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문화> 2008년 봄호에 <자연과 타협하기>라는 책의 리뷰가 실렸다. 바람구두님의 작성하다만 페이퍼에도 잠깐 이책이 소개된다.
생태 사회주의,적녹의 연대....
주류 환경론의 한계는 이미 널리 알려져있다.덧붙일 말이없다.
현재 진보주의자들에게는 생태주의가 또하나의 매력적인 언덕으로 작동하고 있다.이 생태주의는 또 묘하게 코뮌적인 방식으로 구성되어서 지구적 자본주의에 대한 가장 극단적 방식의 저항의 형식을 구현하는 듯 보인다.하지만 중요한 것은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대척점'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가장 극적인 저항 위치는 선점하는 것은 오히려 쉽다.
나는 이럴 때 그의 공과를 떠나서 '레닌'을 생각한다.그가 분석해내고 토대로 삼은 당대 러시아 '현실'에 대한 치밀한 정확성과 신념 그리고 전위의 구성방식 같은 것들 말이다.그 중에 최고는 결국 '상황인식'의 적확성이다.
근본주의로 귀결되는 생태주의나 전근대적 가치의 회귀로 특수화되는 형식의 생태적 코뮌에 대해 나는 거리를 둘 수 밖에 없다.그들의 가치가 무엇인지 충분히 존중하고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이론적 한계가 있다.
알라딘에서 유명한 책<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에서 저자는 '대항발전'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성장의 속도를 늦추고 인간 소외를 극복하여 참 '인간'을 찾자는 것이다.충분히 어떤 의미인지 알고 공감한다.
공감한다고 질문하는 것 조차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이런 질문이 해보고 싶었다.
'참 인간'이란 것이 언제 어떻게 설정되어있었는가? '인간적인 삶'에 대한 보편성은 어디서 추론되는 것인가?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개발하고 그것을 통해 만족을 느끼는 것이 왜 '인간적인 삶'의 보편성이 되어야 하는가? 성장의 속도는 늦추면 그 결과가 모두의 행복으로 돌아가는가? 느리던 빠르던 성장의 결과에는 결국 권력의 배분문제가 들어 있는 것 아닌가? 느린 성장의 결과가 일부의 혜택으로 전이된다면 어쩔 것인가? 작은 공동체 내의 분배는 가능하다.그렇다면 국가적 수준의 분배는 어떡게 할 것인가? 인류 역사의 수레바퀴가 진행되는 방향성을 어떻게 전환시킬 것인가? ...알고 있다.필요없는 질문이다.인간적으로 좋은 삶을 살자는데 왜 이런 질문을 던지는가 말이다.그리고 다분히 '도덕주의적'인 방식의 설명에 이런 방향으로 묻는 것은 나쁘다.
그렇다면 생태주의는 도덕철학인가 아니면 정치철학인가? 그저 탈근대적인 '탈주'인가 그도 아니면 전통주의로의 복귀인가? 아니면 소박하지만 거대한 '우주 변혁론'인가? 우주 변혁론은 너무 멀리 있어서 지구까지 도달하는데 너무 오래걸리는 것 아닌가? 물론 ET의 삶은 지구인에게 많은 귀감을 준다만...
나는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별반 하고 싶은 말이 없다. '세계가 올바르게 가야한다'.'자연과 인간은 하나다'라는 믿음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과 회의할 수 있는 도구를 갖추지 못하고 그냥 '올바르니까' ...올바르게 가야한다...라는 것 만큼 '반철학적'인 것이 어디있는가? ..그것은 사이비 종교다.
접합점을 결여한 방식의 운동이 필요하다. 생태주의에 대해 약간 비판적인 글을쓰면서도-이유는 간단하다.생태주의하면 모두 '와'하는 분위기가 싫어서다.우파든 좌파든 생태주의하면 '나는 못하지만 그래도 대단한 사람들' 내지는'별 미친놈들'하는 양자의 분위기가 지배적이다-나는 생태주의적 가치에 공감하고 좋아한다.하지만 연명장에 이름을 쓸 수는 없다.
최근 진보라고 믿는 독자들 중에는 자본주의의 억압구조에 지쳐버린 나머지 노스탤지아식 전원감성과 환경 운동,거기에 노장 사상의 신비주의가 결합해서 '이마트식 생태주의'가 어필한다.'탈정치화된 생태주의'는 사실 낭만주의에 다름 아니다 라고 생각한다.또한 앞에서도 말했듯이 '토대'를 잊고 극단의 위치를 선점하는 식의 생태주의도 낭만주의의 다른 판본일 뿐이다.
좀 웃자고 하는 말인데 ''' 진보 신당이 '진보 환경당''진보 녹색당'이라고 이름 내세웠으면 아마 지금보다 더 많은 관심을 끌었을 것 같다.(그들의 PD론보다 녹색이 아마 이미지 메이킹에 쉬웠을 것이다.이건 정확히 비꼬는 거다.왜 다들 환경 좋아하니 않나?) 물론 나중에 진보 신당의 정체가 결정되고 그런 명칭을 쓴다면 환영할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조만간에 이런 말이 나올 것으로 생각된다 ."생태 키치주의"
<자연과 타협하기>의 황해문화 리뷰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편집장도 인정하듯이.
정치화되지 못하는 생태주의는 이해하고 인정할 수는 있어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이 책의 핵심은 그 지점을 짚고 있다. 이 책은 생각보다 두껍다...정말 웃긴건...서점에서 이 책을 '토목공학'분야에서 찾았다는거.이상한 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