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콘 프로젝트 - 미국 신보수주의의 이념과 실천 국제관계학 총서 4
남궁곤 편집 / 사회평론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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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북한 설득의 최대실패자는 미국이다."라는 통일부 장관의 발언을 두고 말들이 많다.이종석 장관은 북한문제를 두고 한미간에 이견이 있음을 어느정도 인정했다.보수언론과 야당은 이를 물고 늘어지면 공세를 취하고 있다.결국 청와대에서도 나섰다.노무현 대통령은 이종석 장관의 발언에 대해 힘을 실어주며 언론의 과잉대응에 못마땅함을 표했다.대통령의 이러한 지지 역시 보수언론의 도마 위에 오르지 좋은 내용이었다.청와대는 반미냐 친미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반도 내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것,즉 한반도의 평화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안보관계자는 미국이 북한 문제에 있어서 단독으로 강경드라이브를 걸지 않겠다고 남측과 합의를 해 놓고 일본의 대북강경 분위기에 탄력받아 그 합의를 일방적으로 깨고 있다고 전했다.

청와대의 발언은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의 것이다.하지만 남북관계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일부 세력들에게 이러한 상식은 통하지 않는다.그들에게 세상은 선과 악으로 구분된다.북한은 여러모로 악이며 이는 소탕되어야 할 암세포일 뿐이다.그러므로 남북문제와 병행된 미국에 대한 접근법 역시 '친미냐 반미냐'로 단순화된다.한반도내의 항구 평화라는 전제를 가진 합리적 접근이나 단계론적 접근등도 이념 공세 하에서는 '반미'로 규정되곤 한다.이러한  극우적 시각은  일단 분단역사의 원기억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하지만 시각을 조금 현재로 돌려본다면 바다 건너 미국 땅에서도 유사한 형태의 집단을 만날 수 있다. 부시의 싱크 탱크 역할을 하고 있는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네오콘들이다.

<네오콘 프로젝트>는 현재 미국 정치를 이해하는 핵심인 네오콘 세력들에 대한 다각적 분석을 목표로 한다.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다.먼저 책의 서문은 현재 네오콘을 분석하는 몇 가지 틀들을 이야기한다.책의 서문을 통해서 네오콘을 분석하는 대략적인 아웃라인을 잡을 수 있다.또한 향후 네오콘 관련 공부에 있어서 읽고 있는 서적이 어느 분석 틀에 의한 접근인지 위치를 점검할 수 있는 방향잡이 역할을 한다.저자가 생각하는 미국 신보수주의자들에 대한 국내 연구 현황은 크게 4가지 방식이다.먼저 역사적 구분과 시기에 따른 연구,신보수주의자들의 사고유형 분석방법,권력네트워크를 통한 연구,정책 분석을 통한 연구등이 그것이다. <네오콘 프로젝트>는 기존의 4가지틀을 가지고 각기 다른 필자들이 미국 신보수주의에 대한 세밀화를 그려낸다.

물론 단점도 있다.공동집필 형태의 책에 늘상 지적되는 중복 문제를 이 책 역시 피할 길은 없다.그렇다고 각 필자가 담당한 영역의 텍스트가 중복되는 것은 아니다.각자가 맡은 영역을 이끌어 가기 위한 글쓰기 형식에서 불가피하게 중첩되는 부분이 생기는 것이다.주로 네오콘의 역사적 형성과 변화,그리고 네오콘의 공통된 이데올로기등이 중복된다.이 책에서 여러번 반복되는 네오콘의 역사와 성격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는게 좋을 듯 하다.

원신보수주의자들은 대개 좌파에 사상적 근원을 두고 있다.그들은 계급적으로 중하위층 계급 안에서 성장하였다.이들 중 다수는 대학시절 맑스주의나 트로츠키 주의 등 범 좌파 소속으로 구분할 수 있다.1세대 신보수주의자들은 미국의 뉴딜정책에 긍정적이었다.하지만 1930년 대에 이르러 이들은 좌파의 소련 편향에 반대하며 자유주의적 반공주의로 이념의 틀을 바꾼다.이후 소련이 붕괴되기 전까지 반공은 신보수주의자들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로 자리매김한다.이들의 반공 노선은 종교적 선악관을 받아들여 소련을 소멸시켜야 하는 '악'으로 파악했다.이러한 종교적 이분법의 전통은 부시 정권에게도 영향을 그대로 미치고 있다.자유주의적 반공주의자들은 반공 노선을 견지하면서도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통한 복지와 사회 정의 실천을 중요시 여겼기 때문에 전통적인 미국 보수주의와는 차이를 두게 된다.

1960년대에 이르러 민주당의 좌파의 약진이 미국 사회에 두드러진다.미국의 사회 민권 운동의 분위기와 맞물려 케네디,존슨 정부의 자유주의적 개혁 드라이브가 사회 변혁을 추진한다.하지만 민주당 정부의 개혁은 초기 계획처럼 소정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게 된다.복지국가 프로젝트는 좌절되었으며 학생들의 급진적 움직임에 반대 하는 여론도 형성 되었다.신보수주의자들은 다시 민주당의 자유주의 노선에서 진보적 자유주의와 구분을 두며 정체성을 찾아나간다.즉 자유주의의 급진화의  반대 급부를 자신들의 정체성의 근간으로 삼게 되는 것이다.이들은 카터의 데탕트 외교 정책을 소련의 위협을 도외시한 낭만적이고 순진한 정책이라고 비난한다.이들은 민주당에서 공화당 쪽으로 방향을 수정한다.

1980년대 레이건 정부에서는 신보수주의 자 내부에서 반공적 신보수주의자들보다 어빙 크리스톨같은현실주의적 신보수주의자들이 헤게모니를 얻게된다.미국의 대소정책에 유연성을 갖는 방안이 레이건 정부아래서 시도된다.그리고 소련의 붕괴라는 역사적 사안을 맞이 하게된다.

소련의 붕괴는 반공을 목에 걸고 있었던 신보수주의자들에게 정치권 내에서 위치를 모호하게 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대개 1세대 신보수주의자들은 냉전 종료후 윌슨주의적 대외개입이 자제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내부균열이 발생한다.윌리엄 크리스톨,로버트 케이건 같은 2세대 신보수주의자들의 등장이 그것이다.이들은 미국의 민주주의와 미국적 가치의 전파라는 이념적 근거를 가지고 오히려 대외적인 미국 역량의 강화를 주장한다.다극주의에서 유일 패권을 가진 단극주의 시대에 미국의 역할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이들은 언론과 잡지를 통해 그들의 주장을 정치권과 대중들에게 전파한다.그리고 9.11 테러로 미국의 안보가치가 급부상을 하는 시점에서 2기 부시 정권과의 선택적 친화성을 통해 정치 전면으로 부각되게 된다.

신보수주의자들의 대외전략은 9.11 테러 이후 미국의 대외정책에 많은 영향을 끼쳐왔다.미국식 일방주의,단극주의,적극적 무력사용 ,친이스라엘주의 등으로 정리된다.9.11 테러 이후 자행된 아프카니스탄,이라크 전쟁은 부시와 네오콘이 가진 현재 미국 외교전략의 대표적인 형태이다.물론 여기에는 9.11 테러 이후 안보 노이로제에 감염된 미국민들의 정서도 한 몫을 한 것이 사실이다.특히 네오콘은 '시혜적 패권'이란 개념을 이용하여 단극 체제에서 미국이 힘을 갖고 있고 그 힘을 적절하게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비도덕적인 것이라고 말한다.이들에게 미국의 이익과 가치 전파를 위한 싸움에서  유엔이나 다른 동맹국과의 협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네오콘들이 국내 문제에 가지고 있는 가치문제는 흥미롭다.막연히 이들을 보수주의자로 구분 짓기에는 문제가 있다.일단 이들은 자유주의의 세속주의와 문화적 상대주의에 반대한다.민주당 집권기에 확산된 자유주의적 가치는 미국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파괴했다.네오콘들은 미국적 가치와 문화를 지키기 위한 문화전쟁을 수행 중이라고 믿고 있다.이들은 자본주의 미국이 경제적 부와 자유를 가져다 주었지만 도덕적 실패를 기회비용을 삼았다고 본다.도덕적 가치 함양을 위해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본다.이들은 자유방임주의에 토대를 두고 있던 전통 보수주의자들보다 더욱 더 문화와 종교,그리고 이념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는 속성을 보인다.이들이 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의 낙태반대,동성애 반대,학교내에서 기도 보장등의 가치에 있어서 연대를 보이는 것도 내적인 개연성이 있다.

네오콘들은 9.11 테러를 시점으로 부시정권 내에서 영향력을 급격히 늘려나갔다.일부에서는 이미 네오콘은없다라는 우회적인 말로 그들의 광범위한 세를 말하기도 한다.그러나 화무십일홍이라고 그들이 언제까지 미국 대외정책을 좌지우지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우선 네오콘이 내세우는 미국적 민주주의 가치의 전파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반론이 거세다.전쟁 종료를 선언했지만 여전히 고전하고 있는 이라크 국내상황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또한 행정부 내에서 신보수주의의 강경론에 제동을 거는 세력도 존재한다.세력의 분화는 같은 신보수주의자들 내부에서 발생하고 있다.또한 신보주의자들의 권력 획득 방식도 이들의 지속성에 회의를 갖게 되는 대목이다.이들은 정치적 후원자에 의해 임명된 정부 요직을 맡고 있다. 이것은 다른말로 하면 정권 교체와 더불어 쉽게 교체가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물론 개인적으로 그들이 정부요직에서 물러난다고 신보수주의의 대중 영향력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단 지금 보다는 정책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어렵기 때문에 이념적 제공자의 역할을 맡게 될 듯 하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드는 생각이 국내 뉴라이트와 네오콘의 유사성이다.특히 정치 철학에 있어서 네오콘이 영향을 받았다는 레오 스트라우스주의는 국내 뉴라이트에게도 철학적 어머니가 되는 듯 하다.홉스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뉴라이트들은 반대중주의,친엘리트주의들 그들 주장의 근저에 깔고 있다.또한 각종 시국 논쟁에서 기독교 우파들과 연대하는 모습들도 네오콘과 뉴라이트의 동질성을 보여준다.사상과 정치적 실천에서 유사한 뉴라이트들이 미국에 대한 태도는 명약관화하다.이들은  현실주의라는 이름의 패배주의의 휘장을 두르고 네오콘보다 더 미국에 친화적인 모습을 보인다.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한반도의 평화'가 아니라는 생각이 수시로든다.오히려 반공의 기치 아래 적들을 소멸하기 위해서는 일전도 불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네오콘프로젝트>는 전체적인 흐름이 자연스럽고 네오콘을 규명하는 작업이 입체적이다.단 한 권의 네오콘 관련 책을 봐야 한다면 <네오콘 프로젝트>가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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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6-07-28 17:56   좋아요 0 | URL
ㅆㅆ 바람구두님 소개로 본 책이지요.좋았습니다.아이 보는 재미는 아니고 아이 보느라 바쁘긴해요...짜식이 안아줘도 울면 어쩌라는 건지..그래도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순하다고 하는데.짬짬이 책은 계속 봐요.그거라도 안하면 일-아이 두 가지만 하기때문에 전 답답해서..ㅅㅅ ..(와이프는오죽하겠나 싶네) 후딱 보는 걸 잡아야 되는 돼 지난 번에 사놓고 못읽고 있던 700페이지짜리 <노자 이야기>를 보느라 또 시간 걸리네요.그래도 이야기를 쉽게 풀어서 다행이라는...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언제 맥주라도 한 잔 해야되는데..

2006-07-28 2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팀전 2006-07-29 13:29   좋아요 0 | URL
00님>ㅅㅅ...오타왕!! ...회사에서 컴퓨터가 특히 후져서 한 자 치면 조금 있다 뜨고 그래요.ㅎㅎ 음악이 마음에 드셨다니 반갑네요.그래도 여름에 듣긴 좀 덥죠? 서늘한 바람불면 아마 진가가 드러나지 않을까 --제 생각입니다.
 
오페라복스 - 리골레토, 투란도트, 카르멘 [dts]
Various / 이엔이미디어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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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페라는 스토리는 시대적 한계가 있다.인간의 복잡한 감정과 사상을 표현해내는 현대 영화에 익숙해져있는 관객들에게 오페라의 드라마는 신파에 가깝다.오페라 애호가들이 아무리 오페라 속 인물들에 대해 그럴싸한 해석을 내려도 우리가 흔히 만나는 예술 영화 속 드라마 구조와 심오함에 비교하면 단순하고 식상하다. (물론 일반론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아무래도 시대적 한계가 있으니 말이다.춘향전의 메시지가 오늘날 나오는 작품들에 비해 크게 어필한다고 이야기하긴 좀 곤란하지 않겠나) 내가 가지고 있는 클래식 음반 중 오페라 음반이 차지하는 비중은 2%가 안된다.일단 오페라는 순수음악 장르와 다르다.음악만 가지고는 오페라의 즐거움을 만끽하기 어렵다.최근에 DVD가 보급되면서 그나마 예전에 비해 오페라를 접할 기회가 많아졌다.오페라 DVD는 대개 2시간 정도 하는데 사실 한자리에서 앉아 보기엔 아직 지루하다.또한 2시간을 집에서 오페라 하나 본 다고 앉아 있으면 눈칫밥 먹기 딱 좋다.대개 오페라 DVD를 보는 방식은 막 당 끊어서 보는 편이다.1막은 토요일 오전에 보고 2막은 토요일 밤에 보고 ..뭐 이런 식이다.

아무리 오페라 DVD가 음악 이외의 종합 예술로서의 오페라를 보상한다 하더라도 오페라를 화면으로 보는 것은 즐거움이 크지만은 않다.마치 연극 무대를 TV 화면으로 옮겨 놓은 프로그램을 보았을 때 느끼는 그런 심심함이다. 최근에는 DVD 시장을 겨냥한 비디오형 가수들이 많이 등장한다.하지만 과거의 가수들의 DVD는 좀 심하다 싶을 때도 있다.70킬로 그램은 더 나아가 보이는 50을 앞둔 여가수가 라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 같은 연기를 한다면 아무리 영상이 중요하다지만 차라리 CD를 듣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먼저 들기 마련이다.

오페라복스의 오페라 DVD 시리즈는 뚱뚱한 여자들과 비대한 남자들이 등장하지 않는다.오페라의 길이도 대폭 줄여서 30분 안팎이다.오페라 유명 아리아를 모아놓은 하이라이트 음반의 길이 보다 짧다. CD 안에 나오는 줄거리 해설서를 보는 정도의 길이이다.일단 오페라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짧아서 좋고 부담스럽지 않아서 좋다.

오페라 복스 시리즈는 오페라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것이다.<리골레토>가 들어 있는 시리즈는 2편에 해당한다.1편에는 <마술피리,피가로의 결혼,라인의 황금>이 수록되어 있다.한 DVD에 3편씩 다른 오페라가 다른 형태로 제작되어 있다.예를 들어 <리골레토><피가로의 결혼>같은 것은 퍼펫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목가인형이나 고무인형을 가지고 스탑모션으로 찍어서 만들어 낸 것이다.그 후에 성악가들의 노래와 레치타티보를 입혔다.인형들의 연기는 실감난다.노래를 할 때 얼굴 근육들도 제대로 움직이고 가슴도 들썩 들썩한다.1편과 2편 통들이 가장 호감이 가는 것들이 퍼펫 애니메이션 작품들이다.<피가로의 결혼>같은 경우는 시작 부터 재미있는 아이디어로 가득차 있다.오페라 속 인형들이 마치 연극을 꾸미듯이 세트를 짓는다.<피가로의 결혼>이 조금 아쉬운 것은 음악보다는 드라마 쪽에 초점을 많이 맞추었다는 것 정도이다.인형들의 캐릭터들도 살아 있고 목각 인형의 뚱한 표정도 재미있다.

2편에서도 퍼펫 애니메이션인 <리골레토>가 가장 인상적이다.리골레토의 분장은 골룸을 능가할 만 큼 기괴하며 색채감각이 뛰어나다.리골레토의 집이나 만토바의 거실등 전체적인 배경 미장센 역시 음울하면서도 콘트라스트를 강하게 주고 있다.





 




 

 

 리골레토가 딸 질다를 염려하는 장면..질다를 갖고 논 후 흡족해 하는 만토바 공장의 모습이다.

특히 두번째 장면은 인형과 거울의 미장센이 인상적이다.전체적으로 붉은 톤의 카펫 배경으로 거울의 반사를 이용한 장면 구성을 했다.물론 영화에서는 거울을 이용한 미장센이 고전적 수법이 되어 있지만,이렇게 보니 또 다른 새로움이 있다.

<카르멘>같은 경우는 마치 동화책을 넘기는 듯한 느낌을 준다.배경은 동화책 처럼 직접 수채화를 그렸고 그 위에 배우들의 모습을 그림화해서 합성한 수법을 사용했다.

 
 카르멘과 에스카디요가 술집에서 서로를 유혹하는 장면이다.유명한 투우사의 노래 뒤에 이어진다.

오페라 복스 시리즈는 오페라를 매체적 실험을 통해 새로운 각도에서 볼 수 있도록 만든 장점이 있다.하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들도 있다.

우선 분량을 너무 압축하다 보니까 마치 수능생이 공부하는 국어 참고서의 문학작품 소개처럼 되어 버렸다.열 몇 줄로 정리되어 버린 <죄와 벌>같은 느낌이랄까... 
또 한가지 아쉬운 것은 노래를 영어로 번안하여 제작했다는 것이다.마치 이탈리아 오페라를 한국어로 번역해서 부르는 것 만큼이나 어색하다.(국내 제작판이기에 한글 자막은 당연히 있다.) 아마 제작 단계에서 영국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처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든다.참여 가수들의 수준도 그다지 높지 않다.그렇다 보니 파바로티나 도밍고같이 흔히 만나는 오페라 CD나 DVD 수준의 노래를 듣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게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페라 복스 시리즈는 오페라와 애니메이션을 결합시킨 재미있는 결과물을 보여주고 있다.오페라의 내용이 늘 교육적인 것 만은 아니기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보는 것이 과연 옳을 지는 모르겠다.하지만 오페라를 아이들에게 알기 쉽게 소개하고자 하는 어른들이라면 오페라 복스 시리즈를 함께 보는 것도 도움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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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7-17 21:20   좋아요 0 | URL
영어로 번역했다는 점만 빼고는 아아, 지름신에게 기꺼이 끌려가고픈 리븁니다.
일단 땡스투는 하는데...ㅠ.ㅠ

드팀전 2006-07-17 23:38   좋아요 0 | URL
별 다섯을 안 준 이유이기도 하구요.또..음...뭐랄까....한번 호기심에 보기에는 좋지만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어요.ㅎㅎ 제 생각에 오페라 전곡을 클레이애니메이션이나 인형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으면 어땟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성악가들의 캐리커쳐를 활용하는거지요.언젠가 한뼘 길이의 파바로티 인형을 본 적이 있는데 귀엽더라구요.리골레토의 만토바 공작을 많이 했으니까 파바로티 인형으로 하는 거지요.ㅎㅎ 다른 성악가들도 닮게 만들구...목소리는 CD음을 그대로 입히고...재밌지 않을까요..
 
암스테르담
이안 맥완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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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는 사람들>이란 그림이 생각난다. 에디워드 호퍼가 1942년에 그린 그의대표작이다.

 그림 안에는 4명의 등장인물이 등장한다.세명의 손님과 흰 색 가운을 입은 점원. 손님들은 같은 공간 안에 있으면서도 다른 세계에 있다.같이 동석한 남녀 역시 각자의 생각에 잠겨 있다.... 아무도 서로에게 대화를 건네지 않는다.단지 깊은 밤 침묵의 시간이 어색한 점원만이  다른 고객들에게 수 천 번도 더 했을 뻔한 질문을 던질 뿐이다.그들은 단절되었다....밤은 병원복도의 빛을 닮아 냉랭하다.푸르스름한 실내등의 빛깔은 그들의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빛을 닮았다...밤은 깊어간다.유리 병 속에 담겨 있는 듯한 그들의 침묵은 통유리밖의 세상과도 그리고 그림 밖의 세상과도 단절 되어 있다.....이중의 단절과 침묵.....

오랫동안 <암스테르담>을 기다렸다.이 책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부터 품절 상태였다.지난 주였던가..우연히 보관함을 거슬러 오르다가 품절상태가 떨어진 <암스테르담>을 발견했다.잊고 있던 유년시절의 기억을 만난듯 반가왔다......도착한 책 중에서 가장 먼저 손이 갔다.

<암스테르담>은 두 남자의 이야기이다.교향곡 작곡가인 클라이브와 신문사 편집국장인 버논이 그들이다.이둘은 몰리라는 여성과  사귄 인연이 있다.영화 <글루미썬데이>의 주인공들 처럼 클라이브와 버논은 몰리라는 꼭지점을 중심으로 삼각형을 이룬다.소설은 몰리의 장례식에서 부터 시작된다.몰리라는 매력적인 여성의 최후는 그녀의 역동적인 삶에 비해 초라했다.그녀는 모든 기억을 하나 둘 잃어가며 점점 식물인간처럼 변해갔다.그녀가 죽은 후 그녀와의 사랑을 기억하는 이들이 하나 둘 장례식에 모인다.클라이브와 버논,현 남편인 조지,젊은 시절 엄청난 나이차이에도 불구하고 몰리와 관계를 맺었던 시인,비열할 정도로 현실적인 현직 외무장관 가마니..등등.. 클라이브와 버논은 몰리를 사랑했으면 또한 그녀를 통해 지금은 서로를 이해하는 좋은 친구로 남아 있다.장례식에서 이들은 몰리를 추억하며 그들 앞에 있었던 또는 그들 뒤에 있었던 몰리의 연인들을 바라보며 묘한 질투와 내적 혼란을 겪는다.

이야기는 클라이브와 버논이 둘 다 싫어하던 현직 외무장관의 사적 사진이 발견되면서 급격하게 빠른 템포의 진행 수순을 밟는다.사진은 몰리가 찍은 것이며 사진을 제공한 사람은 현 남편인 조지이다.가마니의 사진은 공인으로서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는 성적 취향을 보여주는 사진이다.이 사진의 게재를 두고 클라이브와 버논은 갈등하기 시작한다.....

소설의 줄거리는 이 정도에서 멈추자. 스포일러가 될 필요는 없다.

저자인 이완 맥완에게 98년 부커문학상을 안겨 준 <암스테르담>은 딱 맞아 떨어지는 톱니 바퀴 같다.너무 꽉 끼어서 삐걱 거리는 소리를 내지도 않는다.또 톱니 사이에 구멍이 보일 정도로 헐거워서 겉돌지도 않는다.사건의 전개는 스피디하다. 사건의 진행을 서술하는 각 장의 주인공은 다르게 설정되어 있다.주로 주인공인 클라이브와 버논이 그 역할을 맡는다.가마니의 사진 공개라는 사건을 중심으로 클라이브와 버논의 심리변화가 교차편집된다.이들의 내면 독백을 통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의 변화들을 독자는 시시각각으로 따라갈 수 있다.클라이브와 버논은 외무장관 가마니의 비밀스런 사진 공개를 두고 갈등하게 된다.처음에는 단순한 시각차이로 비쳐졌다.하지만 사안이 커져가면서 이들의 갈등의 폭도 커져간다.그러다 보니 이제는 서로 마음 속에 있었던 상대에 대한 단점과 흠집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결국 가장 친한 친구였던 이들이 가장 큰 적의를 품는 사이가 되어 버린다.물론 서로에게 잠시나마 화해의 제스처를 취해볼 까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클라이브는 흐린 날씨 속에 산길을 걸으며 버논에 대한 생각을 하고 분개해 한다.그러나 어느 언덕을 넘어서는 순간 태양이 환하게 빛나고 물기를 머금은 숲 길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다.그리고 갑자기 그 따뜻한 햇빛이 주는 평온함에 버논과 화해를 해 볼까 하는 마음을 굳힌다.별거 아닌 일 같지만 이완 맥완의 장점은 이런데 있다.사람의 감정이란 것은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지속력이 항구적일 수도 있고 또 어느 한 순간에 눈 녹듯 사라지는 수도 있다.오늘 아침까지 냉냉하던 연인 사이가 함께 마신 레모네이드 한 잔의 상큼함에 그만 녹아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그저 서로 멋적은 웃음 한번에 넘어가기도 한다.클라이브 역시 버논에 대한 분노의 생각을 바꾸는데 맑은 햇빛 한 줄기면 충분했다.하지만 그들은 화해하게 되는가?  인간의 감정은 그렇다.그 또한 아무런 지속력이 없다.클라이브와 버논의 심리변화는 일상에서 우리가 한 번쯤 겪고 -또 지금도 겪고 있을- 내밀한 것이며 통속적인 것이다.우리 내면은 시장 바닥이다.의심,질투,시기,성공욕,자괴감,열등감,우월감,실패에 대한 두려움등등..수없이 많은 종류의 감정들이 그 안에서 주인을 기다린다.우리는  매일 매일 이러한 감정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되어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 흥정을 벌인다.이완 맥완은 현대인들이 일상 속에서 갖는 다양한 심리적 갈등을 <암스테르담>이라는 소설 속에서 블랙 코미디화 해버린다.소설 전체의 구조도 그렇고 매 장이 끝날 때마다 무언가 헛웃음 비슷한 것이 나오게 된다.특히 소설의 마지막, 몰리의 남편 조지의 독백은 리하르트 치글러의 <젊은 미망인>이라는 그림을 보는 듯 하다.묘한 성적 예감과  싸늘한 현실의 냉기때문에 비애감 마저 들게 한다.

클라이브와 버논의 갈등 축 외에 시선이 가는 곳은 버논이 속한 신문사 <더 저지>직원들의 모습이다.이들은 조직 사회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군상들의 미니어처이다.타인의 권위에 편승하려는 자,구습은 구습대로 유지하려는 자,결과에 따라 자신의 주장 조차 가변적으로 해석하는 자,남들 보다 반 발 앞서는 잔머리로 타인의 실패를 이용하는 자 등등...소설 속에서 조금 극화되었다 뿐이지 사회적 인간 관계 속에 수없이 발견되는 사례들이다. 이완 맥완은 <더 저지>직원들의 모습을 통해 조직 관계 속의 인간들과 그 관계성이 얼마나 편벽한 것이며 왜소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소설 <암스테르담>의 사건은 단순하고 구성은 치밀하며 심리 변화의 묘사는 탁월하다.인물 내면의 작은 변화에 쉽게 공감할 수 있게끔 한다.인간의 심오함과 가벼움이라는 가치에 리트머스를 들이댄다. 끝까지 쓴 입맛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하지만 감초 조각을 동시에 몇 개 입에 물었을 때 처럼 씁쓸하지만  뱉지 못하게 한다.훌륭한 블랙 코미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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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7-16 21:39   좋아요 0 | URL
저도 봐야 하는데 밀리고 밀리네요 ㅠ.ㅠ
 
전쟁과 사회 - 우리에게 한국전쟁은 무엇이었나
김동춘 지음 / 돌베개 / 200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조국의 원수들이 짖밟아 오던 날을/맨 주먹 붉은피로 원수를 막아내어/발을 굴러 땅을 치며 울분에 떤 날을/이제야 갚으리 그 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이제야 빛 내리 이 나라 이 겨레/.......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며 자랐던 세대는 이 노래를 기억할 것이다.아마 이 가사를 보며 그동안 잊혀졌던 멜로디가 입에서 흥얼거려짐을 느낄 것이다.요즘도 이 노래를 배우는지 모르겠다.가사를 되짚어 바라보니 황당하다.이게 초등학생에게 가르쳐야 될 노래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냉전세력은 교과서를 통해 폭력과 원한에 사무친 단어들을 천진무구한 어린 아이들의 머릿 속에 주입시켰다.이런 교육을 받으며 자란 세대,또는 전쟁을 겪으며 한쪽의 시각 외에는 어느 다른 의견도 꺼낼 수 없었던 세대에게  '한국전쟁'은 여전히 '6.25 동란'이다.김동춘 교수는 책을 시작하며 6.25란 말이 가진 인식의 단편성에 대해 지적한다.6.25라는 것은 통상적으로 전면전의 발발 시점을 말한다.이 날을 전면전의 고유명사화 하여 사용하는 것은 전쟁을 누가 시작했는가에만 촛점을 맞춰 이데올로기 강화에 이용한 대한민국의 과거 정권들의 시각일 뿐이라는 것이다.김동춘 교수는 전쟁의 시점을 해방 이후 부터로 본다.그가 바라보는 한국전쟁은 남북 양쪽에서 완전한 근대국가를 형성을 위한 도구였다. 여순사건,제주4.3등으로 상징되는 좌우대립이 한국전쟁의 시초였다면 6.25 이후 남북간의 쟁패는 전면전의 단계였다.그리고 휴전은 전쟁의 중지상태가 아닌 반쪽 근대국가의 전쟁내면화 단계인 것이다.즉 과거 현대사는 1945년부터 -1953년 이후까지를 통상적으로 세단계로 나누어 설명했다.해방 이후 좌우대립/한국전쟁/휴전협정 이후 가 그것이다.김교수는 과거 해석에 비해 조금더 적극적으로 이 세 단계의 인과성을 강조한다.굳이 정리하자면 한반도 내에서는 1950년 6월이전에 전쟁이 진행 중이었고 1953년 7월 이후에도 전쟁이 계속 되고 있다는 것이다.그 한 복판에 남북간의 전면적인 내란이 있었다.그러므로 한국전쟁은 남북 양쪽의 사회 전체에 분수령이 되는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었던 셈이다.

이 책은 과거 한국 전쟁을 다룬 책과 달리 전쟁을 둘러싼 보통사람들의 이야기에 촛점을 맞춘다. 김동춘 교수는 남북 정권이 전쟁 이후 국민만들기 과정에 강요했던 선/악 구도를 깨고 민중들의 시각에 한국전쟁의 내밀한 부분을 더듬는다.책은 크게 <피난><점령><학살>이라는 세가지 장으로 구분된다.<피난>의 장에서는 인민군의 서울 입성에 관련된 1차피난과 1.4후퇴로 상징되는 2차 피난,그 과정과 민중들의 태도에 대해 설명한다.사실 개인적으로 피난이라는 부분과 점령 상태에 남아있던 사람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그런면에서 <피난><점령>이라는 장은 숨겨진 이야기를 듣는 것 처럼 새로왔다.인민군의 서울입성에 대게의 서울시민들은 피난을 가지 않았거나 가지 못했다.하지만 한강철교의 폭파 사진으로 남아 있는 피난에 대한 인상은 북한 인민군의 입성에 두려워 모두 남하하는 서울사람들로 기억된다.이러한 이미지는 분명히 과거 반공교육때문일 것이다. 내가 새삼 놀란 것은 반공 교육에 대해 전체적인 비판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나였으면서도 전체적인 비판만 가지고 있을 뿐 부분 부분 남아 있는 상에 대해서는 여전히 정권이 내게 주입했던 기억들을 조각모음해 놓고 있다는 것이다.인민군의 서울 입성에 즈음하여 145만 서울시민 중에서 40만명이 피난을 갔다.그 40만 중 80%는 월남한 사람들이었고 나머지는 인민군 입성에 의해 처형이 불보듯 뻔한-물론 월남민들도 마찬가지였지만-정부 공무원,경찰,우익관련 가족들이었다.실제 평범한 서울 시미들의 대다수는 잔류를 선택한 것이다.그렇다면 그들은 모두 공산주의를 적극 환영했거나 아니면 적극 환영은 아니어도 뭔가 기대를 했던 사람들이었을까? 김동춘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1차 피난에서 잔류한 사람들의 대개의 정서는 북한정권이 들어서도 크게 피해를 보지 않을 것으로 믿었다고 한다.특히 뭐 잘 못한 것도 없는데 좌익이든 우익이든 생명과 안전에 크게 위해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하지만 이들의 판단은 남한이 다시 서울 재탈환하면서 달라진다.이승만정권과 그들의 하수인들은 자신들이 다리를 끊고 버리고 간 그 사람들을 '부역한 자'들로 파악하고 적으로 규정한다.일제 시대 부터 전제주의적 가치에 익숙해있던 권력집행자들의 속성과 전쟁 중에 생긴 사적 복수심은 '적'에 대해 비인간적 행동들을 정당화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이승만 정권은 스스로 국민을 버리고 간 정치적 책임을 잔류파 국민들에게 뒤집어 씌우기 위해 이를 용인했다.

물론 북한측도 민중들에 대한 폭력은 똑같았다.특히 북한은 점령지에서 농민이나 하층민,남한측 좌익들의 복수심을 이용하여 민중들에게 가혹한 폭력을 행사한다.남북 양쪽이 제도화된 국가권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사적폭력을 용인하고 있었던 것이다.김일성 정권은 점령기 동안 친일,친미,반공활동 세력들을 제거한다.하지만 북한 정권은 여기서 지나치게 급진적인 방법을 택한다.결국 유교적 문화가 이데올로기적 소구보다 컷던 당시 민중들은 북한의 처분에 등을 돌리게 된다.

잠시 이 책을 읽다가 생긴 에피소드를 하나 하자.이 책에는 김동춘교수의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이 <자신의 가족이 겪었던 한국전쟁>의 예들이 들어있다.나 역시 좀 궁금해졌다.하지만 나의 아버지는 언젠가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전선 안쪽에 계셔서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으셨다고 했다.기회가 닿아서 장모님께 여쭈어 보았다.그때 장모님은 6.25를 '여름난리' 라고 하셨다.아마 중공군이 재진입했을 때를 '겨울난리'라고 하여 구분하는 것 같았다.당시 장모님은 14살이셨고 충북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고 계셨단다.피난을 가려고 짐을 싸놓았는데 할머니가 무척 아파서 결국 짐을 내려놓았다고 한다.전쟁통에 그다지 큰 일은 없었다고 한다.대게 똑똑한 사람들이 공산당이 많았다고 하셨다.(흔히 들었듯이) 인민군이 마을을 점령하고도 학교는 계속 나갔었다고 한다.학교에서 북한쪽 국가 같은 걸 매일 불렀다고 한다.그 멜로디와 가사를 아직도 기억한다고 했다.또한 어른 들 중에는 남쪽 군인들이 다시 밀려오고 얼핏 그런 노래 흥얼거리가다 끌려간 사람도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했다. 가족중에 혹시 끌려간 사람 없느냐고 질문했다. 고모의 아들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둘이나 있었다고 했다.무척 선량하고 어진 사람이었단다.그런데 그 사람이 '보도연맹'이라고 끌려갔단다.장모님은 '그 때 그냥 농사 짓는 사람들이 뭐 여기 저기 손도장 찍으라면 찍었는데 ...나중에 그게 보도연맹 뭐라 해가지고 결국 끌려갔지' 라고 하셨다.며칠 지나고 시신을 찾으려고 갔는데 여기 저기 시체 천지여서 시신도 못찾을 뻔했다고 한다.당시 그 분의 아내가 남편이 입고 있던 속옷을 기억하고 어떻게 시신은 염했다고 한다.

이 내용들은 <전쟁과 사회>에 거의 판박이 처럼 전부 나온다.한국 전쟁중 백만 이상의 사람들이 장모님의 고종사촌처럼 영문도 모른채 학살 당했다.한국전쟁의 학살은 야만적이고 참혹했다.국가권력에 의한 학살은 물론이고 사적인 폭력까지 동원되었다.빨갱이나 반동분자는 같은 동족은 물론이고 인간이 아니었다.학살은 과거 어느 전쟁에 비해 잔인했다.김동춘 교수는 한국전쟁에서의 학살을 크게 3가지로 나눈다.작전으로서의 학살,처형이라는 형태의 학살,사작 보복형태의 학살이 그것이다.제주 4.3항쟁이나 거창 양민 학살처럼 군인들의 초토화 작전에 의한 대량학살이 작전으로서의 학살이다.처형으로서의 학살은 국민보도연맹 학살처럼 검속을 통해 직접 전쟁에 참가하지 않았지만 적과의 내통이 우려된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에 대한 학살이다.마지막은가장 야만적이고 잔인한 양상을 보인 사적 보복으로서의 학살이다.이는 남북한의 국가가 형성되지 못하며 밀고 당기는 과정중에서 크게 발생하였다.김동춘 교수는 폭력기구의 국가 독점력이 불완전한 상태에서 발생한 학살이라고 말한다.한국 전쟁 중의 학살에 대한 민중들의 입장을 가장 잘 밝힌 인터뷰 내용이 있다. 소백산맥 주민들이 말한 내용이다.

"안 가면 죽인다니까 산에 들어 갔고 나오면 죽인다니까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양쪽에서 똑같이 보호받지 못했으니 두 곳 다 똑같이 무섭기만 했다."

저자는 학살의 배경으로 몇 가지를 이야기한다.우선 미국의 역할이다.6.25 기간동안 미국은 공군력을 바탕으로 대규모 폭격을 가하낟.노근리 사건 같은것이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학살의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이에 앞서 미국은 해방 직후 좌익과 민족주의 세력을 배제하면서 대규모 저항적 폭력을 양산한다.미군정은 반공주의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이에 부합되는 세력이면 친일,지주의 여부를 구분하지 않고 재등용한다.여기서 민중들의 원초적인 분노가  좌익세력에 목소리에 힘을 더해주며 대규모 폭력으로 발생한다.미군정은 친일의 기억이 있는 공권력과 우익 폭력단의 용인하며 이를 제압한다.이를 통해 우익과 자유주의세력 주도의 국가 건설에 위협이 되는 학살은 정당화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조성된다.여기에 불을 지핀 것이 이승만의 마키아벨리적 속성이다.이승만은 국가건설과 권력욕만이 있었을 뿐 국민이라는 개념은 없었다.그는 미국이 모든 열쇠를 쥐고 있다는 현실적 판단을 하고 있었다.그에게 전쟁은 남한과 북한의 전쟁이 아니었다.그것은 미국과 북한 내지는 소련과의 전쟁이었다.그러므로 한국전에서의 피해라든가 전쟁과정이라든가 하는 제반 모든 것이 미국의 책임이었다.한 나라의 대통령이 자국민의 보호를 미국에 넘긴 상황이다 보니 국민의 안전 같은것은 염두에 둘 필요가 없다.대신 권력의 안정성에 위배되는 세력들의 척결에는 사자의 발톱보다 날카로운 비수를 뽑아든 것이다.또한 학살 배경중 하나는 일본군의 전통과 민주주의 정신의 결여에 있다.즉 군인들이 국민의 안전을 보호해야 한다는 근대국가의 군인관이 전혀 형성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일제 시대처럼 국민위에 군림하는 봉건영주의 모습을 가졌던 것이다.당연히 민간인의 목숨을 대수롭지 않았을 것이다.또한 남북한이 '임시국가'로서 불완전한 국가 형태를 가지고 있었던 것도 학살과 연관이 있다.남북 양쪽은 서로를 '외세의 앞잡이 반역자'로 취급했다.이렇다 보니 반국가-외세 앞잡이에 대한 폭력에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또한 '전근대적 반역담론'을 통하다 보니 학살이 잔인하고 야만적인 양상을 띌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결국 한국 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38선의 남북에 거부했다가 각각 대한민국이 국민,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민이 되어 버린 이름없는 민중들이었다.그들은 불완전한 국가간의 내전 속에서 야만적 폭력 상황에 아무런 대책없이 버려지고 이용당한 것이다.

결론에서 저자는 한국전쟁을 '피난의 정치,희생양의 정치,무책임의 정치,부역자 처벌의 정치,학살의 정치'라고 말한다.그 의미를 하나씩 짚어보면 이 책 <전쟁과 사회>가 짚어내고자 한 담론들을 읽어낼 수 있다.김동춘 교수는 한국전쟁을 바라보던 그 간의 시점에 변화를 주고자 한다.먼저 국가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 나야 한국 전쟁의 내밀한 부분을 샅샅이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국가 대신 민족 중심적 시각으로 이를 대체 해야한다.또한 전쟁의 책임,전쟁의 양상들에 대한 연구보다 전쟁 당시 사회구성원들의 고통과 희생에 대한 접근으로 한국전쟁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이렇게 될 때 한국전쟁의 부정적인 결과를 딛고 한반도 내의 항구적 평화를 도모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국전쟁과 관련된 책들은 여러 시각이 존재한다.<전쟁과 사회>는 전쟁의 최대 피해자이자 60년전 나와 똑같은 모습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김동춘 교수의 이름없이 사라져간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객관적인 접근이 돋보인다.별 다섯 개도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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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탈리즘의 새로운 신화들 - 미디어에 비친 지식인의 일그러진 초상
성일권 지음 / 고즈윈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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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탈리즘은 간단히 말하자면 서구가 동양을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낸 수많은 허상과 이미지들의 총합이다.20세기 서구 제국주의는  날카로운 발톱을 가지고 세계에 흉칙한 상처를 남겼다.오리엔탈리즘은 이들의 폭력에 심리적 면죄부를 제공한다.서양인들의 시각으로 식민지 민중들은 '야만'과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프란츠 파농은 왜곡된 이미지들로 인해 가해자와 피해자 양측이 심리적 외상을 겪는다고 갈파했다.내면화된 오리엔탈리즘은 한국 사회에서 자각을 모르는 종양덩어리와 유사하다.저자는 일제 식민지 과정과 냉전논리 속에서 한국민들의 내부에 깊숙히 자리잡은 오리엔탈리즘을 '복제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명명한다. 일본과 미국의 강력한 영향력 하에서 왜곡된  이미지가 중층적으로 자가복제 된 상태를 말하는 듯 하다.

저자는 1990년대 이후 미국이 세계 초강대국으로 자리잡는 시점을 고전적 오리엔탈리즘의 변형 시점으로 파악한다.과거 유럽의 오리엔탈리즘은 식민모국/식민지,백인/흑인,문명/야만 등으로 이분법적 논리를 구사했다.팍스아메리카를 꿈꾸는 미국은 이를 재구성한다. 이름하여 '미국식 오리엔탈리즘'의 탄생이다.목표는 단 한가지다.모든 강대국들이 한번쯤 꿈꾸어왔던 '제국'으로의 변용이 그것이다.미국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국가를 '친미/반미'로 이분화한다.이를 통해 팍스아메리카를 위한 지지기반을 공고히 하게 된다.

 <오리엔탈리즘의 새로운 신화>를 구성하는 두 주인공은 미국 내 네오콘 세력과 국내 친미보수세력이다.부시 정권의 브레인으로 알려진 네오콘에 대해서는 이미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그들이 장악하고 보도하는 미국 언론의 내용들을 넙죽 넙죽 받아 쓰는 국내 신문 덕에 그들의 이름과 주장이 낯설지 않다.부시와 네오콘들은 세상을 '선과 악'으로 이분화한다.이 이분화는 종교적 어법으로 무장되어 있다.부시의 메시아주의적 성향에는 미국 기독교의 승리주의와 폐쇄성이 원인이 된다.부시와 네오콘에게 그런 의미에서 '북한'은 현존하는 가장 큰 위협이자 단번에 뽑아 버려야 할 충치와 같은 나라이다.부시는 남북화해 무드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찬물을 끼얹는 언사를 마다하지 않았다.남과 북의 자체적 화해무드 조성은 부시와 네오콘이 입장에서는 미국이 한반도 문제에 개입할 여지를 없애는 일이다.그들이 믿는 '악'을 제거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긍정적인 방향은 '힘'에 의한 것이다.미국은 군산복합체의 경제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나라이다.미국에게는 지속적으로 딴지를 걸어주는 일이 필요하다.'9.11테러'나 '북한의 미사일 실험''이란의 핵보유'같은 사안들은 부시의 대외강경노선에 가속페달 역할을 한다.국민에게 위기의식을 심어 넣으며 힘에 의한 민주주의 구현이라는 가치를 용이하게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부시와 네오콘은 '인권'이라는 카드를 통해 눈에 가시같은 국가들에 개입한다.일명 '인권 제국주의'가 그것이다.스스로 ' 인권','민주주의'라는 범인류적 가치를 구현하는 절대적 선의 위치에 미국이라는 이름을 써넣는다.하지만 실제적으로는 미국과 네오콘이 의도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한 이슬람 세력의 견제와 향후 미국과 패권 쟁패가 예상되는 중국에 대한 압박이다.북한 문제 역시 그 틀 안에 있다.

문제는 미국의 패권주의적 오리엔탈리즘에 자발적으로 동참하는 한국 내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이들이 가진 가장 큰 무기는 '색깔론'이다.이들의 역사 인식에 대해서는 이미 한국 사회내에서 알만한 사람은 전부 알고 있기 때문에 다시 언급하는 것이 귀찮을 정도다.이들을 상징하는 단어들은 '친일,반공,친미,친자본'등이다.어떤 이들은 이 들을 가르켜 '한 줌도 안되는 수구 세력'이라고 말한다.하지만 이들은 세대 누적되어온 역사적 맥락이 있다.또한 냉전 시대의 비호하에서 사회 기득권으로서 여론을 조작하고 동의를 이끌어 가는 힘도 가지고 있다.또한 이들 뒤에는 네오콘과 새역사모임 과도 같은 미국과 일본의 우파 동지들도 있다.이들이 가진 이데올로기적 힘은 똑같은 세례를 받진 않겠지만 국민 다수의 암묵적 동의를 얻어낼 만큼 강력하다.하지만 이들에게 386의 힘으로 상징되는 '참여정부'의 탄생은 결정적인 위기의식을 갖게 했다.김대중 정권부터 부아가 틀려있던 이 엘리트 세력들에게 화염병이나 던지는 범죄자들과 상고 졸업한 변호사 출신 대통령은 처음부터 끌어내려야 하는 타도의 대상이었다.그 대표적 도전이 실패로 끝났지만 '대통령 탄핵'건이었다.

보수라는 이름도 부끄러운 <조선일보>파 조갑제,김대중,류근일.네티즌들의 민족감정을 자극했던 지만원,한승조,김완섭.보수 언론이 귀염둥이 송복,유석춘,제성호 교수.....이들에게 현 정부는 좌파 정부다.북한에게 대한민국을 홀딱 갖다 바쳐려는 세력들이다.그래서 이들은 양심적인 세력(?)인 자기들이 나설 수 밖에 없다고 구국의 변(?)을 싼다.386세력들의 정권찬탈에 긴장한 이들이 만들어낸 것이 '뉴라이트'운동이다.사실 조중동에서 특집으로 '뉴라이트'에 대해 대서 특필해도 관심이 없었다.몇 몇 학자들도 책에서 지적하듯이 '뉴라이트'가 '올드 라이트'와 별로 다를게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물론 '뉴라이트'내에도 개별 정세에 대한 이해에는 차이가 있다.그러나 '친미,반공,친일'이라는 이념에 '색깔론'이라는 무기에는 그다지 다른게 없다.한국예술 종합학교이 정진홍 교수이 칼럼 제목은 이들의 아이덴터티를 정확히 보여준다. "적화는 됐고 통일만 남았나!".....  ..노무현 정권이 조선노동당의 문을 두드린다고 한다.이미 적화는 다 끝났다고 한다.....실소를 금치 못하는 칼럼이 그래도 공부했다는 대학교수의 머릿속에서 나온다니....

이들은 정치적 중립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현실 정치의 특정정당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뉴라이트'라는 이름으로 이들이 목표로 하는 것이 무언인지 짐작케한다.중립성은 그럴싸한 언설에 불과하다.이들에게 미국 패권은 금과옥조의 법칙이다.마치 임금의 행차를 바라보는 백성처럼 이들은 미국을 받아들이다.그나마 비판적으로 말해봐야 '미국에게 대적하는게 계란으로 바위치기 아니냐'는 굴종적인 역사관만을 들을 수 있을 뿐이다.미국의 청지기들은 절대 주인의 자리를 넘보지 않는다.청지기만 해도 먹고 사는데 전혀 문제없다.나름대로 기득권도 누릴 수 있도 소작농들에게 권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올드라이트'이든 '뉴라이트'이든 이들이 말로 내뱉는 국가와 민족의 발전이라는 것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또한 아무때나 들이대는 '색깔론'은 알러지가 날 정도로 지긋 지긋하다.

정말 걱정되는 것은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패권하에서 민중들이 삶의 피폐화의 원인이 어디있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까 하는 것이다.과거와 비교해 강팍해진 삶의 원망이 진보와 개혁 자체에 돌아가게 되는 것이 우려된다.(이 점에서 진보의 이미지를 덮어쓰고 어리버리한 짓만 해댄 현 정권은 진보,개혁의 역사 아래 비난받아야한다.) 우리의 삶이 점점 피폐화되어 가는 것의 가장 큰 원인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와 분단 고착을 종용하는 미국의 대외정책,또한 이를 충실히 자기복제 해 사상의 편협성을 강요하고 획일적 군사문화를 몸에 심어놓은 냉전세력..해방 이후 누려온 장구한 기득권을 놓치 않으려는 모든 '올드' '뉴'..라이트 들 에 있다.

<별 넷을 줘도  문제는 없다.그럼에도 별 세개 인 것은 각종 비판적 저널에서 익숙해져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미국의 대외정책기조,네오콘,한국 수구보수주의자들의 이념등과 같은 내용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던 분들께는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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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02 15: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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