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간 최루탄도 다시 나올 성 싶다.

최루탄 역시 항체 형성이 되는지 모르겠다. 경험상 최루탄은 항체형성이 되지 않는다. 대신 호흡기로 스멀 스멀 스며드는 가스를 막는 잔머리만는다.

잔머리를 이제 주식으로 돌려서 최루탄 만드는 회사나 원료를 공급하는 회사의 주식을 사놓으면 2MB 정권 하에서 더 더블은 칠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시드머니가 없다. ^^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서. 허생전의 허생처럼 방독면을 미리 사재기를 해둘까...

 

..어제 시위에 대한 언론사별 사설/기사 타이틀을 한번 봤다.

<국민> 불법 거리시위로 변질된 촛불행사

<동아> 누구를 위해 '청와대로 쳐덜어가자'고 하는가

<세계> 과격해진 '촛불시위'방치해선 안된다

<중앙> 시험대에 오른 새 정권의 법집행 의지

<조선> 차도로 뛰어든 촛불 집회

<한겨레>연행과 처벌로는 촛불집회 막지 못한다.

...............민주주의가 역행할 거라고 모두들 예상했다. '설마..이렇게 까지야' 라고 생각했다면 2MB를 너무 만만히 본 '정세파악'실패자들 뿐이다. 예상대로 국민들은 이제 거리로 뛰쳐나가고 80년대 서울역광장의 무림/학림 논쟁을 귀엽게(?)  패러디한 '청와대 진공작전' 까지 나온다.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다칠게 눈에 보듯 뻔하다.  

진보 진영은 정세적으로 딜레마에 빠져 있는 듯 보인다. 촛불시위의 정체성때문이다. 촛불시위는 그 출발부터 한계가 있다. 정의대로 '평화 문화제'가 된다면 2MB가 막을 이유가 없다. 오히려 스폰서 해주면서 '평화문화제'를 지지해 줄 것이다. 그것은 '촛불 문화제'의 진정성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촛불문화제'식의 제도적 포용이 가능한 시민 불복종은 어떤 형태로든 포섭하기 쉽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세 변화에따라 쉽게 분열시키기 좋다는 뜻이다. 진보 진영은 현재의 정세를 전화시켜야 하는데 그럴 경우 촛불 시위에 참여한 평범한 시민들(또는 지지자)의 이탈 역시 예상된다. 특히 정권의 정치적 공세에 따라 시위의 성격론이 어젠다가 되면서 분열하게 될 것 같다. 즉 '미친 소에 반대하지만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고 싶지 않다.' 또는 ' 미국 소의 위험에 대해 반대하는 것일뿐 더 나아가는 것은 반대한다.' 등으로 분할될 수 있다.예를 들어 현재 '미국 소 수입' 반대에 동의하는 사람들 중에 '한미,FTA' 문제까지 연동하여 반대하는 사람을 교집합으로 만들어내면 촛불 시위자(또는 지지자)의 다수가 또 이탈하게 된다.

현재 진보 진영은 더 앞서서 나아가지 않는 듯 하다. 지젝식 표현으로 하자면 우리에게 '레닌'이 없기때문이다.

현재 2MB의 '가장 약한 고리'는 '소' 와 '대운하' 이다. 대한민국이 다리 풀린 미국소로 뼈에 구멍 숭숭나고 운하로 폐에 물 찬 땅덩어리가 되어 종합병동을 전전케하지 않으려면 진보 진영의 정확한 정세파악과 투쟁 방향이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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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진퇴양란
    from 내가 사귀는 이들, 翰林山房에서 2008-05-26 11:58 
    * 드팀전의 페이퍼에서 발췌  정의대로 '평화 문화제'가 된다면 2MB가 막을 이유가 없다. 오히려 스폰서 해주면서 '평화문화제'를 지지해 줄 것이다. 그것은 '촛불 문화제'의 진정성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촛불문화제'식의 제도적 포용이 가능한 시민 불복종은 어떤 형태로든 포섭하기 쉽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세 변화에따라 쉽게 분열시키기 좋다는 뜻이다. -----   현재 진보 진영은 더 앞서서 나아가지 않는 듯 하다
 
 
가시장미 2008-05-26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우울합니다. -_ㅠ

드팀전 2008-05-27 09:12   좋아요 0 | URL
우울보다는 희망을...

마립간 2008-05-26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부 내용을 발췌 저의 페이퍼에 옮깁니다.

드팀전 2008-05-27 09:15   좋아요 0 | URL
?? ...사실 레닌이 필요없을지도 모르지요. 새로운 형태의 집회 양식 즉 중심없는 운동같은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자율주의에서 말하는 일종의 '다중'같은 것일 수도 있지요.비판바들은 '다중'의 혁명을 '혁명 없는 혁명'이라고 말했지만 '혁명'까지 가지는 않아도 '다중'이 무언가 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은 사실일겝니다.

marr 2008-05-28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파업 지지 집회에서도 촛불을 켭니다. 꽃병을 들어야 되는데.... 그러면 "누군 그러기 싫어서 촛불 드는줄 아나?" 그럽니다. 정치적이 될 필요가 있는데, 진보진영은 비정치적인 대중을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삶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정치적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드팀전 2008-05-28 16:54   좋아요 0 | URL
역사적으로 비유해볼수도 있을 듯 합니다.같지는 않겠지만...
과거 유럽의 노동조합주의는 노동관료주의로 곧 변질되는데 노동자 관료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 권력자들과 동일한 '대중의 통제 불가능' 상황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turk182s 2008-05-29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요즘 시위양상 가지고 다중의 출현이다 라고 말들하는데요, 이걸
정통좌파엄숙주의자들은 체제에대한 고민이 없으니까 비관적이다 하데요,,뭘어떻게 해야될지 솔직히 좌파진영 에서도 우왕좌왕 인듯해요.

드팀전 2008-05-30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주화시대라고 했던 그 시절 모였던 대중은 누군가에 의해 사주 받았던 사람들일까 생각해봅니다....현재의 현상을 '다중'의 체현으로 보는 그 호기로움에는 좀 브레이크를 걸고 싶습니다.이론적 개념들이 현실에서 구현되고 그것을 적시한 혜안에 감동먹는 마스터로 가고 싶지는 않기때문입니다. 실제로 아마 이번 시위가 정리되고 나면 학계에서 '시위의 정체성 논란'이 한번 붙을 듯 합니다. 또한 이것을 '계급정치적'으로 보지도 않습니다.(그런 사람이 있을까요?)한국적 상황에서 '다중'을 목도한 경험적 감격으로 인해 자율주의선수층들이 두꺼워지겠지요....예전에 이런 '대중'의 개념을 진보적 이름인 '다중'으로 설명할 수 없었던 시절에는 발작적인(?) 대중들의 일시성은 비판의 대상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자유주의적 시민론에서는 이런 열광적이되 단시간적인 불복종보다는 지속적 시민정신이 선진 사회를 만든다고 이야기하지요.전 이번 시위가 '다중'이나 '계급'과는 별로 관계가 없어 보입니다. 저 많은 사람들 중에 '신자유주의'에 대해 어쩔 수 없다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고, 계급 이야기만 나오면 '그거 불순사상?' 이라고 할 사람많을 거고...바보같은 정권의 바보같은 대응에 대한 반2MB정서라는 현실 정치적 요소가 가장 큰 것이라는 단순하게 봅니다.물론 그것이 더 전화될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일까..그리고 그게 없는 것 아닌가에 대해서는 생각해봅니다.궁극적으로 다중이든 계급이든 마스터베이션용 확대해석을 자제해야 한다고 봅니다.물론 시간이 지나고나면 다른 의미도 부여하겠지만.

파도는 높낮이가 다르지만 바다를 만들지요.
 

** 고등학교때 나는 '지구과학' 선택이었다. 하지만 1.2 학년때는 '화학'을 배워야 했다.수업은 거의 3분의 1만 하고 나머지는 자습이었다. 어차피 대입에 선택과목이 아니었으니까...어쨋거나 나는 화학이 싫었다. 내가 고등학교때까지 얻은 점수중에 가장 낮은 점수가 화학과목에서 나왔다.^^

지금도 인문.사회과학에 비해 자연과학과 좀 거리가 있다. 나는 '상대성 이론'과 '특수상대성이론' 이 정확히 뭔지 뭐가 다른지..그리고 그것이 만든 세계관의 변화가 무엇인지 정확히 잘 모른다. 최근에 뉴스위크 비스무리하게 생긴 단행본으로 나왔던데...자연과학 공부 좀 해야겠다.

<잡식성 동물의 딜레마>를 읽다가 '프리츠 하버' 라는 이름을 오늘 처음 알았다.저자는 프리츠 하버가 우리에게 질소를 고정시키는 능력을 주었을 때 '인간은 자연과 파우스트적 거래'를 한것인지도모른다라는 지리학자 바클라프 스밀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프리츠 하버(1868-1934)---네이버에서

독일의 화학자. 암모니아 합성법을 개발해서 현대 인류에게 가장 위대한 화학적 업적을 남긴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물을 전기분해해서 얻은 수소와 공기 중의 질소를 높은 온도와 압력에서 철 촉매를 이용하여 반응시킴으로서 암모니아를 얻는 방법을 개발한 것이다. 하버의 암모니아 합성은 퇴비와 천연 비료에만 의존하던 농업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서 단위 면적당 식량 생산량을 6배 이상 향상시키는 데에 핵심적인 기여를 함으로써 수십 억의 인류를 굶주림의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그래서 "공기에서 식량을 생산"하는 하버의 암모니아 합성법의 발명을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것이라고 널리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하버가 암모니아 합성법을 개발한 것은 이처럼 좋은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독일은 남미의 칠레에서 생산되는 칠레초석을 수입해서 전쟁에 필요한 폭약의 원료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 때 개발된 하버의 암모니아 합성법은 독일 군에게 연합군에 대항할 수 있는 화약을 제공해줌으로써 1차 세계대전의 비극을 더 오래 연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암모니아 합성법에 대한 과학적 가치는 인정을 받아서 1918년에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독일에 대한 하버의 충성은 이것만이 아니다. 그는 인류 최초로 전쟁에서 사용할 살상용 독가스를 개발한 화학자로도 유명하다. 그가 개발한 염소 가스는 1915년 벨기에 전투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어 가공할 화학무기의 개발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버는 자신이 개발한 독가스가 얼마나 위험스럽고 반인류적인가를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권은 자신이 신뢰하고 충성하던 독일 정부 지도자의 몫이라고 선언해버렸다.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의 민족을 배반하고 독일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을 바쳤던 하버 였지만, 그의 최후는 비참했다. 그의 비극은 1933년 반유태인 사상을 가진 히틀러가 집권하면서 시작되었다. 어려서부터 자신은 충성스러운 독일인임을 믿고 있던 하버를 히틀러 정권은 "유태인"으로 낙인찍어 버렸다. 1933년에 어쩔 수 없이 실험실을 떠난 하버는 같은 유태인 과학자였던 아인슈타인에게 "내 평생에 지금처럼 유태인이었던 적이 없었다"는 편지를 보내고 영국으로 이주했지만 다음해에 스위스로 가던 중에 쓸쓸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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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스로 노동자인지 뭔지 별 생각이 없다. 그냥 다른 직원들도 가입하고 뭔가 기댈 벽 하나쯤은 있어야 하니까 가입한다.

2. 치킨런의 닭들처럼 먹을거 많이 뿌려주면 다 잊어버린다.

3. 이번에 내가 직접 끌려가지 않는다면 또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잊어버린다.

4. 회사측이 들고 들어오는 '위기론' '위협론'의 담론을 가치관의 전제로 삼는다.즉 자본주의가 원래 공포를 무기로 삼는지 알지 못한다.

5. 사측이 제공하는 타협안을 대게 합리적 이성을 소유한 사람이라면 거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6. 원칙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원칙을 말하기는 쉽다' 라고 소리를 높인다.그러나 생각해보면 언제나 '원칙을 말하고 실행하는 길'이 '타협'을 하는 길 보다 어렵다. '타협'은 가서 도장찍으면 되는 일 일 뿐이다. 스스로 쉬운 길 가겠다는 것을 이렇게 돌려서 역으로 뒤집어씌운다.

7. 매번 쟁점이 발생하면 소급해서 '(과거에) 우리가 기회를 놓쳤어'라고 말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이번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할 것이 분명하다. 기회는 오는 것이 아니라 잡는 것이라는 사실은 항상 과거완료로 이해한다.

8. 노동자가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이자 무기인 '직접행동'이라는 무기는 우리 집안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9. 회사측의 개량적인 타협안을 언제나 '커다란 과실'로 착각한다. 신용할 수 없다고 말하고 또 매번 그렇게 배반을 당하면서도 '이번은 다르겠지'라고 믿는다. 닭은 동료 90마리를 기억한다고 하는데 닭대가리라고 하면 닭에게 미안한 일이다.

10. 최음제를 치료제로 아는 것은 물론이고 더 닭같은 짓은 '최음제'를 스스로 '치료제'라고 큰소리로 말하고 다닌다.

11. 나 진짜 협회니 노조니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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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8-05-21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신들이 싫어서 노조 확 탈퇴하고 싶다고 말한다.ㅠㅜ

느티나무 2008-05-21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규직 노조원으로서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 ^^;;해 봤어요~~!!ㅠㅠ
늘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시니 고맙습니다. 이렇게 생각을 벼리다 보면 실천으로 이어질 날이 있겠지요.ㅋ
 

....이번주 시사IN을 보다가 김종철 교수(지금은 교수가 왜 아닌지 시사인을 통해 알았다.)의 인터뷰가 실려서 쭈욱 읽어봤다. 생태근본주의에 대해서는 나는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환경을 걱정하고 아이들의 미래를 근심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환경,생태주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중에 하나다. 하지만 그것이 진보의 대안적 모델이라는데는 동의할 수 없는 입장이다. 김종철 선생은 생태공동체의 확산만이 근대적 모순을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생태 공동체의 의식을 가진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경향에 대해 '근대 국가의 폐지론'보다 훨씬 더 현실적인 변화라고 말한다. 가장 극적인 변혁방식은 '탈주'라는 말에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그 '탈주'의 정치적 관계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한다. 생태주의에 대한 막연한 공감에는 늘 그런 부분이 빠져있다

“적당한 성장은 자본주의 극복 전략”
입력: 2008년 05월 19일 17:32:48
 
ㆍ백낙청, 김종철 비판 반박 … 진보진영 ‘성장’ 논쟁

“생명의 발전에는 일정한 물질적 여건이 필수적이며, 어떤 영역에서는 물질생활의 지속적 향상이 요구될 수도 있고 이런 필요에 부응할 적극적인 개발도 있어야 한다. 현시점에서 한국경제가 일정한 성장동력을 유지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진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백낙청)

백낙청 ‘창작과비평’ 편집인

“자본주의 논리에 근거한 경제성장이란 언제나 가동 가능한 모든 인적·물적 에너지를 전면 투입할 것을 요구하므로 ‘적당한 경제성장’이란 성립할 수 없다. 정말 필요한 것은 성장 없이는 존속할 수 없는 근대적 방식에 대해 ‘적응’을 말할 게 아니라 성장 논리와는 무관한 질적으로 다른 삶, 즉 비근대적 방식으로 방향을 전환하려는 급진적 노력이다.”(김종철)

진보진영 내에서 ‘성장 논쟁’이 불붙었다. 계간 ‘창작과비평’의 백낙청 편집인(70)과 격월간 ‘녹색평론’의 김종철 편집인(60) 사이에서다. 자신이 창간한 잡지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목소리를 일관되게 내며 한국사회 진보담론을 이끌어온 두 지식인은 최근 상대방의 성장, 개발에 대한 관점을 비판하는 글을 주고받았다.

김종철 ‘녹색평론’ 편집인

논쟁의 장은 창비가 마련했다. ‘녹색평론’을 통해 생태와 자치 민주주의 사상을 펴온 김 편집인이 창비 측의 ‘한반도에서의 근대와 탈근대’ 특집기고 요청에 따라 창비 지난호(2008년 봄호)에 쓴 ‘민주주의, 성장논리, 農的 순환사회’라는 글을 통해 백 편집인의 ‘적당한 성장론’을 비판했다.(경향신문 2월22일자 26면 보도)

김 편집인은 이 글에서 “경제성장을 계속하면 환경과 인간성을 파괴할 수밖에 없음을 잘 아는 백낙청이 고심 끝에 내놓은 처방이 ‘방어적인 경쟁력 노선’ 또는 ‘적당한 경제성장’ 개념인 듯하다. 하지만 이것이 하나의 추상적 언술로 성립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과연 구체적 현실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전략인지 분명치 않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직선적인 진보를 추구하도록 강요하는 근대주의적 발전사관의 덫을 벗어나 토양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상호그물망 같은 호혜적 관계가 복원된 소농과 그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생태적 순환사회를 이뤄야 한다”고 했다.

이에 백 편집인이 최근 나온 창비 여름호(140호)에서 쓴 ‘근대 한국의 이중과제와 녹색담론’을 통해 김 편집인의 비판을 반박했다. 백 편집인은 “나의 적당한 성장 개념은 어차피 자본주의 체제 아래 살아갈 수밖에 없으면서도 현대 한국, 즉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특정 시기 특정 지역에서 이 현실을 극복하는 방향으로 살고자 하는 처지에서의 구체적인 대응전략으로 제안된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가 말하는 ‘적응’은 “극복하기 위해서도 최소한으로 필요한 적응, 극복 노력이 따름으로써만 ‘투항’이 아닌 주체적인 ‘적응’ ”이다.

백 편집인은 “물론 새 정부 출범 이후 더욱 기승을 부리는 성장주의와 개발주의의 광풍 속에서 근본주의적 반대운동의 효용은 그것대로 소중하다”면서도 “그러나 좋은 이야기라도 논리가 그토록 허술해서는 긴 싸움에서 승리할 방도가 안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허술한 논리’라는 비판은 김 편집인의 주장이 “어차피 자본주의체제 아래 살아갈 수밖에 없으면서도 현대 한국, 즉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특정 시기 특정 지역에서 이 현실을 극복하는 방향으로 살고자 하는 처지에서의 구체적인 대응전략”으로 현실성이 있느냐 하는 의문이다.

백 편집인은 “개인이건 국가건 자본주의의 무한 축적 원리에 충실해 최대한의 돈벌이에 목을 매고 사는 경우가 대다수지만, 적어도 개인이나 한정된 집단 차원에서는 그런 세태에 맞서 자신을 지켜내고 나아가 이런 기막힌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돈벌이를 하고 경쟁에서 탈락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결코 적지 않을 것”이라며 “당장 나 자신과 김종철을 이런 개인들 틈에 포함시켜도 되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그는 “나 역시 김종철처럼 바람직한 사회는 자본주의시대의 과소비에 비하면 사람들이 ‘고르게 가난한(共貧)’ 생활에 자족하는 사회라고 믿는다”면서도 “하지만 비록 깨끗하고 따뜻한 가난일지라도 그것을 배타적 목표로 설정하는 것은 하나의 편향”이라고 했다.

백 편집인은 “환경운동이 역사적 소임을 감당하려면 스스로도 ‘산업화 대 농업화’ ‘자본주의적 과소비 대 공생공락의 가난’이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것들이 발생할 가능성을 좀더 골똘히 읽어냈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두 지식인 사이의 논쟁은 침체돼 있던 진보진영에 생산적 토론의 부활을 알리는 것으로 보여 향후 논쟁이 주목된다.

<손제민기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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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8-05-21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창비와 백낙청 선생이가 어떤 흐름을 가지고 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녹색평론의 주장을 알고 나 역시 내 세계관의 일부로,또 일상에서 접점을 만들어 가고 있지만 그것은 체제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의 '차이'의 정치라는,즉 지젝이 말하는 '유사능동성' 정도의 하나로 포섭될 수도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해하리라고 생각한다.
 
마르크스와 트로츠키 (양장)
정성진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트로츠키는 지금은 '비운의 트로츠키'로 불리우는 된 깡마른 안경잡이의 이름이다. 인생의 질곡이 남극의 크라바스보다 깊다보니 자기를 자기라 부르지 못하고 저작권도 안주고 깜방간수 이름을 도용했다. 이름도용 당한 오뎃사의 교도관은 어쨋거나 이름 하나는 길게 남기게 되었다. 최소한 자본주의가  여름날 아침 풀입에 대롱대롱 달린 이슬처럼 햇살 아래 한순간 소멸하지 않는한 트로츠키는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

윤건차의 <현대 한국의 사상흐름>의 지식인 지도를 보면 이 책의 저자 정성진의 이름이 발견된다. 구좌파의 트로츠키주의자에 그를 포함시켜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내용에서는 트로츠키주의자 정성진에 대해 다루고 있는 양은 그다지 많지 않다. 주로 알튀세르주의자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로 가끔 인용될 뿐이고 좌파 사상의 메인스트림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윤건차가 정성진과 술 한잔 안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윤건차가 트로츠키주의를 강건너 불보듯 다루고 넘어가는 것은 80년대 이후 한국 좌파 사상 흐름을 나름대로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트로츠키는 러시아에서나 한국에서나 또 그 어디서나 소수였을 뿐이다.

정성진식으로 말하자면 80년대까지 스탈린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던 PD와 NL의 한국좌파는 90년대 소련 붕괴 이후 좌충우돌 상황에 들어가 버렸다. 대략 이제 마르크스의 재전유라는 이름으로 신사회 운동이라는 좌파흐름으로 옮겨탄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고전 마르크스의 전통은 지식인 지도에서 흐지부지되고 신좌파와 개량주의가 좌파의 주류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대략적으로 정성진의 울부짖음을 정리하자면 그런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사게 된 것은 책의 3부에 해당하는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의 자원들>때문이었다. 한마디로 하면 트로츠키주의 입장에서 세계체제론이나 위기종식론,자율주의 등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 글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내용들은 이미 <이론>,<마르크스연구> 등에 게재되었던 글이고 나 역시 이너넷을 통해서 접했다. 세대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문화접변 세대인지라 밑줄 못 긋는 한때문에 책을 사들었다. 물론 모니터로 읽다가 눈알이 빨게 지는 것을 막기 위한 보건위생적 차원도 한 몫을 했다.그러므로 안구가 튼튼하거나 밑줄의 강박이 없는 분이라면 굳이 이 책을 살 필요가 없다. 약간의 인터넷 파도타기를 한다면 이 책에 씌여진 정성진의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아니면 한국의 IS그룹인 '다함께' 홈페이지를 이용하던지 말이다.

책은 치즈냄새 폴폴 풍기는 쥐가 쫓는 미로 같다. 미로 곳곳에 마르크스 사상 논쟁사가 있다. 길을 따라가다보면 신좌파들의 마르크스 해석에 대한 비판을 거쳐 최종 목적지인 트로츠키와 고전적 트로츠키를 발전시킨 토니 클리프의 '국제사회주의 경향까지 이르게 된다. 정성진의 정치적 입장도 이와 같다. 스탈린 치하에서 부관참시 당한 트로츠키를 살려냄과 동시에 제4인터내셔널의 '구 트로츠키'를 넘어서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트로츠키인가?

 마르크스주의의 적통이 스탈린이 아니라 트로츠키에 있기때문이다. 그렇기때문에 역사적으로 과거 좌파나 우파가 마르크스주의라고 불렀던 스탈린주의는 변종이 주인 행세를 한 것 뿐이다.트로츠키는 "볼세비즘과 스탈린주의 사이에는 단지 한 줄기의 피가 아니라 피의 강이 흐르고 있다.'라고 본인 입으로 하늘 아래 양립할 수 없는 간극을 강조한다.트로츠키주의에서 보자면 마르크스의 계보는  '마르크스.엥겔스-레닌-스탈린-붕괴' 가 아니라 '마르크스.엥겔스-레닌-트로츠키- ... ' 이다. 소련과 동구권의 붕괴가 '역사의 종말'일 리 없듯이 해방의 가치로서 마르크스는 이렇게 살아난다. 그래서 이 책의 1차 주적은 스탈린 주의이다. 제 5장 <소련 사회의 성격>을 비롯해서 책 곳곳에서 수 십 차례에 걸쳐 '스탈린은 마르크스와 관계가 없다.' '스탈린의 1928년은 반동적 혁명이다' 가 강조된다. 즉 소련이 무너진 것은 사회주의가 무너진 것이 아니라 국가자본주의인 '스탈린주의'가 붕괴된 것 뿐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스탈린과 트로츠키의 정치적 악연으로만 나온 것이 아니다. 지젝 역시 <혁명이 다가온다>에서 소련 사회가 트라우마적인 트로츠키를 삭제했다라고 지적한다. 그것은 소련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동안 내내 그랬다. 고르바초프 역시 트로츠키를 복권시키지 않았다. 트로츠키는 스탈린 비판에 올인했지만 정성진은 여기서 소련 사회의 성격 분석에서 트로츠키의 분석을 따르지 않는다. 트로츠키는 스탈린 하의 소련사회를 '관료적으로 퇴보한 노동자국가'로 보았다. 1917년 혁명으로 노동자 국가가 되기는 했으나 고립된 상황에서 당의 관료들이 망쳐놓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 내에서 트로츠키의 전투 방향은 사회 혁명이라기 보다는 정치혁명이 될 수 밖에 없었다.이 점은 트로츠키의 한계로 지적 되기도 한다. 정성진은 영국 사노당의 중심이라고 할만한 토니클리프의 '세계체제론적인 소련 국가자본주의론'으로 소련사회 성격을 설명한다. 쉽게 말하자면 마르크스의 가치론을 중심으로 봤을 때 세계체제론적인 입장에서 소련은 국가가 주도하는 자본주의 양식의 하나였다는 것이다.

트로츠키가 계승 발전하고 있는 마르크스 일가의 무공은 스탈린주의를 비롯해서  여러 신좌파 이론들과의 논쟁에 무기로 등장한다. 다른 비책없이 '교과서에 충실하고, 기본기가 힘이지요'를 연상시키는 초식이다. 마르크스의 공황론,시장론,가치론,계급론,혁명 주체론,국제주의 등이 중심이된다.특히 트로츠키하면 연상되는 '영구혁명론'은 '일국 사회주의'가 마르크스의 전통과 관련이 없음을 이야기한다. 레닌에게 '사건'이라고 할 말한 1차세계대전과 '혁명적 패배주의'의 전통과도 맥을 같이하는 것이 '영구 혁명론'이다. 이것을 단순히 '국가의 소멸'로 이해하는 것도 트로츠키에 대한 오해이다. 마르크스가 기존의 사회학과 달리 자신의 이론을 '과학'이라고 했듯이 그 가문의 아들 트로츠키도 과학을 이어간다. 영구혁명이 일어나는 장소는 일국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트로츠키는 직시하고 있다.

신좌파 마르크스 이론에 대해서도 이 책은 트로츠키주의적인 입장에서 '비마르크스 이론이며 개량주의'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스탈린주의에 이어 이 책에서 공격하고 있는 제 2 주적이 자본주의 하에서 진보의 이름으로 거론되는 개량주의 흐름이다. 제 6장 포스트모더니즘 마르크스 경제학 비판에서는 앰허스트학파의 '반본질주의'에 문제를 제기한다. 계급의 현실체에 대해서 부정하고 분석의 입구로서만 이용한다는 점도 도마에 오른다.이들은 기본적으로 마르크스의 이론을 기계론적이고 결정론적으로 읽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이들이 이론적으로 기대고 있는 알튀세르의 중층결정과 최종심급으로서의 '경제'까지도 이르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또한 마르크스 전통에서 가장 핵심이라고 할 만한 변혁 주체로서 '노동자 중심성'을 부정하는 것이 마르크스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체제론 역시 분석단위의 범위를 넓히고 새로운 방법론을 제기한 것 까지는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이행론에서 계급의 역사적 인과관계 설정에 오류를 범함으로서 신고전파 경제학에 가깝와져 버린다고 비판한다.또한 자본주의 순환적인 자본주의 위기론에 있어서도 콘트라티예프 곡선에 의지한 나머지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경향법칙을 외면하고 있다고 본다. <제국>논쟁과 관련되서는 항간의 세계화론을 포스트구조주의 방식으로 재서술한 것으로 평가한다. 그리고 제 2인터내셔널의 황제였던 카우츠키의 초제국주의론의 재판이라고 폄하한다.당연히 모호한 개념인 '다중'은 '노동자 중심성'의 부재로 비판당하고 '제국'의 강조는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면죄부로 비판당한다. 트로츠키주의의 경우 자본주의를 끝내는 혁명의 핵심은 로쟈 룩셈부르크의 대중파업론의 전통에 있다고 본다. 슬라보예 지젝의 <제국>비판을 인용하여 네그리와 하트의 제국은 전(pre) 마르크스주의적이며 혁명없는 혁명을 이야기할 뿐이라고 말한다. 하트와 네그리에 대해 정성진은 '급진적인 아나키즘 수사학으로 무장한 개량주의' 라고 칭하고 있다. 물론 각각의 이론들은 비판만큼이나 많은 반비판을 담고 있을 것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이것들을 모였다가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과정 중에 걸러지는 것들이 -내게는-생길 것으로 생각한다. 예를 들어 녹색평론식 생태공동체주의가 그런 과정을 거쳐 내게서 비판적 거리로 재구성된 생각들 중에 하나다. 현실 자본주의에 대한 이론적 대안으로 정성진은 책 마지막에 <참여계획경제론>을 들면서 몇 가지 이론들간의 차이를 비교한다.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예를 들자면 한 사람의 인생 동안 몇 개의 다른 노동 형태를 계획한다거나, 대의제에 대한 비판으로 그리스 민주주식 공무원 제비뽑기 선발 제도 등은...글쎄 더 따라가기 힘들었다. 정성진이 극렬히 싫어할 말이지만 좋은 의미든 나쁜의미든 유토피아적이다. 결국 나의 시선은 마지막 장 보다 그 지난과 현재의 담론 분석에 더 큰 비중을 둘 수 밖에 없었다.. 

 김동춘은 80년대 이후 좌파의 흐름을 '완고파'와 '개량파'로 나누었는데 트로츠키주의는 완고파의 흐름에 속해있다. 한켠에서 보자면 마르크스를 교조화해서 '이것은 마르크스가 아니다' '이것은 마르크스의 주장과 다르다'라는 식으로 비판과 주장의 근거를 '마르크스'에게만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완고한 주장이 시대조류에 어긋하는 훈고학적인 것으로만 치부해서는 곤란하다. 나 역시 고전적인 마르크스보다는 포스트쪽에 더 관심이 많은 측면에서 이런 책들은 여러모로 질문과 고민점들을 되짚어보게 한다.

 그런 측면에서 신자유주의와 관련되어 '케인즈주의인가 21세기 사회주의인가'는 '자본주의 이외 대안부재론'에 대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의 답변이다. 즉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담론은 기본적으로 '나쁜자본주의'와 '좋은 자본주의'를 상정하고 시작된다. 진보적인 사람들 입에서 '그래도 신자유주의보다 낫지 않냐'고 이야기하면 ..더 이상 할 말 없어지는 거다.

 내가 생각하는 알라딘 진보의 문제가 그것이다. '케인즈주의가 신자유주의보다 못하냐? 그럼 현실적으로 그거면 됐지.' 이런 식 말이다. 근본적인 질문에 왜 우파 초딩같은 댓글 밖에 못할까가 문제 제기인거다. 우파보고 초딩같다고 비판만 할 것이 아니다. (2MB가 바보짓 하니까 갑자기 노무현이 성군이 된다. 물론 한끗 차이로 노무현이 이명박보다 낫다. 그런데 문제를 이런식으로 설정하는 것은 초딩 짓이다. 한미FTA를 반대하다고 하면서도 '그래도 역시 노무현이 낫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그 뇌세포에 박수를....물론 2MB보다는 낫다. 이 말이 그렇게 듣도 싶다면 천 번 쯤은 더 해줄 수 있다.) 이 책은 다분히 경제 이론을 중심으로 역사적 평가들이 중심이 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권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11장 케인즈주의인가,21세기 사회주의인가? >는 인터넷으로라도 읽어 보길 바라는 부분이다. <나쁜 사마리아인>으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론적 방파제가 된 듯 한 장하준 교수의 제도주의 학파도 크게 보면 케인즈주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정성진은 케인즈주의가 '나쁜 자본주의'를 '좋은 자본주의'로 대체하자는 제안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본주의 착취 자체를 거부한다고 비판한다.그런데 왜 케인즈주의가 다시 진보의 이름으로 등장할까? 정성진은 기본적으로 케인즈주의의 자본주의 친화성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가짜 사회주의의 종말과 함께 '대안'이 없다는 광범위한 믿음이 '자본주의 수정,개량론'을 진보 진영의 과제로 상승 시킨 역사적 실망의 결과라고 본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정성진은 제2 인터내션널의 베른슈타인과 카우츠키등의 수정주의 노선을 비마르크스적이라고 공박한다. 이미 정성진과 장하준은 몇 차례 논쟁도 했다.(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작금의 야만적 자본주의보다 케인즈주의가 결과적으로는 낫다...하지만 그러니까 그게 뭐가 왜 나빠요?... 라고만 이야기하지는 말자.) 정성진은 케인즈주의의 이론적 한계가 신자유주의를 몰고 왔으며 케인즈주의의 역사적 조건들이 재현 되기 힘들다고 말한다. 그리고 카르체디의 말을 인용하여 진보 진영의 선택을 묻고 있다. "마르크스인가,아니면 케인스인가?"  로쟈 룩셈부르크가 "사회주의인가,야만인가?' 를 물었던 것의 업그레이드된 반복같으나 사실 전자가 더 많은 선택의 고민을 담고 있을 수 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비판적 지지'나 '개량주의'만큼 잠시나마 사람 심사 복잡하게 하는 것이 또 없기 때문이다. 

정작 마르크스의 적자 트로츠키에 관한 책인데 트로츠키 이야기는 별로 하지 못했다.국제사회주의경향의 주된 흐름을 읽어내면 그 안에 트로츠키 사상이 들어가 있으리라 생각된다.국내에서는 <다함께>가 바로 IS그룹니다. 가끔 그 완고성때문에 좌파 내에서 비판이 되기도 하고 논쟁의 중심이 되기도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영국 사회주의 노동당의 2006년 where we are stand 내용이다. 자본주의와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투쟁,사회주의,국제주의,인종주의,제국주의 및 억압에 대한 반대,혁명정당......과거 강령에 비해 의회주의와 개량주의 비판이 조금 줄어들었다고 한다. (1992년에는 '독립적인 노동자계급 행동,개량이 아닌 혁명,의회적 길은 없다...등이 있었다) '완고파'도 시대의 정세를 정확히 읽어 내야 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그것이 마르크스와 레닌의 뛰어났던 점 아니었던가? 

 .....미친 소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하나가 아니다.그 안에는 여고생도 있고,민주당 당원도 있고, 진보 신당 당원도 있다. 생태주의자도 있고 트로츠키주의자도 있고 자율주의자도 있다.행동은 같이 할 수 있지만 함께 줄 설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도 명확하다...나는 내가 무슨 주의자인지 몰라서 '범좌파'라고 두리뭉실 이야기한다. 그런데 '무슨 주의자가 뭐가 중요하냐? '고 묻는 '결과주의',','반지성주의' 에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만은 없다. 이론은 세계관이다. 그래서 중요하다. 역사가 그렇게 알려 준다. 하루 하루 열심히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디로 가는지 무얼 위해 가는지 알고 하루 하루 가는 것이 더 낫다. (하도 쓸모 없는 오해가 많아서 이런 사족까지  단다. 앉아서 책상 물림하는 것이 전부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이론과 행동의 상호침투라고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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