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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
슬라보예 지젝 지음, 이수련 옮김 / 인간사랑 / 2002년 5월
평점 :
품절
지젝 읽기가 마치 '말아톤' 같다.
그와 함께한 마라톤때문에 발,다리 관절이 쑤시다.
이 책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의 끝을 보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중간에 설 연휴가 겹쳐서 그런 때문이기도 하다.그렇지만 실제로 페이지/sec를 구한다고 하더러도 달팽이 횡단보도 건너가는 기록이 나올 듯 하다. 마치 아마추어 건강 마라톤 생중계를 바라보듯 지루하기도 했다.물론 마라톤의 코스가 결코 지루하진 않았던 듯 하다.라캉도 있고,마르크스도 있고,헤겔도 있다.중간 중간에 급수코너에는 반가운 히치콕도 만나고 오스틴,카프카도 기다린다.또 가끔 쉬어가라고 처음 들어 보는 듯 하지만 또 어디선가 들어본 듯 한 농담의 퍼레이드도 대기하고 있었다.
결국 문제는 참가 선수의 함량 부족에 있다.동네에서 뜀박질 좀 한다고 넙죽 번호표 가슴에 붙이고 보스톤 마라톤 대회에 참가 신청을 해버린 꼴이다.직접적으로 말하자면-지젝을 도용하여 실재의 중핵을 까발리면-내가 지젝이 만들어 놓은 마라톤 코스에서 완전히 바닥 드러내고 말았다는 것이다.중간 중간 숨이 막히기도 했고 또한 어떤 언덕에서는 '그냥 덮고 쉬자.'라는 생각도 들었다.특히 책 후반부쪽으로 갈 수 록 말이다. 마라톤의 35km지점부터가 진짜 힘들다고 하듯이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도 대략 7-8부 능선부터 눈 밭에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두 서너장 넘기다가 꾸벅 꾸벅 졸았다.그러다 목이 아파서 선잠에서 깨면 후회가 밀려왔다."아..이 달리기를 계속해야하는 것일까?"
그럼에도 울며 걸으며 인내심 테스트 하듯이 이 책을 다 읽었다.일단 팔다리가 아프다만 그래도 치워버려서 다행이라는 마음이 든다.그리고 날 유혹하는 다른 책들의 팔랑거리는 손짓에 마음이 녹아든다.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은 지젝을 읽는데 가장 먼저 추천되는 책이다.옮긴이는 친절하게도 그의 심오한 사상을 가장 쉽게 정리해 놓았다라고 말한다.거의 모든 목록들이 지젝 읽기의 관문으로 이 책이 많이 거론된다.그런데 이건 어떻게 보면 목욕탕에서 물 안뜨겁다고 아이 꼬시는 아빠같은 이야기이다.특히 나같은 비전공자이며 아마추어 독자들에겐 말이다.
내가 지젝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그의 이데올로기 비판과 정신분석학을 정치학의 영역으로 확산하는 접근때문이다.아무래도 사회과학을 전공한 때문인지 그가 잡고 늘어지는 마르크스-라캉-헤겔이라는 미끼에서 마르크스와 관련된 내용들이 가장 쉽게 이해가 되고 손에 와닿는다.책 초반부에 지젝은 라캉의 '증상'이라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증상'을 고안해낸 사람은 '마르크스'라고 말한다.하지만 그가 고전적의미의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흔히들 마르크스 비판으로 일컫어지는 '혁명론'과 '목적론적 역사관'에 대해 지젝은 반마르크스적인 입장을 취한다.그는 자본주의가 마르크스가 지적했던 이전의 생산양식과는 다른 양식이라고 말한다.오히려 '자본주의는 영원하다' 라고 말하면서 자본의 내적 모순이 그 자체를 더욱 혁명화하면서 지속되는 것이 자본주의의 역설이라고 언급한다.지젝은 라캉을 살짝 집어 넣어 그의 '향락'이 이런 잉여 속에서 나타난다고 말한다.마르크스의 잉여가치라는 것이 라캉의 대상a와 만나는 지점을 지젝은 그렇게 설명한다.
지젝의 이데올로기론에서는 내게는 새로운 개념들이 좀 등장해서 흥미로왔다.에를 들어 '주인 기표'라든지 , '누빔점' 이라든지, '고정적 지시자' 같은 개념들 말이다.이데올로기를 하나의 큰 덩어리로 취급하던 방식에 비하면 마치 이데올로기를 정육점 고기마냥 도마위로 올려놓고 또 분해해서 부위별로 나눈 느낌마저 준다.지젝은 이데올로기 비판에서 시작되어서 현실 정치 속의 반유태주의라든지 전체주의라는 것 까지 이런 논의를 이끌어간다.지젝의 전체주의에 대한 접근은 정신분석학적 방식이다.그가 말하는 파시즘 이데올로기에 있어 핵심은 희생의 도구적 가치가 아니라 자유주의적인 희생 자체의 형식인 '희생정신이다.그는 정신분석이 형식적인 희생 행위 속에 드러나는 외설적인 향락을 드러내기때문에 파시즘의 분석에 유효하다고 말한다.
지젝은 이 책이 라캉을 포스트구조주의의 망령에서 구조해서 헤겔로의 회귀를 완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문제는 라캉이 내게 '내 머리 속의 지우개'라는 거다.라캉의 개념들은 책을 읽는 동안 어떻게 따라가다보면 알 듯 도 하다.그런데 돌아서면 가물거린다.예를 들어 '실재'라는 것에 대한 설명만 해도 여러 가닥의 꼬인 줄들의 묶임처럼 말한다.그러니까 틈사이로 보면 이것도 ''실재'에 대한 설명이고 돌려서 보면 또 이것도 그런 설명이다.라캉만이 아니다.헤겔 역시 뭐 그닥 잘 아는 바는 아니다.그렇지만 지젝이 되살리고 싶어하는 '헤겔의 곡해'가 어떤 것인지 대략 이해는 간다.대개 헤겔 하면 '절대정신'과 '이상적인 일원론'으로 알려져있지 않은가.특히 현대 철학에서는 이런 헤겔을 폐기시키는 것이 과제였다고 할만큼 헤겔로 대표되는 독일관념론에 자주포를 쏘아대지 않았던가.지젝이 참으로 신통방통한 것은 역설적인 방법론을 동원해서 쓰러져가는 헤겔과 그의 변증법을 세우려고 한다는 것이다.그의 사유와 글쓰기가 참 특이한 것은 그런 지점이다.(이런 듯 보이는데 꼭 그것만은 아니면서..실제 두드리고 있었던 것은 다른 문이었다는 ...)지젝은 책 서문에서 '푸코와 하버마스'의 논쟁을 언급한다.그는 푸코를 포함하여 '포스트 구조주의'의가 헤겔의 '악무한'의 단계로 작용한다는 점을 지적한다.내가 이 책에서 정말 고생하게 된 '주체'문제와 관련해서 '푸코와 하버마스'의 간극을 이전에 예견한 사람들로 알튀세르와 라캉을 이야기한다.지젝은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비판이 가지고 있는 형식주의를 비판하며 현실 자체를 무의식적으로 구조화하고 있는 환상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라캉을 예로 든다.즉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 장치와 호명사이의 연관을 설명할 수 있는 도구를 갖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대신 라캉은 현실의 잔여물과 잉여에 촛점을 맞춘다..그는 현실을 왜곡하는 이데올로기라는 상식적인 답변말고 현실 자체를 외상과 실재적인 중핵으로 부터의 도피처로 제공하는 이데올로기의 기능을 말한다.
지젝이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은 지루하면서도 이 마라톤을 쉽게 중단할 수 없는 매력으로 작용한다.마치 내가 대학 들어와서 마르크스를 처음만났을 때,푸코를 처음 접했을 때 느끼는 개안과도 같은 신선함이다.라캉을 인용하여 지젝은 자주 '질문에 곧 답이 있고 ...밀수품은 사실 수레다.'라는 식의 예를 든다.주체라는 것 자체도 기표들의 연쇄와 네트워크 속에서의 대답이라고 말할 정도니 형식과 틀이라는 '기표'들에 대한 접근은 '의미만이 진짜다'라고 생각하는 '진지함'을 추구한다고 가정된 주체들에게 한방 날릴 수도 있을 대목이다.또한 '스스로의 나'를 '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또는 '나는 타자의 모자이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아이디어를 줄것이다.실제 지젝은 주체의 사회 속의 선택 문제에 대해 부인하고 싶겠지만 "그는 자신에게 이미 주어진 것을 선택한다"라고 말한다.그리고 만약 자유선택-많은 자유주의자들이 믿어 의심치 않는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주체는 정신병적 주체라고 말한다.즉 상징적 질서로부터 거리를 유지하고 기표의 네트워크 속에서 사로잡히지 않은 주체는 오로지 그런 주체 밖에 없다는 것이다.라캉의 재미있는 점은 -지젝은 이것을 라캉의 혁신성이라고 말하는데-여타 구조주의자들과 달리 대타자라고 하는 것 역시 빗금지어진 것이라고 말한다.하여간 역설에 역설이고 뒤집기의 또 뒤집기다.
"진리는 오인을 통해서만 나타난다" "계산하는 자가 그 계산 속에 이미 포함되어 있다" "시저의 살해는 그 최종 결과로 시저주의를 가져온다" " "무엇을 원하는가?" "당신은 항상 두번 죽는다."
지젝이 인용하는 라캉의 말들은 참으로 오묘해서 알듯 말듯하다.그렇지만 이런 역설적인 말들이 나오기 전 단계의 이성적이라고 가정된 사고의 품안에서만 있어왔다면 옆집 강아지 짖는 소리에 귀기울여 보는 마음으로 "왜..그딴 식으로 생각하는데?" (지젝은 이런 질문이 외설성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생각해보는 것도 나쁠 바는 없을 듯 하다.
지젝 읽기는 마라톤 같았다.아마추어가 그냥 뛰기엔 분명히 버거운 길이었다.하지만 마라톤이 올림픽에서 금메달 따는 것을 염두에 두고 과학적 훈련을 받은 사람만 하는 운동은 아니다.요즘 각 지역마다 마라톤 축제에 참석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가 동호회회원들이고 일반인들이다.그들의 초기 목표는 풀코스 완주일 것이고 조금 더 쌓이면 3시간 주파를 목표로 할 것이다.달리는 사람들은 말한다.뛰다보면 어느 순간 몸이 가벼워지고 생각이 맑아지는 느낌이든다고...'러너스 하이'라고 하던가...하여간 하프도 제대로 못해대면서 풀코스를 뛰어 팔다리 고생시킨 죄는 있지만 지나가면서 만난 '지젝스러운' 풍경들은 다시 마라톤을 뛸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은 누구에게나 한 번에 이해되는 책이 아닐 것이다.마라톤도 한 번에 완성되지 않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