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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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언제나 그게 '마지막'인지 알지 못한다.

78년 첫 겨울 밤이었다.나는 아이였다.수확이 끝난 포도밭 길을 아버지와 걷고 있었다.신년 영시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가끔 씩 켜져 있던 가로등이 훈훈하게 느껴졌다.새 해 첫날,나는 아버지께 그런 질문을 했다.

 "아빠 그럼 이제 77년은 다시는 안 오는 거야? " 아버지는 대답하셨다."그렇지.어제까지 77년은 끝났고 이제 78년이 된 거야.앞으로도 77년은 다신 오지 않아.우리 준이가 고등학생이 되고 어른이 되고 아빠가 할아버지가 되고 또 죽게되고..그래도 다시는 77년은 오지 않는단다.시간은 그런 거야.."

나는 거의 울 뻔 했다.그 때 까지  내게 시간은 하루 단위의 개념이었다.햇살이 비치고 그림자가 짙어지는 날들의 연속일 뿐이었다. 어제까진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77년이 마치 피붙이처럼 느껴졌다.'어떻게 한 번 간 것은 다시 오지 않는단 말인가? 내가 살아가야 할 시간 동안 바늘 구멍 만큼도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단 말인가?' 어떻게 내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시간의 비정함에 몸서리가 쳐졌다.또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시간의 일회성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우리들의 시간은 늘  '시작'이며 '마지막'이다.수 십년이 지난 지금도 '마지막'이라는 말은 나를 늘 두렵게 한다.다시는 오지 않는 '마지막'.그러나 더 두려운 것은 지난 후에 그것이 '마지막'이었음을 깨닫는다는 것이다.

자기계발서나 잠언서에 나오는 '언제나 마지막 날 처럼 살아라'라는 말을 나는 싫어한다.몇 명을 제외하고는 그 '마지막'이 자기에게 어떻게 다가 오는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어느 시인이 그랬던가, '거역할 수 없는 불행은 정전처럼 다가온다.'라고..어느 누구도 정전을 예상하지 않는다.심지어 한국 전력 공사 직원들 마저도.평온하게 TV 드라마를 보고 있다가...수 십장의 리포트를 타이핑하고 있다가 ...화장실에 앉아서 만화책을 보고 키득이고 있다가.....불행은 '정전'처럼 순식간에 다가와서 빛을 암흑으로 바꾸어 놓는다.그리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한 일상을 제시한다.

그 안에 사람들의 삶이 있다.

우리는 이미지화된 죽음에 너무 익숙하다. TV를 켜면 사건사고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매일 몇 명씩 있다.그들의 죽음을 보며 우리는 그저 '저런 일이 다 있네' '안됐다.'라고 잠깐 신경을 쓰고 잊어버린다.그러나 불행의 뒷자리에 동석해서 사랑하는 사람들 보내야 하는 가족들에겐 참으로 엄청난 슬픔과 상실감이 기다리고 있다.그들에게 '마지막'은 예고 없이 그렇게 찾아온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이 가까운>의 주인공 오스카는 9.11 테러로 자상한 아버지를 잃는다.아이는 아버지가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남긴 전화 메시지를 혼자 간직하고 있다.오스카는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상상하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소년은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다니기 시작한다.그러면서 뉴욕에 살고 있는 무언가를 잃었음직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소년은 죄책감과 상실감 속에서 아버지를 확인하고 싶어한다.또 하나의 축은 오스카의 조부모들의 이야기이다.때는 2번째 세계 대전,오스카의 조부모들은 드레스덴에 살고 있었다.그들은 사춘기를 지난 아름다운 청년들이었다.오스카의 할아버지 토마스는 할머니의 언니 애니와 사랑하는 사이였다.어느 밤,하늘을 덮은 비행기들은 수많은 폭탄을 머리 위로 떨어뜨린다.오스카의 할아버지는 사랑하는 여인과 그 여인이 잉태하고 있는 한번도 보지 못했던 아이를 잃는다.그의 시간은 거기서 정지해 버린다.그는 시간과 함께 말을 잃는다.드레스덴을 피해 건너온 미국 땅에서 사랑했던 여인의 동생을 만나고 그들은 존재와 무 사이를 오고 가는 사랑을 나눈다.하지만 할아버지 토마스에게는 상실의 아픔이 그의 모든 삶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 소설은 상실과 슬픔,그리고 소통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사람들은 슬픔을 겪게 될 때 주로 소통을 단절시킨다.세상과의 대화를 멈춘다.그의 슬픔은 그를 압도하기 때문에 세상과의 벽은 이루 말할 수 없도록 높아진다.오스카의 할아버지 토마스는 실어증을 겪음으로서 그의 상실감을 온몸으로 느낀다.그는 과거의 아픔에 묶여서 어느 곳에도 머물 수 없는 사람이 돼어 버린 것이다.새로 태어난 아기와 그를 기다리는 여인에게도 다가갈 수 없었다.그는 부치치 못하는 편지를 통해 그가 버리고 온 세계에 대한 죄책감을 전한다.그의 편지는 소리 없는 글자가 되어 그와 같은 이름을 쓴 아들과 함께 잠든다.

소설은 상실의 아픔이 서로의 보이지 않는 사랑으로 인해 치유되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작가는 소설의 구성을 겹꽃의 꽃잎 처럼 만들어 놓으므로써 소설 말미까지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치 않는다.소설의 각 장은 분절된 듯 보이지만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가끔 소설의 화자가 누군지,앞의 장과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 뒤적여봐야 하는 경우도 있다.그러나 집중력이 좋은 독자라면 나 같은 혼란을 겪지는 않을것이다.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진들이나 형식적 실험들은 그다지 인상적이지는 않다. 실험들을 구경하며 소설의 내러티브에서 잠시 쉬어가는 효과를 준다.'이게 뭘 의미할까? ' 잠시 퍼즐 조각을 쳐다 보는 느낌으로 보면 충분하다.

소설 속에 나오는 드레스덴 폭격 장면이나 9.11 테러 당시 트윈빌딩에 갇혀 있던 아버지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사실적이다.마치 눈 앞으로 공포의 현장을 끌어다 놓은 듯 하다.엄청난 폭발음과 정신을 놓게 만드는 굉음,흔들림,죽음의 사선에 한 발 걸친 생명의 두려움.그리고 그 순간 머릿 속에 떠오르는 사람... 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드레스덴 폭격 장면과 소설 끝에 등장하는 아버지의 메시지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그리고 집에서 가을햇볕을 받으며 아기와 브람스를 들으니 '산책하고 있는 기분'이라고 문자를 남긴 아내가 생각이 났다.또한 냉랭한 한반도의 상황을 보고 술자리에서 '확 전쟁이나 한번 나서 뒤집어져라.' 하는 주정섞인 목소리도 떠올랐다.그리고 또 한 목소리....

 몇 달 전에 목격했던 교통사고 장면이 떠올랐다.고속도로의 난간을 들이 박고 코란도 승합차는 종잇장이 되었다.119 구조대가 절단기로 문을 열고 피투성이가 된 운전자를 꺼냈다.승합차 안에는 널부러진 CD와 가족사진인 듯 보이는 작은 액자..... 어찌 어찌하여 차에 적힌 집 번호로 전화를 했다. 내게 운전자의 인상 착의를 확인하던 어느 중년 여인의 울먹이는 목소리.어머니인 듯 했다...맞는 것 같다는 대답에 전화기 넘어 커지는 흐느낌....

며칠 후 그 운전자는 죽었다. 저녁때 보자며 현관에서 손을 흔들었던게 그의 '마지막'이었을 것이다.아무도 그게 '마지막'인지 몰랐을것이다.그에게 어린 아이가 있었겠지.그 아이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바뀌에 될까? 엄마 혼자 아이를 키우기 쉽지 않을텐데...아빠 없이 자라며 외롭지는 않을까? 엄마가 재혼을 한다고 마음속에 상처를 받진 않을까? 남들처럼 평범하게 학교 가고 졸업하고 그랬을텐데..앞으로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누군가 나의 죽음을 나의 아내에게 알리게 해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두렵고 슬픈일인가? 그러나 사람들은 '마지막'을 알 지 못한다.설령 지금이 '마지막'일 지라도 우리는 빌어먹는 강아지처럼 운명 앞에 눈만 멀뚱 멀뚱  뜨고 있을 뿐이다.책은 너무나 진부하여 '진실'에 가까운 결론을 맺는다.'지금 사랑하라.'고..어린 아이들에게 포획된 메뚜기처럼 운명의 장난을 거역치 못하는 인간 존재가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뿐이다.부디 아이들의 주먹이 내 머리 위로 떨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일..그리고 사랑하는 일. 

나는 오늘 집에 한 다발의 꽃을 사들고 들어갈 것이다.그리고 아가와 아내를 꼭 안으며 '사랑한다'라고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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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기세덱 2006-11-24 19:24   좋아요 0 | URL
축하드립니다. 우수리뷰 당당 1등하셨네요..ㅎㅎ 예전부터 눈여겨 보았지만, 역시 대단하시네요. 다시 한 번 축하드려요.

다락방 2006-11-24 19:43   좋아요 0 | URL
축하드려요, 드팀전님. 우수리뷰 1등이라니. 정말 멋져요! 물론, 리뷰도 멋지구요!!

드팀전 2006-11-24 22:18   좋아요 0 | URL
살면서 이런 일도 생기는군요....
이벤트에 별로 기대하지 않아서 저도 무척 놀랐습니다.
알라딘을 닫지 않으신 회사 상무님께 감사드려야겠습니다.최근에 각종 사이트들을 회사에서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데 아직 알라딘은 살아있거든요.쓴 시간을 보니 회사에서 눈치 보며 쓴 것 같은데....
.. ... 미진한 글에 이렇게 과분한 상을 주시면 전 위축됩니다...왠지 몸이 경직되고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부담스럽기도 하네요.ㅜㅜ
어쨋거나 감사합니다.^^
오늘 만난 소방관 아저씨들에게 9.11때도 미국 소방관 아저씨들이 많이 고생하셨을테니까...그분들께 감사인사를 드려야겠네요.^^
그리고 축하해주신 분들께도...^^

행복희망꿈 2006-11-24 23:37   좋아요 0 | URL
축하드려요. 앞으로 좋은일이 더 많으시길 바랍니다.

마늘빵 2006-11-25 08:56   좋아요 0 | URL
축하드려요 와~

비연 2006-11-25 13:19   좋아요 0 | URL
와! 축하드려요^^

마노아 2006-11-25 18:16   좋아요 0 | URL
다시 한번 눈여겨 보며 리뷰 읽었는데 눈물날 것 같았어요. 이 책 저도 보아야겠어요.
그리고, 다시 한번 축하해요^^

kimji 2006-11-25 23:59   좋아요 0 | URL
축하드립니다^^ 제가 다 기쁘네요!!! ^^

2006-11-26 0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크리스 2006-11-28 18:55   좋아요 0 | URL
정말 좋은 리뷰네요. 1등 하실만 해요. 축하드려요!!! 리뷰를 읽고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

거친아이 2006-11-28 23:16   좋아요 0 | URL
우수 리뷰란 이런 것이군요~읽고 나니 알겠네요^^
축하 인사가 늦었지만, 그래도 축하드려요. 리뷰 넘 좋네요.

ryuhwlove 2006-11-30 16:42   좋아요 0 | URL
서평 읽고 눈물이 그렁그렁하기는 처음입니다.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서평이네요. 서평 잘 봤어요.^^

자야 2006-11-30 20:50   좋아요 0 | URL
마치 한 편의 수필을 읽는 듯 했습니다. 책을 통해 자신을 발견해가는 모습이 빨리빨리 책장을 넘기고 있는 제게 반성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침흘린책 2006-12-01 10:01   좋아요 0 | URL
와~~ 정말 멋집니다...축하드려요~
 
능소화 - 4백 년 전에 부친 편지
조두진 지음 / 예담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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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외화 TV 시리즈 물 중에 <환상특급>이라는게 있었다.주말 저녁 때쯤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조두진 작가의 <능소화>를 읽으며 그 중 인상적이었던 한 편이 떠올랐다.

어느 날 소년이 열병을 앓는다.같은 시각,300-400백년전 소년이 살고 있는 그 지역에 어느 소녀 역시 열병을 앓는다.(과거와 현재가 동일 시간 속에 형성되어 있다.) 생사의 기로를 오고 가던 다른 시대의 두 친구가 서로의 눈과 귀를 통해 다른 세계를 보게 된다.물론 텔레파시 처럼 서로 이야기 하기도 한다.둘 다 내성적이었으며 진지한 아이들이었다.그 둘은 서로의 낯선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느라 밤이 새는 줄 모른다.그러나 문제가 생겼다.소녀는 마녀 사냥의 시대에 살고 있었다.소녀가 현대의 소년으로 부터 보고 들은 이야기를 주변에 이야기하자 사람들은 그녀에게 마녀가 씌웠다고 수근거리기 시작한다.'쇠덩이가 말보다 빨리 달리고 독수리 보터 커다란 새에 수백명의 사람이 타고 날아다닌다.' 이런 말들은 교구 내에 있는 목사에게 들어간다.목사는 호색한이였다.그 소녀에게 마녀감별을 한다면서 응큼한 수작을 부린다.소녀는 달아나고 분개한 목사는 소녀를 마녀로 매도한다.소녀는 감옥에 갖히고 곧 화형을 당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현대에 살고 있는 소년은 어떻게 해줄 도리가 없다.화형식 날은 점점 다가오고...소년은 도서관으로 달려간다.그리고 소녀가 살고 있던 시대의 지역 역사 책을 샅샅이 뒤진다.그 목사에 대한 약점을 찾아낸 것이다.

화형식날 목사는 소녀에게 마지막 할 말을 묻는다.소녀는 '나는 마녀가 아니다.하나님을 섬기겨 그분으로 부터 새로운 계시를 받았다.마을 어디 어디 나무 밑을 파면 목사가 몰래 암매장해놓은 시신이 있을 것이다.하느님은 그것을 알려주고 정의를 새우기 위해 나를 도구로 쓰신 것이다.'  목사는 당황하며 도망간다.

소녀는 풀려나고 얼마지나지 않아 소년에게 더이상 혼란을 막기 위해 교신을 끊기로 했다는 마음을 전한다.시간이 흐르고 모든게 일상으로 돌아왔다.또 시간이 흐른다.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소녀의 목소리를 듣는다.소녀는 소년에게 그 마을에 여전히 냇물이 있는 지 그리고 커다란 참나무가 있는지 묻는다.소년은 그렇다고 말한다.소녀는 소년에게 "그 나무 아래 수풀을 뒤지면 평평한 돌이 나올 거야.거기를 찾아봐 내가 남겨 놓은게 있어" 소년은 400년전 남긴 소녀의 흔적을 찾으로 그 숲을 간다.그리고 거기 오래된 바위 한 켠에는 이런 말이 써있었다. '오래전 부터 당신을 사랑하는 친구가..'

<도모유키>의 작가 조두진의 두번째 소설<능소화>는 경북 안동에서 발견된 미라와 그 옆에 놓인 편지('원이 엄마의 편지')를 소재로 한다.젊은 나이에 남편을 읽은 원이 엄마의 가슴 아픈 사연이 구구절절 남겨 있다.그 미라는 왜 썩지 않고 아직 남아 있던 걸까?또 같이 발견된 편지들 중 대부분은 삭아 없어졌는데 이 편지만은 왜 원형 그래도 보존되어 있던 걸까? 작가의 상상력은 한 사람의 사랑과 염원이 이를 오래도록 지켜나갔다는 쪽으로 발전한다.소설 <능소화>는 여기서 출발한다.

소설 <능소화>는 <전설의 고향>이다.소설은 액자 소설과 르포타주 양식을 취하고 있다.하지만 내용은 400년전 안동 땅에 살았던 응태와 여늬 이야기가 중심이다.신화나 전설에서 일반적인 장치들이 거의 전형적으로 이 소설에서 씌이고 있다.예언,금기,금기에 대한 저항,그러나 운명적인 만남,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슬픔..

'원이 엄마의 편지'를 능소화와 연결한 것은 작가가 우연히 능소화를 보았던 날 동행한 노선생님의 말에서 비롯된다. 그는 "능소화에는 어여쁜 여인이 꽃이 되어 님을 기다리며 담 너머를 굽어본다는 전설이 담겨 있다"는 말을 남긴다.저자는 '원이 엄마의 편지'와 '능소화의 전설'을 엮어서 400년 전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이다.

..사전에서 찾아본  능소화는 이렇다

 능소화(Chinese trumpet creeper )
금등화()라고도 한다. 중국이 원산지이다. 옛날에서는 능소화를 양반집 마당에만 심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어, 양반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소설 속에서 능소화는 하늘의 꽃이다.옥황상제의 정원에 있던 꽃이며 아름답지만 독이 있는 꽃이다.프로메테우스처럼 이 꽃을 훔쳐 인간 세상에 퍼뜨린 사람이 있었다.여늬다.물론 현실에서 인간의 몸으로 사는 여늬는 아니다.응태의 신탁은 소화꽃을 멀리 해야만 천수를 누릴 수 있었다.응태의 아버지 이요신은 모든 수단을 써서 응태를 지키려한다.또한 불길한 예언을 같이 안고 있던 여늬 아버지 역시 여늬를 불운으로 부터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그러나 운명은 인간의 노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법.이 둘은 소화꽃 넘어 드는 담벽에서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소설의 전개 과정은  <전설의 고향> 한 편을 본 듯하기 때문에 아주 친근하며 한편으로 식상하기도 하다.)결국 응태를 먼저 보낸 여늬 역시 능소화를 그녀의 무덤에 심게하여 다른 세상에서 응태를 만날 염원을 놓치 않는다.

한 여인의 사랑은 400년을 살아 남았고 능소화로 만발한다.

소설의 소재는 너무나 매력적이었다.아마 앞으로도 이 소재는 여러 장르로 또 여러 상상력이 첨부되어 생산될 듯하다.그러나 이 매력적인 소재를 요리하는 방식에 있어서 조두진 작가의 요리법이 성공적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편안한 마음으로 읽어 내기에는 전혀 부담이 없다.아니 너무 부담이 없어서 오히려 밍숭맹숭하다.<도모유키>에서 보여준 작가의 인간의 보편성에 대한 고찰이 아무래도 <능소화>에서는 조금 떨어지는 듯 하다.물론 모든 작품을 첫 작품의 틀안에서 쓸 필요는 없다.하지만 <도모유키>이후 작가의 새로운 작품 대해 갖은 기대에 비하면 평균 이상의 점수를 주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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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09-30 19:20   좋아요 0 | URL
전 도모유키도 기대에 못 미쳤거든요. 시도도 좋고 시작도 좋은데 끝이 다부지지 못하단 느낌이 들어서요. 이 책은 관심은 가는데 선뜻 읽고 싶은 충동은 안 들어요^^;;;
 
20세기 포토 다큐 세계사 1 - 중국의 세기
조너선 D. 스펜스 외 지음, 콜린 제이콥슨 외 사진편집, 김희교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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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세기 포토 다큐 세계사>는 크기가 LP 디스크 만하다.그리고 무겁다. 헬스 클럽에 있는  2KG 아령 생각하면된다.실제 집에 있는 체중계에 달아 봤다.(정확히 1.8KG정도다).그런데 표면적이 넓어서 그런지 같은 무게 아령보다 훨씬 무겁게 느껴진다.표지는 악어 등가죽 처럼 딱딱하다.중고등학교때 이런 책으로 선생님에게 머리통 맞으면 아마 두개골 함몰이 일어났을 지도 모른다. 이러한 늠름한 용모를 자랑하는 이 책,회사에 책 들고 다니는 나 같은 이들에겐 저주다.만약 이 책을 겨드랑이에 끼고 회사 엘리베이터를 탔다면 아마 주변 사람들이 한 소리 씩 다 했을 것이다.

"오..요즘 할랑한가 보지.책도 보네(지들은 할랑할 때 컴퓨터 눈빠지게 보면서) ", "겨드랑이에 굳은 살 박히겠다.뭔 책이 그렇게 크냐?", "그래..중국이 요즘 괜찮지.중국 가서 사업하게? " 고로 이 책은 단 한번도 내 출근길의 동반자가 된 적이 없다.이렇게 큰 책들은 적들에게 나의 정보를 드러내는 결과를 낳는다.

만약 지하철에서 이 책을 보겠다거나 ,흔들리는 출근길 버스 안에서 폼잡으려고 이 책을 보려는 분이 계시다면 심각하게 고민해보기실 바란다.옆에 서 있는 사람 허벅지를 책의 모서리가 찔러서 연신 사과의 멘트를 날려야 할지도 모른다.또한 여자 분이라면 이두근 쪽으로 알통 하나 쯤 생길 지도 모른다.진짜다.

<20세기 포토 다큐 세계사 1편>은 중국이다.근대 초기의 무기력을 딛고 '용트림하는 사자'로 변한 이웃 나라.청 왕조의 멸망 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중국 근현대사를 다룬다.예전에 우리나라 신문사에서 가끔 발간하곤 했던 <대한민국 보도사진집>처럼 이 책에도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생생한 사진들이 중국 역사의 한 면 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때론 사진 한 장이 어떠한 긴 설명보다 압축적으로 당시 상황을 설명해준다.홍위병들의 하얼빈 시장 이판우를 삭발하는 3컷의 사진은 당시의 비극을 무엇보다 잘 설명해준다.가위를 잡은 어린 소녀 홍위병의 신념에 찬 모습,목에 '흑방의 단원'이라는 팻말을 걸고 고개 숙인 이판우,그리고 그 뒤에 인자하게 걸린 모택동의 사진,홍위병에게 절을 강요하는 청년의 당찬 표정.... 그 외에도 양계초 가족의 근대화한 생활 양식의 변화.중국 최초의 헐리웃 스타 안나 메이 웅의 일상적인 모습,숙청된 평전과 함께 모택동의 원본사진과 평전이 지워진 수정본 사진...유명 정치인들의 모습외에도 대약진 운동과정에서 민중들의 모습,좌우 갈등의 희생자들 모습등 역사를 한눈에 알아 볼 수 있게 해주는 사진들이 꽤나 많이 수록되어 있다.

조너선 스펜스와 안핑 친의 역사 서술 방식은 비교적 간략하며 핵심적인 것 만을 집어 내고 있다.그렇기 때문에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고 쉽게 쉽게 중국 근대사의 흐름을 읽어 낼 수 있다.번역도 평이한 편이다.한가지 좀 곤란한 점은 인명에 대한 표기이다.우리는 한자 문화권에 있기때문에 대개 중국인들의 이름은 우리식으로 읽는데 익숙해 있다.말하자면 마오쩌둥이나 떵샤오핑 보다는 모택동,등소평이 익숙하다는 것이다.하지만 이 책의 인명은 전자를 따르고 있어 기억을 되짚어서 매치 시켜야하는 어려움이 있었다.대학 다닐 때 중국사와 관련된 강의를 즐겁게 들었다.기말 시험 대신 중국 근대사와 관련된 리포트를 내는 것이 있어서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한자이름에 익숙해 있었다.장학량,주덕,임호,이입삼,호요방...물론 책을 거의 다 읽어갈 때 쯤 뒤에 달린 <찾아보기>라는 게 있다는 것을 알았다.한자표기가 되어있었다. 괜히 머리 굴리느라 고생했구나 스스로 탓했다.요즘은 강택민보다 짱저민 하는 식으로 쓰는게 대새이긴 하다.그러나 관습의 힘은 생각보다 좀 강하기 때문에 한자어라도 넣어 주었으면 훨씬 좋았을 텐데 아쉽긴 하다.

중국의 역사를 둘러 보면 우리 나라와 유사한 점을 많이 느끼게 된다.물론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선 나라와 미국의 영향 하에 자본주의를 건설한 나라가 같은 양상을 띄지는 않을 것이다.단 외적 조건들 중에서 비슷한 것들이 있다는 점이다.먼저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했던 경험이다.이 과정에서 좌우 이념적 분파가 형성된다.그리고 내전을 겪는다.또한 장기 집권 과정에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며 민주주의의 목을 죈 것 까지 유사하다.둘 다 전근대 유교문화에 바탕을 둔 농촌 사회를 근간으로 하였기 때문에 사회문화적으로 유사한 측면도 발견하게 된다.현재 1중국 2체제를 택하며 긴장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우리와 유사하다.우리의 분단 역사가 반쪽짜리를 극복하고 북한의 역사 마저 우리의 역사로 수용하게 된다면 중국 근대사와의 유사점은 더욱 많이 찾아지게 될 듯하다.물론 그날이 오려면 멀었지만 말이다.

중국 근대사에서 사실 가장 재미 있는 부분은 1,2차국공합작 과정,대장정과 모택동 집권시 권력 쟁투과정이다.역사적으로 가장 혼란스럽기도 했던 시기이지만 읽다보면 마치 한편의 정치드라마를 보는 듯 흥미진진해 지기 까지 한다.모택동 시기에 있었던 하방운동,대약진운동,문화대혁명,4인방,등소평의 7전8기 등등...... 21세기 미국을 견제하는 유일한 제국 중국,경제는 자본화 하지만 정치는 사회주의를 유지한다는 이중전략을 쓰는 중국.이들의 현재의 모습은 수많은 정치적 굴곡의 결과이다.현대의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분명 그들이 지나온 터널과 그 터널 속에서 민중 개개인에게 내재화된 가치들을 이해해야만 할 것이다.지금 우리에게 중국은 거대한 잠재력과 후진화된 생활 태도로 이미지화 되어 있다.현대의 중국은 우리에게 몇 개의 단어로 수렴된다.사회 전반에 걸친 만연한 부패,극심한 빈부 격차,저임금의 노동력,Made in china =질 낮은 저질 상품,유해한 농수산물..그러나 성장가능성이 가진 두려움...

한 두권  중국 근대사를 읽었던 대학 시절,버스 안에서 우연히 초등학교 동창을 만났다.동양사학을 전공하던 친구였다.아는 체 하느라 '문화대혁명'에 대해 뭐라 뭐라 이야기 했다.그 친구는 자신도 그것에 관심이 많은데 아직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너무 너무 어려운 문제라고 이야기를 해서 단편적 지식으로 떠벌였던 나를 머쓱하게 만들었다.한 권의 짧은 책으로 중국 근대사를 이해할 수는 없다.단지 그들이 걸어 온 길을 TV 다큐멘터리 보는 심정으로 스르륵 훑어보기에 이 책은 여러모로 훌륭하다.그리고 또한 비싸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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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09-30 11:11   좋아요 0 | URL
아니, 이 책이 무겁고 크다는 이유로 딴지 거시는 분들이 많은데, 책이 무겁고 크면 안되나요? (라고 딴지 걸어봅니다.)

리뷰 잘 봤습니다. 영국편만 살까 했는데, 아무래도 나머지 3권이던가 4권이던가 나오면 함께 구입해야겠어요. (30% 세일! 30% 세일!)

드팀전 2006-09-30 11:51   좋아요 0 | URL
무겁고 커도 됩니다.안될게 뭡니까? 밑에 읽어보시면 아실텐데...
저처럼 회사에 책을 들고 다니는 사람에게는....이런 단서가 있습니다.^^
 
파라다이스 가든 2 - 2006 제30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권기태 지음 / 민음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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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스미스의 <파라다이스 가든>이다.
중학교 때인가 코팅해서 쓴 책받침 사진중에 하나이기도 했다.물론 곧 소피마르소에게 자리를 내주었지만 말이다.

<파라다이스가든>은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먼저 유진 스미스의 아이들이 걷고 있는 숲이다.또한 이 책의 공간적 배경이기도 한 강원도 영월의 도원 수목원이기도 하다.하나 더 콕 찍어 이야기하면 김산이 만들었던 모형 도원수목원을 주인공 김범오와 강세연이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파라다이스 가든>은 도연명이 말한 동양적 이상향이다.각 장이 시작할 때 마다 등장하는 도연명의 이야기는 도원수목원을 참된 이상향으로 만들고자 했던 이들의 염원과 궤를 같이 한다.작가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염원을 출생의 빛과 연관 짓는다.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모두 죽음과 출생에서 만나는 동일한 하얀 빛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죽음을 맞은 사람은 자신의 몸과 의식이 가벼워짐을 느낀다.이제 고단한 현실의 끈에서 놓여 날 때가 된 것이다.임종을 앞둔 이는 긴 터널 끝에 환한 빛 한 줄기를 만난다고 한다.그리고 그 빛을 향해 너무도 가볍게 나아간다.이는 출생 과정에 비유되기도 한다.태아는 자궁의 어둠 속에서 컴컴한 산도 끝에 있는 하얀 빛을 본다.그리고 인력에 끌려 가듯 그 터널을 지나 밝은 빛과 하얗고 커다란 손을 만나게 된다.혹자는 밝은 빛은 산부인과의 전등일 테고 하얀 손은 의사의 손일 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출생과 죽음이라는 두 세계를 통과하는 과정에 공통적으로 거대한 하얀 빛이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새로운 세상은 거대한 하얀 빛으로의 극적 전환을 통해 이루어진다.무게도 가치도 고통도 쾌락도 없는 고요의 상태...

소설 <파라다이스 가든>을 처음 집어 들었을 때 적지 않게 당혹스러웠다.너무 훌륭한 한국 소설을 만났다는 즐거움 때문이 아니었다.프롤로그에서 불러 일으켰던 호기심은 몇 장에 걸쳐 3류 기업소설로 바뀌어 갔다.성림건설의 후계 구도를 두고 벌어지는 권력 다툼이 그 내용이다...배다른 동생에게 경고하기 위해 애완견을 총으로 쏘아 죽인다.그룹 회장인 아버지를 가택 연금하여 의결권을 찬탈한다.지분 확보를 위한 가신들의 음모가 이어진다.....이쯤 봤을 때 계속 읽어야 하나 고민하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신문 연재만화에 자주 등장하는 기업만화 스토리와 그닥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래도 펼친 책 쉽게 접을 수는 없는 법...

소설은 근래 보기 드물 정도로 이분화된 구조를 갖고 있다.마치 80년대 민주 대 독재정권의 대결 구도를 자본 대 자율주의로 돌려 놓은 것 같았다.한동안 만나기 힘들었던 이러한 이분화된 구도는 '상상력의 부재'와 같은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한국소설이 후일담에 이어 사소설화 하는 경향은 나름대로 역사적 맥락을 가진다.한국소설을 즐겨보진 않지만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무한한 문학의 나래를 펼치리라는 작은 희망은 가져본다.그래서 한해에 몇 권씩 의무감을 가지고 읽곤 한다.그런데 소설 <파라다이스 가든>의 구성과 스토리 전개는 적당한 통속성과 적당한 복고주의로의 회귀처럼 보였다.소설을 이루는 두 축은 원직수의 세계/김산의 세계로 양분화된다.원직수의 세계는 자본의 세계이며 집중화된 권력의 세계이다.원직수는 성림건설이라는 토대 위에 자리잡고 있다.원직수의 세계에서 동생 원제현과의 권력 다툼은 또다른 모순 관계를 만들어 낸다.김산의 세계는 자연의 세계이며 자율의 세계이다.김산은 도원 수목원이라는 공동체 속에 미래를 만든다.이 공동체는 아나키즘에 바탕을 둔 자율적 마을이다.김산의 공동체에는 김산의 죽음 이후에 아들을 필두로한 개발 수용론이 또다른 내적 모순으로 갈등한다. 원직수의 세계와 김산의 세계가 공통되는 가치가 있다.그것은 이상향을 만들고자 하는 그들의 바람이다.물론 가치는 적대적이다.원직수가 바라는 이상향은 모든 것이 황금으로 이루어 졌다는 '엘도라도'이다.김산의 이상향은 사적 소유와 그로 인한 갈등이 없는 '무릉도원'이다.자본의 이상향과 자연의 이상향이 도원수목원이라는 현실적 공간 안에서 부딪히게 된다.원직수가 자신의 이상향을 '엘도라도'로 상정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세계에서 두가지 형태로 구현된다.하나는 자본의 무한확장이 행복을 가져다 줄거라는 자유방임형 시장론자들이다.또 한가지 '무릉도원'에 상대되는 가치로 서구의 물적 가치가 행복의 척도라고 보는 물신론들의 모습이다.이 둘을 한가지로 수렴할 수 있는 말은 '서구 근대화론'이다.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규정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저자가  '도원수목원'을 설정하는 것은 이러한 '서구 근대적 가치'에 대한 대안을 내비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 한번 상투성을 만나게 된다.자본과 개발논리에 대한 역으로 등장하는 '생태주의'.이것이 얼마나 상투적인지 알만한 사람은 알 것이다. '느리게 살기' '자연공동체' '생태주의' '아나키즘' 이러한 말들은 최근 유행어에 가깝다.사회에 어떠한 트렌드가 형성되는 것은 물론 그 원인이 있다.급속한 근대화가 가져온 부산물들이 그 첫번째 원인이 될 것이다.치열한 경쟁,탈출구 없는 사회,현저한 인간소외... 민주화를 위한 열정이 어느정도 이루어졌다는 믿음과 그 만큼의 실망은 시스템 전체를 다시 한번 성찰하게 한 계기도 될 것이다.결국 '생태주의적 아나키즘'은 현재를 뿌리부터 부정하는 저항의식과 미래의 이상적 삶에 대한 투신하는 도덕적 정당상을 부여해준다.거기에 아나키즘이 가지고 있는 권력에 대한 부정은 전근대적 조직관계의 위계에 지쳐버린 현대인들에게 산소공급기 같은 역할을 해준다.자본주의적 근대에 저항하는 이미지로서 최고로 매력적이다.그러나 이러한 가치와 공동체가 문학작품 안에서 양분화된 사회의 한 축을 구성하니 왜 이렇게 상투적이고 진부해 보이는 것일까? 마치 미니시리즈 드라마의 알기 쉽게 풀어놓은 선/악구도를 바라보는 것 같다.

주인공 김범오의 캐릭터도 너무나 상투적이다.물론 그가 현실의 족쇄에서 탈출하기 까지의 심리적 번민이 어느정도 잘 그려진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그가 '도원수목원'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 독자는 처음부터 알 수 밖에 없다.온통 집안을 화초와 나무로 꾸며 놓은 남자,도시 한 복판의 옥상을 누구나 반할 만큼의정원으로 꾸며놓은 남자.그거 아무리 번민을 한다고 해도 소설 속에서 가는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다.그렇다면 그가 중간 중간 고민하는 과정들은 결과를 상정해 놓고 이루어지는 요식행위처럼 보여질 뿐이다.작가는 또한 대중소설의 통속성을 위해 김범오를 특공대 출신의 청년으로 상정한다.왜 특공대 출신이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성림건설의 도원수목원 접수과정에 발생하는 폭력에 맞서 몇 가지 액션을 선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김범오는 액션씬에서 불의의 기습을 받아 고전할 때도 있지만 대개 어느 정도 액션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날쌘 모습을 보여준다.소설 속 주인공이 늘 문약할 필요는 없지만 액션씬을 염두에 놓은 캐릭터 설정은 역시 미니시리즈 드라마용이다....책 말미에 등장하는 김산이 공동체에 투신하게된 젏은 시절이야기는 어떤가?공동체 삶을 결심하게된 것을 설명하기 위해 아나볼 논쟁,아나키즘 폭력론을 얼핏 심어넣다니...의욕과잉의 상투성인가?

모든 사건이 종결된 에필로그마저 진부하다.새로운 생명이 엉클어진 세계에 새로운 희망을 안고 나온다는 이야기..  희망을 상징하는 메타포는 역시나 아기인가?

내용의 상투성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꽤나 스피디하게 읽힌다.사건의 진행이 톱니바퀴 돌아 가듯 착착 이루어진다..또한 앞 장에서 이루어진 사건의 내막이나 그 이후 여파들을 다음 장에서 바로 바로 알아차릴 수 있게 해준다.같은 화자의 시선이 아니라 상대의 시선 또는 3자의 시선으로 사건들을 이어가기 때문에 동일한 사건도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다.그러니 앞의 일이 왜 일어났지를 알아보기 위해 책을 앞 뒤로 넘길 필요가 없다.또한 수목원에서 만나는 새,나무,꽃 들에 대한 묘사는 아주 사실적이며 뛰어나다.작가의 자연에 대한 관심을 세세히 알아볼 수 있어서 즐거웠던 점이다.실제 도원수목원이 있다면 직접 가서 작가가 언급한 새소리와 물고기의 움직임을 천천히 음미하고 싶어진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김산의 죽음이었다.노오란 해바라기 숲에서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늙은 김산이 눕는다.스르르 의식은 흐려지며 몸은 가벼워진다.마치 고호의 해바라기 밭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고호의 그림을 패러디했던 구로자와 아카라 감독의 <꿈>이라는 영화도 생각났다.그리고 함형수 시인의 유일한 시...

<해바라기의 비명>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빗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소설<파라다이스 가든>은 2006년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다.신예작가가 이정도의 분량을 아귀가 맞아떨어지게 이끌어간 것만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또한 그가 가진 많은 재주들을 언듯 언듯 볼 수 있어서 앞으로 기대하게된다.바람이 있다면 조금 더 아무것도 씌여 있지 않는 흰 원고지 위에서 그의 재주를 펼쳐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한국 소설은 새로운 공간의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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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튼의 사과 2006-09-20 01:32   좋아요 0 | URL

싸늘한 리뷰군요. 

이분법적이고, 상투적이고, 진부하고, 기업만화스토리고, 통속적이고, 상상력의 부재에다, 요식행위고, 의욕과잉에. 또 없나요? 후후. 


드팀전 2006-09-20 09:31   좋아요 0 | URL
^^ 실망하셨나요.제 취향은 아니란 뜻일 뿐입니다.수준높은 평론가분들이 뽑으신 소설인데 일정 수준을 갖추지 않았겠습니까.. 현재까지 올라온 리뷰들의 대세가 "올해 최고의 한국소설이니 한국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니.."이런 극찬이 이어져서 과연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썼습니다.그렇다보니 미덕보다는 눈에 걸리는 것들을 쓰게 되네요..이 책을 좋아하실 분들은 또 무척 좋아하실 수도 있다고 봐요.이 책에 대해 만족스러운 리뷰를 보시려면 1편에 달린 리뷰들을 보시면 될 듯합니다.그쪽에 더 공감하는 분들이 많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제가 죽는 날까지 즐겨 듣게될 어떤 음악들은 또 다른 어떤 분들에겐 지겨움이고 따분함이기도 하니까..^^
댓글 감사합니다.

드팀전 2006-09-20 17:59   좋아요 0 | URL
^^ 이건 참으로 재미있는 반응이군요.리뷰에 대해 이렇게 불만이 많으시다니....
리뷰는 선이라고 말한적 없는데요.그리구 형편없는 소설이라고 한 적도 없습니다.형편없었다면 별 2개나 별 1개 여야죠.별 3개는 대개 보통을 말하죠.님처럼 이 책에 별다섯을 주지 않은것 뿐입니다.분명 이 책을 좋게 보신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님 처럼 말이죠.그럼 그걸로 만족하세요.다른 사람까지 님과 똑같이 느끼게 하고 싶으신가요.이 책이 좋으니까 심사위원들도 오늘의 작가상으로 뽑았겠지요. 고명한 평론가들의 심미안과 님의 심미안이 같으니 별로 근심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렇지만 모두 이 책을 좋게 평가하리라고 생각하는 건 ..글쎄요...

2006-09-21 15: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팀전 2006-09-22 09:16   좋아요 0 | URL
숨은님께...) .^^ 안그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저두 그러 그러한 이유에 님처럼 좀 그런 마음이 들었나봅니다.(켕 이게 무슨 말이람) 님의 아이디는 신 이름 맞지요.제 기억이 맞다면.... 아닌가? 어쨋거나 자주 뵙길 바랍니다.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
우석훈 지음 / 녹색평론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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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가 한미 FTA 관련된 글을 읽기 시작한 건 올 봄이다.노조 사무실에 우연히 들렀다.커피랑 과자 하나 얻어먹으러...책장에 FTA관련 산별 노조 자료집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내가 이리 펴보고 저리 펴보고 하는 모양새를 보더니 노조간사가 "하나 들고 가셔도 되요." 라고 했다.안그래도 산발적으로 읽던 관련자료를 일목요연하게 묶어 놓아서 탐이 났던 차였다.간사의 말에 나는 냉큼 책자를 겨드랑이 사이에 끼우고 올라왔다.

산별노조의 자료집은 주로 이해영 교수나 정태인 수석들의 글이 많았다.대개 한미FTA 반대 사이트에 공식자료로 올라와 있는 논문이나 글들이었다.한미 FTA의 전반적 의미와 분야별 쟁점,정부의 통계수치 조작,정부의 무리한 FTA 추진 비판,NAFTA 의 명암,한미상호방위조약과 FTA의 관련문제...그리고 자료집 후반부에는 각종 미디어에 실린-주로 한겨레,경향- FTA 관련 사설과 시평,기획기사들 잔뜩 담겨있었다.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를 읽을까 말까 고민했던 것은 사실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보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때문이었다.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건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FTA관련 책자들의 기조는 우선 통계수치를 중심으로 FTA의 실익이 거짓이라는 점을 밝히는데 일차목적이 있다.다음으로 협상 과정에서의 비상식성에 대한 노무현정부를 질타하는 것이 또 다른 한 축을 이룬다.<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 역시 이 두가지 큰 틀에서 많이 벗어나지는 않는다.다른 점은 기존의 책들이 기사문체나 논문체의 딱딱한 어투에 애둘러 말하는 것에 비해 이 책의 저자 우석훈 박사는 훨씬 저자거리의 말투로 단호하게 이야기 한다는 것이다.4인가족 기준 연봉 6000이하면 희망없으니 이민 알아보라는 것,5000평 규모의 다품종 유기농 농업하는 농민 아니면 그냥 호주나 뉴질랜드가서 농사지으란 거다.(물론 이것도 쉬운일은 아니다.그러니 국민들은 사면초가에 빠진것이다.) 교사,군인,공무원은 FTA 체결되어도 당장 죽지는 않는단다.맨 마지막으로 죽는다는 거지 거기라고 안전지대는 아니다.어쨋거나 그래서 요즘 교사,공무원들이 사윗감으로 최고인가보다.어떨때 세간의 민심은 현상을 훨씬 앞질러 간다.그럼에도 실제 사람들은 FTA 문제에 별 관심이 없어보인다.자신들의 문제임에도 그다지 관심없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좀 더 직접적으로 한미FTA가 자신들의 문제중 하나임을 콕콕 짚어서 이야기해줄 필요가 있다.이 외에도 저자는 경제시스템이나 FTA와 관련된 사안들을 쉬운 예를 들어 설명한다.

예를 들어 한미 FTA에 참여하고 있는 외교부의 전략은 축구에 비교하여 '킥 앤 러쉬 시스템'이라고 말한다.'킥 앤 러쉬' 이말을 우석훈 박사는 더 쉽게 풀어준다.'동네 뻥 축구"라는 것이다.'뻥축구'에서는 미드필드가 필요없다.수비에서 잡아서 뻥 차주면 알아서 넣으면 된다는 거니까.결국 잘하는 공격수(우리의 수출주도형 산업들)한 두개 키우고 미드필더(산업의 토대가 되는 중소기업) 들은 나몰라라 하는 전략을 우리 외교부가쓰고 있다는 것이다.결국 어떻게 되느냐?미국은 토털사커를 구사한다.우리 수비수들은 미국 공격수들에게 유린당하고 미국에서 고립된 한국공격수들은 후방에서 볼이 넘어오지 않게 되어 게임 끝난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는 한미 FTA는 결국 한국의 경제시스템을 미국형으로 바꾸는 것이다.우리에게 서양인은 다 미국인이었던 것처럼 우리 정부의 경제시스템 결정 방향도 '서양=미국'으로 가는 듯하다.결국 우석훈 교수는 철학의 부재가 일방적인 통상독재를 가능케 한 첫번째 이유라고 말한다.정권 초기에 네델란드형이니 스웨덴 형이니 말만 많았지 결국 방향은 자진해서 미국행을 택하게 되었다.그리고 FTA 체결 이후엔 NATFA의 시련을 겪고 있는 멕시코형이 되기 딱 좋은 형국이다.

한미 FTA의 실익과 통계 조작의 문제는 이미 여기 저기서 많이 이야기 되었기 때문에 굳이 다시 언급할 필요가 없을 성 싶다.저자는 최고 수준의 투자 개방형태인 '미국 기업제소권'만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또한 협상을 유리하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노동시장 개방도 충분히 꺼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노동시장 개방은 혁신적인 카드이나 비현실적이다.하지만 지금 형태의 불리한 FTA를 한방에 바꿀 수 있는 영향력이 있다.노동시장 개방건을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에 비유하는 것도 그래서이다.문제는 미국이 노동시장을 개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그걸 개방하면 미국이 미국이 아니다.한국은 결국 상품,투자 시장만 열어주는 꼴이 될 것이다.멕시코 인들은 국경이라도 넘는다지만 한국은 바다가 가로막고 있어서 국경을 넘기도 힘들테고..쯧쯔쯔

현 상황에서 한미 FTA에 대해 국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저자는 노무현 정부의 '폭주'를 막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제시한다..노무현 정부는 한미 FTA를 1년 6개월내에 체결하기로 했다.이는 국제 협약에의 절차에 비추어봐도 아주 비상식적인 일이다.대개 다자간 협상이 5년, 양자간 협상은 3년 정도가 걸린다고한다.노무현 정부는 국제적 상식도 무시하고 FTA를 추진하고 있다.협상이 체결되면 결과는 다음 대통령대에 점진적으로 나온다.노무현은 끝났으니 손 털고 외유하면 되겠지만 다음 대통령과 국민들은 노무현씨가 밀어붙인 정책의 결과 시름 시름 앓을 수 밖에 없다.협상 일정을 최대한 연기해서 다음 대통령이 협상의 단 할 줄이라도 바꿀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시간을 벌어서  FTA에 대해 신중하게 의렴을 수렴하고 더 나은 협상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이것도 다음 대통령이 한미FTA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한나라당이나 유사정당에서 나올 가능성이 있어서 그닥 기대하지는 않는다.하지만 무리한 협상일정을 연기함으로써 얻게 되는 것들은 분명 많을 것이다.

현재 우리가 구속받고 있는 헌법의 '87년 시스템'은 독재를 방지하는 좋은 제도였다.독재를 끊고 대통령 직선제를 위해 수많은 민중들이 만들어낸 의미있는 시스템이었다.하지만 그 헛점이 5년 임기 동안 대통령의 정책독주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그리고 그게 한미 FTA 추진 상황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노무현의 폭주를 국민이 막을 길이 없다.국민 투표의 부의권이 대통령에게 있기 때문이다.국민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협정 체결에 국민의 뜻이 반영될 길이 막혀 있는 것이다.지금 해야 될 일은 분야별로 다양한 테이블을 열고 국민과의 대화를 시도해야 된다.하지만 노무현 정부의 닫힌 구조는 일방적일 뿐이다.국민 투표를 통해 국민의 50% 이상이 납득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만약 그렇게 되서 설령 국민투표 결과가 한미FTA찬성쪽으로 가결된다해도 어느 정도 시간을 벌수 있고 협상단 입장에서도 협상력이 강화될 것이다.우석훈박사는 국민투표의 시점을 국회 비준동의가 끝나고 난 이후로 본다.국민투표가 아니라면 2007년 대선에 연계하는 방식도 거론된다.그러나 대선 연계는 그닥 현실적이지 않아 보인다.국내 정치가 보수우익화되어가는 경향에서 보자면 2007년 대선 후보들의 정치적 스펙트럼이 그다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요즘 정치권의 프로포즈를 받기에 여념없는 고건씨를 보자.그가 열리우리당 후보,한나라당후보,민주당후보..어딜 나와도 다 어울린다.그런 이가 미국과 행한 협상을 다시 하자고 말하기 어렵다.나머지 대선 후보군들도 만찬가지다.

국민의 뜻을 물을 수 있는 방법은 국민투표 밖에 없다.열나 달리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이 부의권을 쓸 이유가 없다.결국 국민이 대통령을 압박하는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87년 같은 대규모 집회라도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럴 일은 없어보인다.국민들은 FTA 체결이 다 끝나고 5년 또는 10년 지난 후 다 죽어가야 죽는다고 나설 테니 말이다.그래도 어쩌겠나 하나 둘 꼬셔서 압박을 강화할 수 밖에. www.nofta.or.kr 에 가서 참여 먼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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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6-09-21 10:50   좋아요 0 | URL
그나마 관심있게 지켜본 북유럽 국가들의 사회복지제도도 후퇴하고 있는 지금,
스웨덴의 우익정부집권 소식을 들었습니다.
자본주의는 이제 견제장치를 잃어버린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었군요..
잘 읽고 갑니다.
참여도...

드팀전 2006-09-21 15:4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ㅆㅆ.

사마천 2006-09-24 00:42   좋아요 0 | URL
책 안읽어도 눈에 내용이 잘 들어오네요. 당선 축하드립니다.
한미 FTA, 힘합쳐서 막아야죠. 아직 자신이 바보인지 깨닫지 못하는 청와대의 바보의 폭주를 막아야죠.