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 - Philosophy + Film
이왕주 지음 / 효형출판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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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우리 동네는 가끔 '천막 극장'이 들어왔다.동네 친구들과 함께 총싸움하고 벽돌치기 하던 공터에 갑자기 못 보던 어른들이 나타난다.우리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침입자들이 하는 양을 요리조리 살폈다.동네 아이들의 시선을 등 뒤로 하고 그들은 뚝딱 뚝딱 하던 일을 계속했다.공사 현장을 지켜보는 것이 지루해 질 때쯤 돼면 여기 저기서 엄마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석아 ....밥 먹으러 와라' '준아...그만 놀고 들어와서 씻어.' 떨어지는 노을 빛을 받으며 친구들은 휑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다음 날 아침 우리들이 놀던 그 공터에는 까만 천을 두룬 거대한 가건물이 하나 들어서 있었다.'천막극장'이다.꺼끌 꺼글한 소나무 기둥과 이어 붙인 밧줄들로 지탱되어 있는 천막 극장은 거대한 코키리 같았다.동네 아이들의 호기심은 그 코끼리 내부에 있었다.아이들은 몰래 몰래 안으로 들어갔다.겁많던 나는 호기롭게 내부로 들어간 형들이 별일 없다는 신호를 보내기 전까지는 천막 극장 앞에 쭈볏쭈볏 서있었다.형들이 극장 천을 살짝 들어 올리며 괜찮다는 손짓을 보내면 고개를 숙이고 벌어진 틈으로 머리를 디밀었다.낮 시간 동안 천막극장 안은 아무 것도 없었다.그냥 맨 땅에 흰 벽면,그리고 중간 중간 송진내를 풍기는 소나무 기둥들이 전부였다.그래도 아이들은 마치 실내 체육관에 들어온 듯 즐거워했다.하지만 신세계에 적응하기도 전에 아저씨들의 호통에 도망치 듯 천막 극장을 빠져 나와야만 했다.그리고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우리 동네 천막극장은 3개의 영화를 동시에 상영했다.한 편은 만화영화 였고 두 번째 영화는 '일지매' '각시탈'같은 국산 액션영화였다.마지막 영화는 성인 영화였는데 짐작만 할 뿐 당시 상영했던 영화의 제목은 떠오르지 않는다.두번째 영화가 끝나면 대개 8시쯤 되었던 것 같다.그 다음부터 까만 코끼리 내부는 어른들만을 위한 공간이었다.캄캄한 밤에도 켜져있던 공장 서치라이트가 천막극장 영사기에서 쏘는 빛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친구와 영화 무용담을 나누며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영화 과잉 시대에 살고 있다.멀티 플렉스에서는 매주 영화가  바뀌어 올라온다.푸른 조명과 팝콘,박스 오피스의 친절함 속에 영화는  '베스킨라빈스 31'의 아이스크림처럼 소비되고 있다.나는 영화가 과잉 소비되고 있는 사실이 몹시 불쾌하다.나는 영화를 하나의 예술 장르라고 믿는다..하지만 어떤 이들에게 영화는 체리 주빌레를 먹을 것인가 아몬드 피스타치오를 먹을 것인 가하는 상품소비의 대상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활동사진이란 이름으로 영화가 등장하고 난 이후 영화를 둘러싼 상업성과 예술성과의 갈등은 클래식한 질문이다. 영화는 초기 제작 단계부터 자본과 협업이란 형태-즉 산업의 한 형식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었다.그 특성으로 인해 영화는 다른 순수예술-편의상-에 비해 깊이 있는 장르로 존중 받지 못했다.또한 상업성이란 족쇄는 만드는 이와 보는 이로 하여금 영화는 영화관에서 파는 팝콘과 별다를 바 없는 것으로 여겨지게 했다.실제로 나는 우리 영화 관객들 대부분이 영화와 영화관의 팝콘을 본질적으로 동일하게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이면 대개 아침 회의 후 직원들은 그런 말을 나눈다. '00영화 어땟어? '00영화의 주인공은 어때?"  무수하게 영화와 관련되 이야기들이 오고 간다.하지만 대개 이야기의 핵심은 '재미있다''재미없다'로 귀결된다.그 단순한 감상도 그 영화가 간판 내릴쯤 되면 기억에서조차 사라진다.가끔 욱하는 마음에 그 단순한 결론에 이의를 제기하지만 별로 먹히지도 않고 나만 뭐 잘난 척 뾰족한 사람돼는것 같아서 그만 둔다.

이야기가 길어졌다.<철학,영화를 캐스팅하다>는 '영화 과잉, 담론 부재'의 대중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책이다.'영화를 본다'는 행위가 단순히 극장에 앉아서 스크린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난 후 남은 팝콘을 쓰레기통에 비우며 '그 영화 재밌네' 하고 끝내는 단순행위가 아니어야 함을 일깨워주고 있다.책 서문에서 저자는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이렇게 말한다.

영화의 한살이가 너무도 짧다.대박을 터트려서 각종 흥행기록을 갈아치우는 영화들조차 한 철을 버티지 못한다....흥행작이 이럴진대 먹물 냄새 풍기는 예술영화의 경우에 새삼 무슨 말을 더 보탤 것인가......문학,철학,예술의 독자나 관객들은 그토록 잔인하지 않다....하지만 영화를 대할 때는 다들 성마르게 다가서서 서둘러 즐기고 조급하게 판단한 뒤 황망히 잊어버린다.그 다음에는 두 번 다시 시선을 돌리려 하지 않는 것이다.

영화를 하나의 예술 장르로서 독해해야 한다는 저자의 간곡한 바람이 묻어난다.저자의 머릿말 처럼 <철학,영화를 캐스팅하다.>는 조금은 철지난-그래봐야 그리 오래지도 않았지만-영화 작품들의 텍스트 분석이다.텍스트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잣대가 필요하다. 저자는 철학적 개념들을  영화를 분석하는 한가지 기준으로 삼는다.하지만 잘 살펴보면 영화 분석을 위해 철학적 개념을 들이민 것만은 아니다.오히려 한 가지 철학적 개념을 소개하기 위해 영화를 이용하고 있는 것에 가깝다.'영화가 철학을 캐스팅'한 것이 아니라 '철학이 영화를 캐스팅'한 것이라는 제목에서 보여지듯이.물론 누가 주체가 돼었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철학적 개념과 영화 텍스트가 상생을 이루며 대중들에게 두 이야기를 다르게 또는 새롭게 보게 만드는 결과만 가져온다면 돼는 것이다.철학과 영화의 만남에 등장하는 개념들은 이렇다.트루먼 쇼는 들뢰즈-가타리의 '노마드' '탈주'라는 개념,슈렉은 '포스트모더니즘론'과 칸트의 '숭고'개념,동사서독-내가 무척 좋아했던-은 베르그송의 '표층자아,심층자아' 굿 윌 헌팅은 파스칼의 '섬세 정신'..그리고 중경삼림,쉘 위 댄스 등등의 니체,와호장룡의 '장자'.....등등등

각 개념들에 대해 굳이 여기서 언급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철학사를 흔들었던 중요한 아이디어들이기때문에 몰랐다면 이번에 관심을 가지면 돼고 또 알고 있었다면 조금 쉽게 영화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정리하면 그만이다.책의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은 분명하다. '온전한 자아 찾기' '참 나 찾기' 정도로 요약하면 조금 단순화한 경향은 있지만 그리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나와 나를 둘러싼 사물,그리고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철학이 필요하다.철학 만이 총체성을 담보해 주기 때문이다.영화라는 단편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 <철학,영화를 캐스팅하다>가 추구하고 있는 바라고 생각된다.여러모로 많은 장점에도 조금 아쉬운 것이 있다면 구성의 문제이다.한 편의 글은 세가지 단락으로 나뉜다.개인적 경험,문제제기가 서론.그리고 영화의 줄거리.결론에 해당하는 철학적 개념의 분석....이 패턴은 각 장마다 똑같이 적용된다.일단 이러한 통일성은 독자가 내용을 쉽게 파악할 수 있고 다음에 어떠한 글이 나오리라는 예상을 가능케해서 부담감을 줄여준다.통일성을 얻기 위해 약간 포기해야 했던 부분이 구성의 자유로움이었을 것이다.물론 개인적인 사견이지만 종횡무진 넘나드는 글쓰기였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다음 작품에서는 그러한 넘나드는 글쓰기를 만날 수 있길 기대해본다.

<철학,영화를 캐스팅하다>를 보면서 다시 비디오 샵에서 빌려 보고 싶은 영화가 생겼다.개봉 당시 먼저 영화를 본 친한 친구-영화아카데미 졸업하고 지금은 드라마 찍는다-가 '..딱 너 같은 영화다..'라고 했던 <동사서독>, 글을 읽는 내내 뉴질랜드의 풍광과 바닷가에서 울리는 주제음악이 머리를 울려서 결국 CD찾아 듣게 했던 <피아노>,영화 개봉 후 철학적 담론의 난장판을 만들었던 <매트릭스1,2,3>...다시 보고 싶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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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05 14: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팀전 2006-04-05 18:20   좋아요 0 | URL
^^ 수정.... 전부 다 손대기는 힘듬.
 
황해문화 50호 - 2006.봄
황해문화 편집부 엮음 / 새얼문화재단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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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지 리뷰는 귀 빠지고 처음 써 본다.내가 일등 할 줄 알았는데 이미 선수를 치신 분도 계시다.ㅜㅜ 내가 한 동안 즐겨 봤던 계간지는 <당대비평>과 <사회비평>이었다. 한국의 근대 문제에 대한 <당대비평>의 포스트모던한 시각은 신선했다.이제는 일상적인 용어가 돼어버린 '일상적 파시즘' 논의에 불을 지핀 것이 임지현을 필두로 한 <당대비평>이었다.또한 강준만을 필두로 한 <인물과 사상>의' 안티 조선운동' '상업주의 좌파'논의에 <당대비평> 필진 들이 걸려들어 논쟁은 불꽃이 일었다.그리고 그 논쟁에 김진석이 주도하던 <사회비평>과 진중권의 <아웃사이더>등이 백가쟁명했다.논쟁의 당파성을 떠나서 계간지를 통한 공론의 장이 형성돼었던 시대가 언제 일인가 싶다.불과 몇 년 사이에 대개의 계간지가 문을 내렸다.동시에 그 많던 사회적 담론들 역시 문을 내린 듯 하여 안타깝기 그지 없다.물론 공론의 장에서 형성된 논쟁들이 우리 사회에서 일거에 사라진 것은 아니다.이제는  각개의 논의들이 저자의 단행본에 의지해야 하는 것이 안타깝다는 것 뿐이다.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이들이 떠난 자리에 <황해문화>의 위치는 돋보인다.내가 서점을 이용하던 시절,계간지 파트에 쌓여 있는 책 중 <황해문화>는 일단 눈에 들어오지 않았음을 시인한다.일단 <창작과 비평>처럼 오랜 연륜이 가져다 주는 지명도도 없었다.또한 제호에 들어 있는 '황해'라는 말이 지역적이며 또한 그와 유사한 이미지의 지엽적이라는 이미지도 주었기 때문이다.내게 <황해문화>의 이미지는 각 지역마다 지역문인들이 만드는 약간은 조잡해 보이는 '문학지''지역사회비평지' 정도의 영상으로 머릿 속에 남았다.물론 지독한 편견에서 기인한 것이다.당시 서점에서도 아마 표지와 목록 한 두장 넘겨 보고 그렇게 단정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황해문화>가 50권째 책을 냈다.서울이 아닌 지역의 한계를 생각한다면 대단한 일이다.인천이란 도시의 지역 특성은 정확하게 알 수 없다.하지만 수도권이란 이름으로 서울에 묻어가면서도 독자적인 역사와 독자적인 지역문화가 존재하는 곳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지역 관공서가 가장 자주 쓰는 표현 중에 하나가 '지역에서 세계로..' 뭐 이런 식의 구호들이다.세계까지는 몰라도 <황해문화>가 이루어가고 있는 방향은 분명 '지역에서 나라 전체로...' 에는 해당할 듯 하다.이번 특집호의 주제는 '대한민국의 상처와 희망'이다.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 50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글쓴이들이 평범한 사람들은 아니다.대개는 '마이너리티'들이다.장애인,비정규직 노동자,이주 노동자,재일 조선인,철거민,에이즈 환자,납북자 가족 .... 글쓴이들의 개인사를 듣고 있노라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사회,역사 문제 전체를 조망할 수 있게 된다.<황해문화>가 계간지로서 가지고 있던 아이덴티티에 비해 조금은 대중적이지만 현 시대의 선결과제들을 전부 건드린다는 차원에서 50호 특집판으로 기획은 손색이 없다.물론 각 장의 통일성에서는 어느 정도 양보할 수 밖에 없다.글쓴이들의 역량에 따라서 또는 글쓰는 방식에 따라서 담론의 수준은 천차만별이다.어떤 경우는 마치 대자보를 보는 듯 하다.또 다른 경우는 한 개인의 경험에 바탕을 둔 일상사 이야기가 담겨 있기도하다.이번 기획은 아마 이러한 글쓰는 양식의 차이 조차도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다양한 방식의 하나로 보는 듯 하다.그렇다면 다시 한번 기획 자체의 발상 전환에 대해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한국 사회의 '마이너리티' 이야기는 최근 인문사회과학의 최대 화제이다.만화,영화,소설,TV다큐멘터리 등등 매체의 종류와 장르를 불문하고 소수자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다.하지만 실상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를 바라보는 시각은 파편화 되어 있다.그냥 개인의 불행이나 재수 없음,별난 인간,사회 부적응아,원만하지 못한 자 등으로 바라보는 것이 대다수의 시각이다.모든 문제들이 사실은 사회구조적 차별에서 발생하는 것임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철거민의 예만 들어도 그렇다.철거민이 생기는 가장 큰 원인은 결국 근대산업화와 농촌의 붕괴이다.전근대 이전의 빈곤이 근대로도 이어지고 또한 대한민국의 과잉교육열에서 소외된 또다른 교육부재로 이어져 다음 세대에도 이어질 것이다.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철거반과 싸우는 철거민들을 보며 법질서 위반자라는 둥 가난은 나랏님도 못구한다는 둥 빈곤과 강제철거 문제를 개인의 능력부족으로 만 취급한다.언젠가 신문에서 본 이야기가 있다.어느 어머니와 아들이 길을 걷고 있었다.도로에서는 맨홀 안에서 청소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엄마 왈 '저거봐 너도 공부 열심히 하지 않으면 저렇게 된다'.무식한 다수는 언제나 이런 식으로 문제를 개인화하고 세대를 걸친 개인의 성공만을 독려한다. 이런 사람들의 생각을 깨부순다는 것 참으로 난망한 일이다.이런 사람들이 소수자와 관련된 책들을 보고 생각을 바꾸어야 하는데 사실 그들은 자신을 어렵게 만드는 발칙한 생각은 회피하기 일수다.그러므로 변화는 더욱 난망해진다.

소수자 문제에 대해 생각하면 사실 마음이 답답해진다.세상에 소수자들이 너무 다수다.그들을 위한 우리사회의 배려와 시스템적인 지원은 너무 미비하다.지하철의 장애인 이동 휠체어는 계속 누르고 있어야 올라온다.거북이 걸음 속도로.겨울이 되면 지하철 입구에서 휠체어 올라올 때까지 그 곱은 손으로 버튼을 계속 누르고 있어야 한다.10분이상이 걸린다.날씨가 추워서 기계가 오작동하면 승무원을 불러야한다.승무원을 부르고 고치고 뭐하고 나면 지하철 입구에서 승강장까지 가는데 무려 30분이 걸린다.일반적인 사람들은지하철 10분 연착하면 폭동을 일으킬 정도로 화를 낸다....세상에 너무 많은 소수자들...그들의 싸움에 박수를 보내주진 못할 망정 돌을 던지지는 말자.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나라 망치는 매국노도 아니고 노점상들이 도로정체의 주범도 아니며 트랜스젠더가 비도덕적인 악마도 아니다.

나는 이 책에서 소수자들이 바라는 마음 한 구절을 얻었다. 선천성 척수장애인 박찬오씨가 쓴 글의 맨 마지막 문장이다.

" 장애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황박사의 기적같은 줄기세포가 아니다.당신과 동네 포장마차에서 줄기세포가 필요한지를 토론하며 취하는 것이다.".....

한동안 계간지를 접었는데 다시 편 기념으로 정기구독이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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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6-03-22 12:32   좋아요 0 | URL
편집장님 좋아하시겠네요. 흐흐.

돌바람 2006-03-22 12:43   좋아요 0 | URL
저도 계간지 리뷰는 코에 바람 들어간 이후 처음 써봅니다. 호호^.,^
나중 썼으면 저도 좀 쿨하게 별 하나 깍을 수도 있었는디...

드팀전 2006-03-22 16:43   좋아요 0 | URL
1년에 4권 2만원이데요.(맞나?)..뭐 그정도면....
별 하나 깍은 거는요.돌바람님 글의 마지막에 동의하는 부분이 있어서요.'오타무시파'인 저도 몇 개 봤습니다....기획 특성상 우후죽순의 글들이 산만하게도 느껴지고...장점이기도 하지만.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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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때문에 며칠을 고생하고 있다.약 먹고 병원 가보고 해도 별로 차도가 없다.3류 스티커 회사에서 만든 테이프는 떼어 내도 자국이 끈적 끈적 남는다. 이번 감기가 싸구려 테이프 같다는 생각이 든다.아주 크게 아프지도 않으며 끈끈하게 떨어지지 않는.... 가끔은 삶이 이런 싸구려 감기 같다는 생각이 든다.지루하며 끈적거리는 삶...사람들이 드라마나 영화의 갈등과 해결에 눈을 처박고 있는 것은 삶의 점액이 그 안에서는 한번에 해결되기 때문일 것이다.순간의 몰입은 영원한 지루함을 잠시 잊게 해주니까.... 시지프스는 얼마나 타임아웃을 걸고 싶었을까...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은 나의 독서행위가 일상의 번잡함으로 인해 방해 받고 있을 때 들고 있던 책이다.그런 면에서 이 책은 부적절한 시간에 나와 만난 셈이다.사람의 인연도 때가 있듯이 책과의 인연도 때가 있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든다.시간도 좀 여유롭고 마음도 한가할 때 이 책을 만났다면 나는 또 다른 면을 이야기할 지도 모른다.하지만 나와 스밀라의 인연은 마치 나침반의 각침 처럼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이 책을 꾸준히 앉아서 본 적이 그다지 많지 않다.책도 두껍긴 했지만 하루 20분 어떨때는 1시간..그러나 그 중  졸면서 비몽사몽 본 시간이 40분...다음 날은 앞의 이야기가 어디까지 돼었는지 읽었던 부분을 다시 찾아야만 했다.또 사건의 진행과 함께 등장하는 인물들이 앞에 언급된 듯 하여 다시 찾아보러 가는데 없는 시간을 쪼개야만 했다.그것도 귀찮을 때는 그냥 무언가 중요한 인물이겠거니 하고 넘어 가기 일수였다.특히 책의 2부에 해당하는 바다의 장은 그냥 그냥 사건만 쫓아 다녔다.우선 배라는 공간 구조가 내겐 전혀 익숙하지 않았다.아마 10%도 공간 특징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스밀라가 음모를 밝히려고 배의 여기 저기를 돌아다니는데 내게 스밀라가 암흑의 공간을 헤메고 다니는거나 다름없었다.이렇게 되니 당연히 건성 건성 읽기는 가속도를  붙이기 마련.사건의 음모가 점점 밝혀지는 순간에 그다지 큰 마음 졸임을 느끼지 못했으니 추리소설로서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과의 인연이 결코 좋았다고 할 수 없다.

물론 처음부터 이 책을 건성건성하는 마음으로 본 것은 아니다.책 초반부는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덴마크 밤거리의 잿빛 분위기,그린란드의 하얀 설원...약간 긴장감을 유지하게 해주는 차가운 정서 등은 책에 대한 호기심을 높여주었다.또한 많은 이들이 빠져들었던 여주인공 스밀라의 매력은 나 역시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스밀라가 가진 여성성과 자연이 준 강인함.근대 소설이 여성에게 부여하는 가장 이상적인 캐릭터들은 이러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생의 한가운데>의 주인공 니나가 그랬고 <영혼의 집>의 여주인공들이 그랬다.가깝게는 영화 <에일리언>의 주인공 역시 모성과 강인함이라는 두가지 요소들 동시에 가진 이상적 모습으로 그려졌다.<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의 주인공 스밀라의 매력은 그녀의 모성과 강인함이 그린란드인이라는 소외자의 정체성에 바탕을 둔 것이기 때문에 더욱 신비로와 보인다.그린란드는 이 책에서 문명에 대비 되는 자연,침략에 대비되는 평화를 상징한다.스밀라의 매력은 전적으로 그린란드인인 그녀의 어머니와 동토의 땅이 그녀에게 베푼 것이다.근대 세계의 성공을 상징하는 스밀라의 아버지가 평생 스밀라의 어머니를 그리워한것,또한 그다지 사이가 좋지 못한 딸 스밀라에게 보이지 않는 사랑을 끝없이 베푸는 것들은 문명 세계가 가진 비문명과 자연에 대한 강박증적인 애정이다.이런 원시와 자연에 대한 애정은 근대의 독자들 역시 공유하는 것이기에 스밀라에 대한 애정의 감정은 무한 증폭하게 된다.

소설<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은 구분상 추리소설이다.한 아이가 지붕에서 죽은 채 발견되고 그 뒤에 석연치 않은 점이 발견된다.그리고 이를 추적해가는 과정에 조직적인 방해를 받는다.뭔가 대단한 음모가 있었던 것이다.추리소설의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지만 이야기의 전개가 그다지 스피디하지는 않다.대신 스밀라의 관념적인 해석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들이 그 공간을 채운다.사건 중심의 전개를 바라는 독자에게 분명히 후자가 전자를 방해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사건은 스밀라를 살해하려는 범선 화재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스피드를 높인다. 스밀라가는 몰래 문제의 선박에 동승하게 된다. 이 후 사건의 진행이 좀 치밀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모두 그녀를 감시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염탐은 비교적 순탄하게 풀려간다.중요한 서류들도 비교적 쉽게 쉽게 확보한다.몰래 잡입도 너무 쉽고 탈출도 그다지 조마조마 하지 않다.물론 마약 문제로 슬쩍 맥거핀을 쓰기도 하고 또한 스밀라에 대한 테러로 긴장감을 높이기는 한다.하지만 스밀라가 직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몸소 뛰어다니는 장면에서 왠지 액션 주인공으로 바뀌는 듯 현실감이 희미해져 간다.

두꺼운 책 분량에 비해 얇은 인연을 맺을 수 밖에 없어서 안타깝다. 세상의 모든 것이 나름대로 맺은 인연의 깊이가 있다는 생각으로 아쉬움을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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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달 2006-03-14 16:39   좋아요 0 | URL
저도 아직 사용해보진 않았지만, 식초가 테이프의 흔적을 없애는 데 좋답니다..그런데 감기는?? 암튼 빨리 가뿐해지시길..
 
한국전쟁 - 끝나지 않은 전쟁, 끝나야 할 전쟁
박태균 지음 / 책과함께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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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빛으로 먼저 온다.이제 눈 앞이다.봄.... 시 한 편 읽고 시작하자.

초토의 시    -구상-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웠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구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 바른 두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욱 신비스러운 것이로다.

이 곳서 나와 너희의 넋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 땅은 삼십 리면
가로 막히고,

무주 공산(無主空山)의 적막만이
천만 근 나의 가슴을 억누르는데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램 속에 깃들여 있도다.

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
구름은 무심히도
북으로 흘러가고,
어디서 울려 오는 포성(砲聲) 몇 발,
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앞에
목놓아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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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난지 50년이 넘었다.하지만 지금도 지리산 어느 골짜기엔  이름 없는 파르티잔의 원혼들이 녹아내려가는 잔설과 함께 봄을 맞고 있을 것이다.한국 전쟁은 우리에게 너무 많이 알려져서 또 너무 모르고 있는 전쟁이다.전쟁 세대의 직접적 경험은 너무도 강렬해서 객관의 시각을 압도한다.또한 한 쪽만을 강요한 정권은 반공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가치를 다음 세대에게 전수했다.절차적 민주화가 어느정도 이루어진 후에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한국전쟁은 6.25사변이며 북괴의 남침 야욕이다.이 관념은 너무도 강해서 대한미국 헌법도 뛰어넘는다.동국대의 강정구 교수는 그의 학문적 연구 내용을 가지고 마녀사냥을 당했다.강정구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 역시 보수언론의 몇 줄 기사에 흥분하여 돌을 던진다.그들의 앙다문 입술과 눈매에선 마치 탱크를 향해 육탄돌격을 마다 않던 학도병의 결연한 의지마저 엿보인다.이제는 좀 달라져도 될 만큼 시간이 흘렀는데.......

대학교 1학년 세미나가 떠오른다. 신입생들을 가장 당혹케 하는 역사 공부시간.고등학교에선 거의 배우지 않았던 현대사의 숨은 이야기들이 재미와 혼란을 가중시켰다. 한국 전쟁 이야기까지 역사가 흘러가면 곳곳에서 끙끙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신입생들의 반응은 대게 '끙...그게 아닌데' '북한놈들이 그런거 아니야' 대개 이런 반응들이다.무엇이 진실인지는 아직 모른다.하지만  교과서에서 배운 역사만이 진실로 향하는 유일한 길이 아님을 알았다면 그것만으로도 그 수준낮은 세미나의 역할은 다한 것이리라.

박태균 교수의 <한국전쟁>은 2005년 여러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될 만큼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럴 말한 가치가 있는 좋은 책이다.특히 반강제성을 띤 역사세미나의 수혜를 받지 못한 요즘 대학생 친구들에게 추천할 만 하다.(책 좀 팔아 줄려면 대학 논술에도 좋다고 해야하나..) 이 책의 미덕은 여러가지다.

우선 한국전쟁에 대한 입체적 접근이 돋보인다.이 책은 그동안 학계의 한국전쟁 연구의 다이제스트판이다.물론 책의 분량이 그리 많지 않아 상세한 접근은 애초부터 힘들었을 것이다.저자는 이 책이 개론서만은 아니라고 말한다.그러나 독특한 시각보다는 그간의 연구를 종합한 성격이 훨씬 강한 것이 사실이다.그래서 한국전쟁에 관해 몇권의 책을 본 사람들에게 이 책은 수능앞두고 다시 돌아보는 하이라이트 책 같은 정도의 느낌을 줄수도 있다.반면 한국 전쟁에 대해 피상적으로 느끼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전쟁을 둘러싼 다양한 시각을 제공해 준다.전쟁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 부터 시작해보자.고등학교 교과서에서는 한반도 공산화를 위해 소련의 사주를 받은 김일성 정권의 도발이 그 원인이다.하지만 좀 더 근원적으로 전쟁의 기원을 살피면 국내 갈등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의 변화가 그 기원이 될 수 있다.저자는 내적 기원론과 외적 기원론으로 나누어 이를 설명한다.내적 기원론의 핵심은 한반도 내의 좌우익 정치갈등이 전쟁의 원인이라는 것이다.외적 기원론은 한반도 내에서 소련에 비해 열세적 권력 구도를 형성한 미국의 한반도 정책 집행에 그 기원을 둔다.저자는 각 주장들이 가진 한계에 대해서도 짚고 넘아가는 균형감각을 보여준다.전쟁도발에 대해서도 저자는 종합적인 시각을 유지한다. 교과서에서 배우는 남침설,그리고 북침설,대학 시절 가장 인기가 많았던 남침유도설.특히 저자는 남침유도설에 대해 좀 더 상세히 설명한다.이를 설명하기 위해 미국 전략의 변화,미군의 철수 이유,미군의 공군 중심 전술변화,한반도의 인플레이션 등등이 소상히 설명된다.남침 유도설을 설명하는 논리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1950년대 초반 한국사회의 안정성등을 들며 남침 유도설이 갖는 한계 역시 지적한다.

이 책은 한국전쟁을 둘러싼 전후 관계에 대해서도 친철하다. 전쟁 전후의 한반도 상황에 대해 거시적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해방 후 한바도 정세에 대해서도 꼼꼼히 설명한다. 모스크바 3상 회의부터 시작되는 한반도 분단과정과 당시 국내 정치 세력들의 움직임,좌우 합작운동,스탈린과 김일성의 만남, 미국과 소련의 세계 외교전략의 변동에 따른 한반도 정책 변화 등등.... 이러한 포괄적인 접근은  한국전쟁이 한반도에서 이루어진 대리전이자 냉전을 알리는 최초의 전쟁임을 명확하게 이해시켜준다.

이 책은 또한  한국 전쟁의 수수께끼를 제시하면서 역사책 읽는 재미를 붇돋운다.대표적인 것들이 한국전쟁의 실패 라는 장이다.여기서는 한국전쟁 동안 북한과 미국의 전략적 전술적 실패 내용을 설명한다.여기에는 개인적으로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많이 숨어 있어서 흥미있었다.저자가 들고 있는 한국전쟁의 실패는 이런 것들이다.왜 북한은 서울에서 사흘을 머물렀는가? 왜 소련은 안전보장이사회에 불참했을까? 북한은 왜 사전 정보에도 불구하고 인천방어를 소홀히 했는가?미국은 왜 38선 돌파 결정을 내렸는가? 등등이다.각 각의 이유가 제한된 자료안에서도 설득력있게 설명된다. 대표적으로 북한이 전쟁을 빨리 끝낼 수 있었음에도 서울에서 사흘을 소비한 것에 대해 저자는 '제한전쟁설'을 인용한다.즉 북한은 처음부터 서울만 점령함으로써 전쟁을 끝내려 했다는 설이다. 인천상륙작전같은 경우도 미리 정보가 있었음에도 낙동간 전선의 궤멸을 두려워한 전술적 선택으로 보고 있다.

저자는 책 후반부로 가면서 포로 송환 문제,이승만과 미국의 갈등 그리고 타협,민간인 학살 문제,정전협정 문제등을 이야기한다.이렇게 보면 6월 25일 북한이 밀고 내려왔다는 것 말고도 한국 전쟁을 둘러싼 역사적 내용들은 너무나 많다.한 주제를 가지고도 책 몇 권 분량은 족히 나올 법하다.책은 얇고 이 모든 것을 전부 다룰 수는 없다.저자 역시 민간인 학살문제에 대해 지면 부족을 아쉬워했다.하지만 독자 입장에서 이 책에서 못얻은 것은 또 찾아보면 될 터. 한국전쟁의 방대한 역사를 책 한 권으로 다 얻으려는 것이 욕심이다.단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 알아보는 네비게이터 역할을 이 책은 충실히 해내고 있다.그런면에서 좋은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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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6-02-21 13:50   좋아요 0 | URL
전 리뷰에도 썻듯이 요즘 대학생들이 좀 봤으면 좋겠어요.요즘 애들은 어떤 공부를 하는지 영 알수가 없네요.영어 공부? 지들 학과 공부? 그외엔 안하나 아님 하나?

글샘 2006-02-21 17:35   좋아요 0 | URL
보관함으로 갑니다.^^
김동춘의 전쟁과 사회 읽고는, 한국 현대사에 대해 새로 공부해야겠단 생각이 새삼 듭니다.

레이첼 2006-02-21 18:37   좋아요 0 | URL
정말 좋은 리뷰였어요. 이 책 읽고 감동했던 저도 추천 한 표~!

2006-03-02 2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돌바람 2006-03-30 23:51   좋아요 0 | URL
저는 대학생 아니지만 땅스투를 누릅니다. 아줌마가 뭐하는 거냐고, 대학생도 안 읽는 것을... 으그그

드팀전 2006-03-31 18:25   좋아요 0 | URL
ㅋㅋ 돌바람님....아줌마가 위대하죠.ㅎㅎㅎ
 
디아스포라 기행 - 추방당한 자의 시선
서경식 지음, 김혜신 옮김 / 돌베개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슬란드에서 살고 싶었다. 나의 어떤 시절 상상 속의 도피처 같은 곳이다. 왜 하필이면 아이슬란드냐고? 우선 거리상 상당히 멀다. 정서상으로는 더욱 멀다. 그 흔한 외신 뉴스에서도  아이슬란드 이야기는 잘 나오지 않는다. 나는 아직  그 나라 사람들이 어떤 언어를 쓰는지 알지 못한다. 수도가 어디인지도 모른다. 그곳에 한국 사람들이 별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여하튼 나를 모르는 곳, 어린 아이들의 지도 찾기에서도 소외된 곳에 스스로 유배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뮤직 비디오의 실연당한 남자 주인공 마냥 얼음의 땅에서 외톨이 된 자의 마음으로 천년쯤은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들은 한번쯤 스스로 추방되기를 원한다. 젊음의 고민이 100층짜리 빌딩만하고 사람 관계가 대륙 횡단한 버스 운전사의 등허리같이 피곤할 때 사람들은 어디론가 증발하고 싶어진다. 스스로를 타인으로 부터 격리시키고 떠다니기를 원한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스스로가 아니라 타자에 의해 추방당하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재일 조선인은 우리 역사가 추방시킨 사람들이다 .최인훈의 <광장>의 주인공처럼 어디에도 머물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재일 조선인 서경식의 <디아스포라 기행>은 떠도는 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떠도는 자들의 이야기이다. 붙박인 사람들과 다른 떠도는 자의 시선을 서경식은 이렇게 말한다.

 

고정되고 안정된 것처럼 보이는 대상도 그것을 보는 편이 불안정하게 움직일 때는 달리 보인다. 다수자들이 고정되고 안정적이라고 믿는 사물이나 관념이 실제로는 유동적이며 불안정한 것이라는 사실이 소수자의 눈에는 보인다.

 

서경식의 <디아스포라 기행>은 4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근대 국가와 배제를 통한 국민 만들기를 이야기하는 <죽음을 생각하는 날>, 광주 망월동과 비엔날레, 재일 조선인 화가들의 이야기를 다룬 <폭력의 기억> 카셀의 도쿠멘타전에서 만난 디아스포라 작가들의 이야기 <거대한 일그러짐>,펠릭스 누스바움, 슈테판 츠바이크, 장 아메리 등 역사의 폭력 속에 살아온 디아스포라들의 삶을 이야기한 <추방당한 자들>

 

이 책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것 중에 하나는 '배제'이다. 디아스포라를 뜻하는 '이산' 에서부터 타자의 냄새가 묻어난다. 근대는 결국 '배제'를 통해 이루어진 관념이라는 것에 저자의 생각이 머문다. 서경식 자신이 재일 조선인으로서 차별과 배제의 공간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시선이 동일한 경험을 한 디아스포라들의 작품에 머무는 것은 자연스럽다. 광주 비엔날레에서 만난 니키 리의 작품을 보면 이들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니키 리는 자신의 사진 작품 속에 여러 가지 아이덴티티로 등장한다. 즉 어디에도 속할 수 있지만 어디에서나 뭔가 어색한 존재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나이지리아인 잉카 쇼 니바레의 작품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식민 모국과 식민지의 아이덴티티 혼재 속에서 식민 지배가 일궈온 무의식의 거대한 일그러짐에 까지 의식의 지평이 닿는다.

 

서경식이 말하는 재인 조선인의 '배제'는 영토적인 의미와 언어적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다. 우리가 민족이나 국민이란 이름을 묶는 경우는 대개 한반도, 한국어라는 한정된 잣대가 존재한다. 서경식처럼 일본 땅에 있으며 일본문화가 더욱 자연스러운 이들은 그저 듣기 좋은 소리로나 '한민족'일 뿐이다. 월드컵이나 올림픽 할 때 한번 씩 등장하여 해외동포들도 자랑스러워한다며 등장하는 게 그들의 역할이다. 평소에 우리는 그들을 국민에서 배제하며 잊고 있다. 편협한 배제에 대해 실용적인 관점에서 정부는 해외동포법이니 뭐니 하면서 한민족 네트워크를 형성한다고 애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도 대개 구미를 중심으로 한 포섭일 뿐 실제 조선족이나 고려인들은 껄끄럽기만 할 뿐이다.한민족 네트워크가 진정으로 형성되려면 통일을 통한 국민국가의 프로젝트의 완결이 선행되어야 한다. 통일의 필요성을 주창하는 정부 홍보물에도 늘 등장하는 말이다.

 

결국 근대의 필수조건인 '배제'를 해결 할 수 있는 것은 디아스포라의 시선임이 확인된다. 그들은 뿌리가 약한 만큼 더 많은 것들을 포용할 수 도 있다. 프레모 레비가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이후 한 인터뷰는 이렇다.

 

디아스포라 상태의 유대인은 이스라엘에 강화되고 있는 공격적 내셔널리즘에 저항할 책임이 있으며 디아스포라가 키워온 관용사상의 전통을 지켜야한다. 유대 문화의 뛰어난 점은 역시 디아스포라라는 상태, 그 다중심성과 관련이 있다.

 

프레모 레비를 인용해서 서경식이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 역시 이 문장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근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대가 만들어 놓은 강고하고 촘촘한 사슬을 풀어 헤칠 필요가 있다. 이 사슬에 묶여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묶여 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다만 태생적으로 근대의 사슬에서 배제된 이들이 이 문제에 조금 더 보편적으로 접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본 것이다. 

 

떠도는 자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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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6-02-21 13:55   좋아요 0 | URL
ㅋㅋ 저두 했습니다.어딜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