지 않은 신문이다.....

아빠, 또 오월이에요
[전라도닷컴] 시민군 김영철의 딸 김은형
2006년 05월 18일 (목) 12:05:20 전라도닷컴 남인희 기자

'전라도닷컴'(www.jeonlado.com)의 양해를 얻어 기사를 전재합니다. / 편집자

그 해 오월 그의 어머니는 임신 7개월이었다. 그가 태어났을 때 그의 아버지는 '폭도'라는 이름으로 옥중에 갇혀 있었다.

   
  ▲ 시민군 고 김영철의 딸 은형씨. 김영철은 80년 5.18민중항쟁 기간에 투사회보를 만들고 도청항쟁지도부 기획실장 일을 맡아 했다. 5월27일 새벽 도청 사수 중 계엄군에 체포된 그는 잔혹한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정신이상에 시달리다 지난 1998년 숨을 거뒀다. ⓒ전라도닷컴 김태성 기자  
 
김은형. 80년 7월3일 광주 생. 예정일을 훨씬 넘겨 태어난 아이는 2kg에도 한참 못 미쳤다. 인큐베이터에 넣어야 살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남편은 간첩으로 몰려 수감돼 있었고, 이제 아이가 셋인데 집에는 먹을 것이 없었다. 그의 어머니는 아이가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독한 마음으로 금방이라도 목숨이 꺼질 것 같은 아이를 안고 퇴원했다.

아이는 살아났다. 그 아이의 아버지가 아이를 처음 본 것은 이듬해 겨울이었다. 20년형을 선고받았던 그의 아버지는 1981년 크리스마스 특사로 석방돼 집 앞에 던져졌다.

아빠는 잔혹한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이상 증세

시민군 김영철. 빈민지역인 광천동 시민아파트를 중심으로 지역주민운동을 펼치고 한편으론 들불야학 강학으로 뛰어다니며 가난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순수한 열정을 쏟아내던 청년. 그는 5·18민중항쟁 기간에는 투사회보를 제작하고 도청항쟁지도부 기획실장 일을 맡아 했다. 그리고 5월27일 새벽, 도청을 사수하다가 계엄군에 체포되었다. 계엄군들은 그의 등에 '선동, 총기소지자'라고 매직으로 썼다.

1980년 10월25일 살벌한 공포 분위기 속에 진행된 보통군법회의에서 김대중씨를 사형 구형한 군검사들은 자기네들 각본대로 재판을 진행시켰다. 관선변호사들은 변호를 한답시고 "잘못했제" "다음부터는 안 하겠제"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전두환 군사정권은 그를 폭도, 빨갱이로 매도했다. 간첩이라는 누명이 억울하고 의동생 박용준, 윤상원 동지 등이 죽었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은 김영철은 상무대 영창 안에서 수 차례 자살을 시도했다.

이때의 부상과 잔혹한 고문 후유증으로 광주교도소에 수감되면서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그는 석방된 후에도 머리가 아프다고 소리 지르고 정신을 놓을 때가 많았다. 잠을 자지 않고 사방에 머리를 찧고 엉엉 울었다, 비오는 날이면 옷을 죄다 벗고 골목으로 뛰쳐나가기도 했다. 대낮에 골목에 무릎을 꿇고 앉아 하늘을 보고 "하느님, 용서해 주세요"라고 울부짖는 일이 많았다.

   
  ▲ ⓒ전라도닷컴 김태성 기자  
 
동지는 가고 없는데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이 그의 정신에 그처럼 깊은 상처를 남겼다. 정신병원 입퇴원을 거듭했다. 그것이 석방된 김영철의 삶이었다.

"아이들이 '너희 아빠 미쳤지' 하는 말이 어린 맘에 상처가 됐어요. 우리 아빠가 다른 아빠와 다르구나 하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됐어요." 사람들이 모두 미쳤다고 하는 아빠는 정신이 들 때나, 나갔을 때나 누구에게도 단 한번도 성을 내는 일이 없었다. 은형인 친구들이랑 노는 것보다 집에서 아빠랑 노는 게 재미있었다. 어리지만 아빠를 보호해 줘야 할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라디오를 틀어놓고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불렀어요."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과수원길' '청실홍실'… 아빠가 그런 노래를 부르면 은형인 율동을 했다. 은형은 아빠가 좋았다. 그리고 아빠가 불쌍했다. "아빤 왼쪽 팔, 왼쪽 다리가 저려 많이 고통스러워 했어요."

결혼기념일마다 아내에게 500원짜리 맛동산 선물

과일과 채소장사로 아이 셋을 키우며 '간첩'으로 소문난 남편의 옥바라지를 해야 했던 김순자씨. 젖먹이딸 은형을 업고 교도소로 면회를 다니던 김순자씨는 몸도 활발치 못하고 정신까지 온전치 못하게 된 남편을 보고 처음엔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펑펑 울기만 했다. 나중엔 면회실 앞에서 울부짖고 나뒹굴었다. "내 남편이 무슨 죄가 있다고 저렇게 만들어놓고 내보내 주지도 않느냐"고.

"울 엄마 옛날 사진을 보면 눈물이 나요. 그렇게 순하고 그렇게 여린 사람이 저렇게 억척스런 사람이 됐어요." 정신을 놓고 사는 남편에 어린 삼남매를 키우는 가장의 역할을 해야 했던 여자가 얼마나 간난신고의 삶을 살았을 것인지 은형씨는 이제야 비로소 알겠다 한다.

그런 엄마에게 아빠는 1년에 꼭 한 번은 작은 위안을 주곤 했다. "결혼기념일을 한 해도 잊지 않으셨어요. 결혼기념일이면 항상 엄마 가게 금고에서 돈 500원을 꺼내와요. 그리고 맛동산 하나를 사 두었다가 엄마한테 주는 거예요." 누가 아빠를 저렇게 만들었을까 곰곰 생각해 보니 그게 전두환이었다. 그래서 어린 은형이 최초로 미워하게 된 사람이 전두환이었다

은형인 아빠한테 떼쓰듯 물어보곤 했다. "아빠를 그렇게 만든 전두환이가 밉지 않아?" 하고. 아빠는 언제나 허허 웃으며 말했다. "은형아, 그러면 안돼. 전두환이라 하지 말고 전두환 전 대통령이라고 해라. 아빠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하나도 안 밉다." 그런 아빠였다. 아빠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사람을 미워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남들이 모두 정신이상자라고 하는 아빠가 하는 말은 정신이 온전하다는 사람들의 말보다 더 선량했고 더 진실했다.

"온 우주를 사랑하라"던 아빠의 말이 귀에 박혀 지금도 그녀는 '코스모스(우주)'라는 말을 제일 좋아한다. "은형아 하느님이 지으신 만물을 사랑해야 한다. 제 속에 탐욕이나 불의를 갖고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에겐 미움 대신 연민을 가져야 한다."

5·18시민군이었던 아빠가 국립 나주정신병원을 들락거리는 사이, 은형도 면회하러 가는 엄마 손을 잡고, 혹은 약 타러 가는 아빠 손을 잡고 그곳에 자주 드나들었다.

상원이 삼촌, 관현이 삼촌한테서 받은 위안 

   
  ▲ ⓒ전라도닷컴 김태성 기자  
 
아빠의 병세는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은형은 자주 병실에 갔다. 정신병원에서도 병실에서도 아빠는 늘상 엄마에게 간절하게 말했다 "나 집에 가고 싶어요, 나 안 아파요, 나 안파요, 여보!" 엄마가 자리를 비우면 은형에게도 애원을 했다. "은형아, 아빠가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어. 엄마한테 니가 말해서 아빠 집에 데려가자고 해!"

그런 아빠에게 가슴에 못 박히는 말을 하고도 용서를 구하지 못했다. 딱 한번이었지만 주워 담지 못해서 지금에도 회한으로 남는 말을 하고 말았다. "아빠 그렇게 살려면 차라리 죽어버려." 그때 아빠는 웃었다. "허허허! 은영이는 아빠가 죽었으면 좋겄냐." 문을 닫고 나와서 보니  아빠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맘에 없는 소리였다고, 그 말 한 것 용서해 달라고 말하지 못했는데 아빠가 돌아가셔 버렸다. 1998년이었다.

사람들은 아빠가 전두환 사면 뉴스를 보던 도중 빵을 먹다 기도가 막혔다고 했다. 은형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요양원이 아니라 응급처치를 할 수 있는 병원에만 계셨어도 아빠는 살아 계셨을 거라고 아쉬워하고 또 아쉬워하며 산다. 삶이 허망하고 외롭고 힘든 날 은형이에게 위안을 주는 곳은 망월동 구묘역이었다.

"은형아, 상원이 삼촌 용준이 삼촌 관현이 삼촌 안 죽었다 안 죽었다." 귀에 박히도록 들은 이름들이어서 진짜 삼촌 같았다. 엄마도 그 이름들을, 함께 어울렸던 그 날들을 늘 그리워했다. 

"들불야학 강학들과 아파트 청년, 야학생들이 모여 막걸리를 마시면서 '선구자'나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 같은 노래를 자주 불렀지. 상원이 삼촌은 구성진 판소리와 봉산탈춤을 잘해 인기가 대단했고, 노란 삼베 저고리에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닌 관현(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이 삼촌은 각설이타령을, 용준이 삼촌은 가곡을 정말 잘 불렀어. 나는 청실홍실이라는 노래를 자주 불렀는데 상원이 삼촌이 참 좋아했어."

한번 본 적 없이 땅 속에 묻힌 삼촌들이 은형을 위로했다. "우리 아빠를 가장 잘 이해할 것 같은 삼촌들 곁에 가서 가만히 앉아 있으면 마음이 편안했어요. 상원이 삼촌한테는 편지를 써서 갖다 놓기도 했어요."

몸에 갇힌 희로애락 춤으로 풀어내

다른 아이들은 대개 엄마가 따라 오는 견학에 은형은 아빠 손을 잡고 갔다. 엄마는 장사를 해야 했으니까. 

"아빠랑 같이 소풍간다고 좋아라고 갔는데 버스를 잘못 탔었나 봐요. 거기 도착했더니 아무도 없었어요. 근데 그 날 둘만의 소풍이 잊혀지지 않아요. 날씨가 참 좋았어요. 아빠가 노래 부르고 손뼉치고 나는 율동을 했어요."

아빠 앞에서 율동을 하던 어린 시절부터 하고 싶었던 것이 무용이었다. 하지만 먹고살기도 어려운 형편에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지금은 그 꿈이 이뤄졌다. 늦깎이 무용 공부를 지지해 주는 남편도, 춤을 출 수 있도록 오래 이끌어 준 장경숙 선생님도, 이상준 선생님도 꿈을 따라 가라고 은형을 격려해 주는 이들이다.

춤을 춘다. 엄마의 등에 업혀 교도소에 면회 갔을 때 아빠는 어린 은형을 보았을 것이다. 엄마 혼자 낳은 막내가 아빠한테는 참 짠하고 이쁜 아이였을 것이다. 아빠랑 소풍갔던 너럭바위를 생각한다. "은형아 '국립나주정신병원'(아빠는 꼭 그렇게 말했다)에 약 타러 가자!" 아빠가 말하면 좋아라고 따라 나서곤 했던 어린 날의 나들이를 생각한다.

한을 풀기 위해서 추는 춤 아니다. "내 몸이 춤추는 것을 좋아한다. 너무 오랫동안 세상의 눈치를 보느라 표현하지 못하는 희로애락을 몸으로 풀어내는 것이 좋다." 중국어를 전공한 은형은 지난해 광주여대 무용과에 편입했다. 박선옥 교수의 지도로 <오월아리랑> 공연에선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영상자료물을 모으면서 사진을 고르는데 아빠가 재판 받는 사진이 들어 있었다. "아, 우리 아빠다!" 그의 말에 모두 놀랐다.

그때까지 그녀가 시민군 김영철의 딸이란 것을 주변에선 몰랐다. 이 공연에서 그는 희뿌옇게 동터오는 새벽을 응시하는 시민군 중의 한 명이었다. 쇠사슬에 묶여 구르는 장면에서 그때 아빠는 어땠을까 생각했다. 오월의 넋을 씻겨 천도하는 씻김굿 장면에선 아빠의 영정을 들고 붉은 천을 자르는 길을 따랐다. 영정 속의 아빠는 은형의 속엣말을 들었을 것이다.

"아빠가 있어 행복했어요. 아빠도 그곳에선 삼촌들이랑 행복하세요."

※증언자료 <광주여 말하라>(증언자 : 김영철, 조사 정리 : 신봉화)에서 일부 인용하였습니다.

전라도닷컴 / 남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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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숙한 나에게도 어느 때는 당신 생각이 납니다
당신의 눈에서 눈으로 산그림자처럼 옮겨가는 슬픔들

오지항아리처럼 우는 새는 더 큰 항아리인 강이 가둡니다

당신과 나 사이
이곳의 어둠과 저 건너 마을의 어둠 사이에
큰 둥근 바퀴 같은 강이 흐릅니다

강 건너 마을에서 소가 웁니다
찬 강에 는개가 축축하게 젖도록 우는 소를 어찌할 수 없습니다
낮 동안 새끼를 이별했거나 잃어버린 사랑이 있었거나
목이 쉬도록 우는 소를 어찌할 수 없습니다
우는 소의 희고 둥근 눈망울을 잊을 수 없습니다

어리숙한 나에게도 어느 때는 당신 생각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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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시인은 요즘 가장 주목받는 시인이다.고정 수입은 라디오 PD해서 벌고 짬짬히 시를 쓴다.그의 시집은 지금까지 2권이 나왔다.<수런거리는 뒤란><맨발>....최근에 소월문학상 수상집으로 나온 것도 있지만 그의 단독시집은 아니니까...거기에 실린 <그 맘때에는>은 올해들어 만난 최고의 시였다.내가 좋아하던 형님 -자유인 형님,지금은 북경땅에 가있는-그 분께 이 시를 메일로 보냈더니...답이 왔다. '시를 보고 숨이 멎는 줄 알았어.너나 나나 너무 예민한가보다.'....시인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나이 50을 바라보는 사람이 이런 답을 보내주어서 난 그가 좋다. 문태준 시인은 불교적 색채와 농촌의 서정이 강하다.

문태준 시인은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다.백석 시인에게 받았던 그런 느낌을 그에게서 받는다.운율과 우리말의 속닥함에 대해서는 백석을 따라갈 수 없지만........소월문학상집을 사야되나..아님 좀 기다렸다 그의 시집이 나오면 사야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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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목사의 대학 중용 읽기
이현주 지음 / 삼인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남명 조식 선생은 제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 공부의 덕목을  "쇄소응대"라고 했다". 비들고 청소하며 손님맞을 비천한 일을 하는 것이다.즉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공부보다 일상에서 부터 자신의 마음을 닦아 밝은 덕을 찾는 것이 으뜸이라는 뜻이다."쇄소응대의 도'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면서 어떻게 바른 정치를 이야기하고 하늘의 도를 이야기하느냐는 것이다.남명 선생은 그래서 조선 철학사의 가장 큰 논쟁이라고하는 '이기논쟁'을 쓸데없는 관념논쟁이라는 식으로 비판했다.또한 이 논쟁에 뛰어든 최고의 유학자 퇴계를 은근히 질책하기도 했다.남명의 시각으로 보자면 부질없는  논쟁에 퇴계가 뛰어듦으로서 논쟁에 불길을 확 지펴버린 것이다.이러한 남명은 임종을 앞두고 마지막 가르침을 구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다만 이제 실천하는 일만 남았을 뿐이다." 평생을 의와 실천궁행에 힘쓴 노학자의 마지막 가르침치고 너무 단순해보인다.하지만 그 안에 그가 가르친 모든 철학이 들어 있기도 하다.

<대학>은 남명 조식의 공부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했던 책이다.영남 우도 최고의 유학자라는 남명 역시 평생 <대학>공부를 하면서도 그 뜻을 전부 알지 못한다고 스스로를 책했다.그런데 사서삼경을 이제야 겨우 다 읽어 본 내가 어찌 <대학><중용>의 깊음을 이해하겠는가...더듬 더듬 한자 따라가다 한글을 따라가다 하면서 어찌 어찌 읽기는 했다.하지만 알 수 없다.그나마 이 책의 저자가 얄팍한 한마디 응원을 해주어서 기죽지는 않는다. "반드시 대청봉을 밟아야 설악산에 들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학><중용>이 설악산이라면 아마 나의 이번 일독은 설악산 매표소에서 표 끊은 정도일게다.표 끊으니 멀리 산봉우리는 보인다.

<대학>의 첫구절은 대학이 말하는 도를 이야기한다. '대학의 길은 맑은 마음을 맑히고 사람들과 하나 되고 지극한 선에 머무는데 있다'  흔히 말하는 대학의 삼덕목이라는 명명덕,친민,지어선 이다.마음은 원래 맑은 것이다.하지만 마음에는 때가 끼어서 그 맑음을 유지하지 못한다.명명덕은 맑고 맑은 그 마음을 얻으라는 것이다.친민은 그렇게 맑은 마음이 나 혼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그렇게 하여 아무런 사욕이 없는 선의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다.대략 책의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더 깊은 뜻이 있겠지만 <대학>의 내용을 전부 정리하기에는 내 능력이 부족한 고로 이쯤에서 말자.<대학>에는 유명한 말이 또 하나 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 신문칼럼에서 정치인들이 집안 단속못하고 일가친적 비리가 터져나오면 기자들과 칼럼 교수님들이 많이 예를 드는 문장이다. 집 단속도 못하면서 무슨 국정운영이냐는 식의 감정에 호소하는 기사들로 끝을 맺기마련이다.하지만 '수신제가치국평천하'가 일의 순서를 굳이 밝혀서 그런 것이지 반드시 순차적으로 이루어진다는 뜻은 아니다.신영복 교수 역시 <강의>에서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신영복 교수는 관계론 차원에서 고전을 파악했기때문에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역시 각 관계의 연쇄로 보고 있다.단계론적 완성으로 파악하는 것보다는 훨씬 옳은 이야기처럼 들린다. 물론 대학은 일의 순서를 강조한다.본과 말이 전도되어서는 지극한 하늘의 도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본과 말은 일머리 순서로 볼 수도 있지만 핵심과 주변으로 볼 수도 있다.주변이라고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나무에 비유하여 본이되는 것은 뿌리이고 가지와 과일은 말이된다. <대학>은 이 순서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뿐 어디에 무조건 본이 더 큰 비중이 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치우친 나는그래도 본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싶다. 실제 삶의 양상에서 나타나는 일들은 여러 복합적인 요소들이 섞여있다.그래서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알기가 어렵게 만들어져 있다.<대학>에서도 강조하는 '격물치지'가 필요하다.'격물'은 사물을 깊이 연구하여 그것에 가서 닿는 다는 말이다.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깊은 관찰과 응시가 필요하다.그러면 사물의 본에 닿게 된다는 것이다.삶의 구체적인 모습으로써 본은 의외로 간단할 때가 많다.핵심은 심플하다는 것이다.평택 대추리... 보상이 얼마고 누가 누구를 때렸고 한미관계의 역할이 어떻고....다 말에 해당한다.사람 사는 땅에서 그 고향 사람이 농사 짓고 싶다는 것이 본이다.그 사람들에게 돈 몇 억 주고 나간다고 그 사람들이 살아갈 수 없음이 본이다.미국이 한반도에서 언젠가는 나가야 하는게 본이다. 거기서 시작해야 된다.하지만 이 땅은 본을 잃은지 오래.... 이민가고 싶게 만든다.

<중용>은 사실 <대학>보다 훨씬 이해가 안된다.중용을 중간가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진 않았지만 그런 치우치지 않는 법을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다.이현주 목사의 말을 빌자면 <중용>의 중은 속에 있어서 보이지 않지만 겉에 있어서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고 경험되는 용과 두루 융통되는 것이라고 한다.무슨 말인지 문맥도 어색한게 아리송하다.그나마 뒤에 설명은 조금 낫다.중은 천이요 용은 인이다.즉 중용은 하늘과 사람사이의 관계에 대한 철학이다.중용 일기 첫장부터 만만치가 않다.이 목사는 계속 말한다. 중과 용의 도를 이어주는 것이 성이다.'성을 모르고는 중용을 안다고 할 수 없다' ......

문제는 <중용>을 덕지 덕지 겨우 읽었는데....'성'에 대해 감이 안온다는 것이다.여기서 말하는 성은 고등학교 윤리시간에 배운 그 '성'과 '경' 할 때 그 '성'이다.그 때나 지금이나 '성'은 참으로 어려운 개념이고 중언부언하는 개념이다.유학에 여기 저기서 '성'은 무엇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걸로 안다.개 중에는 그런가 보다 하는 것도 있고 또 어떤 건 이게 뭐야 하는 것도 있다...... 아....쓰면서도 <중용>에서 말한 바를 채 10%도 이해하고 있지 못한 듯 하다.이 <중용>이 중간 간다는 중용은 아니란 것 하나는 확실하게 안다..그 중간가는 중용에 대해 이현주 목사의 명쾌한 답은 인상적이어서 자주 써먹을 수 있을 듯하다.'집기양단'이란 말을 설명하면서 든 예이다. '집기양단'은 양쪽 끝을 잡는다는 말이다.즉 어디에 치우지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이현주 목사의 중간-중용과 다른-즉 평등에 대한 빛나는 예가 시작된다. 대략 이런이야기다.

여기 1미터짜리 막대기 자가 있다.0이라는 숫자가 새겨진 눈금에서 100까지 있다.양 쪽 끝을 동시에 들어올리는 길은 50에을 잡아서 끌어올리는 것이다.무게중심이니까....만일 그 막대기가 한 쪽이 굵고 한 쪽이 가늘다면 굵은 쪽으로 치우쳐야 중심을 잡을 수 있다...(야구 방망이 생각하면 되겠다) 따라서 겉보기에 한 쪽으로 치우치는 것이 실제로 중심을 바로 잡는 것일 수도 있다.

어디가서 사회적 문제에 기계적 중립의 예를 들면서 어줍지 않은 객관 객관,중립 중립...이런 이야기 할 때 이 예를 써먹을 수 있다.보수언론들은 늘 한겨레나 민중언론들이 한쪽에 치우치고 자신들이 중립,객관이라고 이야기한다.또한 이에 쇄뇌된 인간들 역시 그게 중립이고 객관이라고 믿는다.야구방망이 무게중심론이 나의 중립이요 나의 객관이다.

공자 역시 중용의 가르침을 한달 이상 이어가기 힘들다고 했다.나 같은 범인은 그 뜻을 이해하기도 어렵다.그래도 이제 첫 술이니까 과욕 부리지 않기로 했다.

이현주 목사 이야기도 마지막으로 잠깐해야겠다.일단 범종교적으로 고전을 접근하는 방법이 마음에 든다.내가 비록 일부 한국 기독교인들로 인해 기독교에 대해 좀 부정적이긴 하지만 그 가르침이야 아름답지 않았겠는가. 이 목사는 대학중용의 도를 이야기하면서 성경 구절을 예로 들어 그 가르침이 서로 소통함을 말한다.딱딱한 의고투적인 본문보다 어떨 때는 성경 내용이  의미를 명쾌하게 이야기해 주기도 한다.하지만 비기독교의 눈에 너무 자주 등장하는 성경 이야기가 원래의 의미를 간섭할 수 도 있다는 의혹이 생기기도 한다.다음 번에 <대학><중용>을 읽을 때는 다른 책을 고를 생각이다.이번은 처음이니까 이 정도로도 훌륭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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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6-05-18 23:33   좋아요 0 | URL
대학의 명명덕, 친민, 지어지선과 중용과 격물치지는 제대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마음의 증득으로 알아야 합니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의 도덕경의 '무위' 하나를 이해하는데 일생이 걸렸다고 했습니다.
좁쌀 하나 이해하는데 일생이 걸렸다고 했습니다.
조식 선생님이 퇴계 선생님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섣부른 비판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님의 치밀한 독서력으로 보건대...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논리로서는 아무리해도 닿을 수 없는 개념들이 그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봅니다.
이기론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졌는가에 대한 평가는 한토막의 평가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삶을 만들었던 그 사람의 마음으로 들어가보지 않고서는 우리가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특히 사서삼경을 비롯한 동양고전을 접할 때 우리는 역사적으로 이론적으로 백번 천번 읽어도 그 뜻에는 천리 만리 떨어진 결론밖에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 공자는 중용의 가르침을 한달 이상 이어가기 힘들다고 했을까?
과연 공자가 마음으로 검증하는 중용은 무엇인가?
범인이라서 우리가 모르는 것이 아니라 범인의 마음으로 미리 기죽기 때문에 우리가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작도 하지 않으므로 길은 우리 앞에서 사라져버립니다.
님께서 인생의 경험으로든 마음 속의 공부로든 언젠가 이 말들을 마음에서 체득할 날이 오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렇다면 세상은 분명히 새롭게 보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불청객이 말이 길었습니다.

드팀전 2006-05-19 08:45   좋아요 0 | URL
불청객이라니요.^^ 사사삼경과 불경,내지는 성경이 논리로 접근하는 책이 아니라는 것은 대학은 졸업해서 압니다.그 책들이 가진 경지를 알기에 단 한줄 이해하고도 이해했다고 말하기도 어려운거지요.그리고 현실에서의 관철에 대해 부끄러운바가 있기때문에 안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구요.마음공부에 대해 백안시한다고 생각치는 마십시오.저 역시 전인격적 인간을 만드는데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어떤 불평등이 해소되면 -또 해소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그 일을 꾸리고 누리는 사람들의 순정한 마음임을 모르지도 않습니다.하지만 마음공부는 내면의 덕을 이루고 현실의 다양함에 적용해나가야 한다고 믿습니다.그게 아니라면 마음공부는 자칫 개인적 안분지족의 도가 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장일순 선생은 제가 정말 따르고 싶은 분인데요.그분이 노자를 읽고 도를 깨우쳐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그 도를 바탕으로 함께 사는 일에 골몰하셨기 때문에 존경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선택이 다른 것이라고 생각할 뿐입니다.남명의 공부도 퇴계의 공부도 모자랐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듯이...무엇에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하는 가에 대해 생각이 달랐겠지요....님의 길과 저의 길이 꼭 같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함께 사는 세상에 더 못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으면 언젠가 만나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